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중국 떠도는 金正男은 과연 용도 폐기됐나? : 월간조선

2011년 7월 중국의 한 대도시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첫째 아들 김정남(金正男)이 나타났다.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누는 한 지인(知人)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정남과 지인의 만남은 2차 술자리로 이어졌고 새벽에야 끝났다. 취기가 오른 김정남이 술집을 나서자 어디선가 검은색 차가 나타나 그를 ‘모시고’ 사라졌다. 검은색 승용차는 중국 정부기관과 관련된 차량이었다.

이보다 1년 전인 2010년 6월 초순, 김정남은 자신의 주변에서 수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직감(直感)했다. 김정남의 이복(異腹)동생이자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金正恩)이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들을 시켜 그를 암살하려 한 것이었다. 다행히 김정남은 중국 정부기관의 도움을 얻어 위기를 모면했다.

김정은의 위상 여전히 불안

김정남은 중국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항상 암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김정은이 언제 어디서 없애려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근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현재 중국 공안(公安)기관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김정남 보호를 위해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확인하고 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중앙위원으로 공식 등장한 지 1년이 됐다. 이와 반대로, 김정남은 북한의 로열패밀리에서 완전히 제외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북한전문가들과 정보기관은 “김정남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을 떠도는 김정남. 그는 과연 북한 정권에서 영원히 폐위(廢位)된 황태자일까.

김정남은 지난해부터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복동생의 후계자 수업이 한창이라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군(軍) 최고위층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불편하다고 한다.

현재 북한 권력층 내에서 ‘김정남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없다. 오랫동안 그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金京姬·金正日의 여동생)와 고모부 장성택(張成澤·김정일의 매제)도 김정은으로 선회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어린 나이, 일천한 경험에 따른 비판을 잠재우려 대남(對南) 군사도발도 감행하고 있다. 김정은을 따르는 대표적인 군부세력은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그리고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다. 2009년 2월 대남공작 총책인 정찰총국장에 오른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농협 전산망 공격 등을 기획하고 집행한 인물이다.

김정은의 권력승계 작업이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의 고급 군사정보를 취급했던 일본 정계(政界)의 중진 의원은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의 위상은 여전히 불안하다. 향후 권력승계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급성장 보고 개혁 필요성 느껴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중앙위원으로 등장한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

김정남은 1996년 전후부터 중국을 오가다 2001년부터 중국에 눌러앉았다. 그는 왜 로열패밀리에서 밀려난 것일까.

성혜림(2002년 사망)에게서 태어난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이다. 김정일은 첫 부인(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설송’을 뒀다.

아들을 갖게 된 김정일은 어린 김정남을 무척 아꼈다고 한다. 1971년 5월 10일 새벽, 김정남이 태어나자 김정일은 너무 기뻐 승용차 경적을 울려대며 평양시 거리를 질주했다. 김정일은 어린 김정남을 밥상 위에 앉혀 놓고 밥을 먹었고, 1980년 김정남이 스위스로 유학을 갈 때는 밤새 술을 마시며 울었다고 한다.

생전 김일성(金日成)도 어린 손자 김정남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김일성은 1975년경 외국 수반과 회담을 하다가, 울고 있는 손자를 달래 주려고 회담을 중단한 적도 있다고 한다.

청년 김정남은 1990년 중반까지 국가보위부와 보위사령부 사업을 통제했으며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의 책임지도원, 부부장까지 지냈다. 그는 “김정일은 경제를 몰라서 문제다”라고 걱정하던 할아버지 김일성의 요구에 따라 경제분야에 대한 수업을 받았고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맡았다.

1990년대 후반까지 잘나가던 김정남이 아버지의 눈 밖에 난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북한의 한 고위급 탈북자는 “북한의 살 길을 놓고 부자(父子)간에 큰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남은 1990년부터 김정일과 함께 지방시찰을 다녔습니다. 일종의 후계자 수업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김정남의 머리 속은 서방 세계의 발전된 모습과 높은 국민생활 수준으로 꽉 차 있었어요. 김정남은 1995년 무렵 중국을 자주 여행했는데 그때 베이징에 집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베이징 거처(居處)에 머물곤 했던 김정남은 중국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침내 북한이 살 길은 개혁과 개방뿐이라고 결심했습니다.

1996년부터 김정남은 아버지에게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정남의 말을 처음에는 그냥 들어 줬다고 합니다. 그 무렵 북한에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시작됐습니다. 300만명이 굶어 죽었지요. 김정남의 개혁·개방 건의가 잦아지고 강도(强度)가 세지자 어느 순간 김정일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경계(警戒)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자리까지 노리는 것으로 판단, 그를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들어 김정남은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도 김정남을 해외로 내보내기 위해 힘을 썼지요.”

김정일·정남 부자(父子)가 개혁·개방을 놓고 크게 다퉜고, 그 문제 때문에 결국 김정남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남의 개혁·개방 주장에 충격을 받은 김정일은 당시 스위스에 유학(留學) 중이던 또 다른 두 아들 정철·정은(생모 高英姬)을 급히 불러들였다. 1998년 스위스 베른국제학교로 유학을 갔던 김정은이 졸업도 하지 않은 채 2000년 북한으로 급히 돌아온 데는 김정일이 김정남을 통해 유학의 ‘부작용’을 봤기 때문이다.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지도체제 세우자’

1975년 김정남이 네 살 때 북한 군관복을 입고 외할머니(김원주)의 품에 안긴 모습. 김원주는 성혜랑, 성혜림(김정남의 母)의 생모(生母)이다.

장남에 대한 김정일의 실망은 2001년 5월 또다시 발생했다. 김정남이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일본의 놀이공원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려다 위조여권이 발각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추방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에 거주하던 김정남은 아버지의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2002년 자신의 생모 성혜림이 세상을 떠나자 김정일의 심경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2003년부터 김정남은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2004년 김정철·정은의 생모 고영희(高英姬)가 사망하면서 권력에서 멀어졌던 김정남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김정남은 고영희가 없는 평양을 훨씬 편하게 찾았다. 그 무렵 김정남은 과거처럼 군부 고위층으로부터 ‘대장님’이라 불렸다. 김정남은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노동당 35호실 업무에 관여하면서 활동공간을 넓혀 갔다. 그는 중국 단둥(丹東)에 상주 직원 800여 명 규모의 ‘KCC’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연구소로 간판을 달았지만 실제로는 북한보위부의 해외 거점이었다. 비밀 해외정보 획득, 대남(對南) 감시활동, 통신 감청, 해킹 등 광범위한 비밀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2006년 1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당시 아버지와 동행(同行), 중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김정남은 한국·미국 관련 정보를 아버지에게 직접 보고하기도 했다.

2007년 들어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자 김정남은 아버지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맞았다. 김정남은 ‘김철’이라는 북한 외교관 여권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다녀왔다.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해외 유명 의사들을 직접 섭외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 김정남은 평양에 한동안 머무르며 아버지를 보살폈다고 한다.

건강이 날로 나빠졌던 김정일은 2007년 후계자 선정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남과 정철·정은을 별도로 시험했던 것이다.

아버지 곁을 열심히 오갔던 김정남은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혁명 1세대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해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다.

둘째 김정철은 체질적으로 지도자감이 아니었다. 2007년 5월 김정일은 그를 함경북도 청진시에 비(非)사회주의 검열작업의 책임자로 보냈는데, 그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셋째 김정은이 대안(代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는 “김정은 후계체제 작업은 2007년도에 시작됐다. 중앙당에 특별팀을 만들어 후계체제 구축을 기획했다. 당 선전부는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자’라는 구호까지 내걸었다”고 전했다.

2010년 6월 暗殺企圖로 강경 선회

1981년 김정남이 유학을 가기 전 아버지 김정일과 단란한 한때.

김정은의 후계자 등극 가능성을 감지한 김정남은 2008년부터 주변 인물들에게 ‘북한의 미래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남은 권력의 힘이 김정은으로 쏠리는 와중에도 아버지의 건강을 끝까지 챙겼다. 2008년 10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프랑스 현지 뇌신경외과 전문병원에 연락을 직접 취했다.

2009년 1월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되자 김정남은 곧바로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후계자에 관심이 없다. 아버지가 결정할 문제이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몸조심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2009년 4월 김정은 휘하에 ‘해외전략정보특별팀’이 구성되면서 ‘김정남 손발 자르기’가 시작됐다. 그해 4월, 평양시(市) 중구역 소재 우암각(김정남이 평양 체류 시 머무는 안가)에 국가보위부원들이 들이닥쳤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고위급 간부들이 줄줄이 체포됐고, 이 소식은 곧바로 김정남의 귀에 들어갔다. 김정남은 베이징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은이 내 동창들을 잡아갔어. 조심해야 돼”라며 가족을 걱정했다. 이후 김정남은 마카오와 싱가포르를 오가며 몸을 숨겼다.

신변에 위험을 느낀 김정남은 2009년 6월 마카오의 한 공원에서 가진 일본 방송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후계자는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고, 그가 결정하면 우리는 그를 지지해야 한다. 나는 정치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김정은에 대해 “나를 숙청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2010년 2월, 김정남은 무서운 동생 탓에 아버지의 생일잔치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정남의 은둔과 조심스러움은 여기까지였다. 4개월 뒤인 2010년 6월 11일경, 김정남은 북한 정권의 암살공작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공작 지시는 김정은이 직접 내렸다.

지시를 받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들은 김정남이 있는 중국 베이징에 급파돼 사고로 위장(僞裝), 그를 죽이려 했다. 암살기도는 중국 측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죽이려 한 것은, 암살공작이 있기 며칠 전(2010년 6월 2일) 평양에서 김정은과 그의 생모 고영희의 절대적 후견자였던 리제강 중앙당 조직부 제1부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이 사건이 김정남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고 김정은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살기도가 있은 지 2개월 뒤인 2010년 8월,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자 그의 숙소에 찾아가 항의했다. 김정남의 중국 내 측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폐개혁과 천안함 사건은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얼굴을 내밀기 전에 말아먹은 일이다. 아버지가 묵인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했다.

김정은에 대한 선전포고

2011년 5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를 만났다. 최근 들어 중국은 북한을 향해 개혁ㆍ개방과 핵(核)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정남의 개혁·개방 주장은 한층 강해졌다. 그는 2010년 10월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정은 부자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했다. 김정남은 “후계자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부적절했다. 개인적으로 3대 세습을 반대한다. 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다”고 했다.

김정남은 올해 1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중국의 모택동(마오쩌둥) 주석도 세습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이 발전했다. 3대 세습은 사회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아버지도 반대했었는데 왜 세습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북한의 주민들이 풍족하게 살게 하려면 개혁·개방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김정남은 김정은을 향해 “두 번 다시 연평도 포격과 같은 일이 없도록 북남관계를 조정해 주기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2010년 8월과 10월, 올해 1월, 세 차례에 걸친 김정남의 개혁·개방 주장과 김정은 비판은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김정남의 개혁·개방 주장은 암살대상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올려놓는 것과 같다. 그의 지인은 “언론보도 후 북한 쪽으로부터 ‘몸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조용히 있지 않으면 좋지 않다’는 경고였다”고 전했다.

이쯤이면 김정남이 김정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고위급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남은 지금도 김정은을 어린애로 생각합니다. 경험도 없는 동생이 후계자가 된 데 대해 무척 걱정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동생이 공식 후계자로 등장하자 ‘앞으로 1년이 중요하다. 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습니다. 김정남은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정은 후계자 지명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상황에 의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것입니다.”

김정남은 아버지의 주변인물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측근들이 김정일에게 북한 현실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아 아버지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정남이 개혁·개방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북·중(北中)관계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개혁·개방의 주문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동복(李東馥)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중국이 북한의 변화에 일조하리라 본다”고 했다.

“김정일이 2000년 이래 일곱 차례 중국에 갔어요. 그리고 2004년부터 아주 빈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와 김정일이 만나고 나서 발표하는 거 보면 아주 재미난 게 있습니다.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항상 똑같은 얘기를 해요. 동어(同語)반복입니다. 중국은 김정일에게 두 가지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하나는 개혁·개방, 또 하나는 핵(核)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에요.

작년부터는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론하며 지역평화와 안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해요. 김정일은 지능적으로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의 말에 동감한다고 하고선 돌아서서 엉뚱한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후진타오의 말을 자세히 보면 내용의 강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재작년까지만 봐도 개혁·개방이란 말을 쓰지 않고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작년부터 개혁·개방을 강의하듯 요구해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개혁·개방을 해야 지원하겠다’고 얘기해요.”

이동복 대표는 “중국의 개혁·개방 요구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북한은 긴장상태를 유발하거나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켜 중국으로 하여금 마지못해 자신을 편들게 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안 통하니까 이제는 러시아에 손을 내밀어요. 미국과 한국을 이간시키는 말기암(癌) 증상 같은 것도 심하고요. 우리나라와 인접 국가들은 북한 정권이 퇴장할 때 가장 부담이 적고 또 북한 동포들에게도 부담이 적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해요.”

김정남 통해 북한 조종 가능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북한의 변화는 3대 세습을 막는 데서 온다”며 “시간은 결코 김정은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했다.

박희태(朴熺太) 국회의장도 지난 7월 서초포럼 조찬강연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과 개방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이윤 동기’를 알려주고, 경쟁이 모든 부의 근원인 만큼 일하는 사람에게 더 큰 몫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심어 줄 필요가 있어요. 북한이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정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인데 북한이 개방을 해도 당분간 정권유지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안도감을 주어야 해요.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해도 정권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고위급 출신의 탈북자는 “현재 중국은 김정은 체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 권력승계 구도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할 처지는 못 됩니다. 그렇다고 적극 돕지도 않고 있어요. 당분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러나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으로서는 다른 카드를 내놓을 수 있지요. 그게 바로 김정남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잘못되면 김정남을 통해 북한 정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개혁·개방을 주장한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김승철(金承哲)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주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실패한 북한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김정은은 주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 외교적으로 환영을 받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후계구도 작업을 완성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정은 불리

김 대표는 대북(對北) 단파 라디오방송과 함께 2010년 3월부터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 동영상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은 무엇을 먹었나> <서해 무장충돌의 진실> 등을 DVD에 담아 휴전선과 북·중 국경지역을 통해 북한에 투입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에 제작한 김정남 동영상도 8·15 광복절을 계기로 북한지역에 뿌리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김정은 권력승계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의 권력승계는 위대성, 업적, 정당성 3대 요소를 갖춰야 하는데, 김정은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북한이 살 길은 김정남이 말한 대로 개혁·개방밖에 없어요. 3대 세습은 김정일도 반대했어요. 그런데 결국 3대 세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불행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해요. 3대 세습을 막는다면 북한의 변화는 반드시 옵니다.”

김승철 대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김정은이 불리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정일이 사망할 때, 북한체제를 지지하는 강력한 버팀목은 중국밖에 없어요. 현재 중국은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물론, 김정남에게도 약점이 많습니다. 가장 큰 약점은 북한 권력층, 특히 군부세력이 그를 반대한다는 거죠. 그러나 북한 군부 또한 중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현재 북한 내에 김정남을 지지하는 세력은 권력층에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과거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이 엘리트 층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듯이 김정남도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속내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저는 김정남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이 북한에 있다고 봐요. 김정남의 미래는 중국의 의지와 결부돼 있습니다. 김정남과 중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