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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RISIS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더 예우하는 나라가 됐으면…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추모 캠페인 이어나갈 것”

글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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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연상케 하는 ‘노란 리본’은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追慕) 로고 제작해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 시작”
⊙ “한국 안보상황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 같아… 국제사회 대북제재 강화하는데 우리 정부도 발 맞춰야”
⊙ “박근혜 전(前) 대통령 2012년 대선 찬조연설 도와… 안좋게 되셔서 마음 아프고 안쓰러워
⊙ “영화 〈연평해전〉 국정원 개입 의혹 말도 안 되는 얘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아”
⊙ “청와대 오찬 시 문재인 대통령 ‘전사자 특별법 통과에 힘쓰겠다’고 말해”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15년이 흘렀다. 제2연평해전은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로 규정돼 ‘서해교전’으로 불렸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승전의 의미를 담은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됐고 추모행사도 해군 2함대 사령부 주관에서 국가보훈처 주관 정부행사로 승격됐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은 당시 군인연금법상 ‘전사자’ 예우 조항이 없어 현재까지 ‘순직자’ 예우를 받고 있다. 2004년 4월 전사자 예우 조항이 만들어졌지만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았다.
 
  작년 8월에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제2연평해전 전투수행자에 대한 명예선양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전사자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지난 3월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 이후 계류 중이다. 전사자 특별법이 통과되면 현재 순직자로 돼 있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공식적으로 전사자로 예우할 수 있게 되고 전사자에 해당하는 보상금 지급이 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연휴 직전인 9월 29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및 순직 공무원 유가족들을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오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이 순직자 예우를 받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회 계류 중인 전사자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용사 중 한 명인 고(故)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씨는 오찬 자리에 참석해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해 달라며 문 대통령 내외에게 ‘제2연평해전 추모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버튼’을 선물했다. 김한나씨는 1년 전부터 ‘제2연평해전 추모로고 스티커’를 제작해 무료 배포하며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김한나씨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
 
제2연평해전 추모로고. 사진=김한나
  —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은 무엇입니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은 많이 보이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물건은 없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제2연평해전을 추모하는 ‘REMEMBER 357 스티커’를 만들어서 무료로 나눠줬어요. 스티커를 승용차, 핸드폰, 스마트폰 등에 부착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서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9월 23~24일에는 성남 디자인코리아센터에서 해군본부와 함께 제2연평해전 추모행사를 가졌어요. 새롭게 디자인한 추모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버튼을 판매하고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힘이 나더라고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오는 10월 8일 계룡군(軍)문화축제에도 참여해 해군홍보관에서 추모 티셔츠와 버튼을 판매합니다. 수익금은 제2연평해전 추모사업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 ‘추모로고’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났던 제2연평해전의 참수리357호정과 전사자 6명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가운데 그림은 참수리를 형상화했고 위쪽에 ‘REMEMBER 357’ 아래쪽에 ‘2002. 6. 29.’라고 적었습니다. 이번에 티셔츠와 버튼을 제작하면서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이 예우 받았으면
 
9월 23일 성남 디자인코리아센터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추모행사.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미국으로 떠나신 적이 있다고 하던데요.
 
  “2005년도예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이렇게 예우해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고 먹고살기도 힘들었어요. 또 노무현 정권 들어 사찰을 받게 되면서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삶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어요.”
 
  2002년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영결식은 국가 주도가 아닌 해군장으로 치러졌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으로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가고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등 정부 인사들도 참석하지 않아 유가족들의 원성을 들었었다.
 
  — 미국에서의 삶은 어땠습니까.
 
  “미국에서의 삶이 쉽지는 않았어요. 청소일, 설거지 등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연고자(緣故者)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 무작정 가서 살았다는 게 무모하기도 하고 용기가 대단했네요. 어린 나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나라는 정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존중해 주는 나라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은행, 병원에 군인, 경찰관, 소방관이 들어오면 순서와 상관없이 그들의 업무를 가장 먼저 처리해 주는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롱아일랜드에서는 매년 독립기념일 등에 소방관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졌는데요. 소방관과 소방차의 행렬에 미국 시민들이 박수를 쳐주고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부럽다. 우리나라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을 이렇게 예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한국에 돌아오게 된 이유는 뭡니까.
 
  “미국 생활 3년차로 미국 생활에 좀 적응됐다 싶을 때 향수병이 오더라고요. 그래도 내 남편이 목숨 바쳐 지킨 나라인데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마침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시기였어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이 되고 ‘제2연평해전 추모행사’가 국가 행사로 격상됐어요. 2012년 10주년 추모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해 주셨습니다.”
 
  — 대통령이 추모행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입니까.
 
  “네. 그때가 10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지난 6월 29일 열린 제2연평해전 15주년 추모행사에는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인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인사들만 참석했고 국민의당에서도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는 앞서 3월 24일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 추모행사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러포트 전(前) 주한미군 사령관님이요. 2003년 1주년 추모행사 때 서신을 보내 주셨어요.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한 통의 편지도 없었는데 편지에 ‘당신 남편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위로해 주시는데 정말 감동이 됐어요. 러포트 장군님은 한국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하신 분들의 이름을 책상에 붙여 놓고 기리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은퇴하시고 텍사스에서 사신다는데 참 따뜻한 분이셨어요.”
 
 
  북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 제2연평해전 이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계속된 도발행위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남북 대치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이 재발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대응인데요. 강력한 보복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도발을 하면 보복 조치를 배로 당한다는 두려움을 줘야 함부로 도발하지 않을 텐데요. 우리 정부는 늘 말뿐인 것 같아 답답합니다.”
 
  —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끊임없는 도발행위를 하고 있는 김정은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사이코패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 경험했을 텐데 독재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미국이 됐든 우리 정부가 됐든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 줬으면 합니다.”
 
  — 현 안보상황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 상황에서 안보란 말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하게 제재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국제사회와 발 맞춰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
 
  —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있다고 하던데.
 
  “2012년 대선에서 찬조연설을 해 드린 적이 있어요. 한 언론사에서 제 연설이 안보 표심을 끌어오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보도하기도 했어요. 박 전 대통령께서 당선되고 취임하시기 전에 티타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요. 제2연평해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없느냐고 물으셔서 직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이후에 박 전 대통령께서 신경 써 주셔서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가져가서 사인을 요청 드렸는데 소녀같이 좋아하시더라고요.”
 
  — 박 전 대통령이 안 좋게 돼서 마음이 쓰이겠네요.
 
  “다른 거를 다 떠나서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파요. 수갑 찬 모습도 안쓰럽고, 아프신데 치료를 제대로 못 받으시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이네요.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세우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시고 우리나라 대통령이셨는데 우리가 너무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구속 연장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데 잘못하신 게 있으면 분명히 밝혀내서 처벌해야겠지만 어디 도망갈 분도 아니시고 건강도 안 좋으신데 법원에서 이러한 점들을 잘 고려해서 결정했으면 합니다.”
 
 
  영화 〈연평해전〉 이후 있었던 일들
 
사진=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 2015년 영화 〈연평해전〉이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어땠나요.
 
  “영화를 보면서 내내 많이 울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습니다. 욕심일 수 있지만 내심 1000만명이 넘게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남편 역할을 맡았던 진구씨가 남편 연기를 정말 잘해 줘서 고마웠고요. 진구씨 아들이 6월 29일에 태어나서 연평해전을 더 잊지 못하겠다는 얘기도 해줬어요.”
 
  영화 〈연평해전〉은 2015년 6월 24일에 개봉해 6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연평해전을 연출한 김학순 감독은 영화 수입금 10억원을 출연하여 작년 1월 21일 연평재단을 설립했다. 연평재단은 제2연평해전의 유가족과 생존 장병을 지원하는 일을 할 뿐 아니라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하시는 분들을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 〈연평해전〉이 개봉하고 얼마 후 한상국 중사에서 상사로 추대됐다고 하던데요.
 
  “그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제가 군에 진정서를 낸 4가지 요구사항이 모두 받아들여져 ‘내 할 일은 다 했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4가지 요구사항이 서해교전의 ‘해전’ 명칭 변경, 참수리호 용산 전쟁기념관 실물 모형 전시, 연평해전 부상자 국가유공자 예우, 그리고 남편의 상사 추서 진급이었는데 모두 이루어진 거예요.”
 
  제2연평해전 당시 한상국 상사의 계급은 하사로 중사 진급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국방부는 해전 직후 군인사법 시행령에 따라 일계급 특진 추서로 그의 계급을 중사로 높였다. 이후 해군본부가 한상국 상사의 전사일을 해전 당일인 2002년 6월 29일에서 그의 시신을 인양한 같은 해 8월 9일로 변경했고 전사일 당시 계급이 하사에서 중사로 변경됨에 따라 2015년 7월 10일 상사로 추대됐다.
 
  — 대전현충원에 전사자 6명이 13년 만에 합동 안장됐습니다.
 
  “네. 계급, 인양시점 등에 따라 분산 안장돼 있었는데 2015년 9월 17일에 합동 안장했고요. 비석에도 ‘연평도 근해에서 전사’라는 문구를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로 수정했습니다.”
 
  —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연평해전〉의 제작과 흥행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영화인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나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김한나씨는 9월 29일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아 문 대통령 내외에게 추모 티셔츠와 버튼을 선물했다. 사진=김한나
  — 청와대 오찬 얘기를 좀 더 묻겠습니다. 오찬 시 대통령이 무슨 말씀을 했습니까.
 
  “대통령께서 ‘제2연평해전은 남북 교전이고 이 전투에서 돌아가신 분은 전사한 것인데 당시에는 순직과 전사가 구분이 안 되어 법적으로는 전사가 아니라 순직으로 처리된 것이 안타깝다’면서 ‘전사자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데 통과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전사자 특별법’ 얘기를 하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갔는데 대통령께서 먼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 뭐라고 답했습니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것은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왜 통과가 안 되는지 답답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한 우리의 의무를 다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국방부장관도 신경 쓰시겠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을 계속 이어나가려고요. 홈페이지도 개설해서 더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고요. 제2연평해전과 관련된 웹툰과 책도 만들어서 배포할 예정입니다. 2004년 군인연금법이 개정되기 전에 전사자에게도 통상 순직이란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국민들 가운데 전투 외의 공무 중 사망한 ‘순직’과 전투 중 사망한 ‘전사’의 차이를 아직 모르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그 점도 적극 알리고 싶습니다. 또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을 입은 분들을 존경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취재후기]
 
  기자가 김한나씨를 처음 만난 것은 9월 초였다. 추모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추모 캠페인을 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였다.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옆에서 작게나마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9월 23일에는 성남 디자인코리아센터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가해 추모 티셔츠와 버튼을 판매하는 일을 도왔다.
 
  참가자 중에는 멀리 지방에서 새벽차를 타고 올라온 분도 계셨고 눈시울을 붉히며 응원해 주고 가는 분도 계셨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이들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덩달아 애국심이 생겨나고 이 소식을 더 열심히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피어올랐다.
 
  인터뷰 기사를 쓰다 몇 가지 내용을 더 묻기 위해 김한나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10월 8일부터 열리는 계룡군(軍)문화축제에서 제2연평해전 추모 캠페인을 갖고자 계룡대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전화로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 앞으로 추모 캠페인을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전해 왔다.
 
  한편으론 존경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진행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김한나씨의 소원대로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제대로 예우 받고 제복을 입은 분들이 존경받는 사회, 그리고 강한 안보를 가진 나라가 됐으면 한다.⊙
 
  연평해전 추모 T셔츠는 인터넷쇼핑몰 벧엘북스(http://storefarm.naver.com/bethelbooks/products/2235568683)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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