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 文聖默前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가 조언하는 북한 다루기 : 월간조선

“북한이 회담을 앞두고 장소, 날짜, 대표의 ‘격’을 문제 삼는 건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문성묵(文聖默) 전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예비역 육군준장)는 “2004년 제1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서해 충돌방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 ‘투스타급 장성’으로 하자고 했고, 북한은 ‘직함’으로 맞추자고 했었다”며 “한국군 소장(少將)은 투스타였고, 북한의 소장은 원스타란 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이라고 했다.

문 장군은 기자가 “회담 장소와 날짜까지 결정돼 있던 ‘남북당국회담’을 하루 앞두고 수석대표(단장)의 격(格)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다”고 하자, “북한은 첫 회담부터 기선제압 차원에서 박근혜(朴槿惠) 정부에 밀리지 않으려고 회담결렬을 불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회담의 본질이 아닌 격 문제로 깬 것만 봐도 대화의 진정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문성묵 장군은 1992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국방부 군비통제관실에서 근무하며 16년간 남북회담에 참가한 대북(對北)협상 전문가다. 특히 문 장군은 1996년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회담 대표로 활동했고, 김대중(金大中) 정부 말기인 2002년부터 노무현(盧武鉉) 정부 때까지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다.

6·15공동선언 강조한 것 눈여겨봐야

—북한은 과거 21차례의 장관급 회담에서 차관보급 또는 국장급을 내보내 상호존중과 신뢰라는 측면에서 밸런스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관계로 가야 한다”며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남북관계를 되풀이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남측의 장관과 북측의 국장급이 마주앉았던 과거의 장관급 회담을 기대했던 북한은 김이 빠졌을 겁니다. 과거와 다른 입장을 가진 남측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고요. 아무튼 북한은 첫 회담부터 박근혜 정부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회담결렬이라는 강수(强手)를 두었을 겁니다.”

—이번 회담은 박근혜 정부와 첫 번째 관계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만.

“북한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대규모 식량과 비료지원은 고사하고 전방위 대북제재를 당해 괴로웠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해서라도 남북관계를 이명박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고요. 이번에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6·15 공동선언’을 눈에 띄게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까.

“2011년 2월 남북군사실무회담과 거의 유사합니다. 당시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도발로 대남도발 수위를 한껏 높여 오다 이듬해 1월 5일 ‘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을 시작으로 남측에 무조건 대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보름 후인 1월 20일 미·중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죠. 우리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 측의 사과 내지 설명을 듣기 위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역으로 제의해 2월 8~9일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북측 수석대표 리선권 대좌는 회담 마지막 날 ‘천안함 사건은 북과 무관하다’ ‘(천안함 사건은) 특대형 모략극’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등의 억지를 편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이번에도 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로 긴장의 수위를 높여 오다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6일 남측에 전격적으로 대화를 제의했습니다.”

—회담이 계획대로 열렸다면,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합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의제로 꼽혔습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거론한 것은 남한의 인도적 지원을 염두에 둔 겁니다. ‘우리도 인도주의 문제에 성의를 보일 테니 남쪽도 성의를 보이라’는 암시죠. 북이 제시한 사안들은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대북제재 차원에서 발표하고 현 정부도 유지하고 있는 ‘5·24 조치’를 무효화하는 것들입니다.”

문 장군은 “5·24 대북제재 조치가 풀리려면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 재발방지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며 “북한의 조치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민간차원의 협력도 그렇고 남북 간 대화가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라고 했다.

北은 대화제의도 상대방의 허 찌르는 방식으로

2002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회담 개시 전 기자들 앞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문성묵 대령과 북측 단장인 유영철 대좌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지난 6월 6일 휴일인 현충일을 기해 갑작스레 대화를 제의했습니다. 왜 평일을 놔두고 공휴일을 택하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 갑니다.

“북한은 도발이든 회담 제의든 휴일에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의도적인 측면이 많아요. 6·25 전쟁도 일요일 새벽 4시에 기습해 오지 않았습니까. 휴일에 회담제의를 접한 청와대와 통일부는 비상이 걸려 갑자기 소집되고, 그 와중에 대응에 구멍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문 장군은 “북한 사람들과 20년 가까이 접촉한 경험칙(經驗則)을 보면, 그들이 아무리 어깃장을 놓아도 아쉬울 때면 어김없이 회담에 나온다”며 “북한이 대통령 실명(實名)까지 거론하며 비난했지만, 지금 굉장히 아쉬운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했다.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하는 데 직접적인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핵과 미사일 문제입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조선은 타도의 대상이고, 화해협력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껏 정상회담을 포함해 남북회담을 600여 차례 해 왔지만, 북한은 회담을 남북관계 개선보다 ‘적화(赤化)전략의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요.

“햇볕정책은 우리가 선의(善意)를 갖고 대하면 북한도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죠. 지금도 북한과 접촉하고 교류해야 하지만, 정말 북한의 속내가 무엇인지 꿰뚫어보면서 접근해 가야 합니다. 북한의 당면과제는 체제유지입니다.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으로 지금까지 이어 온 정권이니까요. 북한이 남북교류를 제한적으로 하는 건 남쪽의 돈과 독(자본주의)이 같이 들어오는데, 독은 받아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북한 주민을 살리려면 이젠 솔직해져야 합니다.”

북한이 ‘협상의 명수’라는 사실에 동의 안해

—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주장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버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겠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김일성은 동서 데탕트의 분위기에서 남북간의 고도로 긴장된 시기에 남북 비밀접촉을 통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만들었습니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좋아하는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해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남북한 간에 합의한 것들을 지키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치고 나가야 합니다.”

—과거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많았습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남북관계를 정상궤도로 올려놓겠다, 일그러지고 왜곡된 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니까, 북한도 어느 정도 박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있을 겁니다. 또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원칙’ 아닙니까.”

—북한의 벼랑끝 전술(blinkmanship)로 회담에 임할 때 곤혹스럽지 않았습니까.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접점(接點)을 찾는 게 협상인데, 북한은 막무가내식, 막가파식 협상을 합니다. 일부에서 북한을 ‘협상의 명수’라고 하는데,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협상전술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호혜적인 협상패턴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회담을 하면서 북한에 레드라인(red line)을 분명하게 인식시켰습니다.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與野)가 전례없이 한목소리를 내고 철수조치를 취하니까, 입장을 바꾸지 않습니까. 개성공단 사태는 ‘박근혜식(式) 벼랑끝 전술’의 승리로 볼 수 있습니다.”

문 장군은 1951년 7월부터 1952년 7월까지 2년 동안 유엔 측 수석대표를 역임한 터너 조이(Turner Joy) 제독의 저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를 바이블처럼 탐독했다고 한다.

조이 제독의 주장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은 협상에서, 첫째 결론이 담긴 의제를 제시하고, 둘째 계산된 돌발사건을 일으키고, 셋째 장애물을 조성해 협상을 지연시키고, 넷째 합의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기 위한 술수를 획책하고, 다섯째 거부권 행사와 논점 흐리기를 시도하고, 여섯째 진실을 왜곡하고 상대방의 양보를 악용하고, 일곱째 약속을 파기하고 상대방을 지치게 한다는 것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서구 사람들이 일을 일단 시작하면 그 일을 완성하려는 조급성을 최대한 이용해 이득을 보려 한다”며 “공산주의자들에게 1인치를 양보하면, 그들은 1마일을 빼앗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공산주의자의 약속은 어떤 방식이든 절대로 믿지 마라”며 “공산주의자들의 행동만을 믿으라”는 명언을 남겼다.

—남북 군사회담장에서 만난 북측 대표들도 조이 제독이 말한 대로 행동하던가요.

“1950년대 사용하던 협상 수법(手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저도 놀랐습니다. 조이 제독이 협상 1년 만에 그들의 속내를 꿰뚫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존경스럽더군요. 저는 그들의 수법을 바꾸기 위해 무진 노력을 했어요. 협상이란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DJ정부 시절, 1년에 남북회담 100여 차례 열려

—국방부 장교로서 남북군사회담에 가장 많이 참석했는데, 첫 회담은 언제였나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였죠.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담당장교(소령)로 회담을 모니터링하고 회담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당시 남북기본합의서에 불가침 분야 부속합의서를 협의하기 위해 군사분과위원회 회담이 열렸는데, 우리 측은 박용옥(朴庸玉) 국방부 군비통제관(당시 준장)이 나갔고, 북측은 김영철 단장이 참가해 불가침분야 부속합의서와 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만들었습니다.”

—남북회담이 지금껏 600여 차례라고 했는데, 김대중 정부 들어서 부쩍 늘어났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전엔 7·4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조절위원회가 몇 차례 열렸고, 적십자회담도 많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2000년 6월 이후 2007년까지 1년에 100차례가 넘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문 장군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다. 그는 50여 차례 북한군과 테이블 위에서 ‘총성(銃聲) 없는 전쟁’을 치렀다.

—군사회담 대표의 격은 어떻게 조율합니까.

“이번 회담의 경우처럼 북한은 기선제압용으로 늘 장난을 칩니다. 2004년 1차, 2차 장성급회담 때 우리는 북방한계선(NLL) 충돌방지 문제를 협의하려면 최소한 소장급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북한은 돌연 ‘직함’으로 맞추자고 해요. 우리가 소장(★★)으로 나오면, 자기네도 소장(★)으로 나오겠다는 거지요. ‘직함은 서로 다르니 별의 개수로 맞추자’고 하니 ‘그렇게는 못한다’고 생떼를 써요.

청와대는 ‘별의 개수를 따지지 말고 나가라’고 했어요. 결국 박정화(朴貞和) 해군준장이 나갔고, 북측은 안익산 소장이 나왔습니다. 일부에서 ‘왜 계급 퍼주기를 하느냐’고 말이 많았어요. 제가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로 나갈 때, ‘이번에야말로 바로잡자’며 ‘너희가 소장 나오면 우린 준장 나간다’며 밀어붙였죠. 자기들 대좌와 우리 준장이 같다며 대좌가 나오겠다고 한다면, 장성급회담이 아니잖아요. 하하.”

6·15 공동선언에 군사 신뢰조치 빠져

남과 북은 2007년 11월 12일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갖고 국방장관회담을 그해 11월 27~29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2007년 11월 12일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군사실무회담을 위해 우리측 대표단이 통일각으로 이동하고 있다. 남측 수석대표로는 국방부 북한정책팀장 문성묵 육군대령(앞줄 왼쪽) 등 3명이, 북측 대표로는 박림수 대좌(앞줄 오른쪽) 등 3명이 참석했다. 뒤편으로 우리측 자유의 집이 보인다.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군사적으로 긴장완화를 위한 문구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2000년 6월 정상회담 훨씬 전에 정상회담기획단이 구성됐고, 저도 국방부를 대표해 삼청동에 파견을 나갔습니다. 실무진으로 공동선언 초안에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란 말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국방부 안(案)을 건의를 했습니다만…. 공동선언에는 국군포로 송환에 대한 문구를 담지도 못하고 비전향장기수만 송환하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북한이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들은 가급적 우리측 핵심 인사들이 ‘드롭’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6·15 공동선언문이 공개되자,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들이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빠졌다”며 김대중 정부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여론의 지적에 다급해진 김대중 정부는 2000년 8월 29일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도록 했다.

그해 9월 김대중 정부는 김용순 특사와 서울을 방문한 박재경 대장(인민무력부 부부장)에게 남북국방장관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제의했다. 그 결과, 2000년 9월 11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조성태(趙成台) 국방부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 그해 9월 25일 제주에서 제1차 국방장관회담을 갖기로 했다.

—그러니까 남북국방장관회담은 김대중 정부가 다분히 국민을 의식해 마련한 회담이군요. 국방부는 이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에 대한 내용을 넣었습니까.

“공동보도문 5개항 중 제2항에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제거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조항을 삽입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집요하게 주장해 관철시켰습니다. 이때 북측 요구로 6·15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비무장지대(DMZ) 철도연결에서 도로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2000년 9월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 측이 북측에 “10월 13일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1차 남북군사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북측은 “남조선은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유엔사 측과의 협의를 주장했다.

결국 그해 10월 18일부터 11월 16일까지 4차례의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회의를 통해 유엔사와 북한군은 DMZ 일부 구역을 개방해 남과 북의 ‘관리구역’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문 장군은 “이에 따라 경의선 철도, 도로연결을 위한 DMZ 내 일부구역 개방과 관련한 관리구역 설정, 군사적·기술적 문제를 남북이 직접 협의해 처리하기 위한 합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면서 “유엔사와 북측 간 합의서가 발효된 이후, 남북 양측은 2000년 11월 28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처음으로 제1차 남북군사실무회담을 개최할 수 있었다”고 했다.

DMZ 관할권 문제로 대립

—우리 측이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군사실무회담을 제안했는데, 북측의 이의제기로 유엔사와 협의하는 바람에 DMZ 도로연결을 위한 군사실무회담이 두 달이나 늦어졌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북측은 왜 관할권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요.

“DMZ 내에서 일어나는 정전협정 위반사건이나 출입은 ‘관할권’에 해당하고, 관리구역 내의 공사, 인원과 장비의 통행은 ‘관리권’에 속합니다. DMZ 안에서는 유엔군의 관할권이 존재합니다. 북한은 6·25 전쟁의 정전 당사자로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유엔사와 이야기하겠다는 것이었죠. DMZ의 도로를 연결하는 것은 관할권 문제이기 때문에 유엔사와 장성급회담을 열어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북한군은 유엔사의 관할권은 인정하거든요.”

문 장군은 “당시 북한은 DMZ 도로연결 기회를 통해 경제적 실익도 챙기면서 동시에 한미동맹을 흔들어 보는 기회로 삼았었다”며 “DMZ의 도로와 철도연결 지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을 제한하려 했다”고 했다.

“북한은 집요하게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고,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관리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을 없애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북한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아는 우리는 임시통행합의서에 ‘남북관리구역’을 표시할 때 ‘비무장 지대의 일부인 남북관리구역’이라는 표현을 넣자고 했습니다. 유영철 대좌는 ‘당연히 비무장지대의 일부인데 왜 그런 표현을 넣느냐’고 하길래, ‘당신들이 이곳에서 유엔사 관할권을 배제하려 하기 때문에 남북관리구역도 명백히 DMZ라는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DMZ의 철도와 도로는 현재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JSA(공동경비구역)처럼 JAA(Joint Administration Area·남북관리구역)라고 부릅니다. JAA 내에서는 북한군이 유엔군의 ‘관할권’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유엔사가 수시로 들어가 관리구역을 순찰합니다. 관할권은 유엔군이 행사하는 대신, 대한민국은 ‘관리권’만 행사합니다.”

문 장군은 “6·15 정상회담에선 철도를 연결하기로 했고,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도로가 추가되면서, 그 도로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의 통로가 된 것”이라며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기 위한 철도와 도로 연결이 급한 나머지 우리가 요구하는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제거 등의 요구를 수용했던 것”이라고 했다.

NLL 문제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문 장군은 “북한은 남북대화를 통해 회담에 목말라하는 남쪽에 군사회담에 응해 주는 척하면서 경제적 실익(實益)을 얻고, 대남적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한미동맹, 정전체제, 유엔사 문제를 흔들고 있다”며 “결국 북한은 2004년 의제에도 없는 NLL 문제를 회담에 올렸고, 숙원사업인 심리전 수단까지 철거시켰다”고 했다.

—2004년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심리전 수단을 철거했는데, 그때 회담에 참석했습니까.

“수석대표인 박정화 제독(해군 준장)을 모시고 차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군복 입은 군인으로 강하게 반대했지만,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판단을 내리는데, 대표가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대북심리전 수단은 우리가 대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요한 군사력인데, 그 효과 때문에 북한이 절박하게 중단해 달라고 했던 겁니다. 우리 군은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이 선행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통수권자의 결단’이라며 명령을 하는데,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이후 심리전 카드는 우리에게 버려진 카드가 된 거죠.”

—어떻게 군사회담에 NLL 문제가 끼어들어 가게 됐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 주시죠.

“노무현 정부는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북핵과 서해상 충돌 두 가지로 보았고, 서해상에서 우발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협상이 긴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에 기초해 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논의하고 있지만, 서해상의 충돌방지를 위한 협상의 틀이 없다고 하면서 장성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NLL 문제가 이슈로 포함됐던 겁니다. 북한은 이 회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또 하나 있다’며 슬그머니 심리전 수단 철거를 요구하면서,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장성급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2004년 제2차 장성급회담에서 우리 측은 서해상 충돌방지를, 북한 측은 심리전 수단 철거 등을 주장했고, ‘6·4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천안함 폭침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취한 ‘5·24 조치’를 현 정부도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명박 정부가 심리전 수단을 다시 설치한다고 하자, 북한이 ‘조준사격’ 운운하며 난리를 쳤죠. 그 과정에서 긴장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숨고르기를 하지 않았나 봅니다. 심리전은 재개해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김영철, “똑똑한 NLL 경계선을 긋자”

2007년 11월 12일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군사실무회담 개시 전 문성묵 대표가 북측 단장 박림수 대좌와 악수를 하고 있다. 북측 단장 박림수는 이후 소장으로 진급해 현재는 국방위 정책국장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 장군은 남북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 시절 김영철 북한군 총참모장과 대좌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인물이다.

“김영철과는 2006년 6월 제3차 회담 때 첫 대면했습니다. 김영철은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원회 북측 위원장으로 처음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에 우리는 2000년 남북국방장관회담, 2004년 제1차 장성급회담 때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만한 사람이 북한 측에 없다고 봤지요. 그러다 2006년 3월에 떡하니 1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뒤에서 회담을 조직했다’고 했습니다.”

문 장군은 “대본도 보지 않고 어떤 사안이 대두됐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기의 주장과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언변을 갖고 있었다”며 “회담장에서 자신이 실세인 듯 행동하며 ‘모든 실권을 위임받고 왔다’면서 으스대는 모습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1, 2차 연평해전 등 두 차례의 무력도발을 통해서도 NLL을 협상대상으로 삼는 데 실패한 북한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그 시점은 2005년 남북어업실무협상을 통해 공동어로에 합의한 이후이다. 사실 남측이 공동어로구역 아이디어를 낸 배경에는 북한의 서해 NLL해역에서 잇단 군사도발을 시도한 것과 연관성이 있다.

문 장군은 “우리 측으로서는 북한이 NLL 인근에서 조업하고 있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한다는 구실로 NLL을 침범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만큼, 남과 북이 그 해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해 공동어로를 한다면, 긴장도 완화시키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며 “하지만 북한은 이번 기회에 NLL을 남북협상 테이블에 올려 무력화시킬 수 있는 호기로 판단했던 것”이라고 했다.

문 장군은 “노무현 정부 때 열렸던 남북장성급회담에서 NLL 경계선 협상을 의제에 올려 달라고 통사정을 했었다”며 “그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온 것처럼 보였고, 우리의 입장이 너무 확고하니까 마이크가 없는 장소에 가서 ‘정말 좀 도와 달라’고 사정했다”고 했다.

2006년 초 제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때 북한 측 단장에 김영철이 전면에 나섰다. 문 장군은 “김영철은 자신이 직접 나서 NLL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경계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나온 것으로 보였다”고 회고했다.

2006년 3월, 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의 김영철은 “공동어로를 하기 전에 먼저 경계선부터 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영철은 “지금은 똑똑한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 측은 “서해해상경계선은 NLL이며 NLL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NLL을 중심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고 시행하자”고 대응했다.

결국 NLL 문제는 2007년 10·4 선언 직후 개최된 제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정을 둘러싸고 다시 격돌하게 된다.

문 장군은 “북한은 집요한 무력화 책동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의도대로 관철되지 못하자, 다시금 무력도발로 나섰다”며 “2009년에는 대청해전으로,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포격 도발이라는 본색을 드러내며 NLL 무력화 책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7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高聲 오가며 몸싸움

회담 시작 직전 북측 실무자가 남북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에 대한 북측 요구안이 담긴 지도를 프로젝터로 투사하자 남측 실무진이 영상이 투사되지 않도록 막아서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남북군사회담 대표로서 20년 가까이 그들과 대면하다 보면 아무래도 친해지지 않습니까.

“친해진다는 표현은 맞지 않고요, 익숙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낯설죠. 그러나 오래 대하다 보면 아무래도 NLL, 한미연합연습, 전단살포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가 예측이 됩니다.”

—2007년 12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제7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문제를 놓고 남북한 장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면서요.

“우리 측은 이홍기(李弘基) 소장(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이 수석대표로 나섰고, 북측은 김영철 중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회담장인 평화의집으로 향하는 북측 장교가 막대기와 철가방을 들고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겁니다. 제가 연락장교에게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북한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스크린과 오버헤드프로젝터라고 해요. 필요 없다고 해도 반드시 쓰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자들 오프닝 세리머니가 끝나고 비공개 회담 때 설치해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미리 설치만 하고 기자들 나간 다음에 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은 약속을 어기고 개회식 때 기자들 앞에서 켠 겁니다.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NLL 지도였습니다. 잽싸게 우리 측 육·해군 장교가 몸으로 막았고 그것을 인민군 장교가 떠밀었어요. 그러자 이홍기 장군이 ‘약속을 어기면 어떡하냐’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김영철이 ‘끄라우~’라고 하더군요. 그때 김영철이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북군사회담은 남북회담 가운데 비중이 큽니다. 우리 군은 대북 군사회담을 담당할 전문가들을 잘 양성하고 있습니까.

“이상철 준장(국방부 군비통제차장), 문상균 대령(국방부 북한정책과장) 등이 전문가로 양성된 인물들입니다. 북한은 박림수가 국방위 정책국장으로 나오는데, 전문가들이 볼 때는 정찰총국의 정찰국장인 것 같아요. 유영철은 2005년 회담 도중 혈압으로 쓰러져 제 역할을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김명철, 박림수, 박기용, 리선권 등 협상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대북 협상전문가를 꾸준히 양성해야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같은 인물이 회담장에 나와도 잘 요리할 수 있을 겁니다.”

문성묵 장군은 “북한은 그동안 수많은 대화를 하고 합의서를 도출하기도 했지만, 북한군의 도발적 행태는 변한 것이 없다”며 “앞으로 대화가 재개된다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그들을 얕잡아 볼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