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한 지 73년,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지났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국군포로는 수만 명에 이른다. 그 수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된다. 휴전 이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 모두 자력으로 귀환했다. 2010년 이후에는 생환 국군포로가 없다. 시간이 흘러 생존 국군포로는 13명에 불과하다(2023년 5월 기준).
이혜민 작가는 2007년부터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3년 국군포로를 처음 취재할 당시 국군포로의 증언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국군포로의 증언을 담은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이 증언록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다룰 수 없는 사소한 내용까지 많이 다뤘다. 222페이지에 걸쳐 기록한 국군포로 9명의 사연을 접하면 수만 명의 국군포로가 겪었을 비극이 퍼즐처럼 머릿속에 새겨진다.
북한은 지금도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군포로를 모두 ‘내무성 건설대’에 편입해 전향시켰기에 ‘명목상의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대한 번영에 근간이 됐다고 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미동맹. 그 이면에는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묘수(妙數)가 있었고 그 여파는 국군포로를 파생시켰다. 국군포로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지옥에서 죽어갔지만, 대한민국은 비전향 장기수를 모두 내주면서도 국군포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 책은 아들을 둔 한 엄마가 국군포로의 어미가 된 심정으로 부채감(負債感)을 갖고 기록한 국군포로들의 가공하지 않은 목소리다. 기억은 잠깐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모두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국군포로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 역사책이기도 하다.⊙
이혜민 작가는 2007년부터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3년 국군포로를 처음 취재할 당시 국군포로의 증언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국군포로의 증언을 담은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는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 이 증언록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다룰 수 없는 사소한 내용까지 많이 다뤘다. 222페이지에 걸쳐 기록한 국군포로 9명의 사연을 접하면 수만 명의 국군포로가 겪었을 비극이 퍼즐처럼 머릿속에 새겨진다.
북한은 지금도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군포로를 모두 ‘내무성 건설대’에 편입해 전향시켰기에 ‘명목상의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대한 번영에 근간이 됐다고 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미동맹. 그 이면에는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묘수(妙數)가 있었고 그 여파는 국군포로를 파생시켰다. 국군포로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지옥에서 죽어갔지만, 대한민국은 비전향 장기수를 모두 내주면서도 국군포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 책은 아들을 둔 한 엄마가 국군포로의 어미가 된 심정으로 부채감(負債感)을 갖고 기록한 국군포로들의 가공하지 않은 목소리다. 기억은 잠깐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모두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국군포로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 역사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