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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제2의 공자학원’ 차하얼학회의 실체

“한국 고위층과 中 연결하는 ‘박사’ 브로커 있다”(김상순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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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외교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일전선 활동을 펼치는 조직”(신원식 국방부 장관)
⊙ “기자 신분으로 접근해 인계철선 정보 묻기도”(前 국방부 산하 기관 연구원)
⊙ “(차하얼학회 관련 논란이) 너무 많이 알려져서 한 걸음 물러선 상황”
⊙ “민간의 탈을 쓴 국가 기관”(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 “공자학원은 각 지역을 대상으로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곳인데, 차하얼학회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삼아”
⊙ “접촉 어려운 중국 측 관리, 정부 인사, 유명 학자를 찾을 때 차하얼학회 통하면 착착 연결”(차하얼학회 행사 참석 학자)
⊙ “中 학술 단체들, 명승지에서 학술회의… 향응 베풀고 기술 정보 등 빼내”(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고문)
2019년 11월 8일 연세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연세-차하얼연구소(Yonsei-Charhar Institute)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추궈홍 주한 중국 대사 및 한팡밍 차하얼학회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확실히 뭔가 리포트를 쓰려고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현재는 한중안보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백승주 전(前) 의원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한 ‘학회’ 대표와 자주 소통했다.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그는 지난 2022년 차하얼학회와 안보 분야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백 전 의원에 따르면, 이 학회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조언까지 할 정도로 확실한 외교 채널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중국 ‘차하얼학회(察哈爾學會)’ 얘기다.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백승주 한중안보평화포럼 이사장. 사진=조선DB
  그런데 이 학회, 단순히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데 그쳤을까. 기자가 접한 국내외 차하얼학회 내부자들을 비롯한 중국 전문가들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중국 본토에서 차하얼학회 고위 연구원을 지낸 한 학자는 “차하얼학회는 진출한 나라의 고위층과 접촉해 첩보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 내 차하얼학회 한 현직 관계자는 “오히려 차하얼학회처럼 대놓고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선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차하얼학회 내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이 사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직책에 현직으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외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익명을 요구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일전선조직
 
중국 차하얼학회 로고. 사진=차하얼학회
  차하얼학회. 생소한 이름이지만 크고 작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지난해 6월 국내 언론 매체들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통일전선(統一戰線·필요할 땐 누구와도 손을 잡되, 주도권은 공산당이 갖는 전술) 공작 조직’일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때 차하얼학회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건, 이 무렵 싱하이밍(邢海明) 당시 주한 중국 대사의 막말 파문으로 한중(韓中) 관계가 얼어붙은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중국 차하얼학회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 15일 《문화일보》는 차하얼학회를 “표면적으로는 해외 정·재계 인사나 학자들과 교류를 도모하는 학술 단체지만, 실제로는 무려 90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중국 공산당이 외국에서 통일전선 활동을 벌이는 조직”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6월 16일 MBN은 차하얼학회에 대해 “해외 정·재계 인사나 학자들과 교류를 도모하는 학술 단체지만, 공공외교를 명분으로 공산당의 통일전선 활동을 펼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차하얼학회는 공자학원하고 똑같이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의 선전기구”라고 했다.
 
  차하얼학회가 중국 공산당의 관영 선전 기관이라는 주장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비롯해 그간 중국 공산당의 각종 공작에 시달려온 호주에서도 나왔다.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호주 찰스스터트대학 교수가 공동 집필한 저서 《보이지 않는 붉은 손》에 차하얼학회가 언급된다. 해당 부분을 발췌했다.
 
  〈차하얼학회는 ‘초당적 비정부적 싱크탱크(두뇌 집단)’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학회의 설립자 한팡밍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교 위원회 부주석이다. 그는 통일전선 공작 기구인 중국 인민 대외 우호 협회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연구 센터에서도 직함을 갖고 있다. 차하얼학회가 독립 기구라는 주장은 사실을 호도한다. 이 학회는 당 기관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싱크탱크를 통제한다는 게 정책 문서에 명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싱크탱크는 당 지도부를 받들고, 싱크탱크를 관리하는 당을 지지해야 한다. 국가 지침에 따르면 싱크탱크는 당과 정부의 의사 결정에 봉사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358쪽)
 
 
  “국정원 요원 만나면 안전부에서 찾아와”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 김상순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박사(왼쪽)와 한팡밍 차하얼학회 회장(오른쪽). 사진=김상순 박사
  그런데 차하얼학회 안팎의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중국 공산당이 학계에 뻗는 손길은 알려진 것보다 노골적이고 과감했다. 먼저, 중국 본토에서 차하얼학회 고위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김상순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박사의 얘기다. 김 박사는 현직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이다.
 
  7월 10일 만난 그는 “베이징에 있을 때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찾아왔다”며 “국정원에서 왔다 가면 안전부(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김 박사의 경험담은 ‘중국의 싱크탱크는 당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는 앞의 책 주장과 합치했다.
 
  “제가 차하얼학회에 소속돼 있고, 중국 TV 토론에 나가서 국제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고 현지 주요 매체에 기고도 하다 보니 국정원에서도 저를 주시했나 봐요. 그렇게 국정원 요원들이 찾아오고 나면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웨탄(約談·면담)’ 형식으로 찾아와서 저를 조사했어요. 제가 양쪽 정보 기관에 우스갯소리로 ‘너 가면 쟤 오고, 쟤 가면 너 오니까 이럴 거면 다 같이 만나자’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안전부에서 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들여다보는 거 뻔히 아는데 왜 자꾸 찾아오는지 모르겠다고 양쪽 정보기관에 항의했어요.”
 
  이에 대해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전직 정보 기관 요원은 “중국은 개인의 휴대전화, PC 등을 다 들여다볼 수 있어 중국 내에서 국정원 요원이 왔다 간 걸 알고 국가안전부에서 찾아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김 박사에게 물었다.
 
  ― 안전부 요원들이 와서 뭘 물어보던가요.
 
  “저한테 ‘이런 칼럼을 썼던데, 이 내용 중에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요. 그러면서 ‘그냥 궁금해서, 혹은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 한국에 왔을 때도 안전부 요원들이 찾아오던가요.
 
  “네, 저를 담당했던 안전부 요원이 2019년쯤 자기 상사를 데리고 왔었어요. 그 사람들은 제가 어느 나라에서 무슨 활동을 했고, 어디서 뭘 했고, 심지어 제가 잊어버렸던 것까지 쫙 다 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전부가 저만 감시하던 게 아니더라고요.”
 
  ― 그러면요.
 
  “안전부 요원이 ‘서울에 왔다’면서 저한테 ‘한팡밍 회장이 여기(서울)를 왜 왔는지, 누가 데리고 왔는지 등을 위챗(중국 메신저)으로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모른다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든 저는 관여를 안 하고, 전담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고 했죠. 나중에 제가 한팡밍 회장 밑에 비서장, 사무총장한테 ‘(안전부에서) 너네 다 조사하고 다닌다’고 얘기해줬어요.”
 
  김상순 박사의 말에 따르면, 국가안전부 요원은 그를 3년 정도 ‘마킹(담당)’해 감독했다고 한다. 해당 요원은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2년 동안 연수를 받은 중국인 여성으로, 한국어는 떠듬떠듬 구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동남아 쪽으로 활동 영역 늘리려는 움직임 보여”
 
  이처럼 차하얼학회가 사실상 중국 공산당 관영 기관이라는 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보는 내부 관계자도 존재한다. 한국 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는 “통일전선 공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차하얼학회처럼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선 좋을 수 있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그는 차하얼학회에 대해 “민간의 탈을 쓴 국가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저는 오히려 통일전선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차하얼학회처럼 이렇게 대놓고 (공작 활동을) 하는 게 상대국 입장에서 더 좋을 수 있다고 봐요. 만약에 중국이 이런 걸 비밀리에, 비공식 조직이나 스파이를 통해 통일전선 공작을 펼친다면 그들이 뭘 하는지 파악하기가 더 어렵거든요.”
 
  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도 “중국이 우리(한국) 측 인사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접촉하고, 어떤 얘기를 나누고, 어떻게 회유하는지를 비밀스럽게 한다면 우리 입장에선 더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냉정하게 보면, 이러한 활동을 막는 게 더 손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R씨는 “우리가 차하얼학회를 궁지에 몰아서 중국이 공공외교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중국이 우리를 향한 통일전선 공작을 안 할 건 아니”라며 “그렇게 되면 지난해 ‘동방명주 사건(한국 내 중국 비밀경찰서 논란)’처럼 음지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차하얼학회의 활동을 늘리는 주요 타깃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최근엔 동남아시아 쪽으로 활동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하얼학회를 이렇게 소개했다.
 
  “말로는 차하얼‘학회’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학회(學會)는 아니에요. 이름만 학회라고 단 것뿐이에요. 영어로 표기된 차하얼학회 이름을 보세요. ‘더 차하얼 인스티튜트(The Charhar Institute)’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선 ‘학회가 왜 저런 활동을 하지’라며 오해할 수 있어요.”
 
 
  올해 들어 활동 줄어
 
  R씨에 따르면 한국 내 차하얼학회는 현재 활동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학회 관련 보도는 2023년 6월 민주당 의원들의 방문 소식 이외엔 눈에 띄는 게 없다. 그 이전엔 포럼을 열거나 대학에 도서를 기증하고 종교계 관계자를 만나는 등 크고 작은 소식들이 전해졌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여럿 만났다. 한팡밍 회장이 만난 지자체장들은 김동연 경기도지사(2022년 7월), 정명근 화성시장(2023년 4월), 김동근 의정부시장(2022년 7월) 등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한국 내 지자체와 대학 등에 마스크를 10만 장 단위로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잠잠하다.
 
  이에 대해 R씨는 “차하얼학회의 한국 내 활동이 기존 대비 줄어드는 것 같다”며 “지난해까지는 전투적으로 많이 (활동)했지만 올해 들어 눈에 띌 만한 활동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차하얼학회에 대해 한국에서 많은 논란(공작 의혹 등)이 있는 걸 차하얼학회 측에서도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측에서도 차하얼학회를 둘러싼 한국 측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강 교수는 6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하얼학회의 최근 동향에 대해 “중국도 차하얼학회 관련 논란이 너무 많아 이 학회를 통한 교류를 일단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요즘 약간의 한중 관계 소통 분위기가 태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학술 교류가 시작된 분위기”라며 “특히 대학 부설 연구소들과 일부 싱크탱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했다. 또 “기본적으로 학술 교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치적 측면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의외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선 연세대학교가 2019년 11월 교내 중국연구소 부속 연구소로 차하얼연구소를 개소한 이래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는 중국 차하얼학회가 처음으로 외국에 진출한 사례다. 연세대 차하얼연구소 관계자는 6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하얼연구소는 연세대 중국연구원 안에 소속되어 있는 부속 연구소”라며 “현재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차하얼학회 회장은 차관급
 
  다만 학회가 활동을 줄인 이유에 대해 R씨는 한팡밍 회장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겸 부주임직에서 물러나게 된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팡밍 회장이 지난해까지 맡았던 이 직급은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한다. R씨는 정협 부주임이 한국에서 차하얼학회를 이끌게 된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에서 정협은 일종의 공산당 자문기구예요. 정협은 다른 나라에 중국의 국가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입장을 전파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중국에서 공산당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요. 그래서 차하얼학회를 통해 ‘우리 공산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다’라든지,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졌을 땐 ‘한중 관계가 이렇게 경색돼선 안 되니 차하얼학회를 통해 소통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는 거죠. 그 소통 역할을 중앙 정부가 나서서 할 순 없으니 민간이라는 탈을 쓴 국가 기관이 나서는 겁니다. 차하얼학회 구성원을 보면 전·현직 정협 위원과 전직 외교부 간부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어요. 물론 중국 내 저명한 국제관계학 교수들이 소속돼 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은 실질적인 활동을 하진 않고 이름만 올려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백승주 전 의원은 7월 1일 통화에서 한팡밍 회장을 만난 소감에 대해 “자주 소통했는데 한팡밍 회장이 정협(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물러나고 연락이 없어서 지금은 (소통이) 뜸하다”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차하얼학회의 최근 동향에 대해 “요즘은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는다”면서 “(차하얼학회) 지도부에 변화가 생긴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관련 학계에서도 차하얼학회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에서 연구실장직을 맡으며 차하얼학회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 N씨는 “접촉이 어려운 중국 측 관리, 정부 인사, 유명 학자를 찾을 때 차하얼학회를 통하면 알아서 착착 연결해준다”고 했다. 그는 “차하얼학회는 중국 대사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듯하다”며 “차하얼학회와 어떤 행사를 진행하면 곧바로 중국 대사관과 연결이 된다”고 했다. 그가 참여한 차하얼학회 행사도 주한 중국 대사가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국내 차하얼학회 관계자 R씨도 “차하얼학회를 통해 중국 측 컨택(접촉)에 도움을 받기 쉬운 건 사실”이라며 “차하얼학회가 한중 사이에 가교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사드 배치 논란 이후 소통 창구 역할을 해서 문재인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국회의장부터 시작해서 주중 한국 대사, 주요 지자체장들이 한팡밍 회장과의 면담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만났다”고 덧붙였다.
 
 
  “학회 등 통해 군사·과학 기술 알아내려 해”
 
  문제는, 중국 정부가 학계를 비공식 외교 루트로 활용하는 정도를 넘어 온갖 정보 영역으로 손을 뻗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8일, 중국 공산당 산하 연구 기관 소속 연구원을 지낸 A씨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A씨는 중국 공산당의 첩보 활동의 당사자라고 주장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직접 당했죠. 말씀드리기 민감한 게 많아요. 우리 정·재계, 학계가 중국에 대해 너무 몰라요. 중국이 국내 주요 인사들을 매수하려고 하는 걸 굉장히 많이 봤고, 그 사람들이 저에게도 직접 찾아와서 그런 시도를 했어요.”
 
  ― 그 사람들이라면.
 
  “중국 공산당 쪽 사람들이죠. 세 계통이 있어요. 국내 중국 교류 단체들이 있고, 공산당에서 직접 오는 경우도 있고, 중국에서 온 학자들은 일반적인 학자들이 아닙니다. 공산당에 사전, 사후 보고를 해요. 누구를 만날 때도 사전에 (공산당에) 보고를 해야 하고요.”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서 고위 연구원직을 지낸 B씨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중국은 학회와 같은 단체들을 통해 한국의 군사 기술이나 과학 기술들을 알아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학계에선 최근 중국이 군사 기밀을 탈취하려 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학계 관계자 C씨는 “얼마 전 우리 쪽 군사 전문가가 기밀 유출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소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소문의 당사자 L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L씨는 7월 7일 통화에서 압수수색과 기소를 당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사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제 개인적인 실수”라고 해명했다. 또 적용된 혐의가 군 기밀에 관련된 것인지를 묻는 물음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 L씨에게 적용 혐의가 무엇인지 묻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L씨는 해당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았다.
 
 
  연구원에게 ‘인계철선’ 물어
 
  국방부 산하 기관 연구원으로 재직한 B씨에게도 중국 공산당 정보 요원들이 접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 측 요원들은 한국 내 중국 언론사 특파원(기자) 신분으로 가장해 정기적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B씨는 그들의 실명과 소속 언론사까지 밝혔다. B씨에게 물었다.
 
  ― 그들이 진짜 기자일 수도 있지 않나요.
 
  “물어보는 내용이 인계철선(引繼鐵線) 같은 예민한 정보들이었어요. 대만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 자동 개입할 것인지도 물었고요. 반대로 제가 그 사람들에게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물으면 ‘나처럼 힘없는 무지렁이가 뭘 알겠느냐’며 대답을 피했어요. 그리고 그런 걸 물어볼 땐 꼭 선물을 들고 왔어요.”
 
  ― 그걸 받았나요.
 
  “아니요. 그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왜 자꾸 이런 정보를 묻느냐, 어차피 공산당에 다 보고할 거 아니냐’고 거절했어요. 그리고 ‘대국(大國)이면 대국답게 행동해라’라고 면박도 줬고요. 사실 더 민감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건 밝힐 수 없어요. 다만 그 이후로 저에게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국정원 요원 두 명과 중국 파트를 맡는 과장까지 찾아와서 그 기자들 정체를 알려줬어요. 그래서 제가 그들과 일체 연락을 끊었어요.”
 
  ― 그 사람들과 얼마나 알고 지냈나요.
 
  “7~8년 정도죠. 처음에 1년 정도는 전임(前任) 특파원이 저와 교류하다가 중국에서 새로 파견된 기자들에게 바통을 넘기더라고요. 그 사람들 10년 이상 한국에 있었습니다.”
 
 
  명승지에서 학술회의 하는 이유
 
  이밖에도 학계를 통한 중국의 공작 활동 유형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외국인 고문을 지낸 H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중국 학회의 타깃은 외국 기업”이라며 “중국의 학술 단체는 외국 기업이 가진 정치적 자원을 노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학회가 여는 연수회 등 행사는 그 나라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연수나 학술 모임을 통해 인맥을 쌓는 거죠. 그런데 중국의 학술 회의는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잘 안 하는 거 아시나요? 명승지(名勝地) 이런 데서 해요.”
 
  ― 왜 그런가요.
 
  “학술 대회는 형식적인 거니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1990년대 한중 수교 전후로 ‘한중 지식교류회’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그때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통신 기술을 도입하고 싶어했거든요. 그럼 중국에서 통신 인프라 관련한 주제로 학술 대회를 열어요. 그땐 어디서 열었냐면, 장자제(張家界)입니다. 그땐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케이블카도 없었어요. 후난성(湖南省), 장자제 이런 곳에서 2주씩 회의를 해요. 그럼 학술 회의처럼 발표하는 건 그냥 형식적인 거고, 진짜 목적은 저녁에 드러납니다. 그때 양국 기업 임원들과 정치인들이 모이는 거예요.”
 

  ― 진짜 목적이라니요.
 
  “최고의 예우를 해서 마음을 사는 거죠. 그때 중국에 넘어간 한국 정·재계 인사들도 많아요. 지금도 이공계 연구자들은 방학 때마다 중국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가 많고요. 연구 지원비를 비롯해서 향응이 제공되니까요. 학회가 그 역할을 나서서 하는 거죠. 기업 연수도 비용 다 대주며 중국어 가르쳐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 구체적으로 어떤 향응이 제공되나요.
 
  “후난성 대표 도시가 창사(長沙)예 요. 그곳에서 유흥업소 접대부를 데려옵니다. 그렇게 술과 유흥 환경을 만들어놓고 한국의 이공계 전문가들이나 정치적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요. 그 사람들을 위해 아예 기차를 대절(貸切)하기도 하고요. 물론 비용은 중국 학술 단체들이 부담합니다. 그렇게 호감을 사서 정보를 빼가는 거죠. 지금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핵심 주임이 회족(回族·돌궐족)인데 그 사람한테 제가 ‘한국에서 기술 빼가는 거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웃고 마는데, 그건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어요?”
 
 
  “산둥(山東) 지역을 주시해야”
 
  중국 차하얼학회 고급연구위원인 김상순 박사도 “산둥성은 대도시에 비해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며 “그곳 관리들도 지방에서 성과를 내야 중앙 정부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부를 통해 첩보전을 벌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음알음 학계를 통해 이공계 전문가들과 닿게 되면 연구비를 대주고 초청해서 처음엔 간단한 학술 활동을 한다”고 했다. 이어 “1단계에서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찔러준 다음에 반응을 보고 약점을 잡거나 자기네 편으로 넘어올 것 같으면 푸시해(밀어붙여)본다”며 “그때 돈을 받고 객원 연구원이나 초빙 교수 등의 제안을 수락하면 코를 꿰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순 박사는 1990년대 초반 당시 굴지의 국내 모니터 제조업체의 중국 지사 설립 멤버이기도 했다. 김상순 박사는 산둥 지역에 위치한 중국 대학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산둥성 자체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엔 국가안전부 소속 요원들이 다수 배치돼 있다”며 “중국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우리나라 전문가가 산둥 지방에 있는 대학의 객원, 초빙 교수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들 신상 정보는 중국에서 이미 털어갔다고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자학원만큼 위험한 곳”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는 공자학원은 물론 차하얼학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왼쪽 끝이 한민호 대표.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전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관)는 6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자학원은 각 지역을 대상으로 통일전선 공작을 펼치는 곳인데, 차하얼학회는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공작을 하는 곳”이라며 “공자학원만큼 위험한 곳이 차하얼학회”라고 했다. 한 대표는 “국내 대학의 공자학원 원장과 단둘이 만났다”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 측에서도 교내 차하얼연구소에 잘 관여하지 않는 듯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당 대학 차하얼연구소 원장에게 이틀에 걸쳐 두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취재를 요청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중국이 학계를 통해 공작을 펼치는 과정에 대해 김상순 박사는 “한국의 박사 타이틀을 단 정치 브로커가 학계를 통해 중국 측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지금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국 관련 학자 C씨는 몇몇 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중국의 연결책 역할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 중 한 명은 중국 정부와도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한편 김상순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정신 차려야 해요. 중국은 예전부터 첩보전을 펼쳐왔는데 지난번 동방명주 사건 때 국정원에서 저에게 관련 정보를 요청했어요. 그래서 연계된 조직들을 쭉 말했죠. 화교(華僑) 단체 위주로 이쪽을 살펴봐야 한다고. 그런데 중국의 첩보 활동은 어쩔 수 없어요. 어떻게든 할 테니까요.”
 
  이와 관련해 주한 중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질문을 보냈다. 지난 6월 28일 이 관계자에게 ▲차하얼학회를 통한 ‘공작 논란’에 대한 입장 ▲차하얼학회가 중국 정부의 관영 단체인지 여부 ▲주한 중국 대사관과 한국 차하얼학회의 협력 관계 등을 물었지만, 앞서 기자의 다른 취재에 응했던 이 관계자는 질문을 읽고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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