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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7〉 88년 청문회와 나 (1)

“우리는 물라면 무는 개… (안기부에) 잡혀 오면 비굴해지더라”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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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받던 중 新聞 보고 절망에 빠진 김대중
⊙ ‘나도 김대중과 똑같이 잠 안 잤는데 그게 무슨 고문이냐’
⊙ “김대중, 調書 차근차근 확인하면서 오·탈자까지 고쳐”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판 모습. 8년 후 야당 총재가 된 김대중 총재는 이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주도하게 됐다. 사진=조선DB
  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1988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재(再)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수사와 군사재판에 관여한 사람들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이었다. 어느 날 수사국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이제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청문회 답변을 위해 육군본부 법무감실에서 그 사건에 참여했던 수사관이나 검사, 그리고 법무장교들이 모일 거요. 청문회에서 나올 야당의 질문에 대해 답변자료를 미리 만들어보는 거지. 당신은 그곳으로 가서 준비팀을 지켜보면서 그 활동 상황을 보고서로 작성하시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난처했다. 그 5년 전만 해도 나는 수도군단의 법무장교로 계급이 대위였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수사는 선배 법무장교들이 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육군본부 법무감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껄끄러운 입장이 될 수 있었다. 수사국 책임자는 내가 법무장교 출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법무감실은 제가 군에 복무할 당시 병과(兵科)의 지휘부인데 좀 부담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사국 책임자가 이렇게 맞받았다.
 

  “무슨 소리요? 당신이 법무장교 출신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더 정확히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요. 관련된 장교들과 인연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그들의 하급자가 아니야. 안전기획부에서 다른 기관으로 가면 그 사람은 바로 안전기획부장을 대리(代理)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사명을 수행하는 거요.”
 
  “저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사한 장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내막도 전혀 모르는데요.”
 
  “그건 걱정할 게 없소. 안전기획부에서 김대중을 직접 조사했던 수사관이 가서 군 법무장교나 검사, 그리고 보안사령부 장교들을 움직여 답변자료를 만드는 역할을 주도할 거요. 나이도 지긋하고 경험도 풍부한 인물이요. 그 수사관이 실무는 다 알아서 할 거요. 당신은 그 수사관을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주고 그와 별개로 그 전체적인 동향(動向)을 파악해서 보고서로 쓰라는 거요. 이 조직에서는 명령을 받으면 수행하는 거요.”
 
  “알겠습니다.”
 
 
  전설적인 수사관
 
  나는 답변하면서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만든 권력 내부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수사국 책임자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이런 주의를 덧붙였다.
 
  “안전기획부 요원이 다른 기관을 장악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방법은 돈이오. 내가 충분한 특별활동비를 줄 테니까 과감히 돈을 써보시오. 다른 기관들은 그 돈에 우선 기가 질릴 거요. 그다음은 요원의 개인적 역량이오. 겸손한 인격으로 할 수도 있고 특수한 전문적 지식으로 그들을 승복시킬 수도 있겠지. 하여튼 조용한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요.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위압적인 자세는 절대 금물이오. 그 사건 당시 보안사 장교들 중에는 장군으로 승진한 사람도 있고 법무장교들도 장군이 되고 제대해서 중견 검사가 됐으니까 말이오.
 
  일단 그 답변준비팀의 형식적 대표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검찰관을 했던 정 장군이 맡아서 할 거요. 그 사람은 사건 당시 정권에 공헌(貢獻)을 한 사람이오. 지금 정권의 생각으로 이번 일을 잘 치르면 장관 자리는 곤란하지만 병무청장이나 국회의원 공천 정도를 보상으로 생각하고 있소.”
 
  수사국 책임자는 명령을 하고 난 후 60대쯤의 늙은 수사관을 소개했다. 코가 왕방울만 하고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몇 번 스쳐 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군(軍) 장교용 점퍼를 입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항상 혼자 침묵하고 있는 바위 같은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그는 안전기획부 수사관 중에서도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특무대부터 시작해서 중앙정보부의 지하 조사실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라고 했다. 조사하다가 피곤하면 그 옆의 수사관 숙직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일을 신앙같이 수행한다고 했다. 그가 일을 할 때면 집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내가 배운 건 빨갱이와 부역자들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것”
 
  그가 보고서를 쓰는 모습은 거의 수도자의 수행 수준이라고 했다. 그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치는 사무실 자신의 철(鐵) 책상 앞에 앉아 돌부처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구상하는 모습이었다. 펜을 들고 한 줄 쓰고 또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보고서에 쓸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밤새도록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나는 며칠간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의 마음이 조금은 열리는 것 같았다. 한번은 수사국 한쪽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건물 구석으로 갔다. 그는 외부에 나가 밥을 사 먹지 않았다. 커피숍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남산자락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엄 선생, 나는 6·25 때 농사짓다가 군대에 끌려갔어요. 군에 갔더니 폭탄을 안고 인민군 진지(陣地)에 올라가 거기서 죽으라고 명령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야 나라를 살리고 애국하는 거라고 배웠죠. 전쟁에서 그 많은 사람이 떼죽음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살아남았어요. 전쟁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 돌아갈 데가 없었어요. 그때 군에서 나를 성실하다고 봤는지 특무대장이 나를 데려다 하사관을 시켜줬어요. 배우지 못했으니까 장교는 될 수 없었죠. 거기서 내가 배운 건 나라를 위해서 빨갱이와 부역자들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특무대에 있을 때 김종필이 혁명을 모의한다고 해서 조사를 한 적도 있어요. 5·16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준위(准尉)로 특무대에 있었어요. 거기서는 반(反)혁명 분자를 조사했죠. 중앙정보부가 창설되니까 이번에는 나보고 중앙정보부로 가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죠. 이제 나이 60이 훌쩍 넘었는데도 쫓아내지 않고 아직도 여기 있게 해요. 나같이 배운 거 없고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준 대한민국에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그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정인숙 사건’ 조사했던 안기부 조사관
 
  “우리 역사에서 굵직한 정치 사건은 손을 안 댄 게 없으시다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걸 굵직한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여기 있으면서 윗분이 명령하신 사건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왔어요. 그렇지만 비밀을 지키다가 무덤으로 가져가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죠.”
 
  “어떤 사건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십니까? 비밀이면 말씀하시지 말고 괜찮으면 조금만 말씀해주시죠.”
 
  내가 권했다. 그는 거의 아버지 나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변호사를 하다가 들어온 30대 중반의 내가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인내하면서 기다렸다.
 
  “오래전 일이고 박 대통령도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약간 말해도 될 것 같아 한마디할게요. 정인숙 사건이 터졌을 때였어요. 한강 변에서 새벽에 젊은 여자가 총탄에 맞아 죽었는데 그 여자가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다, 아니다’ 신문에서 난리가 났었죠. 나보고 그걸 조사하라고 명령이 떨어졌어요. 나보고 먼저 미국을 갔다 오라고 하는데 앞이 막막하더군요. 영어를 ABC밖에 모르는데 왜 나보고 그걸 수사하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짐짝도 미국을 갔다 오는데 사람인 내가 미국을 갔다 오지 못할까’ 하고 결심했죠.”
 
  나는 《조선일보》 기자가 쓴 르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어느 파티 석상에서 대사(大使)를 손가락 하나로 부르던 젊은 여자가 있었다. 대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어디에서 오셨느냐’고 정중하게 묻자 그녀는 ‘청와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여자가 정인숙이었다. 정인숙이 1970년 한강 변에서 탄환에 가슴과 머리를 맞고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한국판 ‘크리스틴 킬러 사건’으로 불리며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었다. 그녀에게 권총을 쏜 것으로 알려진 오빠라는 사람이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를 불러오라고 하면서 ‘개××들 일주일만 들어가서 고생하라더니…’ 하고 소리쳤다는 사건이다. 그는 더 이상의 내막(內幕)은 얘기하지 않았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김대중, (연행돼서도) 밥을 남김없이 다 먹더라”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령을 확대, 김대중·김영삼씨를 비롯한 야당 및 재야인사들, 3共·4共 요인들을 연행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김대중도 조사하셨다면서요?”
 
  내가 방향을 돌려서 궁금한 걸 물었다. 내 기억으로는 1980년 신(新)학기가 되자 전국의 대학이 술렁거렸다. 노동조합의 설립이 붐을 이뤘고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4월에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동원탄좌에서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켜 사북읍 일대를 점령했다.
 
  이즈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했다. 5월 초부터 재야(在野)인사들과 대학생들의 정치투쟁이 시작됐고 계엄군이 전국의 대학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광주사태가 터졌다. 김대중이 구속됐다. 그때 지하실에서 김대중과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수사한 사람이 그였다.
 
  “김대중 선생도 제가 여러 날 조사를 했죠. 참, 엄 선생은 변호사고 많이 배웠으니까 하나 물어봅시다.”
 
  그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시죠, 뭡니까?”
 
내란음모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후 청주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조선DB
  “세상에선 김대중 선생이 고문을 당했다고 하는데 조사한 나는 그분을 고문한 적이 없어요. 그분을 주도적으로 조사한 건 저 한 사람이죠. 다른 수사관들은 식당에서 밥을 가져다주거나 경비(警備)를 섰을 뿐이니까. 저는 혹시라도 나중에 고문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김대중 선생과 함께 있을 때 나도 보름 동안 조금도 잠을 자지 않았어요. 같이 자지 않았는데 그걸 고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어눌하게 하지만 그는 독한 사람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김대중 선생이 광주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더라고요. 전남대에서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이 모두 한두 번씩은 서울에 와서 김대중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죠. 그 만남이 광주사태와 연결이 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시위가 폭동으로 번진 것인지 저는 그게 알고 싶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광주의 상황을 보도한 신문을 김대중 선생께 말없이 가져다드렸어요. 그걸 본 김대중 선생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져다준 식판 위의 밥을 한 알도 남김없이 다 먹더라고요.
 
  그 다음 날인가 저는 다시 신문을 김대중 선생에게 가져다드렸죠.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선포된 내용이었어요. 군부(軍部)가 모든 권한을 장악하고 정상적인 대통령 선거가 불가능해지는 순간이었죠. 김대중 선생은 그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처럼 절망하더라고요. 그 반응을 보고 나는 그분을 읽었죠.”
 
  그의 말 행간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고문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도 김대중과 똑같이 잠을 안 잤는데 그게 무슨 고문이냐’는 논리였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그의 부하가 되는 순간 지옥이라고 했다. 평생 일에 미친 사람이라 집에 갈 줄을 몰랐다. 일이 들어오면 그게 끝날 때까지 밤과 낮이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그의 부하 수사관들은 그와 같이 근무하다가 견디지 못한 채 나가떨어지고, 심지어 병이 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물라면 무는 개였으니까”
 
  나는 평생 그의 일터였다는 안기부 수사국 지하실이 궁금했다. 먼저 그곳에서 조사를 받았던 한 사람의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제가 갇혀 있던 곳이 지하 몇 층인지도 몰라요. 작은 방 천장에 알전구가 켜져 있었고 벽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점점이 구멍이 찍힌 흰색 방음판이 붙어 있었어요. 그리고 방 가운데 칸막이를 한 철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모서리는 고무가 붙어 있었죠. 머리를 박는 자해(自害) 행위를 막기 위한 것 같았어요. 구석에는 군용(軍用) 야전침대가 있고 그 옆에 변기가 있어요.
 
  처음 그 방에 들어가니까 옷을 전부 벗고 거기서 주는 군복을 입으라고 했어요. 조사관이 볼펜과 종이를 가지고 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모두 쓰라고 했어요. 시키는 대로 했죠. 가져다주는 밥을 먹고 쓰고, 또다시 밥을 먹고 쓰고 했어요. 다 썼다고 하면 조사관이 와서 보고 부분 부분을 지적하면서 더 자세하게 보충하라고 해요. 그들이 알고 싶은 부분을 더 세밀하게 쓰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죠.
 
  3주쯤 되니까 내가 쓴 양이 제법 많아졌어요. 한데 수사관이 내가 쓴 글을 읽고 현지(現地)에 가서 확인을 했는지, 지명, 표현 등이 틀렸다며 잘못된 걸 다시 고치라고 하는 겁니다. 시키는 대로 했죠. 그 원고들을 다시 쓰라고 하고, 다시 수정해서 쓰라고 하고 아마 100번은 같은 내용을 썼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거기 쓴 내용이 맞는 건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맞는 건지 나 자신이 먼저 헷갈리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인간의 머릿속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폭행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또 다른 고참 수사관에게 과거 있었던 경험을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거리낌 없이 이렇게 말했다.
 
  “간첩은 잡은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면도 많았어요. 솔직히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상부(上府)의 명령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끌고 와 혼을 내기도 하고 반(反)정부적 성향의 사람들을 간첩단으로 만든 적도 있죠. 우리는 물라면 무는 개였으니까. 그래도 더러는 미꾸라지같이 법망(法網)을 빠져나가는 거물(巨物) 사기꾼들을 데려다가 손을 본 적도 있죠. 그건 그래도 사회정의를 위한다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 경우를 말씀드릴까요? 정치 쪽은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 있으니까 얘기하기가 좀 그렇고요.”
 
  “해주시죠.”
 
 
 
“(안기부에) 잡혀 오면 비굴해져… 자존심 지키는 사람 몇 안 돼”

 
  내가 그의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한번은 상부에서 잡아다가 혼을 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의 부장님이 롯데호텔에서 그자와 같이 식사를 했는데 사기꾼 같으니까 조사해보고 나쁜 놈이면 혼내주고 경찰에 넘기라는 지시였죠.”
 
  “어떤 인물이었는데요?”
 
  “저희가 먼저 전과(前科)를 파악해보니까 사기 전과가 많았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권력자를 팔고 사기 치는 놈이었습니다. 교묘하게 매번 법망을 피해 나갔더라고요. 변호사를 동원하고 아는 연줄을 통해 실형(實刑)을 면한 일종의 선수더라고요. 그러다가 저의 부장님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건방을 떤 게 그놈한테는 화근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런 놈들은 언론에 아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손을 봐야 했습니다. 우리 요원들이 그놈 사무실이나 아파트 주위에서 미행·감시하면서 동선(動線)을 파악했습니다. 상당한 시간을 미행·감시에 투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놈의 고정적인 생활리듬을 알아야 어떤 시각에 어디에서 납치를 할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보통은 새벽이 가장 좋죠. 그놈은 기사가 외부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태우고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새벽에 그놈이 혼자 집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 순간 납치했습니다.”
 
  “납치해다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 경우는 혼을 내는 목적입니다. 수사관들이 군(軍) 장교용 점퍼를 입고 서로 부르는 호칭도 ‘김 중령’ ‘박 대위’ 하면서 공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거죠. 사기범들은 적당히 봐주면 나가서 자기가 남산 지하실을 다녀온 투사(鬪士)로 떠벌립니다. 별별 놈이 다 투사가 되는 세상입니다. 여기 잡혀 오면 대개가 다 비굴해집니다. 무릎을 꿇고 처절하게 빕니다.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돼요. 우리도 속으로 그런 분은 대단하게 보죠. 그런데 비겁한 놈들이 나가면 민주화 투사로 목청을 높인다니까요. 그러다가도 대낮의 거리에서 우리와 눈길을 마주치면 쥐구멍을 찾아요.”
 
  “여기 지하실에 와서도 당당하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내가 물었다.
 
  “인간이 당당하려면 약점이 없어야 해요. 여자 문제나 금전(金錢)에서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군법회의지만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 것 같았다. 당당하게 살려면 그들에게 목줄을 매이지 말아야 하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나는 권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을 목격하는 입장이 됐다. 당시 군법회의에서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법무감실을 들렀는데, 그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준위가 나를 보면서 분노한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군법회의지만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정말 이럴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되물었다.
 
  “법정 뒤쪽에 따로 모니터실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모든 재판을 지휘하고 있어요. 군법회의 법대(法臺) 위에 있는 심판관들은 완전히 허수아비예요. 모니터실에서 그때그때 명령을 쪽지에 적어 저에게 주면 저는 그걸 법대 위에 있는 허수아비들에게 전달했어요. 위에서는 저보고 김재규의 최후진술을 녹음한 테이프를 모두 없애라고 해요. 저는 그 테이프를 보관할 겁니다. 나중까지요. 겉으로는 없앴다고 했지만 압수물 창고에 그대로 두고 있어요.”
 
  그 무렵 김대중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된 김동길 교수나 이문영 교수는 대학 시절 존경하던 인물이었다. 내 또래인 이해찬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구속되어 있는 지옥 같은 육군교도소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곳에서 이겨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당시 법무감실에서 선배 정 대위를 만났다. 작달막하고 이마가 넓은 그는 제대 후 판사를 하다가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문영 교수에게 조서를 받으려고 했더니 나보고 전두환의 졸개라고 욕을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야. 내가 왜 전두환의 졸개야? 군대에 들어와 의무기간을 채우고 있는 건데 자기만 민주주의의 투사로 알고 나는 완전히 ‘악(惡)의 화신’처럼 보고 있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야? 법정에서도 잡혀 온 사람들이 검찰관인 나를 인간쓰레기 보듯이 보고 있어. 나보고 하는 말이 법대 위의 심판관들이 마이크를 쓰고 있으니까 자기한테도 마이크를 달라고 하더라고. 누군들 주고 싶지 않나 뭐.”
 
  고교 선배인 또 다른 검찰 장교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김대중이란 사람은 정말 놀랍고 대단해. 조건이 그렇게 열악한데도 인내하면서 철저히 순응하고 있어. 식사 때 주는 밥도 한 알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내가 조서(調書)를 작성하고 그걸 보여주면 차근차근 확인하면서 오·탈자까지 다 고쳐주는 거야. 그리고 조서의 마지막에 김대중이 직접 쓴 최후진술 부분이 나오는데 한번 직접 봐. 볼 만해.”
 
  나는 선배가 보여주는 기록 속에서 김대중의 최후진술 부분을 보았다. 그는 ‘10년 아니면 20년이 지나 이 땅에 민주화가 오면 자신에 대한 조사는 재평가될 것’이라고 예언같이 기록해놓고 있었다. 고교 선배는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질 것 같은데 진짜 죽일지도 몰라.”
 
  그로부터 8년 후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야당 총재가 된 김대중은 자신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고,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했던 전두환은 백담사로 귀양을 갔다. 입장이 바뀐 청문회 증인들의 입장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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