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25 당시 國軍, 북한이 제작한 포스터·표어 원본 : 월간조선

이번에 공개된 포스터는 대부분 북한군이 제작한 것이다. 제작시점(1950년 7월)으로 볼 때, 북한은 포스터 제작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하는 등 전쟁을 철저히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급지(紙)에 그려진 화려한 색감의 포스터는 평양이 아닌 구(舊) 소련에서 제작한 것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포스터 제작수준이 높은 소련에 화가(畵家)를 보내 효과적인 구호와 고도(高度)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국 녀성들이여! 직장에 진출하라!’

북한이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제작한 선전물. ‘美 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을 우리 강토에서 완전 소탕할 때까지 투쟁을 전개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은 포스터에서 미군(美軍)을 박살내는 장면을 많이 그렸다. 일부에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을 짓밟는 장면도 있다.

6·25 전쟁을 일으키고 3일 만에 서울에 도착한 북한은 점령지 곳곳에 포스터와 표어를 붙였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악독한 미국 침략자들을 일층 무자비하게 결정적으로 격멸하자!’ (1950년 7월 21일)

‘조국을 위하여 모두 다 전선으로!’(1950년 7월)

‘공화국 녀성들이여! 전선에 나아간 당신들의 남편을 대신하여 직장에 진출하라!’(1950년 9월),

‘새소식 우리 인민군의 용감한 진공에 의하여 7월 20일 오전 12시 대전을 완전히 해방시켰다’(1950년 7월 20일)

고급지에 그려진 화려한 색감의 포스터는 평양이 아닌 舊 소련에서 제작된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 군(軍)은 표어를 많이 사용했다. 전쟁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실에 근무하던 시인 구상, 소설가 정비석 등 문인(文人)들을 활용해 간결하고 호소력 있는 표어를 만들었다. 대체로 14~20자 내외의 문구가 많다. 북한이 제작한 표어는 70자가 넘는 것도 있다.

‘앞서라 내 아들아 통일 전선으로!’(육군본부·1952년 5월 18일)

‘피흘려 찾은 서울 땀 흘려 재건하자!’(1952년 9월)

‘國軍은 民族의 前衛, 共匪는 民族의 원수’(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1953년 여름)

자료에서 알 수 있듯, 국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후퇴하기를 반복하면서 병력(兵力)이 모자라자 전투자원을 모집하는 내용의 표어도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 중에는 1950년 9월 28일 서울에 진출한 미(美) 해병대 병사들이 북한이 거리 곳곳에 붙인 포스터와 표어를 쳐다보는 사진도 있다. 6·25 당시 중공군이 자국(自國) 주민과 학생들에게 교육용으로 제작·배포한 10여 점의 포스터도 공개됐다.

희귀자료 공개한 長谷川純과 金暎峻

동아시아 근현대 遺物 수집가로 유명한 하세가와(왼쪽) 선생과 국내 고미술 수집 전문가인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

포스터와 표어를 세상에 공개한 주인공은 동아시아 근현대 유물(遺物) 수집가로 유명한 하세가와(長谷川·Stephen J. Hasegawa·70) 선생과 국내 고미술(古美術) 수집 전문가인 김영준(金暎峻·64) 시간여행 대표이다. 김 대표는 1899년 한국 최초의 전차(電車) 개통식 사진, 대한제국 최초의 보험증서, 6·25 전쟁 전후에 나온 전단 등 역사적(歷史的) 가치가 있는 자료를 수집·공개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일본계 미국인(美國人) 하세가와 선생은 김 대표보다 앞서 한·중·일(韓中日) 3국의 근현대 유물을 수집해 왔다. 그의 이름은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정평 나 있다. 하세가와 선생은 김 대표의 오랜 설득 끝에 이번에 귀한 자료를 세상에 공개했다.

지난 6월 12일 서울을 방문한 그를 한 호텔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언제부터 유물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국민학교를 다닐 때 취미로 우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후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본 유물에서 한국, 중국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나요.

“수집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내 주위에 재일(在日) 한국인과 중국인이 몇몇 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가진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모으는 습관이 생겼어요. 우표는 물론 크리스마스 실, 동전, 지폐 등 다양했어요. 구한말 대한제국이 발행한 훈장도 있었습니다.”

—어떤 훈장인가요.

“대한제국이 외국의 국가원수나 황실 가족에게 수여한 금척(金尺)대훈과 서성(瑞星)대훈, 태극(太極)대훈 등입니다. 구한말(舊韓末) 최고의 훈장이라 할 수 있죠. 특히 서성대훈은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희귀한 훈장입니다.”

—지금도 소장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모(某) 한국인이 갖고 있습니다. 나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소유권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원래 한국이 주인이니까 한국 사람에게 넘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당시 나를 아는 한국 사람이 내게 ‘귀한 것을 잘 보관해 줘서 고맙다. 한국 정부가 당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군 첩보원 출신으로 KGB까지 접촉

1953년 8월 남부지구경비사령부가 사용한 벽보. 휴전 이후 전북 남원에 주둔했던 남부지구경비사령부는 지리산에 남아 있는 共匪 토벌작전의 일환으로 ‘투항하라’는 내용의 벽보를 현장 곳곳에 붙였다. 사령관 육군 대령 유해준은 광복군 출신으로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도미(渡美)했습니까.

“서구(西歐)에서 유학을 한 선친(先親)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 대학까지 마쳤습니다. 미군(美軍) 첩보원으로 베트남 전(戰)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어요.”

—제대 후 어떤 일을 했나요.

“취미가 직업이 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레스토랑과 부동산업을 잠시 했지만, 옥션을 오랫동안 운영했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대한제국이 발행한 훈장과 징세인지(수입인지) 등을 비롯해 일본 강점기 시절에 발행된 크리스마스 실, 6·25 전쟁 관련 자료 등을 모았고, 최근까지는 박찬호 야구선수 자료도 모았습니다. 한국에는 대한제국 시절의 세금제도에 대해 연구가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대한제국이 발행한 징세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포스터와 표어 원본의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습니까.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오래전에 구했습니다. 진위(眞僞)를 확인하기 위해 구(舊) 소련 KGB 고위 인사도 여럿 만났죠. 그들로부터 확인한 내용인데, 고급 종이에 그린 북한 인민군 포스터 중에는 평양이 아닌 소련에서 제작된 것들이 있다는군요. 북한은 한국전쟁을 앞두고 소련에 화가를 보내 상징성이 높은 포스터를 연구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은 전쟁을 앞두고 포스터까지 치밀히 준비한 것이죠.”

하세가와 선생은 박찬호 선수가 유명세를 타면서 발행된 ‘박찬호 카드’ 11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구입비만 15만 달러 이상 들었다고 한다.

—박찬호 자료는 어떤 것들인가요.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유심히 지켜봤어요. 크게 될 선수라 생각했죠. 사람 됨됨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 판단이 옳았어요. 그는 야구선수로 커 갔습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박찬호 야구카드가 수백 종(種) 발행됐고 대부분을 사들였어요. 그동안 들어간 비용만 15만 달러 이상입니다. 그와 관련된 자료를 현재 1100여 점 갖고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레스토랑을 할 때 우리 식당에 온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박찬호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온 것이죠. 그 이후 경기가 있을때 가끔 만났어요.”

6·25 당시 중공군은 自國 주민과 학생들에게 교육용 포스터를 제작·배포했다. ‘이승만 도당과 美 제국주의가 만행을 저질렀다’고 적고 있다.

간첩으로 誤認

육군본부 정훈감실이 6·25 전쟁 당시 사용했던 표어들.

—한국어가 유창한데요. 언제 배웠나요.

“1980년대 초반 잠시 한국의 부산에서 살았는데 그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주 가던 다방 여직원에게 한국어를 꼬치꼬치 물어보니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내가 간첩이라고 당국에 신고가 들어갔어요. 당시 검경(檢警) 합동 심문조에 잡혀 가 장시간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내가 한국어를 잘하는 이유는 한국인 아내의 덕도 큽니다. 나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베트남어도 곧잘 하죠. 나의 선친도 외국어를 아주 잘하셨습니다. 내 딸도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영어, 중국어까지 합니다. 사위가 중국인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 가족은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이 모두 모인 가족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다 언제 일본으로 왔습니까.

“일본에서 살았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일본이 그리웠어요. 부산이 고향인 아내, 상하이에 거주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일본에 거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수집가로서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한국인 우표 수집가 중에는 내 이름을 아는 분이 몇몇 있습니다. 자랑하는 것 같지만 나는 1999년 베이징 국제우표전시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2001년 일본 우표국제전시회와 2013년 일본 전국우표전시회에서도 금상을 받았어요. 홍콩에서 ‘하세가와 컬렉션’을 열기도 했어요.”

기록과 수집의 가치 아는 日本人

소련군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용 전단지. ‘용맹스러운 제트기 조종사’라는 제목의 이 전단지에는 오키나와 공군기지로 MIG-25를 몰고 귀순한 소련 조종사의 사진이 들어 있다.

하세가와 선생은 에도 시대의 고문서(古文書)와 일본 군용품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단순히 수집가로 머문 것이 아니라 유물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학자 수준으로까지 연구해 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물품을 전시하는 참전국가들의 전쟁박물관에는 그가 제공한 물건과 자료들이 적지 않다. 그는 “일본의 학자 중에는 에도 시대 고문서를 해독(解讀)하는 분이 드물다”며 “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 진정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후대(後代)에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안 합니다. 대신 다른 사람이 안 하고 못하는 것을 합니다. 나는 후배들을 위해 수집하고 기록하죠. 나의 기록과 수집물을 기초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