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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세하는 좌파

이적단체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 내부문건

소풍(小風), 북한 신년공동사설 지령 삼아 보수 세력 매장 위한 폭력 투쟁 벌여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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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인권 실태 증언하는 탈북자는 브로커들이 만들어낸 사람들”(2006년 정세전망 문건 중)
⊙ 6·15, 10·4 지지 정권 창출 위해서는 미국의 나팔수인 보수정당 고립 말살시켜야
    (2007 대선의 의의 문건 중)
⊙ 2008년 광우병 투쟁은 한·미 전략동맹 저지, 파탄 내는 전초전
⊙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반파쇼독재정권 타도 및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위한 민중생존권
    투쟁 실행
⊙ 북한 인공위성이 언제 핵미사일로 둔갑할지는 한·미·일 정부 처사에 달려(2009년 5월 22일 문건 중)
⊙ “모든 투쟁을 이명박 퇴진, 한나라당 해체에 집중”(2009년 사업계획 문건 중)
⊙ 2017년 7월 2일 대법원, 소풍 간부 9명에게 각각 징역 6월~2년에 집행유예 1~3년 선고
⊙ 참여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 시민단체 “지나친 종북몰이”
  2013년 4월 30일 신모씨는 아침 7시께 서울 마포구 자신의 빌라에서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남성이 “아랫집에 물이 샌다”며 찾아왔다. 신씨가 문을 열자 서울지방경찰청 보안2과 소속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신씨는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이하 소풍)의 4~5기(2009~2010년) 대표였다. 신씨는 2002년 7월 12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 등)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소풍’은 전직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1998년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 간부들이 주축이 돼 2006년 결성한 청년 통일운동 단체다. 신씨도 1999년 제7기 한총련 대의원을 지냈다. 소풍은 이름대로 6·15공동선언(이하 6·15)의 맹목적 이행을 주장한다.
 
  6·15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선언이다. 총 5항으로 구성된 선언의 제1항은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제2항은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며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선언 직후부터 1항은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2항은 1국가 2체제를 표방하는 북한의 고려연방제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왔다. 6·15도 1991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지만, 6·15 선언문 자체엔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대목은 없다. 이후 북한은 6·15를 남북 관계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려고 해왔다. 2002년 2월 평양 방송은 6·15에 대해 “북·남이 연방제 통일(북한 통일방안)을 지향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소풍, 이적단체 등과 연대
 
이준일 전 통합진보당 서울 중랑구 위원장. 그는 소풍을 처음 만들 때부터 핵심 역할을 했다.
  소풍은 6·15의 맹목적 실천 외에도 ▲10·4선언(10·4선언은 2007년 10월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 정상회담 합의문이다. ‘서해 공동 어로수역을 설정한다’는 합의 내용을 두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 전술에 말려들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북한의 철도·고속도로 개·보수 등 각종 경협 합의 이행에 14조(통일부 추산)~50조원(민간기관 추산)이 드는 경제적 부담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행 ▲미군 없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 ▲예속적 한미동맹 청산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북한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옹호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6·15 청학연대) 합법화 등 북한의 대남혁명 노선을 추종했다.
 
  이날 보안2과는 신씨 등 소풍 회원 10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2~3기 대표(2007~2008년)를 지낸 이준일 전 통합진보당 서울 중랑구 위원장을 체포했다. 이 전 위원장은 소풍을 처음 만들 때부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이미 2000년 9월 8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찬양·고무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과(前科)가 있었다.
 
  2013년 12월 15일 이 전 위원장을 비롯한 소풍의 조직원 9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5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4부는 9명에 대해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언했다. 재판부는 “소풍은 이적단체로 인정된 실천연대·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등과 연대해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적성이 있는 문건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학습·토론하며 북한을 찬양·고무했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2일 대법원 1부는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9명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6월~2년에 집행유예 1~3년을 각각 선고한 것이다. 9명 중 4명은 옛 통합진보당(2014년 12월 19일 해산 결정) 당원 출신이다. 진보 진영은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소풍 회원들이 과도한 ‘종북몰이’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등 시민단체는 “6·15 실천과 그 활동을 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는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사실일까.
 
 
  소풍 결성 과정
 
2004년 4월 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한총련 활동 전력이 있는 4명은 6·15 관철 주장에 동조하고, 한·미 동맹 해체 등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따르는 청년조직을 결성키로 했다.
  2004년 4월 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한총련 활동 전력이 있는 4명의 인물이 모였다. 그들은 6·15 관철 주장에 동조, 새로운 청년조직을 결성하기로 했다. 이후 이들은 2004년 7월 17~18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인근으로 MT를 가 한·미 동맹 해체 등 북한의 대남 혁명 노선을 따르는 소풍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소풍이라는 이름은 ‘통일의 작은 바람(小風)’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의 활동이 바람처럼 확산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 이후 이들은 매주 1회씩 모임을 갖고, 조직의 원칙을 ‘한총련 세대를 중심으로 조직화를 진행하고 일반 청년 대중들을 묶어 세운다’로 정했다. 이들은 본인들의 한총련 활동 전력을 이용, 100여 명의 구성원을 모집한 다음 지역조직인 5개 ‘반(班)’에 편성했다. ▲1반은 종로구, 마포구를 중심으로 파주, 일산을 포함한 서울 서북부 지역 ▲2반은 강서, 영등포, 구로 등 서울 서남쪽 지역(인천·부천 포함) ▲3반은 동작, 관악을 중심으로 한 서울 남부 지역 ▲4반은 서초, 강남, 송파, 강동 등 서울 강남과 강동 지역 및 분당, 용산 지역 ▲5반은 의정부를 포함한 서울 북부 지역을 뜻한다. 지도부는 이렇게 모집한 구성원들로부터 매월 1만원 내지 2만원의 회비를 자동이체 방식으로 징수해 운영했다. 회비를 납부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는 정기총회 의결권을 제한했다. 소풍은 2006년 7월 28일 서울 종로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소풍은 매년 2~3월 정기총회를 개최해 북한 신년공동사설을 토대로 해당 연도의 투쟁 사업을 선정하고 이와 관련한 이적 표현물을 제작했다. 이렇게 제작된 이적 표현물은 조직원들만 접속할 수 있는 비공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했다. 《월간조선》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이들이 작성한 내부문건 다수를 입수했다. 이 문건을 보면 소풍이 북한이 매해 초 신년공동사설 등에서 강조한 내용을 그해 ‘투쟁 방향’으로 정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북한은 매년 1월 1일 당보 《로동신문》, 군보 《조선인민군》, 청년보 《청년전위》 3개 주요 신문을 통해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는데, 이는 그해의 정책 방향과 주요 사업 계획을 대내외에 제시하는 공식 신년사에 해당한다. 북한에 신년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46년이다.
 
 
  ■ 2006년
 
소풍이 자체 제작한 ‘2008년 신입회원 교양자료’에서 발췌.
  북한은 2006년 1월 1일 ‘원대한 포부와 신심에 넘쳐 더 높이 비약하자’ 제목의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새로운 정책 제시 없이 기존의 정책적 입장을 반복했지만, 남북 관계에서는 ‘자주통일·반전평화·민족 대단합’의 ‘3대 애국 운동’을 새로 제시하는 등 ‘우리 민족끼리’ 공세를 강화했다. ‘6·15 우리 민족끼리의 날’ ‘반보수대연합’ ‘거족적인 미군철수투쟁’ 등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대외 관계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 저지에 중점을 뒀다.
 
  소풍은 2006년 5월 사업계획서를 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리 민족과 미국의 오랜 대결이 종지부를 향하고 있으며, 승리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믿음을 갖자. 애국 운동과 사회 진보를 위한 투쟁에 기여하자. 평택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투쟁에 우리의 힘을 더하자.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에 참여하자.〉
 
  ‘2006년 정세전망’이란 제목의 문건도 만들었다. 여기서 이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철저히 부정했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전략의 기본목표는 한반도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배력과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는 것이다. 핵개발 의혹설을 무기로 한 2005년 북미대결의 승자는 북이었다. 궁지에 몰린 미국은 ‘인권 문제’나 ‘위조지폐 문제’를 빌미로 새로운 대북 압박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한 공세는 북의 인권 실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떠한 실증적인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몇몇 탈북자의 증언에 기대고 있는데 이들은 대개 경제적 이유나 사적인 이유(친척 방문, 범죄 후 도주 등)로 이탈한 주민들로서 돈을 노리거나 탈북자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브로커들이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이들의 발언에 전적으로 의존해 북의 인권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많은 남한 거주 탈북자들의 증언이 모두 거짓이고, 유엔인권위원회 본회의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대북(對北)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각국 대표부나 인권 관련 NGO가 모두 허수아비란 주장이다. 북한은 생지옥(living hell)이자 세계 최고의 인권 탄압 국가다. 이를 증명하는 근거는 소풍 지도부가 문건을 만들 시점(2006년)에도 차고 넘쳤다. 대표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엘리 위젤과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셸 마그네 본데빅 전 노르웨이 총리 등이 2006년 만든 북한 인권보고서에는 ▲북한의 식량정책 실패로 1990년대에 100여만 명의 아사(餓死)자가 발생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현재 20만명이 불법 수용돼 있으며 지난 30년간 40만명 이상이 사망 ▲최근 수년간 북한 주민 10만~40만명이 억압을 견디다 못해 탈북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에 따라 북한 주민은 그 신분만 확인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로 인정된다. 김씨 정권이 북한 지역을 불법 점거해 북한 인민을 통치하고 있지만,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다.
 
 
  ■ 2007년
 
소풍은 매년 2~3월 정기총회를 개최해 북한 신년공동사설을 토대로 해당 연도의 투쟁 사업을 선정하고 이와 관련한 이적 표현물을 제작했다.
  북한은 2007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 보수 세력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풍은 2007년 1~2월 사이 ‘2007년 통일정세와 과제’라는 문건을 제작, 조직원들에게 은밀히 배포했다. 다음은 문건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타고 민족과 민중의 새로운 활로 통일시대를 열어가느냐 아니면 수구 세력에 남측의 주도권을 넘겨주느냐의 문제를 놓고 일대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금 시기, 진보개혁 세력, 6·15 자주평화 세력의 결속을 추진하고, 전선을 뚜렷이 할 수 있는 투쟁전선은 민족중시, 평화수호, 민족 대단합 운동이 될 것이다. (중략)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을 무력화시키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공감을 얻는 불평등한 방위비 부담 문제, 한미동맹의 예속성을 꾸준히 폭로해 나가야 한다. 반보수대연합으로부터 민족공조에 이르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끼리의 단합 실현의 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신년사 내용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 것임을 밝힌 것이다. 2007년 9월 20일에는 ‘선군정치 바로 알기 사업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통해 “올해 대선의 주요전선은 반미미군철수 전선”이라며 “6·15 이행,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군(선군정치를 말함)이 당연히 커다란 역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군정치는 1990년대 후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시스템 붕괴를 타개하기 위해 군부(軍部)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나왔다. 모든 것에 군이 우선한다는 북한의 정책이다. 쉽게 풀이하면 ‘경제가 어렵더라도 안보의 기둥인 군대에 우선 자원을 투입하는 데 대해 인민들이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2007년 10월 28일 조직원들에게 돌린 ‘2007 대선의 의의’라는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반미, 반한나라당 대중 투쟁을 총체적으로 전개하여 이번 대선에서 미국과 보수정치 세력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고 진보운동 역량을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6·15 지지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나팔수인 한나라당을 고립 말살시켜야 한다.〉
 
 
  ■ 2008년
 
북한 신년공동사설을 토대로 해당 연도의 사업을 선정한 소풍은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계획안대로 폭력 투쟁에 나선 것이다. 2008년 6월 29일 새벽 서울 태평로에서 열린 광우병 대책회의 촛불집회 시위대 해산에 나선 경찰병력 모습.
  북한은 1월 1일 ‘공화국 창건 60돌을 맞는 올해를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역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제목의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당시 사설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북남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은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통일을 추동하는 고무적 기치이며 6·15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실천 강령이다. 조국통일 운동의 주체는 우리 민족이며 외세에 의존하여서는 어느 때에 가서도 나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통일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에 등을 돌려대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방해하는 친미대사와 매국매족 행위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기지들을 철폐해야 한다.〉
 
  이날 대남혁명 전위기구인 ‘반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도 중앙위원회 담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민족끼리’ 이념 밑에 6·15와 10·4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내외통일 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숴 버리겠다”며 “우리는 반미자주화의 기치를 변함없이 치켜들고 미제의 식민지 지배와 군사적 강점을 끝장내기 위한 반미반전, 미군철수 투쟁을 계속 힘있게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소풍은 신년공동사설이 나오자마자 ‘2008년 사업계획 문건’을 작성, 조직원에게 비공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했다. 사업계획서에는 북한이 신년공동사설과 반제민전 담화 등에서 밝힌 대남혁명노선을 동조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① 6·15, 10·4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위한 활동을 적극화한다.
 
  ② 6·15, 10·4 이행을 가로막는 행위들을 반대하는 활동에 앞장선다.
 
  ③ 자체사업으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와 연대하여 냉전시대 법, 제도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6·15공동선언 실천 청년학생연대(6·15청학연대)의 이적규정 철회를 요구한다.
 
  ④ 6·15 기념일(우리 민족끼리의 날) 제정을 위하여 기념우표·홍보물 제작, 국회·정부 청원 등을 추진한다.
 
  ⑤ 미군기지 문제(환경오염 문제 등), 주한미군 주둔비용,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 등 대중적 공분 있는 사안에 대해 시의적절하게 대응한다.
 
  ⑥ 주한미군 철수 박람회 사업 등 미군철수 운동을 연중 지속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⑦ 이 외에 비정규직 투쟁, 공공부문 시장화 저지 투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업계획을 수립한 이들은 동년 2월 23일 ‘청년선서’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는데, 이런 내용이 담겼다.
 
  〈전쟁훈련이 웬 말이며, 범죄로 가득 찬 미군기지가 웬 말인가. 반역의 친미극우 세력이 웬 말이며, 어찌 반북대결 세력이 백주 대낮에 애국민중을 탄압할 수 있단 말인가. (중략) 반북대결 세력을 끝장내고, 반미 미군철수 운동의 새 시대로 우리 민족끼리의 풍토가 가득 찬 6·15 자주통일이 새 사회로 민중의 절절히 염원인 새 정치 세력으로 비약할 것을 조국을 위해 다함 없이 바쳐갈 것을 결심하자.〉
 
  이날 지도부는 조직원을 대상으로 ‘대중관 원리와 대중사업 방법론’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내용은 북한이 대남혁명을 위한 주체사상, 통일전선전술 등 방법론을 집대성해 발간한 《주체의 한국사회변혁운동론》에서 제시한 대중원리와 사업방법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 2009년
 
소풍은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의 단골 참석자였다. 2012년 국민연대회원들이 영등포 로터리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북한은 2009년 1월 1일 ‘총진군의 나팔소리 높이 올리며 올해를 새로운 혁명적 대 고조의 해로 빚내이자’라는 제목의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내용은 2008년과 비슷했다.
 
  〈6·15 통일시대와 더불어 활력 있게 전진하던 조국통일운동은 지난해 남조선 보수 당국의 집권으로 엄중한 도전에 부딪히게 되었다. 자주통일의 대강인 6·15와 10·4를 전면 부정하고 파쇼독재시대를 되살리며 북남대결에 미쳐 날뛰는 남조선 집권 세력의 무분별한 책동은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와 항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조선 인민들은 자주, 민주, 통일의 구호를 들고 사대매국적인 보수 당국의 파쇼통치를 쓸어버리며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려야 한다.〉
 
  ‘2009년 소풍사업계획’ 문건에는 북한의 주장이 자세히 담겼다.
 
  〈군사력과 달러 경제력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해 온 미국이 흔들리고 있음.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임. 북한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포, 핵보유국이 된 북한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삭제 조치를 이끌어내었음.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국제사회에 국력을 과시하고 이명박 정부 취임 초기부터 대북정책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압박으로 볼 수 있음. 여전히 북미관계의 주도권은 북한이 쥔 형국이며, 향후 북미 평화공존체제 구축을 목표로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큼. 민생투쟁을 중심에 두고 민주주의 투쟁, 반북대결정책 폐지 투쟁을 결합, 모든 투쟁을 이명박 퇴진, 한나라당 해체 투쟁으로 집중. 2010년 지방선거·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한 진보 진영의 역량 강화는 사활적 문제.〉
 
  소풍 지도부는 2009년 11월 21일경 ‘2009년 하반기 사업계획과 청년실업 투쟁계획’ 문건을 작성했다. 북한에서 만든 것으로 판단될 정도의 내용으로 이뤄졌다.
 
  〈◆ 하반기 정세전망
 
  북한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전으로 미국과 이명박 정권을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하고 있다. 북한은 그 힘을 선군정치의 힘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있음에도,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을 퇴진 국면으로 고립시키지 않는 이상 자주통일의 대변화를 맞이해야 할 주체는 온전하게 보존될 수 없다. 따라서 반 이명박 투쟁은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 투쟁 기조
 
  공세적으로 자주통일,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의 실현 경로를 과학적으로 완강하게 실현해 나간다. 반 이명박 정권 연합전선을 강화한다. 집행위원회를 비롯하여 각급 단위에서는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모순을 폭로하고,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을 펼치기 위한 글을 쓴다.
 
  ◆ 주요사업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적대정책과 전쟁추진 음모에 대한 실체를 폭로하고 사안과 계기가 발생할 때 제때에 규탄 고립할 수 있도록 한다. 반미반전 영화 보기 등 대중사업을 잘 마련한다.〉
 
  2009년 소풍 지도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치켜세우는 듯한 문건을 만들기도 했다.
 
  4월 10일 ‘북한에서 인공위성 발사가 가지는 경제적 의미’라는 문서에는 “북한은 2009년 4월 5일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첨단과학기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했다. 첨단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우주 개발을 위해 인공위성을 발사한 북한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국가의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인공위성 발사는 자국의 과학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 기술적 담보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북한의 강성대국 구상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목표로 현재의 선군정치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나라의 국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정치, 군사, 경제 강국 실현을 말한다”고 적었다.
 
  ‘미사일 위협론을 부풀리는 한·미·일의 의도, 정확히 보자’라는 제목의 문건에서는 “주권국가의 합당한 권리에 따르고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인공위성을 발사한 북한을 한(국)·미(국)·일(본)이 제재할 근거는 없다”며 “(우리는) 지금 당장 PSI 참가 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항공기, 선박이 다니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이 2003년도에 주도한 구상이다. 우리는 2009년 5월 26일 PSI에 전면 참여했다.
 
  5월 22일 배포한 ‘북한 인공위성에 히스테리 광증을 보이는 한·미·일 정부’에서는 “국제적으로 북한의 기술력은 찬사를 받을 정도”라고 노골적으로 칭찬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체의 최첨단 기술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가 세계적으로 5개국인 조건에서 두 차례 시험에서 100%의 성공률을 기록한 북한의 최첨단 기술력은 충분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하다. 이 정도면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중략) 북한의 핵시설이 원상복구 된다면 인공위성이 언제 핵미사일로 둔갑할지는 한·미·일 정부의 처사에 달렸음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북한과 소풍이 인공위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내용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우리의 청년단체라고 주장한 소풍은 북한의 핵실험과 안보 위협 국면에서 노골적으로 북한을 편든 셈이다.
 
 
  ■ 2010년
 
소풍은 주한미군 철수 집회에 단골로 참석했다. 2005년 9월 11일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10년 1월 1일 북한은 신년공동사설 및 반제민전 중앙위원회 담화를 통해 6·15, 10·4 관철, 반통일 세력 및 사대 매국 세력 척결, 북과 남, 해외 연대연합을 강화하여 조국통일운동 발전, 자주·민주·통일 투쟁 전개 등을 주장했다.
 
  소풍은 2010년 사업계획안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통한 사대 매국 세력 척결을 주장했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리는 정치적 격동기이며 북미관계의 전면적 전환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2010년은 모든 것을 2012년을 향한 시간표를 중심으로 내적으로는 자주통일 역량의 강화를 위한 ‘소풍’의 조직적 태세 마련, 지방선거 승리, 6·15 10돌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사업이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2012년은 한반도 정세에도 평화협정 문제, 통일 문제 등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는 해,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2012년을 향하여’라는 자세와 관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2년 동안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언론법 개악, 4대강 강행, 노동법 개악 등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왔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생마저 파탄 내고 있다. 진보 진영에 대한 탄압도 거세지고 있으며 청년실업은 100만을 넘어선 상태다. 또 의문투성이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국지전을 통해 보이는 반통일 반평화 정책은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 올해 2010년 지방선거는 ‘투표로 심판하자’는 촛불의 약속을 실현하고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 반민중, 반통일 정책의 폭주를 막아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소풍은 올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회원이 매진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의 과제’라는 문건을 보면 소풍은 야권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이명박 정권의 중도 실용 친서민 행보 실패와 냉전적이며 호전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진보 진영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노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는 선거 연대를 이룬 야권이 크게 이겼다. 당시 민주당(현재 여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은 야권 연대를 이뤄 전국 16곳 시·도지사 선거에서 10곳을 차지하는 등 시장·군수·구청장·시도의원 선거에서 모두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을 눌렀다. 민주당은 수도권 66곳 중 46곳에서 이겼다. 친노는 당시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 김두관 경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을 당선시키면서 부활의 시동을 걸었다.
 
 
  ■ 2011년
 
  북한은 2011년 새해 아침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 관계의 긴장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했다. 북한은 “지난해 남조선 보수당국은 전쟁 하수인, 반통일대결 광신자로서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외세와 야합하여 반공화국 모략과 북침전쟁 도발 책동을 끊임없이 벌이면서 북남 사이의 대화와 민족의 화합을 파탄시킨 남조선 당국의 무분별한 광란은 온 민족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일촉즉발의 첨예한 정세 속에서도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억제되고 북남 사이에 일련의 인도주의적 사업들이 진행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애국애족 선군정치와 인내성 있는 노력의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2011년대는 민족분열의 비극을 끝장내야 할 희망의 년대”라며 “남조선 당국은 내외의 한결같은 규탄 배격을 받는 반통일적인 동족대결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6·15와 10·4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풍은 2011년 사업계획안을 통해 “2011년은 2012년 대선·총선 승리를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 이명박 투쟁과 대중투쟁을 강화키로 했다. 이들이 꼽은 핵심 투쟁은 ▲전쟁훈련반대 전국 동시다발 반전평화집회(2011년 3월) ▲반전평화통일 집중실천기간(2011년 6월 15일~8월 15일) ▲미군 없는 평화협정 체결 운동 ▲6·15, 10·4 이행 투쟁이었다.
 
 
  “계획대로 폭력 투쟁에 나서”
 
소풍은 내부문건에서 평택 투쟁을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으로 꼽았다.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시위는 당사자인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가 됐다. 2006년 5월 14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범대위 집회가 팽성읍 본정2리에서 열린 가운데 폭력시위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걸린 모습.
  북한 신년공동사설을 토대로 해당 연도의 사업을 선정한 소풍은 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계획안대로 폭력 투쟁에 나선 것이다.
 
  소풍이 처음 집회에 나선 때는 2004년 12월 5일이었다. 이날 소풍 지도부와 조직원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국민은행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개최한 ‘가자 국회로, 국가보안법 끝장내자,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범국민 촛불 대행진’ 시위에 합류했다. 2005년 5월 15일에는 광주에 있는 주한미군 패트리엇 미사일기지 폐쇄 투쟁에 참가했다. 비행장 철책을 뜯어내고 경찰 차량을 부수는 등 당시 시위는 상당히 격렬했다. 폭력시위에 한없이 관대했던 노무현 정권 때임에도 9명이 구속될 정도였다.
 
  2006년 5월 13일에는 ‘한미 FTA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2006년 5월 14일에는 ‘평택 인간띠 잇기 국민대회’에 참여했다. 소풍은 내부문건에서 평택 투쟁을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으로 꼽았다. 이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시위는 당사자인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피해가 됐다. 시위를 이끈 외부단체의 목표가 ‘주민 생존권 확보’가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였던 탓이다. 2007년 10월 13일에는 ‘2007 남북정상선언 실천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선포대회’, 2008년 3월 1일 ‘한반도 평화 역행하는 한미연합 대북전쟁연습 규탄대회’, 동년 11월 30일 ‘국가보안법 60년, 그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으로’ 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반미,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시위를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한민국 안에서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90년대 운동권의 허위 주장을 그대로 믿고 있다니 심히 걱정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2008년에는 5월 2일부터 7월 12일까지 매일 서울광장 등에서 개최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소풍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직전 ‘광우병 투쟁이 지닌 함의’라는 문건에서 “광우병 투쟁은 한·미 전략동맹을 저지, 파탄시키는 전초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현재 국민이 전개하는 광우병 반대 투쟁은 이명박 정권의 실용정책 전반을 반대하는 투쟁을 대표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훼손시키는 미국을 반대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광우병 촛불집회’는 3개월 가까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행됐고,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경찰이 다쳤다. 10년 가까이 흐른 현재 그들이 주장한 광우병 공포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도 손상되지 않았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투쟁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에도 소풍의 시위 참여는 계속됐다. 2008년 8월 1일 ‘이랜드 파업 400일 투쟁문화제’, 2009년 9월 26일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범국민추모대회’, 2012년 3월 10일 ‘한미 FTA 폐기, 제주 강정마을 살리기 범국민대회’에 참석하는 등 투쟁을 전개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강경투쟁은 역설적인 상황을 불러왔다.
 
  이랜드 노조는 2007년 7월 비정규직 790명에 대한 고용 해지에 반발하며 500여 일 동안 강경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강남 뉴코아·홈에버 상암점에 대한 노조의 점거 농성과 공권력 투입이 반복되며 매장 운영이 마비됐다. 입점주들은 영업을 하지 못해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봤고 이들 매장은 결국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등 노사 모두 상처만 입었다. 경찰관 1명을 포함해 6명의 인명이 희생된 용산 재개발구역 농성 사건(용산참사)은 사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이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에 연행된 28명 가운데 21명이 전철연 소속이었다. 재개발구역에서 장사하거나 거주하던 세입자는 7명밖에 안 됐다. 민간인 사망자 5명 가운데서도 현지 세입자는 2명뿐이었다. 전철연은 1994년 출범한 이후 철거민 농성을 ‘비타협적 빈민해방투쟁’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단체 로고로 ‘민중해방’이란 글자를 새겨 다닌다. 좌파 진영에서조차 전철연에 대해 “철거민을 노숙자나 범죄자로 만드는 도시 게릴라전 같은 투쟁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고 전철연의 출구(出口) 없는 투쟁방식에 이의(異議)를 제기했다. 2002년 월간 《말》지는 “전철연이 지역 철거민대책위를 장악하기 위해 철거민들을 테러했다”고 폭로했다.
 
  한·미 FTA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는 본인들이 맹목적으로 이행하자고 주장하는 10·4선언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한·미 FTA는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동시다발적 FTA 추진’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뒤 노무현 정부 때 협상이 타결됐던 정책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재협상이 이뤄지긴 했지만 차이는 거의 없다. 민주당이 주장한 재협상 대상 10가지 중 9가지는 노무현 정권 때 타결됐던 내용 그대로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최종 결정된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제주해군기지는 국가안보를 위한 필수요소”라고 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2007년 2월 “제주해군기지는 군사 전략상 불가피하다”고 말했던 기록 등이 남아 있다.
 
 
  반국가단체인 북한 주장과 같아
 
  소풍은 회칙에 6·15를 실현하는 청년단체임을 명시했다. 하지만 그들이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책자, 문건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결과 그들은 북한의 선군정치·3대 세습·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을 옹호하고 찬양했다. 또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일축했으며 천안함 사태를 우리의 탓(이명박 정권)으로 돌렸다. 이 밖에 미군철수, 한미동맹 해체, 한미합동군사훈련 반대, 반미자주화, 자주적 민주정부 설립, 민중에 의한 한국사회 변혁 강조 등을 지지하고 추구했다. 거론한 모두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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