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외화벌이 기구의 내각 이관 등 ‘군부 힘 빼기’ 작업은 이미 예고돼” (최주활 탈북자동지회장)
⊙ 김정은, 2009년 후계자 지명 이후 군장성 20여명 숙청 단행
⊙ 선진자본주의 체험한 김정은, 중국·러시아 등 개도국 체험한 김일성·김정일과 삶의 목표치 달라
⊙ “북한에 GDP 3000달러 시대 도래하면 시민혁명 가능성”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취재지원 : 장애리 月刊朝鮮 인턴기자
⊙ 김정은, 2009년 후계자 지명 이후 군장성 20여명 숙청 단행
⊙ 선진자본주의 체험한 김정은, 중국·러시아 등 개도국 체험한 김일성·김정일과 삶의 목표치 달라
⊙ “북한에 GDP 3000달러 시대 도래하면 시민혁명 가능성”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취재지원 : 장애리 月刊朝鮮 인턴기자
- 2010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 때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가운데)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당시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사이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북한은 2012년 7월 16일 리영호의 경질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 7월 16일 북한군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되자, 청와대를 비롯한 안보 관련 부처들은 북한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리영호 해임은 김정은 체제의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한 정치적 숙청사건으로 보인다”면서 “리영호 해임에 불만을 품고 있을 군부가 수세 국면 탈피 후 장성택·최룡해 인맥에 본격적 반격을 감행, 심각한 정치불안이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이튿날인 17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류우익 통일부 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관련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미 군 당국도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군 동향을 정밀 감시하기 위한 첩보수집 수단을 증강해 운영 중이다. 군 관계자는 “돌출 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 양국군의 대북 정찰 자산을 늘리고 정찰 시간도 확대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지난해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리 차지
지난 7월 18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 등의 명의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원수 칭호를 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정은이 ‘공화국 원수’에 오르면서 인사·조직 개편을 통한 군부 장악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2010년 9월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등장할 당시 대장 칭호를 받은 김정은은 이번에 바로 윗 단계인 차수를 건너뛰고 원수를 달았다. 지난해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지 7개월 만이다. 현재 김정은 외에 빨치산 출신 리을설이 원수 칭호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령(90세)인 점을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군부 내 최고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원수는 북한 군부에서 대원수에 이어 가장 높은 계급으로 김일성·김정일만이 대원수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다.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사망 후인 현재도 대원수 칭호를 유지하면서 군의 최고 수뇌부에 포진해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원수 칭호 부여에 앞서 지난 7월 16일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 7월 17일 현영철 차수 및 총참모장 임명을 단행했다. 3일간 북한의 메가톤급 인사조치는 속전속결 양상으로 전개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정은이 군권(軍權)을 장악한 모양새다.
정통 군인 출신의 리영호가 실각하고 젊은 현영철이 차수로 고속 승진하면서, 북한 지도부 내에서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견된 시나리오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총참모부에서 근무했던 이영훈(李英勳) 전 북한군 소좌는 “군부에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군 최고실력자인 리영호의 해임부터 김정은의 원수 등극, 현영철의 등용까지 전격적으로 해치웠다”면서 “리영호를 필두로 한 북한 신군부 세력이 정권에 잠재적인 위협 세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치밀한 준비를 한 가운데 제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았던 최룡해와 현영철이 최근 차수 칭호를 받은 만큼, 군 수뇌부에 대한 권위 유지 차원에서 더 이상 원수 칭호를 미룰 수 없었을 것”이라며 “리영호 해임 후 군부에 동요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군부를 더 안정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의 모든 지위 물려받아
원수 등극을 통해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갖고 있던 당·군·정의 모든 지위를 물려받았다. 지난 4월 노동당 제1비서와 당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 제1위원장 등에 추대돼 노동당과 국가기관의 직위는 이미 확보한 상태다. 참고로, 통상 북한의 직책 앞에 오는 ‘1’이란 숫자는 해당 직책보다 상위 직급을 의미한다. 따라서 김정은이 국방위원장 자리를 공석으로 놓아두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기보다 ‘불효’를 하는 셈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군부 장악 과정에는 최룡해·장성택 라인이 적극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정통 당관료 출신인 최룡해지만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군 인사·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리영호의 총참모부 정책집행을 감찰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훈 전 북한군 소좌는 “현재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시대’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막후에는 김정은의 고모와 고모부인 김경희 당 비서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섭정’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북한 전역에서는 김정은 원수 승진 축하행사를 내세운 충성서약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표면과 달리 실질적으로 김정은이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김정일 위원장 체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여전히 당과 군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산하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상좌·대령)을 지낸 최주활(崔主活) 탈북자동지회장은 “김정은은 이미 2010년 9월 군을 확고하게 통제하는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위원장은 공석)에 임명됐다”며 “북한군 내부에는 개혁적 또는 보수적 성향의 군인들은 있을 수 있으나 반대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군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권력구축 과정에서 위협적인 인물을 대거 숙청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급부상한 2009년부터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 홍석형 당 경제담당 비서, 김격식 총참모장,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등 20여 명을 철직(해직)이나 숙청했다.
이 같은 ‘정치적 숙청’은 사실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는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다. 김광인(金光仁) 북한정보센터 소장은 “북한처럼 지도자 이름을 딴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가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되는 1인 독재체제에서는 영도체계에 대한 도전을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게 체제 유지의 기본”이라며 “더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상황에서는 내부동요를 힘으로 누를 필요가 있는 데다, 계파 제거를 통해 엘리트 집단에 맹목적 충성경쟁을 촉발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국방委는 지고, 당중앙군사委는 뜨고
정성장(鄭成長)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근대화한 정치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분석한다는 데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 틀에서 북한 권력구조를 들여다본다”면서 “북한은 봉건왕조를 근간으로 한 정치권력 체제로 세상에서 유례없는 3대 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그것 외엔 없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군부(軍部)를 비롯한 기존 권력이 옹위하면 후계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김정은이 권력 장악을 위해 선택한 길은 군부의 선제 장악이었다”고 했다.
군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속성상 군부 장악은 최우선 과제다. 1980년 후계자로 대외에 공표된 이후 김정일이 가장 먼저 오른 자리도 최고사령관이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향후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핵심 도구로 작용할 전망”이라면서 “당중앙군사위는 사망한 김정일이 위원장을 맡았었고, 실각한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책임자, 국방위원회, 당의 실세들이 총 망라돼 있었다”고 했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통치 방식을 이어 가되 정권장악 과정에서 차별화를 둘 수도 있다. 김일성은 수차례에 걸친 반대파와의 권력투쟁을 통해 당과 내각을 장악했다.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일은 국방위원회를 내세워 통치했다. 따라서 선대 지도자들 때 크게 부각되지 않은 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은에겐 안성맞춤인 셈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에 군사위원회라는 최고 군사지도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1962년 12월 개최된 당중앙위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였다. 6·25전쟁에서 대남 적화에 실패한 후 무력 통일의 꿈을 접고 있던 김일성은 남한에서 4·19혁명이 발발하자 대남(對南) 적화를 위해 북한군 현대화를 서둘렀다. 김일성은 북한군 현대화를 위해 민간인을 제외한 정치국 군부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당중앙군사위를 만들어 군사 정책을 수립해 왔다.
정 위원은 “김정일 시대의 국방위원회는 그 위상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위원장도 공석으로 놓아 둘 가능성이 크다”면서 “김일성 시절 군부 최고권력기구였던 인민무력부도 최근 위상은 크게 꺾여 무력동원 기능은 없고 군수, 행정, 외사 기능에 한정된 조직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북한 권력기구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에 따르면,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이 아니다. 우리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국방위원회가 북한군의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등 전군을 지휘하는 기구로 표시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김정일의 3가지 직책, 즉 노동당 총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가운데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언론들도 정부 보도자료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했으나, 북한은 김정일을 일관되게 ‘김정일 총비서’라고 지칭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정치체제의 전부지만,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부분일 뿐 당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는 인전대(引佺帶·당과 대중을 연결해 주는 혁명적 대중단체)에 불과하다. 그의 말이다.
“북한은 노동당이 수령의 영도를 받아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당은 북한군의 총정치국(조직과 선전), 총참모부(작전지휘), 인민무력부(행정·군사·외교) 등 3대 핵심 군사기구를 통제합니다. 평시에는 당중앙군사위가 군을 지도하고, 전시에는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군을 지휘하는 시스템입니다. 김정은은 2010년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군을 확실하게 장악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뜨는 군인들
북한군 최고 실세로 불리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숙청으로 “북한의 군과 공안기관 수장들이 김정은 시대를 맞아 모두 물갈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3월 인민보안부(경찰청에 해당)의 주상성 부장이 해임되고 다음 달 군 출신인 리명수 국방위 행정국장이 기용된 것이 처음이었다.
지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는 우리의 국정원장 격인 국가안전보위부장이 우동측에서 김원홍으로,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이 김정각으로,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지도·감시하는 총정치국장에 최룡해가 임명됐다.
군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는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한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차남으로 황해남도 책임비서 출신이다. 따라서 군과는 거리가 멀다. 신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된 김원홍도 군 총정치국 출신으로 정보 업무와는 인연이 없다. 과거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김정각 정도가 친정으로 돌아간 유일한 경우다. 정부 소식통은 “군·공안 기관에 직접적 인연이 없는 인물을 쓰는 게 김정은의 권력 장악 인사의 특징”이라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지난 4월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기용을 계기로 2009년 2월부터 3년간 경쟁자 없이 군부 내에서 독주해 온 리영호가 강력한 견제에 직면했던 것이다. 총참모장은 전시(戰時) 지휘 계통상 북한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막강한 자리다. 총참모장을 견제하는 조직이 총정치국이다.
최주활 회장은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의 와병과 사망(2010년 11월)으로 한결 느슨해졌던 총정치국의 군 감시 기능이 최룡해 등장 이후 강화되면서 리영호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최룡해의 등용이 리영호 제거를 목적으로 이뤄진 조치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또 리영호가 대표하는 군부 강경파와 최룡해가 대표하는 민간 실용파의 대립에서 군부가 무릎을 꿇은 것이란 해석도 있다.
한 북한군 소좌 출신 탈북자는 “2009년 1월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 직후 발탁된 리영호와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강경 군부의 대표 주자”라며 “2009년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 조치들은 대부분 이들이 주도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의 지난 2월 핵 합의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도 군부 강경파”라며 “미국으로부터 영양지원 24만t도 못 받게 되고 미사일 발사마저 실패하자 리영호의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전방 사단장과 연대장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장교들을 기용해 왔다. 김정일이 군부 장악 과정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에 승승장구했던 군 간부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앞의 전 북한군 소좌는 “김정은이 작년 일선 부대에 근무하던 60세 이상 장교들의 옷을 모두 벗기면서 이들의 반발이 컸다는 첩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당대표자회에서 군부 3대 요직 중 총정치국장(최룡해)과 인민무력부장(김정각)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김정일이 발탁한 총참모장 리영호는 유임시켰다. 리영호의 실각을 통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탄탄한 입지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안정책연구소의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최룡해는 장성택의 분신”이라며 “리영호가 자신을 제치고 군부 1인자가 된 최룡해를 불편해하다가 장성택의 미움을 샀을 수 있다”고 했다.
장성택은 인민군 장성 출신의 두 형 장성우(2009년 사망)와 장성길(2006년 사망) 덕에 북한 군부 내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어 놓았다. 정통 야전 사령관 출신으로 전략과 전술에 능했던 리영호는 실력 하나로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총참모장에 오른 경우로 장성택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한다.
평양시내로 병력 진입은 거의 불가능
정부 관계자는 “리영호 해임에 불만을 품고 있을 군부가 수세 국면 탈피 후 장성택·최룡해 인맥에 본격적 반격을 감행, 심각한 정치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숙청 정국의 확대 가능성을 점쳤다.
예컨대 김정은을 위해 공(功)을 쌓아 왔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최근 신변 불안감을 크게 느낀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보당국이 우려하는 점이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신군부 핵심 인물로 천안함 폭침, 디도스 공격 등 대형 도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은 당이 총정치국을 통해 군의 인사·조직 등을 틀어쥐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최주활 회장은 “불만 세력이 쿠데타 등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에 해당), 보위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에 해당) 등 공안기관이 군부 장령(장성)급 인사들을 감시하고 있어 개별 행동을 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최 회장은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전격 경질은 훈련 중 군부대를 독단적으로 평양 근처로 이동시킨 데다 자택에서 현금 수십만 달러가 적발된 게 핵심 이유’라는 보도에 대해, “평양시 중심에서 30~40km 이내에는 총참모부 소속 군대가 주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양시에 20명 이상의 병력이 차량을 통해 이동하려면 사전에 평양을 방어하는 호위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김정일은 ‘의심이 간다면 내 차량까지도 검문하라’고 지시를 했을 만큼, 평양 시내로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병력이 진입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리영호 숙청이 권력투쟁과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도 조심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다. 한기범(韓基範) 고려대 객원교수(전 국정원 3차장)는 “북한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배경은 신군부를 대표하는 리영호가 당료파이자 주도 세력인 장성택·최룡해와 정책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군에 집중된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철환(姜哲煥) 북한전략센터 대표도 “리영호가 인민군 지휘관들이 돈줄인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가져간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가 장성택-김경희-김정은 중심의 실권파에 의해 숙청당했던 것”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김정일 사후 북한은 극도의 경제난으로 민심(民心)에 이어 군심(軍心)까지 돌아서고 있다”며 “장성택은 김정은을 등에 업고 리영호를 제거하며 ‘한판승’을 거뒀지만, 김정일 시대에 막강한 힘을 키워 온 기득권 집단과의 권력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北, GDP 3000달러 시대 도래하면 시민혁명 가능성
최주활 회장은 “군 외화벌이 기구의 내각 이관 등 ‘군부 힘 빼기’ 작업은 이미 예고돼 왔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이 “총알보다 쌀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연장선상에서 향후 내각이 제1경제(공개경제), 제2경제(군수·비공개경제)를 다 흡수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민생 문제는 내각에 맡겨 놓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스타일이었다면(서관히 농업담당비서 공개처형), 김정은은 인민들의 빵과 강성대국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스타일”이라며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군사 전문가인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경험하지 못한 서구 선진자본주의를 직접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기본적인 목표치가 다르다”고 했다.
최룡해·장성택 라인의 약진을 ‘선군정치’ 노선의 후퇴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즉 전통적 당 출신이 신군부와의 다툼에서 일단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평가되며, 결국 이는 당(黨)이 군(軍)을 장악하는 김일성 주석 시대의 ‘선당(先黨)정치’로 회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 역시 군에 의지하는 측면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선군정치 폐기보다는 융통성 있게 변화를 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즉,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사용할 ‘카드’가 많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리영호의 실각을 놓고 ‘선군(先軍)정치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조차 북의 ‘선군정치’에 대한 개념 이해가 잘못돼 있다”면서 “선군정치는 당의 영도를 받으면서 군이 앞장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로서, 군이 당 위에 군림해서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지면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북한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정 위원은 “우리는 북한을 움직이는 실세 그룹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스민혁명’이 언젠가는 북한에 일어나겠지만, 공안의 강력한 통제로 당분간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주민 통제를 완화한 ‘등소평식 개방’보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되 주민을 통제하면서 핵과 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 같다”면서 “어림잡아 향후 10년 후 북한도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 수준(2011년 기준 720달러)에 도달하면, 공안기관들이 아무리 주민들을 억압해도 시민혁명을 막지 못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이튿날인 17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류우익 통일부 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북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관련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미 군 당국도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군 동향을 정밀 감시하기 위한 첩보수집 수단을 증강해 운영 중이다. 군 관계자는 “돌출 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 양국군의 대북 정찰 자산을 늘리고 정찰 시간도 확대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지난해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리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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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분신으로 사실상 북한군 2인자인 최룡해 총정치국장. 황해남도 책임비서 출신으로 항일 빨치산 출신 최현의 둘째아들이다. |
2010년 9월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등장할 당시 대장 칭호를 받은 김정은은 이번에 바로 윗 단계인 차수를 건너뛰고 원수를 달았다. 지난해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지 7개월 만이다. 현재 김정은 외에 빨치산 출신 리을설이 원수 칭호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령(90세)인 점을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군부 내 최고 지위에 올랐다는 것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다.
원수는 북한 군부에서 대원수에 이어 가장 높은 계급으로 김일성·김정일만이 대원수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다.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사망 후인 현재도 대원수 칭호를 유지하면서 군의 최고 수뇌부에 포진해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원수 칭호 부여에 앞서 지난 7월 16일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해임, 7월 17일 현영철 차수 및 총참모장 임명을 단행했다. 3일간 북한의 메가톤급 인사조치는 속전속결 양상으로 전개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정은이 군권(軍權)을 장악한 모양새다.
정통 군인 출신의 리영호가 실각하고 젊은 현영철이 차수로 고속 승진하면서, 북한 지도부 내에서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견된 시나리오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총참모부에서 근무했던 이영훈(李英勳) 전 북한군 소좌는 “군부에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군 최고실력자인 리영호의 해임부터 김정은의 원수 등극, 현영철의 등용까지 전격적으로 해치웠다”면서 “리영호를 필두로 한 북한 신군부 세력이 정권에 잠재적인 위협 세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치밀한 준비를 한 가운데 제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았던 최룡해와 현영철이 최근 차수 칭호를 받은 만큼, 군 수뇌부에 대한 권위 유지 차원에서 더 이상 원수 칭호를 미룰 수 없었을 것”이라며 “리영호 해임 후 군부에 동요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군부를 더 안정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의 모든 지위 물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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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활 탈북자동지회장. |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군부 장악 과정에는 최룡해·장성택 라인이 적극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정통 당관료 출신인 최룡해지만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군 인사·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리영호의 총참모부 정책집행을 감찰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훈 전 북한군 소좌는 “현재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시대’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막후에는 김정은의 고모와 고모부인 김경희 당 비서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섭정’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북한 전역에서는 김정은 원수 승진 축하행사를 내세운 충성서약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표면과 달리 실질적으로 김정은이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김정일 위원장 체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여전히 당과 군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산하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상좌·대령)을 지낸 최주활(崔主活) 탈북자동지회장은 “김정은은 이미 2010년 9월 군을 확고하게 통제하는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위원장은 공석)에 임명됐다”며 “북한군 내부에는 개혁적 또는 보수적 성향의 군인들은 있을 수 있으나 반대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군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권력구축 과정에서 위협적인 인물을 대거 숙청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급부상한 2009년부터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 홍석형 당 경제담당 비서, 김격식 총참모장,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등 20여 명을 철직(해직)이나 숙청했다.
이 같은 ‘정치적 숙청’은 사실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는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이다. 김광인(金光仁) 북한정보센터 소장은 “북한처럼 지도자 이름을 딴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가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되는 1인 독재체제에서는 영도체계에 대한 도전을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게 체제 유지의 기본”이라며 “더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상황에서는 내부동요를 힘으로 누를 필요가 있는 데다, 계파 제거를 통해 엘리트 집단에 맹목적 충성경쟁을 촉발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국방委는 지고, 당중앙군사委는 뜨고
정성장(鄭成長)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근대화한 정치학적 관점에서 북한을 분석한다는 데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 틀에서 북한 권력구조를 들여다본다”면서 “북한은 봉건왕조를 근간으로 한 정치권력 체제로 세상에서 유례없는 3대 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그것 외엔 없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군부(軍部)를 비롯한 기존 권력이 옹위하면 후계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김정은이 권력 장악을 위해 선택한 길은 군부의 선제 장악이었다”고 했다.
군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속성상 군부 장악은 최우선 과제다. 1980년 후계자로 대외에 공표된 이후 김정일이 가장 먼저 오른 자리도 최고사령관이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향후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는 핵심 도구로 작용할 전망”이라면서 “당중앙군사위는 사망한 김정일이 위원장을 맡았었고, 실각한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책임자, 국방위원회, 당의 실세들이 총 망라돼 있었다”고 했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통치 방식을 이어 가되 정권장악 과정에서 차별화를 둘 수도 있다. 김일성은 수차례에 걸친 반대파와의 권력투쟁을 통해 당과 내각을 장악했다.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일은 국방위원회를 내세워 통치했다. 따라서 선대 지도자들 때 크게 부각되지 않은 중앙군사위원회가 김정은에겐 안성맞춤인 셈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에 군사위원회라는 최고 군사지도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1962년 12월 개최된 당중앙위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였다. 6·25전쟁에서 대남 적화에 실패한 후 무력 통일의 꿈을 접고 있던 김일성은 남한에서 4·19혁명이 발발하자 대남(對南) 적화를 위해 북한군 현대화를 서둘렀다. 김일성은 북한군 현대화를 위해 민간인을 제외한 정치국 군부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당중앙군사위를 만들어 군사 정책을 수립해 왔다.
정 위원은 “김정일 시대의 국방위원회는 그 위상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위원장도 공석으로 놓아 둘 가능성이 크다”면서 “김일성 시절 군부 최고권력기구였던 인민무력부도 최근 위상은 크게 꺾여 무력동원 기능은 없고 군수, 행정, 외사 기능에 한정된 조직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북한 권력기구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에 따르면,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이 아니다. 우리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국방위원회가 북한군의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등 전군을 지휘하는 기구로 표시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김정일의 3가지 직책, 즉 노동당 총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가운데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언론들도 정부 보도자료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했으나, 북한은 김정일을 일관되게 ‘김정일 총비서’라고 지칭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정치체제의 전부지만,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부분일 뿐 당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는 인전대(引佺帶·당과 대중을 연결해 주는 혁명적 대중단체)에 불과하다. 그의 말이다.
“북한은 노동당이 수령의 영도를 받아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당은 북한군의 총정치국(조직과 선전), 총참모부(작전지휘), 인민무력부(행정·군사·외교) 등 3대 핵심 군사기구를 통제합니다. 평시에는 당중앙군사위가 군을 지도하고, 전시에는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군을 지휘하는 시스템입니다. 김정은은 2010년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군을 확실하게 장악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뜨는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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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7월 4월 조선인민군 창건 80돌에 즈음해 진행된 제655연합부대의 종합전술연습을 참관한 뒤 장성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김정은 왼쪽(검은 제복 옆)이 리영호의 후임으로 총참모장에 임명된 현영철 차수다. |
지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는 우리의 국정원장 격인 국가안전보위부장이 우동측에서 김원홍으로,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이 김정각으로,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지도·감시하는 총정치국장에 최룡해가 임명됐다.
군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는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한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차남으로 황해남도 책임비서 출신이다. 따라서 군과는 거리가 멀다. 신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된 김원홍도 군 총정치국 출신으로 정보 업무와는 인연이 없다. 과거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김정각 정도가 친정으로 돌아간 유일한 경우다. 정부 소식통은 “군·공안 기관에 직접적 인연이 없는 인물을 쓰는 게 김정은의 권력 장악 인사의 특징”이라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지난 4월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기용을 계기로 2009년 2월부터 3년간 경쟁자 없이 군부 내에서 독주해 온 리영호가 강력한 견제에 직면했던 것이다. 총참모장은 전시(戰時) 지휘 계통상 북한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막강한 자리다. 총참모장을 견제하는 조직이 총정치국이다.
최주활 회장은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의 와병과 사망(2010년 11월)으로 한결 느슨해졌던 총정치국의 군 감시 기능이 최룡해 등장 이후 강화되면서 리영호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최룡해의 등용이 리영호 제거를 목적으로 이뤄진 조치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또 리영호가 대표하는 군부 강경파와 최룡해가 대표하는 민간 실용파의 대립에서 군부가 무릎을 꿇은 것이란 해석도 있다.
한 북한군 소좌 출신 탈북자는 “2009년 1월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 직후 발탁된 리영호와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강경 군부의 대표 주자”라며 “2009년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 조치들은 대부분 이들이 주도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의 지난 2월 핵 합의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도 군부 강경파”라며 “미국으로부터 영양지원 24만t도 못 받게 되고 미사일 발사마저 실패하자 리영호의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전방 사단장과 연대장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장교들을 기용해 왔다. 김정일이 군부 장악 과정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에 승승장구했던 군 간부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앞의 전 북한군 소좌는 “김정은이 작년 일선 부대에 근무하던 60세 이상 장교들의 옷을 모두 벗기면서 이들의 반발이 컸다는 첩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당대표자회에서 군부 3대 요직 중 총정치국장(최룡해)과 인민무력부장(김정각)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김정일이 발탁한 총참모장 리영호는 유임시켰다. 리영호의 실각을 통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탄탄한 입지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안정책연구소의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최룡해는 장성택의 분신”이라며 “리영호가 자신을 제치고 군부 1인자가 된 최룡해를 불편해하다가 장성택의 미움을 샀을 수 있다”고 했다.
장성택은 인민군 장성 출신의 두 형 장성우(2009년 사망)와 장성길(2006년 사망) 덕에 북한 군부 내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어 놓았다. 정통 야전 사령관 출신으로 전략과 전술에 능했던 리영호는 실력 하나로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총참모장에 오른 경우로 장성택과는 인연이 없었다고 한다.
평양시내로 병력 진입은 거의 불가능
정부 관계자는 “리영호 해임에 불만을 품고 있을 군부가 수세 국면 탈피 후 장성택·최룡해 인맥에 본격적 반격을 감행, 심각한 정치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숙청 정국의 확대 가능성을 점쳤다.
예컨대 김정은을 위해 공(功)을 쌓아 왔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최근 신변 불안감을 크게 느낀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보당국이 우려하는 점이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신군부 핵심 인물로 천안함 폭침, 디도스 공격 등 대형 도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은 당이 총정치국을 통해 군의 인사·조직 등을 틀어쥐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최주활 회장은 “불만 세력이 쿠데타 등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국정원에 해당), 보위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에 해당) 등 공안기관이 군부 장령(장성)급 인사들을 감시하고 있어 개별 행동을 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최 회장은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전격 경질은 훈련 중 군부대를 독단적으로 평양 근처로 이동시킨 데다 자택에서 현금 수십만 달러가 적발된 게 핵심 이유’라는 보도에 대해, “평양시 중심에서 30~40km 이내에는 총참모부 소속 군대가 주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양시에 20명 이상의 병력이 차량을 통해 이동하려면 사전에 평양을 방어하는 호위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김정일은 ‘의심이 간다면 내 차량까지도 검문하라’고 지시를 했을 만큼, 평양 시내로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병력이 진입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리영호 숙청이 권력투쟁과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도 조심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다. 한기범(韓基範) 고려대 객원교수(전 국정원 3차장)는 “북한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배경은 신군부를 대표하는 리영호가 당료파이자 주도 세력인 장성택·최룡해와 정책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군에 집중된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철환(姜哲煥) 북한전략센터 대표도 “리영호가 인민군 지휘관들이 돈줄인 외화벌이 사업권을 내각으로 가져간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가 장성택-김경희-김정은 중심의 실권파에 의해 숙청당했던 것”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김정일 사후 북한은 극도의 경제난으로 민심(民心)에 이어 군심(軍心)까지 돌아서고 있다”며 “장성택은 김정은을 등에 업고 리영호를 제거하며 ‘한판승’을 거뒀지만, 김정일 시대에 막강한 힘을 키워 온 기득권 집단과의 권력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北, GDP 3000달러 시대 도래하면 시민혁명 가능성
최주활 회장은 “군 외화벌이 기구의 내각 이관 등 ‘군부 힘 빼기’ 작업은 이미 예고돼 왔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이 “총알보다 쌀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연장선상에서 향후 내각이 제1경제(공개경제), 제2경제(군수·비공개경제)를 다 흡수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민생 문제는 내각에 맡겨 놓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스타일이었다면(서관히 농업담당비서 공개처형), 김정은은 인민들의 빵과 강성대국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스타일”이라며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군사 전문가인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경험하지 못한 서구 선진자본주의를 직접 보고 체험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기본적인 목표치가 다르다”고 했다.
최룡해·장성택 라인의 약진을 ‘선군정치’ 노선의 후퇴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즉 전통적 당 출신이 신군부와의 다툼에서 일단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평가되며, 결국 이는 당(黨)이 군(軍)을 장악하는 김일성 주석 시대의 ‘선당(先黨)정치’로 회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 역시 군에 의지하는 측면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선군정치 폐기보다는 융통성 있게 변화를 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즉,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사용할 ‘카드’가 많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리영호의 실각을 놓고 ‘선군(先軍)정치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조차 북의 ‘선군정치’에 대한 개념 이해가 잘못돼 있다”면서 “선군정치는 당의 영도를 받으면서 군이 앞장서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로서, 군이 당 위에 군림해서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지면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북한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정 위원은 “우리는 북한을 움직이는 실세 그룹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스민혁명’이 언젠가는 북한에 일어나겠지만, 공안의 강력한 통제로 당분간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주민 통제를 완화한 ‘등소평식 개방’보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되 주민을 통제하면서 핵과 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 같다”면서 “어림잡아 향후 10년 후 북한도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 수준(2011년 기준 720달러)에 도달하면, 공안기관들이 아무리 주민들을 억압해도 시민혁명을 막지 못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