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경북 경주시 감포항 선적 ‘391흥진호’(이하 흥진호)가 북한에 나포됐다. 해양경찰에 따르면 흥진호는 복어를 잡으러 울릉도 북동쪽 한·일 공동수역인 대화퇴 어장에 갔다가 이날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정부는 우리 어선이 북한에 피랍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10월 27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선원들을 송환한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발표 이후 해당 사실을 알았다.
흥진호는 10월 28일 동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우리 해양경찰에 인계돼 강원도 속초시 속초항을 거쳐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 닿았다. 하선한 흥진호 선원(한국인 7명, 베트남인 3명)은 대기해 있던 정부합동조사단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당시 이들의 귀환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선원들은 신분 노출을 피하려고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 등을 착용했다. 그런 탓에 연령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격들이 건장해 일반 선원 같아 보이진 않았다. 또 이들이 청바지 등을 입고 있어서 20~30대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었다. 북한에서 돌아온 이들을 맞이하는 가족들이 없었던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이후 소위 ‘흥진호 미스터리’가 제기됐다. “흥진호는 북한 공작선이다” “흥진호 선원들은 북한 공작원이다” “흥진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금품을 보내기 위해 보낸 국가정보원 또는 군 소유 선박이다”를 비롯해 각종 의혹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흥진호 선원들은 좀처럼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고, 의혹은 증폭됐다.
《월간조선》은 경북 경주시와 울진군 현지 취재, 흥진호 선주ㆍ선장ㆍ선원과의 인터뷰, 그간 흥진호 선장ㆍ선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다방 주인의 전언 등을 토대로 ‘흥진호 미스터리’를 전격 해부했다.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① 흥진호 법적 선주 전 감포 수협 조합장 전◦◦(62)씨
“복어 15톤은 잡아야 본전 … 3.5톤이 엄청난 양이라는 건 모르는 소리”
⊙ 선적지 감포항의 주민들은 ‘흥진호’에 대해 잘 몰라
⊙ 흥진호의 법적 선주는 전 감포 수협 조합장 … 실제 선주 역할은 전 선장 고씨
⊙ 흥진호는 주로 제주도에서 갈치잡이 … 복어 잡을 때는 울진 후포·죽변항으로
⊙ “배에서 내릴 때 작업복 대신 깨끗한 옷 입은 게 잘못인가?”
11월 7일 ‘391 흥진호(이하 흥진호)’가 등록된 항구인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감포항에 갔다. 감포항 어민들을 대상으로 흥진호 선원들에 대해 탐문하기 위해서였다. 감포항은 한적했다. 출항을 준비하는 배도 없었다. 이따금 마주친 어민들에게 흥진호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시원찮았다. 사실상 아는 사람이 없었다.
“흥진호는 다른 어선보다 한국인 선원이 많다”
다음 날 오전 감포항 인근 다방에 갔다. 다방 주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엔 감포항에 있는 배와 선원들에 대해 잘 안다던 다방 주인은 “흥진호란 배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TV에 그렇게 자주 나왔는데 못 봤느냐? 이번에 북한에 나포됐다가 풀려난 배다”라고 알려줬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방을 나와 역시 감포항 주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자신의 배우자가 어선을 탄다는 식당 주인은 “우리 남편 나이가 50인데, 배에선 제일 젊은 사람이다. 흥진호엔 우리 남편보다 젊은 사람이 많고, 한국 선원들도 다른 배보다 많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식당을 나와 감포항에서 마주친 어민에게 선장이나 선원, 선주들이 자주 모이는 공간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채낚기 선주협회 사무실’ 위치를 알려줬다. 선주협회 사무실에 들어가니 울산에서 놀러 왔다는 60대 남성만 있었다. 그는 “감포항 선주들이 오늘 전부 부산에 시위하러 갔다”고 말했다.
‘선주협회 사무실’에서 나와 흥진호의 법적 소유자로 알려진 전모(62)씨 집에 갔다. 흥진호의 경우엔 법적 소유자와 실소유자가 다르다. 법적 소유자는 감포 수산업협동조합에서 경매사로 일했고, 최근 조합장을 지낸 전모씨다. 실소유자는 예전부터 흥진호 선장을 하면서 총괄 관리를 해 온 고모(47)씨다. 전씨는 고씨의 부탁을 받고 선박 구매 자금을 대출받아 줬고 고씨는 후일 이를 갚은 뒤 명의를 옮겨 가는 조건으로 두 사람이 동업을 했다. 흥진호 사건과 관련해서 해양경찰에 흥진호 위치를 허위보고한 ‘선주’는 고씨다.
“고 선장과는 일종의 동업 관계 … 배 인수 시 대출 받아 줘”
전씨는 2016년 3월 15일 경남 통영시에 사는 김모(57)씨로부터 흥진호를 인수했다. 등본상 선박 지분은 전씨가 1/10, 그의 부인 김모(62)씨가 9/10를 가졌다. 다음은 두 차례 방문 끝에 만난 흥진호의 법적 소유자 전씨와의 문답이다. 흥진호 관계자들이 신분 노출을 꺼린 탓에 사진을 찍지 못한 대신 이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기 위해 그들이 쓴 어투나 비속어 등을 최대한 살렸다.
— 흥진호 소유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그기 우리가 무슨 사업을 하면 공조를 하잖아요? 이건 동업 관계지. 인자 원래 선장이 있어요. 고○○이라고. ”
— 고 선장과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여기서 수협 경매사로 일할 때 고○○ 선장이 제주도 ○○호란 배를 타고 작업을 많이 하러 왔어요. 조합마다 위판 실적이 있어야 하니까 유치를 해요. 내가 경매 주임을 했으니까 예전부터 알고 지냈죠. 경매사로 있을 때 그 배가 우리한테 복어도 입찰시켜 주니까, 그걸 많이 해가 실적이 올라야 하니까 그걸 유치를 했지.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되고, 친분이 있었어.”
— 왜 동업을 시작한 겁니까.
“이 배가 제주도에 있다가 통영으로 팔렸어요. 그 선주가 복어잡이, 갈치잡이를 하려고 했는데 이기 골치가 아픈 기라. 그 선주가 고 선장한테 배를 외상으로 줄 테니 몇년 해서 갚으라고 하면서 지분은 안 넘기고 운영을 맡긴 건데 바닷일이라는 기 그렇잖아요? 안 잡힐 때도 있으니까 약속 이행을 못했어요. 그 선주는 배를 가지고 가려고 할 것 아닙니까? 고 선장은 그 사이에 한 2억원을 갚았어요. 그러니까 인마가 나 조합장 할 때 ‘조합장님, 이 정도 갚았는데, 조합장님 앞으로 배를 이전하면 어떻느냐?’고 해서. 복어만 잡아도 1년에 매출이 7억~8억원 해요. 갈치도 잡고 그러니까 모든 걸 제하더라도 충분히 배값이 되겠더라고. 7억~8억원은 전체 입항고를 말합니다. 그리 보면 선주로서는 1/3 정도 갖고 가는 거지. 배값이 얼마나 남았느냐 물어보니 내가 이래이래 갚고 6억~7억원이 남았대. 그래가 나하고 부인 명의로 대출을 받고 ‘좋다, 네가 열심히 해 돈 갚고 배를 갖고 가라’고 해서 배는 정상적으로 우리한테 넘어왔고. 고 선장이 운영을 하다가 이번에 사고가 났거든. 고 선장은 7~8개월 전에 큰 수술을 했거든. 목이 아파서 지 친구를 대리 선장으로 보냈는데, 2급 장애인이라요. 그 넘어간 사람도 복어 배를 오래 했어요.”
— 명의만 빌려준 겁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저 사람을 십수 년 알았잖아요. 내가 이 정도 돈을 해 줘도 배값에 비하면 저는 변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하지. 그게 아니면 안 하잖아요? 그 정도 같으면 충분히 되니까. 지가 잘되면 가만히 있겠어요? 굳이 계약은 안 해도 수익이 나오면 한 만큼 내한테 주고.”
“북한 해역 넘어간 건 현장 선장의 판단일 것”
— 선주 역할을 하는 고 선장이 북한 바다로 넘어가라고 지시한 겁니까.
“아니죠!”
— 남 선장 독단으로?
“이거 바다 사정을 몰라서 그러는데, 기자들이 잘 써 줘야 …. 분명히 수산법령을 위반한 건 맞지만, 방금 얘기한 것처럼 고 선장이 가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북한 지역으로 가면 위법이라는 거 모르겠습니까? 굳이 그걸 이야기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경험 많은 고 선장이 ‘야, 북한에 들어가 작업해’라고 하겠습니까? 이번에 보니까 경계선에 낚시를 놓으니까, 여기서 당겨 보면 고기량이 우리 지역보다 조금 더 올라오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발 한발 들어가다 보니까 침범을 했는데, 그건 현장의 선장이 판단할 사안이지, 여기 있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
— 북한 바다로 왜 넘어갔다고 합니까.
“선원들이야 어떻게 알겠습니까? 장비를 못 보니까. 조업한 위치가 북한 배도 보이고, 중국 배도 보이니까 ‘들어간 거 아니냐?’ 그랬나 봐요. 남 선장은 지 친구(고 선장)한테 피해가 가고, 딸린 선원 10명도 경제적으로 피해를 받을까 싶어서 물량을 채우기 위해서 들어갔지 않았느냐? 좋십니다. 그랬다 캐가 지금 지가 법의 저촉을 받고 있잖아요? 지가 들어갔잖아요? 아래께 시인했습니다.”
— 이번에 북한 바다에서 3일 동안 잡은 복어 3.5톤이 상당히 많은 양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배 유지하려면 한 번 나가서 15톤 이상은 해야 합니다. 15톤이면, 기름 값하고 미끼 값 제하고 선원들 봉급 제하면 선주한테 좀 떨어져요. 3.5톤이라고 하면 적자예요. 요번에 700만원 받고 팔았어요. kg에 6만원씩 하던 게 2만~3만원 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선장한테 뭐라 하는 기 가격도 없는데 왜 그 위험한 지역에 가서 정부 공무원들,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들어갈 수도 있는데.”
— 우발적으로 그럴 수는 있지만,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싸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뒤에도 계속 조업을 하고요.
“저 선장이 2급 장애인입니다. 정신은 아니고 신체장애인인데. 저도 답답한 기, 선장이 베테랑인 건 맞아요. 이 사람이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라.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좋지만, 불법·탈법은 하면 안 되는데.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면 얼른 나올 생각을 해야지, 왜 그 짓을 하느냐는 거예요?”
— 일부러 북한 경비정을 부르기 위해 한 겁니까.
“그기 인자 ‘뱃놈’ 소리 듣는 거예요. 옛날 상말로 ‘뱃놈’ 했거든요. 전통적으로 뱃사람들 수준이 무식하고 그래서 ‘뱃놈’ 소리 듣고 살아왔어요.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서 뭔지도 모르고 큰소리쳤다 카는 건 저도 이해가 안 가거든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게 말이 됩니까. 일단 안 들어가야죠. 북한 경비정이 오는 과정까지 시간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라면 거기 쳐 있지 말고 빨리 나와야지, 이기 기본 상식인데. 북한 배들이 침몰되기 직전인 상태로 거기까지 나오니까 남 선장이 약간 무시하고 ‘이 새끼들 뭐 이런 기 있나’ 카고. 내가 봤을 때는 만만한 것도 있고, 자존심도 상하니까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서 한 건 모르고 그렇게 했다 카니까 멘붕이 오는 거죠.”
“흥진호 운영·관리는 고 선장이 다 해”
— 흥진호와 연락도 안 되고 그런 게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해경에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등본상 선주인 우리한테 제일 먼저 연락합니다. 그럼 나는 고 선장한테 얘기해 주는 중개만 하는 건데, 이 배가 철수 날짜가 됐는데도 안 오니까 이상한 생각이 든 거죠. 아, 이게 침몰 아니면 사고가 났다.”
— 늦게 들어오는 일이 없었습니까.
“거의 없죠. 미끼하고 기름이 떨어지면 조업을 못하잖아요.”
— 감포항에선 흥진호에 대해 잘 모르던데요. 여기 안 들어옵니까.
“동해안엔 연승이 우리 배 하나밖에 없어요. 연승은 주로 남해 쪽으로 많이 가요. 여기가 연승이 조업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고. 단지 하는 건 대화퇴에서 복어 잡는 게 전부이지. 배도 잘 안 들어옵니다. 내가 ‘선장, 여기 가격이 잘 나간다’고 하면 들어오고. 나머지는 전부 제주도에서 갈치잡이를 하고. 아무리 좋은 고기라도 가격이 비싼 게 아니라요. 복어는 경북에서 탕을 많이 먹으니까 강구, 죽변, 후포에 많이 들어가죠.”
— 선원들의 정체에 대한 의혹도 있는데요.
“복어배는 나이 든 사람이 없어요. 70, 80 먹은 사람은 태워 주도 안 해요. 선원들이 보통 40 중반, 50 초반입니다. 베트남 젊은 애들 셋 있잖아요? 거 가보면 40 중반, 50 초반인데 안 젊겠어요? 배에서 내릴 때 작업복 벗고 깨끗한 옷 입는 게 당연한 거지. 저도 나이가 60 넘었지만, 집에 청바지 투성입니다. 나이 많으면 손이 빨리 안 움직입니다. 그러니 선급금을 4000만원씩 받죠. 프로야구 선수들 계약금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전문성이 있으니까. 많이 줄 때는 1억원도 줍니다.”
— 흥진호 선원들을 잘 압니까.
“외국인 선원은 선주가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우리가 몇 명 탔는지 알죠. 한국인 선원은 지(고 선장)가 제주도에서 오래 생활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알잖아요? 우리는 그 내용을 모르고, 숫자만. 공제를 들어가잖아요. 배는 선체 공제, 산업재해 같은 거를 안 하면 법적으로 출항이 안 돼요. 그건 우리가 다 해 주죠. 조업의 실체는 지가 다 하죠.”
— ‘북한 공작원이다’ ‘국정원 요원 또는 해군 정보요원이다’ 등 별 얘기가 다 있는데요.
“우리 해경이요, 선원들 출항시킬 때 보면 철저하게 합니다. 공부상에 있는 걸 확인하고, 보험이 돼 있는가 확인, 법적 문제 없는가 비교하고 확인하고 내보냅니다.”
— 후포항에 가면 흥진호 선장이나 선원들을 만날 수 있습니까.
“후포항에 다 있는데 ….”
— 고 선장은 이제 어떻게 한답니까.
“배가 가만히 있어도 1년에 8000만원씩 나갑니다. 목 수술을 해서 몸이 불편한데 지가 배를 끌고나간다고.”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② 흥진호 선장·선원 숙식 지원하는 후포항 다방 주인(56)
“간첩질 하려면 머리 좋아야 … 흥진호 선원들이 정말 북한 간첩이라면 이북은 벌써 망했다”
⊙ 후포항엔 흥진호보다 작은 어선들 다수도 S-band 레이더 장착
⊙ “배 타는 게 자랑인가? … 나 같아도 남편이 마스크 안 쓰고 내리면 혼낸다”
⊙ “흥진호 선장·선원 상당수가 혼자 사는데 없는 가족을 만드나? … 가정 있는 선원도 ‘사정’ 있어”
경주 감포항에서 흥진호의 법적 선주 전씨와 얘기를 마친 후 흥진호가 있는 경북 울진군 후포항으로 향했다. 11월 9일 오전, 후포항에 나갔다. 후포항 서편에서 어구 정비를 하던 60대 어민에게 흥진호 위치를 물었다. 그 어민은 “북한에서 온 배를 말하는 거냐?”면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 배는 여기 없다”고 말했다.
후포항 인근에 있는 포항해양경찰서 후포파출소에 갔다. 구석 회의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나온 파출소 직원 두 명에게 “어민들이 흥진호가 후포항에서 나갔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해경 직원은 “포항서에 물어보라”고 했다. “흥진호가 여기 있는지만 말해 달라”고 했지만, “언론 대응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포항서 홍보팀에 물어보라”며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이런 식으로 서너 차례 질문한 끝에 흥진호가 후포항에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흥진호처럼 독도까지 나가는 배는 그 정도 레이더 있어야”
다시 후포항에 갔다. 수협 제빙공장 근처에서 어구 손질을 하던 대○호(4.88톤) 선원에게 흥진호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 배가 바로 저기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상식적으로 엿새 만에 풀려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흥진호 위치를 확인하면서 그에게 흥진호가 일반 어선과 달리 고성능의 레이더 장비를 달고 있다는 항간의 의혹에 대해 물었다. 이 선원은 “내가 배를 타는 무식한 사람이지만 배에 레이더를 달지 말란 법은 없다는 걸로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 긴 걸 알파 레이더라고 하는데 한 3000만원 합니다. 돈이 없어서 쉽게 못 다는 거지, 레이더 여러 개 달면 좋죠. 부표 위치까지 정확하게 나오고. 우리야 배가 작고 멀리 나가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저 배(흥진호)처럼 독도까지 나가서 작업하는 배는 있어야죠.”
그의 말을 듣고 흥진호 부근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살폈다. 흥진호 옆 미○호(근해 통발 29톤)의 경우에도 흥진호와 유사한 탐지 장비들이 여러 개 있었다. 해○호(근해 채낚기 29톤)도 마찬가지였다. 이 밖에 후포항엔 흥진호와 규모가 같거나 조금 작은데도 레이더와 안테나3~4개씩 단 어선이 많았다. 이에 따르면 흥진호가 같은 규모의 어선보다 레이더를 과도하게 달고 있다는 주장은 실상을 모르는 소리에 불과한 셈이다.
“배 타는 거 알려지면 자식 얼굴에 똥칠”
흥진호에 갔다. ‘북한 공작선’ ‘문재인 정부의 비밀 지령 수행선’이란 의혹이 제기된 선박이지만 외관은 평범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배 곳곳엔 컵라면 박스와 생수병, 커피 캔 등이 담긴 쓰레기 자루가 있었다. 선수 쪽엔 타이어처럼 생긴 원형 고무 틀에 굵은 낚싯바늘이 달린 어구들이 쌓여 있었다. 우현엔 복어잡이 배를 가리키는 깃대들이 묶여 있었다. 조타실엔 선주와 선장, 기관장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판이 부착돼 있었다. 흥진호를 살피다가 발신자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박모씨로 적힌 택배 상자들을 발견했다. 한 상자의 수신인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 예주시장길 ○○수산 흥진호’였다. 그 위엔 ‘흥진호 돌선장’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또 다른 택배 상자의 수신인은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1○○○-○번지 ○다방 고○○’이었다. 흥진호의 실제 선주인 고씨의 성명이었다.
택배 상자에 적힌 다방에 갔다. 다방 종업원에게 “흥진호 선원이 여기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종업원은 다방 주인(56)을 불렀다. 다른 손님들과 동석해 얘기하던 다방 주인은 “여기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우째 찾는교?” “어디서 왔는교?”라며 경계하다가 잠시 후 흥진호 선원들의 사정을 얘기했다.
“세상에, 선원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닙니다. 배로 하루 벌어가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나도 귀찮아 죽겠니더. 여기 와 밥 처먹어 싸서.”
— 누가요.
“선원들요. 가족이 있는교 그래.”
— 여기서 밥을 준다고요?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여기 20대, 30대가 어딨는교? 기사를 그래 썼는 거야. 20대인지, 30대인지 눈깔이 있으면 한번 보라고 해요.”
— 마스크를 쓰고 나왔으니까 나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에 내 서방이 마스크 안 쓰고 나오면요, 죽여니다. 자식 얼굴에 똥칠할 일 있는교? 아바이 배 타는 게 자랑인교?”
— 그게 흉입니까,
“요새 애들 민감한 거 모른교? 그 손녀까지 다 있어요. ‘느그 할배 배 타가 이북 갔다 왔나?’고 하면 그거 못 견딥니더. 그런 추측 기사를 쓰면 되는교? 거기 20살 먹은 사람 있으면 내가 아저씨 딸 할게요. 선원들을 간첩이라고 하잖아? 내가 정신 감정받으라고 했다. 그거 전부 또라이인데 뭔 간첩이고? 간첩 하려면 대가리가 좋아야 간첩을 하잖아? 맞잖아요? 그것들 돈 10원도 없다. 걸뱅이야. 갸들도 움직여야 먹고사는데 무슨 강도질한 것도 아니고.”
흥진호 선원, “뱃놈들은 깨끗한 옷 입으면 안 되나?”
— 북한 바다로 넘어갔잖아요.
“고기가 그때 억수로 안 좋았는데, 그물이 떠내려가.”
— 북한 바다에 어구를 설치했다잖아요.
“10년, 20년 배 타 보소. 다 제정신이 아니지. 파도가 한 번씩 칠 때는 ‘아이고, 나는 죽었다’ 그러지. 전부 제정신이 아닌데, 이북에 가서 뭐 하겠는교? 흥진호 야들이 정말 간첩 같으면 이북은 벌써 망했니더. 똑바로 된 아가 어딨는교? 전부 XX이지. 야들 가 봤자 아오지 탄광 일도 못 시킨다. 전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 선원들, 지금 어딨습니까.
“배는 여기 있고요. 밥 묵으러 올 때 있고, 안 올 때 있고. 선주하고 선장은 이따 3시에 해경 조사 받는다고 포항에 갔고.”
— 왜 밥을 공짜로 줍니까.
“아는 사람인데 우짜는교? 선주 같은 경우는 안 지 10년 정도 됐어요. 선장은 팔이 하나 없다 보니까 고기라도 많이 잡아 와야 선주들이 이 사람 쓰려고 하지. 팔도 하나 없는데, 자꾸 고기도 못 잡고 그러면 누가 쓰노?”
— 장애 아니에요?
“있긴 있는데 아예 못 쓰니까. 그것도 배 타다가. 지장 찍으라고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여야 지장을 찍지. 불쌍한 사람이다. 고 선장은 해경 조사받으러 갈 때 태워다 달라고 해서 가는데 차 뒤에서 울더라. 펑펑 우는 거 보이께 내 너무 안쓰럽더라. 빚내서 하는데.”
다방 주인과 얘기하던 도중 흥진호 선원 송모(56)씨가 다방에 왔다. 송씨는 다방 주인이 기자를 소개하자 “당신 같은 사람하고 말하기 싫다”고 했다. 이어서 제주도 방언을 섞어 가며 “뱃놈들은 깔끔하게 옷 입으면 안 되나?” “작업복 입고 나와야 하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보고 간첩이라고? 뱃놈들은 깨끗한 옷 입으면 안 되고. 우리보고 빨갱이? 야! 뱃놈 중에 20대가 어딨어? 지네들은 네꾸다이 매니까 눈깔에 뵈는 게 없어? 기자고 뭐고. (다방 주인을 향해) 나 제주도 가야 하니까 차 좀 태워 줘.”
“혼자 사는 선원 많아 … 없는 가족 만들어 나가야 하나?”
송씨를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온 다방 주인과 다시 얘기했다. 다방 주인은 고 선장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돌 선장 등을 보면, 무슨 증후군인데. 수술을 해서 배를 못 타니까 친구인 남 선장을 시켰는데 ….”
— 왜 고 선장을 ‘돌 선장’이라고 합니까.
“대가리가 ‘돌’이라서 ‘돌 선장’이라고. ‘돌’이 이번에 해 갖고 와야 숨통이 좀 트이는데, 이래 됐다니까.”
— 형편이 안 좋은가 봐요?
“왜 남의 명의로 배를 인수했겠는교? 돈이 있으면 남 앞으로 하겠는교? 지는 이번에 갚고 명의를 당겨 가려고 했는데 또 이 지랄이 났으니까. ‘누나, 나는 남의 배를 타야 할 팔자다’라고 해서 ‘돌아, 용기 잃지 마라. 이겨내야 한다’고 했니더. 선원들 밥 먹으러 오면 ‘너희가 돌 선장 좀 도와줘라’라고 해요. 선원들은 다른 데로 가면 돼요. 죽는 건 선주만 죽는 거지.”
— 선원들은 고 선장하고 오래 일했습니까.
“몇 년 탄 사람도 있고. 나중에 만나면 손 한번 보소. 그 손으로 여자 스타킹 만지면 올이 다 나가니더. 그 정도로 손이 거칩니더.”
— 나올 때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의심하는 거 아닙니까. 가족들도 안 나오고.
“선원 중에 ○○는 각시가 심장병이 있으니까 놀랄까 봐 안 알렸어요. 아까 송씨는 성질 봤죠? 마누라한테 ‘오지 말라’고 하니까 안 왔죠. ○○는 집이 부산인데, 얼굴 나왔다고 각시가 집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니까. 남 선장도 혼자 있어. 식구가 있어야 나오죠. 갑판에서 일하는 갸도 아무도 없고. 없는 가족을 만들어 나오는교, 사돈의 팔촌을 나오라 카는교? 내 같아도 안 갑니더. 넘사시럽구로. 강○○는 손녀가 셋이나 있단 말이에요. 얼굴 팔리면 학교에서 결딴난다. 일주일 만에 왔는 걸 가족이 와가 우예 한단 말인교? 가족들은 안 오고, 내가 보호자 입장에서 안 나갔는교.”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③ 흥진호 취사장 강◦◦(52)씨
“어선 선원으로 알려지는 게 두려워 마스크 먼저 요구 … 지금까지 가족 얼굴도 못 봐”
⊙ “북한 조사관, 방에 들어올 때 노크하고 배에서 약도 가져다줘”
⊙ “북한 방송, ‘악녀 박근혜’를 ‘수장’시켜야 한다!”
⊙ “원산 체류 당시 밖에서 총성 들려 불안했다”
11월 9일 오후 9시, 다시 다방에 갔다. 다방 주인이 흥진호 취사장(속칭 ‘도모장’) 강○○씨를 설득해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후포항에 온 이후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강씨는 북한 경비정이 흥진호를 나포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울릉도에서 나와 독도 부근에서 작업했는데, 복어가 안 잡혀서 이동했죠. 저는 밑에서 일하니까 어디로 가는지 몰랐죠. 21일 새벽 12~1시 사이에 밑에서 자고 있는데, 눈을 떠보니 총 든 사람이 앞에 있는 겁니다. ‘옷 챙겨서 나오라우’라면서 선수로 모이래요. 정신이 없었죠. 사느냐 죽느냐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북한 조사관, ‘정당 가입’ ‘주택 소유 여부’ ‘제주도 아파트 가격’ 물어봐”
— 북한 원산에 도착했을 때 어디에 수용됐습니까.
“첫날은 동명여관인데, 거기는 ‘려관’이라고 썼더라고요. 둘째 날부터는 그 옆에 건물로 옮겼죠.”
— 북한 조사관들이 고압적으로 대하진 않았습니까.
“원산에 도착해서 숙소로 갈 때는 ‘머리 숙이라우’라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는 칫솔, 치약도 주고. 담배하고 물도 주고. 배에 있는 물건도 가져다줬어요. 제가 부정맥이 있고, 심근경색 때문에 포항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있은 적도 있어서 약을 먹는데, 배에서 약을 안 가져왔어요. 무서웠지만 몸이 안 좋아서 담당자한테 ‘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못 찾아서 같이 가 찾았죠. 방에 들어올 때도 노크를 하고 들어오고. 아침 먹기 전에 조사관이 ‘밥 먹을 준비 해라’ 그래 하고.”
— 북한 억류 당시 조사를 많이 받았습니까.
“하루에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됐어요. 한 3일 동안 그렇게 받았는데, 신원, 배를 타게 된 동기를 물어봤어요.”
— 그 외에 남한 실상에 관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저보고 ‘무슨 당에 가입했느냐?’고 물어서 ‘없다’고 했죠. 또 뭐 ‘집이 있느냐?’ ‘왜 집을 장만하지 못했느냐?’ ‘제주도에서 32평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까.
“주로 TV를 봤는데, 북한 뉴스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악녀’라고 하면서 ‘수장’시켜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TV에서 영화도 자주 틀어 줬는데, 그게 우리 60~70년대 수준이었어요.”
— 못 돌아올까 봐 불안하진 않았습니까.
“처음엔 불안했는데, 나중에 보내 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 어떻게요.
“저랑 같이 방을 쓰던 국○○(42)가 피부병이 있어요. 조사관에게 배에서 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조사관이 ‘1~2일 기다려 보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우리가 잘못했으면 때리거나 고문했어야 하는데 왜 잘 대해 줬는지 모르겠다”
— 북한에 있을 때 특이한 일은 없었습니까.
“거기는 뭐 시계, 달력이 없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옆방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전이 되기도 하고 밖에서 총소리도 나고 그랬는데 ….”
— 총소리를 들었다고요?
“예,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총소리가 나더라고요. 그걸 들으니까 또 무섭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 북한이 풀어 줄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27일 10시쯤에 주민등록증과 핸드폰을 주고 배에 태웠는데, 창고 같은 곳이 있거든요. 그게 한 1.5평 정도 되는데 거기에 10명을 집어넣고 일절 말을 못하게 했다니까요.”
— 북한에 뺏긴 건 없습니까.
“돌아와서 해경 조사받을 때 ‘북한에서 달러를 달라고 했느냐’고 물어봤는데, 달러가 어딨습니까?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현금이라고 해 봐야 몇만 원 있었고.”
— 북한이 잘해준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못했으면 데리고 가서 때리든지, 고문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
— 평소 북한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 배운 대로죠. ‘공산당’ ‘못 산다’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정도요.”
— 송환 후 배에서 내릴 때 왜 마스크를 썼습니까.
“그건 솔직히 제가 마스크를 달라고 했습니다. 어선 선원이라는 게 알려지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잖아요. 오는 날, 속초항에 기자들이 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겁이 나서 나는 못 내린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내린다고 했는데, 내가 해경에 마스크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이제 50대 초반이지만 일찍 결혼해서 손녀가 셋입니다. 얘들이 학교에 다니는데, 그걸로 놀림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기관장 얼굴이 알려졌는데, 얼굴 팔렸다고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해서 부산에 갔다가 와서 지금 여기서 지내지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얼굴이 전부 공개됐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혹시나 얼굴 팔릴까 봐 돌아오고 나서도 저는 가족들 얼굴 한 번 못 봤습니다.”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④ 흥진호 실 선주·전 선장 고◦◦(47)씨
“한국인 선원 막내가 43세 … 나머지는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 “복어는 원래 선단 조업이지만 선장이 ‘단가’ 높게 받으려고 단독 조업 나가”
⊙ “복어철 아니다? 작년에도 제주도 배 30여 척과 함께 복어 조업 나갔다”
⊙ “사고 가능성 예상 못해 … 허위보고 반성하고 있다”
⊙ “용도 변경 과정에서 갈치·복어잡이에 필요한 중고 레이더 추가 설치”
흥진호 취사장 강씨와 얘기하던 중, 오후 10시쯤에 포항해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온 흥진호 실소유주 고○○(47)씨와 선장 남○○(47)씨가 다방에 들어왔다. 고씨는 기자를 보고 “할 말이 없다”며 이내 숙소로 갔다. 뒤 돌아가는 그의 목 부분엔 실제로 수술 자국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간 고씨는 잠시 후 선장 남씨에게 전화해 “아까 그 기자도 사기꾼이니까 괜히 얘기 섞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남씨와 잠깐 얘기했지만, 조사를 받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붙잡고 얘기를 이어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선장 남씨와 취사장 강씨, 다방 주인 등은 술을 한잔해야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고서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오후 12시 30분, 다시 다방에 갔다. 선주 고씨가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기사가 나가 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게 없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1시간가량 설득한 끝에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곧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며 “간단하게 얘기하자”고 했다.
“추석 지나면 제주도 갈치잡이 배들이 복어 잡으러 올라간다”
고씨의 고향은 전남 여수시 돌산읍이다. 고향 이름 탓에 그의 별명은 ‘돌 선장’이 됐다. 키가 177~180cm가량 되는 고씨는 인상이 날카로웠다. 그는 자신이 제1 특수전여단에서 군 복무를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 흥진호 실소유주입니까.
“법적으로는 전 조합장이 선주이고, 제가 실소유주로서 관리하고 있죠.”
— 흥진호가 북한에 나포되기 전, 마지막으로 교신한 게 언제입니까.
“위성전화로 20일에 통화했어요.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항하기 전에 조타기 유압펌프 상태가 안 좋다고 했거든요. 1차 통화 때는 ‘바쁘다’면서 끊었고, 40분 뒤 2차 통화에서는 ‘대화퇴 어장 남쪽에 있다. 어제보다 어획량은 많지만, 어장 사고(어구 끊김)가 잦다. 유압 펌프는 이상 없다’고 했어요.”
— 복어 철이 아닌데 왜 10월부터 복어잡이에 나선 겁니까.
“복어는 원래 선단 작업인데, 선장이 작업 의욕이 있어서요. 다른 복어 배들이 오기 전에 많이 잡아서 ‘단가’를 높게 받으려는 욕심에 갔는데 ….”
— 선단 조업이라면, 예전에는 다른 배들과 같이 갔다는 얘기입니까.
“보통 제주도에서 갈치잡이 하던 배들이 추석이 지나면 올라와서 복어잡이를 합니다. 작년에도 10월에 올라왔어요. 그때 같이 했던 배들이 동양호, 선천호, 다건호, 해광호, 진흥호, 진양호, 동진호, 증진호 등 30여 척이었습니다.”
“22일 당일 수십 번 위성전화로 통화 시도 … 사고 가능성은 생각지 못해”
— 그럼 왜 작년에 같이 조업했던 배들이 올해는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제주도 갈치 상황이 좋아서요. 추석 전까지 아주 좋아서 다른 배들이 안 온 거예요.”
— 흥진호는 왜 먼저 올라왔습니까.
“선장이 10월 8일 출항하면서 다른 배들은 나갈 준비가 안 됐다고. 일찍 가면 복어 어획량이 많고, 단독으로 조업하면 ‘단가’도 높게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욕심으로 간 거예요.”
— 왜 흥진호와 22일에 위성전화로 통화했다고 해경에 허위보고를 했습니까.
“제가 복어 연승배 선장만 20년 이상 했어요. 배를 안 타도 작업 과정이 눈에 훤히 보이죠. 작업을 하다 보면 위치 보고를 제때 못하게 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기관이 고장 났다든지, 어구 손실이 …. 조업을 하지 못하고, 어구 재정비를 하게 되면 선장도 동참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위치 보고를 놓치면 나중에 위성전화로 해야 하는데, 위성전화 안테나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위성전화로 수십 번 걸었는데 받질 않았어요. 실제로는 이미 북한에 나포됐으니까 받을 수 없었던 거지만, 저는 작업하면서 선장이 위성전화 안테나를 계속 볼 수는 없으니까 위치 보고를 놓쳤구나 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선장이 아프거나 하면 주위 배들이 대신 보고를 하기도 하는데, 이 배는 선단이 아닌 단독 조업이었잖아요. 20일 통화를 토대로 위치를 추정해서 해경에 ‘안전 조업’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죠.”
— 사고 가능성을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까.
“사고 가능성을 예상하면서도 허위 보고를 했다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죠. 알면서 허위로 보고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23일부터 ‘사고가 났구나!’라고 생각했죠. 화재나 기관 고장, 무전 장비 고장, 배터리 방전이 아닐까 예상했습니다. 허위보고를 한 건 뭐라 해도 제가 죄를 지은 거죠. 혼선을 빚게 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계속 반성하고 있습니다.”
— 북한에 나포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 언제부터 ‘나포’를 떠올렸습니까.
“수색 작업이 끝난 25일부터 북한에 끌려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나포된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북한, 흥진호 송환 결정’이란 소식을 접했을 때 놀라지 않았습니까.
“믿기지 않았죠. 해경에 허위보고를 한 게 생각나고, 사업적으로 타격을 받을 게 걱정도 되고.”
“성수기엔 하루에 4~5톤 잡아 … 수협 위탁 판매 기록 보면 나온다”
— 흥진호가 돌아온 이후 많은 의혹이 제기됐는데요.
“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 이익을 위해 함부로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흘 동안 잡은 복어가 3.5톤이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나게 잡은 것처럼 얘기하는데, 성수기엔 하루에 4~5톤 정도 잡아요. 한 번 출항하면 보통 30톤은 잡습니다. 작년엔 35톤까지 잡았어요. 조업일지, 수협 위탁판매 기록도 다 있어요. 3.5톤이 엄청난 물량이라고 하는 건 모르는 소리예요.”
— 선원들의 신원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참 …. 20·30대 선원이 있다고 하는데 선장을 포함해서 10명 중 베트남 선원이 3명입니다. 이 중 두 명은 27살이고, 다른 한 명은 41살이에요. 한국 선원 중에선 가장 어린 사람이 1975년생, 우리 나이로 43살입니다. 어디 20·30대가 있습니까. 해경 출항일지, 승선확인서 보면 선원들 경력이 다 나옵니다.”
“레이더 가격은 중고품 시세로 5000만원도 안 돼”
— 흥진호가 같은 규모의 어선보다 레이더가 과도하게 많다는 주장도 있고요.
“우리 배 장비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배가 원래는 장어를 잡는 배였어요. 저걸 제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복어잡이, 갈치잡이 연승에 필요한 장비를 추가 설치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예비용 성격도 있고요. 요즘 새로 만든 어선 보면 같은 기종의 레이더를 두 대 이상 달고 나옵니다.”
— 레이더 가격은 얼마입니까.
“다 해도 요즘 중고품 시세로는 5000만원이 안 될 거예요.”
— 왜 흥진호 선원 가족들은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먼바다로 나가면 휴대전화가 안 터져요. 위성전화로 통화해야 하는데 선원들이 쓰는 일은 거의 없죠. 요금도 비싸고요. 한 번 나가면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연락이 없어도 가족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는 거죠.”
— 남 선장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원망을 왜 안 하겠소? 그래도 선장이 ‘선주’의 상황을 아니까 위험을 감수하고 그렇게 한 거잖아요? 많이 안타깝죠.”
— 흥진호는 1년 동안 조업할 수 없게 될 거라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흥진호를 인수하면서 받은 대출금 이자만 한 달에 500만원입니다. 부도 안 나려면 다른 배를 타야겠죠. 오랜 시간 앉아 있지도 못하지만, 가진 유일한 기술이 바다에서 고기 잡는 거니까요.”
— 몸이 불편합니까.
“제가 얼마 전에 대수술을 받았어요. 후종인대골화증인데, 포항 우리들병원에서 6시간 동안 수술했어요. 그 후유증 때문에 팔·다리가 좋지 않아요. 일을 할 수 없으니까 3월부터 남 선장한테 맡긴 거예요.”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⑤ 흥진호 선장 남◦◦(47)씨
“월선(越線) 조업에 대한 처벌은 달게 받겠지만, 선원들 위해 배는 움직일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 “중학교 2학년 때 ‘고아’ 돼 승선 … 올해로 경력 34년 돼”
⊙ “승선 3년째에 오른팔 다쳐 장애 2급 판정 … ‘열등감’에 실적 올리려 노력”
⊙ “GPS 끄면 바다에서 길 못 찾아 … 켜지 않은 건 AIS(선박식별장치)”
⊙ “북한 해역 쪽으로 갈수록 원하는 수온과 복어 어군 탐지돼”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 향해 “간나 새끼”라고 욕하고 충돌 위협까지 해
⊙ 북한 경비정 보고 ‘해적’인 줄 알고 도주 … 1시간가량 추격하면서도 북한 경비정은 왜 사격 안 했나?
⊙ “복어를 사료로 쓰라고 하자 북한 조사관이 ‘우리 가축들 다 죽이려는 반동 새끼 아니야?’라고 농담”
11월 10일, 오후 3시 30분, 흥진호 실소유주 고씨와의 얘기를 끝낸 후 선장 남씨의 숙소로 갔다. 방문을 열자 베트남 선원 3명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 너머 방 귀퉁이엔 남씨가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의 옆엔 신문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찐 고구마가 있었다. 이미 상당량을 먹은 듯 고구마 껍질이 쌓여 있었다. 그 외에 이들 방에는 생수병과 안성탕면 봉지, 커피믹스 박스와 옷가지만 있을 뿐 눈에 띄는 물품이 없었다. 기자가 들어가자 남씨가 잠시 일어섰다. 하늘색 사각팬티에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는 피곤한 듯 몸을 벽에 기대고 얘기를 시작했다.
— 1970년생이죠?
“원래는 닭띠(1969년생)인데, 호적에 늦게 올리는 바람에 1970년생으로 됐어요.”
— 배 탄 건 얼마나 됐습니까.
“34년 됐죠.”
— 1970년생인데 경력이 그렇게 됩니까.
“내가 15살 때부터 배를 탔으니까요.”
— 중학교 2학년 때부터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끝나고 얼마 안 돼 배를 탔으니까.”
— 어린 나이에 배를 탔네요?
“그때 뭐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배를 탔죠.”
— 양친 다 돌아가셨습니까.
“예. 어머니는 저 낳고 바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죠. 어릴 때는 부모가 있어야 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고향이 어디입니까.
“태어난 건 경남 통영에서인데, 학교 다닐 때는 삼천포에서 지내다가 승선했죠.”
“몸 불편해 고기 못 잡으면 남들이 낮춰 본다고 생각해 욕심 부려”
— 현재 거주지는 어디입니까.
“집이 없고 혼자 사니까 형식적으로 울진 지인 집에다가 해 놓고. 통지서나 그런 게 날아오면 받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배에서 내리면 이런 식으로 선원들하고 같이 먹고 자고 하고. 내는 가정이 없으니까. 매년 그런 식으로 생활해 왔죠.”
— 결혼 안 했습니까.
“한 번 했는데 실패했죠. 그것도 형식적으로 지인 통해서 한국 여자가 아니고 중국 여자랑 혼인신고를 한 번 한 일이 있죠. 결혼 생활도 아니고. 그래 가지고 뭐 법적으로 이혼해서.”
— 결혼 생활은 몇 년이나 지속됐습니까.
“한 2~3년 이렇게 올려놓고 있다가 나머지는 혼자 산 거죠.”
— 오른팔은 언제 다친 겁니까.
“배 탄 지 얼마 안 돼 다쳤죠. 인생에 굴곡이 너무 많아요.”
— 배에서 팔을 다쳤습니까.
“어구를 올리는 양망기(揚網機,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계)에 팔이 끌려 들어가서 계속 돌았죠. 그기 한 17살인가. 그때는 보험 제도가 잘 안 돼 있어서 돈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 치료는 안 받았습니까.
“많이 다녔죠. 부산 백병원 같은 데서.”
— 치료가 안 됐어요?
“수술을 안 했어요. 물리치료를 했는데, 돈이 있어야 계속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있는 사람들 얘기지 없는 놈이 계속 병원 다니면서 물리치료 받을 돈이 당시에 어딨습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인자 배를 타야 하는데, 몸은 이래 됐고. 머리도 약간 이상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뭐고? 자살 시도도 많이 했죠. 내 몸이 재산인데, 안 그렇습니까?”
— 약을 먹었습니까.
“과다 복용을 자주 했는데, 안 죽더라고. 아이고, 내가 살 팔자인가 보다 싶어서 집에 좀 있으니까 어릴 때 탔던 배 선장이 찾아왔더라고요. 그 사람이 ‘팔만 안 좋은 거 아니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가자’고 해서 희망을 갖고 그때부터 다시 배를 탔죠. 한쪽 팔이 불편하니까 남들하고 일이 똑같이 되겠습니까? 안 되지. 눈치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듣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 몸이 불편하다고요?
“그렇죠. 어릴 때는 몸이 안 따라줘서 일을 못하니까. 그런 속에서도 면허를 따고 선장을 했죠. 인생에 굴곡이 많습니다.”
— 지금 오른팔을 못 씁니까.
“엄지와 검지엔 힘이 좀 있어. 혼자 벌리진 못해. 왼손으로 벌려 줘야 해.”
— 배에서 일하려면 불편했을 텐데, 선장 면허를 따기 전엔 배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도모장을 했죠. 밥한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똑같이 해요. 남들 잘 때 밥하고.”
— 장애 등급은요?
“2급이죠. 그란께로 열등감 있지 않십니까? 한쪽 팔을 못 쓰니까, 욕심에. 저쪽은 건강한 사람이고, 나는 장애인인데 내가 고기를 못 잡으면 낮춰보고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은께는. 그걸 열등감이라고 합니까, 뭐라 캅니까? 그란께로 평소에도 실적을 올리려고 했고, 이번에는 평소보다 욕심이 과해서 넘어간 거고.”
“선박 위치 허위 보고는 복어잡이 어선 관행”
— 선장 경력은 얼마나 됩니까.
“만 17년이요.”
— 매년 대화퇴 어장으로 조업을 나간 베테랑 선장이라고요?
“예. 내 나이에 이렇게 배를 오래 탄 사람은 없을 거예요.”
— 베테랑 선장이 왜 어업정보통신국에 위치 보고를 허위로 했습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기, 배는 계속 움직이고 있고. 계속 한 자리에 있으면 위도 경도가 나오겠지만, 정확한 위치를 제 시각에 보고하는 배는 없습니다. 작업하면 배가 계속 움직이고, 시간을 놓칠 때가 많거든요. 오후 4시에 보고를 하는데 못하면 저들이 전화하고, 우리도 하고 그러거든요. 늦어지면 아무거나 그 대화퇴 범위 안으로만 위치 보고를 하는 거죠. 허위 보고이긴 한데, 우리는 몸에 밴 그대로 위치 보고를 하는 거죠. 정확하게 위치 보고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상 대강 그 뭐이고, 대화퇴 중심을 두고 ….”
— 고의적인 건 아니었다?
“아니죠. 인자 11~12일 날 울릉도 들어가 생각도 많이 했죠. 날짜는 가고. 또 그 선원들 눈치도 보여서 16일 날 출항했죠. 첫 작업이 북위 38도· 동경 133도, 북방한계선 남쪽이었는데 진짜 복어 1마리 잡았어요. 그렇게 잡은 건 처음이에요.”
— 34년 동안 배를 타면서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처음이었어요. 어이가 없더라고. 거기서 1마리 잡고 북북동으로 이동했죠.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에는 여기(대화퇴)서 작업했거든요. 여기서 1마리 잡고, 또 여기(한일중간수역과 북한 수역 사이)에 가상선이 하나 그려집니다. 여기선 작업할 수 있지. 내가 허위보고했을 때 위치가 이 정도 됩니다. 여기가 그 뭐고, 대화퇴인께로. 내가 이렇게 올라갔어요.”
— 북한 해역에 넘어갈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어구를 놓으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조류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수온에 따라서는 끊어지기도 하거든요. 어구 150통(1통 길이는 0.25마일)을 이렇게 죽 놓는데, 위치마다 수온이 다르면 어구가 끊어져요. 한쪽은 찬물이고, 한쪽은 뜨신 물이니까 서로가 당겨서 끊긴다고. 그날도 어구가 끊겨서 어군 탐지기로 찍어 봤더니 어구가 북방한계선쯤에 있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갔죠.”
— 그러다가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습니까.
“다른 데는 고기가 없고. 대화퇴 북서쪽(북한 해역 방향)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일본 해역으로 갑니까, 러시아 해역으로 가겠습니까?”
— 그래서 가장 악질적인 북한으로 갔다?
“더 악질은 일본입니다.”
— 일본은 벌금이나 매기고 행정처분만 하지만 북한은 안 보내 주잖아요?
“왜 안 보내 줘? 보내 줬으니까 여기 왔죠, 뭐.”
— 북한에 들어간 건 언제입니까.
“여기(대화퇴)에 중국 어선들이 어마어마하게 있고, 북한 작은 배들도 있고. 처음에는 어구를 깔다 보니까 북한 해역쪽에서 내가 원하는 수온이 나오고 어군이 탐지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모험을 시작했죠.”
— GPS는 왜 껐습니까.
“GPS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그게 없으면 길을 못 찾아요. GPS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AIS(선박식별장치)를 켜지 않은 거죠. AIS는 다른 배도 함께 달고 있어야 정보를 공유하는 건데요. 동해엔 AIS를 단 배가 몇 척 없어요. 100척 중 10척이나 될까. 여기 동네 돌아다니면서 ‘혹시 AIS 다셨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없으니까 우리 배만 AIS를 켜 봤자 아무 쓸데없는 거예요.”
— 북한 바다로 넘어갈 때 불안하지 않았습니까.
“북한 경비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15년 전에는 배 자체가 없었으니까. 북한 배들이 작업을 안 했다니까요. 작으니까 여기까지 나오는 배가 없었어요. 완전히 암흑이다, 암흑.”
— 배가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넘어간 거네요.
“예.”
북한 어선 향해 “간나 새끼, 한 번 더 자르면 내가 절대 용서 안 하겠어”라고 위협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싸웠죠?
“예.”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마주쳤으면 바로 나와야지, 왜 싸웁니까.
“물론 즈그 나라에서 작업하는 거지만 넘의 어구에 손을 대면 안 되지.”
— 고의로?
“우리 깃에 달린 반짝반짝거리는 거, 이게 밤에 찾기 쉽게 하려고 달아 놓은 건데 그걸 대나무로 쳐 뿐다니까. 어구가 엉켜서 끊기고. 그런 부분에서 성이 나서 (북한 어선들이) 잘랐지 않나.”
— 북한 어선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그랬지. ‘간나 새끼, 한 번 더 자르면 내가 절대 용서 안 하겠어.’”
— 북한 어선은 아무 말 없던가요.
“예. 내가 좀 위협을 했죠. 배를 받아 버리려고. 배를 가까이 붙여서 위협을 했죠.”
— 북한 해역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본인의 행동이 이해됩니까.
“일단 이유야 어떻든 간에 (북한 배들이)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 되지.”
— 왜 그렇게 욕심을 냈습니까.
“아까 1마리 잡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기를 못 잡으면 빵이에요. 11~12일에 150kg 잡고, 16~17일에 빵 차고.”
— 복어 150kg은 얼마에 팔았습니까.
“그거 뭐 60만원 정도. 내도 힘들고, 선주도 힘들고, 세금도 내야 하고, 선원들 돈도 줘야 하고. 한 번 못 잡으면 엄청난 부담감이 생겨요. 책임감이 없을 수 없죠. 그거 때문에 무리하게 작업을 했죠.”
— 북한 어선과 마주친 뒤에라도 나왔어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 어선이 신고해도 경비정이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북한 경비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가상선을 넘어갈 생각이 없었지. 다른 데는 어군 탐지 기록이 없는데, 요리 살짝 넘어가 본게는 어군이 있더라고.”
— 넘어가서 많이 잡았습니까.
“총 3일 해서 3.5톤이면 많이 잡은 게 아니고. 하루에 최하 못 잡아도 2톤 이상, 3일 했으면 못해도 6톤 정도 잡아야 하는데 못 잡았죠.”
— 북한 바다에도 복어가 얼마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거 잡으려고 그 위험을 감수했다는 얘기입니까.
“1마리보다는 안 낫습니까. 24시간 해서 1마리 잡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생각을 한번 해 보십시오. 고기가 점점 나아지는 추세였어요.”
— 그 와중에 북한 경비정이 왔죠?
“중국 저인망. 배가 완전 중국 저인망 어선처럼 생겼어요. 그때 시각이 21일 자정이나 됐는데, 내는 가까이 온 줄도 몰랐어요. 날이 좋아서 레이더도 꺼 놨거든. 제일 작은 레이더 그거 하나만 켜 놨는데, 조타석 왼쪽 옆에 있으니까 항해할 때 말고 작업할 때는 잘 안 봐요.”
— 그럼 북한 경비정은 레이더가 아니라 육안으로 확인한 거예요?
“바로 옆에 5m 정도. 다 보였어요, 그거. ‘무슨 사이렌을 울리나?’ 해서 보니까 저것들이 다 총을 든 거예요.”
북한, 경비정 1척 추가해 단정 띄워 흥진호 정선시켜
— 제복을 입고 있었죠?
“얄궂은 북한 옷. 내는 북한군을 위장한 중국 저인망 배인 줄 알았어요. 원래 임검하는 배라면 총을 소지 안 합니다. 민간인을 상대하는데 굳이 왜 총을 갖고 있겠느냐고요? 이것들은 막 얄궂은 씨X 폐선 비슷한 거 끌고 와가지고 총을 들고 있는데, 그거 사람 안 놀라겠십니까, 새벽에? 사람 깜짝 놀래삐죠. 이거 뭐 경비함정처럼 생겼으면 내가 잘못했네 하겠지만, 배는 칠도 싹 다 벗겨지삐고, 녹 다 슬어서 폐선 비스름한 거 끌고 와서 총을 들고 있으니까 도망갔죠.”
— 1시간 정도 도망갔죠? 그 사이에 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까.
“구조 요청을 할라카면 복잡하죠.”
—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단하게 구조 요청을 해경과 해군에 보낼 수 있다는데요.
“비상 주파수가 따로 돼 있습니다. SSB에 장거리 주파수 두 개가 있는데. 내는 한 번도 그걸 실험해 본 적이 없십니다. 그걸 또 몰라. 교육을 받으러 가도 그건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내가 실험해 볼 사항도 아니고.”
— 그래도 그렇게 위급한 상황인데?
“배가 직선거리로 가는 게 아니고. 저 배들이 우리보다 속력이 빨라요. 직선으로 가면 내가 따라잡히죠. 그러면 내는 어떻게 가야겠습니까?”
— 지그재그로?
“그렇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건 그 길이다. 배가 가까워지면 한 번 뺑 돌립니다. 그러면 멀어져. 또 가까워지면 반대쪽으로 돌리고. 그럴 때 내가 한눈을 팔다가 조타기를 놓치면 배가 확 넘어가죠.”
— 다른 선원에게 구조 요청하라고 시켰어야죠.
“선원들요? 그 뭐고 선실에 다 들어가라 했는데예.”
— 흥진호 최고 속도는?
“8~9노트.”
— 북한 경비정은요?
“한 12~13노트? 엄청 빠르죠.”
— 북한 경비정 입장에선 흥진호가 어떤 배인지 모르잖아요. 정체불명의 괴선박이 도주하는데 왜 사격을 안 했을까요.
“그것도 무슨 빈 총만 들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씨×, 총알도 장전 안 되고 폼으로 총만 들고 있는가?”
— 신고를 받고 이렇게 먼바다까지 나왔는데, 빈 총을 들고 왔겠습니까. 북한 배가 총을 쏠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했습니까.
“우리나라 TV에서 보던 북한 경비정처럼 생겼으면 바로 정선하죠. 도망갈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건 얄궂은 30년 이상 된 썩은 배가 와서. 내는 솔직히 50:50으로 본 기요. 잡힌 다음에도 선원들한테 ‘북한 인민군을 위장한 해적선일 수 있다. 비싼 장비만 떼 갈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자’라고 얘기했어요.”
— 어떻게 잡혔습니까.
“인자 경비정 하나가 더 왔죠. 두 척이 되니까 ‘아, 이거 해적선 아닌가’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인자 50:50으로. 북한 배가 요래 있고, 갑판장을 시켜서 줄을 쳤죠. 추진기에 감기면 못 따라오니까. 근데 이기 싹 치고 가 버리더라고. 좀 있은게는 한 배가 더 오더라고. 거기서 단정을 띄워서 우리 배에 올라왔죠.”
— 추격 당시 북한 경비정이 방송은 안 했습니까.
“라이트만 계속 비췄죠.”
“원산 상륙 후 아오지 탄광 가는 줄 알았다가 번화가로 가니 의아했다”
—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선원 A씨는 북한 억류 당시 여인숙과 같은 ‘허름한 숙소’에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남 선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산 동명호텔에 묵었다고 말했죠? 왜 숙소가 다른 겁니까.
“첫날엔 동명호텔에 갔어요. 거기는 따신 물도 바로 나오고. 그게 타워 형식으로 돼 있는데, 들어가면 탁구하는 시설도 있고. 1층은 식당, 2층은 뭐, 3층은 뭐, 6층은 당구장 뭐 이런데. 들어가니까 남자 1명, 여자 1명이 탁구를 하고 있더라고. 둘째 날부터 묵은 곳은 그 근처에 있는데 12~13층 정도 돼요. 크기가 비슷한데, 인테리어가 쪼께 안 좋더라고.”
— 첫날엔 동명여관에 있었고, 그 다음 날엔 옆 건물로?
“예. 한 2~3분 거리.”
—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두 곳 다 좋은 곳이죠?
“예, 거기도 10층 넘어요.”
— 끼니마다 국과 반찬을 바꿔 주기도 했고요?
“예.”
— 북한 해역에 들어가서 조업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걸린 뒤에, 1시간 동안 도주했는데 그 배 선장과 선원들에게 이런 대접을 해 줬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제주도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을 화순항으로 데리고 와서 선원들을 호텔에 묵게 하진 않잖아요?
“그렇죠”
— 원산에 내릴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원산시에 갈 때 육지가 보이니까 ‘아, 이제 죽었다. 이제 아오지 탄광에 가는 거 아닌가’라고 했는데, 그 뭐입니까. 배를 접안한 데가 어선들은 못 대는 외항부두더라고요. 거기서 내린게는 얄궂은 뭐 한 15인승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야! 머리 숙이라’고 해서 머리 숙이면서 차에 탔죠.”
— 고압적인 분위기던가요.
“약간 군대식으로. 다 총을 들고 있으니까 그때 다 쫄아죠. 그 상황에서 안 쫄 사람이 누가 있십니까.”
— 북한 바다엔 애초부터 안 갔어야죠.
“책임감 때문에. 선주가 12억원이 넘는 돈을 빌렸어요. 사채하고. 내가 그걸 알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잖아요? 선원들 생활도 해야 하고. 은행 이자도 줘야 하고, 나라 세금도 내야 하고. 배가 안 움직인다 캐서 뭐 세금 안 내는 게 아니고, 이자 안 내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아닙니까? 그 책임감 때문에 무리수를 뒀죠.”
— 북한에 잡혔을 때 무섭지 않았습니까.
“봉고차를 타고 갈 때는 아바이(아오지) 탄광 비스름한데 끌려갈 줄 알았어요. 그런디 인자 차를 타고 가는데 내가 요 뭐입니까, 장애 때문에 허리를 많이 못 숙여요. 요래 있어도 다 차창 밖이 보이잖아요. 자꾸 시내 쪽 번화가로 가더라고요. 거기서 제일, 쉽게 말해서 제주도로 치면….”
— 제주도로 치면 거의 신라호텔급이죠?
“예, 맞아요. 속으로 ‘이게 뭐고. 내가 생각한 거 하고 다르다’라고 했는데, 진짜 12층 됐는데 거기로 들어가더라고. 뭐지? 들어가니까 따신 물도 나오고. 뭐, 이런 데가 있는가 싶어서. 죽이는 건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죠. 밥도 잘 나오고. 원산항에 도착한 시각이 좀 늦었어요. 어두웠으니까 대략 오후 8시였고. 거기 밥하는 시간도 있으니까 한 9시 넘어서 먹었던 것 같아요.”
— 밥은 맛있던가요.
“우리가 먹어 보면 알잖아요. 압력밥솥에 밥을 해 왔어요. 그래 뭐고, 잠시 기다리니까 밥을 주는데 국, 돼지고기, 나물 뭐 이렇게 7~8가지. 그것도 날마다 바뀌면서. 생선도 주고. 도루묵 알죠? 도루묵찌개도 나오고. 가자미구이도 나오고.”
“복어 놔두고 가려 하자 북한 조사관이 ‘반동 새끼’라고 욕해”
— 그렇게 잘 해 줬다면 불안하지도 않았겠네요.
“요 인자 넥타이 없이 인민복 입은 사람 있잖습니까. 나이는 내보다 어려서 40대 초반 되겄더만. 10시 좀 넘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잠이 들 둥 말 둥 하는데, 누가 들어오더라고요. 나는 누가 오니까 평상시 모텔에서 자던 식으로 ‘누고?’ 이랬죠.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일어섰는데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밥 잘 먹이고 어디 끌고 가는기고’라고 쫄았는데, 옆방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물어보데요. 신원, 출항 경위와 경로를 물어봐서 그대로 얘기했죠. 하룻밤 자고 그 뒷날 저녁에 한 300m 정도 떨어진 건물로 갔죠. 거기는 약간 모텔식으로 각진 건물이고. 옮긴께로 거기는 사람이 산가 안 산가 따신 물도 없고, 물이 황토물이더라고.”
— 조사 과정에서 월선 경위 외에 남한의 실상에 대해 물어본 건 없습니까.
“한 번도 안 물어봤습니다. 오로지 월선 조업한 부분만 인정하고. 10월 7일부터 출항해서 나포될 때까지 한 자도 안 틀리게 적었죠.”
— 북한이 복어를 냉동보관하고, 하역까지 해 줬는데요.
“26일 날 저녁 6시나 돼서. 시계는 없는데, 요즘 대강 어두워지면 그때쯤 아닙니까. 저녁밥 먹기 전이었으니까. 그때 ‘선장, 나와보라우’ 이러더라고요. ‘왜요?’ 했더니 ‘배에 가서 발전기 좀 꽂으라우’라고 했어요. ‘왜요?’ 그런게는 ‘그거 배에 담아 온 고기 우리가 보관했어’ 이래서 ‘고기, 그거 바람 한 번 쐬면 먹지도 못하니까 어디 사료로 주십시오’라고 했죠. 왜 못 먹어? 먹지. 그란께로 반농담조로 ‘아새끼, 이거 우리 가축들 다 죽이려고 하나? 이거 반동 새끼 아니야?’라고 해서 보내 주는 줄 알았어요.”
— 북한이 왜 그렇게 호의를 베풀었을까요.
“북한에서는 복어를 먹을 수 없대요. 쉽게 접하는 고기가 아니고, 잘못 먹으면 죽을 수 있으니까 북한 사람들이 돌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처음에는 뺏으려고 냉동보관을 했는데 ….”
— 다른 장비나 금품 갈취는 없었습니까.
“없어요.”
— 돌아왔을 때 선원들이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썼는데요?
“선원 가족 중엔 심장이 안 좋은 사람도 있고. 어제 도모장 같은 경우엔 자식들이 보면 …. 맞잖아요?”
— 마스크를 쓰고 내려서 의혹이 시작됐는데요. 얼굴을 가리니까 어선 선원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기도 하고요.
“도모장이 50 넘었잖아요. 내도 내년에 50이고. 아까 베트남 애들 봤잖아요. 그 아가 27살이에요, 둘이. 다른 베트남 아는 41살이고. 다 40 넘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싫어서 뒤에 있었고, 외국 선원 3명은 배를 걸어야 하니까 서 있었어요. 기자들은 뭐 저기 서 있는데 외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배가 20대니 30대니. 우리 배는 외국인이 3명인데요. 제주도 내려가면 기본이 4~6명입니다. 거의 반반에서 외국인이 1~2명 더 많아요. 한국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
— 이 배는 한국인 선원이 많고, 마스크를 쓰니까 연령대를 분간할 수 없고, 건장해 보이니까 별별 의혹이 다 나왔는데요. 이런 결과를 예상했습니까.
“전혀 못했죠. 내는 조타실에 있으니께는 도모장이 올라오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내를 보면 싹 다 자빠진다. 마스크 좀 구해 주소’라고 해서 해경한테 부탁했죠.”
— 마스크는 해경이 구해 준 거네요?
“예. 내는 안 해도 상관없으니까 후포에 도착하면 육지에 있는 사람 보고 마스크나 10개 사달라고.”
“북한에 달러 주기 위해 갔다? … 달러 있었다면, 내가 먼저 썼을 것”
— 흥진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금품을 몰래 전달하고자 보낸 공작선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달러 있으면 내가 쓸게요. 안 그래요? 우리 선주 지금 이 배 인수하려고 10억원 넘게 빌렸다가 쓰러질 지경인데, 그 달러 있으면 내가 먼저 썼죠. 죄는 나중에 받더라도.”
— 선주에게 미안하겠네요?
“그래서 내가 처음에 거짓으로 ‘북한에 납치됐다’고 했죠. 내는 끝까지 안 들어갔다고 부인하고.”
— 그러면 멀쩡한 우리 국민을 북한이 잡아간 게 되는데,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것까지는 생각 못하고. 무슨 근거가 없으니까 내는 인자 끝까지 우겨서 행정처분은 안 받으려고. 나 혼자 처벌받으면 상관없는데, 배가 못 움직이게 되니까 그걸 피하려고 그런 거죠.”
— 진술 번복, 이거 잘못한 거죠?
“예.”
— 이런 거짓들이 쌓여서 흥진호 의혹이 더 커진 거고요?
“예. 그래서 내가 국회에 가면 ‘내 욕심이 과해서 이렇게 됐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법이 정해 놓은 그대로 따르겠지만 배는 움직이게 해 달라’고 하소연할 참입니다.”(국회에서 ‘11월 14일’ 출석 통보)
— 왜 거짓 진술을 하다가 3차 조사 때 고의 월선을 시인했습니까.
“2차 조사 마치고 친구(선주)랑 만나서 저녁을 먹었는데,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자수하면 배는 1년 정지되고, 너는 사업 망하고. 망하면 일어서기 어려운데. 옛날에도 한 번 망했어요. 그걸 봤기 때문에 ….”
— 고의 월선 조업했죠?
“예.”
— 본인은 처벌받겠지만, 배는 움직이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우리 선원들 지금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배에서 쌀하고 라면 갖고 와서 해 먹고 있어요. 선주도 돈이 없어요. 내가 다 저지른 일이니까 그에 대한 죄는 내가 달게 받겠습니다만, 배에 대해선 선처해 줄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합니다.”⊙
흥진호는 10월 28일 동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우리 해양경찰에 인계돼 강원도 속초시 속초항을 거쳐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 닿았다. 하선한 흥진호 선원(한국인 7명, 베트남인 3명)은 대기해 있던 정부합동조사단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당시 이들의 귀환 모습은 이전과는 달랐다. 선원들은 신분 노출을 피하려고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 등을 착용했다. 그런 탓에 연령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체격들이 건장해 일반 선원 같아 보이진 않았다. 또 이들이 청바지 등을 입고 있어서 20~30대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었다. 북한에서 돌아온 이들을 맞이하는 가족들이 없었던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이후 소위 ‘흥진호 미스터리’가 제기됐다. “흥진호는 북한 공작선이다” “흥진호 선원들은 북한 공작원이다” “흥진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금품을 보내기 위해 보낸 국가정보원 또는 군 소유 선박이다”를 비롯해 각종 의혹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흥진호 선원들은 좀처럼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고, 의혹은 증폭됐다.
《월간조선》은 경북 경주시와 울진군 현지 취재, 흥진호 선주ㆍ선장ㆍ선원과의 인터뷰, 그간 흥진호 선장ㆍ선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다방 주인의 전언 등을 토대로 ‘흥진호 미스터리’를 전격 해부했다.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① 흥진호 법적 선주 전 감포 수협 조합장 전◦◦(62)씨
“복어 15톤은 잡아야 본전 … 3.5톤이 엄청난 양이라는 건 모르는 소리”
⊙ 선적지 감포항의 주민들은 ‘흥진호’에 대해 잘 몰라
⊙ 흥진호의 법적 선주는 전 감포 수협 조합장 … 실제 선주 역할은 전 선장 고씨
⊙ 흥진호는 주로 제주도에서 갈치잡이 … 복어 잡을 때는 울진 후포·죽변항으로
⊙ “배에서 내릴 때 작업복 대신 깨끗한 옷 입은 게 잘못인가?”
11월 7일 ‘391 흥진호(이하 흥진호)’가 등록된 항구인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감포항에 갔다. 감포항 어민들을 대상으로 흥진호 선원들에 대해 탐문하기 위해서였다. 감포항은 한적했다. 출항을 준비하는 배도 없었다. 이따금 마주친 어민들에게 흥진호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시원찮았다. 사실상 아는 사람이 없었다.
“흥진호는 다른 어선보다 한국인 선원이 많다”
다음 날 오전 감포항 인근 다방에 갔다. 다방 주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엔 감포항에 있는 배와 선원들에 대해 잘 안다던 다방 주인은 “흥진호란 배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TV에 그렇게 자주 나왔는데 못 봤느냐? 이번에 북한에 나포됐다가 풀려난 배다”라고 알려줬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방을 나와 역시 감포항 주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자신의 배우자가 어선을 탄다는 식당 주인은 “우리 남편 나이가 50인데, 배에선 제일 젊은 사람이다. 흥진호엔 우리 남편보다 젊은 사람이 많고, 한국 선원들도 다른 배보다 많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식당을 나와 감포항에서 마주친 어민에게 선장이나 선원, 선주들이 자주 모이는 공간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채낚기 선주협회 사무실’ 위치를 알려줬다. 선주협회 사무실에 들어가니 울산에서 놀러 왔다는 60대 남성만 있었다. 그는 “감포항 선주들이 오늘 전부 부산에 시위하러 갔다”고 말했다.
‘선주협회 사무실’에서 나와 흥진호의 법적 소유자로 알려진 전모(62)씨 집에 갔다. 흥진호의 경우엔 법적 소유자와 실소유자가 다르다. 법적 소유자는 감포 수산업협동조합에서 경매사로 일했고, 최근 조합장을 지낸 전모씨다. 실소유자는 예전부터 흥진호 선장을 하면서 총괄 관리를 해 온 고모(47)씨다. 전씨는 고씨의 부탁을 받고 선박 구매 자금을 대출받아 줬고 고씨는 후일 이를 갚은 뒤 명의를 옮겨 가는 조건으로 두 사람이 동업을 했다. 흥진호 사건과 관련해서 해양경찰에 흥진호 위치를 허위보고한 ‘선주’는 고씨다.
전씨는 2016년 3월 15일 경남 통영시에 사는 김모(57)씨로부터 흥진호를 인수했다. 등본상 선박 지분은 전씨가 1/10, 그의 부인 김모(62)씨가 9/10를 가졌다. 다음은 두 차례 방문 끝에 만난 흥진호의 법적 소유자 전씨와의 문답이다. 흥진호 관계자들이 신분 노출을 꺼린 탓에 사진을 찍지 못한 대신 이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기 위해 그들이 쓴 어투나 비속어 등을 최대한 살렸다.
— 흥진호 소유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그기 우리가 무슨 사업을 하면 공조를 하잖아요? 이건 동업 관계지. 인자 원래 선장이 있어요. 고○○이라고. ”
— 고 선장과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여기서 수협 경매사로 일할 때 고○○ 선장이 제주도 ○○호란 배를 타고 작업을 많이 하러 왔어요. 조합마다 위판 실적이 있어야 하니까 유치를 해요. 내가 경매 주임을 했으니까 예전부터 알고 지냈죠. 경매사로 있을 때 그 배가 우리한테 복어도 입찰시켜 주니까, 그걸 많이 해가 실적이 올라야 하니까 그걸 유치를 했지.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되고, 친분이 있었어.”
— 왜 동업을 시작한 겁니까.
“이 배가 제주도에 있다가 통영으로 팔렸어요. 그 선주가 복어잡이, 갈치잡이를 하려고 했는데 이기 골치가 아픈 기라. 그 선주가 고 선장한테 배를 외상으로 줄 테니 몇년 해서 갚으라고 하면서 지분은 안 넘기고 운영을 맡긴 건데 바닷일이라는 기 그렇잖아요? 안 잡힐 때도 있으니까 약속 이행을 못했어요. 그 선주는 배를 가지고 가려고 할 것 아닙니까? 고 선장은 그 사이에 한 2억원을 갚았어요. 그러니까 인마가 나 조합장 할 때 ‘조합장님, 이 정도 갚았는데, 조합장님 앞으로 배를 이전하면 어떻느냐?’고 해서. 복어만 잡아도 1년에 매출이 7억~8억원 해요. 갈치도 잡고 그러니까 모든 걸 제하더라도 충분히 배값이 되겠더라고. 7억~8억원은 전체 입항고를 말합니다. 그리 보면 선주로서는 1/3 정도 갖고 가는 거지. 배값이 얼마나 남았느냐 물어보니 내가 이래이래 갚고 6억~7억원이 남았대. 그래가 나하고 부인 명의로 대출을 받고 ‘좋다, 네가 열심히 해 돈 갚고 배를 갖고 가라’고 해서 배는 정상적으로 우리한테 넘어왔고. 고 선장이 운영을 하다가 이번에 사고가 났거든. 고 선장은 7~8개월 전에 큰 수술을 했거든. 목이 아파서 지 친구를 대리 선장으로 보냈는데, 2급 장애인이라요. 그 넘어간 사람도 복어 배를 오래 했어요.”
— 명의만 빌려준 겁니까.
“쉽게 말하면 내가 저 사람을 십수 년 알았잖아요. 내가 이 정도 돈을 해 줘도 배값에 비하면 저는 변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하지. 그게 아니면 안 하잖아요? 그 정도 같으면 충분히 되니까. 지가 잘되면 가만히 있겠어요? 굳이 계약은 안 해도 수익이 나오면 한 만큼 내한테 주고.”
“북한 해역 넘어간 건 현장 선장의 판단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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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항에 정박한 ‘391흥진호’다. |
“아니죠!”
— 남 선장 독단으로?
“이거 바다 사정을 몰라서 그러는데, 기자들이 잘 써 줘야 …. 분명히 수산법령을 위반한 건 맞지만, 방금 얘기한 것처럼 고 선장이 가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북한 지역으로 가면 위법이라는 거 모르겠습니까? 굳이 그걸 이야기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경험 많은 고 선장이 ‘야, 북한에 들어가 작업해’라고 하겠습니까? 이번에 보니까 경계선에 낚시를 놓으니까, 여기서 당겨 보면 고기량이 우리 지역보다 조금 더 올라오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한발 한발 들어가다 보니까 침범을 했는데, 그건 현장의 선장이 판단할 사안이지, 여기 있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
— 북한 바다로 왜 넘어갔다고 합니까.
“선원들이야 어떻게 알겠습니까? 장비를 못 보니까. 조업한 위치가 북한 배도 보이고, 중국 배도 보이니까 ‘들어간 거 아니냐?’ 그랬나 봐요. 남 선장은 지 친구(고 선장)한테 피해가 가고, 딸린 선원 10명도 경제적으로 피해를 받을까 싶어서 물량을 채우기 위해서 들어갔지 않았느냐? 좋십니다. 그랬다 캐가 지금 지가 법의 저촉을 받고 있잖아요? 지가 들어갔잖아요? 아래께 시인했습니다.”
— 이번에 북한 바다에서 3일 동안 잡은 복어 3.5톤이 상당히 많은 양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배 유지하려면 한 번 나가서 15톤 이상은 해야 합니다. 15톤이면, 기름 값하고 미끼 값 제하고 선원들 봉급 제하면 선주한테 좀 떨어져요. 3.5톤이라고 하면 적자예요. 요번에 700만원 받고 팔았어요. kg에 6만원씩 하던 게 2만~3만원 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선장한테 뭐라 하는 기 가격도 없는데 왜 그 위험한 지역에 가서 정부 공무원들,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들어갈 수도 있는데.”
— 우발적으로 그럴 수는 있지만,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싸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뒤에도 계속 조업을 하고요.
“저 선장이 2급 장애인입니다. 정신은 아니고 신체장애인인데. 저도 답답한 기, 선장이 베테랑인 건 맞아요. 이 사람이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라.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좋지만, 불법·탈법은 하면 안 되는데.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면 얼른 나올 생각을 해야지, 왜 그 짓을 하느냐는 거예요?”
— 일부러 북한 경비정을 부르기 위해 한 겁니까.
“그기 인자 ‘뱃놈’ 소리 듣는 거예요. 옛날 상말로 ‘뱃놈’ 했거든요. 전통적으로 뱃사람들 수준이 무식하고 그래서 ‘뱃놈’ 소리 듣고 살아왔어요.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서 뭔지도 모르고 큰소리쳤다 카는 건 저도 이해가 안 가거든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게 말이 됩니까. 일단 안 들어가야죠. 북한 경비정이 오는 과정까지 시간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라면 거기 쳐 있지 말고 빨리 나와야지, 이기 기본 상식인데. 북한 배들이 침몰되기 직전인 상태로 거기까지 나오니까 남 선장이 약간 무시하고 ‘이 새끼들 뭐 이런 기 있나’ 카고. 내가 봤을 때는 만만한 것도 있고, 자존심도 상하니까 지가 남의 바다에 들어가서 한 건 모르고 그렇게 했다 카니까 멘붕이 오는 거죠.”
— 흥진호와 연락도 안 되고 그런 게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해경에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등본상 선주인 우리한테 제일 먼저 연락합니다. 그럼 나는 고 선장한테 얘기해 주는 중개만 하는 건데, 이 배가 철수 날짜가 됐는데도 안 오니까 이상한 생각이 든 거죠. 아, 이게 침몰 아니면 사고가 났다.”
— 늦게 들어오는 일이 없었습니까.
“거의 없죠. 미끼하고 기름이 떨어지면 조업을 못하잖아요.”
— 감포항에선 흥진호에 대해 잘 모르던데요. 여기 안 들어옵니까.
“동해안엔 연승이 우리 배 하나밖에 없어요. 연승은 주로 남해 쪽으로 많이 가요. 여기가 연승이 조업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고. 단지 하는 건 대화퇴에서 복어 잡는 게 전부이지. 배도 잘 안 들어옵니다. 내가 ‘선장, 여기 가격이 잘 나간다’고 하면 들어오고. 나머지는 전부 제주도에서 갈치잡이를 하고. 아무리 좋은 고기라도 가격이 비싼 게 아니라요. 복어는 경북에서 탕을 많이 먹으니까 강구, 죽변, 후포에 많이 들어가죠.”
— 선원들의 정체에 대한 의혹도 있는데요.
“복어배는 나이 든 사람이 없어요. 70, 80 먹은 사람은 태워 주도 안 해요. 선원들이 보통 40 중반, 50 초반입니다. 베트남 젊은 애들 셋 있잖아요? 거 가보면 40 중반, 50 초반인데 안 젊겠어요? 배에서 내릴 때 작업복 벗고 깨끗한 옷 입는 게 당연한 거지. 저도 나이가 60 넘었지만, 집에 청바지 투성입니다. 나이 많으면 손이 빨리 안 움직입니다. 그러니 선급금을 4000만원씩 받죠. 프로야구 선수들 계약금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전문성이 있으니까. 많이 줄 때는 1억원도 줍니다.”
— 흥진호 선원들을 잘 압니까.
“외국인 선원은 선주가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우리가 몇 명 탔는지 알죠. 한국인 선원은 지(고 선장)가 제주도에서 오래 생활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알잖아요? 우리는 그 내용을 모르고, 숫자만. 공제를 들어가잖아요. 배는 선체 공제, 산업재해 같은 거를 안 하면 법적으로 출항이 안 돼요. 그건 우리가 다 해 주죠. 조업의 실체는 지가 다 하죠.”
— ‘북한 공작원이다’ ‘국정원 요원 또는 해군 정보요원이다’ 등 별 얘기가 다 있는데요.
“우리 해경이요, 선원들 출항시킬 때 보면 철저하게 합니다. 공부상에 있는 걸 확인하고, 보험이 돼 있는가 확인, 법적 문제 없는가 비교하고 확인하고 내보냅니다.”
— 후포항에 가면 흥진호 선장이나 선원들을 만날 수 있습니까.
“후포항에 다 있는데 ….”
— 고 선장은 이제 어떻게 한답니까.
“배가 가만히 있어도 1년에 8000만원씩 나갑니다. 목 수술을 해서 몸이 불편한데 지가 배를 끌고나간다고.”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② 흥진호 선장·선원 숙식 지원하는 후포항 다방 주인(56)
“간첩질 하려면 머리 좋아야 … 흥진호 선원들이 정말 북한 간첩이라면 이북은 벌써 망했다”
⊙ 후포항엔 흥진호보다 작은 어선들 다수도 S-band 레이더 장착
⊙ “배 타는 게 자랑인가? … 나 같아도 남편이 마스크 안 쓰고 내리면 혼낸다”
⊙ “흥진호 선장·선원 상당수가 혼자 사는데 없는 가족을 만드나? … 가정 있는 선원도 ‘사정’ 있어”
경주 감포항에서 흥진호의 법적 선주 전씨와 얘기를 마친 후 흥진호가 있는 경북 울진군 후포항으로 향했다. 11월 9일 오전, 후포항에 나갔다. 후포항 서편에서 어구 정비를 하던 60대 어민에게 흥진호 위치를 물었다. 그 어민은 “북한에서 온 배를 말하는 거냐?”면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 배는 여기 없다”고 말했다.
후포항 인근에 있는 포항해양경찰서 후포파출소에 갔다. 구석 회의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나온 파출소 직원 두 명에게 “어민들이 흥진호가 후포항에서 나갔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해경 직원은 “포항서에 물어보라”고 했다. “흥진호가 여기 있는지만 말해 달라”고 했지만, “언론 대응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포항서 홍보팀에 물어보라”며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이런 식으로 서너 차례 질문한 끝에 흥진호가 후포항에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흥진호처럼 독도까지 나가는 배는 그 정도 레이더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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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규모 어선보다 흥진호에 레이더가 많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
“저 긴 걸 알파 레이더라고 하는데 한 3000만원 합니다. 돈이 없어서 쉽게 못 다는 거지, 레이더 여러 개 달면 좋죠. 부표 위치까지 정확하게 나오고. 우리야 배가 작고 멀리 나가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저 배(흥진호)처럼 독도까지 나가서 작업하는 배는 있어야죠.”
그의 말을 듣고 흥진호 부근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살폈다. 흥진호 옆 미○호(근해 통발 29톤)의 경우에도 흥진호와 유사한 탐지 장비들이 여러 개 있었다. 해○호(근해 채낚기 29톤)도 마찬가지였다. 이 밖에 후포항엔 흥진호와 규모가 같거나 조금 작은데도 레이더와 안테나3~4개씩 단 어선이 많았다. 이에 따르면 흥진호가 같은 규모의 어선보다 레이더를 과도하게 달고 있다는 주장은 실상을 모르는 소리에 불과한 셈이다.
“배 타는 거 알려지면 자식 얼굴에 똥칠”
흥진호에 갔다. ‘북한 공작선’ ‘문재인 정부의 비밀 지령 수행선’이란 의혹이 제기된 선박이지만 외관은 평범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배 곳곳엔 컵라면 박스와 생수병, 커피 캔 등이 담긴 쓰레기 자루가 있었다. 선수 쪽엔 타이어처럼 생긴 원형 고무 틀에 굵은 낚싯바늘이 달린 어구들이 쌓여 있었다. 우현엔 복어잡이 배를 가리키는 깃대들이 묶여 있었다. 조타실엔 선주와 선장, 기관장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판이 부착돼 있었다. 흥진호를 살피다가 발신자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박모씨로 적힌 택배 상자들을 발견했다. 한 상자의 수신인은 ‘경북 영덕군 영해면 예주시장길 ○○수산 흥진호’였다. 그 위엔 ‘흥진호 돌선장’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또 다른 택배 상자의 수신인은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1○○○-○번지 ○다방 고○○’이었다. 흥진호의 실제 선주인 고씨의 성명이었다.
택배 상자에 적힌 다방에 갔다. 다방 종업원에게 “흥진호 선원이 여기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종업원은 다방 주인(56)을 불렀다. 다른 손님들과 동석해 얘기하던 다방 주인은 “여기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우째 찾는교?” “어디서 왔는교?”라며 경계하다가 잠시 후 흥진호 선원들의 사정을 얘기했다.
“세상에, 선원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닙니다. 배로 하루 벌어가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나도 귀찮아 죽겠니더. 여기 와 밥 처먹어 싸서.”
— 누가요.
“선원들요. 가족이 있는교 그래.”
— 여기서 밥을 준다고요?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여기 20대, 30대가 어딨는교? 기사를 그래 썼는 거야. 20대인지, 30대인지 눈깔이 있으면 한번 보라고 해요.”
— 마스크를 쓰고 나왔으니까 나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에 내 서방이 마스크 안 쓰고 나오면요, 죽여니다. 자식 얼굴에 똥칠할 일 있는교? 아바이 배 타는 게 자랑인교?”
— 그게 흉입니까,
“요새 애들 민감한 거 모른교? 그 손녀까지 다 있어요. ‘느그 할배 배 타가 이북 갔다 왔나?’고 하면 그거 못 견딥니더. 그런 추측 기사를 쓰면 되는교? 거기 20살 먹은 사람 있으면 내가 아저씨 딸 할게요. 선원들을 간첩이라고 하잖아? 내가 정신 감정받으라고 했다. 그거 전부 또라이인데 뭔 간첩이고? 간첩 하려면 대가리가 좋아야 간첩을 하잖아? 맞잖아요? 그것들 돈 10원도 없다. 걸뱅이야. 갸들도 움직여야 먹고사는데 무슨 강도질한 것도 아니고.”
흥진호 선원, “뱃놈들은 깨끗한 옷 입으면 안 되나?”
— 북한 바다로 넘어갔잖아요.
“고기가 그때 억수로 안 좋았는데, 그물이 떠내려가.”
— 북한 바다에 어구를 설치했다잖아요.
“10년, 20년 배 타 보소. 다 제정신이 아니지. 파도가 한 번씩 칠 때는 ‘아이고, 나는 죽었다’ 그러지. 전부 제정신이 아닌데, 이북에 가서 뭐 하겠는교? 흥진호 야들이 정말 간첩 같으면 이북은 벌써 망했니더. 똑바로 된 아가 어딨는교? 전부 XX이지. 야들 가 봤자 아오지 탄광 일도 못 시킨다. 전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 선원들, 지금 어딨습니까.
“배는 여기 있고요. 밥 묵으러 올 때 있고, 안 올 때 있고. 선주하고 선장은 이따 3시에 해경 조사 받는다고 포항에 갔고.”
— 왜 밥을 공짜로 줍니까.
“아는 사람인데 우짜는교? 선주 같은 경우는 안 지 10년 정도 됐어요. 선장은 팔이 하나 없다 보니까 고기라도 많이 잡아 와야 선주들이 이 사람 쓰려고 하지. 팔도 하나 없는데, 자꾸 고기도 못 잡고 그러면 누가 쓰노?”
— 장애 아니에요?
“있긴 있는데 아예 못 쓰니까. 그것도 배 타다가. 지장 찍으라고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여야 지장을 찍지. 불쌍한 사람이다. 고 선장은 해경 조사받으러 갈 때 태워다 달라고 해서 가는데 차 뒤에서 울더라. 펑펑 우는 거 보이께 내 너무 안쓰럽더라. 빚내서 하는데.”
다방 주인과 얘기하던 도중 흥진호 선원 송모(56)씨가 다방에 왔다. 송씨는 다방 주인이 기자를 소개하자 “당신 같은 사람하고 말하기 싫다”고 했다. 이어서 제주도 방언을 섞어 가며 “뱃놈들은 깔끔하게 옷 입으면 안 되나?” “작업복 입고 나와야 하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보고 간첩이라고? 뱃놈들은 깨끗한 옷 입으면 안 되고. 우리보고 빨갱이? 야! 뱃놈 중에 20대가 어딨어? 지네들은 네꾸다이 매니까 눈깔에 뵈는 게 없어? 기자고 뭐고. (다방 주인을 향해) 나 제주도 가야 하니까 차 좀 태워 줘.”
“혼자 사는 선원 많아 … 없는 가족 만들어 나가야 하나?”
송씨를 터미널까지 데려다주고 온 다방 주인과 다시 얘기했다. 다방 주인은 고 선장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돌 선장 등을 보면, 무슨 증후군인데. 수술을 해서 배를 못 타니까 친구인 남 선장을 시켰는데 ….”
— 왜 고 선장을 ‘돌 선장’이라고 합니까.
“대가리가 ‘돌’이라서 ‘돌 선장’이라고. ‘돌’이 이번에 해 갖고 와야 숨통이 좀 트이는데, 이래 됐다니까.”
— 형편이 안 좋은가 봐요?
“왜 남의 명의로 배를 인수했겠는교? 돈이 있으면 남 앞으로 하겠는교? 지는 이번에 갚고 명의를 당겨 가려고 했는데 또 이 지랄이 났으니까. ‘누나, 나는 남의 배를 타야 할 팔자다’라고 해서 ‘돌아, 용기 잃지 마라. 이겨내야 한다’고 했니더. 선원들 밥 먹으러 오면 ‘너희가 돌 선장 좀 도와줘라’라고 해요. 선원들은 다른 데로 가면 돼요. 죽는 건 선주만 죽는 거지.”
— 선원들은 고 선장하고 오래 일했습니까.
“몇 년 탄 사람도 있고. 나중에 만나면 손 한번 보소. 그 손으로 여자 스타킹 만지면 올이 다 나가니더. 그 정도로 손이 거칩니더.”
— 나올 때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의심하는 거 아닙니까. 가족들도 안 나오고.
“선원 중에 ○○는 각시가 심장병이 있으니까 놀랄까 봐 안 알렸어요. 아까 송씨는 성질 봤죠? 마누라한테 ‘오지 말라’고 하니까 안 왔죠. ○○는 집이 부산인데, 얼굴 나왔다고 각시가 집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니까. 남 선장도 혼자 있어. 식구가 있어야 나오죠. 갑판에서 일하는 갸도 아무도 없고. 없는 가족을 만들어 나오는교, 사돈의 팔촌을 나오라 카는교? 내 같아도 안 갑니더. 넘사시럽구로. 강○○는 손녀가 셋이나 있단 말이에요. 얼굴 팔리면 학교에서 결딴난다. 일주일 만에 왔는 걸 가족이 와가 우예 한단 말인교? 가족들은 안 오고, 내가 보호자 입장에서 안 나갔는교.”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③ 흥진호 취사장 강◦◦(52)씨
“어선 선원으로 알려지는 게 두려워 마스크 먼저 요구 … 지금까지 가족 얼굴도 못 봐”
⊙ “북한 조사관, 방에 들어올 때 노크하고 배에서 약도 가져다줘”
⊙ “북한 방송, ‘악녀 박근혜’를 ‘수장’시켜야 한다!”
⊙ “원산 체류 당시 밖에서 총성 들려 불안했다”
11월 9일 오후 9시, 다시 다방에 갔다. 다방 주인이 흥진호 취사장(속칭 ‘도모장’) 강○○씨를 설득해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후포항에 온 이후 다방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강씨는 북한 경비정이 흥진호를 나포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울릉도에서 나와 독도 부근에서 작업했는데, 복어가 안 잡혀서 이동했죠. 저는 밑에서 일하니까 어디로 가는지 몰랐죠. 21일 새벽 12~1시 사이에 밑에서 자고 있는데, 눈을 떠보니 총 든 사람이 앞에 있는 겁니다. ‘옷 챙겨서 나오라우’라면서 선수로 모이래요. 정신이 없었죠. 사느냐 죽느냐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북한 조사관, ‘정당 가입’ ‘주택 소유 여부’ ‘제주도 아파트 가격’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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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진호가 복어잡이에 쓰는 어구다. 어구 1통을 놓을 때 그 길이는 약 400m다. |
“첫날은 동명여관인데, 거기는 ‘려관’이라고 썼더라고요. 둘째 날부터는 그 옆에 건물로 옮겼죠.”
— 북한 조사관들이 고압적으로 대하진 않았습니까.
“원산에 도착해서 숙소로 갈 때는 ‘머리 숙이라우’라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는 칫솔, 치약도 주고. 담배하고 물도 주고. 배에 있는 물건도 가져다줬어요. 제가 부정맥이 있고, 심근경색 때문에 포항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있은 적도 있어서 약을 먹는데, 배에서 약을 안 가져왔어요. 무서웠지만 몸이 안 좋아서 담당자한테 ‘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못 찾아서 같이 가 찾았죠. 방에 들어올 때도 노크를 하고 들어오고. 아침 먹기 전에 조사관이 ‘밥 먹을 준비 해라’ 그래 하고.”
— 북한 억류 당시 조사를 많이 받았습니까.
“하루에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됐어요. 한 3일 동안 그렇게 받았는데, 신원, 배를 타게 된 동기를 물어봤어요.”
— 그 외에 남한 실상에 관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저보고 ‘무슨 당에 가입했느냐?’고 물어서 ‘없다’고 했죠. 또 뭐 ‘집이 있느냐?’ ‘왜 집을 장만하지 못했느냐?’ ‘제주도에서 32평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까.
“주로 TV를 봤는데, 북한 뉴스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악녀’라고 하면서 ‘수장’시켜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TV에서 영화도 자주 틀어 줬는데, 그게 우리 60~70년대 수준이었어요.”
— 못 돌아올까 봐 불안하진 않았습니까.
“처음엔 불안했는데, 나중에 보내 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 어떻게요.
“저랑 같이 방을 쓰던 국○○(42)가 피부병이 있어요. 조사관에게 배에서 약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조사관이 ‘1~2일 기다려 보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우리가 잘못했으면 때리거나 고문했어야 하는데 왜 잘 대해 줬는지 모르겠다”
— 북한에 있을 때 특이한 일은 없었습니까.
“거기는 뭐 시계, 달력이 없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옆방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전이 되기도 하고 밖에서 총소리도 나고 그랬는데 ….”
— 총소리를 들었다고요?
“예,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총소리가 나더라고요. 그걸 들으니까 또 무섭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 북한이 풀어 줄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27일 10시쯤에 주민등록증과 핸드폰을 주고 배에 태웠는데, 창고 같은 곳이 있거든요. 그게 한 1.5평 정도 되는데 거기에 10명을 집어넣고 일절 말을 못하게 했다니까요.”
— 북한에 뺏긴 건 없습니까.
“돌아와서 해경 조사받을 때 ‘북한에서 달러를 달라고 했느냐’고 물어봤는데, 달러가 어딨습니까?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는데. 현금이라고 해 봐야 몇만 원 있었고.”
— 북한이 잘해준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못했으면 데리고 가서 때리든지, 고문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
— 평소 북한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 배운 대로죠. ‘공산당’ ‘못 산다’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정도요.”
— 송환 후 배에서 내릴 때 왜 마스크를 썼습니까.
“그건 솔직히 제가 마스크를 달라고 했습니다. 어선 선원이라는 게 알려지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잖아요. 오는 날, 속초항에 기자들이 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겁이 나서 나는 못 내린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내린다고 했는데, 내가 해경에 마스크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가 이제 50대 초반이지만 일찍 결혼해서 손녀가 셋입니다. 얘들이 학교에 다니는데, 그걸로 놀림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기관장 얼굴이 알려졌는데, 얼굴 팔렸다고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해서 부산에 갔다가 와서 지금 여기서 지내지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얼굴이 전부 공개됐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혹시나 얼굴 팔릴까 봐 돌아오고 나서도 저는 가족들 얼굴 한 번 못 봤습니다.”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④ 흥진호 실 선주·전 선장 고◦◦(47)씨
“한국인 선원 막내가 43세 … 나머지는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 “복어는 원래 선단 조업이지만 선장이 ‘단가’ 높게 받으려고 단독 조업 나가”
⊙ “복어철 아니다? 작년에도 제주도 배 30여 척과 함께 복어 조업 나갔다”
⊙ “사고 가능성 예상 못해 … 허위보고 반성하고 있다”
⊙ “용도 변경 과정에서 갈치·복어잡이에 필요한 중고 레이더 추가 설치”
흥진호 취사장 강씨와 얘기하던 중, 오후 10시쯤에 포항해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온 흥진호 실소유주 고○○(47)씨와 선장 남○○(47)씨가 다방에 들어왔다. 고씨는 기자를 보고 “할 말이 없다”며 이내 숙소로 갔다. 뒤 돌아가는 그의 목 부분엔 실제로 수술 자국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간 고씨는 잠시 후 선장 남씨에게 전화해 “아까 그 기자도 사기꾼이니까 괜히 얘기 섞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남씨와 잠깐 얘기했지만, 조사를 받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붙잡고 얘기를 이어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선장 남씨와 취사장 강씨, 다방 주인 등은 술을 한잔해야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고서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오후 12시 30분, 다시 다방에 갔다. 선주 고씨가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기사가 나가 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게 없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1시간가량 설득한 끝에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곧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야 한다”며 “간단하게 얘기하자”고 했다.
“추석 지나면 제주도 갈치잡이 배들이 복어 잡으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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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혹이 제기된 것과 달리 흥진호 내부에서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
— 흥진호 실소유주입니까.
“법적으로는 전 조합장이 선주이고, 제가 실소유주로서 관리하고 있죠.”
— 흥진호가 북한에 나포되기 전, 마지막으로 교신한 게 언제입니까.
“위성전화로 20일에 통화했어요.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항하기 전에 조타기 유압펌프 상태가 안 좋다고 했거든요. 1차 통화 때는 ‘바쁘다’면서 끊었고, 40분 뒤 2차 통화에서는 ‘대화퇴 어장 남쪽에 있다. 어제보다 어획량은 많지만, 어장 사고(어구 끊김)가 잦다. 유압 펌프는 이상 없다’고 했어요.”
— 복어 철이 아닌데 왜 10월부터 복어잡이에 나선 겁니까.
“복어는 원래 선단 작업인데, 선장이 작업 의욕이 있어서요. 다른 복어 배들이 오기 전에 많이 잡아서 ‘단가’를 높게 받으려는 욕심에 갔는데 ….”
— 선단 조업이라면, 예전에는 다른 배들과 같이 갔다는 얘기입니까.
“보통 제주도에서 갈치잡이 하던 배들이 추석이 지나면 올라와서 복어잡이를 합니다. 작년에도 10월에 올라왔어요. 그때 같이 했던 배들이 동양호, 선천호, 다건호, 해광호, 진흥호, 진양호, 동진호, 증진호 등 30여 척이었습니다.”
“22일 당일 수십 번 위성전화로 통화 시도 … 사고 가능성은 생각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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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북한에서 돌아온 흥진호에 관계 당국자들이 올라 선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 뒤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제주도 갈치 상황이 좋아서요. 추석 전까지 아주 좋아서 다른 배들이 안 온 거예요.”
— 흥진호는 왜 먼저 올라왔습니까.
“선장이 10월 8일 출항하면서 다른 배들은 나갈 준비가 안 됐다고. 일찍 가면 복어 어획량이 많고, 단독으로 조업하면 ‘단가’도 높게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욕심으로 간 거예요.”
— 왜 흥진호와 22일에 위성전화로 통화했다고 해경에 허위보고를 했습니까.
“제가 복어 연승배 선장만 20년 이상 했어요. 배를 안 타도 작업 과정이 눈에 훤히 보이죠. 작업을 하다 보면 위치 보고를 제때 못하게 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기관이 고장 났다든지, 어구 손실이 …. 조업을 하지 못하고, 어구 재정비를 하게 되면 선장도 동참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위치 보고를 놓치면 나중에 위성전화로 해야 하는데, 위성전화 안테나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위성전화로 수십 번 걸었는데 받질 않았어요. 실제로는 이미 북한에 나포됐으니까 받을 수 없었던 거지만, 저는 작업하면서 선장이 위성전화 안테나를 계속 볼 수는 없으니까 위치 보고를 놓쳤구나 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선장이 아프거나 하면 주위 배들이 대신 보고를 하기도 하는데, 이 배는 선단이 아닌 단독 조업이었잖아요. 20일 통화를 토대로 위치를 추정해서 해경에 ‘안전 조업’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죠.”
— 사고 가능성을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까.
“사고 가능성을 예상하면서도 허위 보고를 했다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죠. 알면서 허위로 보고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23일부터 ‘사고가 났구나!’라고 생각했죠. 화재나 기관 고장, 무전 장비 고장, 배터리 방전이 아닐까 예상했습니다. 허위보고를 한 건 뭐라 해도 제가 죄를 지은 거죠. 혼선을 빚게 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계속 반성하고 있습니다.”
— 북한에 나포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까.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 언제부터 ‘나포’를 떠올렸습니까.
“수색 작업이 끝난 25일부터 북한에 끌려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나포된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북한, 흥진호 송환 결정’이란 소식을 접했을 때 놀라지 않았습니까.
“믿기지 않았죠. 해경에 허위보고를 한 게 생각나고, 사업적으로 타격을 받을 게 걱정도 되고.”
“성수기엔 하루에 4~5톤 잡아 … 수협 위탁 판매 기록 보면 나온다”
— 흥진호가 돌아온 이후 많은 의혹이 제기됐는데요.
“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 이익을 위해 함부로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흘 동안 잡은 복어가 3.5톤이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나게 잡은 것처럼 얘기하는데, 성수기엔 하루에 4~5톤 정도 잡아요. 한 번 출항하면 보통 30톤은 잡습니다. 작년엔 35톤까지 잡았어요. 조업일지, 수협 위탁판매 기록도 다 있어요. 3.5톤이 엄청난 물량이라고 하는 건 모르는 소리예요.”
— 선원들의 신원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참 …. 20·30대 선원이 있다고 하는데 선장을 포함해서 10명 중 베트남 선원이 3명입니다. 이 중 두 명은 27살이고, 다른 한 명은 41살이에요. 한국 선원 중에선 가장 어린 사람이 1975년생, 우리 나이로 43살입니다. 어디 20·30대가 있습니까. 해경 출항일지, 승선확인서 보면 선원들 경력이 다 나옵니다.”
“레이더 가격은 중고품 시세로 5000만원도 안 돼”
— 흥진호가 같은 규모의 어선보다 레이더가 과도하게 많다는 주장도 있고요.
“우리 배 장비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배가 원래는 장어를 잡는 배였어요. 저걸 제가 인수하는 과정에서 복어잡이, 갈치잡이 연승에 필요한 장비를 추가 설치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예비용 성격도 있고요. 요즘 새로 만든 어선 보면 같은 기종의 레이더를 두 대 이상 달고 나옵니다.”
— 레이더 가격은 얼마입니까.
“다 해도 요즘 중고품 시세로는 5000만원이 안 될 거예요.”
— 왜 흥진호 선원 가족들은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먼바다로 나가면 휴대전화가 안 터져요. 위성전화로 통화해야 하는데 선원들이 쓰는 일은 거의 없죠. 요금도 비싸고요. 한 번 나가면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연락이 없어도 가족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내는 거죠.”
— 남 선장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원망을 왜 안 하겠소? 그래도 선장이 ‘선주’의 상황을 아니까 위험을 감수하고 그렇게 한 거잖아요? 많이 안타깝죠.”
— 흥진호는 1년 동안 조업할 수 없게 될 거라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흥진호를 인수하면서 받은 대출금 이자만 한 달에 500만원입니다. 부도 안 나려면 다른 배를 타야겠죠. 오랜 시간 앉아 있지도 못하지만, 가진 유일한 기술이 바다에서 고기 잡는 거니까요.”
— 몸이 불편합니까.
“제가 얼마 전에 대수술을 받았어요. 후종인대골화증인데, 포항 우리들병원에서 6시간 동안 수술했어요. 그 후유증 때문에 팔·다리가 좋지 않아요. 일을 할 수 없으니까 3월부터 남 선장한테 맡긴 거예요.”
흥진호 미스터리 해부⑤ 흥진호 선장 남◦◦(47)씨
“월선(越線) 조업에 대한 처벌은 달게 받겠지만, 선원들 위해 배는 움직일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
⊙ “중학교 2학년 때 ‘고아’ 돼 승선 … 올해로 경력 34년 돼”
⊙ “승선 3년째에 오른팔 다쳐 장애 2급 판정 … ‘열등감’에 실적 올리려 노력”
⊙ “GPS 끄면 바다에서 길 못 찾아 … 켜지 않은 건 AIS(선박식별장치)”
⊙ “북한 해역 쪽으로 갈수록 원하는 수온과 복어 어군 탐지돼”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 향해 “간나 새끼”라고 욕하고 충돌 위협까지 해
⊙ 북한 경비정 보고 ‘해적’인 줄 알고 도주 … 1시간가량 추격하면서도 북한 경비정은 왜 사격 안 했나?
⊙ “복어를 사료로 쓰라고 하자 북한 조사관이 ‘우리 가축들 다 죽이려는 반동 새끼 아니야?’라고 농담”
11월 10일, 오후 3시 30분, 흥진호 실소유주 고씨와의 얘기를 끝낸 후 선장 남씨의 숙소로 갔다. 방문을 열자 베트남 선원 3명이 TV를 보고 있었다. 그 너머 방 귀퉁이엔 남씨가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의 옆엔 신문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 찐 고구마가 있었다. 이미 상당량을 먹은 듯 고구마 껍질이 쌓여 있었다. 그 외에 이들 방에는 생수병과 안성탕면 봉지, 커피믹스 박스와 옷가지만 있을 뿐 눈에 띄는 물품이 없었다. 기자가 들어가자 남씨가 잠시 일어섰다. 하늘색 사각팬티에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는 피곤한 듯 몸을 벽에 기대고 얘기를 시작했다.
— 1970년생이죠?
“원래는 닭띠(1969년생)인데, 호적에 늦게 올리는 바람에 1970년생으로 됐어요.”
— 배 탄 건 얼마나 됐습니까.
“34년 됐죠.”
— 1970년생인데 경력이 그렇게 됩니까.
“내가 15살 때부터 배를 탔으니까요.”
— 중학교 2학년 때부터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끝나고 얼마 안 돼 배를 탔으니까.”
— 어린 나이에 배를 탔네요?
“그때 뭐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배를 탔죠.”
— 양친 다 돌아가셨습니까.
“예. 어머니는 저 낳고 바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죠. 어릴 때는 부모가 있어야 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고향이 어디입니까.
“태어난 건 경남 통영에서인데, 학교 다닐 때는 삼천포에서 지내다가 승선했죠.”
“몸 불편해 고기 못 잡으면 남들이 낮춰 본다고 생각해 욕심 부려”
— 현재 거주지는 어디입니까.
“집이 없고 혼자 사니까 형식적으로 울진 지인 집에다가 해 놓고. 통지서나 그런 게 날아오면 받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배에서 내리면 이런 식으로 선원들하고 같이 먹고 자고 하고. 내는 가정이 없으니까. 매년 그런 식으로 생활해 왔죠.”
— 결혼 안 했습니까.
“한 번 했는데 실패했죠. 그것도 형식적으로 지인 통해서 한국 여자가 아니고 중국 여자랑 혼인신고를 한 번 한 일이 있죠. 결혼 생활도 아니고. 그래 가지고 뭐 법적으로 이혼해서.”
— 결혼 생활은 몇 년이나 지속됐습니까.
“한 2~3년 이렇게 올려놓고 있다가 나머지는 혼자 산 거죠.”
— 오른팔은 언제 다친 겁니까.
“배 탄 지 얼마 안 돼 다쳤죠. 인생에 굴곡이 너무 많아요.”
— 배에서 팔을 다쳤습니까.
“어구를 올리는 양망기(揚網機,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계)에 팔이 끌려 들어가서 계속 돌았죠. 그기 한 17살인가. 그때는 보험 제도가 잘 안 돼 있어서 돈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 치료는 안 받았습니까.
“많이 다녔죠. 부산 백병원 같은 데서.”
— 치료가 안 됐어요?
“수술을 안 했어요. 물리치료를 했는데, 돈이 있어야 계속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있는 사람들 얘기지 없는 놈이 계속 병원 다니면서 물리치료 받을 돈이 당시에 어딨습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인자 배를 타야 하는데, 몸은 이래 됐고. 머리도 약간 이상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뭐고? 자살 시도도 많이 했죠. 내 몸이 재산인데, 안 그렇습니까?”
— 약을 먹었습니까.
“과다 복용을 자주 했는데, 안 죽더라고. 아이고, 내가 살 팔자인가 보다 싶어서 집에 좀 있으니까 어릴 때 탔던 배 선장이 찾아왔더라고요. 그 사람이 ‘팔만 안 좋은 거 아니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가자’고 해서 희망을 갖고 그때부터 다시 배를 탔죠. 한쪽 팔이 불편하니까 남들하고 일이 똑같이 되겠습니까? 안 되지. 눈치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듣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 몸이 불편하다고요?
“그렇죠. 어릴 때는 몸이 안 따라줘서 일을 못하니까. 그런 속에서도 면허를 따고 선장을 했죠. 인생에 굴곡이 많습니다.”
— 지금 오른팔을 못 씁니까.
“엄지와 검지엔 힘이 좀 있어. 혼자 벌리진 못해. 왼손으로 벌려 줘야 해.”
— 배에서 일하려면 불편했을 텐데, 선장 면허를 따기 전엔 배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도모장을 했죠. 밥한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똑같이 해요. 남들 잘 때 밥하고.”
— 장애 등급은요?
“2급이죠. 그란께로 열등감 있지 않십니까? 한쪽 팔을 못 쓰니까, 욕심에. 저쪽은 건강한 사람이고, 나는 장애인인데 내가 고기를 못 잡으면 낮춰보고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은께는. 그걸 열등감이라고 합니까, 뭐라 캅니까? 그란께로 평소에도 실적을 올리려고 했고, 이번에는 평소보다 욕심이 과해서 넘어간 거고.”
“선박 위치 허위 보고는 복어잡이 어선 관행”
— 선장 경력은 얼마나 됩니까.
“만 17년이요.”
— 매년 대화퇴 어장으로 조업을 나간 베테랑 선장이라고요?
“예. 내 나이에 이렇게 배를 오래 탄 사람은 없을 거예요.”
— 베테랑 선장이 왜 어업정보통신국에 위치 보고를 허위로 했습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기, 배는 계속 움직이고 있고. 계속 한 자리에 있으면 위도 경도가 나오겠지만, 정확한 위치를 제 시각에 보고하는 배는 없습니다. 작업하면 배가 계속 움직이고, 시간을 놓칠 때가 많거든요. 오후 4시에 보고를 하는데 못하면 저들이 전화하고, 우리도 하고 그러거든요. 늦어지면 아무거나 그 대화퇴 범위 안으로만 위치 보고를 하는 거죠. 허위 보고이긴 한데, 우리는 몸에 밴 그대로 위치 보고를 하는 거죠. 정확하게 위치 보고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상 대강 그 뭐이고, 대화퇴 중심을 두고 ….”
— 고의적인 건 아니었다?
“아니죠. 인자 11~12일 날 울릉도 들어가 생각도 많이 했죠. 날짜는 가고. 또 그 선원들 눈치도 보여서 16일 날 출항했죠. 첫 작업이 북위 38도· 동경 133도, 북방한계선 남쪽이었는데 진짜 복어 1마리 잡았어요. 그렇게 잡은 건 처음이에요.”
— 34년 동안 배를 타면서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처음이었어요. 어이가 없더라고. 거기서 1마리 잡고 북북동으로 이동했죠.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에는 여기(대화퇴)서 작업했거든요. 여기서 1마리 잡고, 또 여기(한일중간수역과 북한 수역 사이)에 가상선이 하나 그려집니다. 여기선 작업할 수 있지. 내가 허위보고했을 때 위치가 이 정도 됩니다. 여기가 그 뭐고, 대화퇴인께로. 내가 이렇게 올라갔어요.”
— 북한 해역에 넘어갈 당시 상황이 어땠습니까.
“어구를 놓으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조류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수온에 따라서는 끊어지기도 하거든요. 어구 150통(1통 길이는 0.25마일)을 이렇게 죽 놓는데, 위치마다 수온이 다르면 어구가 끊어져요. 한쪽은 찬물이고, 한쪽은 뜨신 물이니까 서로가 당겨서 끊긴다고. 그날도 어구가 끊겨서 어군 탐지기로 찍어 봤더니 어구가 북방한계선쯤에 있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갔죠.”
— 그러다가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습니까.
“다른 데는 고기가 없고. 대화퇴 북서쪽(북한 해역 방향)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일본 해역으로 갑니까, 러시아 해역으로 가겠습니까?”
— 그래서 가장 악질적인 북한으로 갔다?
“더 악질은 일본입니다.”
— 일본은 벌금이나 매기고 행정처분만 하지만 북한은 안 보내 주잖아요?
“왜 안 보내 줘? 보내 줬으니까 여기 왔죠, 뭐.”
— 북한에 들어간 건 언제입니까.
“여기(대화퇴)에 중국 어선들이 어마어마하게 있고, 북한 작은 배들도 있고. 처음에는 어구를 깔다 보니까 북한 해역쪽에서 내가 원하는 수온이 나오고 어군이 탐지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모험을 시작했죠.”
— GPS는 왜 껐습니까.
“GPS는 내비게이션입니다. 그게 없으면 길을 못 찾아요. GPS와 연결해서 사용하는 AIS(선박식별장치)를 켜지 않은 거죠. AIS는 다른 배도 함께 달고 있어야 정보를 공유하는 건데요. 동해엔 AIS를 단 배가 몇 척 없어요. 100척 중 10척이나 될까. 여기 동네 돌아다니면서 ‘혹시 AIS 다셨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없으니까 우리 배만 AIS를 켜 봤자 아무 쓸데없는 거예요.”
— 북한 바다로 넘어갈 때 불안하지 않았습니까.
“북한 경비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15년 전에는 배 자체가 없었으니까. 북한 배들이 작업을 안 했다니까요. 작으니까 여기까지 나오는 배가 없었어요. 완전히 암흑이다, 암흑.”
— 배가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넘어간 거네요.
“예.”
북한 어선 향해 “간나 새끼, 한 번 더 자르면 내가 절대 용서 안 하겠어”라고 위협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싸웠죠?
“예.”
— 북한 해역에서 북한 어선과 마주쳤으면 바로 나와야지, 왜 싸웁니까.
“물론 즈그 나라에서 작업하는 거지만 넘의 어구에 손을 대면 안 되지.”
— 고의로?
“우리 깃에 달린 반짝반짝거리는 거, 이게 밤에 찾기 쉽게 하려고 달아 놓은 건데 그걸 대나무로 쳐 뿐다니까. 어구가 엉켜서 끊기고. 그런 부분에서 성이 나서 (북한 어선들이) 잘랐지 않나.”
— 북한 어선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그랬지. ‘간나 새끼, 한 번 더 자르면 내가 절대 용서 안 하겠어.’”
— 북한 어선은 아무 말 없던가요.
“예. 내가 좀 위협을 했죠. 배를 받아 버리려고. 배를 가까이 붙여서 위협을 했죠.”
— 북한 해역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본인의 행동이 이해됩니까.
“일단 이유야 어떻든 간에 (북한 배들이)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 되지.”
— 왜 그렇게 욕심을 냈습니까.
“아까 1마리 잡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는 고기를 못 잡으면 빵이에요. 11~12일에 150kg 잡고, 16~17일에 빵 차고.”
— 복어 150kg은 얼마에 팔았습니까.
“그거 뭐 60만원 정도. 내도 힘들고, 선주도 힘들고, 세금도 내야 하고, 선원들 돈도 줘야 하고. 한 번 못 잡으면 엄청난 부담감이 생겨요. 책임감이 없을 수 없죠. 그거 때문에 무리하게 작업을 했죠.”
— 북한 어선과 마주친 뒤에라도 나왔어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 어선이 신고해도 경비정이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북한 경비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가상선을 넘어갈 생각이 없었지. 다른 데는 어군 탐지 기록이 없는데, 요리 살짝 넘어가 본게는 어군이 있더라고.”
— 넘어가서 많이 잡았습니까.
“총 3일 해서 3.5톤이면 많이 잡은 게 아니고. 하루에 최하 못 잡아도 2톤 이상, 3일 했으면 못해도 6톤 정도 잡아야 하는데 못 잡았죠.”
— 북한 바다에도 복어가 얼마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거 잡으려고 그 위험을 감수했다는 얘기입니까.
“1마리보다는 안 낫습니까. 24시간 해서 1마리 잡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생각을 한번 해 보십시오. 고기가 점점 나아지는 추세였어요.”
— 그 와중에 북한 경비정이 왔죠?
“중국 저인망. 배가 완전 중국 저인망 어선처럼 생겼어요. 그때 시각이 21일 자정이나 됐는데, 내는 가까이 온 줄도 몰랐어요. 날이 좋아서 레이더도 꺼 놨거든. 제일 작은 레이더 그거 하나만 켜 놨는데, 조타석 왼쪽 옆에 있으니까 항해할 때 말고 작업할 때는 잘 안 봐요.”
— 그럼 북한 경비정은 레이더가 아니라 육안으로 확인한 거예요?
“바로 옆에 5m 정도. 다 보였어요, 그거. ‘무슨 사이렌을 울리나?’ 해서 보니까 저것들이 다 총을 든 거예요.”
북한, 경비정 1척 추가해 단정 띄워 흥진호 정선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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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적 흥진호 선원들이다. 이외에 선장과 한국인 선원 6명은 하선 당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그들의 신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뉴시스 |
“얄궂은 북한 옷. 내는 북한군을 위장한 중국 저인망 배인 줄 알았어요. 원래 임검하는 배라면 총을 소지 안 합니다. 민간인을 상대하는데 굳이 왜 총을 갖고 있겠느냐고요? 이것들은 막 얄궂은 씨X 폐선 비슷한 거 끌고 와가지고 총을 들고 있는데, 그거 사람 안 놀라겠십니까, 새벽에? 사람 깜짝 놀래삐죠. 이거 뭐 경비함정처럼 생겼으면 내가 잘못했네 하겠지만, 배는 칠도 싹 다 벗겨지삐고, 녹 다 슬어서 폐선 비스름한 거 끌고 와서 총을 들고 있으니까 도망갔죠.”
— 1시간 정도 도망갔죠? 그 사이에 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까.
“구조 요청을 할라카면 복잡하죠.”
—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단하게 구조 요청을 해경과 해군에 보낼 수 있다는데요.
“비상 주파수가 따로 돼 있습니다. SSB에 장거리 주파수 두 개가 있는데. 내는 한 번도 그걸 실험해 본 적이 없십니다. 그걸 또 몰라. 교육을 받으러 가도 그건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내가 실험해 볼 사항도 아니고.”
— 그래도 그렇게 위급한 상황인데?
“배가 직선거리로 가는 게 아니고. 저 배들이 우리보다 속력이 빨라요. 직선으로 가면 내가 따라잡히죠. 그러면 내는 어떻게 가야겠습니까?”
— 지그재그로?
“그렇죠.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건 그 길이다. 배가 가까워지면 한 번 뺑 돌립니다. 그러면 멀어져. 또 가까워지면 반대쪽으로 돌리고. 그럴 때 내가 한눈을 팔다가 조타기를 놓치면 배가 확 넘어가죠.”
— 다른 선원에게 구조 요청하라고 시켰어야죠.
“선원들요? 그 뭐고 선실에 다 들어가라 했는데예.”
— 흥진호 최고 속도는?
“8~9노트.”
— 북한 경비정은요?
“한 12~13노트? 엄청 빠르죠.”
— 북한 경비정 입장에선 흥진호가 어떤 배인지 모르잖아요. 정체불명의 괴선박이 도주하는데 왜 사격을 안 했을까요.
“그것도 무슨 빈 총만 들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씨×, 총알도 장전 안 되고 폼으로 총만 들고 있는가?”
— 신고를 받고 이렇게 먼바다까지 나왔는데, 빈 총을 들고 왔겠습니까. 북한 배가 총을 쏠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했습니까.
“우리나라 TV에서 보던 북한 경비정처럼 생겼으면 바로 정선하죠. 도망갈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건 얄궂은 30년 이상 된 썩은 배가 와서. 내는 솔직히 50:50으로 본 기요. 잡힌 다음에도 선원들한테 ‘북한 인민군을 위장한 해적선일 수 있다. 비싼 장비만 떼 갈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자’라고 얘기했어요.”
— 어떻게 잡혔습니까.
“인자 경비정 하나가 더 왔죠. 두 척이 되니까 ‘아, 이거 해적선 아닌가’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인자 50:50으로. 북한 배가 요래 있고, 갑판장을 시켜서 줄을 쳤죠. 추진기에 감기면 못 따라오니까. 근데 이기 싹 치고 가 버리더라고. 좀 있은게는 한 배가 더 오더라고. 거기서 단정을 띄워서 우리 배에 올라왔죠.”
— 추격 당시 북한 경비정이 방송은 안 했습니까.
“라이트만 계속 비췄죠.”
“원산 상륙 후 아오지 탄광 가는 줄 알았다가 번화가로 가니 의아했다”
—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선원 A씨는 북한 억류 당시 여인숙과 같은 ‘허름한 숙소’에 있었다고 했습니다만, 남 선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산 동명호텔에 묵었다고 말했죠? 왜 숙소가 다른 겁니까.
“첫날엔 동명호텔에 갔어요. 거기는 따신 물도 바로 나오고. 그게 타워 형식으로 돼 있는데, 들어가면 탁구하는 시설도 있고. 1층은 식당, 2층은 뭐, 3층은 뭐, 6층은 당구장 뭐 이런데. 들어가니까 남자 1명, 여자 1명이 탁구를 하고 있더라고. 둘째 날부터 묵은 곳은 그 근처에 있는데 12~13층 정도 돼요. 크기가 비슷한데, 인테리어가 쪼께 안 좋더라고.”
— 첫날엔 동명여관에 있었고, 그 다음 날엔 옆 건물로?
“예. 한 2~3분 거리.”
—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두 곳 다 좋은 곳이죠?
“예, 거기도 10층 넘어요.”
— 끼니마다 국과 반찬을 바꿔 주기도 했고요?
“예.”
— 북한 해역에 들어가서 조업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걸린 뒤에, 1시간 동안 도주했는데 그 배 선장과 선원들에게 이런 대접을 해 줬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제주도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을 화순항으로 데리고 와서 선원들을 호텔에 묵게 하진 않잖아요?
“그렇죠”
— 원산에 내릴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원산시에 갈 때 육지가 보이니까 ‘아, 이제 죽었다. 이제 아오지 탄광에 가는 거 아닌가’라고 했는데, 그 뭐입니까. 배를 접안한 데가 어선들은 못 대는 외항부두더라고요. 거기서 내린게는 얄궂은 뭐 한 15인승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야! 머리 숙이라’고 해서 머리 숙이면서 차에 탔죠.”
— 고압적인 분위기던가요.
“약간 군대식으로. 다 총을 들고 있으니까 그때 다 쫄아죠. 그 상황에서 안 쫄 사람이 누가 있십니까.”
— 북한 바다엔 애초부터 안 갔어야죠.
“책임감 때문에. 선주가 12억원이 넘는 돈을 빌렸어요. 사채하고. 내가 그걸 알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잖아요? 선원들 생활도 해야 하고. 은행 이자도 줘야 하고, 나라 세금도 내야 하고. 배가 안 움직인다 캐서 뭐 세금 안 내는 게 아니고, 이자 안 내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아닙니까? 그 책임감 때문에 무리수를 뒀죠.”
— 북한에 잡혔을 때 무섭지 않았습니까.
“봉고차를 타고 갈 때는 아바이(아오지) 탄광 비스름한데 끌려갈 줄 알았어요. 그런디 인자 차를 타고 가는데 내가 요 뭐입니까, 장애 때문에 허리를 많이 못 숙여요. 요래 있어도 다 차창 밖이 보이잖아요. 자꾸 시내 쪽 번화가로 가더라고요. 거기서 제일, 쉽게 말해서 제주도로 치면….”
— 제주도로 치면 거의 신라호텔급이죠?
“예, 맞아요. 속으로 ‘이게 뭐고. 내가 생각한 거 하고 다르다’라고 했는데, 진짜 12층 됐는데 거기로 들어가더라고. 뭐지? 들어가니까 따신 물도 나오고. 뭐, 이런 데가 있는가 싶어서. 죽이는 건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죠. 밥도 잘 나오고. 원산항에 도착한 시각이 좀 늦었어요. 어두웠으니까 대략 오후 8시였고. 거기 밥하는 시간도 있으니까 한 9시 넘어서 먹었던 것 같아요.”
— 밥은 맛있던가요.
“우리가 먹어 보면 알잖아요. 압력밥솥에 밥을 해 왔어요. 그래 뭐고, 잠시 기다리니까 밥을 주는데 국, 돼지고기, 나물 뭐 이렇게 7~8가지. 그것도 날마다 바뀌면서. 생선도 주고. 도루묵 알죠? 도루묵찌개도 나오고. 가자미구이도 나오고.”
“복어 놔두고 가려 하자 북한 조사관이 ‘반동 새끼’라고 욕해”
— 그렇게 잘 해 줬다면 불안하지도 않았겠네요.
“요 인자 넥타이 없이 인민복 입은 사람 있잖습니까. 나이는 내보다 어려서 40대 초반 되겄더만. 10시 좀 넘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잠이 들 둥 말 둥 하는데, 누가 들어오더라고요. 나는 누가 오니까 평상시 모텔에서 자던 식으로 ‘누고?’ 이랬죠.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일어섰는데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밥 잘 먹이고 어디 끌고 가는기고’라고 쫄았는데, 옆방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물어보데요. 신원, 출항 경위와 경로를 물어봐서 그대로 얘기했죠. 하룻밤 자고 그 뒷날 저녁에 한 300m 정도 떨어진 건물로 갔죠. 거기는 약간 모텔식으로 각진 건물이고. 옮긴께로 거기는 사람이 산가 안 산가 따신 물도 없고, 물이 황토물이더라고.”
— 조사 과정에서 월선 경위 외에 남한의 실상에 대해 물어본 건 없습니까.
“한 번도 안 물어봤습니다. 오로지 월선 조업한 부분만 인정하고. 10월 7일부터 출항해서 나포될 때까지 한 자도 안 틀리게 적었죠.”
— 북한이 복어를 냉동보관하고, 하역까지 해 줬는데요.
“26일 날 저녁 6시나 돼서. 시계는 없는데, 요즘 대강 어두워지면 그때쯤 아닙니까. 저녁밥 먹기 전이었으니까. 그때 ‘선장, 나와보라우’ 이러더라고요. ‘왜요?’ 했더니 ‘배에 가서 발전기 좀 꽂으라우’라고 했어요. ‘왜요?’ 그런게는 ‘그거 배에 담아 온 고기 우리가 보관했어’ 이래서 ‘고기, 그거 바람 한 번 쐬면 먹지도 못하니까 어디 사료로 주십시오’라고 했죠. 왜 못 먹어? 먹지. 그란께로 반농담조로 ‘아새끼, 이거 우리 가축들 다 죽이려고 하나? 이거 반동 새끼 아니야?’라고 해서 보내 주는 줄 알았어요.”
— 북한이 왜 그렇게 호의를 베풀었을까요.
“북한에서는 복어를 먹을 수 없대요. 쉽게 접하는 고기가 아니고, 잘못 먹으면 죽을 수 있으니까 북한 사람들이 돌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처음에는 뺏으려고 냉동보관을 했는데 ….”
— 다른 장비나 금품 갈취는 없었습니까.
“없어요.”
— 돌아왔을 때 선원들이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썼는데요?
“선원 가족 중엔 심장이 안 좋은 사람도 있고. 어제 도모장 같은 경우엔 자식들이 보면 …. 맞잖아요?”
— 마스크를 쓰고 내려서 의혹이 시작됐는데요. 얼굴을 가리니까 어선 선원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기도 하고요.
“도모장이 50 넘었잖아요. 내도 내년에 50이고. 아까 베트남 애들 봤잖아요. 그 아가 27살이에요, 둘이. 다른 베트남 아는 41살이고. 다 40 넘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싫어서 뒤에 있었고, 외국 선원 3명은 배를 걸어야 하니까 서 있었어요. 기자들은 뭐 저기 서 있는데 외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배가 20대니 30대니. 우리 배는 외국인이 3명인데요. 제주도 내려가면 기본이 4~6명입니다. 거의 반반에서 외국인이 1~2명 더 많아요. 한국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
— 이 배는 한국인 선원이 많고, 마스크를 쓰니까 연령대를 분간할 수 없고, 건장해 보이니까 별별 의혹이 다 나왔는데요. 이런 결과를 예상했습니까.
“전혀 못했죠. 내는 조타실에 있으니께는 도모장이 올라오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내를 보면 싹 다 자빠진다. 마스크 좀 구해 주소’라고 해서 해경한테 부탁했죠.”
— 마스크는 해경이 구해 준 거네요?
“예. 내는 안 해도 상관없으니까 후포에 도착하면 육지에 있는 사람 보고 마스크나 10개 사달라고.”
“북한에 달러 주기 위해 갔다? … 달러 있었다면, 내가 먼저 썼을 것”
— 흥진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금품을 몰래 전달하고자 보낸 공작선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달러 있으면 내가 쓸게요. 안 그래요? 우리 선주 지금 이 배 인수하려고 10억원 넘게 빌렸다가 쓰러질 지경인데, 그 달러 있으면 내가 먼저 썼죠. 죄는 나중에 받더라도.”
— 선주에게 미안하겠네요?
“그래서 내가 처음에 거짓으로 ‘북한에 납치됐다’고 했죠. 내는 끝까지 안 들어갔다고 부인하고.”
— 그러면 멀쩡한 우리 국민을 북한이 잡아간 게 되는데,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것까지는 생각 못하고. 무슨 근거가 없으니까 내는 인자 끝까지 우겨서 행정처분은 안 받으려고. 나 혼자 처벌받으면 상관없는데, 배가 못 움직이게 되니까 그걸 피하려고 그런 거죠.”
— 진술 번복, 이거 잘못한 거죠?
“예.”
— 이런 거짓들이 쌓여서 흥진호 의혹이 더 커진 거고요?
“예. 그래서 내가 국회에 가면 ‘내 욕심이 과해서 이렇게 됐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법이 정해 놓은 그대로 따르겠지만 배는 움직이게 해 달라’고 하소연할 참입니다.”(국회에서 ‘11월 14일’ 출석 통보)
— 왜 거짓 진술을 하다가 3차 조사 때 고의 월선을 시인했습니까.
“2차 조사 마치고 친구(선주)랑 만나서 저녁을 먹었는데,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자수하면 배는 1년 정지되고, 너는 사업 망하고. 망하면 일어서기 어려운데. 옛날에도 한 번 망했어요. 그걸 봤기 때문에 ….”
— 고의 월선 조업했죠?
“예.”
— 본인은 처벌받겠지만, 배는 움직이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우리 선원들 지금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배에서 쌀하고 라면 갖고 와서 해 먹고 있어요. 선주도 돈이 없어요. 내가 다 저지른 일이니까 그에 대한 죄는 내가 달게 받겠습니다만, 배에 대해선 선처해 줄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