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수사 | 전직 민주노동당 당직자의 從北主思派 관찰기 : 월간조선

친북(親北)세력 문제는 한국정치가 풀지 못한 오랜 숙제 중의 하나다. 이 문제는 2004년 이전까지는 단순히 일부 운동권의 원외(院外)정치활동으로 치부되었지만, 2004년 이후에는 ‘친북세력의 국회 진출 사태’로 문제의 성격이 바뀌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서 상근자로 일했던 사람 중 한명으로 친북세력의 정치세력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2002년 당시 민노당 당원으로 울산북구 지구당에서 구청장 선거를 지원했다. 몇 달 뒤에는 서울로 올라와 권영길(權永吉) 대통령후보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대선(大選)을 치렀다. 2003년부터는 중앙당 인터넷위원회에서 일했고 민노당이 처음 국회에 진출하던 2004년에는 다시 울산북구로 내려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열심히 민노당 활동을 하던 나는 2004년 총선 직후에 벌어진 당직(黨職)선거를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당권(黨權)의 향배가 바뀌면서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종북(從北)세력과 반북(反北)세력의 역학(力學)관계가 뒤집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곧 중앙당에 사표를 내고 상근 당직자 자리를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민노당을 탈당(脫黨)한 것은 아니었다. 2006년에는 친북-반북세력 간 분당론(分黨論)을 제기했고, 2년 후인 2008년 실제로 분당이 이루어지기까지 민노당 안에서 친북세력과 싸움을 계속했다.

민노당에서 다시 만난 주체사상

내가 민노당에 실재하는 주사파의 존재를 실감했던 것은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당원 교육에서였다. 서울시당(市黨)에서 주최하는 당원 교육을 받기 위해 행사에 참석했는데 잠시 강사의 얘기를 듣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낯익은 논리였다. 자세히 보니 그 당원 교육이라는 것이 실상은 내가 10년 전에 읽었던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에 나오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황당한 마음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내가 당원 교육의 내용이 ‘주체사상’에 나오는 사항임을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주체사상을 학습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사상적 전환을 겪었다. 그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핵(核) 위협을 밥 먹듯이 자행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을 정치수용소에 감금하고 배가 고파 압록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뒤통수에 조준사격을 가하는 북한의 군사정권을 보며 한때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본 주체사상을 정신적으로 폐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민노당에서 만난 종북세력들은 전혀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각종 당내 교육 과정에 개입해 주체사상의 논리를 ‘은밀하게’ 확산시키고 있었다. 누군가 북한에 불리한 논리를 들이대며 반론(反論)을 제시하면 그들은 “남한 언론을 어떻게 믿냐?”는 한마디 말로 논쟁을 피해갔다.

이석기 녹취록의 자매품

2008년 2월 3일 민노당 임시전당대회장에서 당원들이 일심회 관련자 제명 철회를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2004년 총선 당시, 민노당 울산북구 지구당에 선거지원을 나갔던 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서울에서 파견 나간 내가 먼저 했던 일은 사무실에 처박혀 있는 옛날 자료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사무실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문건들이 몇 개 나왔다. ‘선군정치의 중요성’이라는 문건이었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현 정세는 이북의 선군정치를 중심으로 북미대결 승리로의 결정적 전진을 예비하고 있다. 올해 이북 선군정치의 의도와 요구는 이남 민족민주 일꾼들로 하여금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으므로 전쟁은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패퇴시키는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것에 있다. 현 정세의 본질을 전쟁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현상적 인식이다.>

최근 불거진 이석기 녹취록의 자매품처럼 보이는 이 문건을 나는 2004년 울산의 민노당 사무실에서 보았던 것이다. 이 문건의 요지는 결국 “전쟁을 막는 것보다 미국을 패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문건은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천 지침도 주고 있었다.

<핵심일꾼 태세의 정비: 이북의 선군영도에 의해 북미 대결전 승리의 결정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1) 전사로서 나는 어떤 태세로 화답할 것인가? (2) 북미 대결전의 종국적 승리를 이루어내기 위해 나는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태세를 정비한다.>

<자주통일 사업을 중심으로 분회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당을 강화한다. 구체적인 동네로 들어간다. 지구별 몇 개의 특정 동과 아파트를 선정하여 집중 돌파한다.>

<북의 핵무장의 불가피성과 정당성, 북의 핵무기가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고 있다는 주장 등도 함께 넣도록 해야 한다.>

先軍정치는 善君정치?

2004년 4월 16일 17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권영길 대표. 이때부터 민노당의 국회 진출이 본격화됐다.

당시 문건에는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하라는 식의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북한이 왜 선군정치를 해야 하는지 그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논리를 공급하고 있었다. 나는 넘쳐나는 북한 사투리로 북한 군부의 논리를 설파하는 그런 문건이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사무실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비주사파(非主思派) 당원들의 반응이었다. 내가 문건을 보여주자 그들은 선군정치란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주지하듯이 북한의 집권세력이 주장하는 선군정치란 모든 문제에 있어서 군대를 앞세우는 정치노선을 뜻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비주사파 당원들은 선군정치에서 말하는 ‘선군’을 ‘선량한 군주’의 선군(善君)쯤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큼 주사파가 아닌 당원들은 북한에 대한 관심도 없고 당내 주사파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없었다. 내가 당원 게시판에 “친북세력은 당을 떠나라!”는 글을 올리자, 어떤 사람들은 “함께 가야할 동지들을 그렇게 공격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오히려 나를 비판할 정도였다.

민노당에서 친북세력들과의 당내 권력투쟁을 하면서 나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2004년에 처음 당내 역학관계가 뒤집혔을 때만 해도 ‘경기동부연합’이 이토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종북세력이 뭔가 거대한 구상의 일환으로 조직적으로 진보정당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는 판단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당내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확인했던 이른바 ‘9월 테제’라는 문건 때문이었다.

‘9월 테제’는 2001년 9월, 전국연합 핵심 활동가 500여 명이 모인 수련회 자리에서 채택되었다고 알려진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라는 제하의 문건을 말한다.

‘9월 테제’의 핵심은 “민족민주정당 건설에 주체적으로 나서자!”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민족민주정당이란 ‘민족민주전선에 복무하는 정당’을 말한다. 종북주의자들은 민노당을 하나의 독자적 정당이 아니라 민족민주전선이라는 ‘전선체(戰線體)’의 일부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는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국가라는 인식 때문에 불가피한 설정이었다. 즉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라는 시각에서 볼 때는 이미 북한에 조선노동당이라는 유일한 지도정당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에 또 하나의 ‘당’이 존재할 수는 없었다. 남한에는 정당이 아니라 조선노동당의 지휘를 받아 과업을 수행할 ‘전선체’가 필요할 뿐이었다. 이 때문에 종북세력들은 원래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당’ 건설에 대해 매우 회의적(懷疑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존의 판단을 수정할 새로운 노선이 등장했다. 그것은 남한의 합법정당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훨씬 유용한 전선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것이 바로 ‘9월 테제’였다. ‘9월 테제’는 ‘전선체’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문건은 이렇게 말한다.

<민족민주정당 건설 사업은 기존 정당세력과 무관하게 추진될 수 없다. 그것은 분열과 대립뿐이다. 특히 전국연합 성원 중 일부가 이미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조건에서 더욱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참여를 포함한 기존 정당운동 주체와의 연대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北, 제국주의와 전세 역전”

‘9월 테제’에는 종북세력의 ‘군사적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아래와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북(조선)은 제국주의 세력이 정치협상을 중단하면서 집중시킨 고립, 압살책동과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를 무엇으로 돌파할 수 있었는가? 북(조선)은 군사력으로 돌파하였다. 북(조선)은 백두산1호를 우주공간을 향해 발사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제국주의 세력은 경악하였고 종전처럼 적대, 말살정책을 계속 고집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자기의 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북(조선)의 이론에 의하면, 제국주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력인 군사력이라고 한다. 북(조선)은 사회주의혁명의 최대 시련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한 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대륙 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그로써 난관과 역경을 정면돌파하고 제국주의 세력과의 대결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요컨대 문건의 요지는 민노당을 전술적인 합법당으로 활용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민노당에 대한 전면적 참여를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 ‘9월 테제’를 전후해 당 밖의 친북그룹들이 조직적으로 입당(入黨)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민노당 내부에서는 당내 친북그룹을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으로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합법정당 진출 노선에 가장 적극적이던 그룹이 바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얘기가 퍼져 있었다. 2013년 터져나온 이석기 사건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과 만날 수밖에 없다.

2006년 10월, 서울지검 공안부가 일심회 사건을 발표했다. 민노당 간부를 포함한 일부 인사들이 일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측 공작원과 접촉하고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이때 민노당 당내에서 더 문제가 된 것은 당원 300명의 정보가 북한에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2006년에는 일심회 사건 외에도 ‘북한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이 핵실험 성공을 발표하자, 민노당 내 반주사파 진영은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려 했다. 다른 정당들은 모두 북한 핵실험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비난성명을 내놓았지만, 민노당은 당내 주사파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유감’ 수준에서 의견을 표명하기로 수위를 조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던 주사파의 극렬한 반대로 이것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북핵 관련 특별결의문에 대한 당시 중앙위원들의 표결현황을 보면 ‘북의 핵실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총 198명의 중앙위원 중 110명(55.6%)이 찬성했다. 당내 친북세력들은 한 걸음 더 나가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수정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반주사파 진영이 퇴장전술을 쓰는 바람에 북한책임론 없이 미국의 책임만을 묻는 수정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민노당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경남도당 소주병 폭행사건’의 어이없는 결론

2006년 12월 8일 민노당원들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일심회’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 중인 당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노당 내부에서 겪은 친북세력의 실체에 대한 경험 중에 꼭 언급해야 할 사건이 있다. 2004년 이후, 주사파들의 조직적인 당권 장악에 대응하기 위해 반북파도 당내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가 광범하게 발생했다. 그 결과로 형성된 당내 정파 중에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자율과 연대)’라는 조직이 있었다. 주지하듯이 사회민주주의는 유럽에서 공산당 1당 체제에 대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기 때문에 ‘자율과 연대’에도 당내 종북주의 반대 투쟁에 적극적인 회원들이 많았다.

그런데 2007년 민노당 경남도당에서 ‘자율과 연대’ 소속의 한 회원이 경남도당의 상근자에게 소주병으로 얼굴을 얻어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상근자는 주사파 문제로 ‘자율과 연대’ 회원과 언쟁을 벌이다가 소주병을 휘둘렀다. 피해자는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가 수십 바늘을 꿰매야 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경남도당 당기(黨紀)위원회의 처분이었다. 당기위원회는 폭력을 휘두른 경남도당 상근자에게 자격정지 6월이라는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이와 함께 피해자에게도 “사건의 한 당사자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이 인정된다”면서 3개월 자격정지를 내렸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당시 아래와 같은 글을 당원게시판에 올려 항의했다.

<나는 마산시당 당직자 폭력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중략) 그들은 나에게 “왜 폭행가해자를 주사파라고 지칭했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왜 (가해자를) 적들인 경찰에 고발했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왜? 그 사무국장이란 자가 주사파냐고요? 그거야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자기 입으로 스스로 자신이 주사파라고 했으니 주사파인 줄 알았지요. 그자는 자기가 《김일성회고록》과 《주체총서》를 마스터했으며, 《김일성회고록》을 읽어야 비로소 주사파에 입문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건 나 혼자 들은 얘기도 아니고 다중이 있는 장소에서 한 얘기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가 주사파인 줄 알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자가 주사파가 아니라면 경남도당 회계문제나 주사파들의 종파적이고 패권적인 행태에 대하여 가장 자주 그리고 신랄하게 비판을 해대던 나를 소주병으로 안면을 깔 수가 있겠습니까.>

나를 포함해 ‘자율과 연대’ 회원들은 분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민노당은 결과적으로 종북세력의 오늘을 있게 한 거대한 숙주(宿主) 역할을 하고 말았다. 종북세력은 민노당을 기반으로 삼아 정치세력화에 성공했고 국회에 진출했다.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선거공영제를 매우 입체적으로 활용해 국가 재정으로 자신들의 물적(物的) 기반을 확충해 나가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무능한 나머지 좌파들은 친북세력들과 원칙 없는 합당(合黨)과 분당(分黨)을 반복하다가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

主思派의 무기, 당원 직접투표

이석기 의원은 민노당 출신들에게는 거의 무명(無名)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競選)에서 상위(上位) 순번을 차지했다. 이렇게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인물이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당원직접투표’ 덕분이었다.

민노당은 창당 초기부터 당원 중심 정당을 표방하며 모든 최종권력을 당원투표에 맡기는 구조를 내세웠다. 당비(黨費) 내는 모든 당원에게 1인 1표의 권한이 있고, 무조건 산술적(算術的) 투표 결과에 의해 당직자건 공직자건 결정하는 체제였다.

이와 같은 당원 중심 시스템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충실한 제도이긴 했지만, 역설적(逆說的)으로 주사파들이 자파(自派) 세력을 배양하고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조직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던 주사파가 머릿수에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주사파가 ‘당원직접투표’를 통해 당 조직과 공직후보를 장악해 나가는 과정은 민노당의 창당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민노당 창당 첫해인 2000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현대자동차 노조(勞組)는 내부적으로 사실상 이모씨를 노동계 후보로 확정했다.

하지만 당시 울산시당을 장악하고 있던 울산연합은 당원 숫자상의 우위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자파의 후보를 당의 후보로 확정해 버리고 만다. 이 때문에 울산북구의 노동정치 세력들은 일제히 대혼란에 빠졌고, 결국 500여 표 차이로 민노당은 한나라당에 패배했다. 이것이 이른바 ‘2000년 울산북구 사태’다.

울산북구 사태 이후, 주사파가 저지른 최악의 패악질은 이른바 ‘용산지구당 사건’이다. 2002년, 인천연합은 용산지구당을 장악하기 위해 자파 소속 당원들의 당적(黨籍)을 대거 용산지구당으로 옮겼다. 일종의 위장전입이었다. 이후 그들은 당원투표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애당초 용산지구당을 창당했던 창당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중앙위원, 당대의원, 시·도당 대의원 등 핵심 당직자 11석 모두를 독식(獨食)했다. 사건이 벌어지자 당 지도부는 진상조사 후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민노당 초기, 당원 머릿수에 의한 당권 장악은 경기동부연합보다 인천연합과 울산연합이 먼저 선보였다. 2012년 통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에서 경기동부연합에 의해 발생한 부정선거 논란은 다른 종북정파(政派)들에 의해 예고되어 있었다. 경기동부연합만의 문제가 아니라 종북주사파들의 상투적인 수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종북세력들은 민주노동당 내부의 당내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당권과 공직후보를 장악했으며 결국에는 국회의원까지 배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운동권이 아니라 국회 안까지 들어와 버린 친북세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린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 이 사건의 이면을 올바로 분석하기 위해선 일단 세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친북좌파라는 말로 다 뭉뚱그리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은 모든 좌파가 다 친북은 아니다. 종북이라고 말하기 힘든 친북세력도 많다.

從北은 극소수의 이념집단

내 생각으로는 좌파를 ‘친북좌파’와 ‘반북좌파’로 나누어 보고, 친북세력도 종북-친북-온북(溫北)의 3단계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종북세력이란 말은 민노당 내부의 논쟁 과정에서 좌파들이 주사파를 비난하기 위한 개념으로 처음 만든 말이었다. 즉 민노당 내부에 단순히 친북 이상의 성향을 가진 존재들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한 용어가 바로 ‘종북세력’이라는 말이었다. 2001년경에 좌파들이 이 단어를 처음 쓸 때만 해도 10년 뒤에 이 용어가 이렇게 대중화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종북세력이라는 말이 대중화되고 그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무에게나 종북 딱지를 붙이면서 용어를 남발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종북’이란 개념 자체가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극소수의 핵심 세력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북한에 대해 같은 민족이라는 차원의 친근감(친북)이나 온정주의적 시각(온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정치적 신념의 일환으로 북한 체제를 추종(종북)하기란 쉽지 않다. 종북세력이란 말 그대로 극소수의 이념적 집단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넓은 의미의 ‘종북세력’을, 극소수의 ‘종북세력’과 이 종북세력의 외곽을 보호하고 있는 ‘친북세력’, 그리고 보다 광범위한 범주에서 친북세력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적 세력’(온북세력)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온북세력이 친북세력의 자양분이 되고, 친북세력이 종북세력의 보호막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종북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하면 온북이나 친북 단계의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종북을 보호하는 역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NL=主思派 아니다

나는 민노당에 입당하기 전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NL(민족해방) 계열의 운동권 집단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위기 같은 실상들이 전해지면서 대부분의 NL조직이 붕괴되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동권의 다수파는 NL이었다.

NL은 한국사회 모순의 근원을 ‘민족의 분단’ 때문으로 이해하고 ‘반미(反美)’와 ‘조국통일’을 최대의 과업으로 간주한다. 이른바 자주-민주-통일 노선이다. 이러한 ‘NL노선’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비교적 받아들이기 쉬운 노선이었다. ‘민족주의’라는 것은 굳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논리였기 때문이었다. NL이 학생운동의 다수파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측면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모든 NL이 모두 주체사상파(주사파)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늘 자신은 ‘비주사NL’이었다고 강조하듯이 초기 NL 중에는 주사파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주사파는 NL노선에 효과적으로 파고들었고 결국 NL을 장악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어떤 사람이건 20대에 형성된 기본 관점은 그 이후의 삶에서 별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NL이 80년대 학생운동의 다수파였던 만큼 20년 후에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NL 출신들이 포진하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NL을 장악한 채 그 보호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던 주사파도 이 과정에서 동반 성장했다. 이것이 바로 종북-친북-온북의 역사적인 3층 보호구조가 형성된 기원이다.

수사당국이 이석기 사건을 수사하며 북한과의 연계를 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북한과의 연계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북한과 연계가 전혀 없는 자발적 주사파가 북한의 통제를 안 따르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연계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주사파가 ‘민족주의’라는 원천적 에너지를 배경으로 종북-친북-온북의 중층적(重層的)인 보호막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다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從北고립 전략

우리는 종북세력의 실체를 되도록 알기 쉽게 폭로해서 종북을 친북-온북 보호막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종북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 것이다.

종북세력의 국회 진출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폭로 전략의 수행이라는 차원에서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 측면을 잘 활용하면 1980년대 학생운동 이후 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린 종북-친북-온북의 3층 구조를 와해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국회라는 기관이 법적인 조치 이전에 정치적인 조치를 취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윤리위원회가 민주당 일각의 주장처럼 ‘무죄(無罪)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관’이라면 굳이 윤리위원회는 있을 필요가 없다. 국회는 국회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윤리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의 모 의원 같은 경우 술자리에서 농담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로 매우 신속하게 국회 윤리위에 회부되어 평생 정치를 하기 힘든 타격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국회는 국회 안에 종북세력이 치고 들어왔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법원의 판단에 앞서 매우 정치적으로 신속하게 대(對)국민 폭로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국회의원 자체 징계는 수사기관의 수사발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종북세력을 폭로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강력한 스피커 역할을 국회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이제 종북세력이 국회 진출을 스스로 후회할 정도로 강력한 폭로와 고발을 대중의 바다 위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