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의 힘 확인… 정통성 싸움 포기하지 말아야
⊙ 미국, 우크라이나 지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軍의 전투 의지 확인했기 때문
⊙ 러시아, 미국 본떠 여단 중심 체제로 개편… ‘임무형 지휘체제’ 전환 실패
⊙ 우크라이나, 선거로 선출된 리더십 있었기에 정상적인 전쟁 수행 가능
⊙ “정통성이 무너진 곳에 전쟁이 찾아온다”(키신저)
⊙ 한국군, 사단·군단 해체 후 남는 장교단 인력 재교육해야
주은식
1957년생. 육사(36기) 졸업, 러시아 총참모대 수학, 예비역 육군 준장 / 육군대학 전술학 처장·전문교관, 제1기갑여단장,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출강
⊙ 미국, 우크라이나 지원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軍의 전투 의지 확인했기 때문
⊙ 러시아, 미국 본떠 여단 중심 체제로 개편… ‘임무형 지휘체제’ 전환 실패
⊙ 우크라이나, 선거로 선출된 리더십 있었기에 정상적인 전쟁 수행 가능
⊙ “정통성이 무너진 곳에 전쟁이 찾아온다”(키신저)
⊙ 한국군, 사단·군단 해체 후 남는 장교단 인력 재교육해야
주은식
1957년생. 육사(36기) 졸업, 러시아 총참모대 수학, 예비역 육군 준장 / 육군대학 전술학 처장·전문교관, 제1기갑여단장,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출강
- 2022년 6월 1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한 여성이 부서진 러시아군 전차 위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서방 위협에 대한 안전보장과 자국민 보호,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한 특별군사작전(SMO)을 선언했다.
그간 왜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외국에 대한 침략은 통상 선전포고를 하고 군부대를 투입한다. 하지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전쟁의 상대방이 아닌 소비에트 시절 공화국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를 문화적·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동일체로 보고는 복속을 시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군사 작전에서 정치적 제한 사항을 과도히 설정해 군사 목표 선정에서 러시아군이 애를 먹었다.
미국의 정치리스크 연구·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은 올해 가장 큰 위협 요소가 ‘악당 러시아’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2023년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러시아에 대해 “최고 수준의 지정학적 위기”라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물론이고 세계안보와 서구의 정치체제, 사이버 공간, 우주,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는 그동안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러·우 전쟁 전황을 접해왔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이 전쟁은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이미 종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양측 상황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어느 일방의 발표만 듣거나 확증 편향된 관점으로 바라보면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 전쟁은 당사국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전황을 발표하므로 양측의 이야기를 듣고 냉철하게 분석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러·우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기에 서로에게 유리한 선전과 심리전이 횡행하고 있다.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우크라이나군, 미군 교리로 전환
수많은 한국인은 이 전쟁을 선악(善惡)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는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미국의 파워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를 ‘악의 제국’으로 묘사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를 동정의 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진실과 발생 원인, 전망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한 뒤 향후 우리의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일찍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운명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설파했다. 러시아어에서 우크라이나의 어두인 우(Y)는 ‘어디에 있다’는 뜻이고 크라이는 변경(邊境), 접경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가까워지면 러시아는 위협을 느끼고 반대로 러시아 진영으로 기울면 유럽이 위협을 느끼는 지정학적인 숙명을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야는 초르니예 제믈랴, 줄여서 초르젬이라고 부르는 흑토(黑土)이다. ‘유럽의 빵바구니’라는 별칭이 붙은 농작물 생산 기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히틀러가 생활권(Lebensraum) 이론을 들먹이며 이곳을 침공해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는 히틀러 군대뿐만 아니라 소련군에게도 피해를 보았다. 소련군이 독일군에 반격하는 과정에서 소련은 이곳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에 협조 내지 협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볼 때 양국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를 두고 인식 차가 크다.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였고 역사적으로 모스크바 공국이 키예프(키이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문화, 종교적으로 맥을 같이한다고 여긴다. 반면 우크라이나 국민은 소련 시절 집단 농장화를 거치며 ‘홀로도모르(Holodomor·집단기아)’ 악몽을 겪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식량 생산 기지임에도 국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참극이 일어났다.
미국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름(러시아어 크림)반도를 복속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친미화 작업을 가속화했다.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을 미 군사교육기관에 유학시키고 나토 훈련에도 참관시켜왔다. 나토 가입에 서명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크라이나군은 나토군의 일원처럼 행동했다. 군사 장비는 러시아제 T 계열이었으나 교리는 미군 전술로 전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친(親)서방과 친러 성향을 띤 지도부가 교대로 집권한 이후 정치 권력이 부패해 정국 불안으로 이어져왔다.
실패한 푸틴의 국방개혁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서방 정책을 표방하고 나토 가입을 시도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러시아는 2021년 7월 국가안보전략의 우선순위를 국가 방어에서 국민 보호로 변경했다. 또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무기를 지원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 주민에게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4차례 국방개혁을 단행했다.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러시아가 소련 시절의 강대국 위상을 되찾으려는 야망에서 시작됐다. 러시아군을 현대화하려는 푸틴의 계획은 정치적 결의와 서방에 대한 전략적 도전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추진됐다. 이는 유럽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충돌했다.
러시아군의 개혁은 다소 변형은 됐지만 2008년에 마련한 개혁안을 바탕에 두고 있다. 군을 정비하고 〈국가무장계획(State Armament Program)〉을 계속 최신화했다. 6개 군구(軍區)를 4개 전구(戰區)로 바꿔 통합작전 수행 여건을 마련했다. 미군의 현대전 수행 모습을 보고 사단과 군단을 없앤 뒤 군사령부 예하에 여단 단위 부대가 대대전술단(BTG)을 통제하는 형태로 편제를 개편했다. 이는 계층구조를 단순화해 분란전 등에서는 효과적이었으나 이번 러·우 전쟁에서는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러시아군은 국방개혁으로 21세기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다. 병력 감축, 여단 중심 군 편제 개편, 무기체계 현대화, 작전·전투 능력에서 성과와 실패를 동시에 겪었다. 위험하게 생각되는 서부 전구에 2개 사단, 동부 전구에 1개의 사단을 두는 등 전체 7개 사단만을 남겼다. 사단과 군단을 없애는 대규모 개혁을 단행했지만 이러한 개혁은 작전의 지속성과 연속작전에 문제를 초래했다. 전쟁 초기에 기습과 집중의 원칙을 무시한 조치도 이번 전쟁에서 많은 손실을 입게 된 배경이다.
러시아군 특유의 전투수행 방법은 대량의 병력을 집중해 활용하는 ‘집중강압전법’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국방개혁을 통해 명령형 지휘체제에서 임무형 지휘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했다. 임무형 지휘체제는 명령형 지휘체제보다 통제의 강제성이 약하다. 러시아군은 임무형 지휘체제에 적응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 채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을 펴야 했다. 이러한 개혁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러시아군이 침공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졸전이었다.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러시아군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전구 단위의 지휘통제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쟁을 지구전(持久戰)으로 몰고 갔고 큰 피해를 초래했다. 두 번째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원정 작전을 위한 군수 보급에 문제가 생겨 전쟁 수행에 차질을 빚었다.
러시아, 戰費가 아닌 병력 동원에 어려움 겪어
2022년 9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을 선포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 듯했으나 전비(戰費) 문제보다 병력 충원이 더 시급한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전비 조달을 틀어막으면 전쟁 지속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계좌도 동결했으나 예상과 달리 러시아를 힘들게 한 것은 전비 조달이 아니라 병력 부족이었다.
러·우 전쟁의 주요 원인을 DIME(외교·Diplomacy, 정보·Information, 군사·Military, 경제·Economics) 측면에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먼저 정치·외교 차원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경고를 무시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을 응징하고자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지 않는다면 향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조바심을 푸틴에게 심어줬다. 자본주의 체제하 미국의 문화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면 영원히 러시아화하는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둘째, 미국의 급격한 탈(脫)탄소화 정책 등 서방의 경제 정책 변화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다. 러시아는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경제를 연명하고 있다. 내연 차량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처럼 친환경 경제 시대의 급격한 도래는 러시아에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셋째, 군사적인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군사 교류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상황은 러시아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유럽의 첨단 무기와 기술이 반러 성향 우크라이나군과 결합되면 우크라이나의 전력 증강이 러시아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에서 친러 반군에게 무기 및 장비를 지속적으로 공급했음에도 세력 확장이 미진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조급함을 갖고 있었다.
‘기습과 집중’에 실패
넷째, 러시아 정보 능력의 저하이다. 러시아는 오판으로 전쟁에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강력한 러시아군이 침공한다고 하면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이 환영하거나 조기에 항복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미국의 도움으로 도피 망명할 줄 알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했을 때처럼 러시아에 대한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팔짱을 끼고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폴란드·체코 등 구소련권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무기를 보태고 미국 등 서방이 전비를 지원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자국에 우호적인 정보만 믿다가 전쟁으로 들어섰다.
러시아의 또 다른 과오는 전쟁의 대원칙인 ‘기습과 집중’에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분히 2022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의식한 조치였다. 중국을 신경 쓰느라 침공 시기를 놓쳤다. 이 때문에 ‘라스푸티차’라는 변수가 러시아군 기동의 발목을 잡았다. 라스푸티차란 러시아어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지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말한다. 해빙기가 되면 동토(凍土)가 녹아 진창으로 변한다. 봄(3~5월)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가을(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가을비가 내려 늪지대로 바뀐다. 라스푸티차를 피하려면 푸틴은 침공 시기를 앞당겨야 했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체첸을 침공한 상황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보 우위로 劣勢 극복
정보 우위를 달성하면 다른 분야가 열세라도 전쟁에서 완전히 굴복되진 않는다. 첨단 정보기술의 발달로 군사작전에서 은밀성은 사라지고 있다. 위성과 감시 수단이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적정을 파악하고 있어 기습의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쟁에서 중요한 병력 집중의 효과도 달성하기 쉽지 않았다. 러시아가 무기의 질적·양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한 것은 서방의 도움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 내에서는 러시아보다 우세한 정보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군사정보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산업생산 능력 ▲외교 및 동맹에 관한 정보 ▲금융 및 무역 ▲인구 구조 등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취약점과 취약 시기를 예측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는 부분 동원령으로 30만 명을 소집해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에 투입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 러시아 병력의 전투 의지나 전투 역량, 취약점 등을 파악한 후 적시(適時)에 타격하고 있어 러시아군이 큰 고난을 겪고 있다.
두 번째 하이브리드전(戰) 영역의 대폭 확장이다. 전쟁에서 비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고전(古典)이다. 전쟁에서 교전에 의한 총·포격 등 물리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사례보다 질병이나 심리전 등 비물리적 요인으로 상대를 교란시켜 전쟁 목적을 달성한 사례가 훨씬 많다. 러시아도 불과 몇 년 전에 우세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크름반도에서 동일한 효과를 얻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 외교·심리전에서 승리
이번 러·우 전쟁은 전쟁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교전 당사국을 넘어서 전 유럽과 미국으로 확대됐다. 전장은 우크라이나지만 벨라루스를 제외한 전 유럽에서 반(反)러시아 외교·경제·문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의 행위는 야만적이며 우크라이나는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의 프로파간다가 더 큰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서방의 젊은이들이 ‘정의(正義)의 성전(聖戰)’에 참여하겠다고 우크라이나로 오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동원된 병사마저 국경을 넘어 튀르기예, 카자흐스탄 등지로 탈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비록 자국이 전장으로 황폐화돼 고통받고 있지만 자국 외에서는 외교·심리전 등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비근한 예가 2022년 5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song) 콘테스트이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가요 팬들은 몰표로 우크라이나 팀에게 우승을 안겨줬다. 이는 우크라이나 팀의 실력이 월등해서가 아니라 음악으로서 러시아를 응징한다는 유럽의 심리전 수행 결과로 봐야 한다. 러시아 편에 선 것이 확실한 벨라루스, 북한 등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 수행이 통할 나라는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 대리전 수행의 새로운 모델 발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벌이는 이번 혼합 전쟁은 당사국끼리의 범위를 넘어서 전 세계로 확산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우선 (미국의 입장에서) 대리전 수행의 새로운 모델이다. 병력 지원 없이 무기 공급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침공 이전만 해도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우크라이나는 조기에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구형 무기를 갖고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했다. 이는 미국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의 전투 의지를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미국이 만장일치로 무기 지원을 결정한 주 이유다.
급한 대로 폴란드와 체코가 보유한 구 러시아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대여해줬다. 폴란드와 체코에는 다시 독일이 레오파드 전차, 마르더 장갑차 등으로 되갚는 형식을 취했다. 이러한 방식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모델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붕괴되면 러시아는 곧장 독일제 장비로 무장한 국가들과 바로 전선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점이 바로 억제 효과로 작동돼 러시아군 작전이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으로 한정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군의 피를 흘리지 않고 러시아를 억제하고 유럽의 군비 증강을 유도했다. 미국은 20년간 전비 수조 달러를 쏟아붓고도 202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야 했다. 아프간 정권은 붕괴됐고 실패한 군사전략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병력 손실 없이도 정권을 지켜냈고 정치적 성과도 얻어내 현재까지 성공한 군사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 구현 대상 국가와 관련해 새로운 기준을 정립한 계기가 됐다. 정통성이 있는 국가, 즉 선거로 선출된 국가를 지원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미국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는 이념 블록을 염두에 두고 특정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선별해서 지원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선거로 선출된 리더십이 있었기에 정상적인 전쟁 수행이 가능했다. 젤렌스키가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라 특정 정파나 외부 세력에 의해 옹립된 지도자였다면 전쟁 초기에 외부 세계로 망명했을 것이다.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처럼 말이다.
러시아는 이런 민주주의의 힘을 간과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정치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물리적인 군사력을 투입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의도치 않게 ‘간접 전략’을 구사한 미국의 전략에 걸려 고전(苦戰)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에 간접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젤렌스키의 誤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수가 이 전쟁을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나쁜 나라, 우크라이나는 불쌍한 나라’로 본다. 하지만 국제 관계는 현실주의, 즉 힘의 정치다. 국제 관계는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도덕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선 유엔이 결의를 통해 러시아를 비난했다.
서방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을 칭송하고 그의 전략적 판단 실수를 간과하고 있다. 만약 젤렌스키가 상황 판단을 냉정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우선 우크라이나를 중립지대화해 나토 가입을 늦춘 뒤 EU 가입을 먼저 추진해 경제 부흥을 시켜야 했다. 그 뒤 경제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린 후 나토에 가입했어야 했다.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인한 군사적 위협을 덜 느끼도록 했다면 젤렌스키는 자국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는 결심은 하지 않았어도 됐다.
지도자가 전쟁을 결심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묘산(廟算), 즉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우리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지, 외교적 동맹은 유지할 수 있는지, 탄약이나 장비는 충분한지, 장수의 역량은 구비됐는지 살피고 나서 전쟁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런 계산을 소홀히 하고 나토 가입을 주장하다 보니 러시아의 침공을 초래했다. 나토 가입을 보류한다고 했으면 서방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정통성 싸움은 양보할 수 없어
항간에는 러시아를 두고 ‘푸틴의 건강이 나쁘다’ ‘푸틴이 내부 항명에 부딪혀 낭패를 겪고 있다’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 중 80% 이상은 러·우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사라지면서 러시아라는 적이 전면으로 등장했다. 국제 관계에서 러시아를 혐오하는 서구의 위선(僞善)을 기자 출신인 기 메탕(Guy Mettan)은 ‘루소포비아(Russophobia)’라고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로 인해 미국과 유럽은 더 이상 깊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우리는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유지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키신저는 “정통성이 무너진 곳에 전쟁이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남북은 이념대결로 분단됐다.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섣불리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한심한 소리다. 이념 전쟁에서 이념을 포기하라는 말은 남북전쟁에서 정통성을 양보하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이념은 한반도에서 철 지난 것이 아니라 정통성 싸움에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역적 수준에서 보면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니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고 주변국들과 협력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히는 한반도의 숙명이다. 우크라이나처럼 행동하면 한반도도 전쟁의 참화에 휩쓸린다. 대만 문제를 우리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곧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고 봐야 한다. 양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안보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諸兵 협동·합동 안 돼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 통합 능력, 지휘통제와 통신으로 정보를 소통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는 일론 머스크를 향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이 화성 식민지를 추진하는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고 한다. 당신의 로켓이 우주로 발사되는 동안 러시아의 로켓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공격한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Starlink·저궤도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머스크는 페도로프 부총리의 요청에 화답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장의 실상을 인터넷에 올려 상황을 공유하며 정보 소통을 유지했다.
결국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기체계의 우수성과 전쟁 지속성 확보 여부이다. 러시아의 군수 물자 보급은 철도에서 140km 넘게 떨어지는 바람에 한계에 봉착해 곤란에 빠졌다. 보급 트럭도 파괴돼 곤경에 처했다.
러·우 전쟁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장에서의 ‘제(諸)역량통합(네트워크 중심전, NCW·Network-centric Warfare)’과 다영역작전의 중요성 대두이다. 전장에서는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 제병 협동 및 합동 작전을 한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는 제병 협동·합동이 안 됐다.
이것은 사단과 군단 편제를 없애고 군사령부 밑에 바로 여단을 편제한 뒤 여단 아래 대대전술단(BTG)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대대전술단은 전투 기본 제대(梯隊)이지 작전 제대가 아니었다. 따라서 작전지속과 연속작전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또 러시아는 집중강압전법에서 임무형 지휘체제로 전환하였으나 이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戰車는 앞으로도 유효
이번 전쟁에서 대전차 미사일이 전차(tank)와 기계화 부대를 박살 내는 것을 보고 많은 평론가가 전차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는 ‘전차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견을 많이들 피력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지상군의 전투 수행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경되지 않는 한 전차는 앞으로도 유효하다. 그 이유는 지상군 무기체계의 설계 방식은 기동력과 화력, 장갑 보호를 토대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기동력·화력·방호력이 집약된 것이 바로 전차다.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 전차가 초기에 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재블린이나 영국제 NLAW미사일이 전차를 타격한 모습을 보고는 이른바 ‘전차무용론(戰車無用論)’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항상 전차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해왔다. 전차가 제1 표적이 된 이유는 무기체계의 3요소가 다 집약돼 있기에 당연히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차가 집중 표적이 된 것인데 전차가 없으면 무엇으로 전차의 기능을 대체한다는 말인가. 미사일만으로 적을 격멸할 수 없고 항공기만으로 전투를 종결지을 수 없다.
전투의 본질이 변하고 마찰이라는 요소가 없어진다면 모를까 전차는 없어지지 않는다. 4차 중동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을 거치면서도 전차무용론이 등장했고 기동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말이 범람했지만 전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차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상군 무기체계의 설계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만 향후 전차가 방호 대책을 우선하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이번 러·우 전쟁에서도 러시아 전차가 많은 피해를 입은 이유는 러시아 전차에 APS(Active Protection System·능동방호체계)가 제대로 장착돼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능동방어체계가 보완돼 전차를 방호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항상 무기체계는 초기에 기습 요인이 있지만 최단 시간 내에 대책을 강구해 보완책을 갖춘다. 그러면 기습효과가 사라지고 다시 창의 원리가 강구된다.
푸틴, 핵 사용 가능성 낮아
러·우 전쟁 협상 및 종전(終戰) 전망에 대한 의견은 구구각색이다. 양측이 만족할 만한 협상 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오데사 항구의 개방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전개될 것으로 본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력하지 않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푸틴을 자극할 만한 압력이 제기되지 않았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한 교착 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이는 양측의 전쟁목표가 변화됐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전술핵 사용 가능성으로 협박하자 노골적인 지원과 개입은 주춤한 상태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한정되고 있으며 나토의 결속력은 강화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장비 지원으로 대리전이 수행되고 있다. 서구와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압박하거나 약화시킬 경우 자칫 핵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미국과 나토는 앞서 말한 대로 우크라이나의 일방적 승리보다 전반적 교착 상태를 통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소진시킨 후 종전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일부 우크라이나군의 군사적 승리가 서방 측에 유리한 상황 전개로 보일 수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현실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충분히 약화돼 아시아에서 중국에 집중 가능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볼 경우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수차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 사용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 수백 마일 이상 확장된 전선에서 전술핵무기 사용은 효과도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보복도 두렵기에 섣불리 사용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크름반도와 돈바스 상실 등이 우려될 경우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680억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과 동맹국은 무기 지원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교육 훈련과 핵심 정보 등을 지원해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도록 했다. 나토를 제외한 국가는 인도적 지원에 국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자국의 잉여 물자나 비군사 물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군에 주는 교훈
윤석열 대통령과 안보 관계자들이 잘 대처해나가겠지만 상당수 국민은 전시작전권 전환과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미군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핵우산을 제공받을 때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굳건히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군은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드론 침투로 영공이 뚫려 지탄을 받고 있는 이때 문제를 확실히 점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장 긴요한 문제이자 국방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와 전장을 관찰할 수 있는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발전을 해오고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장교단 양성 교육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부대를 해체하고 부수 인력을 확보해 교육 기간을 적절하게 늘려 전문가를 양성해야 함에도 병력 부족으로 사단·군단을 해체한다. 그러고는 남는 장교단 인력을 전부 기존 사단·군단에 다시 밀어 넣는다. 이 때문에 교육을 받아야 할 부수 병력이 없다. 아무리 국방개혁이나 혁신을 해도 궁극적으로 교육훈련으로 판가름 난다. 교육훈련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혁신을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다. 우리 군은 이 부분에 큰 관심이 없다.
당장 한국의 핵무장이 어렵다면 북핵에 대한 대비책으로 단계적 핵연료 재처리 기술, 전술핵 공유 등의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ICBM을 완성한다면 북핵 조기 억제 방안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하게끔 미국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날이 조만간 온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항간에서는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데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다. 따라서 레이저무기 등 비대칭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병행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가 짖는 것은 겁먹었기 때문
북한 김정은도 러·우 전쟁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쉽지 않았던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핵이 없는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한 러시아에 침공당하는 모습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필요성을 야기하고 미국의 확장 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필요성을 남북한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더불어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에너지와 곡물시장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을 충분히 입증시켰고 우리는 방산수출 증대라는 기회를 맞이했다. 《손자병법》 구변 편에 나오는 무시기불래 시오유이대야(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가 대비되어 있음을 믿어라)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최고 군사이론가인 리델하트는 전략론에서 간접접근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전과 심리적·경제적 수단에 의한 고립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히틀러가 체코 수데텐란드를 합병하고 뮌헨 회담을 할 때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는 군사력에 의한 직접접근을 시도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핵으로 도발하고 분란을 일으킨다면 이는 북한체제 붕괴의 서막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김정은은 남한을 침공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해야 한다. 김정은이 계속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한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이유는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가 짖는 것은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진짜 사나운 개는 가만있다가 갑자기 물어버린다. 결코 먼저 짖지 않는다.⊙
그간 왜 전쟁이 아니라 특별군사작전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외국에 대한 침략은 통상 선전포고를 하고 군부대를 투입한다. 하지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전쟁의 상대방이 아닌 소비에트 시절 공화국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를 문화적·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동일체로 보고는 복속을 시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군사 작전에서 정치적 제한 사항을 과도히 설정해 군사 목표 선정에서 러시아군이 애를 먹었다.
미국의 정치리스크 연구·컨설팅 기업 유라시아 그룹은 올해 가장 큰 위협 요소가 ‘악당 러시아’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2023년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러시아에 대해 “최고 수준의 지정학적 위기”라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물론이고 세계안보와 서구의 정치체제, 사이버 공간, 우주,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는 그동안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러·우 전쟁 전황을 접해왔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이 전쟁은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이미 종결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양측 상황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어느 일방의 발표만 듣거나 확증 편향된 관점으로 바라보면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 전쟁은 당사국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전황을 발표하므로 양측의 이야기를 듣고 냉철하게 분석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러·우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기에 서로에게 유리한 선전과 심리전이 횡행하고 있다.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우크라이나군, 미군 교리로 전환
수많은 한국인은 이 전쟁을 선악(善惡)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는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미국의 파워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를 ‘악의 제국’으로 묘사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를 동정의 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진실과 발생 원인, 전망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한 뒤 향후 우리의 정책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일찍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운명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설파했다. 러시아어에서 우크라이나의 어두인 우(Y)는 ‘어디에 있다’는 뜻이고 크라이는 변경(邊境), 접경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가까워지면 러시아는 위협을 느끼고 반대로 러시아 진영으로 기울면 유럽이 위협을 느끼는 지정학적인 숙명을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야는 초르니예 제믈랴, 줄여서 초르젬이라고 부르는 흑토(黑土)이다. ‘유럽의 빵바구니’라는 별칭이 붙은 농작물 생산 기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히틀러가 생활권(Lebensraum) 이론을 들먹이며 이곳을 침공해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는 히틀러 군대뿐만 아니라 소련군에게도 피해를 보았다. 소련군이 독일군에 반격하는 과정에서 소련은 이곳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에 협조 내지 협력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볼 때 양국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를 두고 인식 차가 크다.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였고 역사적으로 모스크바 공국이 키예프(키이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문화, 종교적으로 맥을 같이한다고 여긴다. 반면 우크라이나 국민은 소련 시절 집단 농장화를 거치며 ‘홀로도모르(Holodomor·집단기아)’ 악몽을 겪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식량 생산 기지임에도 국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참극이 일어났다.
미국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름(러시아어 크림)반도를 복속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친미화 작업을 가속화했다.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을 미 군사교육기관에 유학시키고 나토 훈련에도 참관시켜왔다. 나토 가입에 서명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크라이나군은 나토군의 일원처럼 행동했다. 군사 장비는 러시아제 T 계열이었으나 교리는 미군 전술로 전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친(親)서방과 친러 성향을 띤 지도부가 교대로 집권한 이후 정치 권력이 부패해 정국 불안으로 이어져왔다.
실패한 푸틴의 국방개혁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서방 정책을 표방하고 나토 가입을 시도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러시아는 2021년 7월 국가안보전략의 우선순위를 국가 방어에서 국민 보호로 변경했다. 또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무기를 지원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 주민에게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4차례 국방개혁을 단행했다. 러시아의 국방개혁은 러시아가 소련 시절의 강대국 위상을 되찾으려는 야망에서 시작됐다. 러시아군을 현대화하려는 푸틴의 계획은 정치적 결의와 서방에 대한 전략적 도전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추진됐다. 이는 유럽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미국의 의지와 충돌했다.
러시아군의 개혁은 다소 변형은 됐지만 2008년에 마련한 개혁안을 바탕에 두고 있다. 군을 정비하고 〈국가무장계획(State Armament Program)〉을 계속 최신화했다. 6개 군구(軍區)를 4개 전구(戰區)로 바꿔 통합작전 수행 여건을 마련했다. 미군의 현대전 수행 모습을 보고 사단과 군단을 없앤 뒤 군사령부 예하에 여단 단위 부대가 대대전술단(BTG)을 통제하는 형태로 편제를 개편했다. 이는 계층구조를 단순화해 분란전 등에서는 효과적이었으나 이번 러·우 전쟁에서는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러시아군은 국방개혁으로 21세기에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자 했다. 병력 감축, 여단 중심 군 편제 개편, 무기체계 현대화, 작전·전투 능력에서 성과와 실패를 동시에 겪었다. 위험하게 생각되는 서부 전구에 2개 사단, 동부 전구에 1개의 사단을 두는 등 전체 7개 사단만을 남겼다. 사단과 군단을 없애는 대규모 개혁을 단행했지만 이러한 개혁은 작전의 지속성과 연속작전에 문제를 초래했다. 전쟁 초기에 기습과 집중의 원칙을 무시한 조치도 이번 전쟁에서 많은 손실을 입게 된 배경이다.
러시아군 특유의 전투수행 방법은 대량의 병력을 집중해 활용하는 ‘집중강압전법’이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국방개혁을 통해 명령형 지휘체제에서 임무형 지휘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했다. 임무형 지휘체제는 명령형 지휘체제보다 통제의 강제성이 약하다. 러시아군은 임무형 지휘체제에 적응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 채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을 펴야 했다. 이러한 개혁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러시아군이 침공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졸전이었다.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러시아군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전구 단위의 지휘통제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쟁을 지구전(持久戰)으로 몰고 갔고 큰 피해를 초래했다. 두 번째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원정 작전을 위한 군수 보급에 문제가 생겨 전쟁 수행에 차질을 빚었다.
러시아, 戰費가 아닌 병력 동원에 어려움 겪어
![]() |
부분 동원령이 내려진 후인 2022년 9월 기차역으로 향하는 러시아 예비군들. 남편의 손을 잡은 아내들의 얼굴이 어둡다. 사진=AP/뉴시스 |
러·우 전쟁의 주요 원인을 DIME(외교·Diplomacy, 정보·Information, 군사·Military, 경제·Economics) 측면에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먼저 정치·외교 차원에서 푸틴은 러시아의 경고를 무시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을 응징하고자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지 않는다면 향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조바심을 푸틴에게 심어줬다. 자본주의 체제하 미국의 문화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면 영원히 러시아화하는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둘째, 미국의 급격한 탈(脫)탄소화 정책 등 서방의 경제 정책 변화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다. 러시아는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경제를 연명하고 있다. 내연 차량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처럼 친환경 경제 시대의 급격한 도래는 러시아에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셋째, 군사적인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군사 교류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상황은 러시아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유럽의 첨단 무기와 기술이 반러 성향 우크라이나군과 결합되면 우크라이나의 전력 증강이 러시아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에서 친러 반군에게 무기 및 장비를 지속적으로 공급했음에도 세력 확장이 미진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조급함을 갖고 있었다.
넷째, 러시아 정보 능력의 저하이다. 러시아는 오판으로 전쟁에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강력한 러시아군이 침공한다고 하면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이 환영하거나 조기에 항복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미국의 도움으로 도피 망명할 줄 알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했을 때처럼 러시아에 대한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팔짱을 끼고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폴란드·체코 등 구소련권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무기를 보태고 미국 등 서방이 전비를 지원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자국에 우호적인 정보만 믿다가 전쟁으로 들어섰다.
러시아의 또 다른 과오는 전쟁의 대원칙인 ‘기습과 집중’에서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분히 2022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의식한 조치였다. 중국을 신경 쓰느라 침공 시기를 놓쳤다. 이 때문에 ‘라스푸티차’라는 변수가 러시아군 기동의 발목을 잡았다. 라스푸티차란 러시아어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지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말한다. 해빙기가 되면 동토(凍土)가 녹아 진창으로 변한다. 봄(3~5월)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가을(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가을비가 내려 늪지대로 바뀐다. 라스푸티차를 피하려면 푸틴은 침공 시기를 앞당겨야 했다.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체첸을 침공한 상황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시기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보 우위로 劣勢 극복
정보 우위를 달성하면 다른 분야가 열세라도 전쟁에서 완전히 굴복되진 않는다. 첨단 정보기술의 발달로 군사작전에서 은밀성은 사라지고 있다. 위성과 감시 수단이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적정을 파악하고 있어 기습의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쟁에서 중요한 병력 집중의 효과도 달성하기 쉽지 않았다. 러시아가 무기의 질적·양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한 것은 서방의 도움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 내에서는 러시아보다 우세한 정보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영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군사정보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산업생산 능력 ▲외교 및 동맹에 관한 정보 ▲금융 및 무역 ▲인구 구조 등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취약점과 취약 시기를 예측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는 부분 동원령으로 30만 명을 소집해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에 투입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 러시아 병력의 전투 의지나 전투 역량, 취약점 등을 파악한 후 적시(適時)에 타격하고 있어 러시아군이 큰 고난을 겪고 있다.
두 번째 하이브리드전(戰) 영역의 대폭 확장이다. 전쟁에서 비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고전(古典)이다. 전쟁에서 교전에 의한 총·포격 등 물리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사례보다 질병이나 심리전 등 비물리적 요인으로 상대를 교란시켜 전쟁 목적을 달성한 사례가 훨씬 많다. 러시아도 불과 몇 년 전에 우세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크름반도에서 동일한 효과를 얻은 바 있다.
이번 러·우 전쟁은 전쟁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교전 당사국을 넘어서 전 유럽과 미국으로 확대됐다. 전장은 우크라이나지만 벨라루스를 제외한 전 유럽에서 반(反)러시아 외교·경제·문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의 행위는 야만적이며 우크라이나는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의 프로파간다가 더 큰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서방의 젊은이들이 ‘정의(正義)의 성전(聖戰)’에 참여하겠다고 우크라이나로 오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동원된 병사마저 국경을 넘어 튀르기예, 카자흐스탄 등지로 탈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비록 자국이 전장으로 황폐화돼 고통받고 있지만 자국 외에서는 외교·심리전 등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비근한 예가 2022년 5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song) 콘테스트이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가요 팬들은 몰표로 우크라이나 팀에게 우승을 안겨줬다. 이는 우크라이나 팀의 실력이 월등해서가 아니라 음악으로서 러시아를 응징한다는 유럽의 심리전 수행 결과로 봐야 한다. 러시아 편에 선 것이 확실한 벨라루스, 북한 등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전 수행이 통할 나라는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 대리전 수행의 새로운 모델 발견
![]() |
미국이 제공한 M777포를 발사하는 우크라이나 병사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미국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우선 (미국의 입장에서) 대리전 수행의 새로운 모델이다. 병력 지원 없이 무기 공급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침공 이전만 해도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우크라이나는 조기에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구형 무기를 갖고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했다. 이는 미국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의 전투 의지를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미국이 만장일치로 무기 지원을 결정한 주 이유다.
급한 대로 폴란드와 체코가 보유한 구 러시아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대여해줬다. 폴란드와 체코에는 다시 독일이 레오파드 전차, 마르더 장갑차 등으로 되갚는 형식을 취했다. 이러한 방식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모델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붕괴되면 러시아는 곧장 독일제 장비로 무장한 국가들과 바로 전선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점이 바로 억제 효과로 작동돼 러시아군 작전이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지역으로 한정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군의 피를 흘리지 않고 러시아를 억제하고 유럽의 군비 증강을 유도했다. 미국은 20년간 전비 수조 달러를 쏟아붓고도 202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야 했다. 아프간 정권은 붕괴됐고 실패한 군사전략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병력 손실 없이도 정권을 지켜냈고 정치적 성과도 얻어내 현재까지 성공한 군사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 구현 대상 국가와 관련해 새로운 기준을 정립한 계기가 됐다. 정통성이 있는 국가, 즉 선거로 선출된 국가를 지원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미국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는 이념 블록을 염두에 두고 특정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선별해서 지원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선거로 선출된 리더십이 있었기에 정상적인 전쟁 수행이 가능했다. 젤렌스키가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라 특정 정파나 외부 세력에 의해 옹립된 지도자였다면 전쟁 초기에 외부 세계로 망명했을 것이다.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처럼 말이다.
러시아는 이런 민주주의의 힘을 간과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러시아 정권을 세우는 정치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물리적인 군사력을 투입시키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의도치 않게 ‘간접 전략’을 구사한 미국의 전략에 걸려 고전(苦戰)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에 간접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젤렌스키의 誤判
![]()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략 후 망명을 거부하고 키이우를 지키면서 항전의 구심점이 되었다. 사진=우크라이나 대통령실 |
서방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을 칭송하고 그의 전략적 판단 실수를 간과하고 있다. 만약 젤렌스키가 상황 판단을 냉정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우선 우크라이나를 중립지대화해 나토 가입을 늦춘 뒤 EU 가입을 먼저 추진해 경제 부흥을 시켜야 했다. 그 뒤 경제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린 후 나토에 가입했어야 했다.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인한 군사적 위협을 덜 느끼도록 했다면 젤렌스키는 자국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되는 결심은 하지 않았어도 됐다.
지도자가 전쟁을 결심할 때는 신중해야 하며 묘산(廟算), 즉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우리가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지, 외교적 동맹은 유지할 수 있는지, 탄약이나 장비는 충분한지, 장수의 역량은 구비됐는지 살피고 나서 전쟁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런 계산을 소홀히 하고 나토 가입을 주장하다 보니 러시아의 침공을 초래했다. 나토 가입을 보류한다고 했으면 서방과 러시아 양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정통성 싸움은 양보할 수 없어
항간에는 러시아를 두고 ‘푸틴의 건강이 나쁘다’ ‘푸틴이 내부 항명에 부딪혀 낭패를 겪고 있다’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 중 80% 이상은 러·우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사라지면서 러시아라는 적이 전면으로 등장했다. 국제 관계에서 러시아를 혐오하는 서구의 위선(僞善)을 기자 출신인 기 메탕(Guy Mettan)은 ‘루소포비아(Russophobia)’라고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로 인해 미국과 유럽은 더 이상 깊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우리는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유지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키신저는 “정통성이 무너진 곳에 전쟁이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남북은 이념대결로 분단됐다.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섣불리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참으로 한심한 소리다. 이념 전쟁에서 이념을 포기하라는 말은 남북전쟁에서 정통성을 양보하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이념은 한반도에서 철 지난 것이 아니라 정통성 싸움에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역적 수준에서 보면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니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고 주변국들과 협력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히는 한반도의 숙명이다. 우크라이나처럼 행동하면 한반도도 전쟁의 참화에 휩쓸린다. 대만 문제를 우리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곧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고 봐야 한다. 양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안보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諸兵 협동·합동 안 돼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 통합 능력, 지휘통제와 통신으로 정보를 소통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는 일론 머스크를 향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이 화성 식민지를 추진하는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고 한다. 당신의 로켓이 우주로 발사되는 동안 러시아의 로켓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공격한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Starlink·저궤도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달라고 호소했다. 머스크는 페도로프 부총리의 요청에 화답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장의 실상을 인터넷에 올려 상황을 공유하며 정보 소통을 유지했다.
결국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기체계의 우수성과 전쟁 지속성 확보 여부이다. 러시아의 군수 물자 보급은 철도에서 140km 넘게 떨어지는 바람에 한계에 봉착해 곤란에 빠졌다. 보급 트럭도 파괴돼 곤경에 처했다.
러·우 전쟁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장에서의 ‘제(諸)역량통합(네트워크 중심전, NCW·Network-centric Warfare)’과 다영역작전의 중요성 대두이다. 전장에서는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 제병 협동 및 합동 작전을 한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는 제병 협동·합동이 안 됐다.
이것은 사단과 군단 편제를 없애고 군사령부 밑에 바로 여단을 편제한 뒤 여단 아래 대대전술단(BTG)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대대전술단은 전투 기본 제대(梯隊)이지 작전 제대가 아니었다. 따라서 작전지속과 연속작전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또 러시아는 집중강압전법에서 임무형 지휘체제로 전환하였으나 이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戰車는 앞으로도 유효
![]() |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하지만 전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AP/뉴시스 |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 전차가 초기에 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재블린이나 영국제 NLAW미사일이 전차를 타격한 모습을 보고는 이른바 ‘전차무용론(戰車無用論)’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항상 전차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해왔다. 전차가 제1 표적이 된 이유는 무기체계의 3요소가 다 집약돼 있기에 당연히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차가 집중 표적이 된 것인데 전차가 없으면 무엇으로 전차의 기능을 대체한다는 말인가. 미사일만으로 적을 격멸할 수 없고 항공기만으로 전투를 종결지을 수 없다.
전투의 본질이 변하고 마찰이라는 요소가 없어진다면 모를까 전차는 없어지지 않는다. 4차 중동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을 거치면서도 전차무용론이 등장했고 기동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말이 범람했지만 전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차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지상군 무기체계의 설계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만 향후 전차가 방호 대책을 우선하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이번 러·우 전쟁에서도 러시아 전차가 많은 피해를 입은 이유는 러시아 전차에 APS(Active Protection System·능동방호체계)가 제대로 장착돼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능동방어체계가 보완돼 전차를 방호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 항상 무기체계는 초기에 기습 요인이 있지만 최단 시간 내에 대책을 강구해 보완책을 갖춘다. 그러면 기습효과가 사라지고 다시 창의 원리가 강구된다.
푸틴, 핵 사용 가능성 낮아
러·우 전쟁 협상 및 종전(終戰) 전망에 대한 의견은 구구각색이다. 양측이 만족할 만한 협상 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오데사 항구의 개방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전개될 것으로 본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력하지 않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푸틴을 자극할 만한 압력이 제기되지 않았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한 교착 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이는 양측의 전쟁목표가 변화됐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전술핵 사용 가능성으로 협박하자 노골적인 지원과 개입은 주춤한 상태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한정되고 있으며 나토의 결속력은 강화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장비 지원으로 대리전이 수행되고 있다. 서구와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압박하거나 약화시킬 경우 자칫 핵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미국과 나토는 앞서 말한 대로 우크라이나의 일방적 승리보다 전반적 교착 상태를 통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소진시킨 후 종전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일부 우크라이나군의 군사적 승리가 서방 측에 유리한 상황 전개로 보일 수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현실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충분히 약화돼 아시아에서 중국에 집중 가능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볼 경우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수차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 사용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 수백 마일 이상 확장된 전선에서 전술핵무기 사용은 효과도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보복도 두렵기에 섣불리 사용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크름반도와 돈바스 상실 등이 우려될 경우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680억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과 동맹국은 무기 지원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교육 훈련과 핵심 정보 등을 지원해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도록 했다. 나토를 제외한 국가는 인도적 지원에 국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자국의 잉여 물자나 비군사 물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군에 주는 교훈
윤석열 대통령과 안보 관계자들이 잘 대처해나가겠지만 상당수 국민은 전시작전권 전환과 한미 연합방위체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미군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핵우산을 제공받을 때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굳건히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군은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드론 침투로 영공이 뚫려 지탄을 받고 있는 이때 문제를 확실히 점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장 긴요한 문제이자 국방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와 전장을 관찰할 수 있는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발전을 해오고 있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장교단 양성 교육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부대를 해체하고 부수 인력을 확보해 교육 기간을 적절하게 늘려 전문가를 양성해야 함에도 병력 부족으로 사단·군단을 해체한다. 그러고는 남는 장교단 인력을 전부 기존 사단·군단에 다시 밀어 넣는다. 이 때문에 교육을 받아야 할 부수 병력이 없다. 아무리 국방개혁이나 혁신을 해도 궁극적으로 교육훈련으로 판가름 난다. 교육훈련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혁신을 운운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다. 우리 군은 이 부분에 큰 관심이 없다.
당장 한국의 핵무장이 어렵다면 북핵에 대한 대비책으로 단계적 핵연료 재처리 기술, 전술핵 공유 등의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는 ICBM을 완성한다면 북핵 조기 억제 방안으로 한국이 핵무장을 하게끔 미국 스스로가 느끼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날이 조만간 온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항간에서는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는데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다. 따라서 레이저무기 등 비대칭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병행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가 짖는 것은 겁먹었기 때문
북한 김정은도 러·우 전쟁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쉽지 않았던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핵이 없는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한 러시아에 침공당하는 모습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필요성을 야기하고 미국의 확장 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필요성을 남북한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더불어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에너지와 곡물시장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을 충분히 입증시켰고 우리는 방산수출 증대라는 기회를 맞이했다. 《손자병법》 구변 편에 나오는 무시기불래 시오유이대야(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적이 공격하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가 대비되어 있음을 믿어라)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최고 군사이론가인 리델하트는 전략론에서 간접접근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전과 심리적·경제적 수단에 의한 고립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히틀러가 체코 수데텐란드를 합병하고 뮌헨 회담을 할 때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는 군사력에 의한 직접접근을 시도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핵으로 도발하고 분란을 일으킨다면 이는 북한체제 붕괴의 서막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김정은은 남한을 침공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해야 한다. 김정은이 계속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한과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이유는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가 짖는 것은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진짜 사나운 개는 가만있다가 갑자기 물어버린다. 결코 먼저 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