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원군은 조대비 비위를 맞추고자 딸을 풍양조씨네로 시집보내
⊙ 아버지 대원군 별세 후 어린 젖먹이 남겨두고 눈감아
李鍾贊
1936년생, 육사(16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육군 소령 예편,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민정당 창당 발기인, 국회의원(4선), 민정당 원내총무·사무총장, 국회 운영위원장, 정무장관, 민주당 상임고문, 국민회의 부총재, 국정원장 역임 / 現 우당기념관장, 신한대 한민족평화통일연구소 초대 이사장
⊙ 아버지 대원군 별세 후 어린 젖먹이 남겨두고 눈감아
李鍾贊
1936년생, 육사(16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육군 소령 예편, 중앙정보부 기획조정실장, 민정당 창당 발기인, 국회의원(4선), 민정당 원내총무·사무총장, 국회 운영위원장, 정무장관, 민주당 상임고문, 국민회의 부총재, 국정원장 역임 / 現 우당기념관장, 신한대 한민족평화통일연구소 초대 이사장
나의 외할머니는 1897년 우리 어머니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이듬해 돌아가신 분이라 사실 우리 어머니도 기억 못 하신다. 그러나 비화를 남겨서 여기에 기록해 놓는다.
나의 외할머니는 흥선대원군의 외동딸이다. 외할머니는 여성이 이름도 없던 시대에 사신 분이어서 족보에는 전주 이씨(辛酉 1859~戊戌 1898년 12월 27일)라 기록되었고 향년 39세, 요즈음 나이로 보면 40세도 안 된 젊은 나이지만 4남 1녀나 낳고 기세(棄世)하셨다.
다 알다시피 흥선대원군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당시는 국왕이란 존재는 허깨비고 실권은 국왕의 외척인 안동 김씨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족 중 약간이라도 똑똑해서 왕이 될 소지가 있으면 모조리 숙청했다. 흥선대원군의 윗대만 하더라도 은신군(恩信君), 은언군(恩彦君) 등이 다 제거되었고, 같은 대(代)에서 도정궁 이하전(都正宮 李夏銓·1842~1862년)도 유배 보낸 후 사사(賜死)하였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은 살아남기 위해 파락호같이 타락한 생활을 하고, 쓸모없는 인간처럼 연막을 쳐서 도저히 왕권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가망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후에야 안동 김씨 경계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왕궁 내 여인들도 권력의 화신들이었다. 순조비 순원왕후 안동 김씨가 대왕대비로 권력의 핵으로 버티고 있어서 며느리 되는 신정왕후 조대비는 뒷방신세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대원군은 겉으로 식객 행세를 하면서도 조대비에게 끈을 대고 있었다. 1857년 철종 8년에 권력의 정상에 있는 순조비가 별세했다. 소외됐던 조대비가 궁내에 큰 어른인 대왕대비로 올라서게 됐다.
‘민취’의 民은 閔
1864년 1월 16일(양력) 철종이 후사 없이 갑자기 승하했다. 궁내 제일 어른인 대왕대비 조대비는 1월 21일 즉각 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라고 명했다. 당시 고종은 12세였다. 이는 조대비의 수렴청정을 위한 포석이었다. 조대비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유능한 대원군에게 국정을 일임했다. 대원군은 대원위분부라는 형식으로 조대비를 보좌했지만 사실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군은 조대비의 비위를 맞추고자 막내 따님을 풍양조씨네로 시집을 보냈다. 신랑은 나의 외할아버지 조정구(趙鼎九·1860~1926) 어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관료 가운데 가장 충실한 충성파였다. 그런데 대원군은 10년간 섭정을 하고도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고, 아드님 고종은 이미 20대가 되었는데 허수아비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종이 왕권을 행사하고자 친정체제로 돌리려 했는데 이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대원군과 아들 고종 그리고 며느리 명성황후, 구부(舅父) 간 피나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며느리 명성황후는 민씨로 사실 시어머니 대원군의 부대부인과 그리 멀지 않은 자매 간이었다. 고종과의 가례(嘉禮) 당시에는 반대도 많았다. 안동 김씨들은 “양반댁이 3대 민취(民娶·양반이 상민의 딸에게 장가를 드는 것을 말한다)하면 망한다”고까지 거론했다. 이 말은 속담인데, 사실 민(民)자가 아니라 발음이 같은 성씨 민(閔)자를 들어 비꼰 것이었다. 대원군의 어머니도 민씨요, 부대부인도 민씨, 이제 며느리도 민씨를 얻겠다는 것인데 세도가 김씨들이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대원군의 고집으로 민중전을 며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10년 못 가서 철천지 원수처럼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아닌 오빠인 고종 편에 서
이 싸움에서 나의 외할머니는 오빠인 고종 편에 섰다. 사실 부대부인도 아들 고종 편이었다. 명분은 ‘임금을 지키는 것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근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권력 쟁취를 위해 집요하게 고종 왕정을 방해했다. 고종이 친정체제로 들어서면서 국가변란이 계속되었다. 이를테면 민승호집 폭사(1874), 이재선의 모반(1881),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봉기(1894) 등 환란 때마다 민중전의 생명을 노리는 음모가 있었다. 그때마다 음모의 중심에 대원군이 있었고, 끝내 을미왜변(1895)으로 민중전이 왜인들 손에 불행하게 피살됐다. 그 배후는 일본의 외교관과 대원군이었다. 이런 사이 조선왕조의 종말은 다가왔다.
오죽했으면 부대부인이 대원군 몰래 천주교 신도가 되었을까? 나의 외할머니는 이런 가정불화가 나라의 위기로 번져가는 데 진저리가 나서 건강을 해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부대부인이 1898년 1월 8일 벌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달여 만인 2월 22일 그처럼 건강하셔서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하시던 대원군마저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대원군은 죽음 직전 아들 고종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종은 끝내 친부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대원군 國葬 1년도 안 돼 별세
그래도 장례만큼은 국장(國葬)에 준하여 거행하라고 명하고 장례를 주관하는 임무를 외할아버지에게 맡겼다. 그날로 조정구 외할아버지는 장례원 소경(掌禮院 少卿)으로 부임하여 2개월이나 되는 긴 장례 기간 병상에 있는 외할머니 간호는 제쳐두고 국장을 집정하였다. 5월이 되어 모든 장례 절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의 병환은 너무나 심각했다. 그해 12월 27일 외할머니는 어린 젖먹이 딸, 나의 어머니를 남겨둔 채 눈을 감으셨다.
조선조 말 고종 임금은 왕가의 가정불화로 인하여 제대로 국정을 펴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남의 말이 아니었다.⊙
나의 외할머니는 흥선대원군의 외동딸이다. 외할머니는 여성이 이름도 없던 시대에 사신 분이어서 족보에는 전주 이씨(辛酉 1859~戊戌 1898년 12월 27일)라 기록되었고 향년 39세, 요즈음 나이로 보면 40세도 안 된 젊은 나이지만 4남 1녀나 낳고 기세(棄世)하셨다.
다 알다시피 흥선대원군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당시는 국왕이란 존재는 허깨비고 실권은 국왕의 외척인 안동 김씨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족 중 약간이라도 똑똑해서 왕이 될 소지가 있으면 모조리 숙청했다. 흥선대원군의 윗대만 하더라도 은신군(恩信君), 은언군(恩彦君) 등이 다 제거되었고, 같은 대(代)에서 도정궁 이하전(都正宮 李夏銓·1842~1862년)도 유배 보낸 후 사사(賜死)하였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은 살아남기 위해 파락호같이 타락한 생활을 하고, 쓸모없는 인간처럼 연막을 쳐서 도저히 왕권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가망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후에야 안동 김씨 경계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왕궁 내 여인들도 권력의 화신들이었다. 순조비 순원왕후 안동 김씨가 대왕대비로 권력의 핵으로 버티고 있어서 며느리 되는 신정왕후 조대비는 뒷방신세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대원군은 겉으로 식객 행세를 하면서도 조대비에게 끈을 대고 있었다. 1857년 철종 8년에 권력의 정상에 있는 순조비가 별세했다. 소외됐던 조대비가 궁내에 큰 어른인 대왕대비로 올라서게 됐다.
1864년 1월 16일(양력) 철종이 후사 없이 갑자기 승하했다. 궁내 제일 어른인 대왕대비 조대비는 1월 21일 즉각 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라고 명했다. 당시 고종은 12세였다. 이는 조대비의 수렴청정을 위한 포석이었다. 조대비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유능한 대원군에게 국정을 일임했다. 대원군은 대원위분부라는 형식으로 조대비를 보좌했지만 사실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군은 조대비의 비위를 맞추고자 막내 따님을 풍양조씨네로 시집을 보냈다. 신랑은 나의 외할아버지 조정구(趙鼎九·1860~1926) 어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관료 가운데 가장 충실한 충성파였다. 그런데 대원군은 10년간 섭정을 하고도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고, 아드님 고종은 이미 20대가 되었는데 허수아비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종이 왕권을 행사하고자 친정체제로 돌리려 했는데 이를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대원군과 아들 고종 그리고 며느리 명성황후, 구부(舅父) 간 피나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며느리 명성황후는 민씨로 사실 시어머니 대원군의 부대부인과 그리 멀지 않은 자매 간이었다. 고종과의 가례(嘉禮) 당시에는 반대도 많았다. 안동 김씨들은 “양반댁이 3대 민취(民娶·양반이 상민의 딸에게 장가를 드는 것을 말한다)하면 망한다”고까지 거론했다. 이 말은 속담인데, 사실 민(民)자가 아니라 발음이 같은 성씨 민(閔)자를 들어 비꼰 것이었다. 대원군의 어머니도 민씨요, 부대부인도 민씨, 이제 며느리도 민씨를 얻겠다는 것인데 세도가 김씨들이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대원군의 고집으로 민중전을 며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10년 못 가서 철천지 원수처럼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이 싸움에서 나의 외할머니는 오빠인 고종 편에 섰다. 사실 부대부인도 아들 고종 편이었다. 명분은 ‘임금을 지키는 것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근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권력 쟁취를 위해 집요하게 고종 왕정을 방해했다. 고종이 친정체제로 들어서면서 국가변란이 계속되었다. 이를테면 민승호집 폭사(1874), 이재선의 모반(1881),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봉기(1894) 등 환란 때마다 민중전의 생명을 노리는 음모가 있었다. 그때마다 음모의 중심에 대원군이 있었고, 끝내 을미왜변(1895)으로 민중전이 왜인들 손에 불행하게 피살됐다. 그 배후는 일본의 외교관과 대원군이었다. 이런 사이 조선왕조의 종말은 다가왔다.
오죽했으면 부대부인이 대원군 몰래 천주교 신도가 되었을까? 나의 외할머니는 이런 가정불화가 나라의 위기로 번져가는 데 진저리가 나서 건강을 해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부대부인이 1898년 1월 8일 벌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달여 만인 2월 22일 그처럼 건강하셔서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하시던 대원군마저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대원군은 죽음 직전 아들 고종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종은 끝내 친부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장례만큼은 국장(國葬)에 준하여 거행하라고 명하고 장례를 주관하는 임무를 외할아버지에게 맡겼다. 그날로 조정구 외할아버지는 장례원 소경(掌禮院 少卿)으로 부임하여 2개월이나 되는 긴 장례 기간 병상에 있는 외할머니 간호는 제쳐두고 국장을 집정하였다. 5월이 되어 모든 장례 절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의 병환은 너무나 심각했다. 그해 12월 27일 외할머니는 어린 젖먹이 딸, 나의 어머니를 남겨둔 채 눈을 감으셨다.
조선조 말 고종 임금은 왕가의 가정불화로 인하여 제대로 국정을 펴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남의 말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