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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의 전쟁과 평화

개디스의 《미국의 봉쇄전략》으로 보는 冷戰과 美中 패권경쟁

전쟁 없이 冷戰을 승리로 이끈 케넌의 ‘봉쇄전략’

글 : 이춘근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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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케넌, 1946년 2월 ‘긴 전보(Long Telegram)’ 통해 힘의 균형 회복 등 對蘇 봉쇄정책 제안
⊙ 트루먼, 독일·일본 등 미국의 핵심 이익 지키려면 한국이라는 非핵심 이익도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국전 참전
⊙ 트루먼에서 레이건까지 미국 역대 행정부의 對蘇전략에 결정적 영향 미쳐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저술
조지 케넌이 미 국무부로 보낸 ‘롱 텔레그램’은 냉전시대 미국의 對蘇 봉쇄전략의 바탕이 되었다.
  국제정치 역사를 가장 막강한 국가들의 패권(覇權)투쟁 역사로 인식하고, 어떤 나라가 패권전쟁에서 승리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쟁 연구가 있다. ‘패권전쟁론(Theories of the Hegemonic War)’ 혹은 ‘일반전쟁론(Theories of the General War)’이라 지칭되는 분야다. 이 연구에서는 국제정치 체제의 변화는 패권전쟁의 승자(勝者)에 의해 결정되고 또한 변화된다고 보았다.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의 패권은 스페인의 패권으로 옮겨갔고, 무적(無敵)함대를 격파한 덕분에 영국은 스페인의 패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과 독일의 빌헬름 황제가 영국 패권에 도전했지만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영국 패권 시대를 2세기 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거둔 영국의 승리는 자국(自國)의 힘에 의해서였기보다는 미국이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의 자리를 꿰차고 세계 패권국이 되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보다 약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1939년 독일이 다시 도전하기 이전까지 명목상으로나마 세계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終戰)부터 겨우 20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패권전쟁이 다시 발발한 이유는, 영국 패권이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명목적인 것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1939년 독일의 도전에 대해서도 역시 영국은 미국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경우와 달리 영국은 더 이상 패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실질적인 세계 지배력을 갖춘 미국이 이번에는 영국의 자리를 물려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영국이 보장해주고 미국도 이익을 취하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붕괴될 판국이기 때문이었다.
 
 
  美蘇의 패권경쟁
 
  다른 패권전쟁 경우와 달리 제2차 세계대전 결과, 막강하지만 상호 적대적인 강대국이 2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국제관계가 형성되었다. 물론 미국이 제일 막강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한 강대국으로 등장한 소련은 과거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대적해야 했던 독일 혹은 일본보다 훨씬 강하고 위험한 나라였다. 미국은 독일・일본이 아닌 소련과 상대해야 했고, 소련에 이긴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패권국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자국의 의도와 달리 세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역할을 맡은 미국은, 소련이 야기하는 도전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야 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을 ‘초강대국(superpower)’이라고 표현했다. 초강대국이란, 글자 그대로 혼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를 의미한다.
 
  문제는 소련 역시 초강대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했다는 데 있다. 초강대국이 둘인 경우 국제체제의 작동원리는 역설적(逆說的)인 것이 되고 만다. 즉 둘이 싸우면 승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죽고 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강대국이란 전쟁을 유난히 잘하는 나라지만 초강대국이 둘 있는 경우 그 초강대국들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과 소련은 상극적(相剋的)인 강대국이고 힘도 엄청 막강했지만, 서로 싸울 수 없었다. 다 죽을 테니 말이다. 두 나라는 서로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미소 두 나라가 세계를 두고 자웅을 겨루던 시대를 ‘차가운 전쟁(Cold War)’ 시대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냉전(冷戰)’이라고 표현되는 이 시대의 이름을 나타내는 용어는 문법상 도저히 맞지 않는 두 단어의 결합이다. 어떻게 전쟁이 차가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현실을 간파한 후 상대방을 어떻게 굴복시킬 것인지를 먼저 구상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라는 더욱 골치 아픈 적국(敵國)을 파멸시키기 위해 소련이라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와 동맹관계를 체결한 미국은 소련의 본심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소련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때 소련전문가로서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Kennan・1904~2005)이 8000단어가 넘는 긴 전보(Long telegram)를 워싱턴으로 타전(打電)했다. 미국은 앞으로 소련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며, 미국의 대(對)소련 외교정책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개진한 문건이었다.
 
 
  케넌의 봉쇄정책
 
  냉전사 최고의 권위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가 “한 개인이 단 한 건의 문서를 통해 그토록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 의사를 개진해 한 나라의 외교정책을 전격적으로 바꾸어놓은 경우는 드물다”고 언급할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미국의 대소(對蘇) 외교정책의 기초는 조지 케넌이 주장한 ‘봉쇄전략(Strategy of Containment)’이었다.
 
  1946년 2월 22일 비밀문건으로 타전된 ‘긴 전보’를 작성한 조지 케넌은 1947년 여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잡지에 ‘Mr. X’라는 익명으로 〈소련 행태의 근원(The sources of Soviet conduct)〉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곧바로 수완 좋은 기자 아더 크록이 Mr. X는 조지 케넌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글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글이 되었다. 케넌이 차후 회고록에서 직접 밝힌 바 있듯이 오해의 소지가 많은 논문이었다. 학자들은 케넌이 Mr. X 논문에서 밝히려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구명하기 위해 연구했는데, 케넌의 진의가 한 연구 분야가 될 정도로 케넌의 대소정책이 의미하는 바는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럼에도 케넌이 제안한 대소정책은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라고 불리는 한계가 분명히 설정된 전략이었다. 봉쇄란 무엇보다도 현재의 소련이 더 이상 팽창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였다.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미국은 ▲소련으로부터 위협당하는 국가들이 자신감을 고취하고 힘의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일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부의 알력을 이용해 소련이 자국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역량을 위축시키는 일 ▲해소되지 않은 차이점들을 협상을 통해 타결하기 위해 소련의 국제관계 개념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는 일 등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에는 군사적인 수단은 물론 경제·정치·심리적인 것이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 케넌은 미국의 대소정책은 장기적이며 서서히, 그러나 끈기 있게 일관성을 가진 정책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결국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하지 않은 채 소련이라는 체제를 변질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냉전을 승리로 이끌다
 
  케넌의 외교정책은 미국이 인류 보편의 이념을 지구 전체에 실현해야 할 나라라는 보편주의를 거부했다. 대신 그는 미국의 이익에 좀 더 충실한 특수주의적 접근 방법을 취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에 이익이 되는 나라와 지역에 미국의 노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편주의적 국제기구인 유엔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고, 세계 모든 지역이 미국 안보에 똑같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이익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정책의 목적을 가용한 수단에 의해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위협은 오직 이익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요한 거점을 방어해야지 세계 전체를 방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케넌의 관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정치학계를 주도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주장과도 딱 들어맞는다. 사실 케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학파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였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케넌의 봉쇄정책은 미국 역대 행정부마다 해석을 약간 달리 했다. 케넌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미국 역대 행정부의 대소정책이 군사적 측면을 너무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한 전략적 유연성이 훼손되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1946~1947년에 설계한 청사진은 1990년 소련이 몰락하던 때까지 줄기차게 지속된 미국 역대 행정부들의 대소정책의 근간이었다.
 
  케넌이 의도한 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은 소련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고, 유일 초강대국이 됨으로써 실질적인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역사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1990년 미국이 차지한 지위는 패권전쟁이라는 대전쟁에 승리한 나라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런 대업적을 장기간의 끈질긴 대소 봉쇄정책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었다. 케넌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청사진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목도할 수 있었다.
 
 
  트루먼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이유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케넌의 봉쇄전략을 확대 해석, 한국전에 참전했다.
  1947년 소련과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된 후부터 1990년 소련이 역사의 잿더미 속으로 빠져들고 이름마저 러시아로 바꿀 때까지, 미국의 대소정책을 상징하는 이름인 트루먼, 아이젠하워, 덜레스, 케네디, 존슨, 닉슨, 키신저,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들과 외교정책을 담당한 핵심 미국인들은 모두 소련 공산주의의 확산에 맞서 열심히 싸운 ‘냉전의 전사(Cold Warrior)’들이었다. 이들은 케넌의 청사진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또는 상황에 적합하게 변질 혹은 각색한 정책을 만들었다. 케넌이 의도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미국 역대 행정부의 대소정책 중 케넌이 그린 큰 밑그림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없었다.
 
  최근 번역되어 나온 존 루이스 개디스의 《미국의 봉쇄전략(Strategies of Containment)》(강규형・홍지수 역)은 제목도 그럴듯하다. 냉전 시대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외교정책 주요 결정자들의 전략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봉쇄전략이었다는 의미에서 봉쇄전략을 복수(複數)형으로 표시한 것이다. 봉쇄를 위한 여러 가지 조금씩 다른 전략들이 존재했다는 말이다.
 
  우선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과 냉전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대통령이다. 소련에 대한 봉쇄전략을 천명하고 이를 위해 〈NSC-68〉이라는 전략지침을 작성했다. 케넌의 본심과는 다른 점이 많은 전략지침이었고, 트루먼 대통령은 케넌보다 미국의 이익을 확대 해석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의 위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협받는 이익은 어떤 이익이든 필수적 이익이라고 규정할 충분한 명분이 된다고 보았다. 트루먼은 독일・일본 등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비(非)핵심 이익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트루먼은 대소 봉쇄의 수단으로 군사력을 더욱 강조했다. 미국이 재래식 군사력에서 소련에 열세라고 생각한 트루먼 행정부는 핵폭탄의 개발과 비축을 통해(재래식 군사력이란 핵 군사력이 아닌 군사력을 통칭하는 말이며, 고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소련과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핵폭탄에 더욱 크게 의존하는 대소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뉴룩’과 ‘유연한 대응전략’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개입에 고전했다고 생각한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미국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적을 맞아 싸워야 할 것이며, 적들의 공격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대량보복전략을 수립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은 우리의 적이 무력(武力)을 사용하거나 하겠다고 위협하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나 달려가 그 나라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회 지도자들 앞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꿈쩍이라도 하면 신속히 작살을 내버리겠다”고 호언을 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미국은 세계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미국의 생존에 필수적인 다양성을 수호하려면 세계 지도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젠하워의 봉쇄전략은 새로운 모습이라는 의미에서 ‘뉴룩(New Look)정책’이라 불렀지만 역시 봉쇄전략 중 하나였다.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뒤를 이은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인 케네디는 전임 대통령과 무엇인가 다르고 싶었다. 그는 아이젠하워의 대소전략이 핵무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비대칭적인 것으로, 다양한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케네디의 국가안보 보좌관 월트 로스토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진영에 압박을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훨씬 많기에 미국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도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에 대칭적으로 대응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차후 이 새로운 전략은 ‘유연한 대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일어나 게릴라들의 도전에 대량보복전략을 적용하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1961년 3월 케네디는 “전면전이든 제한전이든 핵전쟁이든 재래식 전쟁이든, 대규모든 소규모든 모든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베트남에서 게릴라와 싸우기 좋은 무기는 핵무기가 아니라 미국의 특수전(特殊戰) 부대라고 생각한 케네디는 유명한 ‘그린베레(Green Beret) 부대’도 창설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대통령직을 계승한 린든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전략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물론 케네디가 살아 있을 경우 존슨과 똑같은 정책을 실행했을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데탕트
 
  존슨에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닉슨은 소련과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동시에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성립할 의지가 있음을 표명했다. 본질적으로 강성(强性) 반공주의자던 닉슨은 전임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 운신의 폭이 넓었다. 강성 반공주의자이기 때문에 공산국가와 협상한다 해도 공산주의에 대해 나약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헨리 키신저 박사를 등용한 것은 미국 외교에 새로운 요소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키신저는 역사학도로서 과학과 절차를 강조하는 전임 행정부를 경멸했다.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닉슨과 키신저의 공산주의 세력과의 데탕트 추구는 냉전을 종식시키려는 방향의 진전이었다는 점에서, 조지 케넌이 20년 전 만들었던 본래 봉쇄전략의 토대가 된 개념으로 복귀를 의미한 것같이 보였다. 닉슨-키신저의 외교정책상 개념은 케넌이 바란 대로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닉슨 행정부와 뒤이은 포드 행정부가 끝나던 1977년 무렵 대칭적 봉쇄전략과 비대칭적 봉쇄전략은 공히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해결책은 뻔한 것이었다. 각 접근방식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면서 속성상 대칭도 비대칭도 아닌 새로운 봉쇄전략을 만들면 될 일이었다.
 
  포드 후임인 카터 대통령은 이런 방식을 추구하지만 실패했다. 카터는 ‘품격 있는 가치관’ ‘낙관적인 역사관’에 기초한 대소전략을 구상했다가 큰코다쳤다. 임기 3년 차가 되던 해, 그는 과거의 봉쇄정책을 칭송하고, 군(軍) 징집제도를 되살리고, 정보수집 역량을 증가시키고, 국방비를 늘리는 정책으로 회귀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 대선(大選)에서 레이건에게 대패(大敗)해 단임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레이건의 승리
 
냉전을 승리로 마무리 지은 레이건 대통령.
  카터 후임인 레이건 대통령은 카터처럼 색다른 전략을 수립했는데, 카터와 달리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개디스 교수는 “레이건의 성공 때문에 후에 조지 H.W. 부시는 더 이상 봉쇄전략을 시행할 필요가 없는 세계를 물려받게 되었다”고 평한다. 그가 퇴임하던 1993년 1월, 냉전 40년간 봉쇄해야 할 위협이었던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레이건 대통령은 보좌진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대소 봉쇄전략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주미(駐美)대사 도브리닌이 레이건과 대화를 나눈 후 “레이건이 진짜 우두머리”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듯이, 냉전 승리의 몫은 레이건에게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레이건은 소련 체제가 붕괴될 정도로 밀어붙여서 새로운 부류의 지도자가 등장할 길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냉전 초기의 봉쇄전략가들이 기대했던 모스크바가 언젠가는 공산주의와 제국주의가 헛수고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현실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의 경제적 약점이 야기할 부작용을 온전히 활용하고, 소련과 그 동맹국 내에서 장기적으로 자유화와 민족주의 추세가 힘을 얻도록 부추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레이건의 전략은 궁극적으로 소련의 팽창주의를 봉쇄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레이건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이를 경악시킨 전략방위구상, 대대적인 군비증강계획을 세운 레이건 대통령은 동시에 영속적인 평화를 위한 소련과의 건설적인 대화도 동시에 추구한 인물이다. 레이건에게는 계몽군주 같은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이 소련 대통령이 되는 행운 또한 있었다. 레이건의 행운은 봉쇄정책을 입안한 케넌의 청사진이 성공으로 귀결되게 하는 일이 된 것이다.
 
 
  냉전의 후반전
 
존 루이스 개디스의 《미국의 봉쇄전략》.
  1990년 미국이 맞이한 세상은, 역사적으로 본다면 패권전쟁급 대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라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승리였다. 이런 승리를 전쟁을 통하지 않은 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개디스 교수의 《미국의 봉쇄전략》은 미국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대소전략을 만들어온 결과 그 같은 승리를 거머쥐었는지 주마등(走馬燈)처럼 보여준다.
 
  이 책을 번역한 홍지수씨는 개디스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마치 벽에 붙은 파리가 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백악관에서 최고 전략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중지(衆志)를 모으는 광경을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켜보는 듯했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약 10년 동안 패권국의 지위를 향유했던 미국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시대를 맞이하여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가 중국 부상(浮上)으로 인한 전통적인 국제정치의 원형인 강대국 간 대결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신(新)냉전’으로 묘사도 하고 미소 대결을 냉전의 전반전, 미중 대결을 냉전의 후반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미 미국은 냉전 당시 소련과의 대결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대결을 중국과 벌이고 있다. 특히 레이건의 전략을 빼어 닮았다고 평가되는 트럼프의 대(對)중국 전략은 미중 패권경쟁의 승자가 미국일 것임을 확신하게 만든다.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는 레이건 대통령의 “고르바초프 씨, 와서 이 벽을 허무시오!”라는 유명한 연설에 버금가는 연설을 두 차례나 함으로써 대중(對中)정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레이건의 대소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정치학자 키론 스키너 박사를 국무부 정책국장으로 초빙해, 대중전략을 수립도록 한 바 있다. 스키너 박사는 중국과의 싸움을 ‘문명의 충돌’로 규정하고, 미국은 마치 조지 케넌의 봉쇄전략에 비유할 수 있는 대중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개디스의 책은 냉전 역사를 미국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승리한 편의 전략 논쟁을 읽는 일은 흥미진진한 측면도 있다. 냉전 시대의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그들 업적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모두 ‘냉전의 전사들’ 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요즘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목표와 수단의 모든 측면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 개디스 교수의 《미국의 봉쇄전략》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정독함으로써 미국의 대외정책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우리나라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지침을 주는 책이라고 사료된다. 대한민국의 전문가와 식자(識者)들의 서가(書架)에 한 권씩 비치해두고 두고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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