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개혁2.0’은 국민에게 신뢰받기 위한 우리 군의 몸부림”
⊙ “남북군사합의, 군사적 신뢰구축 통해 DMZ나 NLL 긴장완화 추구”
⊙ 창설 27년 만에 기무사 해체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출범
⊙ 한국형 항모는 3만t급… F-35B 함재기 도입 추진
⊙ 노무현 정부 시절, 원잠 건조 위한 ‘362사업단’ 단장 역임
⊙ “남북군사합의, 군사적 신뢰구축 통해 DMZ나 NLL 긴장완화 추구”
⊙ 창설 27년 만에 기무사 해체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출범
⊙ 한국형 항모는 3만t급… F-35B 함재기 도입 추진
⊙ 노무현 정부 시절, 원잠 건조 위한 ‘362사업단’ 단장 역임
- 사진=조준우
“‘국방개혁2.0’은 최단 시간 내 최소의 희생으로 전승(全勝)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입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개념을 표방한 ‘국방개혁2020’을 ‘국방개혁1.0’이라고 한다면, ‘국방개혁2.0’은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라는 개념이죠.”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만난 송영무(宋永武·72) 전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 추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방개혁2.0은 옛날처럼 완전군장하고 행군하는 구식군대로 되돌릴 수 없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군 구조를 재편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방운영, 병영문화, 방위사업 등을 혁신해나가자는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신뢰받기 위한 우리 군의 몸부림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송 장관은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현 정부의 안보정책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그는 2007년 해군참모총장 시절의 ‘해군개혁계획’,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 등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개혁2.0’을 기획했다.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를 진두지휘했고, 국군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지난 9월 8일 송 전 장관을 만났을 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과 관련해 국방부가 관여했는지 여부로 세간은 떠들썩했다.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던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 무렵, 당대표실 차원에서 국방부에 추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평창 동계올림픽 통역병 선발과 관련해 ‘청탁성 연락’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송 전 장관에게 ‘보고받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송 전 장관은 “추 장관 측으로부터 연락 온 사실을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며 “국방부 관계자가 어제(9월 6일) 전화를 걸어 ‘당(더불어민주당)에서 파견된 정책보좌관이 평창 올림픽 통역병 선발에 관여하려 하자 김영란법에 저촉된다고 주의를 주고 차단했다’고 해서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어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장관실이 개입했다’는 기사가 나가 당혹스럽다”며 “만일 국방부가 청탁에 개입했다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했다.
사드 임시배치,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
― 예비역 단체들은 ‘국방개혁2.0’이 ‘당면위협과 미래위협을 무시한 일방적·선제적 국방역량 축소’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비역 단체 구성원들은 6·25의 쓰라린 경험과 종전 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간첩 침투 등 비정규전(戰) 경험으로 군 생활을 밤잠 못 주무시고 야전침대에서 지새운 분들입니다.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이죠. 하지만 이제 그러한 작전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에 대비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려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소련 붕괴 후 미 해군의 세계전략을 제시하는 미 7함대 장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못 보낸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조 말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 장관 취임 직후, 일반환경영향평가를 받기 전이라도 사드(THAAD)를 임시로라도 배치해야 한다고 대통령께 건의하셨다죠.
“아마 다른 국방장관이라도 북한의 탄도탄 발사, 핵 실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건의했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독자적 대(對)유도탄 방어체계(KAMD)를 구축하고자 사드 배치를 유보했었는데, 갑자기 도입·배치돼 국론이 분열된 시기였습니다. 대통령께 정부의 단호한 안보적 입장을 천명해 국익(國益)을 극대화하고, 북한과 중국에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라는 건의를 했습니다.”
— 현재 우리 군은 병력 감축에 따라 군단과 사단을 대폭 통폐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의 기계화 군단으로 손꼽혔던 제7기동군단의 핵심 전력인 제20기계화보병사단을 해체한 것은 ‘국방개혁2.0’의 취지와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저도 안보 전문가나 일부 유튜버들의 의견을 보았습니다만, 해체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군 편제란 전투 국면, 지형 여건, 장비 수준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한반도 지형에 가장 적합한 편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해당 지휘관들이 신속한 기동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어요. 20기보사 재편으로 7기동군단 예하에 3개 기계화사단을 완편한 것처럼, 실전적 기동군단, 기계화사단, 기계화여단 등 완편된 부대로 재편하려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재편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개혁2020’ 때부터 검토돼 10년 넘게 이어져오면서 최정예 기동군단을 완성했고, 그 결과 전투력은 1.5~2배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전역 장병, 국가에 대한 고마움 느끼도록 할 것
—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병사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100만원 가까이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6·25 직후엔 많은 형제 중에서 군에 입대했는데, 2000년대 이후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은 60~70%가 독자(獨子)예요. 그리고 60% 이상이 아파트에서 개인만의 공간을 가지던 친구들입니다. ‘국방개혁2.0’에서 설계한 병영문화 개혁은 이병부터 대장까지 모두 동일한 인격체로 보자는 겁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군 생활을 통해 국가(country)·조직(organization)·리더십(leadership)을 느끼듯, 군대가 제2의 교육기관으로서 전역 장병이 국가에 대한 고마움과 군생활의 소중한 추억을 갖고 전역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병사들에게 훈련-경계-휴식이라는 군인 본연의 임무에 전념케 할 것입니다. 병사 월급을 올려주니까 90% 이상의 병사들이 적금에 가입해 전역 후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서 특히 ‘육사 출신 홀대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해군참모총장 시절 ROTC와 해군특교대(OCS) 출신 장교들을 대령이나 제독으로 진급시키려고 보니 대상자가 없었어요. ‘해군사관학교의 해군이 되면 안 된다. 국민의 해군이 되어야 한다’고 정책회의를 한 결과, 이제는 해사 출신이 아닌 다른 출신 장교들도 제독으로 진급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 제독의 비중도 해사, ROTC, OCS들이 30% 정도씩 균등하게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 아닙니까? 다행스럽게 우리 육군은 육사, 3사, ROTC, 학사장교 출신 장교들이 골고루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교들 모두가 출신 구분 없이 열심히 장교 생활을 한다면 전투력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파묘 문제, 국민적 합의 거쳐야
— 고(故) 백선엽(白善燁) 예비역 육군대장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여당이 ‘친일 인사로 분류된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치되더라도 파묘(破墓)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요.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시절, 백선엽 장군과 전작권 환수 문제라든가 한국군 현대화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평양 수복 때 잠도 한숨 못 잤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는 말씀이 기억에 납니다. 그분이 살아온 과거의 인생사는 국가의 어려웠던 역사와 중첩되고 있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창군(創軍) 시기 국군에 이바지한 장군 중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백선엽 장군 한 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이나 의사결정은 법으로 결정돼야 집행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국민의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 파묘 문제는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 제2함대 제2전투전단장 때, 제1연평해전에 참가하셨지요.
“준장 진급 전, 만 3년 넘게 합참 해상작전과장 보직을 수행했어요. 당시 NLL(북방한계선) 근해 우발충돌 상황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매년 꽃게철에 발생하고 있더군요. 1999년 1월 7일, 제2전투전단장(준장)으로 부임하면서 꽃게철이 시작되는 5월 이전에 완벽한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휴일도 없이 교육훈련과 사격훈련을 시켰습니다. 1999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9박 10일간 충돌하면서 NLL을 지켰습니다. 6·25 이후 정규군 간 최초 전투에서 승리한 겁니다.”
송영무 소령은 1980년 12월 초 남해 욕지도 근해에서 해안에 침투했다 빠져나오는 간첩선을 탐색해 포술장으로 전투를 벌였다. 송 소령이 탄 구축함 전북함(916)과 간첩선의 거리는 순식간에 1만2000야드에서 1800야드까지 가까워졌다. 5인치 주포로는 조명탄을, 20mm 부포로는 격파사격을 실시했다. 이때 합동작전을 하던 백구함에서 76mm 함포로 간첩선을 명중·격침시켰다.
송 전 장관은 “간첩선에서 쏜 RPG-7 로켓포 첫발이 우리 함정 우현 함수 방향 15야드 정도에 떨어졌는데 꼭 내 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며 “또 다른 한 발은 우리 함정 제1연돌과 제2연돌 사이로 통과해서 좌현 현측에 떨어졌는데, 이름(永武)처럼 무운이 대단히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76mm 함포가 적함을 침몰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이때의 전훈(戰訓)을 바탕으로 훗날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PKG)에 76mm 함포를 장착했다”고 했다.
송 전 장관은 “참모총장 때 1999년 벌어진 ‘연평해전’을 ‘제1연평해전’이라고 다시 명명했다”며 “2002년 서해교전도 적의 ‘NLL 무력화’라는 최초의 전쟁 도발 의지가 관철되지 못하고 엄청난 사상자를 냈기 때문에 엄연히 우리가 승리한 해전이라는 의미에서 ‘제2연평해전’이라고 윤영하함 진수식에서 명명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침몰’한 것으로 보도된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사실 침몰하지 않았었다”며 “호위함 충남함(퇴역)이 파공(破空) 부위를 막지 않고 예인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예인작전의 실패일 뿐”이라고 했다.
“총장님이 못 하시면 영원히 못 한다”
— 제주해군기지 착공, 해군작전사령부 부산 이전, 제3함대사령부 목포 이전을 재임 중 하셨지요.
“에피소드가 무척 많아요. 제주해군기지는 해군에서 수년간 검토했는데 확정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제가 ‘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며 제주도지사와 관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습니다. 그 결과, 제주도에서 법적 절차대로 유치 신청을 했어요. 해군은 이를 근거로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확정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공사를 착공한 겁니다. 해군작전사 부산 이전, 3함대 목포 이전은 역대 선배 총장과 작전사령관 중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으나, 해군 후배들은 ‘총장님이 못하면 영원히 못할 터이니 내친김에 욕을 더 먹으시라’고 건의해 과감하게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은 겁니다.”
— 미군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미군 인력의 운용제한과 훈련 규모 축소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전작권 전환 문제는 제가 2006년 합참 전략본부장 시절 미 국방부에 가서 SCM(한미안보협의회의) 멤버로 참가할 때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죠. 2020년 한국의 위상은 세계에서 중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군사력 6위의 국가입니다. ‘훈련이 부족하다’ ‘절차를 검증 못 했다’ 하는 사안들은 전작권 전환의 사전 전제조건이 아니고,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한 확인사항입니다. 이런 것들은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때처럼, 연합권한위임사항(CODA)같이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3단계 완전임무능력(FMC)에 대한 후속절차 합의사항을 만들어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환수하면 전혀 문제 없을 것입니다.”
—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 협상이 8개월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정말로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양국이 명분, 즉 사용처에 대해서 합의해야 하는데, 이면에서는 한국의 명분이 훨씬 타당성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 전체 안보에 중요한 만큼, 미국이 양보해야 하는 입장은 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미동맹 관계에서 진심으로 대화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 미국은 한일(韓日)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소미아와 관련해, 조약체결이나 해제는 주권사안이기 때문에 국익에 따라 정책을 결정·조치하면 되기에 너무 부풀려 이슈화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새로운 대(對)중국 전략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미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동북아 지역의 핵심은 한국과 일본이고 남아시아의 핵심은 호주와 인도입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간 군사적 협력이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한일 간의 군사협력, 즉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해지면 북·중·러의 군사협력이 긴밀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짙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한·미·일에 부가해 캐나다, 호주, 필리핀 등 다국적 국가 간 연합훈련이나 다자간 군사협력 체계를 유지하자고 미국과 일본 측에 역(逆)제안해 양해를 받아냈습니다.”
송영무 전 장관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각각 별도로 군사동맹이 되지만 한·미·일 군사동맹은 실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에게 이해시켰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대중(對中) 견제망 구축 차원에서 한국에 ‘쿼드 플러스(quad plus)’ 동참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나 군사력 위상으로 볼 때 미국·일본·인도·호주 이외에 뉴질랜드·베트남 등과 함께 쿼드 플러스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 차원 더 높은 국가 위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F-35 도입도 北에 물어봐야 하나?
—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가 전혀 없는데도 ‘9·19남북군사분야합의서’를 맺은 것은 우리의 안보태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군사적 안정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9·19군사합의를 체결한 날, 전 세계가 이 합의를 주목했습니다. 남북한 한민족이 평화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냉전시대의 극단적 대치 상태를 상상해 ‘만에 하나 허점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대화보다는 언쟁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죠. 양측 간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첫째, 신뢰구축, 둘째 군비검증, 셋째 군비통제 순으로 진행됩니다. 이 합의는 군비통제를 위한 합의가 아니고 상호 간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구축을 위해 첫걸음이라도 걸어가자는 합의라는 점을 이해해주면 그런 오해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 군사분야 합의서 제1조 1항을 합의대로 실천한다면, 한미연합방위 체제는 붕괴되고 한국의 군사역량은 사실상 훈련을 하지 않는 오합지졸 군대가 될 것 같습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연습하지 않고 링에 오르는 복서와 같지 않을까요.
“군부대와 장비가 있으면 남한이나 북한 모두 당연히 훈련을 실전같이 실시해 전투역량을 높이는 것은 군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입니다. 9·19군사합의가 ‘백전백패, 오합지졸을 만든다’는 식의 과도한 표현은 너무 지나친 폄훼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절대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특히 남북군사합의 제1조 1항에 명시된 ‘무력 증강 금지’는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같은 전략무기를 도입할 때마다 북한에 물어봐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와 ‘무력증강 금지’라는 글귀를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1조 1항의 마지막 부분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거쳐 의견을 조율하도록 해놓았죠. 또한 ‘무력증강 금지’라는 것은 F-35를 예로 들었는데, F-35 등 우주전력과 경항모와 원잠 등 해양전력 같은 중요한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거쳐 왜 증강하는지 이해시켜 서로 문제가 없게 하겠습니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DMZ(비무장지대)나 NLL(북방한계선) 대치 상황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상호 이해시키는 절차와 체계를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 보람
— 국군기무사령부를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2018년 9월 1일 출범했습니다. 기무사는 1991년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단 지 2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요.
“저는 1973년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때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한 기억을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초급장교 시절 각 군 방첩대가 보안사령부로, 보안사령부가 기무사령부로 변화되는 시대를 현역으로서 보아왔죠. 장관 취임 후 군 검찰단을 통해 기무사 댓글 조직(스파르타)을 수사하다 보니 세월호 사건 때 민간인 사찰, 탄핵 정국 때 계엄문건 작성 등 중차대한 사건들을 보고 받았습니다. 군의 정치 개입, 민간인 사찰은 필연코 단절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는 장교 동향 파악을 지속적으로 수집·축적해놓았다가 진급심사 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기무사 개혁안을 작성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결과, ‘해편(해체와 재편)하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오로지 방첩·보안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조직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 장관 재임 중 세운 전력증강 계획 가운데 가시화된 것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국방개혁2.0은 현대전에 맞게 신속하게 기동하도록 기계화된 장비에 의한 전투 효율화를 구상했습니다. 지상전력은 기계화 전력, 항공 전력, 유도탄 전력, UAV(무인기) 전력 등을 주요 증강 요구 전력으로 강조했고요. 오죽했으면 지상군은 보병·포병·기갑·공병·통신의 5개 병과를 보병·항공·유도·포병·기갑·공병·통신의 7개 전투병과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해상・공중 전력은 별개의 해군과 공군만을 위한 전력이 아니라 지상군의 안전과 신속한 기동을 위한 화력지원 위주의 전력을 보강토록, 중기계획에 많이 반영이 되도록 했습니다. 경항모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북한과 동북아 안보정세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적·전략적 전력으로서 한 세대 이후를 대비하는 측면에서 고려했습니다.”
— 특히 세종대왕함, 대형수송함 독도함, 고속유도탄함 윤영하함을 진수시키셨지요.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함과 독도함 등 대형수송함, 그리고 고속유도탄함 등 모두 조함단장 시절 설계하고 기획관리참모부장 시절 예산 배정했더니, 참모총장 때 진수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합참 시험평가부장,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차장, 해군본부 조함단장과 기획관리참모부장, 합참 전략본부장을 지낸 경력이 육·해·공군 전력건설 방향을 이해하게 해서 장관 시절 의사결정할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독도함 설계도를 바꾼 송영무 준장
—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제가 《월간조선》(2017년 5월호)에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같은 특정한 전력 소요는 없었습니다. 대선 공약에 개별 무기체계를 언급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 2018년 5월 대형수송함 마라도함 진수식장에서 항공모함 건조를 언급하셨습니다. 애초 독도함 때 경항모 건조계획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독도급 대형수송함 1번함 독도함을 설계할 때, 1만t 이상으로 건조하면 주변국 시선이 집중된다고 해서 9800t 정도로 기본설계를 했었습니다. 2000년 후반, 제가 준장 시절인데요. 기본설계검토(design review) 위원장 자격으로 조선소에 가서 회의를 했어요. 도저히 설계한 대로 건조하면 쓸 만한 군함이 안 나오겠더라고요. 해군본부에 올라와 이수용(李秀勇) 총장에게 보고해서 1만4500t급으로 재설계를 했습니다. 그 결과, 독도함을 헬기 등 항공전력과 수륙양용장갑차 등 상륙전력을 동시에 탑재해 수송할 수 있는 상륙작전의 기함(旗艦)으로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직후에 자연스럽게 항모 건조 이야기도 흘러나왔지요.”
—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서 한국형 항모를 3만t급으로 건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왕 건조하려면 정규 항모로 가야 한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의 함정 건조기술은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입니다. 탑재 항공기도 예전의 전투기와 능력 면에서 몇 배나 더 우수한 전투기를 탑재하기 때문에 과거의 중형 항모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건조하려는 항모는 3만t입니다. 현대차에서 포니-엑셀-쏘나타-그랜저-에쿠스 순으로 자동차가 진화해나오듯, 미국도 최초에는 석탄운반선에 비행갑판을 씌운 항모를 건조해 운용능력을 키워가면서 10만t까지 간 겁니다. 맡겨주고 기다려주시면 국민 여러분에게 늠름한 항모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해군력 강해야 군사외교 뒷받침
송 전 장관은 1996년 대령 시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러시아 함대 창설 3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항구를 조망하는 독수리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미국은 7함대 기함 블루릿지호(1만8000t급)를 비롯해 중국 북해함대의 기함, 일본 해상자위대 기함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우리 해군은 2000t급 울산급 호위함 2척을 파티를 위해 묶어놓았어요. 국력 차이와 함께 해군력을 키워야 군사외교(軍事外交)도 가능하다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노무현 정부 시절 해군본부 조함단장(소장)을 지내셨습니다. 조함단에서 ‘362사업’으로 원잠 건조를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362사업을 아시네요. 사실은 조함단장 때가 아니고 기획관리참모부장을 할 때입니다. 비닉사업이어서 2003년 6월 2일 362사업으로 명명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제가 362사업 단장을 했고요. 그때 잠수함 장교,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 소형 원자로 연구원 등이 위원이 되어 약 1년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예산 문제, 기술 문제, 독자적 잠수함 건조 문제 등을 종합 판단한 결과, 시기상조로 판단해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해군은 점진적 잠수함 증강계획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ADD는 잠수함 설계기술을 발전시키며, 원자로 연구원들은 원자로 소형화를 각각 발전시키기로 했습니다.”
— 현재 우리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2007년 참모총장 시절, 원잠을 건조하려면 완전한 설계기능을 갖고, 장비도 국산화해야 한다고 지독하게 독려했습니다. 2018년 9월 14일 한국 기술로 첫 독자개발한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진수식 때 문 대통령을 모시고 참석했습니다. 동시에 원잠을 건조하기 위해 분야별로 능력을 확인해보니 건조가 가능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기에 건조계획을 구체화해 계획에 반영시켰습니다. 이제는 원잠 건조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셔도 되리라 믿습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후손인 송영무 전 장관의 고조부는 송병선(宋秉璿) 선생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 황제를 알현해 을사오적의 처형, 을사조약의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바친 뒤 고향에서 자결한 우국지사다. 송병선의 아우 송병순(宋秉珣)도 한일합방에 반대해 순국했다.
송 전 장관은 “우암께서 사약(賜藥)을 받으시며 ‘선비는 직(直)에 충실해야 하는데, 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았다”며 “내 나이와 같은 국군 창설 72주년을 맞아 한 세기 후에는 우리 군이 ‘선진 민주 국군’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이러한 확신을 갖고 대통령에게 ‘국방개혁2.0’을 직언했다”고 말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만난 송영무(宋永武·72) 전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 추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방개혁2.0은 옛날처럼 완전군장하고 행군하는 구식군대로 되돌릴 수 없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군 구조를 재편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방운영, 병영문화, 방위사업 등을 혁신해나가자는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신뢰받기 위한 우리 군의 몸부림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송 장관은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해 현 정부의 안보정책을 디자인한 인물이다. 그는 2007년 해군참모총장 시절의 ‘해군개혁계획’,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 등을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개혁2.0’을 기획했다.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를 진두지휘했고, 국군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지난 9월 8일 송 전 장관을 만났을 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과 관련해 국방부가 관여했는지 여부로 세간은 떠들썩했다.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던 2017년 말에서 2018년 초 무렵, 당대표실 차원에서 국방부에 추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평창 동계올림픽 통역병 선발과 관련해 ‘청탁성 연락’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송 전 장관에게 ‘보고받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송 전 장관은 “추 장관 측으로부터 연락 온 사실을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며 “국방부 관계자가 어제(9월 6일) 전화를 걸어 ‘당(더불어민주당)에서 파견된 정책보좌관이 평창 올림픽 통역병 선발에 관여하려 하자 김영란법에 저촉된다고 주의를 주고 차단했다’고 해서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어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장관실이 개입했다’는 기사가 나가 당혹스럽다”며 “만일 국방부가 청탁에 개입했다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했다.
사드 임시배치,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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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018년 7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국방개혁2.0 보고대회에 참석하여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예비역 단체 구성원들은 6·25의 쓰라린 경험과 종전 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간첩 침투 등 비정규전(戰) 경험으로 군 생활을 밤잠 못 주무시고 야전침대에서 지새운 분들입니다.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이죠. 하지만 이제 그러한 작전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에 대비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염려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소련 붕괴 후 미 해군의 세계전략을 제시하는 미 7함대 장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못 보낸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조 말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 장관 취임 직후, 일반환경영향평가를 받기 전이라도 사드(THAAD)를 임시로라도 배치해야 한다고 대통령께 건의하셨다죠.
“아마 다른 국방장관이라도 북한의 탄도탄 발사, 핵 실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건의했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독자적 대(對)유도탄 방어체계(KAMD)를 구축하고자 사드 배치를 유보했었는데, 갑자기 도입·배치돼 국론이 분열된 시기였습니다. 대통령께 정부의 단호한 안보적 입장을 천명해 국익(國益)을 극대화하고, 북한과 중국에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라는 건의를 했습니다.”
— 현재 우리 군은 병력 감축에 따라 군단과 사단을 대폭 통폐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의 기계화 군단으로 손꼽혔던 제7기동군단의 핵심 전력인 제20기계화보병사단을 해체한 것은 ‘국방개혁2.0’의 취지와도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저도 안보 전문가나 일부 유튜버들의 의견을 보았습니다만, 해체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군 편제란 전투 국면, 지형 여건, 장비 수준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한반도 지형에 가장 적합한 편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해당 지휘관들이 신속한 기동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어요. 20기보사 재편으로 7기동군단 예하에 3개 기계화사단을 완편한 것처럼, 실전적 기동군단, 기계화사단, 기계화여단 등 완편된 부대로 재편하려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재편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개혁2020’ 때부터 검토돼 10년 넘게 이어져오면서 최정예 기동군단을 완성했고, 그 결과 전투력은 1.5~2배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전역 장병, 국가에 대한 고마움 느끼도록 할 것
—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병사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100만원 가까이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6·25 직후엔 많은 형제 중에서 군에 입대했는데, 2000년대 이후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은 60~70%가 독자(獨子)예요. 그리고 60% 이상이 아파트에서 개인만의 공간을 가지던 친구들입니다. ‘국방개혁2.0’에서 설계한 병영문화 개혁은 이병부터 대장까지 모두 동일한 인격체로 보자는 겁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군 생활을 통해 국가(country)·조직(organization)·리더십(leadership)을 느끼듯, 군대가 제2의 교육기관으로서 전역 장병이 국가에 대한 고마움과 군생활의 소중한 추억을 갖고 전역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병사들에게 훈련-경계-휴식이라는 군인 본연의 임무에 전념케 할 것입니다. 병사 월급을 올려주니까 90% 이상의 병사들이 적금에 가입해 전역 후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서 특히 ‘육사 출신 홀대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해군참모총장 시절 ROTC와 해군특교대(OCS) 출신 장교들을 대령이나 제독으로 진급시키려고 보니 대상자가 없었어요. ‘해군사관학교의 해군이 되면 안 된다. 국민의 해군이 되어야 한다’고 정책회의를 한 결과, 이제는 해사 출신이 아닌 다른 출신 장교들도 제독으로 진급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 제독의 비중도 해사, ROTC, OCS들이 30% 정도씩 균등하게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 아닙니까? 다행스럽게 우리 육군은 육사, 3사, ROTC, 학사장교 출신 장교들이 골고루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교들 모두가 출신 구분 없이 열심히 장교 생활을 한다면 전투력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파묘 문제, 국민적 합의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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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발생한 제1차 연평해전 시 남북 함정 간 교전 장면. |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시절, 백선엽 장군과 전작권 환수 문제라든가 한국군 현대화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평양 수복 때 잠도 한숨 못 잤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는 말씀이 기억에 납니다. 그분이 살아온 과거의 인생사는 국가의 어려웠던 역사와 중첩되고 있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창군(創軍) 시기 국군에 이바지한 장군 중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백선엽 장군 한 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이나 의사결정은 법으로 결정돼야 집행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국민의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 파묘 문제는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 제2함대 제2전투전단장 때, 제1연평해전에 참가하셨지요.
“준장 진급 전, 만 3년 넘게 합참 해상작전과장 보직을 수행했어요. 당시 NLL(북방한계선) 근해 우발충돌 상황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매년 꽃게철에 발생하고 있더군요. 1999년 1월 7일, 제2전투전단장(준장)으로 부임하면서 꽃게철이 시작되는 5월 이전에 완벽한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휴일도 없이 교육훈련과 사격훈련을 시켰습니다. 1999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9박 10일간 충돌하면서 NLL을 지켰습니다. 6·25 이후 정규군 간 최초 전투에서 승리한 겁니다.”
송영무 소령은 1980년 12월 초 남해 욕지도 근해에서 해안에 침투했다 빠져나오는 간첩선을 탐색해 포술장으로 전투를 벌였다. 송 소령이 탄 구축함 전북함(916)과 간첩선의 거리는 순식간에 1만2000야드에서 1800야드까지 가까워졌다. 5인치 주포로는 조명탄을, 20mm 부포로는 격파사격을 실시했다. 이때 합동작전을 하던 백구함에서 76mm 함포로 간첩선을 명중·격침시켰다.
송 전 장관은 “간첩선에서 쏜 RPG-7 로켓포 첫발이 우리 함정 우현 함수 방향 15야드 정도에 떨어졌는데 꼭 내 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며 “또 다른 한 발은 우리 함정 제1연돌과 제2연돌 사이로 통과해서 좌현 현측에 떨어졌는데, 이름(永武)처럼 무운이 대단히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76mm 함포가 적함을 침몰시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이때의 전훈(戰訓)을 바탕으로 훗날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PKG)에 76mm 함포를 장착했다”고 했다.
송 전 장관은 “참모총장 때 1999년 벌어진 ‘연평해전’을 ‘제1연평해전’이라고 다시 명명했다”며 “2002년 서해교전도 적의 ‘NLL 무력화’라는 최초의 전쟁 도발 의지가 관철되지 못하고 엄청난 사상자를 냈기 때문에 엄연히 우리가 승리한 해전이라는 의미에서 ‘제2연평해전’이라고 윤영하함 진수식에서 명명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침몰’한 것으로 보도된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사실 침몰하지 않았었다”며 “호위함 충남함(퇴역)이 파공(破空) 부위를 막지 않고 예인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예인작전의 실패일 뿐”이라고 했다.
— 제주해군기지 착공, 해군작전사령부 부산 이전, 제3함대사령부 목포 이전을 재임 중 하셨지요.
“에피소드가 무척 많아요. 제주해군기지는 해군에서 수년간 검토했는데 확정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제가 ‘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며 제주도지사와 관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습니다. 그 결과, 제주도에서 법적 절차대로 유치 신청을 했어요. 해군은 이를 근거로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확정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공사를 착공한 겁니다. 해군작전사 부산 이전, 3함대 목포 이전은 역대 선배 총장과 작전사령관 중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으나, 해군 후배들은 ‘총장님이 못하면 영원히 못할 터이니 내친김에 욕을 더 먹으시라’고 건의해 과감하게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은 겁니다.”
— 미군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미군 인력의 운용제한과 훈련 규모 축소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전작권 전환 문제는 제가 2006년 합참 전략본부장 시절 미 국방부에 가서 SCM(한미안보협의회의) 멤버로 참가할 때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죠. 2020년 한국의 위상은 세계에서 중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군사력 6위의 국가입니다. ‘훈련이 부족하다’ ‘절차를 검증 못 했다’ 하는 사안들은 전작권 전환의 사전 전제조건이 아니고,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한 확인사항입니다. 이런 것들은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때처럼, 연합권한위임사항(CODA)같이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3단계 완전임무능력(FMC)에 대한 후속절차 합의사항을 만들어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환수하면 전혀 문제 없을 것입니다.”
—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 협상이 8개월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정말로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양국이 명분, 즉 사용처에 대해서 합의해야 하는데, 이면에서는 한국의 명분이 훨씬 타당성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고 동북아 전체 안보에 중요한 만큼, 미국이 양보해야 하는 입장은 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미동맹 관계에서 진심으로 대화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 미국은 한일(韓日)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소미아와 관련해, 조약체결이나 해제는 주권사안이기 때문에 국익에 따라 정책을 결정·조치하면 되기에 너무 부풀려 이슈화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미국의 새로운 대(對)중국 전략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미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동북아 지역의 핵심은 한국과 일본이고 남아시아의 핵심은 호주와 인도입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간 군사적 협력이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한일 간의 군사협력, 즉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해지면 북·중·러의 군사협력이 긴밀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짙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한·미·일에 부가해 캐나다, 호주, 필리핀 등 다국적 국가 간 연합훈련이나 다자간 군사협력 체계를 유지하자고 미국과 일본 측에 역(逆)제안해 양해를 받아냈습니다.”
송영무 전 장관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각각 별도로 군사동맹이 되지만 한·미·일 군사동맹은 실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에게 이해시켰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대중(對中) 견제망 구축 차원에서 한국에 ‘쿼드 플러스(quad plus)’ 동참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나 군사력 위상으로 볼 때 미국·일본·인도·호주 이외에 뉴질랜드·베트남 등과 함께 쿼드 플러스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 차원 더 높은 국가 위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F-35 도입도 北에 물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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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이틀째인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의 모니터 촬영. |
“9·19군사합의를 체결한 날, 전 세계가 이 합의를 주목했습니다. 남북한 한민족이 평화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냉전시대의 극단적 대치 상태를 상상해 ‘만에 하나 허점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대화보다는 언쟁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죠. 양측 간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첫째, 신뢰구축, 둘째 군비검증, 셋째 군비통제 순으로 진행됩니다. 이 합의는 군비통제를 위한 합의가 아니고 상호 간 불신을 걷어내고 신뢰구축을 위해 첫걸음이라도 걸어가자는 합의라는 점을 이해해주면 그런 오해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 군사분야 합의서 제1조 1항을 합의대로 실천한다면, 한미연합방위 체제는 붕괴되고 한국의 군사역량은 사실상 훈련을 하지 않는 오합지졸 군대가 될 것 같습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연습하지 않고 링에 오르는 복서와 같지 않을까요.
“군부대와 장비가 있으면 남한이나 북한 모두 당연히 훈련을 실전같이 실시해 전투역량을 높이는 것은 군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입니다. 9·19군사합의가 ‘백전백패, 오합지졸을 만든다’는 식의 과도한 표현은 너무 지나친 폄훼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절대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특히 남북군사합의 제1조 1항에 명시된 ‘무력 증강 금지’는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같은 전략무기를 도입할 때마다 북한에 물어봐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규모 군사훈련 중지’와 ‘무력증강 금지’라는 글귀를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1조 1항의 마지막 부분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거쳐 의견을 조율하도록 해놓았죠. 또한 ‘무력증강 금지’라는 것은 F-35를 예로 들었는데, F-35 등 우주전력과 경항모와 원잠 등 해양전력 같은 중요한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거쳐 왜 증강하는지 이해시켜 서로 문제가 없게 하겠습니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DMZ(비무장지대)나 NLL(북방한계선) 대치 상황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상호 이해시키는 절차와 체계를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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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해군 참모총장(왼쪽 첫 번째)이 2007년 5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세종대왕함 진수식에 참석하고 있다. |
“저는 1973년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때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한 기억을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초급장교 시절 각 군 방첩대가 보안사령부로, 보안사령부가 기무사령부로 변화되는 시대를 현역으로서 보아왔죠. 장관 취임 후 군 검찰단을 통해 기무사 댓글 조직(스파르타)을 수사하다 보니 세월호 사건 때 민간인 사찰, 탄핵 정국 때 계엄문건 작성 등 중차대한 사건들을 보고 받았습니다. 군의 정치 개입, 민간인 사찰은 필연코 단절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는 장교 동향 파악을 지속적으로 수집·축적해놓았다가 진급심사 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기무사 개혁안을 작성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한 결과, ‘해편(해체와 재편)하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오로지 방첩·보안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조직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 장관 재임 중 세운 전력증강 계획 가운데 가시화된 것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국방개혁2.0은 현대전에 맞게 신속하게 기동하도록 기계화된 장비에 의한 전투 효율화를 구상했습니다. 지상전력은 기계화 전력, 항공 전력, 유도탄 전력, UAV(무인기) 전력 등을 주요 증강 요구 전력으로 강조했고요. 오죽했으면 지상군은 보병·포병·기갑·공병·통신의 5개 병과를 보병·항공·유도·포병·기갑·공병·통신의 7개 전투병과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해상・공중 전력은 별개의 해군과 공군만을 위한 전력이 아니라 지상군의 안전과 신속한 기동을 위한 화력지원 위주의 전력을 보강토록, 중기계획에 많이 반영이 되도록 했습니다. 경항모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북한과 동북아 안보정세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적·전략적 전력으로서 한 세대 이후를 대비하는 측면에서 고려했습니다.”
— 특히 세종대왕함, 대형수송함 독도함, 고속유도탄함 윤영하함을 진수시키셨지요.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함과 독도함 등 대형수송함, 그리고 고속유도탄함 등 모두 조함단장 시절 설계하고 기획관리참모부장 시절 예산 배정했더니, 참모총장 때 진수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합참 시험평가부장,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차장, 해군본부 조함단장과 기획관리참모부장, 합참 전략본부장을 지낸 경력이 육·해·공군 전력건설 방향을 이해하게 해서 장관 시절 의사결정할 때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독도함 설계도를 바꾼 송영무 준장
—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제가 《월간조선》(2017년 5월호)에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같은 특정한 전력 소요는 없었습니다. 대선 공약에 개별 무기체계를 언급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 2018년 5월 대형수송함 마라도함 진수식장에서 항공모함 건조를 언급하셨습니다. 애초 독도함 때 경항모 건조계획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독도급 대형수송함 1번함 독도함을 설계할 때, 1만t 이상으로 건조하면 주변국 시선이 집중된다고 해서 9800t 정도로 기본설계를 했었습니다. 2000년 후반, 제가 준장 시절인데요. 기본설계검토(design review) 위원장 자격으로 조선소에 가서 회의를 했어요. 도저히 설계한 대로 건조하면 쓸 만한 군함이 안 나오겠더라고요. 해군본부에 올라와 이수용(李秀勇) 총장에게 보고해서 1만4500t급으로 재설계를 했습니다. 그 결과, 독도함을 헬기 등 항공전력과 수륙양용장갑차 등 상륙전력을 동시에 탑재해 수송할 수 있는 상륙작전의 기함(旗艦)으로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직후에 자연스럽게 항모 건조 이야기도 흘러나왔지요.”
—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서 한국형 항모를 3만t급으로 건조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왕 건조하려면 정규 항모로 가야 한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의 함정 건조기술은 1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입니다. 탑재 항공기도 예전의 전투기와 능력 면에서 몇 배나 더 우수한 전투기를 탑재하기 때문에 과거의 중형 항모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건조하려는 항모는 3만t입니다. 현대차에서 포니-엑셀-쏘나타-그랜저-에쿠스 순으로 자동차가 진화해나오듯, 미국도 최초에는 석탄운반선에 비행갑판을 씌운 항모를 건조해 운용능력을 키워가면서 10만t까지 간 겁니다. 맡겨주고 기다려주시면 국민 여러분에게 늠름한 항모의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해군력 강해야 군사외교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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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내기술로 설계·건조한 3000톤급 잠수함의 선도함인 도산안창호함이 2018년 9월 14일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진수됐다. 이날 행사엔 문재인 대통령, 송영무 국방부 장관,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 로버트 안 부부 등이 참석했다. |
“항구를 조망하는 독수리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미국은 7함대 기함 블루릿지호(1만8000t급)를 비롯해 중국 북해함대의 기함, 일본 해상자위대 기함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우리 해군은 2000t급 울산급 호위함 2척을 파티를 위해 묶어놓았어요. 국력 차이와 함께 해군력을 키워야 군사외교(軍事外交)도 가능하다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노무현 정부 시절 해군본부 조함단장(소장)을 지내셨습니다. 조함단에서 ‘362사업’으로 원잠 건조를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362사업을 아시네요. 사실은 조함단장 때가 아니고 기획관리참모부장을 할 때입니다. 비닉사업이어서 2003년 6월 2일 362사업으로 명명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제가 362사업 단장을 했고요. 그때 잠수함 장교,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 소형 원자로 연구원 등이 위원이 되어 약 1년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예산 문제, 기술 문제, 독자적 잠수함 건조 문제 등을 종합 판단한 결과, 시기상조로 판단해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해군은 점진적 잠수함 증강계획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ADD는 잠수함 설계기술을 발전시키며, 원자로 연구원들은 원자로 소형화를 각각 발전시키기로 했습니다.”
— 현재 우리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2007년 참모총장 시절, 원잠을 건조하려면 완전한 설계기능을 갖고, 장비도 국산화해야 한다고 지독하게 독려했습니다. 2018년 9월 14일 한국 기술로 첫 독자개발한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진수식 때 문 대통령을 모시고 참석했습니다. 동시에 원잠을 건조하기 위해 분야별로 능력을 확인해보니 건조가 가능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기에 건조계획을 구체화해 계획에 반영시켰습니다. 이제는 원잠 건조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셔도 되리라 믿습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후손인 송영무 전 장관의 고조부는 송병선(宋秉璿) 선생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 황제를 알현해 을사오적의 처형, 을사조약의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바친 뒤 고향에서 자결한 우국지사다. 송병선의 아우 송병순(宋秉珣)도 한일합방에 반대해 순국했다.
송 전 장관은 “우암께서 사약(賜藥)을 받으시며 ‘선비는 직(直)에 충실해야 하는데, 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을 평생 되새기며 살았다”며 “내 나이와 같은 국군 창설 72주년을 맞아 한 세기 후에는 우리 군이 ‘선진 민주 국군’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이러한 확신을 갖고 대통령에게 ‘국방개혁2.0’을 직언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