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셰일오일 개발로 中東의 전략적 가치 감소하면서 아시아 복귀 촉진
⊙ “애국적 일본은 동북아 안보에 도움”(英 《이코노미스트》)
⊙ 美, 한국이 對中포위망 동참에 소극적인 것으로 생각
⊙ 韓, ‘미운 나라’가 아니라 ‘두려운 나라’를 경계해야
李春根
⊙ 6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同 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 저서: 《미국에 당당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 “애국적 일본은 동북아 안보에 도움”(英 《이코노미스트》)
⊙ 美, 한국이 對中포위망 동참에 소극적인 것으로 생각
⊙ 韓, ‘미운 나라’가 아니라 ‘두려운 나라’를 경계해야
李春根
⊙ 61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同 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 저서: 《미국에 당당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 지난 4월 말 동해에서 실시하는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美항공모함 니미츠호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경쟁한다. 약소국(弱小國)은 강대국(强大國)이 되기 위해 경쟁하며 강대국은 1등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국가들이 경쟁하는 이유는 자신의 현재 지위보다 한 등급이라도 상승된 지위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1등 자리도, 2등 자리도, 꼴찌 자리도, 모든 자리는 하나뿐이다. 지위 상승을 위해서는 자신보다 위에 있는 나라의 지위를 빼앗아야만 한다. 그래서 지구상 모든 나라는 아무리 친한 나라라 할지라도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쟁하는 나라들일지라도 이웃 나라를 아예 제거해 버려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말살시키겠다는 이웃과 더불어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뿐일 것이다.
두 나라 중 대한민국의 처지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불리하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없애버리겠다는 이웃 나라들을 각개격파하기에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웃들이 힘을 합치더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금 주변국은커녕 북한의 위협조차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1대 1로 붙으면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또한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이스라엘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종합국력(國力)에서 북한보다 30배 이상의 우위를 보이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쩔쩔매고 있다는 사실은 당장 극복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질병(痼疾病)이다. 북한에 대화하자고 조르는 것도 대한민국이며, 돈을 주면서도 쩔쩔매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이런 국제관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주변국들은 모두 세계 1, 2, 3, 4위의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웃을 격파할 수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운명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며, 미국은 현재 전략적 이유에서 한반도 문제에 깊게 개입하고 있는 세계 패권국(覇權國)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지도자들의 국제정치 및 국가안보에 관한 인식은 가히 태평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국방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비율로 보면 이스라엘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세계 평균 수준에 불과하다.
냉전(冷戰)이 끝난 후 2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국방비를 가장 빠른 속도로 증액시킨 나라는 중국이다. 우리나라 언론인 혹은 정치가들 중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국방비 성장률이 중국의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의 국방비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일본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중국 航母, 일본 헬기航母
2010년 중국이 항공모함을 진수(進水)했을 때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든 중국”, “찬란한 태양이 뜨다”라고 정신 나간 보도 제목을 뽑은 대한민국 언론도 있었다. 지난 8월 6일 일본이 헬리콥터 항모를 진수시키자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히 일본의 군국주의(軍國主義) 부활이라며 비난했다. 중국의 항공모함은 대한민국 안보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헬리콥터 항공모함은 대한민국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의 항모와 맞장 뜰 수 있는 해군력 증강 캠페인이라도 벌이자는 언론은 보지 못했다.
금년 초,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제정치학적인 무감각에 관한 재미있는 시론(時論)이 신문에 실렸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세 가지’라는 제목의 시론인데,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를,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나라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도 모르고, 북한도 모르고, 일본·중국도 모른다는 말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라면 필자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나라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설파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자신도 모르고 적도 모르고 누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인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한반도 주변 국제정치의 변동 속도는 마치 조선왕조가 종말을 고하던 19세기 후반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당시 조선의 왕실과 엘리트들은 망해가는 조선을 구하려고 이 궁리 저 궁리 했지만 결국 나라가 망하는 치욕을 면할 수 없었다.
조선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니 이웃 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살 방법을 강구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신흥 강국 일본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 그래도 중국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세력, 미국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 러시아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들이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는 조선의 우국지사들이 국제정치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본과 러시아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은 일본·러시아의 대(對) 한반도 정책의 본질이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宗主權)을 빼앗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친중파(親中派)는 독립 의지가 없는 세력이었다. 친미파(親美派)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해 관심이 그렇게 크지 않으며, 아직 그럴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세계 최강은 영국이었는데, 조선의 우국지사들 중에 영국의 힘을 활용하자는 세력은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제구조의 변동 역시 구한말(舊韓末)의 안보 상황을 연상케 한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을 점령해서 식민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국제정치의 변동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낭패스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장 낭패에 처하는 상황은, 완전히 핵(核)무장을 하고 지금보다 경제 사정이 나아진 북한과 지속적으로 대치하면서, 중국은 막강해진 가운데 일본과는 완전히 적대관계에 들어가고, 미국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손을 떼는 상황이다. 즉 대한민국이 대중(對中) 포위전략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고, 일본과도 협력하지 않고, 대단히 친중적(親中的)이라면 미국은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대신 일본을 필두로 베트남, 인도, 호주, 필리핀 등 중국에 저항하는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대폭 강화하면서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경우다.
이는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이 보이는 행동을 미래에 대입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면 우리는 북한, 일본과는 물론 미국과도 잠재적인 적대관계에 들어갈지 모른다. 중국에 의존하면 되겠지만, 그 경우 브레진스키 교수가 예측한 대로 대한민국은 중국의 속국(屬國)이 되는 상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 話頭의 변화
지난 20여 년 동안 지탱되던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구조는 현재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2000년대가 시작된 이후 불과 13년밖에 되지 않은 기간 동안 국제정치의 대세가 벌써 세 번째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지(誌)는 국제정치 분석가들 사이에 가장 널리 회자되었던 주제가 2001년 직후 수년간은 ‘반테러전쟁’(Anti-Terror Warfare)이었고, 그 후 지난 10년 정도는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이었는데, 2012년 미국에서 셰일오일(Shale Oil) 개발이 본격화됨으로써 앞으로 한동안은 ‘미국의 에너지 붐’(American Energy Boom)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혈암(頁巖·Shale)에 포함되어 있는 천연가스와 석유를 캐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경제성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채취하는 기술이 완전히 개발되면서 미국에서는 지금 에너지혁명이 진행 중이다. 노스다코타, 오하이오 등 미국 여러 곳에서 본격적으로 셰일오일을 채굴하고 있다. 황량한 벌판에서 석유가 분출되던 영화 <자이언트>에서와 같은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2020년 다시 세계 최대의 석유생산국이자 석유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추정되는 셰일오일 매장량을 포함할 때 미국은 앞으로 15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확보한 상태다.
이미 최근 수년 미국의 석유수입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이 러시아를 험하게 대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미국 정보국 직원의 망명을 받아들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예정되어 있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해 버렸다.
물론 미국에서는 셰일오일의 유·무익에 관해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배부른 자의 한가한 논쟁일 뿐이다. ‘공해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꼭 퍼내서 써야 하느냐?’ ‘왜 한가하고 아름답던 농촌 마을을 시커먼 석유로 오염시키느냐’ 따위의 논쟁을 벌이는 그들이 부럽다.
中東의 중요성 급감
필자는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셰일오일 채굴 현장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캐럴턴(Carrolton)을 직접 가서 보았다. 미국의 외딴 시골 마을에 대형트럭들이 채굴 장비를 싣고 부지런히 왕래하는 모습을 보며 국제정치의 구조를 변화시킬 엄청난 사건일 수도 있겠구나를 생각했다.
1950년대 간행된 미국의 국제정치학 서적들은 중동(中東)지역을 미국 국가이익의 3등급지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1등급, 즉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 걸린 지역은 서유럽과 일본이었다. 2등급 지역은 서유럽과 일본을 지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대한민국, 터키 등이었다. 3등급 지역은 미국이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이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미국 대통령 중 대표적으로 온건한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카터 대통령조차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석유 수급(需給)이 위협받는 경우 미국은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을 정도다. 2001년 이후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미국이 석유 장악을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인다고 손가락질했다.
셰일오일 혁명이 본격화되면 앞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을 치를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힘이 허약해진 러시아가 중동을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오늘, 중동을 지키던 미국의 항공모함들은 퇴역(退役)해도 되고, 더 중요한 다른 지역으로 파견해도 된다.
2011년 11월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21세기 세계정치는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다. 미국은 결정이 이루어질 한복판에 가 있을 것이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셰일오일로 인한 미국의 에너지 붐은 클린턴 장관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었다.
2012년 1월 5일 간행된 미국의 국방전략보고서에 ‘미국은 앞으로 두 개의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언급이 있었다. 우리나라 언론과 학자들은 미국이 돈이 없어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지 못하는 허약한 나라가 되었다며 방정을 떨었었다. 이것이 실은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할 이유가 소멸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새로운 정책을 ‘아시아 회귀(Pivot Asia)’란 이름으로 표현했다.
2008년 가을 월 스트리트 금융시장 붕괴는 미국 몰락의 결정판으로 인식되었고 2009년은 미국 몰락의 원년(元年)으로 기록되었다. 2009년 세계 10대 회사 중 1, 3, 5, 7위의 회사가 중국 회사들로 채워질 정도였다. 미국의 회사들은 2, 4, 6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미국의 위치가 영영 뒤바뀌는 줄 알았다. 그러나 2013년 7월 세계의 10대 회사 중 1~9위 자리는 미국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2009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회사는 세계 10위로 밀려났다. 미국은 지금 다시 회복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미국이 몰락한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중국의 浮上 둔화
2000년대 초반 이래 약 10년간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 최대의 화두(話頭)였다. 성질 급한 학자들은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미시 맥래 같은 기자는 1994년 저서에서 2003년이 되면 중국 경제는 규모상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늦어도 2014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2010년 무렵 중국이 과거와 같은 속도(연평균 9~10%)로 경제발전을 지속할 경우 2020~2030년이면 미국을 충분히 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필자는 혹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로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를 탁상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계산해 보았다. 7%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 무렵 중국의 GDP는 미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었다.
2012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대로 떨어졌다. 앞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다시 9~10%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학자들은 세계 경제발전사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연평균 10% 경제성장이 60년간 지속된다면’이란 허황된 가정으로 중국의 미래를 예측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의 군사력이 눈부시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 발표 기준으로 1989년 당시 50억 달러 수준이던 중국 국방비는 2013년 현재 1200억 달러에 육박했다. 10년 전인 2002년 중국의 국방비는 2012년 미국 국방비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미국의 평론가 조지 윌(Goerge Will)은 이미 1990년대 말 “중국의 부상은 마치 20세기 초반 독일의 부상을 보는 것 같다. 독일의 부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중국의 부상이 그렇게 귀결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韜光養懷’를 잊은 중국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군사력 증강 비율은 중국의 경제성장 비율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된 2013년 국방비도 공식 발표상 전년대비 11.5% 늘어난 액수다.
미국은 냉전 시절에 매년 소련 군사력에 관한 보고서를 간행했던 것처럼, 2000년대 이후 매년 중국의 국방에 관한 보고서를 간행하면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항공모함을 진수시킨 2010년 중국에 ‘왜 항공모함이 필요한지 이유를 밝히라’고 윽박질렀다.
에드워드 럿왁(Edward N. Luttwak)이 최근 저서 《중국의 부상 대 전략의 논리(Rise of China vs. Logic of Strategy)》에서 주장하듯 ‘중국의 부상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전략의 논리’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遺訓), 즉 ‘저들을 앞설 수 있을 때까지 결코 발톱을 보이지 말라(韜光養懷)’를 너무 빨리 어겼는지 모른다. 중국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중국의 주변국들은 대부분 중국의 힘이 부상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국력 증강의 당연한 귀결이다. 국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주변국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도는 오로지 중국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9만명으로 구성된 ‘중국타격군’을 건설하는 한편, 8월 12일에는 자국산 항공모함 진수식을 했다. 베트남은 미국 해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다낭항을 내주다시피 했다. 호주도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다윈(Darwin)이라는 도시에 미국 해병대 2500명이 주둔할 기지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의 국제안보 환경을 꼬이게 만드는 또 하나의 변수는 2012년 이후 보다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右傾化)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갑자기 우경화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의 우경화를 국제정치 구조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일본과 중국은 라이벌이었다. 두 나라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다. 중일 양국은 비록 안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힘의 균형이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하게 중국 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2010년 중국은 GDP에서조차 일본을 앞서 세계 제2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 특히 해군력 증강은 일본의 지위를 불안하게 했다. 사실 해양을 둘러싼 중일 분쟁에서 일본은 최근 중국에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불법 어로(漁撈) 활동을 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했다가 중국의 희토류(稀土類) 수출 금지 협박에 그날로 백기 투항한 적도 있었다.
한국의 전자·자동차 산업이 일본을 앞설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에 일본은 3등 국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국가적 위기감도 느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高齡化) 국가가 된 일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로 비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 최근 나타난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다. 지난 7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우파를 지지했다. 대한민국과 중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과는 달리 세계는, 특히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右傾化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13년 5월 28일자 일본 특집호에서 ‘자위대를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상비군으로 전환시킨 애국적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A patriotic Japan that had converted its “self- defence forces” into a standing army just like any other country’s would add to the security of North-East Asia)고 쓰고 있을 정도다.
우리가 말하는 ‘우경화’는 《이코노미스트》가 보기에는 일본이 ‘애국적’(Patriotic)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아시아의 안정에 오히려 도움이 될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더 이상 약해질 경우 아시아에서의 ‘균형유지’라는 미국의 대전략이 심각하게 훼손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센카쿠섬을 중국에 빼앗길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일본을 안심시키기 위해 금년 초여름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과 상륙작전 연습을 함께 했다. 중국이 러시아와 사상 최대의 해군 합동 훈련을 벌이자, 미국은 예정에 없던 일본과의 합동 훈련을 진행해서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고무된 일본은 차제에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성격의 군대인 해병대까지 갖추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정서적’으로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인들
일제(日帝) 식민통치 기억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는 편이라 우리 국민들은 감정적으로 반일적(反日的)이다. 반면에 지난 1000여 년간 중국에 종속되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역사는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6·25 당시 중국(중공)의 개입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원한 때문에 ‘중공 오랑캐’라고까지 하던 반중적(反中的)인 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분단과 6·25의 원인 제공자인 소련(러시아)에 대한 반감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국가안보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미국의 쇠고기를 제일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지만, 불과 5년 전 수십만 명이 길에 뛰쳐나와 미국 쇠고기 먹으면 죽는다고 난리 쳤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한국인들이 국제정치를 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정서적(情緖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감정이 아니라 냉혹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국제정치를 정서적으로 본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환경을 고려할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직도 20세기식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아시아 한복판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정서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전쟁의 원인은 ‘두려움’
잭 리비(Jack S. Levy) 교수는 우리가 아는 전쟁에 관한 지식은 2400여 년 전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논했던 바를 크게 초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이유에 대해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힘이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라고 요약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스파르타는 힘이 성장하는 아테네가 두려웠을 뿐이다. 그래서 아테네가 더 이상 두려운 나라가 되기 전에 전쟁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 ‘두려움(Fear)’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미움’보다 ‘두려움’이 더 큰 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은 바로 경쟁을 본질로 삼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특징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70여 년 전 서로 상대를 미워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독일의 나치가 무서웠다. 그래서 미소 두 나라는 힘을 합쳐 무서운 나라 독일과 전쟁을 벌였다.
국제정치 분석의 기초는 ‘미운 나라’가 아니라 ‘무서운 나라’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서운 나라가 내뿜는 두려움을 최소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안보 전략의 요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에 중국의 위협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본과 협력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기 대단히 어려운 정서적 국제정치관을 가지고 있다. 정서적 국제정치관은 두려운 나라보다는 미운 나라를 적으로 돌리기 마련이다.
美가 戰作權 이양 연기에 소극적인 이유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韓美)연합사 해체 문제와 전시(戰時)작전권 전환 문제를 재연기시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전략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일차적 반응은 시큰둥했다. 예로서 차기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는 계획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넘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합참의장 뎀프시 장군 역시 같은 투로 말했다.
미국의 이런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자신의 국방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대한민국이 정말 미국의 세계 대전략에 적극 협조해 줄 나라인지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은 미래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를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과 대한민국 모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을 동북아시아 안보를 위한 코너스톤(Corner Stone)이라고 말했고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라 말했다. 린치핀과 코너스톤이 서로 적국(敵國)처럼 행동한다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헝클어진다. 물론 한일관계의 악화는 미국의 동맹적 지위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야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맞장 뜨는 것도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유력신문 논설위원 한 분이 지적한 바처럼 “지금 미국에서는 어차피 중국 편이 될 대한민국을 빼고 하자”는 말이 나온다 한다. 국제정치의 오래된 진리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진정 동맹국으로 인정해 주고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런 미국이 대한민국을 중시하고 적극 지원할 ‘전략적 조건’까지 마련해 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몫이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경쟁하는 나라들일지라도 이웃 나라를 아예 제거해 버려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말살시키겠다는 이웃과 더불어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뿐일 것이다.
두 나라 중 대한민국의 처지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불리하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없애버리겠다는 이웃 나라들을 각개격파하기에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웃들이 힘을 합치더라도 이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금 주변국은커녕 북한의 위협조차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1대 1로 붙으면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또한 말하고 있다.
한국과 이스라엘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종합국력(國力)에서 북한보다 30배 이상의 우위를 보이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쩔쩔매고 있다는 사실은 당장 극복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질병(痼疾病)이다. 북한에 대화하자고 조르는 것도 대한민국이며, 돈을 주면서도 쩔쩔매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이런 국제관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주변국들은 모두 세계 1, 2, 3, 4위의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웃을 격파할 수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운명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며, 미국은 현재 전략적 이유에서 한반도 문제에 깊게 개입하고 있는 세계 패권국(覇權國)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지도자들의 국제정치 및 국가안보에 관한 인식은 가히 태평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국방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비율로 보면 이스라엘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세계 평균 수준에 불과하다.
냉전(冷戰)이 끝난 후 2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국방비를 가장 빠른 속도로 증액시킨 나라는 중국이다. 우리나라 언론인 혹은 정치가들 중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국방비 성장률이 중국의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일본의 국방비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일본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중국 航母, 일본 헬기航母
2010년 중국이 항공모함을 진수(進水)했을 때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든 중국”, “찬란한 태양이 뜨다”라고 정신 나간 보도 제목을 뽑은 대한민국 언론도 있었다. 지난 8월 6일 일본이 헬리콥터 항모를 진수시키자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히 일본의 군국주의(軍國主義) 부활이라며 비난했다. 중국의 항공모함은 대한민국 안보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헬리콥터 항공모함은 대한민국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의 항모와 맞장 뜰 수 있는 해군력 증강 캠페인이라도 벌이자는 언론은 보지 못했다.
금년 초,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제정치학적인 무감각에 관한 재미있는 시론(時論)이 신문에 실렸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세 가지’라는 제목의 시론인데,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를,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나라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도 모르고, 북한도 모르고, 일본·중국도 모른다는 말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라면 필자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나라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자신을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설파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자신도 모르고 적도 모르고 누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인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한반도 주변 국제정치의 변동 속도는 마치 조선왕조가 종말을 고하던 19세기 후반의 그것을 방불케 한다. 당시 조선의 왕실과 엘리트들은 망해가는 조선을 구하려고 이 궁리 저 궁리 했지만 결국 나라가 망하는 치욕을 면할 수 없었다.
조선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니 이웃 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살 방법을 강구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신흥 강국 일본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 그래도 중국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세력, 미국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 러시아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들이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는 조선의 우국지사들이 국제정치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본과 러시아의 힘을 빌리자는 세력은 일본·러시아의 대(對) 한반도 정책의 본질이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宗主權)을 빼앗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친중파(親中派)는 독립 의지가 없는 세력이었다. 친미파(親美派)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해 관심이 그렇게 크지 않으며, 아직 그럴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세계 최강은 영국이었는데, 조선의 우국지사들 중에 영국의 힘을 활용하자는 세력은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제구조의 변동 역시 구한말(舊韓末)의 안보 상황을 연상케 한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을 점령해서 식민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국제정치의 변동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낭패스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가장 낭패에 처하는 상황은, 완전히 핵(核)무장을 하고 지금보다 경제 사정이 나아진 북한과 지속적으로 대치하면서, 중국은 막강해진 가운데 일본과는 완전히 적대관계에 들어가고, 미국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손을 떼는 상황이다. 즉 대한민국이 대중(對中) 포위전략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고, 일본과도 협력하지 않고, 대단히 친중적(親中的)이라면 미국은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대신 일본을 필두로 베트남, 인도, 호주, 필리핀 등 중국에 저항하는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대폭 강화하면서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경우다.
이는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이 보이는 행동을 미래에 대입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면 우리는 북한, 일본과는 물론 미국과도 잠재적인 적대관계에 들어갈지 모른다. 중국에 의존하면 되겠지만, 그 경우 브레진스키 교수가 예측한 대로 대한민국은 중국의 속국(屬國)이 되는 상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 話頭의 변화
지난 20여 년 동안 지탱되던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구조는 현재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2000년대가 시작된 이후 불과 13년밖에 되지 않은 기간 동안 국제정치의 대세가 벌써 세 번째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지(誌)는 국제정치 분석가들 사이에 가장 널리 회자되었던 주제가 2001년 직후 수년간은 ‘반테러전쟁’(Anti-Terror Warfare)이었고, 그 후 지난 10년 정도는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이었는데, 2012년 미국에서 셰일오일(Shale Oil) 개발이 본격화됨으로써 앞으로 한동안은 ‘미국의 에너지 붐’(American Energy Boom)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혈암(頁巖·Shale)에 포함되어 있는 천연가스와 석유를 캐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경제성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채취하는 기술이 완전히 개발되면서 미국에서는 지금 에너지혁명이 진행 중이다. 노스다코타, 오하이오 등 미국 여러 곳에서 본격적으로 셰일오일을 채굴하고 있다. 황량한 벌판에서 석유가 분출되던 영화 <자이언트>에서와 같은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2020년 다시 세계 최대의 석유생산국이자 석유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추정되는 셰일오일 매장량을 포함할 때 미국은 앞으로 15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확보한 상태다.
이미 최근 수년 미국의 석유수입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이 러시아를 험하게 대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미국 정보국 직원의 망명을 받아들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예정되어 있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해 버렸다.
물론 미국에서는 셰일오일의 유·무익에 관해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배부른 자의 한가한 논쟁일 뿐이다. ‘공해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을 꼭 퍼내서 써야 하느냐?’ ‘왜 한가하고 아름답던 농촌 마을을 시커먼 석유로 오염시키느냐’ 따위의 논쟁을 벌이는 그들이 부럽다.
中東의 중요성 급감
필자는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셰일오일 채굴 현장 중 하나인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캐럴턴(Carrolton)을 직접 가서 보았다. 미국의 외딴 시골 마을에 대형트럭들이 채굴 장비를 싣고 부지런히 왕래하는 모습을 보며 국제정치의 구조를 변화시킬 엄청난 사건일 수도 있겠구나를 생각했다.
1950년대 간행된 미국의 국제정치학 서적들은 중동(中東)지역을 미국 국가이익의 3등급지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1등급, 즉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 걸린 지역은 서유럽과 일본이었다. 2등급 지역은 서유럽과 일본을 지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대한민국, 터키 등이었다. 3등급 지역은 미국이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이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미국 대통령 중 대표적으로 온건한 외교정책을 상징하는 카터 대통령조차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석유 수급(需給)이 위협받는 경우 미국은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을 정도다. 2001년 이후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미국이 석유 장악을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인다고 손가락질했다.
셰일오일 혁명이 본격화되면 앞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을 치를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힘이 허약해진 러시아가 중동을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오늘, 중동을 지키던 미국의 항공모함들은 퇴역(退役)해도 되고, 더 중요한 다른 지역으로 파견해도 된다.
2011년 11월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21세기 세계정치는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다. 미국은 결정이 이루어질 한복판에 가 있을 것이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셰일오일로 인한 미국의 에너지 붐은 클린턴 장관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었다.
2012년 1월 5일 간행된 미국의 국방전략보고서에 ‘미국은 앞으로 두 개의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의 언급이 있었다. 우리나라 언론과 학자들은 미국이 돈이 없어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지 못하는 허약한 나라가 되었다며 방정을 떨었었다. 이것이 실은 미국이 중동에서 전쟁할 이유가 소멸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새로운 정책을 ‘아시아 회귀(Pivot Asia)’란 이름으로 표현했다.
2008년 가을 월 스트리트 금융시장 붕괴는 미국 몰락의 결정판으로 인식되었고 2009년은 미국 몰락의 원년(元年)으로 기록되었다. 2009년 세계 10대 회사 중 1, 3, 5, 7위의 회사가 중국 회사들로 채워질 정도였다. 미국의 회사들은 2, 4, 6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미국의 위치가 영영 뒤바뀌는 줄 알았다. 그러나 2013년 7월 세계의 10대 회사 중 1~9위 자리는 미국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2009년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회사는 세계 10위로 밀려났다. 미국은 지금 다시 회복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미국이 몰락한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중국의 浮上 둔화
2000년대 초반 이래 약 10년간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 최대의 화두(話頭)였다. 성질 급한 학자들은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미시 맥래 같은 기자는 1994년 저서에서 2003년이 되면 중국 경제는 규모상 미국 경제를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늦어도 2014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2010년 무렵 중국이 과거와 같은 속도(연평균 9~10%)로 경제발전을 지속할 경우 2020~2030년이면 미국을 충분히 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필자는 혹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로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를 탁상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계산해 보았다. 7%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 무렵 중국의 GDP는 미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었다.
2012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대로 떨어졌다. 앞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다시 9~10%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학자들은 세계 경제발전사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연평균 10% 경제성장이 60년간 지속된다면’이란 허황된 가정으로 중국의 미래를 예측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의 군사력이 눈부시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 발표 기준으로 1989년 당시 50억 달러 수준이던 중국 국방비는 2013년 현재 1200억 달러에 육박했다. 10년 전인 2002년 중국의 국방비는 2012년 미국 국방비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미국의 평론가 조지 윌(Goerge Will)은 이미 1990년대 말 “중국의 부상은 마치 20세기 초반 독일의 부상을 보는 것 같다. 독일의 부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중국의 부상이 그렇게 귀결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韜光養懷’를 잊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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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상징하는 항공모함 랴오닝호. 일본의 경항모 이즈모호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
미국은 냉전 시절에 매년 소련 군사력에 관한 보고서를 간행했던 것처럼, 2000년대 이후 매년 중국의 국방에 관한 보고서를 간행하면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항공모함을 진수시킨 2010년 중국에 ‘왜 항공모함이 필요한지 이유를 밝히라’고 윽박질렀다.
에드워드 럿왁(Edward N. Luttwak)이 최근 저서 《중국의 부상 대 전략의 논리(Rise of China vs. Logic of Strategy)》에서 주장하듯 ‘중국의 부상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전략의 논리’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遺訓), 즉 ‘저들을 앞설 수 있을 때까지 결코 발톱을 보이지 말라(韜光養懷)’를 너무 빨리 어겼는지 모른다. 중국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중국의 주변국들은 대부분 중국의 힘이 부상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국력 증강의 당연한 귀결이다. 국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주변국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도는 오로지 중국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9만명으로 구성된 ‘중국타격군’을 건설하는 한편, 8월 12일에는 자국산 항공모함 진수식을 했다. 베트남은 미국 해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다낭항을 내주다시피 했다. 호주도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다윈(Darwin)이라는 도시에 미국 해병대 2500명이 주둔할 기지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의 국제안보 환경을 꼬이게 만드는 또 하나의 변수는 2012년 이후 보다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右傾化)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갑자기 우경화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일본의 우경화를 국제정치 구조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일본과 중국은 라이벌이었다. 두 나라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해 왔다. 중일 양국은 비록 안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인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힘의 균형이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하게 중국 측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2010년 중국은 GDP에서조차 일본을 앞서 세계 제2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 특히 해군력 증강은 일본의 지위를 불안하게 했다. 사실 해양을 둘러싼 중일 분쟁에서 일본은 최근 중국에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불법 어로(漁撈) 활동을 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했다가 중국의 희토류(稀土類) 수출 금지 협박에 그날로 백기 투항한 적도 있었다.
한국의 전자·자동차 산업이 일본을 앞설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에 일본은 3등 국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국가적 위기감도 느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高齡化) 국가가 된 일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로 비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 최근 나타난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다. 지난 7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우파를 지지했다. 대한민국과 중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과는 달리 세계는, 특히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일본의 右傾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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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미일합동훈련을 강화하는 등,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파트너로서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
우리가 말하는 ‘우경화’는 《이코노미스트》가 보기에는 일본이 ‘애국적’(Patriotic)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보고 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아시아의 안정에 오히려 도움이 될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더 이상 약해질 경우 아시아에서의 ‘균형유지’라는 미국의 대전략이 심각하게 훼손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센카쿠섬을 중국에 빼앗길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일본을 안심시키기 위해 금년 초여름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과 상륙작전 연습을 함께 했다. 중국이 러시아와 사상 최대의 해군 합동 훈련을 벌이자, 미국은 예정에 없던 일본과의 합동 훈련을 진행해서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고무된 일본은 차제에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성격의 군대인 해병대까지 갖추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정서적’으로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인들
일제(日帝) 식민통치 기억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는 편이라 우리 국민들은 감정적으로 반일적(反日的)이다. 반면에 지난 1000여 년간 중국에 종속되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역사는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6·25 당시 중국(중공)의 개입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원한 때문에 ‘중공 오랑캐’라고까지 하던 반중적(反中的)인 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분단과 6·25의 원인 제공자인 소련(러시아)에 대한 반감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국가안보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미국의 쇠고기를 제일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지만, 불과 5년 전 수십만 명이 길에 뛰쳐나와 미국 쇠고기 먹으면 죽는다고 난리 쳤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한국인들이 국제정치를 보는 관점이 압도적으로 정서적(情緖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감정이 아니라 냉혹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국제정치를 정서적으로 본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환경을 고려할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직도 20세기식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아시아 한복판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정서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전쟁의 원인은 ‘두려움’
잭 리비(Jack S. Levy) 교수는 우리가 아는 전쟁에 관한 지식은 2400여 년 전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논했던 바를 크게 초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이유에 대해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힘이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라고 요약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스파르타는 힘이 성장하는 아테네가 두려웠을 뿐이다. 그래서 아테네가 더 이상 두려운 나라가 되기 전에 전쟁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 ‘두려움(Fear)’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미움’보다 ‘두려움’이 더 큰 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은 바로 경쟁을 본질로 삼는 국제정치의 구조적 특징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70여 년 전 서로 상대를 미워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독일의 나치가 무서웠다. 그래서 미소 두 나라는 힘을 합쳐 무서운 나라 독일과 전쟁을 벌였다.
국제정치 분석의 기초는 ‘미운 나라’가 아니라 ‘무서운 나라’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서운 나라가 내뿜는 두려움을 최소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안보 전략의 요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에 중국의 위협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본과 협력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기 대단히 어려운 정서적 국제정치관을 가지고 있다. 정서적 국제정치관은 두려운 나라보다는 미운 나라를 적으로 돌리기 마련이다.
美가 戰作權 이양 연기에 소극적인 이유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韓美)연합사 해체 문제와 전시(戰時)작전권 전환 문제를 재연기시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전략적으로 올바른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일차적 반응은 시큰둥했다. 예로서 차기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는 계획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넘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합참의장 뎀프시 장군 역시 같은 투로 말했다.
미국의 이런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자신의 국방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대한민국이 정말 미국의 세계 대전략에 적극 협조해 줄 나라인지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은 미래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를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과 대한민국 모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을 동북아시아 안보를 위한 코너스톤(Corner Stone)이라고 말했고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 안보의 린치핀(Linchpin)이라 말했다. 린치핀과 코너스톤이 서로 적국(敵國)처럼 행동한다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헝클어진다. 물론 한일관계의 악화는 미국의 동맹적 지위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야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맞장 뜨는 것도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유력신문 논설위원 한 분이 지적한 바처럼 “지금 미국에서는 어차피 중국 편이 될 대한민국을 빼고 하자”는 말이 나온다 한다. 국제정치의 오래된 진리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진정 동맹국으로 인정해 주고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런 미국이 대한민국을 중시하고 적극 지원할 ‘전략적 조건’까지 마련해 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몫이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