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첫새벽 일어나 말없이 군불 지펴주시던 당신
⊙ 어머니는 화장장 연기가 치솟자 “호승아, 저 연기 잡아라!” 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鄭浩承
1950년생. 경희대 국문과·同 대학원 졸업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 50년간 1100편의 시 발표
⊙ 어머니는 화장장 연기가 치솟자 “호승아, 저 연기 잡아라!” 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鄭浩承
1950년생. 경희대 국문과·同 대학원 졸업 /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 50년간 1100편의 시 발표
나는 인간의 임종(臨終)의 순간을 외할머니를 통해 처음 경험했다. 외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어머니와 급히 경주로 내려갔을 때 외할머니는 이미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들숨날숨이 한 번씩 교차될 때마다 목울대가 심하게 오르내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곧바로 돌아가시지 않고 대여섯 시간 동안 격하게 숨만 들이쉬고 내쉬었다.
“하루만 일찍 왔더라면 엄마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내내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인지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시신이 경주 화장장(火葬場) 화구 속으로 들어가고 푸른 가을 하늘 위로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치솟자 “호승아, 저 연기 잡아라!” 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셨다. 화장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외할머니 장롱 속에 홍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이 홍시도 못 먹고 돌아가셨구나!” 하고 또 크게 우셨다.
그때 나는 인간의 임종의 순간은 다소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영화에서처럼 한순간에 숨이 멎어 고개를 툭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여섯 시간 이상 들숨날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난 뒤에 숨을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임종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마다 임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형태가 다 달랐다. 나는 그걸 어머니의 임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시각각 임종의 순간이 다가와도 무척 평온하신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기는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외할머니처럼 들숨날숨을 거칠게 몰아쉬지 않았다. 그렇게 되려면 하룻밤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내 작업실에 잠깐 다녀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그사이에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거친 호흡은커녕 숨소리도 제대로 내시지 않고 돌아가신 거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사람마다 임종의 형태가 다 다른 줄 알지 못했다. 누구나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면 외할머니처럼 대여섯 시간 정도 목울대가 옴폭 파였다가 다시 솟아오를 만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시간을 갖는 줄 알았다.
지금도 외할머니만 생각하면 그 임종의 순간이 떠오른다. 임종의 순간을 맞이한 외할머니의 모습이 모든 사람과 똑같은 줄 알았다가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못 본 불효를 저지른 일이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못 본 나는 어머니의 임종만은 꼭 보리라 마음먹었었다.
“어머니, 사랑해요. 먼저 천국에 가 계세요. 제가 곧 뒤따라갈 거니까 그때 반갑게 다시 만나요!”
어머니의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면 어머니 귀에 대고 꼭 이렇게 말하리라 몇 번이나 생각하고 일부러 소리 내 말해보기도 했는데 그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두고두고 가슴 치며 후회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 안 주무시고 뭐 하십니꺼?”
외할머니는 둘째 외삼촌이 사는 경주에 사셨다. 외삼촌 집은 경주역과 불국사역 중간 지역에 있는 작은 간이역인 동방역 부근에 있었다. 술도가를 하는 외삼촌 집에서 외할머니는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셨다. 외숙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외사촌 형제들을 돌보시면서 잠시도 편히 앉아 쉬는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부지런하셨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방학 때만 되면 기차를 타고 외할머니 댁에 가 일주일은 넘게 놀다 오곤 했다. 외사촌 형제들과 불국사를 가기도 하고, 토함산 석굴암을 오르기도 하고, 석가탑의 그림자가 어린다는 영지 못에 가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첨성대 창문 안까지 기어들어가 놀기도 했다.
한번은 겨울방학 때 경주에 갔을 때였다. 외할머니가 나를 보고도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과묵하신 성격이라 평소 말씀이 없으시긴 했지만 그날도 “호승이 니 왔나?” 하고는 그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한 번 안아주시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나를 단 한 번도 안아주신 적이 없다. 나 또한 외할머니한테 스스로 안겨본 적이 없다. 그 시대 어른들은 손자가 귀엽다고 해서 안아주시거나 하는 애정 표현의 문화가 없었다고 이해된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날따라 외할머니의 그런 무덤덤한 태도에 크게 섭섭해 다음부터는 방학이 되어도 절대 경주에 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날 새벽이었다. 소변을 보고 싶어 자다가 일어나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변소를 찾아갔다. 밤바람은 몹시 찼다. 마침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줌을 누고 돌아오다 보니까 누군가 내가 자는 별채 방 아궁이에 쭈그리고 앉아 군불을 때고 있었다. 누군가 하고 보니 바로 외할머니였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위해 혹시 방구들이 식을까 봐 첫새벽에 일어나 말없이 군불을 지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외할머니가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다시는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할머니, 안 주무시고 뭐 하십니꺼?”
슬며시 할머니 곁에 다가가 아궁이 불을 쬐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가가도 한 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으셨다. “춥다, 빨리 들어가 자거라” 하는 말씀조차 없으셨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손자인 나를 위해 주무시지도 않고 군불을 때는 외할머니의 깊디깊은 사랑을 보았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맑고 밝은 그 불꽃은 詩의 영역
외할머니 앞엔 소쿠리가 넘치도록 솔방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곁엔 꺾인 솔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할머니는 솔가지를 꺾어 군불을 때지 않고 솔방울을 한 움큼씩 던져 군불을 때셨다. 솔방울들이 아궁이 속으로 던져져 이루는 불빛이 한없이 맑고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지금도 솔방울만 보면 아궁이에 솔방울을 집어던지며 맑고 밝은 솔방울 불을 지피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솔방울 불빛이 내 가슴을 영원히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것을 느낀다.
요즘 나는 외할머니가 아궁이 속에 던져 피우시던 그 맑은 솔방울 불꽃이 바로 시(詩)라고 생각한다. 한 알의 솔 씨가 땅에 떨어져 한 그루 소나무로 자라기까지, 그리고 어느 집 아궁이 앞에 솔가지로 꺾여 군불의 땔감으로 쓰이기 직전까지가 그 소나무의 서사(敍事)이고, 그 서사가 바로 산문의 영역이라면, 그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던 솔방울이 아궁이에 던져져 피워 올리던 맑은 불꽃은 바로 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내 외할머니의 사랑처럼 말없이 은근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손자의 방에 군불을 때던 외할머니의 마음이 바로 우리 사랑의 원형이다.⊙
“하루만 일찍 왔더라면 엄마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내내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인지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시신이 경주 화장장(火葬場) 화구 속으로 들어가고 푸른 가을 하늘 위로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치솟자 “호승아, 저 연기 잡아라!” 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셨다. 화장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외할머니 장롱 속에 홍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이 홍시도 못 먹고 돌아가셨구나!” 하고 또 크게 우셨다.
그때 나는 인간의 임종의 순간은 다소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영화에서처럼 한순간에 숨이 멎어 고개를 툭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여섯 시간 이상 들숨날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난 뒤에 숨을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마다 임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형태가 다 달랐다. 나는 그걸 어머니의 임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시각각 임종의 순간이 다가와도 무척 평온하신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기는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외할머니처럼 들숨날숨을 거칠게 몰아쉬지 않았다. 그렇게 되려면 하룻밤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보내야 할 메일이 있어 어머니를 그대로 두고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내 작업실에 잠깐 다녀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그사이에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거친 호흡은커녕 숨소리도 제대로 내시지 않고 돌아가신 거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사람마다 임종의 형태가 다 다른 줄 알지 못했다. 누구나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면 외할머니처럼 대여섯 시간 정도 목울대가 옴폭 파였다가 다시 솟아오를 만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시간을 갖는 줄 알았다.
지금도 외할머니만 생각하면 그 임종의 순간이 떠오른다. 임종의 순간을 맞이한 외할머니의 모습이 모든 사람과 똑같은 줄 알았다가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못 본 불효를 저지른 일이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못 본 나는 어머니의 임종만은 꼭 보리라 마음먹었었다.
“어머니, 사랑해요. 먼저 천국에 가 계세요. 제가 곧 뒤따라갈 거니까 그때 반갑게 다시 만나요!”
어머니의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면 어머니 귀에 대고 꼭 이렇게 말하리라 몇 번이나 생각하고 일부러 소리 내 말해보기도 했는데 그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두고두고 가슴 치며 후회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외할머니는 둘째 외삼촌이 사는 경주에 사셨다. 외삼촌 집은 경주역과 불국사역 중간 지역에 있는 작은 간이역인 동방역 부근에 있었다. 술도가를 하는 외삼촌 집에서 외할머니는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셨다. 외숙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외사촌 형제들을 돌보시면서 잠시도 편히 앉아 쉬는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부지런하셨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방학 때만 되면 기차를 타고 외할머니 댁에 가 일주일은 넘게 놀다 오곤 했다. 외사촌 형제들과 불국사를 가기도 하고, 토함산 석굴암을 오르기도 하고, 석가탑의 그림자가 어린다는 영지 못에 가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첨성대 창문 안까지 기어들어가 놀기도 했다.
한번은 겨울방학 때 경주에 갔을 때였다. 외할머니가 나를 보고도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과묵하신 성격이라 평소 말씀이 없으시긴 했지만 그날도 “호승이 니 왔나?” 하고는 그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한 번 안아주시면 좋으련만 할머니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나를 단 한 번도 안아주신 적이 없다. 나 또한 외할머니한테 스스로 안겨본 적이 없다. 그 시대 어른들은 손자가 귀엽다고 해서 안아주시거나 하는 애정 표현의 문화가 없었다고 이해된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날따라 외할머니의 그런 무덤덤한 태도에 크게 섭섭해 다음부터는 방학이 되어도 절대 경주에 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날 새벽이었다. 소변을 보고 싶어 자다가 일어나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변소를 찾아갔다. 밤바람은 몹시 찼다. 마침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줌을 누고 돌아오다 보니까 누군가 내가 자는 별채 방 아궁이에 쭈그리고 앉아 군불을 때고 있었다. 누군가 하고 보니 바로 외할머니였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위해 혹시 방구들이 식을까 봐 첫새벽에 일어나 말없이 군불을 지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외할머니가 나를 무척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다시는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할머니, 안 주무시고 뭐 하십니꺼?”
슬며시 할머니 곁에 다가가 아궁이 불을 쬐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가가도 한 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으셨다. “춥다, 빨리 들어가 자거라” 하는 말씀조차 없으셨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손자인 나를 위해 주무시지도 않고 군불을 때는 외할머니의 깊디깊은 사랑을 보았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 앞엔 소쿠리가 넘치도록 솔방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곁엔 꺾인 솔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할머니는 솔가지를 꺾어 군불을 때지 않고 솔방울을 한 움큼씩 던져 군불을 때셨다. 솔방울들이 아궁이 속으로 던져져 이루는 불빛이 한없이 맑고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지금도 솔방울만 보면 아궁이에 솔방울을 집어던지며 맑고 밝은 솔방울 불을 지피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솔방울 불빛이 내 가슴을 영원히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것을 느낀다.
요즘 나는 외할머니가 아궁이 속에 던져 피우시던 그 맑은 솔방울 불꽃이 바로 시(詩)라고 생각한다. 한 알의 솔 씨가 땅에 떨어져 한 그루 소나무로 자라기까지, 그리고 어느 집 아궁이 앞에 솔가지로 꺾여 군불의 땔감으로 쓰이기 직전까지가 그 소나무의 서사(敍事)이고, 그 서사가 바로 산문의 영역이라면, 그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던 솔방울이 아궁이에 던져져 피워 올리던 맑은 불꽃은 바로 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내 외할머니의 사랑처럼 말없이 은근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손자의 방에 군불을 때던 외할머니의 마음이 바로 우리 사랑의 원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