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당분간 뉴욕채널을 이용해 미국의 후속조치를 채근하겠지만 非核化 이외에 대화 소재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美北 양측이 협상 국면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민간차원에서 접촉 전망은 가능하다.
南成旭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 1959년 서울 출생.
⊙ 고려대 국어교육과·경제학과 졸업, 美 미주리주립대 응용경제학 박사.
⊙ 국가정보원 연구위원, 통일부·NSC 정책자문위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안보자문위원 역임.
⊙ 現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북한학연구소장.
⊙ 저서: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의 대응> <현대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북한의 정보통신(IT)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南成旭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 1959년 서울 출생.
⊙ 고려대 국어교육과·경제학과 졸업, 美 미주리주립대 응용경제학 박사.
⊙ 국가정보원 연구위원, 통일부·NSC 정책자문위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안보자문위원 역임.
⊙ 現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북한학연구소장.
⊙ 저서: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의 대응> <현대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북한의 정보통신(IT)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 미국은 클린턴 방북을 통해 김정일의 건강을 직접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빌 클린턴 前(전) 미국 대통령의 訪北(방북)을 보고 南北朝(남북조) 시대 중국 시인 陶淵明(도연명)의 ‘세상에 정지된 것은 없다. 만물은 유전한다’는 시구가 생각났다. 국내정치와 마찬가지로 국제정치도 살아있는 생물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클린턴 방북과 미국 여기자 구출은 올해 국제사회의 10대 뉴스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표시가 전혀 없는 민간기업의 항공기를 이용해 한국의 지방 공항보다 황량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20여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은둔의 독재자와 만난 후 두 명의 여기자를 구출해 온 사건은 할리우드가 탐낼 만한 드라마적 요소가 적지 않다.
미국 당국이 LA 인근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를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격납고로 예인하여 실내에서 구출된 여기자들이 도착성명을 생생하게 발표토록 하는 것은 고도로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의전 방식이었다.
클린턴의 여기자 구출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측면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첫째, 휴머니즘에 입각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병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결속을 상징한다.
개인주의가 기본인 미국 사회가 다인종을 포용하면서도 애국심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은 국가 간 분쟁에서 개인보호 우선주의 정책이다.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한 명의 시신이라도 찾아내는 미군 유해 발굴사업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공영방송들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및 이라크 등에서 사망한 병사들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마다 잠깐이라도 생중계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自國(자국) 병사나 민간인이 납치될 경우 즉각적으로 구출작전을 전개한다.
구출작전의 진행 경과와 金正日(김정일)·클린턴 대화는 미국 정부가 공개 브리핑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 당국자의 발언이나 언론 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訪北 대표로 앨 고어 前 부통령 거론돼
국가 간 협상의 예비 단계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과거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자 간의 日·北(일·북)교섭 당시 일본은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국장이 ‘미스터 X’라는 북한 측 인물과 제3국에서 수차례 비밀 실무협상에 나섰던 전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협상 교섭은 단편적으로만 공개되었을 뿐, 구체적인 전모는 관련 외교문서가 비밀 해제되는 30년 후에나 공개될 것이다.
미 국무부는 여기자 구출을 위해 1단계로 우회 접촉을 시도했다. 두 여기자들의 신변안전은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에서 맡도록 조치했다. 이들이 죄수가 아닌, 방문객 신분으로 환경이 양호한 초대소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신변 안전을 확보한 후, 미국은 2단계로 民官(민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 당국이 低(저)자세로 두 여기자의 송환 요청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3월 17일 두 여기자가 북한당국에 체포된 후 美·北(미·북) 간 직접 접촉은 4월 중순에 처음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私設(사설)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민간 인사들과 북측 당국자들이 동남아 제3국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인도적 차원에서 대가 없이 여기자들을 풀어준다. 미국의 유력인사가 평양을 방문해 이를 데리고 나온다”는 합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이 초안이 평양과 워싱턴에 전달되고 상부의 확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 5월 초 같은 지역에서 제2차 미팅이 개최됐다. 2차 미팅에서 여기자들이 소속된 커런트TV 사장인 앨 고어 前(전) 미 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여기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구체적인 합의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평양 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은 앨 고어 방북안에 만족하지 못했다. 북한은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한달여에 걸친 1차 협상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평양으로서는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봉쇄를 모면하기 위해 고위급 레벨에서 미국과의 직접 접촉이 필수적이었다. 북한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상징성과 대표성이 미흡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7월 이후 협상 진전
여기자 석방 협상은 5월을 지나면서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섰다.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6월 8일 재판을 열고 ‘조선민족적 대죄’와 ‘불법 국경 출입죄’를 적용해 기자들에게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재판 이후 추방을 기대하던 미국은 여기자 구출을 위한 협상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여기자들에 대한 刑(형)집행을 막기 위해 국무부 라인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 25일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상원에서 인준되고 오바마 對北(대북)정책 라인이 마무리되면서 협상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7월 들어 뉴욕주재 북한유엔대표부와 미국 국무부 간에 여기자 석방을 위한 협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북한은 7월 15일 여기자들이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외교관을 면담하고 편지를 미국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 줬다. 이와 함께 평양 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인질석방 구출 인사로 지정하고 그 뜻을 워싱턴에 전달했다.
평양은 7월 26일 여기자들과 가족 간의 통화를 허용,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한다면 여기자들을 풀어줄 용의가 있다는 북한 측의 의사를 직접 전달토록 했다. 이와 관련 AP 통신은 미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북 뉴욕채널을 비롯해 북한에서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플랜이 진행됐는데, 북측 인사들이 진지하게 응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이 임무를 맡을 용의가 있는지 타진한 것은 7월 25일경이라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평양방문을 요청했으며, 클린턴 역시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CNN은 이와 관련 “클린턴은 방북 시 여기자들이 석방되며 김정일 면담도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고 비행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은 힐러리 국무장관과 북한 당국 간에 가시 돋친 舌戰(설전)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막후에서 협상을 급속히 진전시켰다. 힐러리도 북한에 보낼 인사들을 추천하는 등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의 협상전략은 명분과 실리 모두 추구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적대국과의 幕前幕後(막전막후) 협상방식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현대적 개념의 외교협상을 가장 많이 한 국가다. 따라서 다양한 주체와 다양한 주제로 협상을 추진했던 고도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미국의 협상 방식은 실리와 명분이 적절하게 균형이 맞추어져 있다. 總論(총론)에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實利(실리)를 챙겨 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한다.
북한과의 협상 이후 일부 네오콘들은 클린턴의 방북에 대해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질 석방이라는 명분 이외에 논란이 되고 있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직접 점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인질 석방을 위해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상대가 일단은 유엔회원국이자 6자회담 참가국인 만큼 북한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대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여기자들이 제 발로 中·北(중·북)국경을 넘은 것도 협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인질 석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는 비판이 있지만, 두 여기자를 장기간 방치하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컸다.
클린턴은 방북 주문을 받은 후 인도적 방문 목적에 걸맞게 성조기가 그려진 미 공군기 대신 다우케미컬 소유의 민간항공기를 이용하고, 비용을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부터 조달했다. 연방정부의 예산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인도적 목적으로 敵國(적국)을 방문하여 인질을 구출하는 방식을 취한 것은 미국의 對北(대북) 강경 여론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의식한 것이다.
대화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직접 부딪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행정부의 전통은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冷戰(냉전)시대에도 미국은 ‘악마와도 협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舊(구) 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상(SALT)에 나섰다.
다만 미국은 협상은 추진하면서 막전막후에서 형식과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관리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긴다.
국제사회의 이단아인 은둔형 독재자를 상대하는 방식도 의미가 작지 않다. 건재를 과시하려는 김정일에 맞서 굳은 표정으로 틈을 보이지 않은 클린턴의 모습은 북·미 간의 同床異夢(동상이몽)을 상징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방북이 여기자 문제에 한정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냈고 진중한 행동으로 북한의 선전선동을 사전에 차단했다.
美, 북핵 폐기 우선 정책에 변화 없어
미국이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방북단의 일원이었으며, 한국어 청취가 가능한 데이비드 스트로브 前(전) 국무부 한국과장을 동행시켜 김정일의 통치 리더십을 현장에서 파악토록 한 것도 향후 북한을 관리하는 데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미국이 북핵 폐기 우선 원칙에서 진로 변경이 없다는 점이다.
북측은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는 이외에 대내적으로는 영향력 있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평양으로 끌어들여 협상함으로써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국가이며, 미국인 범죄자들이 김정일의 관대함 덕분에 풀려났다고 선전할 수 있었다.
미국과 북한의 외교적 이득은 시간이 지나 봐야 정확하게 판단될 것이다. 김정일·클린턴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기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참여했으니 당연히 외교 현안인 북핵 해결과 미·북관계 정상화를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제임스 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방송에 출연해서 “북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비핵화 등 여러 문제를 논의했다’고 소개하면서 미국과 새롭고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밝힌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클린턴 일행의 방문은 조선과 미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클린턴 방북이 단순한 여기자 석방 이상의 방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클린턴이 북한에 핵무기 추구를 그만두어야 하며, 핵무기 획득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만 더 자초할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존스 안보보좌관은 “클린턴이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면, 그 틀 안에서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측에 말했다”고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클린턴의 활동은 개인적 차원’이라면서 북한이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 방북 자체만으로 미국 대북정책의 노선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선 논리비약이다.
방북 후 달변가인 클린턴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대통령직은 현직만이 수행한다’는 워싱턴 政街(정가)의 오랜 전통 때문이다. 임기가 길어야 재선에 그치는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이 여러 사람 있다. 때문에 전직이 현직에게 훈수를 두는 것은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의 남편이지만 클린턴도 예외일 수 없다.
북한, 오바마의 非核化 신념 간과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시절 정권인수팀 공동팀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60) 진보센터 회장이 방북단에 참여한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가 오바마 측과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방북 결과를 백악관에 전달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방북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연결시켜 보는 시각은 앞서 지적한 미국의 협상철학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클린턴 방북을 지난 1994년 카터 방북과 비교하기에는 주변 여건이 너무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미국도 북핵 처리 프로그램이 없었다. 반면 현재는 6자회담 메커니즘이 구축되어 있고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북한은 국제사회에 ‘깡패국가’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특히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여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집권 초기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일의 선택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얕본 결과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구상의 뿌리는 26년 전 컬럼비아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도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군비 증강 드라이브 속에 反核(반핵) 데모가 한창이던 지난 1983년 컬럼비아대 4학년이던 오바마는 학내 잡지인 <선다이얼>에 ‘전쟁 멘털리티를 깨자’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美蘇(미소) 핵감축에 의한 ‘핵무기 없는 세상’의 실현”을 주장했다.
북한은 핵무기 폐기에 오랜 관심을 가져 온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그를 정면 공격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부시 행정부 말기 시절 북핵 폐기를 위한 對美(대미) 협상에서 너무 질질 끌다가 失機(실기)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는 너무 조급하게 밀어붙이다 자충수를 둔 셈이다.
클린턴의 방북이 향후 미·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8월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런 뜻을 북측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金正日 건강상태 샅샅이 체크
앞으로 미국은 김정일의 건강과 통치스타일 및 북핵 포기 가능성 여부에 대한 정밀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클린턴 방북단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팀에 김정일 면담 결과를 심층 브리핑하고,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를 토대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김정일의 발언에 대해 단어 하나하나까지 정밀 분석할 것이다.
특히 작년 심장병 발병 이후 외부 인사가 김정일을 업무협의 차원에서 장기간 면담한 것은 이번이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된 회담과 만찬 시 언급한 발언의 분량은 적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발언 내용이 전부 녹음되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아마도 녹음됐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나타났듯이 김정일은 상당한 다변가다. 미소를 머금은 회담 사진이 보이는 것처럼 김정일은 핵문제에 대한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이해를 현란하게 과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존스 미 안보보좌관은 “김정일은 북한 조직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매우 사리에 맞게 발언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건강이상설 이후 김정일에 대한 종합 진단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 국무부는 벼랑끝 외교를 기반으로 고위급 회담 한 방으로 문제를 일순간에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 가는 북한의 외교협상 행태에 속을 대로 속아 왔다. 때문에 이번에는 전직 대통령 방북 한 번으로 “여기자 석방과 핵은 별개”라는 기존 원칙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제 집권 1년차다. 지난 6월에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가 본격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할 화끈한 당근은 없다.
북한이 기회를 포착했다면, 非核化(비핵화) 이행을 자연스럽게 언급할 적절한 기회를 잡았다는 것뿐이다. 북한이 미국에 백기를 들기는 어렵겠지만, 2005년 비핵화 이행 약속을 클린턴 방북과 연계할 경우 명분과 환경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이 평양에 가 있다’는 백악관의 입장은 ‘클린턴 방북으로 미·북관계가 카터 방북 이후처럼 급변할 것’이라는 평양의 환상을 차단할 것이다. 북한은 당분간 뉴욕채널을 이용하여 미국의 후속조치를 채근하겠지만 비핵화 이외에 대화 소재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의 접촉 가능성 제기돼
다만 미·북 양측이 협상 국면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민간차원(트랙2)에서 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은 가능하다. 미국 전미외교정책협의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서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 당국자들을 초청, 비핵화에 대한 추가적인 설득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중국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면담한 전례를 회상할 것이다. 중국의 무게 있는 중재자 역할에 대한 기대를 가질 만한 상황이다.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지혜의 여신)의 부엉이는 어둠이 내린 뒤에야 날개를 편다”고 했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평가와 이해도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야 가능하다. 클린턴의 방문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종결될지 혹은 비핵화에 의미있는 단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클린턴 방북과 미국 여기자 구출은 올해 국제사회의 10대 뉴스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표시가 전혀 없는 민간기업의 항공기를 이용해 한국의 지방 공항보다 황량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20여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은둔의 독재자와 만난 후 두 명의 여기자를 구출해 온 사건은 할리우드가 탐낼 만한 드라마적 요소가 적지 않다.
미국 당국이 LA 인근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를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격납고로 예인하여 실내에서 구출된 여기자들이 도착성명을 생생하게 발표토록 하는 것은 고도로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의전 방식이었다.
클린턴의 여기자 구출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측면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첫째, 휴머니즘에 입각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병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결속을 상징한다.
개인주의가 기본인 미국 사회가 다인종을 포용하면서도 애국심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은 국가 간 분쟁에서 개인보호 우선주의 정책이다.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한 명의 시신이라도 찾아내는 미군 유해 발굴사업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공영방송들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및 이라크 등에서 사망한 병사들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마다 잠깐이라도 생중계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自國(자국) 병사나 민간인이 납치될 경우 즉각적으로 구출작전을 전개한다.
구출작전의 진행 경과와 金正日(김정일)·클린턴 대화는 미국 정부가 공개 브리핑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 당국자의 발언이나 언론 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訪北 대표로 앨 고어 前 부통령 거론돼
국가 간 협상의 예비 단계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과거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자 간의 日·北(일·북)교섭 당시 일본은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국장이 ‘미스터 X’라는 북한 측 인물과 제3국에서 수차례 비밀 실무협상에 나섰던 전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협상 교섭은 단편적으로만 공개되었을 뿐, 구체적인 전모는 관련 외교문서가 비밀 해제되는 30년 후에나 공개될 것이다.
미 국무부는 여기자 구출을 위해 1단계로 우회 접촉을 시도했다. 두 여기자들의 신변안전은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에서 맡도록 조치했다. 이들이 죄수가 아닌, 방문객 신분으로 환경이 양호한 초대소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신변 안전을 확보한 후, 미국은 2단계로 民官(민관) 합동작전을 전개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 당국이 低(저)자세로 두 여기자의 송환 요청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3월 17일 두 여기자가 북한당국에 체포된 후 美·北(미·북) 간 직접 접촉은 4월 중순에 처음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私設(사설)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민간 인사들과 북측 당국자들이 동남아 제3국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인도적 차원에서 대가 없이 여기자들을 풀어준다. 미국의 유력인사가 평양을 방문해 이를 데리고 나온다”는 합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이 초안이 평양과 워싱턴에 전달되고 상부의 확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 5월 초 같은 지역에서 제2차 미팅이 개최됐다. 2차 미팅에서 여기자들이 소속된 커런트TV 사장인 앨 고어 前(전) 미 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여기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구체적인 합의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평양 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은 앨 고어 방북안에 만족하지 못했다. 북한은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한달여에 걸친 1차 협상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평양으로서는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봉쇄를 모면하기 위해 고위급 레벨에서 미국과의 직접 접촉이 필수적이었다. 북한은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상징성과 대표성이 미흡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7월 이후 협상 진전
여기자 석방 협상은 5월을 지나면서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섰다.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6월 8일 재판을 열고 ‘조선민족적 대죄’와 ‘불법 국경 출입죄’를 적용해 기자들에게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재판 이후 추방을 기대하던 미국은 여기자 구출을 위한 협상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여기자들에 대한 刑(형)집행을 막기 위해 국무부 라인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 25일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상원에서 인준되고 오바마 對北(대북)정책 라인이 마무리되면서 협상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7월 들어 뉴욕주재 북한유엔대표부와 미국 국무부 간에 여기자 석방을 위한 협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북한은 7월 15일 여기자들이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외교관을 면담하고 편지를 미국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 줬다. 이와 함께 평양 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인질석방 구출 인사로 지정하고 그 뜻을 워싱턴에 전달했다.
평양은 7월 26일 여기자들과 가족 간의 통화를 허용,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한다면 여기자들을 풀어줄 용의가 있다는 북한 측의 의사를 직접 전달토록 했다. 이와 관련 AP 통신은 미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미·북 뉴욕채널을 비롯해 북한에서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플랜이 진행됐는데, 북측 인사들이 진지하게 응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이 임무를 맡을 용의가 있는지 타진한 것은 7월 25일경이라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평양방문을 요청했으며, 클린턴 역시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CNN은 이와 관련 “클린턴은 방북 시 여기자들이 석방되며 김정일 면담도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고 비행기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은 힐러리 국무장관과 북한 당국 간에 가시 돋친 舌戰(설전)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막후에서 협상을 급속히 진전시켰다. 힐러리도 북한에 보낼 인사들을 추천하는 등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의 협상전략은 명분과 실리 모두 추구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적대국과의 幕前幕後(막전막후) 협상방식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현대적 개념의 외교협상을 가장 많이 한 국가다. 따라서 다양한 주체와 다양한 주제로 협상을 추진했던 고도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미국의 협상 방식은 실리와 명분이 적절하게 균형이 맞추어져 있다. 總論(총론)에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實利(실리)를 챙겨 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한다.
북한과의 협상 이후 일부 네오콘들은 클린턴의 방북에 대해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은 인질 석방이라는 명분 이외에 논란이 되고 있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직접 점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인질 석방을 위해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상대가 일단은 유엔회원국이자 6자회담 참가국인 만큼 북한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대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여기자들이 제 발로 中·北(중·북)국경을 넘은 것도 협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인질 석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는 비판이 있지만, 두 여기자를 장기간 방치하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컸다.
클린턴은 방북 주문을 받은 후 인도적 방문 목적에 걸맞게 성조기가 그려진 미 공군기 대신 다우케미컬 소유의 민간항공기를 이용하고, 비용을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부터 조달했다. 연방정부의 예산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인도적 목적으로 敵國(적국)을 방문하여 인질을 구출하는 방식을 취한 것은 미국의 對北(대북) 강경 여론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의식한 것이다.
대화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직접 부딪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행정부의 전통은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冷戰(냉전)시대에도 미국은 ‘악마와도 협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舊(구) 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상(SALT)에 나섰다.
다만 미국은 협상은 추진하면서 막전막후에서 형식과 내용을 매우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관리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긴다.
국제사회의 이단아인 은둔형 독재자를 상대하는 방식도 의미가 작지 않다. 건재를 과시하려는 김정일에 맞서 굳은 표정으로 틈을 보이지 않은 클린턴의 모습은 북·미 간의 同床異夢(동상이몽)을 상징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방북이 여기자 문제에 한정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냈고 진중한 행동으로 북한의 선전선동을 사전에 차단했다.
美, 북핵 폐기 우선 정책에 변화 없어
미국이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방북단의 일원이었으며, 한국어 청취가 가능한 데이비드 스트로브 前(전) 국무부 한국과장을 동행시켜 김정일의 통치 리더십을 현장에서 파악토록 한 것도 향후 북한을 관리하는 데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미국이 북핵 폐기 우선 원칙에서 진로 변경이 없다는 점이다.
북측은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는 이외에 대내적으로는 영향력 있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을 평양으로 끌어들여 협상함으로써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국가이며, 미국인 범죄자들이 김정일의 관대함 덕분에 풀려났다고 선전할 수 있었다.
미국과 북한의 외교적 이득은 시간이 지나 봐야 정확하게 판단될 것이다. 김정일·클린턴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기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참여했으니 당연히 외교 현안인 북핵 해결과 미·북관계 정상화를 논의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제임스 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방송에 출연해서 “북한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비핵화 등 여러 문제를 논의했다’고 소개하면서 미국과 새롭고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밝힌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클린턴 일행의 방문은 조선과 미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클린턴 방북이 단순한 여기자 석방 이상의 방문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클린턴이 북한에 핵무기 추구를 그만두어야 하며, 핵무기 획득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만 더 자초할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존스 안보보좌관은 “클린턴이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오면, 그 틀 안에서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측에 말했다”고 언급했다.
미국 정부는 ‘클린턴의 활동은 개인적 차원’이라면서 북한이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 방북 자체만으로 미국 대북정책의 노선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선 논리비약이다.
방북 후 달변가인 클린턴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대통령직은 현직만이 수행한다’는 워싱턴 政街(정가)의 오랜 전통 때문이다. 임기가 길어야 재선에 그치는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이 여러 사람 있다. 때문에 전직이 현직에게 훈수를 두는 것은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의 남편이지만 클린턴도 예외일 수 없다.
북한, 오바마의 非核化 신념 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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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뱅크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북한에 억류됐던 중국계 미국인 기자 로라 링(위)과 한국계 미국인 기자 유나 리가 비행기에서 내려오면서 감격해하고 있다. |
금번 방북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연결시켜 보는 시각은 앞서 지적한 미국의 협상철학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클린턴 방북을 지난 1994년 카터 방북과 비교하기에는 주변 여건이 너무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미국도 북핵 처리 프로그램이 없었다. 반면 현재는 6자회담 메커니즘이 구축되어 있고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북한은 국제사회에 ‘깡패국가’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특히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하여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집권 초기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일의 선택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얕본 결과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구상의 뿌리는 26년 전 컬럼비아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도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군비 증강 드라이브 속에 反核(반핵) 데모가 한창이던 지난 1983년 컬럼비아대 4학년이던 오바마는 학내 잡지인 <선다이얼>에 ‘전쟁 멘털리티를 깨자’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美蘇(미소) 핵감축에 의한 ‘핵무기 없는 세상’의 실현”을 주장했다.
북한은 핵무기 폐기에 오랜 관심을 가져 온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그를 정면 공격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부시 행정부 말기 시절 북핵 폐기를 위한 對美(대미) 협상에서 너무 질질 끌다가 失機(실기)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는 너무 조급하게 밀어붙이다 자충수를 둔 셈이다.
클린턴의 방북이 향후 미·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8월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런 뜻을 북측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金正日 건강상태 샅샅이 체크
앞으로 미국은 김정일의 건강과 통치스타일 및 북핵 포기 가능성 여부에 대한 정밀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클린턴 방북단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북한팀에 김정일 면담 결과를 심층 브리핑하고,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를 토대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김정일의 발언에 대해 단어 하나하나까지 정밀 분석할 것이다.
특히 작년 심장병 발병 이후 외부 인사가 김정일을 업무협의 차원에서 장기간 면담한 것은 이번이 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된 회담과 만찬 시 언급한 발언의 분량은 적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발언 내용이 전부 녹음되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아마도 녹음됐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나타났듯이 김정일은 상당한 다변가다. 미소를 머금은 회담 사진이 보이는 것처럼 김정일은 핵문제에 대한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이해를 현란하게 과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존스 미 안보보좌관은 “김정일은 북한 조직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매우 사리에 맞게 발언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건강이상설 이후 김정일에 대한 종합 진단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 국무부는 벼랑끝 외교를 기반으로 고위급 회담 한 방으로 문제를 일순간에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 가는 북한의 외교협상 행태에 속을 대로 속아 왔다. 때문에 이번에는 전직 대통령 방북 한 번으로 “여기자 석방과 핵은 별개”라는 기존 원칙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제 집권 1년차다. 지난 6월에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가 본격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시할 화끈한 당근은 없다.
북한이 기회를 포착했다면, 非核化(비핵화) 이행을 자연스럽게 언급할 적절한 기회를 잡았다는 것뿐이다. 북한이 미국에 백기를 들기는 어렵겠지만, 2005년 비핵화 이행 약속을 클린턴 방북과 연계할 경우 명분과 환경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이 평양에 가 있다’는 백악관의 입장은 ‘클린턴 방북으로 미·북관계가 카터 방북 이후처럼 급변할 것’이라는 평양의 환상을 차단할 것이다. 북한은 당분간 뉴욕채널을 이용하여 미국의 후속조치를 채근하겠지만 비핵화 이외에 대화 소재를 찾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의 접촉 가능성 제기돼
다만 미·북 양측이 협상 국면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민간차원(트랙2)에서 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은 가능하다. 미국 전미외교정책협의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서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 당국자들을 초청, 비핵화에 대한 추가적인 설득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중국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면담한 전례를 회상할 것이다. 중국의 무게 있는 중재자 역할에 대한 기대를 가질 만한 상황이다.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지혜의 여신)의 부엉이는 어둠이 내린 뒤에야 날개를 편다”고 했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평가와 이해도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야 가능하다. 클린턴의 방문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종결될지 혹은 비핵화에 의미있는 단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