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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진단

축구인들이 말하는 ‘위기의 한국 축구’

대표팀 전용 훈련장도, 책임지는 사람도, 비전도 없다

글 : 장원재  축구 칼럼니스트·(주)戰後70년생생현대사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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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 행정은 ‘후진국’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설동식 한국축구지도자협회 회장)
⊙ “축구협회의 ‘저연령 선수 의무 출전 제도’가 축구 근간 허문다”(이규준 장안대 감독)
⊙ “日 축구, 2050년에는 대표 선수의 60% 이상을 J리그에서 뛰는 선수로 선발해 세계 제패 목표”(박공원 화성FC 이사)
한국 축구는 지난 4월 26일 U-23 아시안컵 8강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사진=축구협회
  한국 축구가 아프다. 금년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완패했다. 탁구 게이트, 경기복 빼돌리기 논란 등 경기 외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4월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U-23 올림픽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84년 LA 올림픽 예선 탈락 이후 무려 4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4월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3월에 황선홍 감독을 성인 대표팀 임시감독으로 선임한 ‘2중 생활’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 대표팀 감독도 구인(求人)에 실패,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2차 예선 3월 두 경기, 6월 두 경기를 황선홍·김도훈 등 각기 다른 임시감독 체제로 치렀다.
 
  급기야 초·중·고교·대학·일반·프로 지도자 500여 명으로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지난 5월 7일 ‘정몽규 회장 퇴진’을 요구했다. 이 단체의 성명은 곧바로 뉴스를 탔다. 유수의 언론과 공중파 3사 등, 제도권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낙후된 축구 저변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표팀 성적에만 몰두하는 현 집행부의 졸속행정 때문에 한국 축구가 퇴보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이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밝힌 이들의 주장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인정하고 손을 들어줬다는 뜻이다.
 
  정말 한국 축구는 문제의 늪에 빠진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자체 개혁을 향한 능력과 의지는 있는가? 그래서 쓴다. 이 글은 정몽규 회장 개인의 진퇴(進退)를 논하는 글이 아니다. 누가 협회를 이끌든 뼈를 깎는 개혁이 꼭 필요하다는 간절한 호소문이다.
 
 
  축구는 한 나라의 쇼케이스
 
지난 2월 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치고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사진=조선DB
  축구 성적이 추락한다고, 그것이 큰 국가 중대사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터이다. 축구는 인류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그래서 축구는 한 나라의 종합 홍보실이자 쇼케이스다. 현실이 그렇다. ‘지구상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축구 발전을 위해 자기들이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투자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한 나라의 축구 실력과 산업화 정도가 그 나라의 국력(國力)이자 국격(國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뜻이다. 경제력에 비해 축구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중국이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후 ‘축구굴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축구 대표팀의 부진은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의 쇠락(衰落)으로도 읽힐 가능성이 크다. 한국 축구의 중병(重病)이 비단 스포츠계 내부의 일만이 아닌 이유다.
 
  설동식 한국축구지도자협회 회장은 서귀포고 감독, 제주 유나이티드 유소년 총괄 등을 역임한 경기인 출신이다. 그는 ‘아시안컵 실패나 올림픽 예선 탈락은 예견된 참사’라며 “한국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축구 선진국’이다. 그러나 축구 행정은 ‘후진국’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엇이 문제입니까.
 
  “실력이 모자라서 졌다면 축구인들 모두가 이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승할 만한 전력(戰力)을 갖추고도 협회의 행정력 때문에 패했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월드컵 예선 통과도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아시아 각국의 실력 차이가 상당 부분 좁혀졌기 때문이다. 후방 지원이 부실하면 언제든지 참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은 몰라도,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대재앙이다. 2020년 1월, 대한축구협회는 나이키와 2400억원 +α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인류 최고의 이벤트 월드컵은 글로벌 스포츠 기업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탑 2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그래서 월드컵마다 사활(死活)을 걸고 격돌한다. 본선 진출국 가운데 몇 팀을 후원했느냐가 승패의 가늠자다. 대한민국이 나이키와 거대 계약을 체결한 배경이 있다. ‘월드컵 상시(常時) 진출국’이라는 프리미엄이다. 이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순간, 글로벌 후원사의 금전적 지원과 팬들의 지지가 격감할 수 있다. 자생력(自生力)을 갖추지 못한 한국 축구에는 IMF 사태와도 같은 직격탄이 될 것이다.
 
 
  “축구협회의 ‘절차 무시’가 문제의 핵심”
 
설동식 한국축구지도자협회장.
  설동식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의 ‘절차 무시’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클린스만 감독 사임 후,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황선홍 감독을 3월 A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죠. 2차 회의에서 임시감독 3명의 최종 후보의 ‘우선순위’만 정해진 상태였어요. 3차 회의에서 3명의 우선순위 후보를 놓고 위원들과 논의한 후 1순위 대상자에게 임시감독직 제안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해성 위원장은 ‘KFA와 소통했다’는 이유로 2차(2월 24일)와 3차 회의(27일) 사이인 25일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감독직을 제안했습니다. 위원장으로서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감독직 제안’은 최종 결정을 하기 전 가장 중요한 단계다. 그래서 실수를 줄이려고 절차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여러 차례 절차를 무시해왔고, 이에 따른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규정은 왜 만들었습니까?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위원들이 실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서 (감독이) 뽑히는 건지 의문이 강하게 듭니다. 2023년 3월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도 현장의 축구인들이 모두 우려의 목소리를 냈죠. 클린스만 감독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가 한국 축구의 발전 방향과는 맞지 않았으니까요. 특히 워크 에식(work ethic)이 그랬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축구가 호되게 당했잖아요. 그래서 이번(황선홍 임시감독 선임 관련)에도 명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 겁니다.”
 
 
  “한국 축구는 국민의 자산”
 
  대한축구협회 정관 ‘팀 운영 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1항’에 따르면, 각급 대표팀의 감독, 코치 및 트레이너 등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 기준’에 따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 이사회는 정몽규 회장, 그리고 이사들로 꾸려진다.
 
  “프로 스포츠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집니다. 그런데 KFA는 임시 체제로 황선홍 사령탑 선임만 발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데리고 온 것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고 있지 않아요.”
 
  ― 그래서 정몽규 회장의 퇴진을 외치는 겁니까.
 
  “정 회장 개인을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정 회장 체제로 계속 간다면 한국 축구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전하는 겁니다. KFA 최종 결정권자는 정몽규 회장이잖아요? 2023년 3월 정몽규 회장의 입김이 세게 작용해 ‘전술 없는 감독’ 클린스만을 선임했습니다. 그러고 1년 만에 ‘경질 사태’를 맞았죠. 그때도 절차와 시스템을 무시했고 결과도 엉망이었는데 왜 비슷한 실패가 반복되느냐는 겁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책임을 통감한 KFA 고위 임원이 없다는 점도 공통입니다.”
 
  설 회장은 올림픽 예선 탈락 이후 감독과 선수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고도 했다.
 
  “최대한 지원을 하고 권한도 100% 보장했다면 감독이 전적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죠. 용서받지 못할 일을 KFA가 행한 겁니다. 그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정몽규 회장입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했죠. 황선홍 임시감독 발표 때도, 예선 탈락 후에도 ‘최종 결정권자’ 정몽규 회장은 온데간데없고 정해성 위원장이 언론에 나서서 발표했습니다. 한국 축구는 국민의 자산입니다. 회장 개인을 위한 사유물(私有物)이 아니죠. 그런데 본인의 연임(連任)만 생각하고 정책을 펴서 우리 스스로 축구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저희 단체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겁니다.”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사라졌다
 
파주트레이닝센터(NFC)가 기부채납으로 파주시로 넘어가면서 국가대표 전용 훈련장이 사라졌다. 사진=조선DB
  이규준 장안대 감독은 우리나라 최초로 P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축구인이다. 10년 넘도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을 지냈고 현재 프로축구연맹 산하 K리그 기술연구위원(TSG)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올림픽 최종 예선 우리나라의 첫 경기는 4월 17일에 열렸습니다. 3월 21일부터 27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선 WAFF U-23 챔피언십이라는 친선 대회가 열렸죠. 우리는 태국, 사우디, 호주를 물리치고 우승했습니다. 이 대회는 올림픽 예선 직전의 마무리 실전 모의고사 같은 대회입니다. 그런데 황선홍 감독이 대표팀 임시감독으로 뽑히는 바람에 코치들이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어요. 감독이 최종 예선을 앞두고 여러 가지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겁니다.”
 
  이규준 감독은 ‘임시감독’ 체제의 문제점을 짚었다.
 
  “한 감독이 두 중요한 대회를 치른다면 집중하기가 어렵죠. 그렇게 해도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하고 올림픽도 나간다고 봤을 겁니다. 경적필패(輕敵必敗)입니다.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의 이와 같은 안이한 일 처리가 거듭된다는 점이에요.”
 
  ―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6월 6일 싱가포르와의 월드컵 2차 예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대표팀 가운데 국내파 선수들이 공항에 모여 현지로 날아갔습니다. 이건 해외파 선수들이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죠. 6월 3일부터 프랑스에서 모리스 레벨로 토너먼트 대회가 열렸습니다. 올림픽 실전 대비용으로 참가하려 했던 이벤트입니다. 예선에서 탈락하니까 대학연맹에 이야기해 프로 선수와 대학 선수를 섞어 팀을 꾸렸어요. 5월 29일 이천종합운동장으로 소집한 후 3일 훈련 후 현지로 날아갔습니다. 6월엔 중국에서 웨이난 U-19 국제친선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6월 4일에 첫 경기였는데, 선수들을 6월 2일 공항으로 모이라고 해서 대회에 나갔어요.”
 
 
  ‘저연령 선수 의무 출전 제도’
 
이규준 장안대 감독.
  “예전 같았으면 파주 축구센터로 일단 선수단을 소집한 뒤 그곳에서 며칠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겠죠. 파주 센터는 20년 사용 연한 만료 후 파주시에 기부채납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안 축구센터는 공정이 지지부진합니다. 전용 훈련장이 없으니 지금은 성인 대표팀도 효율적인 훈련을 하지 못해요. 수시로 소집해야 하는 연령별 대표팀은 말할 것도 없죠.”
 
  ― 대안은 있습니까.
 
  “파주시와 협의해 천안 축구센터 완공 때까지 사용 기한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대체 후보지를 물색했어야죠.”
 
  ― 왜 이런 행정 공백이 생긴 겁니까.
 
  “체육단체 회장 4선은 원칙적으로 금지인데 업적이 있으면 예외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금년 말 회장 4선 출마를 위해 천안 축구센터의 공정을 일부러 늦춘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정몽규 회장이 한국 축구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연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한국 성인 축구에는 저연령 선수 의무 출전 제도가 존재하죠. 협회에서는 ‘나이가 적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해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도태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이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오랜 기간 한국 축구의 병폐로 지적돼왔던 단기 성과 위주의 팀 운영에서 벗어나, 재능과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죠. ‘단기 성과에 매몰되다 보면 유망주 육성보다는 경험 있는 선수에게 출전 기회가 편중되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이 제도는 한국 축구의 저변을 허물고 있어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3년 K리그에 ‘저연령 선수 의무 출전 제도’를 도입했다. 유예 기간을 거쳐 2015년부터 본격 시행 중이다. 도입 당시엔 출전 명단에 23세 이하 선수를 1명 이상 포함시켜야 했고, 2019년부터는 저연령 선수의 기준이 U-23에서 U-22로 바뀌었다. 이규준 감독은 이 제도가 협회와 회장의 업적 만들기용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발전엔 오히려 역행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이 제도는 축구의 기본 정신에 어긋납니다. 게다가 성과도 없어요. 그래서 반대하는 겁니다.”
 
 
  “축구의 본질을 허무는 안티 풋볼”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실력 있는 선수가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는다’라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스포츠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인류의 이상(理想)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위대한 것은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자들의 성취, 패자의 군말 없는 승복, 자신을 이긴 자에게 보내는 패자의 찬사 등이 스포츠 미학(美學)의 구성 요소다.
 
  “축구에서 ‘경기에 나가는 이’는 제한된 자원입니다. 모든 선수가 다 출전할 수는 없잖아요.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건데, 실력이 아니라 나이로 출전 선수가 정해진다면 이건 축구의 본질을 허무는 안티 풋볼(anti-football)이죠. 선수들 스스로도 이해를 못 할 겁니다. 팀 내에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공정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에요.”
 
  ― 왜 그렇습니까.
 
  “의무적으로 출전시키라고 하니까 프로팀 감독들이 젊은 선수들을 선발 출전시키고 5분, 10분 있다 교체합니다. 이러면 선수나 구단에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프로 축구선수라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상위 1% 안에 들었던 선수인데, 우리는 사회적으로 투자를 많이 한 전문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死藏)시키는 겁니다.”
 
  ―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이나 청소년 대표 선수를 길러내는 데는 어쨌거나 도움이 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 정도 급의 선수라면 경쟁에서 이겨내고 스스로 출전 시간을 확보하죠.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벤치에 앉혀두는 감독은 없어요. 게다가, 이 제도는 프로 축구의 근간도 허뭅니다.”
 
  ― 무슨 뜻입니까.
 
  “프로팀이라면, 관중에게 구단이 보유한 최상급의 경기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이 프로 구단의 존재 이유죠. 제일 잘하는 선수들을 내보내고 이것을 관중이 돈을 내고 보러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우리 축구팬에게 질 좋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아요.”
 
  현장의 지도자들은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제도를 반대한다. 그런데 협회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현장의 지도자들은 협회의 소통 부재와 일방통행식 일 처리 방식에 분개한다.
 
 
  “한국 국가대표 감독은 랭킹 150위권”
 
  대한축구협회의 의사소통 방식은 국제적으로도 잡음을 냈다. 감독 선임에 실패, 황선홍 임시감독에 이어 6월의 월드컵 2차 예선 마지막 두 경기도 김도훈 임시감독 체제로 치른 것이다. 우리 선수들의 직업윤리를 믿지만, 어느 조직이든 새로 부임하는 수뇌부가 임시직인 것과 정규직인 것에는 차이가 없지 않을 터이다.
 
  대표팀 감독 선임이 자꾸 이렇게 헛도는 이유는 뭘까. OSEN의 우충원 기자는 19년 차 베테랑 축구기자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눈높이와 세계적 명장 사이의 눈높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감독들을 능력별로 순위를 매긴다고 하죠. 저는 한국 국가대표 감독으로 올 수 있는 감독은 랭킹 150위권 이쪽저쪽이라고 봅니다. 유럽과 남미의 국가대표팀, 유럽 주요 구단이 부임 우선순위죠. 중동만 가도, 우리 대표팀 감독 연봉의 몇 배를 받는 일자리가 적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유수의 감독들에게 한국 국가대표 감독 자리는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협상을 통해 눈높이의 차이를 맞춰야 한다. 다시 이규준 감독의 말이다.
 
  “행정체계가 무너진 겁니다.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올림픽 예선이 잘못되면 직접 책임을 지겠다고 했죠. 올림픽 출전이 막히면서 사실상 자기 임무는 끝난 겁니다. 외국의 감독 후보자들도 이 점을 모르지 않겠죠. 온라인을 통해 뉴스가 다 실시간으로 퍼지는 시대니까요. 차기 감독을 뽑는다면, 다른 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서 감독 후보군과 협상했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전력강화위도 협상권 없어
 
귀네슈 감독. 사진=조선DB
  ― 뭡니까.
 
  “협상하러 갔는데 면접 자리에서 연봉을 제시하지 못한 겁니다. 그럼 면접하러 나온 감독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협상은 전권을 가지고 하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묻습니다. 도대체 감독 선임의 결정권은 누가 행사하는 겁니까? 결정권 없는 사람이 무슨 카드로 후보자와 협상을 해요? 세계적인 감독들이 우리 제안을 마냥 기다려야 하나요?”
 
  이규준 감독과 설동식 회장에 따르면, 감독 초빙의 국제적인 관례는 1. 한국에 부임할 의사가 있는가? 확인, 2. 우리가 제시하는 연봉은 얼마인데 당신이 원하는 금액은 얼마인가? 제시, 3. 우리의 직무 분석표, 근무 조건은 이러한데 이를 지킬 수 있는가? 이 중 꼭 해야 하는 양보 불가 사항은 이것이다. 4. 당신의 요구 사항은 무엇인가? 순으로 진행한다. 애당초 2번의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협상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번 감독 선임과 관련하여 필자가 안타까움을 느낀 대목은 또 있다. 튀르키예(터키) 매체 《포토스포르》는 5월 11일(현지시각) “대한축구협회(KFA)가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세뇰 귀네슈(71) 감독 선임을 거부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귀네슈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튀르키예 국가대표팀을 맡아 역사적인 3위 입상의 성적을 올렸으며 2007~2009년 3년 동안 FC 서울 감독을 맡아 한국 축구와도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발굴해 중용한 선수가 이청용과 기성용이다.
 
  《포토스포르》는 “정해성 KFA 전력강화위원장은 4월 초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귀네슈와 미팅을 가졌다”며 “귀네슈와 더불어 제시 마시 감독이 유력 후보로서 다투는 상황이었다”고 썼다. 튀르키예에서 다음 한국 감독으로 ‘3년 계약, 귀네슈 확정’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정 위원장은 “귀네슈 등 3, 4순위는 협상 카드로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저희 전력강화위원회는 마시와 카사스 1, 2순위 후보 중에서 선임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협상은 대한축구협회에 일임한 상황이고, 정관상 전력강화위원회는 협상 단계에서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사령탑 선임과 관련한 상황과 절차에 대해 위원장 스스로가 아쉬움을 털어놓은 셈이다.
 
  문제는 이 발언이 ‘귀네슈는 사실상 처음부터 후보군이 아니었다’고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세계 축구계에 유력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친한파(親韓派) 축구 지도자에게 우리 사회가 실례한 것은 아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 축구, 2002년에 머물러 있는 느낌”
 
박공원 화성FC 이사.
  박공원 현 화성FC 이사는 대한축구협회, 한국 프로축구연맹 이사를 역임했고 서울 이랜드와 안산 그리너스 단장을 지냈다. “축구가 산업이자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경영인이다. 그는 “너른 맥락에서 보자면, 회장 개인의 진퇴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장기 플랜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한국 축구는 2002년에 머물러 있는 느낌입니다.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전용구장도 생기고 연습구장도 많이 만들고,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죠. 그런데 그 이후의 발전 전략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 뒤로 가는 느낌입니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이사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한국 축구의 세계화와 산업화에 관심이 많은 전문가다. 벨기에 1부 리그 AFC 투비즈를 인수, 5년 넘게 구단을 운영했으며 축구 미생들의 재취업 분투기 KBS TV 〈청춘F.C〉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현재는 인천 유나이티드 사내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02년에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죠. 월드컵 유치 후에 K리그 수준을 어디까지 올려야 한다, 대표팀 경기력은 유럽 중상위권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어요. 그때는 한국 축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 지금은 없습니까.
 
  “없진 않지만, 장기적 비전이 잘 안 보입니다. 근본적이며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청사진이 있나요? 일본처럼 프로축구 산업화, 유소년 축구 육성 전략, 사회체육 진흥, 각급 대표팀과 축구 산업을 아우르는 크고 정교한 그림이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업화의 길 걷고 있는 日 축구”
 
지난 4월 29일 AFC 아시안컵 준결승 이라크와의 경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일본 U-23 축구 대표팀. 일본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8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확정했다. 사진=AP/뉴시스
  ‘장기적 비전’과 관련해 일본 축구 전문가인 박공원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2050년에 월드컵을 개최하고 우승하겠다는 장기 플랜을 발표했죠. 그리고 2050년까지 J리그를 세계에서 제일 좋은 리그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입니까.
 
  “지금은 일본에서 유럽으로 진출한 선수들을 대표로 뽑았지만, 2050년에는 대표 선수의 60% 이상을 J리그에서 뛰는 선수로 선발하겠다. 그리고 그 선수들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황당무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어서 부럽습니다.”
 
  ― 돈을 많이 버는 게 세계 최고 리그인가요, 아니면 관중이 많은 게 세계 최고 리그인가요.
 
  “일단 J리그는 비즈니스화됐습니다. 2026년부터 시즌을 8월 개막, 이듬해 5월에 마치는 추춘제(秋春制)로 전환합니다. 왜 이걸 하느냐? 간단해요. 국제 규범에 맞추려고 하는 겁니다.”
 
  세계 유수의 축구 시장인 유럽 주요 국가들은 거의 다 추춘제로 리그를 운영한다. 기후 조건상 겨울 경기가 불가능한 북유럽 국가들만 예외다.
 
  “일본 안에서만 축구를 할 거라면 추춘제를 할 필요가 없죠.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세계 표준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산업화도 본격적인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죠.”
 

  ― 우리는 추춘제가 불가능하지 않나요?
 
  “가능합니다. 지금도 혹서기(酷暑期)에는 경기를 안 하거든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의지의 문제죠.”
 
  축구는 전 세계적으로 보험 산업과 자동차 산업 사이에 위치한 세계 제11위 규모의 거대 산업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축구를 이 정도로 크게 여기지 않고 있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15년, 20년, 30년 후 한국 축구는 어떤 모습일까요? 일본은 산업화의 길을 착실히 밟고 있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발전 단계가 더디죠. 일본은 각 구단의 단장, 사장들이 오래 근무하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프로 축구단이 흑자를 내는 기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흑자라면 축구에 대한 기업의 투자도 활발한가요.
 
  “그럼요. 옛날에는 도쿄 가스, 미쓰비시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대기업이 스폰서였다면 최근에는 IT 기업이 축구판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럼으로써 사장단도 젊어지고 있고, 축구와 IT의 접점을 찾아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축구도 꽤 큰 매력이 있고 저평가된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국내외 자본을 유치하고 흑자 산업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흑자를 내면 업계 전체가 건강해지고 합리적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협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K리그도 행복의 원천 될 수 있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이사.
  “지금 미래전략 담당 부서가 있는데, 여기를 싱크탱크처럼 확대 개편해야죠. 정말로 상근 조직으로 만들어서 밑에서부터 맨 위까지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축구인’에 대한 정의를 넓혀야 합니다.”
 
  ― 무슨 말입니까.
 
  “축구인이라고 하면 으레 경기인 출신만 축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 마케터, 기업인, 평론가 등이 모두 다 축구인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전문성을 최대치로 활용해야 축구 산업화가 가능합니다.”
 
  심찬구 대표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한다. 축구는 세계에서 제일 글로벌한 스포츠인데, 우리나라 축구는 글로벌화의 정도가 부진하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 안에서 한국 축구는 어떤 포지셔닝을 가질 것인가, 향후 어떤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안 보입니다. 세계 축구 산업 내에서의 생존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구조적 발전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 현 대한축구협회가 산업화와 내셔널리즘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고, 내셔널리즘 쪽으로 많이 방점이 찍혀 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죠. 축구라는 콘텐츠가 성장하면서, 축구를 통해 국위선양을 하고 메달을 따는 일이 최우선이던 시대는 지났잖아요? 그렇다면 축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행복하게 살 것이냐를 고민해야죠.”
 
  ― 같은 생각입니다.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고 손흥민 선수가 EPL 득점왕이 되면 자랑스럽죠. 하지만 결과를 보고 느끼는 자랑스러움보다는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며 그 과정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동질감, 긴 세월 동안 손흥민 선수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K리그도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축구를 이루는 본질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죠.”
 
 
  “미래 장기 계획 디자인해야”
 
  ―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망라해서 한국 축구는 어떤 모습을 지향하고 어디까지 어떻게 가야 합니까.
 
  “이 지향점이나 방향성이 한국에만 국한되어선 곤란하단 얘기죠. 그러니까 유럽 시장, 미국 시장에다 동남아시아 시장, 우리 국내 시장까지 다 고려할 때 한국 축구가 세계 시장 안에서 가져가야 할 모습은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은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식의 단순 명쾌한 목표가 아닙니다. 축구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고 그렇게 확보한 시야를 가지고 미래 장기 계획을 디자인하고 이 디자인에 맞는 내부 조직과 파트너십 조직을 갖춰서 실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실천하는 일이 대한축구협회가 해야 될 일이 아닐까요?”
 
  ― 차기 대한축구협회장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현 회장님이 연임하든 새로운 분이 나오든 그건 제 관심 밖의 일입니다. 제가 언급할 자격도 없고요. 이런 비전을 수립하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고, 경기인들과 전체 축구 산업 종사자가 그걸 같이 만들어나가는 그림이 보이면 좋겠어요.”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면…
 
  거듭 얘기하지만, 정몽규 회장의 진퇴는 이 글의 주요 주제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설동식 회장의 발언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축구인들도 KFA를 신뢰·존경하며 상생하고 싶습니다. 이건 분명해요. 그런데 KFA가 하는 행정을 보면 심각합니다. 현장의 선수, 지도자들의 다양한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축구의 저변은 줄어들었고 현장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데, 미래를 향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정몽규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차기 회장은 정말 축구를 사랑하고, 축구를 위해 헌신하고, 현장과 소통하며 문제점을 개선하는 분이 하셔야 합니다. 국제화와 산업화를 선도할 수 있는 사명감을 갖춘 분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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