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國 빨리 갈 수 있단 생각에 정보원 돼”
⊙ 철저한 신원 검증 없이 ‘기밀’ 담긴 편지 맡겨
⊙ 北韓 내 南韓 정보원, 주부 간첩 보고로 체포돼
⊙ 철저한 신원 검증 없이 ‘기밀’ 담긴 편지 맡겨
⊙ 北韓 내 南韓 정보원, 주부 간첩 보고로 체포돼
- 수원지법은 지난 4월 19일 북한 보위부 지령을 받고 위장 귀순한 권모씨에 대해 “권씨가 수집, 전달한 정보에 의해 한국 정보기관 정보원이 북한 보위부에 체포되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징역 4년·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최근 북한 보위부 지령을 받은 ‘주부 간첩’에 의해 우리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망이 일부 뚫린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는 4월 19일 북한 보위부 지령을 받고 위장 귀순한 권모(48·여)씨에게 징역 4년·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씨가 수집, 전달한 정보에 의해 한국 정보기관 정보원이 북한 보위부에 체포되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평범해 보이는 아줌마 간첩 사건에 관심을 가진 건 그의 ‘활약’으로 우리측 북한 정보원이 보위부에 발각, 체포됐기 때문이다. 평범한 주부가 어떤 활동을 했기에 우리 대북 정보망이 뚫린 것일까. 권씨에 대한 1심 재판기록, 검찰과 정보기관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주부 간첩’의 실체를 추적했다.
中國 빨리 갈 수 있단 생각에 정보원 돼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평양 태생인 권씨는 1993년 북한 대표 축구선수 출신 주모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94년에 큰딸을 낳았다. 이듬해엔 작은딸이 태어났다.
당시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북한에서 가장 특혜를 받는 평양도 1996년 말부터는 배급이 중단됐고, 대부분 자력으로 구한 옥수수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상황이었다. 권씨 가족도 생활고를 겪었다.
이에 권씨는 1997년 10월 이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고 중국을 방문했다. 2006년 1월, 2007년 5월에도 중국에 갔다. 그는 2009년 들어서는 중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북한 당국은 중국 방문 후 1년이 지난 이들에게 5촌 이내 친척을 만나는 것에 한해 여행증을 발급하지만, 2009년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보위부에 돈이나 쌀을 바쳐도 여권을 내주지 않아 중국에 갈 수 없었다.
북한이 2008년부터 황색 바람(자본주의 문화) 차단 명분을 내세워 화교를 제외한 일반 주민의 중국 친척 방문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으로 가기 위한 방편을 알아보려 평양 서성구역 보위부를 드나들던 와중에 권씨는 해당 구역 보위부 반탐과장 조○○로부터 ‘정보원 활동’ 제안을 받았다.
이에 권씨는 2009년 5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권씨가 단번에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그가 수원지법에 제출한 자필 반성문 중 일부다.
“중국에 있는 이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보위부 출입국 사업부에 비자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제가 잘 알고 있던 국가보위부 지도원이 찾아와 보위부 정보사업을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에 가기 쉽고 수속도 빨리 된다고 하기에 남편도 반대했고, 저 또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오직 중국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정보원사업을 수락했습니다.”
권씨는 충성 서약을 하고, 서성구역 보위부 부근 초대소에서 2일간 정보원 교육(보위사업)을 받았다. 검찰 수사보고에 따르면 그는 “북한 체제를 비방하거나 김정일 일가를 험담하는 이웃주민들을 상부에 밀고하면서 1년여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中國 단둥에서 南朝鮮 정보기관 연계망 파악하라”
또 2010년 10월 권씨는 “중국 단둥(丹東) 지역으로 들어가 남한 정보기관의 연계망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반탐과장 조○○가 내린 지령은 “단둥의 판○○가 남조선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 같으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고, 그쪽의 일을 소개받아 돈을 받으면서 연계된 이들의 신원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권씨는 조○○로부터 중국에서 북한으로 연락할 수 있는 국제전화번호 11자리를 부여받고, 통신연락 방법을 배웠다. 현지에 나가 있는 보위부 지도원 현○○의 연락처를 받았다. 현○○는 반탐과장 조○○의 직속 부하다. 같은 해 11월 9일 중국 단둥에 침투한 권씨는 단둥세관 부근 연안여관에 머물면서 판○○ 소재를 파악했다.
며칠 뒤 그를 만난 자리에서 권씨는 일자리를 부탁했다. 판○○는 권씨를 우리 정보기관 협조자 최○○에게 소개했다.
권씨는 ‘반탐과장이 말하던 남조선 사람이 최○○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지령을 수행하고자 최○○에게 “당신 집에 머물러도 되느냐?”고 부탁했다. 권씨는 최○○ 집에 거주하는 동안 최○○의 ▲인적사항 ▲가족관계 ▲주요 경력 ▲연락처 등을 파악했다.
2011년 1월, 권씨는 최○○에게 “나는 빚 때문에 중국에 왔다. 중국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돈을 벌 계획이니,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최○○는 “내가 아는 한국 정보기관 요원 이○○와 함께 일해 보라. 이○○가 알아봐 달라는 것을 북한에 돌아가서 파악하여 중국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판○○나 나에게 전달해 주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권씨는 최○○가 남한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음을 확신했다.
1월 말, 최○○는 간첩 권씨에게 정보기관 요원 이○○와 통화하도록 했다. 이○○는 권씨에게 “곧 사람을 보내 생활비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다음 날 300달러를 전달했다.
같은 시기, 권씨는 단둥 소재 ○○교회에서 반탐과장 조○○가 알려준 방법대로 보위부 지도원 현○○에게 전화해 “반탐과장에게 잘 도착했고, 지령에 따라 만나려는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도원 현○○는 ▲연계과정에서의 유의사항 ▲다음 접선방법 등을 알려줬다.
南韓 정보기관원 인상착의 탐지·보고
이○○, 최○○는 권씨를 재입북시켜 우리측 정보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 달 후, 이○○는 권씨에게 전화해 “편지와 생활비 300달러를 보낼 테니 앞으로 잘해 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오전, 권씨는 단둥역 앞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300달러, 이○○의 편지, 여성용 화장품 등을 받았다. 편지 내용은 ‘북한에서 통행증을 발급받는 방법 등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권씨는 ▲자신의 신원 ▲북한 내 이동방법 ▲자신이 아는 북한 간부 신원 등을 기재한 편지를 작성하고, 다음 날 단둥역에서 한 남성을 통해 이○○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2011년 3월, 최○○가 권씨를 만나러 왔다. 그는 이○○가 보낸 편지와 2000달러를 권씨에게 전달했다.
4월에는 이○○가 권씨에게 전화했다. 그는 “곧 어떤 사람이 전화할 테니 만나서 따라가라”며 “인터넷 화상통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권씨는 자신을 ‘김 목사’라고 소개한 50대 남성의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났다. 다음 날 오후 1시엔 김 목사 집에서 이○○와 화상통화를 했다. 이날 통화는 권씨가 우리 정보기관 정보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시기, 재북 기간, 연락 방법 등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통화를 마친 권씨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 김 목사에게 건넸다.
이후 권씨와 이○○는 화상통화로 두 차례 더 접촉했다. 그때마다 권씨는 “북한에 들어가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일하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면서, 이○○의 인상착의와 어투를 면밀히 관찰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며칠 뒤, 이○○는 최○○를 통해 권씨에게 재북 기간 촬영용으로 삼성 디지털카메라 1대를 전달했다.
그 무렵, 권씨는 판○○ 집에서 최○○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는 최○○가 잠시 외출한 사이, 그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편지를 발견한 권씨는 봉투 윗부분을 뜯고 내용을 확인했다. 어느 북한 여성이 이○○에게 보낸 것이었다.
밀봉 편지 뜯어 봐도 의심 안 해
그때 최○○가 들어와 한참 편지를 읽는 권씨를 발견했다. 최○○는 “이○○에게 전달할 편지”라면서 편지를 빼앗기만 했을 뿐, 권씨를 의심하진 않았다.
또한 권씨는 2011년 5월 중국 다롄(大連)시에 있는 최○○ 집에 있다가, 최○○가 없는 사이에 집안을 뒤져 최○○의 여권을 발견했다. 우리측 정보기관 협조자 최○○의 본명, 생년월일 등의 인적사항을 탐지했다.
권씨는 우리 정보기관 협조자들의 동향을 탐지하는 데 주력했다. 2011년 7월 그는 단둥 소재 의류판매점 ‘대박상점’에서 북한주민 김○○를 우연히 만났다. 김○○는 우리측 북한 정보원이다.
김○○로부터 “사업을 해서 중국에 사사여행(북한 주민의 중국 내 친척방문을 지칭)을 나왔고, 한국의 김치냉장고 등을 북한에 가져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씨는 김○○의 언행을 보고, 그가 남한 사람과 가깝게 지낼 것 같다고 판단했다. 동향 파악을 위해 “자주 만나자”고 얘기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접촉했다.
2011년 8월 말 김○○는 권씨에게 “내가 강 목사라는 분과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북한에 들어가서 편지나 물건을 보내면 강 목사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권씨, 강 목사, 김○○는 같은 날 오후 단둥 시내에 있는 식당 ‘다래원’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는 강 목사에게 “평양에서 온 동무다. 내가 북한에 들어가서 보내는 편지와 짐을 이 동무가 전해 줄 것”이라며 권씨를 소개하고 북한으로 들어갔다.
2011년 9월 초, 권씨는 다래원에서 강 목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강 목사는 “앞으로 편지 심부름을 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권씨는 북한 국제열차 열차원으로부터 “평양에서 가져온 편지와 물건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가 강 목사 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권씨는 이 편지를 개봉했다. 북한 내부사정이 자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이를 보고 권씨는 김○○와 강 목사가 남한 정보기관과 연계된 인물임을 확신했다.
권씨는 2011년 11월에도 북한 국제열차 열차원으로부터 김○○가 강 목사에게 전해 달라고 보낸 편지 2통을 받고서 몰래 뜯어 봤다. 편지 내용은 서신을 통해 평양에 있는 반탐과장 조○○에게 보고됐다.
권씨가 상부와 교신하는 방법은 ▲서신 ▲전화 ▲접선 등이다. 권씨는 2010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반탐과장 조○○, 보위부 지도원 현○○와 전화, 서신, 접선 등을 이용해 총 27회 접촉했다.
전화로 보고할 때는 전화방을 이용했다. 접선할 때는 주로 단둥 공안국 앞 커피점, 무역카페, ‘형화원’, ‘송도원’(식당), 태양 불가마 사우나, 고려식당 등을 이용했다. 여기서 권씨는 접선한 보위부 지도원 현○○를 통해 자신의 상부선 조○○에게 우리측 정보기관 직원, 협조원들의 동향을 보고했다.
“脫北者로 위장해 南朝鮮에 침투하라”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었다. 강 목사는 다래원으로 권씨를 불러 “김정일 사망 일자와 북한 민심 등을 알려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북한 내 정보원 김○○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과정에서 김○○의 소재를 파악한 권씨는 이를 조○○에게 보고했다. 김○○는 보위부에 체포됐다.
권씨는 2012년 1월 중순 중국 단둥 시내 커피점에서 보위부 지도원 현○○로부터 “탈북자로 위장해 남조선에 침투하라”는 보위부 반탐과장 조○○의 지령을 받았다. 조○○가 지시한 내용은 ▲남조선 정보기관원 이○○와 연결된 평양 간부, 사사여행자, 무역업자 동향 보고 ▲이○○의 탈북자 지원 루트 조사 ▲이○○의 직책, 부서, 관심 정보 파악 등이다. 이 자리에서 현○○는 권씨에게 ▲국정원 조사 대처 요령 ▲후속 접선방법 등을 지도했다.
이후 권씨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강 목사, 최○○ 등에게 “내가 편지를 연결해 준 김○○가 보위부에 잡힌 것 같다”며 “무서워서 북한에 못 들어간다. 한국에 가야 할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대남침투를 준비했다.
2012년 6월 권씨는 북한 주민 류○○와 함께 단둥을 출발, 라오스 국경을 넘고, 메콩강을 건넜다. 태국 땅을 밟은 7월 17일에 권씨 일행은 치앙콩 경찰서를 찾아가 ‘탈북자’라고 자수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을 방콕 이민국 감호소로 이송·수용했다.
8월 16일 권씨는 방콕국제공항을 출발,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등의 합동신문 과정에서 위장 탈북 사실이 드러나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우리 정보요원들은 권씨 신분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권씨는 총 27회에 걸쳐 우리측 정보요원들의 인적사항, 동향, 대북연계망 등을 북한 보위부에 보고했다.
2일 동안 속성으로 ‘간첩 교육’을 받은 40대 주부 1명에게 우리 대북 첩보원들이 완패한 셈이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평범해 보이는 아줌마 간첩 사건에 관심을 가진 건 그의 ‘활약’으로 우리측 북한 정보원이 보위부에 발각, 체포됐기 때문이다. 평범한 주부가 어떤 활동을 했기에 우리 대북 정보망이 뚫린 것일까. 권씨에 대한 1심 재판기록, 검찰과 정보기관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주부 간첩’의 실체를 추적했다.
中國 빨리 갈 수 있단 생각에 정보원 돼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평양 태생인 권씨는 1993년 북한 대표 축구선수 출신 주모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94년에 큰딸을 낳았다. 이듬해엔 작은딸이 태어났다.
당시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북한에서 가장 특혜를 받는 평양도 1996년 말부터는 배급이 중단됐고, 대부분 자력으로 구한 옥수수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상황이었다. 권씨 가족도 생활고를 겪었다.
이에 권씨는 1997년 10월 이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고 중국을 방문했다. 2006년 1월, 2007년 5월에도 중국에 갔다. 그는 2009년 들어서는 중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북한 당국은 중국 방문 후 1년이 지난 이들에게 5촌 이내 친척을 만나는 것에 한해 여행증을 발급하지만, 2009년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보위부에 돈이나 쌀을 바쳐도 여권을 내주지 않아 중국에 갈 수 없었다.
북한이 2008년부터 황색 바람(자본주의 문화) 차단 명분을 내세워 화교를 제외한 일반 주민의 중국 친척 방문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으로 가기 위한 방편을 알아보려 평양 서성구역 보위부를 드나들던 와중에 권씨는 해당 구역 보위부 반탐과장 조○○로부터 ‘정보원 활동’ 제안을 받았다.
이에 권씨는 2009년 5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의 서약서를 제출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권씨가 단번에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그가 수원지법에 제출한 자필 반성문 중 일부다.
“중국에 있는 이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보위부 출입국 사업부에 비자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제가 잘 알고 있던 국가보위부 지도원이 찾아와 보위부 정보사업을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에 가기 쉽고 수속도 빨리 된다고 하기에 남편도 반대했고, 저 또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오직 중국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정보원사업을 수락했습니다.”
권씨는 충성 서약을 하고, 서성구역 보위부 부근 초대소에서 2일간 정보원 교육(보위사업)을 받았다. 검찰 수사보고에 따르면 그는 “북한 체제를 비방하거나 김정일 일가를 험담하는 이웃주민들을 상부에 밀고하면서 1년여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中國 단둥에서 南朝鮮 정보기관 연계망 파악하라”
또 2010년 10월 권씨는 “중국 단둥(丹東) 지역으로 들어가 남한 정보기관의 연계망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반탐과장 조○○가 내린 지령은 “단둥의 판○○가 남조선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 같으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고, 그쪽의 일을 소개받아 돈을 받으면서 연계된 이들의 신원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권씨는 조○○로부터 중국에서 북한으로 연락할 수 있는 국제전화번호 11자리를 부여받고, 통신연락 방법을 배웠다. 현지에 나가 있는 보위부 지도원 현○○의 연락처를 받았다. 현○○는 반탐과장 조○○의 직속 부하다. 같은 해 11월 9일 중국 단둥에 침투한 권씨는 단둥세관 부근 연안여관에 머물면서 판○○ 소재를 파악했다.
며칠 뒤 그를 만난 자리에서 권씨는 일자리를 부탁했다. 판○○는 권씨를 우리 정보기관 협조자 최○○에게 소개했다.
권씨는 ‘반탐과장이 말하던 남조선 사람이 최○○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지령을 수행하고자 최○○에게 “당신 집에 머물러도 되느냐?”고 부탁했다. 권씨는 최○○ 집에 거주하는 동안 최○○의 ▲인적사항 ▲가족관계 ▲주요 경력 ▲연락처 등을 파악했다.
2011년 1월, 권씨는 최○○에게 “나는 빚 때문에 중국에 왔다. 중국 친척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돈을 벌 계획이니,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최○○는 “내가 아는 한국 정보기관 요원 이○○와 함께 일해 보라. 이○○가 알아봐 달라는 것을 북한에 돌아가서 파악하여 중국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판○○나 나에게 전달해 주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권씨는 최○○가 남한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음을 확신했다.
1월 말, 최○○는 간첩 권씨에게 정보기관 요원 이○○와 통화하도록 했다. 이○○는 권씨에게 “곧 사람을 보내 생활비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다음 날 300달러를 전달했다.
같은 시기, 권씨는 단둥 소재 ○○교회에서 반탐과장 조○○가 알려준 방법대로 보위부 지도원 현○○에게 전화해 “반탐과장에게 잘 도착했고, 지령에 따라 만나려는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도원 현○○는 ▲연계과정에서의 유의사항 ▲다음 접선방법 등을 알려줬다.
南韓 정보기관원 인상착의 탐지·보고
이○○, 최○○는 권씨를 재입북시켜 우리측 정보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 달 후, 이○○는 권씨에게 전화해 “편지와 생활비 300달러를 보낼 테니 앞으로 잘해 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 오전, 권씨는 단둥역 앞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300달러, 이○○의 편지, 여성용 화장품 등을 받았다. 편지 내용은 ‘북한에서 통행증을 발급받는 방법 등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권씨는 ▲자신의 신원 ▲북한 내 이동방법 ▲자신이 아는 북한 간부 신원 등을 기재한 편지를 작성하고, 다음 날 단둥역에서 한 남성을 통해 이○○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2011년 3월, 최○○가 권씨를 만나러 왔다. 그는 이○○가 보낸 편지와 2000달러를 권씨에게 전달했다.
4월에는 이○○가 권씨에게 전화했다. 그는 “곧 어떤 사람이 전화할 테니 만나서 따라가라”며 “인터넷 화상통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권씨는 자신을 ‘김 목사’라고 소개한 50대 남성의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났다. 다음 날 오후 1시엔 김 목사 집에서 이○○와 화상통화를 했다. 이날 통화는 권씨가 우리 정보기관 정보원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시기, 재북 기간, 연락 방법 등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통화를 마친 권씨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 김 목사에게 건넸다.
이후 권씨와 이○○는 화상통화로 두 차례 더 접촉했다. 그때마다 권씨는 “북한에 들어가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일하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면서, 이○○의 인상착의와 어투를 면밀히 관찰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며칠 뒤, 이○○는 최○○를 통해 권씨에게 재북 기간 촬영용으로 삼성 디지털카메라 1대를 전달했다.
그 무렵, 권씨는 판○○ 집에서 최○○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는 최○○가 잠시 외출한 사이, 그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편지를 발견한 권씨는 봉투 윗부분을 뜯고 내용을 확인했다. 어느 북한 여성이 이○○에게 보낸 것이었다.
밀봉 편지 뜯어 봐도 의심 안 해
그때 최○○가 들어와 한참 편지를 읽는 권씨를 발견했다. 최○○는 “이○○에게 전달할 편지”라면서 편지를 빼앗기만 했을 뿐, 권씨를 의심하진 않았다.
또한 권씨는 2011년 5월 중국 다롄(大連)시에 있는 최○○ 집에 있다가, 최○○가 없는 사이에 집안을 뒤져 최○○의 여권을 발견했다. 우리측 정보기관 협조자 최○○의 본명, 생년월일 등의 인적사항을 탐지했다.
권씨는 우리 정보기관 협조자들의 동향을 탐지하는 데 주력했다. 2011년 7월 그는 단둥 소재 의류판매점 ‘대박상점’에서 북한주민 김○○를 우연히 만났다. 김○○는 우리측 북한 정보원이다.
김○○로부터 “사업을 해서 중국에 사사여행(북한 주민의 중국 내 친척방문을 지칭)을 나왔고, 한국의 김치냉장고 등을 북한에 가져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씨는 김○○의 언행을 보고, 그가 남한 사람과 가깝게 지낼 것 같다고 판단했다. 동향 파악을 위해 “자주 만나자”고 얘기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접촉했다.
2011년 8월 말 김○○는 권씨에게 “내가 강 목사라는 분과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북한에 들어가서 편지나 물건을 보내면 강 목사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권씨, 강 목사, 김○○는 같은 날 오후 단둥 시내에 있는 식당 ‘다래원’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는 강 목사에게 “평양에서 온 동무다. 내가 북한에 들어가서 보내는 편지와 짐을 이 동무가 전해 줄 것”이라며 권씨를 소개하고 북한으로 들어갔다.
2011년 9월 초, 권씨는 다래원에서 강 목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강 목사는 “앞으로 편지 심부름을 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권씨는 북한 국제열차 열차원으로부터 “평양에서 가져온 편지와 물건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가 강 목사 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권씨는 이 편지를 개봉했다. 북한 내부사정이 자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이를 보고 권씨는 김○○와 강 목사가 남한 정보기관과 연계된 인물임을 확신했다.
권씨는 2011년 11월에도 북한 국제열차 열차원으로부터 김○○가 강 목사에게 전해 달라고 보낸 편지 2통을 받고서 몰래 뜯어 봤다. 편지 내용은 서신을 통해 평양에 있는 반탐과장 조○○에게 보고됐다.
권씨가 상부와 교신하는 방법은 ▲서신 ▲전화 ▲접선 등이다. 권씨는 2010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반탐과장 조○○, 보위부 지도원 현○○와 전화, 서신, 접선 등을 이용해 총 27회 접촉했다.
전화로 보고할 때는 전화방을 이용했다. 접선할 때는 주로 단둥 공안국 앞 커피점, 무역카페, ‘형화원’, ‘송도원’(식당), 태양 불가마 사우나, 고려식당 등을 이용했다. 여기서 권씨는 접선한 보위부 지도원 현○○를 통해 자신의 상부선 조○○에게 우리측 정보기관 직원, 협조원들의 동향을 보고했다.
“脫北者로 위장해 南朝鮮에 침투하라”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었다. 강 목사는 다래원으로 권씨를 불러 “김정일 사망 일자와 북한 민심 등을 알려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북한 내 정보원 김○○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과정에서 김○○의 소재를 파악한 권씨는 이를 조○○에게 보고했다. 김○○는 보위부에 체포됐다.
권씨는 2012년 1월 중순 중국 단둥 시내 커피점에서 보위부 지도원 현○○로부터 “탈북자로 위장해 남조선에 침투하라”는 보위부 반탐과장 조○○의 지령을 받았다. 조○○가 지시한 내용은 ▲남조선 정보기관원 이○○와 연결된 평양 간부, 사사여행자, 무역업자 동향 보고 ▲이○○의 탈북자 지원 루트 조사 ▲이○○의 직책, 부서, 관심 정보 파악 등이다. 이 자리에서 현○○는 권씨에게 ▲국정원 조사 대처 요령 ▲후속 접선방법 등을 지도했다.
이후 권씨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강 목사, 최○○ 등에게 “내가 편지를 연결해 준 김○○가 보위부에 잡힌 것 같다”며 “무서워서 북한에 못 들어간다. 한국에 가야 할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대남침투를 준비했다.
2012년 6월 권씨는 북한 주민 류○○와 함께 단둥을 출발, 라오스 국경을 넘고, 메콩강을 건넜다. 태국 땅을 밟은 7월 17일에 권씨 일행은 치앙콩 경찰서를 찾아가 ‘탈북자’라고 자수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을 방콕 이민국 감호소로 이송·수용했다.
8월 16일 권씨는 방콕국제공항을 출발,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등의 합동신문 과정에서 위장 탈북 사실이 드러나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우리 정보요원들은 권씨 신분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권씨는 총 27회에 걸쳐 우리측 정보요원들의 인적사항, 동향, 대북연계망 등을 북한 보위부에 보고했다.
2일 동안 속성으로 ‘간첩 교육’을 받은 40대 주부 1명에게 우리 대북 첩보원들이 완패한 셈이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