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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평화협정

중동평화협정의 어제와 오늘

미국 대통령의 지원과 압박, 외교적 상상력이 성공한 협상의 원동력

글 :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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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다트, 욤 키푸르전쟁으로 이스라엘을 패전 위기로 몰아넣은 후 평화협정 추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끌어내
⊙ 장성 출신 라빈의 도덕성과 지도력이 오슬로평화협정 가능케 해
⊙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과 오슬로 협정, 단계적 합의방식 취해

成日光
1972년 출생.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중동학과 석사. 텔아비브대학 중동학 박사. 연합뉴스 예루살렘 통신원·한국중동학회 총무간사 역임. 현 한국이스라엘학회장·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
1993년 9월 라빈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아라파트 PLO 의장(오른쪽)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오슬로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2년부터 시작된 10여 차례의 알리야(유대인 이민)를 거치면서 수십만 명의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유대인 이민자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팔레스타인 노동자와 경쟁하면서 경제적 갈등이 싹텄다. 또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 지주에게 웃돈을 주고 토지를 매입해 서서히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자 영토적 갈등이 중첩됐다. 1917년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영국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된 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의 무력(武力)충돌은 악화됐다.
 
  1936년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인들은 영국의 위임통치와 친(親)유대인 정책에 반대해 6개월에 걸친 대규모 파업과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유대인 정착민과 충돌했다. 유엔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1947년 유대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나누는 분할안(案)을 제시했다. 유대인 공동체는 이를 수용했지만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포함한 아랍 측은 아랍인구보다 적은 유대인에게 너무 많은 영토를 할당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6일전쟁과 汎아랍주의의 몰락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선언했다. 다음 날 주변 아랍국가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1차 중동(中東)전쟁이 일어났다.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직접 개입하면서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분리시켜 논할 수 없게 됐다. 10개월간의 전쟁이 끝나고 1949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은 로도스 섬에서 열린 휴전협정에서 새로운 국경선, 즉 녹색선(green line)을 확정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은 범아랍주의(Pan-Arabism)의 영웅인 이집트의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國有化)에 반대해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전쟁 중단 압박으로 전쟁 개시국 3국이 정전(停戰)에 합의하면서 나세르는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외교적으로 승리해 이스라엘과 서방 세계에 저항한 아랍의 영웅으로 자리매김됐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종결되어 ‘6일전쟁’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악화시킨 전쟁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이집트가 티란 해협을 봉쇄하고 시나이 반도 주둔 유엔군을 철수시키자 이스라엘은 전쟁 이유(casus belli)로 간주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전쟁 개시 3시간 만에 이스라엘 전투기가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 공군기지를 공습해 이집트 공군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면서 쉽게 승리했다.
 
  전후(戰後)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동예루살렘과 골란 고원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에서 차지한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권고한 유엔안전 보장이사회 결의안 242조와 338조 이행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전쟁 중에 빼앗은 요르단의 영토 반환을 거부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문제의 씨앗을 스스로 안게 된 셈이다.
 
  6일전쟁의 또 다른 결과는 범아랍주의의 몰락이다. 1950년대부터 나세르가 통치이념으로 활용하고 시리아와의 통합아랍국가(United Arab Republic,1958~1961) 건설로 결실을 맺은 범아랍주의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6일 만에 패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아랍민족의 통합만이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에 맞설 수 있다는 범아랍주의의 정당성은 막강한 이스라엘 군사력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범아랍주의의 폐기는 향후 중동정치 질서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이슬람주의(Islamism 또는 political Islam) 등장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전쟁과 평화의 대통령 사다트
 
1978년 9월 카터 미국 대통령의 노력으로 베긴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오른쪽)은 캠프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했다.
  6일전쟁에서 패한 나세르는 정치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3년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부통령이던 안와르 사다트가 이집트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새로운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제4차 중동전쟁의 씨앗은 이스라엘의 오만과 오판(誤判)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나세르와는 거리가 먼 사다트의 평화협상 제안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사다트에게는 전쟁을 일으킬 담력이 없다고 오판했다.
 
  사다트의 외교적 고립도 제4차 중동전쟁의 또 다른 이유다. 사다트는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한 미국과는 달리 소련이 이스라엘에 대적할 만한 최신 군수물자 지원을 거부하자 소련 대사관 축소와 소련 군사지원단 철수를 명했다. 사다트는 미국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추진했으나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1973년 사다트는 평화협상에 관심 없는 이스라엘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대인의 속죄일(욤 키푸르)에 기습공격을 시작했다. 욤 키푸르 전쟁은 네 차례의 이스라엘과 아랍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고전(苦戰)한 전쟁으로 남았다. 이스라엘은 결국 미국의 도움으로 막바지에 전세(戰勢)를 역전시켜 시나이 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후(戰後) 미국은 중동평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의 셔틀 외교는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키신저 장관은 1974년 초 시나이 협정 I과 1975년 시나이 협정 II를 중재해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가 빼앗긴 시나이 반도 반환 합의에 성공해 이집트의 신뢰를 얻었다. 시나이 협정으로 자신감을 얻은 사다트는 1977년 아랍 지도자로는 최초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의 기틀을 닦았다.
 
  1978년 9월 5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추가협상을 위해 므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메릴랜드주 소재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했다. 12일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두 정상은 그해 9월 17일 시나이 반도에서 이스라엘의 완전 철수를 포함해 양국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키로 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합의했다. 사다트 대통령은 아랍권의 여론을 의식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창설하는 계획을 합의안에 담았다. 6개월 후 1979년 3월 26일 양국 정상은 백악관에서 양국 간 관계 정상화를 통해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하고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사다트가 아랍국가 원수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합의한 이유는 시나이 반도 회복과 미국의 대규모 경제지원 때문이었다. 아랍권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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