[집중탐구] 북한의 이미지 정치 : 월간조선

2010년 9월 30일 북한 《노동신문》은 베일에 싸여 있던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했다. 1983년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당시 27세였다.

《노동신문》은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촬영한 ‘당 중앙기관 성원 및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 기념촬영’ 사진을 1면에 배치했다. 첫째 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앉아 있었다. 28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께서 27일 인민군 지휘성원들의 군사칭호를 올려주는 명령 제0051호를 하달했다”며 “명령에는 김경희, 김정은, 최룡해 등 6명에게 대장의 군사칭호를 올려준다”고 밝혔다.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식화한 것이다.

2008년 8월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다섯 달 후인 2009년 1월, 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과정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진행됐다. 후계자 내정 이후 국정원, 북한전문매체, 탈북자 등을 통해 후계 작업과 관련한 북한 내부의 심상치 않은 동향(動向)이 알려졌다. 2009년 3월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선설(說),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지휘설, 6월 김정은 후계 사실 해외 공관 전파설, 2010년 1월 김정은 생일(1월 8일) 국가기념일 지정설, 8월 김정일 방중(訪中)에 김정은 동행설 등이 잇따랐다.

후계자로 확정되고 약 1년6개월의 사전(事前) 정지작업을 마친 김정은은 2010년 9월부터 본격적인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띄우는 사진과 영상을 보도했다. 정치 프로파간다(선전·propaganda)를 목적으로 하는 사진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며 김정일의 사망을 알렸다. 이후 북한 매체는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굳히는 작업을 진행했다.

3대 세습을 위한 3단계 밟아

2010년 9월 30일 《노동신문》 1면을 통해 처음으로 얼굴이 공개된 김정은. 앞줄 오른쪽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사회주의 북한에서 정치 선전은 권력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지는가’를 알 수 있는 사건으로는 2003년 소위 미녀 응원단의 ‘비에 젖은 김정일 현수막 사건’이 있다. 남한은 눈물을 흘리며 김정일 사진을 옮기는 북한 여성 응원단의 모습을 보고 문화적 차이에 충격을 받았다.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는 이처럼 절대적이다.

김정은 후계 작업은 크게 3단계로 이뤄졌다. 1기는 후계자로 지명된 2009년 1월부터 2010년 9월 30일까지 ‘후계자 수업기간’, 2기는 얼굴을 공개한 2010년 9월부터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12월 17일까지 ‘왕세자 시기’, 3기는 김정일이 과로(過勞)로 사망한 이후 상주(喪主)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3대 세습 안착(安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시기별로 북한매체의 사진, 영상 자료를 분석하면 북한 정권의 특수성을 알 수 있다. 기자는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에 보도된 김정은 관련 사진을 폭넓게 확보했다. 사진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기 위해 북한 전문가, 경호학 교수, 사진학과 교수와 관상가까지 자문을 요청했다. 입체적 분석을 통해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2003년 김정일 현수막 사건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발생한 ‘비에 젖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현수막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김일성대학, 평양음악무용대학 등 명문대 출신의 젊고 산뜻한 여대생을 응원단으로 파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이 새삼 화제가 될 정도였다. 2003년 북한은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다시 여성 응원단을 파견했다.

초반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미녀 응원단’은 의외의 사건으로 남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경북 예천에서 양궁 경기를 관람한 응원단이 대구를 향해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직전 갑자기 버스가 멈췄다. 북한 선수와 응원단을 환영한다고 걸어 놓은 현수막이 문제가 됐다. 현수막에는 2000년 6·15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응원단은 “장군님 사진이 비를 맞게 할 수 있냐”며 버스를 세웠다.

“장군님 사진이 비를 맞잖아요.” “허수아비에 장군님 사진이 걸려 있다니…” 등 눈물을 글썽이며 항의하는 응원단의 모습은 방송에 그대로 보도됐다. 응원단은 현수막 4개를 떼어 내 김정일 사진이 앞으로 나오도록 접어서 가져갔다.

‘왕세자 시기’에 나름의 검증 과정 거쳐

[사진 1] 앞줄 사진 왼쪽부터 장성택·오극렬·리용무 국방위 부위원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은,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왕세자 시기’ 김정은의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이미지가 [사진1-위쪽]이다. 사진은 2010년 11월 8일 김정일 부자(父子)가 이틀 전(6일) 사망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장면이다.

장례 절차에서는 서열이 중요하다. 서열은 김정일에 가까울수록 높다. 김정은이 리영호보다 서열이 낮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김정일은 순서를 밟아서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1974년 2월 당시 김정일 조직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공인됐다. 김정일은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이 심장동맥경화에 따른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후계자 교육과 검증을 받았다. 김정은 2기는 김정일이 20년 동안 받았던 후계자 교육과 검증을 압축해서 받았던 시기였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박인호 대표는 “북한도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며 “실무를 수행하고, 대외적으로 용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김정일의 건강이 극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후계자 교육과 검증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95쪽의 [사진1-위쪽]은 북한이 말하는 교육과 검증 기간을 거치고 있음을 나타낸다.

노동당 창건 65돌 경축 보고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당시 사진을 ‘이미지(image)’를 통해 분석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안시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2010년 9월에 소개된 [사진1-아래쪽]에 대해 “카메라 앵글로 볼 때 김정은보다 왼쪽에 있는 간부가 더 비중 있게 보인다”며 “김정은의 경우 눈동자가 돌아가는 등 이미지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김정은의 불안한 위치를 보여준다”며 “다만 측면을 강조해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효과는 있다”고 말했다.

권력자는 자신의 생각을 숨긴다. 부하에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아야 항상 긴장하게 만들 수 있다. 권력자는 알 수 없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내는 습성이 있다. 북한의 사진 이미지는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오고가는 경우가 많다. [사진2]가 그 예이다.

안시준 교수는 “김정은의 경우 남을 의식하지 않을 때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지만, 주변을 의식하면 보스 같은 느낌이 든다”며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북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극과 극의 사진을 배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 2]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의 여러 표정.

김정은 관상은 下秩

[사진 3] 관상으로 본 김정은.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가운데, 관상(觀相)이 있다. 처음 김정은이 등장했을 때, 김정은에 대한 정보는 극히 부족했다. 당시 관상으로 김정은을 분석하는 방식이 일부 언론에 등장했다. 과학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관상 측면에서 초기 김정은 사진을 들여다봤다.

전용원 한국역학협회 회장은 김정은의 얼굴을 부위별로 분석했다. 전 회장은 “관상으로 볼 때 김정은은 하질(下秩)이다”며 “왼쪽 눈썹이 끊겨서 이복형제가 있고, 부모 중에 한쪽과 일찍 여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눈이 하삼백(下三白·검은자 아래에 흰자위가 있는 눈)으로 눈동자를 보면 인정이 많아 보이지만 겁이 많고 잔인한 품성을 가지게 되어 있다”며 “위엄은 있어 보이지만 인생이 험난한 형살(刑殺)이 있다”고 정리했다. 또 눈의 형살에 대해 그는 “눈에 상시(上視) 형살이 있어 젊어서는 영광이 있지만 48세 이후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 회장은 김정은의 건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코의 점과 ‘붕어 입’ 등을 볼 때 간이나 신장이 허약하다”며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입술의 기색이 어두운 것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신호이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눈썹부터 입까지 부위별로 나이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왼쪽 눈썹의 31세를 시작으로 60대를 상징하는 입까지 배열되어 있다([사진3] 참조). 그는 전체적으로 볼 때 “31세부터 34세까지는 다소 불안하고, 36세에 권력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38세부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며 “40세 전에 실각(失脚)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사진 4] 오른쪽부터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일, 김정은, 궈보슝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의 후계자 양해 갈망

김정은 2기 ‘왕세자 시기’ 중국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진4]가 있다. 2010년 10월 25일 중국군(軍) 6·25 참전 60주년을 맞아 중국인민해방군 문예단을 이끌고 북한을 찾은 궈보슝(郭伯雄)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일행을 김정일 부자(父子)가 안내하는 사진이다. 특이한 점은 김정은의 위치이다. 김정은은 궈보슝 부주석과 김정일 사이에 위치했다. 김정일과 중국 군부를 중재하는 업무는 리영호 총참모장이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

당시는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할 것인지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사진4]는 중국이 마치 김정은을 후계자로 인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국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인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북한은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양해(諒解)를 갈망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2010년은 중국군 6·25 참전 60주년으로 중국과 북한의 교류가 활발했다. 그 결과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 내는 데 여로 모로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

경제는 조심스럽게 접근

[사진 5] 김정일(가운데), 김정은(오른쪽에서 세번째)이 황해남도 룡연군의 룡호오리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 [사진5]는 2010년 11월 22일 조선중앙TV 보도로, 김정일이 황해남도 룡연군의 룡호오리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최고지도자는 현지지도에서 현장을 직접 확인, 감찰하고 지시한다. [사진5]에서 김정은은 멀리 떨어져 있다. 아직 현지지도할 정도는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서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박인호 대표는 “북한 경제는 인민경제와 군수경제로 나눠지는데, 김정은은 평소 인민경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며 “초기 지도자 수업 과정에서 외교, 군 관련해서는 김정은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인민경제 분야에서 조금 물러나 있었던 것은 김정일의 의중이 반영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본격적으로 통수권 행사

[사진 6] 군부대 시찰 중인 김정은(좌측 2011년 2월, 우측 2012년 1월).

[사진6-왼쪽]은 처음 사진이 공개되었을 당시 ‘김정은이 쌍안경을 거꾸로 보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확인 결과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사진6-왼쪽]은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4개월 후인 2011년 2월 16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기록영화의 한 장면이다. 북에서 쌍안경 혹은 망원경은 군을 지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즉 통수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이즈음부터 북한은 군 통수권자 김정은을 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진의 수준이다. 망원경과 같은 액세서리(장식품)는 보통의 경우 인물의 급을 떨어뜨린다. 김정일의 경우 망원경을 보는 모습을 주로 옆에서 포착했다.

어색한 액세서리로 김정은이 희화화(戱畫化)된 것으로는 [사진6-오른쪽]이 있다. 김정일 사후 2012년 1월 8일 근위(近衛) 류경수105탱크(북한은 러시아어의 영향으로 ‘땅크’로 부름) 사단을 방문한 사진이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광화문 중앙청에 인공기를 올린 부대가 105탱크 사단이다. 당시 사단장이 류경수였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 105탱크 사단은 선군정치의 아이콘(상징)이다. 사진에서 어색한 군용모자(액세서리)를 착용해 인물의 급이 상당히 떨어지게 보인다. 특히 부하들이 최고지도자를 내려다보는 구도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정은 정권 초기 불안한 권력 기반을 상징한다.

2인자 경호는 견제를 필연적으로 수반

[사진 7] 김정일이 조선인민군 제35차 군무자예술축전에 입선한 중대군인들의 공연을 관람한 후 김정은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지시를 하고 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 과거 왕조시대에 절대군주에게 세자는 불편한 권력이었다. 2인자 김정은과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권력 관계를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사진7]이다. 김정일이 지시를 하고 있는데, 오직 김정은만 적지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준(準)최고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김정은은 김정일이 죽으면 최고지도자로 ‘부활’하는 존재이다. 북한에서는 이를 체화(體化) 혹은 체현(體現)한다고 표현한다. 해당 사진은 김정일 사망 10일 전인 2011년 12월 6일에 공개됐다.

권력 관계를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호이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현지지도를 하게 되면 약 1개월 전에 호위사령부의 경호 선발 요원들이 사전에 현지 도착해 점검한다. 현지 방문 당일에는 사회안전성, 국가안전보위부, 호위사령부 요원들이 주변지역에 대해 4중 경호 개념으로 호위망을 구축한다. 경호는 신변보호만이 목적이 아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세우는 역할도 하게 된다. 최고지도자와 후계자가 함께 현장에 나올 경우 권력의 역학관계가 드러난다.

1980년에서 1995년까지 청와대 경호실에서 대통령 경호를 담당했던 김두현 한국체육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경호 측면에서 김정일과 후계자 김정은의 경호는 대통령과 영부인의 관계로 생각하면 된다”며 “경호는 신변보호라는 측면도 있지만 권위를 세우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경호 과정을 지켜보면 권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호라는 것이 신변을 ‘보호’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견제’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며 “초기 김정은 ‘후계자 수업 기간’을 보면 (국가안전보위부 등으로부터) 견제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점차로 김정은은 김정일과 동등하게 경호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후계자로서의 예우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진 8] 2011년 12월 13일 김정은을 대동하고 제966대연합부대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하는 김정일.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17일) 직전 북측 영상을 보면, 김정은 띄우기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느낌이 드는 영상과 사진이 많다. 김정일 사망 5일 전에 공개된 [사진8]의 경우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여러모로 주목받고 있다. 안시준 교수는 “중세 회화를 보면 예수의 인물상보다 크게 주변 인물을 그리는 경우는 없었다”며 “해당 영상의 경우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크게 부각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과 김정은 사이의 묘한 권력 구도를 절묘한 영상 구도로 표현했다”고 정리했다. 그는 “엄연히 왕이 있는데 세자에 포커스를 맞추면 역적이 되는 것이다”며 “이전 사진은 김정일의 표정, 손짓에만 포커스를 맞췄는데 2011년 말부터는 김정은까지 배려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앞에는 기마대가 경호를 하고 있다. 소위 문화경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청와대를 친근하게 느끼게 만들고, 관광객도 유치하기 위한 조치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사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진9]는 그 예이다.

김두현 교수는 “경호 측면에서 최고지도자와 (신원조사 없이)즉흥적으로 악수를 할 수 없다”며 “경호 대상자와 신체 접촉할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정은의 경우 경호상 부담이 되는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는 등 아버지와 다른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하는 것 같다”며 “다만 일련의 사진은 연출된 것으로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사진 9] 주민, 군인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김정은.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1월 인민군 공군 제1017부대 시찰(오른쪽), 제169군부대 시찰(왼쪽).

리영호 추락 사진에 나타나

[사진 10] 2012년 7월 실각한 리영호.

김정일 사후(死後) 리영호 총참모장의 추락 역시 사진으로 나타난다. [사진10-왼쪽]은 2011년 9월 9일 창건 63주년 노농적위대 열병식 사진이다. 3달 후 김정일 사망 직후인 [사진10-오른쪽]은 2012년 1월 19일 군부대 시찰에서 리영호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결국 2012년 7월 리영호는 실각했다. 리영호는 2009년 1월 김정은 후계자 내정 직후 발탁됐다. 김정일이 자신의 사후에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세워 놓은 인물이었다. 총참모장은 전시(戰時) 지휘계통상 북한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막강한 자리이다. 2012년 4월 우리의 국가정보원장 격인 국가안전보위부장,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지도, 감시하는 총정치국장에 대한 인사가 이뤄져, 북한발 권력구도 변화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아직까지 왜 리영호가 실각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일성 벤치마킹한 김정은

[사진 11] 김일성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김정은(우측 김정은, 좌측 김일성).

김정은은 여러 면에서 할아버지 김일성을 벤치마킹했다. 머리 스타일부터 김일성과 같은 상고머리이다. 2012년 1월부터 북한은 김일성 향수를 자극하는 김정은의 사진을 내보내고 있다. 특히 아이들과 김정은이 함께하고 있는 사진이 많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알아야 한다. 박인호 대표는 “김일성이 아이들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며 “탁아사업, 유치원 건설에 관심이 많았고 1980년대 초반까지 학용품, 사탕, 교복 등을 김일성이 직접 챙겼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소련이나 중국에서 아이들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북한 주민들은 ‘수령님이 애들은 잘 챙겼지’ 하는 향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사진11]은 과거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김정은의 표정, 포즈가 김일성과 유사한 사진이 많아 동작을 연습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안시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북한 내부에는 이미지로 형상화된 그들만의 ‘신화’가 있다”며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신화를 끄집어내는 프로파간다가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은 여러 면에서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생산하고 있다”며 “영상과 사진을 정치에 활용하는 북한의 특성으로 볼 때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김일성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이미지 정치’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람은 이미지로 정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흐릿한 그림이 생각의 방향을 크게 좌우한다. 상징물을 이용해 여론을 선동하는 정치적 기법은 고대로부터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프로파간다를 넘어 종교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안시준 교수는 “북한의 이미지 조작 수준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전세계 다양한 매체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아직까지도 북한 사회에서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북한 사진, 영상의 미묘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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