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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한민국을 살린 ‘장진호 전투’에 얽힌 사연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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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호 전투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다. 68년 전 함경남도 장진호에 불어닥친 추위 속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중공군의 포위를 뚫기 위해 연합군이 펼친 작전이었다. 이로 인해 일명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흥남철수 작전이 이뤄졌다.
 
  북한에서도 장진호 전투는 유명하다. 이 전투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장진호 전투 이후 미군 포로들 가방 속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놋그릇과 수저들이다. 당시 미군들 사이에선 한반도에 금(金)이 많다고 소문났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미군들은 전리품(戰利品)으로 놋그릇과 수저를 챙겼다. 누런색을 띤 놋그릇들과 수저들이 미군 눈에는 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인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들의 가방에는 놋그릇과 수저들이 항상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 장진호 전투에 대한 웃기지만 슬픈 사연들이 있다.
 
  장진호 전투가 끝난 뒤 혹한에 죽은 미군 유해들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죽은 미군 주머니에서 화폐 모양의 종이들을 수거했다. 그 종이에는 사람 얼굴도 그려져 있었고, 글씨도 있었다. 그들은 그 종이를 벽지와 장판지로 사용했다. 몇 해 후 공부하러 평양에 갔던 청년이 집에 돌아와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집집마다 벽에 달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마을 주민들이 미군 유해(遺骸)에서 꺼낸 종이가 달러였던 것이다. 그것이 달러인지 몰랐던 마을 주민들은 질 좋은 종이로 생각하고 벽지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장진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 해병1사단은 700여 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실종자, 35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 밖에 6200여 명의 비전투 사상자가 발생했다. 장진호 전투는 흥남에서 철수한 피란민들만을 살린 게 아니었다. 장진호 전투는 대한민국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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