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우리 NGO 대북지원은 김정일 체제만 도와주는 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북한에 지원한 쌀이 북한군 최전방 부대로 들어가는 모습. 북한 측 휴전선 부근 초소에 적십자 마크가 선명한 쌀포대가 보인다.
“한국 쌀은 찰기가 좋아서 군부대에서도 안 먹고 장마당에 팔고 있습니다.”(탈북자 정씨)
“병원에도 없는 의약품들이 UN 표시가 된 채로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어요.”(탈북자 전씨)
“한국에서 지원받은 차량이 김정일 선물로 둔갑해 모 사단에 배급됐어요.”(탈북군인 구씨)
북한 정부가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주민들용으로 지원한 물품을 각종 방식으로 전용(轉用)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09년 입국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10여 명의 진술로 드러났다.
대북지원 물품이 군과 당 고위간부들에게 흘러들어 간다는 사실은 지난 2000년 초부터 탈북자와 국제 NGO 단체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 모니터링 강화 등 각종 방식으로 북한의 지원 물품 전용 행태를 감시해 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지원받은 물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최근 입국한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이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원된 물품을 주로 군부대로 빼돌리기, 당국자 착복을 통해 장마당으로 유통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민무력부에서 직접 사단 군수부로 쌀 배정
대북지원 식량 일부가 군부대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대북지원 물품 전용 사례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인도적으로 지원한 쌀이 군대에서 군량미로 사용되는 것을 놓고 국내 여론은 “우리가 준 쌀로 인민군 먹여 살렸다”며 비판했다.
북한의 군량미 전용은 인도적인 지원이라는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2008년 2월 5일 세계식량계획(WFP)의 폴 리슬리 대변인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한국 정부가 대량의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쌀을 지원하고, 분배 과정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은 북한 전역에서 지원 식량의 군부대 전용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군부대에서는 민간에 지원될 식량을 다양한 방식으로 빼돌리고 있었다. 지난해 3월에 입국한 정모씨는 “UN이나 한국에서 지원한 쌀을 각 군부대에 분배해 북한 마대로 다시 포장하는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다”며 “일부 부대 식량담당관은 쌀을 빼돌려 시장에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 쌀은 찰기가 좋아서 잘 팔린다고 좋아하더라”고 했다.
군간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입국한 임모씨는 북한 군부가 쌀을 착복하고 전용하는 과정을 이렇게 증언했다.
“인민무력부 군수담당 부서에서 한국 등이 지원한 쌀을 산하 군단, 사단 군수부에 배정하고 산하 부대는 원산항 남포항에 하선되는 쌀포대를 배정된 수량만큼 직접 수송했습니다. 정확한 수량은 모르나 1회에 60여 톤의 쌀을 연간 2~3회에 걸쳐 할당했어요. 저는 군00 사단의 군수책임자로 ‘대한민국’이나 ‘붉은 십자가(대한적십자사 표시)’ 표시가 있는 쌀을 북한산 마대로 재포장한 후 민간트럭으로 위장한 군용트럭으로 수송했습니다.”
군인들이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쌀 받아
2000년 중반부터 국제사회의 모니터링이 심해지자, 군인들이 민간인으로 변장해 쌀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7월에 입국한 의사 출신 홍모씨 얘기다.
“인민보안성 산하 부대가 한국, 유엔 등이 지원한 쌀의 북한 내 수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을 민간인으로 변장시키고 군용차량의 번호판을 민간 차량 번호판으로 교체하여 쌀을 수송하고 있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유엔 관리들의 감시가 심해져서 전국 어디서나 이런 방식으로 일을 벌이지요.”
또 다른 탈북자 김모씨(노동자 출신)의 증언.
“2007년 청진항에서 한국쌀 30톤을 민간인으로 위장한 00여단 군인들이 열차로 옮겨 싣는 장면을 봤어요. 이들 물품들은 모 여단으로 이송되어 예하부대로 모두 공급됐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UN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던 물품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에서 운전사를 했던 박모씨의 얘기다.
“UN에서 식량, 비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럼 뭐합니까.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없고, 죄다 군대로 들어가는데요. UN이 식량 분배하는 것을 감시하면 해당 지역은 하루분 식량만 나누어줬다가 관리들이 돌아가면 바로 회수합니다. 나눠주기 전에 미리 고지를 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식량에 손을 대지 않죠.”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들어 지난 2009년 7월 대북 쌀 추가 지원을 중단했다. 당시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현재 북한에 추가로 식량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면서 “추가 식량 지원은 식량 지원이 적절하게 활용된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식량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과 접근 등 적절한 관리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현재 그것이 없다는 점을 매우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켈리 대변인은 “북한이 2009년 3월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했다”고 상기시키면서 북한에서 식량 지원 활동을 관장해 온 비정부기구(NGO) 모니터링 요원들을 추방한 사실을 언급했다.
대북지원 물품이 군이나 노동당 간부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사례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장마당이 발달하면서 군과 당간부들이 지원물품을 그대로 장마당에 내다 팔고 있다는 증언이 늘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군인이었던 김모씨의 얘기다.
“바코드 보고 한국 물품인 걸 안다”
“군 간부들이 쌀이나 비료 등을 파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몇 해 전부터는 시 당위원회 당국자들이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장사꾼들에게 ‘이번 물건은 한국제품’이라며 비싼 값에 파는 경우가 많아요. 장마당 주민들이 ‘이번에 한국에서 쌀이 들어와서 쌀값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당국자들이 쌀을 빼돌려 장마당에 쌀이 안 풀린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어요.”
노동자였던 홍모씨의 증언이다.
“한국에서 평양 강남군에 지원된 상당량의 건설물자들이 평양 장마당에 유출됐어요. 주민들은 이런 물자들을 구입하여 집을 수리하는 데 사용합니다.”
병원들이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판매해 운영비로 쓰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군인이었던 곽모씨의 얘기다.
“UN이나 한국이 지원한 의약품은 군병원에 우선 공급되고 있으며 군병원은 의약품을 불법 판매하여 그 수입금으로 배급 및 병원 운영비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병원장들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이런 불법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요.”
장마당에 워낙 많은 지원물품이 흘러들기 때문에 한국 물품은 북한주민들에게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간호사였던 서모씨는 “‘대한민국’ ‘십자가’ 표시가 있는 물건을 단속하지만 주민들은 그게 한국에서 온 물품이라는 걸 금방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은 한국산 물품 대부분을 중간간부들이 빼돌려 파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들은 최대한 한국에서 지원한 물품이라는 걸 알리려 들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상품에 찍혀 있는 바코드를 보고 ‘아, 한국에서 온 제품이구나’ 합니다. 바코드 첫 3자리가 국가 식별번호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노동자였던 전모씨의 얘기다.
“UN 지원 의약품은 일부만 병원에 공급되고 대부분 간부들이 착복합니다. 일부 공급된 의약품들도 당간부들에게 무료 지원되고 있어요. 일반 시민들은 꿈도 못 꾸죠. 어쩔 수 없이 장마당에 가서 UN 표시가 있는 의약품들을 사 병원에 갑니다. 페니실린 앰풀 1개에 1000원, 포도당 500g이 약 35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어요.”
군인이었던 탈북자는 증언에서 “남한에서 온 자동차를 김정일의 선물이라고 주면서 뻐기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이나 2008년쯤일 겁니다. 한국에서 지원했다는 차량 20여 대가 제가 있던 00사단에 왔어요. 다들 한국에서 온 건지 아는데, 김정일의 선물이라며 자랑을 하더군요. 아무튼, 운전병들은 ‘남한에서 들어온 차량은 성능이 좋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며 감탄했죠.”
“특권계층만 배불리는 것”
탈북자들은 이 같은 대북지원물품 전용 실태를 증언하며, “아무리 한국 시민단체들이 대북지원을 해봐야 분배 과정이 제대로 관리, 감시되지 않으면 일부 특권계층만 배 불리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탈북자 출신으로 국내에서 교수나 시민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안찬일(56)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얘기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에 지원한 물자들이 북한의 특권계층에 흘러들어 갔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아무 문제 없으니 일단 보내자고 하는 건 김정일 체제를 도와주는 꼴밖에 안돼요.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NGO들이 협력해야 합니다.”
북한에 삐라 날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 박상학(朴相學ㆍ42)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한정부와 접촉하지 않으면 북한 정부가 자신들을 만나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다”며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도 없는 의약품들이 UN 표시가 된 채로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어요.”(탈북자 전씨)
“한국에서 지원받은 차량이 김정일 선물로 둔갑해 모 사단에 배급됐어요.”(탈북군인 구씨)
북한 정부가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주민들용으로 지원한 물품을 각종 방식으로 전용(轉用)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09년 입국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10여 명의 진술로 드러났다.
대북지원 물품이 군과 당 고위간부들에게 흘러들어 간다는 사실은 지난 2000년 초부터 탈북자와 국제 NGO 단체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는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 모니터링 강화 등 각종 방식으로 북한의 지원 물품 전용 행태를 감시해 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지원받은 물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최근 입국한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이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원된 물품을 주로 군부대로 빼돌리기, 당국자 착복을 통해 장마당으로 유통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민무력부에서 직접 사단 군수부로 쌀 배정
대북지원 식량 일부가 군부대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대북지원 물품 전용 사례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인도적으로 지원한 쌀이 군대에서 군량미로 사용되는 것을 놓고 국내 여론은 “우리가 준 쌀로 인민군 먹여 살렸다”며 비판했다.
북한의 군량미 전용은 인도적인 지원이라는 명분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2008년 2월 5일 세계식량계획(WFP)의 폴 리슬리 대변인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한국 정부가 대량의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쌀을 지원하고, 분배 과정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은 북한 전역에서 지원 식량의 군부대 전용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군부대에서는 민간에 지원될 식량을 다양한 방식으로 빼돌리고 있었다. 지난해 3월에 입국한 정모씨는 “UN이나 한국에서 지원한 쌀을 각 군부대에 분배해 북한 마대로 다시 포장하는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다”며 “일부 부대 식량담당관은 쌀을 빼돌려 시장에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 쌀은 찰기가 좋아서 잘 팔린다고 좋아하더라”고 했다.
군간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입국한 임모씨는 북한 군부가 쌀을 착복하고 전용하는 과정을 이렇게 증언했다.
“인민무력부 군수담당 부서에서 한국 등이 지원한 쌀을 산하 군단, 사단 군수부에 배정하고 산하 부대는 원산항 남포항에 하선되는 쌀포대를 배정된 수량만큼 직접 수송했습니다. 정확한 수량은 모르나 1회에 60여 톤의 쌀을 연간 2~3회에 걸쳐 할당했어요. 저는 군00 사단의 군수책임자로 ‘대한민국’이나 ‘붉은 십자가(대한적십자사 표시)’ 표시가 있는 쌀을 북한산 마대로 재포장한 후 민간트럭으로 위장한 군용트럭으로 수송했습니다.”
군인들이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쌀 받아
 |
| 군량미 등으로 전용되는 대북 지원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 |
“인민보안성 산하 부대가 한국, 유엔 등이 지원한 쌀의 북한 내 수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을 민간인으로 변장시키고 군용차량의 번호판을 민간 차량 번호판으로 교체하여 쌀을 수송하고 있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유엔 관리들의 감시가 심해져서 전국 어디서나 이런 방식으로 일을 벌이지요.”
또 다른 탈북자 김모씨(노동자 출신)의 증언.
“2007년 청진항에서 한국쌀 30톤을 민간인으로 위장한 00여단 군인들이 열차로 옮겨 싣는 장면을 봤어요. 이들 물품들은 모 여단으로 이송되어 예하부대로 모두 공급됐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UN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나눠줬던 물품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에서 운전사를 했던 박모씨의 얘기다.
“UN에서 식량, 비료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럼 뭐합니까.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없고, 죄다 군대로 들어가는데요. UN이 식량 분배하는 것을 감시하면 해당 지역은 하루분 식량만 나누어줬다가 관리들이 돌아가면 바로 회수합니다. 나눠주기 전에 미리 고지를 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식량에 손을 대지 않죠.”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들어 지난 2009년 7월 대북 쌀 추가 지원을 중단했다. 당시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현재 북한에 추가로 식량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면서 “추가 식량 지원은 식량 지원이 적절하게 활용된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식량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과 접근 등 적절한 관리프로그램이 필요한데 현재 그것이 없다는 점을 매우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켈리 대변인은 “북한이 2009년 3월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했다”고 상기시키면서 북한에서 식량 지원 활동을 관장해 온 비정부기구(NGO) 모니터링 요원들을 추방한 사실을 언급했다.
대북지원 물품이 군이나 노동당 간부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사례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장마당이 발달하면서 군과 당간부들이 지원물품을 그대로 장마당에 내다 팔고 있다는 증언이 늘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군인이었던 김모씨의 얘기다.
“바코드 보고 한국 물품인 걸 안다”
“군 간부들이 쌀이나 비료 등을 파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몇 해 전부터는 시 당위원회 당국자들이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장사꾼들에게 ‘이번 물건은 한국제품’이라며 비싼 값에 파는 경우가 많아요. 장마당 주민들이 ‘이번에 한국에서 쌀이 들어와서 쌀값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당국자들이 쌀을 빼돌려 장마당에 쌀이 안 풀린다’고 말하는 걸 자주 들었어요.”
노동자였던 홍모씨의 증언이다.
“한국에서 평양 강남군에 지원된 상당량의 건설물자들이 평양 장마당에 유출됐어요. 주민들은 이런 물자들을 구입하여 집을 수리하는 데 사용합니다.”
병원들이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판매해 운영비로 쓰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군인이었던 곽모씨의 얘기다.
“UN이나 한국이 지원한 의약품은 군병원에 우선 공급되고 있으며 군병원은 의약품을 불법 판매하여 그 수입금으로 배급 및 병원 운영비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병원장들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이런 불법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요.”
장마당에 워낙 많은 지원물품이 흘러들기 때문에 한국 물품은 북한주민들에게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간호사였던 서모씨는 “‘대한민국’ ‘십자가’ 표시가 있는 물건을 단속하지만 주민들은 그게 한국에서 온 물품이라는 걸 금방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주민들은 한국산 물품 대부분을 중간간부들이 빼돌려 파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들은 최대한 한국에서 지원한 물품이라는 걸 알리려 들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상품에 찍혀 있는 바코드를 보고 ‘아, 한국에서 온 제품이구나’ 합니다. 바코드 첫 3자리가 국가 식별번호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노동자였던 전모씨의 얘기다.
“UN 지원 의약품은 일부만 병원에 공급되고 대부분 간부들이 착복합니다. 일부 공급된 의약품들도 당간부들에게 무료 지원되고 있어요. 일반 시민들은 꿈도 못 꾸죠. 어쩔 수 없이 장마당에 가서 UN 표시가 있는 의약품들을 사 병원에 갑니다. 페니실린 앰풀 1개에 1000원, 포도당 500g이 약 35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어요.”
군인이었던 탈북자는 증언에서 “남한에서 온 자동차를 김정일의 선물이라고 주면서 뻐기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이나 2008년쯤일 겁니다. 한국에서 지원했다는 차량 20여 대가 제가 있던 00사단에 왔어요. 다들 한국에서 온 건지 아는데, 김정일의 선물이라며 자랑을 하더군요. 아무튼, 운전병들은 ‘남한에서 들어온 차량은 성능이 좋고 고장이 나지 않는다’며 감탄했죠.”
“특권계층만 배불리는 것”
탈북자들은 이 같은 대북지원물품 전용 실태를 증언하며, “아무리 한국 시민단체들이 대북지원을 해봐야 분배 과정이 제대로 관리, 감시되지 않으면 일부 특권계층만 배 불리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탈북자 출신으로 국내에서 교수나 시민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안찬일(56)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얘기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에 지원한 물자들이 북한의 특권계층에 흘러들어 갔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아무 문제 없으니 일단 보내자고 하는 건 김정일 체제를 도와주는 꼴밖에 안돼요.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NGO들이 협력해야 합니다.”
북한에 삐라 날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 박상학(朴相學ㆍ42)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한정부와 접촉하지 않으면 북한 정부가 자신들을 만나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다”며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