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사회, 신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UNPOO 설립 필요성 공감
⊙ 유엔, PKO 활동에 한국과 같은 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 원해
⊙ UNPOO, 한반도 유사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도
高盛允
⊙ 61세. 제주제일고, 육군사관학교 졸업(31기). 노스텍사스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美 Hudson Institute 초빙학자, 제주평화연구원(외교통상부 산하) 연구실장,
KIDA 군사기획연구센터장 역임.
⊙ 現 KIDA 국방현안연구위원장(부원장급).
⊙ 저서: 《국제평화유지활동의 미래구상》 《Rediscovering Asia(영문)》.
⊙ 유엔, PKO 활동에 한국과 같은 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 원해
⊙ UNPOO, 한반도 유사시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도
高盛允
⊙ 61세. 제주제일고, 육군사관학교 졸업(31기). 노스텍사스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美 Hudson Institute 초빙학자, 제주평화연구원(외교통상부 산하) 연구실장,
KIDA 군사기획연구센터장 역임.
⊙ 現 KIDA 국방현안연구위원장(부원장급).
⊙ 저서: 《국제평화유지활동의 미래구상》 《Rediscovering Asia(영문)》.
- 2010년 대지진 후 아이티에 파견된 유엔 PKO 장병들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관련국 간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구축하자는 취지로 제안된 것이며, 박근혜 정부의 외교 기조인 ‘신뢰외교’의 중추적인 실천전략이다. 그러나 유럽과 비교할 때 동북아 지역은 아직도 다자대화는 물론 다자협력의 경험이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과거사 문제, 영토 문제가 겹치면서 한·중·일 3국간의 연례 정상회담마저 연기되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갈등과 긴장이 상존하고 다자협력의 기반이 허약한 동북아의 현주소에 비춰 볼 때, 역내 국가 간 신뢰의 구축을 위한 모멘텀이 절실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하에 국방 차원에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유엔평화유지활동기구(UN Peacekeeping Operations Organization, UNPOO)’를 한반도에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마침, 평화유지활동을 통해 초국가적인 유형의 안보위협에 대처하자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추진체로서 UNPOO를 설립할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안보’와 ‘인도주의적 개입’의 필요성이 증대됐고, 세계 주요국들은 예방외교부터 분쟁 후 평화구축에 이르기까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국가는 평화유지활동에 필요한 제도적 정비와 운용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노력은 있으나 ‘기여의지’와 ‘실천력’은 미약하다. 왜일까. 그 원인을 한국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평화유지활동 관련법을 만들어 상비부대를 편성하고 군 PKO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즉, 물적·제도적 기반은 마련돼 있는데, 정작 평화유지활동을 적기에 수행하거나 필요한 병력을 파견할 수 있는 여건은 미흡하다.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전투병이나 지원병력을 파견하는 데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이나 일부 국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유엔, 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 원해
한국은 적기에 신속하게 파병하지 못하고 있으며, 비전투병 위주의 활동에 발이 묶여 한국의 평화유지활동은 ‘마지못해 하는 PKO’로 비치기도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발전은 유엔과 국제사회, 동맹국의 지원과 협력에 힘입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우선,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지원과 협력을 주는 국가로 나가자는 것이며, ‘UNPOO’를 추진체로 삼아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이 되자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현실적으로 주도국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중급 국가, 즉 ‘middle power’인 한국이 그 역할을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둘째로, 한국의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대해 유엔 역시 우호적 입장을 갖고 있어 UNPOO 설립을 추진할 수 있는 호기이다.
오늘날 유엔은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늘어나는 평화유지활동 소요에 독자적 힘으로 대응하기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유엔은 직할 상비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국들이 분담하는 평화유지활동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우수한 군사대비 태세와 군사운용의 전문성을 갖춘 선진 강대국들은 실병력의 파병을 주저할 뿐만 아니라, 유엔의 지휘를 받기보다는 위임을 받아 다국적 평화유지활동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유엔 평화유지군은 개발도상국 군경(軍警)으로 채워지고, 결국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주먹구구식’ 평화작전, 군기문란과 인권침해, 평화중재 및 평화유지활동 실패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돌파구란 선진국들의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유엔은 내심 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으로 편중돼 있는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어하며, 한국과 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을 원하고 있다.
특히 유엔은 한국의 유엔 활약상과 경험,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한국민의 긍정적 여론에 주목하고 있다. 1993년 소말리아에 상록수 부대를 파병, 최초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한 이래 한국은 레바논과 아이티에 각각 동명부대, 단비부대를 보내는 등 분쟁 및 자연재해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평화유지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 더 큰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OECD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분위기를 혁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UNPOO’는 이러한 유엔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부담 소요예산, PKO 분담금으로 인정받아야
이러한 믿음은 필자의 경험으로도 확인된다.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주도하도록 지지하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07년 4월 필자가 설계한 한국 주도의 ‘지역 평화유지활동센터 개념’이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 평화유지활동부처(UN DPKO) 관계자들에게 전달됐으며, 그들은 한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했다.
당시 DPKO 관계자들은 “한국의 접근방안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발전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어 2007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제4차 제주평화포럼 세계지도자대회에서도 당시 한·일·러·필리핀의 전·현직 국가원수와 유럽과 아태지역의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지도급 인사들은 비군사·비정치적 이슈에서 다자협력의 기회를 모색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당시 참석자들은 필자가 제안한 ‘지역의 평화유지활동센터안’을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매개체로 한국을 지구촌의 다자대화 및 협력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유럽과 달리 다자대화의 경험과 협력이 미진한 동북아에서 평화유지활동과 같은 ‘soft power’ 이슈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공감한 결과다.
그렇다면 ‘UNPOO’는 어떤 모습으로 설계돼야 할까? 기구를 운영하는 데 소요될 예산은 한국 정부가 부담을 하고, 국제사회가 십시일반(十匙一飯) 기여하도록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이 부담하는 예산의 일부는 평화유지활동 분담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구의 주요 스태프는 북한에도 개방해 동북아 국가를 중심으로 하되 유엔 회원국들에게 개방된 형태로 기획할 필요가 있다. 기능은 유엔 해당 부서인 ‘UN DPKO’와 공조하에 유엔 평화유지활동 지원 업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UNPOO’의 운영과 관련해 스태프진을 다국적으로 하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주체는 총리실이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가야 할 것이다. ‘UNPOO’와 현재 운영 중인 군 PKO센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운영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UNPOO’에서는 ‘UN DPKO’와 공조하에 민·관·군 통합교육과 유엔 평화유지활동 정책연구 및 정책지원, 국제네트워킹 등을 담당하고, 군 PKO센터에서는 기본적으로 군인들만을 대상으로 교육·훈련·교리발전 연구 등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군 PKO센터에서는 ‘UNPOO’가 위탁하는 국내외 요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DMZ에 기구 유치도 고려해 볼 만
오늘날 한국은 정치적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스포츠·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힘입어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자부심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제 한국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국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도 ‘soft power’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많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장기적인 국가이익에도 합당한 접근으로 볼 수 있어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하에 필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구현할 추진체로 ‘UNPOO’를 설립해 대한민국이 평화유지활동의 구심점이 되자는 것이다. 물론 ‘UNPOO’는 유엔으로부터 ‘엔도스’를 받아 공식 유엔의 산하기구로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구의 위치는 북한 당국과 협의해 비무장 지대를 선택하는 것이 상징성이 있으나 여의치 않을 경우 경기도 북부의 비무장 지대 인근 지역이면 좋을 것 같다.
‘UNPOO’ 구상은 초기의 개념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평화유지활동 신개념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과 조직 체계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정비는 우리의 평화유지활동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남북한과 함께하고, 더 나아가 유엔 회원국들에게 ‘UNPOO’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구성원 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다자대화, 다자협력의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돌아보면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무력충돌을 예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김대중(金大中)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북한 김정일(金正日)과 만났다. 그러나 이후 긴장이 해소됐다거나 평화가 진전됐다는 평가가 없다. 돌아온 것은 서해상의 도발, 핵개발, 미사일 발사였다. 신뢰의 기반이 없다면 지도자를 만난다고 평화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실현의 ‘전략적 資産’
필자가 제안하는 ‘UNPOO’는 북한·중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실질적 협력을 촉진시킬 인프라, 혹은 협력의 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UNPOO’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다양한 협력은 향후 한반도 유사시 관련국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적 자산’도 될 수 있다.
국가 간 신뢰와 협력은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교류를 뛰어넘어 장기간 함께 고민하고 함께 땀을 흘리는 기회를 통해 확보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의 정부수립과 민주체제로의 발전, 산업화는 전적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더불어 한국은 유엔사무총장(UNSG)을 배출한 국가이며,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OECD 국가이자 2010년 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 국제적 기여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쉬운 일, 생색나는 일이라면 벌써 다른 나라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이 될 만한 여건이 조성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스포츠 교류만큼이나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쉽게 대화하고협력할 수 있는 대상이다. 호흡을 길게 갖고 ‘신뢰외교’의 추진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과거사 문제, 영토 문제가 겹치면서 한·중·일 3국간의 연례 정상회담마저 연기되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갈등과 긴장이 상존하고 다자협력의 기반이 허약한 동북아의 현주소에 비춰 볼 때, 역내 국가 간 신뢰의 구축을 위한 모멘텀이 절실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하에 국방 차원에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유엔평화유지활동기구(UN Peacekeeping Operations Organization, UNPOO)’를 한반도에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마침, 평화유지활동을 통해 초국가적인 유형의 안보위협에 대처하자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추진체로서 UNPOO를 설립할 당위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안보’와 ‘인도주의적 개입’의 필요성이 증대됐고, 세계 주요국들은 예방외교부터 분쟁 후 평화구축에 이르기까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많은 국가는 평화유지활동에 필요한 제도적 정비와 운용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노력은 있으나 ‘기여의지’와 ‘실천력’은 미약하다. 왜일까. 그 원인을 한국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평화유지활동 관련법을 만들어 상비부대를 편성하고 군 PKO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즉, 물적·제도적 기반은 마련돼 있는데, 정작 평화유지활동을 적기에 수행하거나 필요한 병력을 파견할 수 있는 여건은 미흡하다.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전투병이나 지원병력을 파견하는 데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이나 일부 국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유엔, 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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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아이티 파견 PKO 요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
우선,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지원과 협력을 주는 국가로 나가자는 것이며, ‘UNPOO’를 추진체로 삼아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이 되자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현실적으로 주도국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중급 국가, 즉 ‘middle power’인 한국이 그 역할을 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둘째로, 한국의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대해 유엔 역시 우호적 입장을 갖고 있어 UNPOO 설립을 추진할 수 있는 호기이다.
오늘날 유엔은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늘어나는 평화유지활동 소요에 독자적 힘으로 대응하기에는 명백히 한계가 있다. 유엔은 직할 상비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회원국들이 분담하는 평화유지활동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우수한 군사대비 태세와 군사운용의 전문성을 갖춘 선진 강대국들은 실병력의 파병을 주저할 뿐만 아니라, 유엔의 지휘를 받기보다는 위임을 받아 다국적 평화유지활동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유엔 평화유지군은 개발도상국 군경(軍警)으로 채워지고, 결국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주먹구구식’ 평화작전, 군기문란과 인권침해, 평화중재 및 평화유지활동 실패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돌파구란 선진국들의 적극적 동참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유엔은 내심 아시아·아프리카 개도국으로 편중돼 있는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어하며, 한국과 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적극적 동참을 원하고 있다.
특히 유엔은 한국의 유엔 활약상과 경험,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한국민의 긍정적 여론에 주목하고 있다. 1993년 소말리아에 상록수 부대를 파병, 최초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한 이래 한국은 레바논과 아이티에 각각 동명부대, 단비부대를 보내는 등 분쟁 및 자연재해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평화유지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 더 큰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OECD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분위기를 혁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UNPOO’는 이러한 유엔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부담 소요예산, PKO 분담금으로 인정받아야
이러한 믿음은 필자의 경험으로도 확인된다.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주도하도록 지지하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07년 4월 필자가 설계한 한국 주도의 ‘지역 평화유지활동센터 개념’이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 평화유지활동부처(UN DPKO) 관계자들에게 전달됐으며, 그들은 한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했다.
당시 DPKO 관계자들은 “한국의 접근방안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발전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어 2007년 6월 제주에서 열린 제4차 제주평화포럼 세계지도자대회에서도 당시 한·일·러·필리핀의 전·현직 국가원수와 유럽과 아태지역의 100여 명에 이르는 각계 지도급 인사들은 비군사·비정치적 이슈에서 다자협력의 기회를 모색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당시 참석자들은 필자가 제안한 ‘지역의 평화유지활동센터안’을 만장일치로 지지하고,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매개체로 한국을 지구촌의 다자대화 및 협력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유럽과 달리 다자대화의 경험과 협력이 미진한 동북아에서 평화유지활동과 같은 ‘soft power’ 이슈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공감한 결과다.
그렇다면 ‘UNPOO’는 어떤 모습으로 설계돼야 할까? 기구를 운영하는 데 소요될 예산은 한국 정부가 부담을 하고, 국제사회가 십시일반(十匙一飯) 기여하도록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이 부담하는 예산의 일부는 평화유지활동 분담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구의 주요 스태프는 북한에도 개방해 동북아 국가를 중심으로 하되 유엔 회원국들에게 개방된 형태로 기획할 필요가 있다. 기능은 유엔 해당 부서인 ‘UN DPKO’와 공조하에 유엔 평화유지활동 지원 업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UNPOO’의 운영과 관련해 스태프진을 다국적으로 하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주체는 총리실이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가야 할 것이다. ‘UNPOO’와 현재 운영 중인 군 PKO센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운영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UNPOO’에서는 ‘UN DPKO’와 공조하에 민·관·군 통합교육과 유엔 평화유지활동 정책연구 및 정책지원, 국제네트워킹 등을 담당하고, 군 PKO센터에서는 기본적으로 군인들만을 대상으로 교육·훈련·교리발전 연구 등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군 PKO센터에서는 ‘UNPOO’가 위탁하는 국내외 요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DMZ에 기구 유치도 고려해 볼 만
오늘날 한국은 정치적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스포츠·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힘입어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자부심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제 한국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국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도 ‘soft power’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많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장기적인 국가이익에도 합당한 접근으로 볼 수 있어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하에 필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구현할 추진체로 ‘UNPOO’를 설립해 대한민국이 평화유지활동의 구심점이 되자는 것이다. 물론 ‘UNPOO’는 유엔으로부터 ‘엔도스’를 받아 공식 유엔의 산하기구로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구의 위치는 북한 당국과 협의해 비무장 지대를 선택하는 것이 상징성이 있으나 여의치 않을 경우 경기도 북부의 비무장 지대 인근 지역이면 좋을 것 같다.
‘UNPOO’ 구상은 초기의 개념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평화유지활동 신개념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과 조직 체계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정비는 우리의 평화유지활동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남북한과 함께하고, 더 나아가 유엔 회원국들에게 ‘UNPOO’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구성원 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다자대화, 다자협력의 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돌아보면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한국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무력충돌을 예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김대중(金大中)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북한 김정일(金正日)과 만났다. 그러나 이후 긴장이 해소됐다거나 평화가 진전됐다는 평가가 없다. 돌아온 것은 서해상의 도발, 핵개발, 미사일 발사였다. 신뢰의 기반이 없다면 지도자를 만난다고 평화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실현의 ‘전략적 資産’
필자가 제안하는 ‘UNPOO’는 북한·중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실질적 협력을 촉진시킬 인프라, 혹은 협력의 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UNPOO’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다양한 협력은 향후 한반도 유사시 관련국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 대응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략적 자산’도 될 수 있다.
국가 간 신뢰와 협력은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교류를 뛰어넘어 장기간 함께 고민하고 함께 땀을 흘리는 기회를 통해 확보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의 정부수립과 민주체제로의 발전, 산업화는 전적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더불어 한국은 유엔사무총장(UNSG)을 배출한 국가이며,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OECD 국가이자 2010년 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서 국제적 기여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쉬운 일, 생색나는 일이라면 벌써 다른 나라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은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중심이 될 만한 여건이 조성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스포츠 교류만큼이나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쉽게 대화하고협력할 수 있는 대상이다. 호흡을 길게 갖고 ‘신뢰외교’의 추진을 위해 지혜를 모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