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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오징어 게임〉의 사회학 | ‘이대남’들, ‘가진 자’에 대한 분노 여전…

現 여권 세력도 똑같은 ‘1%’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을 뿐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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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층이 사다리에서 떨어질 가능성 높아진 데 대한 불안감 반영
⊙ IMF사태로 중산층 붕괴, 低성장 이어지면서 反자본주의 드라마 확산
⊙ 美 보수논객 벤 샤피로 〈오징어 게임〉비판, “자본주의로 성공한 사람은 부패·사악하다고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어서다”
⊙ 2019년은 미국의 〈조커〉, 2021년은 한국의 〈오징어 게임〉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어딜 가든 〈오징어 게임〉 천지다. 글로벌 OTT(Over The Top·인터넷 기반 미디어 콘텐츠 제공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지난 9월 17일 공개한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말이다. 공개된 지 두 달가량 지난 시점까지도 이러니 과연 올해 대중문화계 최대 이슈라 볼 만하다. 나아가 비단 대중문화계 화젯거리를 넘어서까지도 그렇다.
 
  예컨대 지난 10월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튀어나온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양승동 KBS 사장에게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KBS가 그런 역할을 선도해야 한다”며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고 몰아붙인 바 있다.
 

  10월 1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가 가진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오징어 게임〉이 등장한다. 김 총리가 “〈오징어 게임〉 흥행으로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각계에서 콘텐츠 수익의 글로벌 플랫폼 집중 등 콘텐츠 산업의 역량 강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걸맞게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인 망(網) 사용료 부과 문제와 함께 플랫폼과 제작업체 간 공정한 계약에 대해서도 총리가 챙겨봐 달라”고 지시했다.
 
  물론 이 밖에도 많다. 정치권에서조차 〈오징어 게임〉은 지난 두 달여간 각종 공방(攻防)의 도구로서 수없이 등장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곽상도 의원 아들 50억 퇴직금에 대해 “〈오징어 게임〉이 유행인데 국민의힘은 ‘50억 게임’이 유행인 것 같다”며 비꼬았고, 홍준표 의원은 “한국 대선이 〈오징어 게임〉처럼 돼가고 있다고 느낀다”며 혀를 찼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의 전문(電文), 즉 각국 외교관들이 입수한 정보를 본국에 보고하는 문서에도 〈오징어 게임〉이 등장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10월 15일 자 기사 ‘국무부 전문(電文)이 〈오징어 게임〉에서 한국 정치의 메아리를 본다’에서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을 입수했다며 “(전문은 〈오징어 게임〉에 대해) 대선(大選)을 앞두고 암울한 경제 상황에 대한 한국 사회의 좌절을 반영한 것으로 묘사했다”며 “〈오징어 게임〉이 한국 양대 정당의 대선 주자들이 스캔들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매우 계층화한 한국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또 해당 전문은 “얘기의 핵심은 평균적인 한국인, 특히 한국의 청년들이 직장, 결혼, 승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좌절감에 있다”면서 “한국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全 세계 최대 문화현상
 
  상당히 거창한 얘기다. 고작 드라마 한 편이 대선 주자들 입에서 간단히 튀어나오고, 대통령도 관련해 정책적 주문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미국 국무부의 전문에까지 등장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이 현재 일으키고 있는 문화적 신드롬의 면면(面面)을 살펴보면 과연 그럴 만도 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일단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미국 소재 OTT 넷플릭스는 그 가입 가구 수(數)가 전 세계적으로 2억1400여만 가구(2021년 10월 기준)에 이르는 메가 플랫폼이다. 가구 기준이므로 전체 시청자 수는 10억 명을 넘어서리라는 예상이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플랫폼에서 〈오징어 게임〉은 공개 후 첫 28일 동안 무려 1억4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넷플릭스 역사상 최대 수치다. 기존 기록은 19세기 영국을 다룬 미국 드라마 〈브리저튼〉의 8200만 가구로 〈오징어 게임〉과는 격차가 상당히 크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9월 30일~10월 1일 기간 동안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 중인 총 94개 국가에서 모조리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작품이 됐다. 이 중에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 세계 선진국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종합해보면, 〈오징어 게임〉은 비록 공개된 지 두 달여밖에 되지 않아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본 드라마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도 가장 단기간 안에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가 본 드라마인 것은 맞는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쯤 되니 세계 언론미디어도 온통 들끓을 수밖에 없다. 미국 지상파 방송 CNBC는 “〈오징어 게임〉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보도했고, 또 다른 미국 지상파 방송 ABC는 “〈오징어 게임〉에 대한 열광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며 한국이 다양한 문화에 도전해 그 가능성을 축적해온 것이 드디어 폭발했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더 가디언》, 미국의 블룸버그 등 전 세계 유수 언론들이 모조리 〈오징어 게임〉에 대해 논평하고 그 성공요인과 영향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오징어 게임〉은 2021년 전 세계 최대의 문화현상이라고 볼 만하다. 이 정도로 전 세계 모든 언론미디어를 달군 콘텐츠도 올해 따로 없었고, 그에 따른 각종 사회문화 현상이 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경우도 없었다. 이 정도 상황이니 국내에서 이런저런 언급이 정치인 포함 다양한 직군에서 연일 펼쳐지는 것도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셈이다. 미국 국무부 전문도 마찬가지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모닝 컨설트에 따르면, 10월 11일까지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미국 국민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개 3주 만에 이 정도다. 이 정도 문화현상이라면 세계 어느 국가기관에서나 충분한 자료와 해석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反자본주의적 설정
 
자본주의 사회의 루저(loser)들이 등장하는 〈오징어 게임〉은 매우 反자본주의적이다.
  그럼 이제 〈오징어 게임〉이란 대체 어떤 드라마인지 알아보자. 이미 시청한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단 〈오징어 게임〉은 미국 소재 다국적 기업 넷플릭스에서 한국 제작사 (주)싸이런픽쳐스에 한화 253억원을 투자해 만들어낸 9부작 드라마다. (주)싸이런픽쳐스는 유명 소설가 김훈의 딸로 알려진 영화 제작자 김지연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제작사다. 2017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영상화한 동명(同名) 영화를 제작해 국내 385만 관객을 동원한 성공 사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이도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다.
 
  설정은 단순하다. 알 수 없는 집단이 절박(切迫)한 사정의 사람들을 사회에서 하나둘 모은다. 그 수가 456명에 달한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도박중독에 빠진 이혼남, 투자에 실패해 큰 빚을 지게 된 엘리트 금융인, 탈북자로서 자본주의 사회 적응에 실패해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여성, 뇌종양에 걸린 시한부 노인,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장과 다투다 사고를 일으키고 도망자가 된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노동자 등등. 정체불명의 집단은 이들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한 뒤 어릴 적 하던 놀이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등을 시키며 탈락자들을 그 자리에서 사살(射殺)한다. 대신 마지막 남은 우승자 한 명에게 참가자 한 사람당 1억원씩을 더한 456억원을 상금으로 주겠다는 약속이다.
 
  끔찍한 설정이다. 그리고 얼핏 봐도 알 수 있듯,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혐오와 공포, 공격을 담고 있는 반(反)자본주의적 설정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풍자적이고, 또 다른 의미에선 사실상 부정(否定)에 가깝다. 이 점을 지적한 언론미디어는 당연히 많다. 좌파(左派) 성향 언론들은 현실을 반영한 풍자로서 높이 평가하지만, 우파(右派) 성향 언론들은 현(現) 체제에 대한 부정으로서 선동적(煽動的)이라 비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날카롭게 각을 세운 것이 드라마 중 반(反)기독교적 대목이 들어간 탓에 발끈한 기독교 계열 미디어들이다.
 
 
  벤 샤피로의 〈오징어 게임〉 비판
 
〈오징어 게임〉을 비판한 미국의 보수논객 벤 샤피로. 사진=AP/뉴시스
  대표적으로 기독교 유튜버 ‘책읽는사자’를 들 수 있다. ‘책읽는사자’는 유튜브 방송분에서 “〈오징어 게임〉 전반에 짙게 스며든 반기독교·반서구문명 코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 거의 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볼 정도로 악의적”이라며 “대부분 대중예술가가 반미, 반기독교, 반자본주의 사상에 경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징어 게임〉은 한두 번 하고 마는 보편적 수준을 뛰어넘어 매우 일괄적이고 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결국 작가이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자본주의 사회 속 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런 부정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악(惡)의 축으로 기독교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하지만 작가는 알까. 자신이 이렇게 작품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와 서구문명의 산실인 자유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서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민의 4분의 1이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다는, 어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유사한 비판은 등장하고 있다. 리버테리언 계열 우파 논객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벤 샤피로 역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오징어 게임〉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샤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은 꽤나 공허하다. 자본주의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부패하고 사악하다고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어서다. 드라마 내내 착취하거나 횡령하는 사장들밖에 안 보인다”면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생충〉도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 없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한국영화 산업에서는 이런 메시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도 진단했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현재 한국영화 산업에서는 이런 메시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대목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붐과 함께 이를 시청한 어느 러시아 트위터리안이 남긴 트윗이 근래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일종의 우스개처럼 퍼진 바 있기 때문이다.
 
  “젠장,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거기다 ‘강남스타일’까지도 모두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이제 한국이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가 아닌 콘텐츠를 내놓기는 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TV 드라마 속의 反기업 정서
 
  그런데 위 트윗의 비아냥, 그리고 벤 샤피로의 분석은 현재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턴가 반자본주의 색채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어마어마한 수(數)로 등장하고 있고, 단순히 빈부격차(貧富格差) 갈등과 소위 ‘가진 자’의 ‘갑질’에 대한 피해의식을 담은 콘텐츠까지 이에 더한다면 그 역사도 상당히 길다.
 
  대략 1980년대 〈바람 불어 좋은 날〉 〈오염된 자식들〉 〈바보선언〉 〈서울무지개〉 등부터 시작해 이 같은 코드를 담은 영화가 꾸준히 등장해왔고, 대중음악 역시 서태지와아이들이 노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에서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게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그는 모든 범죄와 살인을 만들었어/ 전쟁, 마약, 살인, 테러 그 모든 것을 기획했어”라고 외치던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유사한 코드 가사(歌詞)가 끊인 일이 없다. 심지어 10~20대 겨냥 상품으로 인식되는 아이돌의 노래들에서조차 그렇다.
 
  나아가 TV 드라마는 가장 강렬하게 반(反)기업 정서를 흩뿌리는 대중문화 미디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가는 한국 TV 드라마 속에서 온갖 부정축재(不正蓄財), 탈세, 분식회계, 노동착취, 세습경영, 문어발 확장, 정략결혼, 해외도피를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처럼 일삼는 이들로 아예 스테레오타입화 돼서 등장한다.
 

  필자가 파악하기로도 세계에서 이 정도로 많은 반자본주의 성향 대중문화 콘텐츠가 나오고, 또 그들이 시장에서 주류상품으로 소화되며 상업적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는 아무리 봐도 한국밖에 없는 듯하다. 이런 부분에서도 종주국(宗主國)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다면, 한국은 진정 세계에서 손꼽히는 반자본주의 성향 대중문화 콘텐츠의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 어쩌면 〈오징어 게임〉이 이토록 해외 각국에서 열광적 반응을 얻어낸 것도, 과연 종주국답게, 이 같은 반자본주의 정서를 매우 효과적으로 콘텐츠에 버무려 넣는 숙련된 노하우 덕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법하다.
 
  물론 엄밀히 문화 콘텐츠에서 극중(劇中) 선(善)과 악(惡)의 대립구도를 선(善)=약자(弱者), 악(惡)=강자(强者)로 설정하는 것 자체를 반자본주의적 의도라고 생각하는 일은 여러모로 무리다. 그런 설정은 고대(古代) 신화(神話)의 대립구도로부터 시작되는 극적대립(劇的對立) 구도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비롯된 각종 종교의 경전(經典), 예컨대 기독교의 성경만 해도 ‘다윗 대(對) 골리앗’이라는 대립구도를 등장시킨 바 있다. 보다 작고 육체적으로 약한 다윗이 선(善)이 되고 그 반대인 골리앗은 악(惡)이 된다.
 
  이 같은 대립구도는 극(劇)을 소비하는 다수 대중이 사회 지배계급에 느끼는 박탈감과 무력감(無力感)을 달래주기에 환영받는 부분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런 설정 쪽이 극적(劇的)으로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시작되고 굳어졌다고 봐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언젠가 해외 영화비평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이기는 것은 다큐멘터리지 극영화(劇映畫)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읽은 적도 있다. 뭐든 현실에서는 좀처럼 이뤄지기 힘든 소망이 극예술로서 가치도 생기는 것이고, 또 그쪽이 더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박진감을 줘 대중을 몰입시키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대중은 이 같은 대립구도를 스스로 설정해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다독이기도, 어려운 현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단순히 엄혹한 현실에 대한 마취제(痲醉劑) 역할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 드라마의 단골 식단 5종 세트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이런 극적 대립의 속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지금’ 대중문화계에서 엿볼 수 있는 경향성은 단순한 선=약자, 악=강자 설정을 크게 넘어서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반자본주의 색채를 띠는 콘텐츠가 언젠가부터 늘어나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전에는 최소한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것.
 
  맞는 얘기다. 분명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앞서 반기업 정서의 메카와도 같다는 TV 드라마만 해도 그렇다. 사실 1990년대에는 오히려 재벌 집안의 유복한 아들이 선한 역으로 등장하고, 서민 집안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위로 올라가려는 인물이 악에 가깝게 묘사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설정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대성공한 사례들까지 존재한다. 1995년 방영된 KBS2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1999년 방영된 SBS 드라마 〈청춘의 덫〉 등이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뭔가 크게 변했다. 가정주부들이 주로 보던 아침드라마부터 서서히 노골적인 반기업 정서를 드러내더니 곧 전체 시간대를 장악해버리기에 이른다. 그러다 2010년이 되자 한국광고주협회 월간지 《KAA저널》 2010년 3월호에 ‘드라마 속에 나타나는 반기업 정서’라는 기사까지 실리게 된다.
 
  〈출생의 비밀, 불치병, 불륜과 외도, 배신과 복수, 재벌 태우기와 흔들기, 한국 드라마의 단골 식단 5종 세트다. (중략) 이 과정에서 기업, 기업가는 재벌로 언급되며 편법, 비리, 유착, 특혜, 불법, 탈법, 투기, 폭력집단으로 묘사되었다.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냉혹한 사람으로 그려지며…〉
 
 
 
‘중산층의 불안’

 
영화 〈조커〉.
  이처럼 극적인 변화의 원인으로 주로 꼽히는 건 1997년 IMF 외환(外換)위기 상황이다. 직전까지는 소위 ‘고도성장기의 열매를 따 먹는’ 입장이었기에 이렇다 할 근심 걱정도 없고 특히 중산층 의식이 자리 잡히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계층갈등과 그에 따른 피해의식이 오히려 수그러드는 추세였던 반면, IMF 외환위기로 바로 그 중산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TV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도 달라진 대중의식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경제 저성장(低成長) 국면이 지속되면서 청년 취업률은 거의 상시적인 문젯거리가 돼버렸고, 대중의식도 점차 비관적이고 신경질적으로 옮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은 왜 미국 대중문화계에서도 2010년대부터 영화 〈인 타임〉 〈더 퍼지〉 등 상당히 극단적인 반자본주의 성향 엔터테인먼트가 늘어나기 시작했는지, 급기야 2019년에 이르러 국내에서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루저들의 폭동(暴動)’ 영화 〈조커〉의 대대적 흥행신화까지 낳게 됐는지 이해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상당 부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중산층이 몰락하고, 그로 인해 2011년 “우리는 99%다” 구호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등 엄청난 사회 혼란과 생존의 불안감이 들이닥친 데 따른 흐름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IMF 외환위기 및 그 이후 한국 대중문화계 상황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오징어 게임〉의 등장까지 이르게 한 한국 사회 불안감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지금은 사실 경제계층이 바뀌지 않고 대(代)물림되는 봉건적 사회로의 진행 탓에 대중의 분노가 치솟아 오른 게 아니라, 정반대로, 계층이동이 너무 원활한 바람에 이른바 ‘중산층의 불안’이 극심해진 시점이란 것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해외에서는 탈북자 여성 캐릭터나 파키스탄 외국인 노동자 캐릭터 등이 주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다 몰락한 두 캐릭터, 기훈(이정재 분)과 상우(박해수 분)에 언론미디어의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한국 사회의 계층이동은 여전히 활발
 
  이 같은 관점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도 올해 서적으로 출간된 바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사회학자 박현준의 저서 《세대 간 사회이동의 변화: 한국사회 얼마나 개방적으로 변화하였는가?》다. 이 책에서 박현준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비(非)화이트칼라 계층 부모의 자녀가 화이트칼라로 상승 이동할 확률은 최근까지도 계속 높아져 왔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출생자가 그 직전 연도 출생자보다 상승이동률 증가가 주춤하긴 하지만 그보다 전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높은 상승이동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화이트칼라 중산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 부모와는 달리 비화이트칼라로 하강할 확률도 1980년대생에서 급증(急增)한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저런 선동 내용들과 달리 한국 사회는 오히려 계층이동이 너무 활발해 문제라는 얘기다. 계층사다리 문제라는 것도 실제로는 위로 올라갈 계층사다리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중산층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하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에 더 가깝다. 그렇게 새롭게 등장한 한국 사회 중산층이 그 지위를 마치 봉건 계급처럼 대물림까지도 가능한 부동(不動)의 것으로 여기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 자체에 대한 염증과 분노를 일으키게 됐다는 순서다.
 
  〈오징어 게임〉은, 그리고 다른 많은 한국의 반자본주의 성향 대중문화 콘텐츠는 바로 이 같은 공포와 불안을 정조준한다. 〈오징어 게임〉 속 기훈과 상우처럼 ‘사다리에서 떨어진’ 이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다만 여기서 코드를 슬쩍 ‘1% 대(對) 99%’로 바꿔줘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 추가될 뿐이다. 상위 1%는 선동대로 ‘올라갈 수 없는’ 지점이 아니라, 중산층에 비해 ‘사다리에서 떨어질 위험이 적은’ 지점이라는 점에서 분노의 코드를 모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촘촘하게 구성된 코드가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 특히 미국에서 크게 불고 있는 각종 불만과 전복(顚覆) 의지를 만나 세계적 문화현상을 일으킨 순서라고 봐야 한다. 2019년은 미국의 〈조커〉, 2021년에는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대남’들 달라진 것 없어

 
‘조국사태’는 이대남들에게 좌파의 위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사진=조선DB
  끝으로, 지난 4월 서울시장 등의 보궐선거 과정에서 화제를 모은 ‘이대남(20대 남성)’ 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이처럼 복잡하고 완강하게 짜인 계층갈등 코드 속에서, 특히 그를 자극적으로 반영하는 이런저런 대중문화 콘텐츠의 영향 아래서, ‘이대남’들은 대체 왜 오세훈 현 서울시장 등 우파 후보들을 그토록 맹렬하게 지지했느냐는 미스터리다. 특히 이들이 바로 지금 〈오징어 게임〉에 가장 열광하는 이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미스터리는 깊어진다. 대중문화에서는 그처럼 ‘1% 대 99%’ 논리로 현 체제를 부정하는 카타르시스를 즐기지만 현실에서는 어디까지나 초연(超然)한 자세로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꾀한다는 걸까.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이대남’들이 자주 찾는다는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여론 흐름을 봤을 때도 그렇다.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나 폄훼(貶毁)는 여전하고, 소위 ‘수저론’도 그대로이며, 각종 한탄(恨歎)과 불안, 무기력 등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하나뿐이다. 이제 ‘1% 대 99%’ 선동으로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내던 현 여권(與圈) 세력도 똑같은 ‘1%’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정권 인사들의 각종 비리들이 연이어 드러나면서, 특히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 이슈가 크게 불거지면서 그렇게 됐다. 조 전 장관은 애초 스스로를 ‘강남좌파’라 칭하며 좌파 진영의 확장(擴張)을 꾀해온 인물이다. 중산층에 파고들어 중산층 윤리구조 내에서도 얼마든지 좌파 이념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게 오히려 건강하고 올바른 것이라는 인식을 심으려 했다. 그런데 계층갈등이 극심해지며 남는 것은 결국 ‘좌파’가 아니라 ‘강남’이 돼버리고, 여기에 각종 특권층 비리들이 제기되면서 ‘이대남’들의 전반적 인식을 크게 흔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대남’들 의식구조 자체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지금의 가히 흉흉하기까지 한 극단적 대립갈등에서 ‘이대남’들이 벗어나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다만 ‘현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그러면서 온갖 가식(假飾)과 위선(僞善)에 더 크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 속에서 이 모든 잔혹한 게임을 기획한 이들, 다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VIP들은 현실에서 과연 누구일지 좀 더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의미에선 〈오징어 게임〉처럼 극단적 계층갈등 코드를 담아내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앞으로도 한동안 끊일 일이 없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가면을 쓴 VIP들이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는 어떤 이들로 설정될지는 향후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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