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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사이버대 제2회 평생학습 수기 공모전

“끝없는 배움이 주는 기쁨이 쏠쏠해요”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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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사이버대·《조선일보》 공동주최, ‘평생학습 새 삶을 두드리다’ 공모전
나이와 상관없이 일·학습을 병행하는 사례 발굴
383편 중 대상과 금상·은상 1作, 동상 7作
  국내에서 가장 재학생이 많은 한양사이버대학교(총장 김우승)와 《조선일보》가 제2회 평생학습 수기 공모전 ‘2021 평생학습 새 삶을 두드리다’를 개최했다. 공모전은 나이와 상관없이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자기계발에 힘쓰는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평생 교육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인 활동이 움츠러든 상황 속에서도 총 383편의 다양한 사례가 접수됐다. 사이버대의 문을 두드리게 된 사연과 끝없는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학생들의 생생한 사연이 수기로 전해졌다. 1회 공모전보다 참여도가 한층 높아진 점이 올해의 특징이었다. 학위 과정은 국내 각 사이버대학교 또는 방송통신대학교 등에서 공부하며 삶이 진취적으로 변한 사례, 비학위 과정은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실무 중심 교육을 받으며 도전하는 사례다.
 
  대상은 초등학교 현직 교사로 평생 학습을 실천하고 있는 서동욱씨가 차지했다. 금상은 조수아씨, 은상은 변영은씨에게 돌아갔다. 이 외에도 김현정씨, 박소연씨, 채지연씨, 권은정씨, 윤경숙씨, 이대권씨, 이종상씨 등이 영예의 수상자로 뽑혔다. 대상과 금상, 은상을 수상한 수상자들의 수기 일부를 발췌해 공개한다.
 

  대상
  서동욱 학위과정
 
  평생학습, 잠재력의 바다
 
제2회 ‘평생학습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이 서동욱씨에게 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나는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예전에는 전기공학도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전기공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권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진학한 공과대학은 나에게는 꽤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나는 다시 수능시험을 치르고 교육대학교에 합격하여 진로가 초등교사로 바뀌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 후 반 학생들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체육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5학년 학생들의 급식을 지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급식은 학생들을 먼저 자리에 배치해 식사하게 하고 담임교사는 학생들이 편식 없이 골고루 식사하였는지 검사한 후 교실로 올려 보낸다. 띄엄띄엄 우리 반 학생들의 빈 자리가 늘어가는 그때, 저 멀리서 먼저 올라간 학생들 한 무리가 나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승희(가명)가 지금 교실에 쓰러져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식사하던 식판을 내던지고 4층에 있는 교실로 아이들과 같이 달려갔다. 계단을 한걸음에 두세 개씩 오르면서 도착한 교실에서 본 승희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발작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걱정이 된 주변 아이들은 승희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몸을 흔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주변 학생들을 승희로부터 떨어지게 한 다음 승희 목이 꺾이지 않도록 보호한 채 보건실로 이동했다. 보건 선생님과 협력하여 침상에 눕히고 열을 재어보니 정상 체온보다 한참 높은 상태였다. 몸이 불덩이 같았다.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어 119에 신고를 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와 몸에 대어주었다. 그리고 보건 선생님의 도움으로 옷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온몸이 경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혀를 깨물려는 모습을 보여서 수건을 입에 물려주었다. 발작이 갈수록 심해져 주변 물건 중에 넘어져 다칠 위험이 있는 것들은 모두 치웠다.
 
  그렇게 나는 119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자꾸만 오르려 하는 승희의 체온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19구조대가 도착해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그 일이 마무리되고 나는 상념에 잠겼다. 그나마 방학 때 이수해둔 응급처치 연수가 도움되어 덜 당황한 채로 대처할 수 있었지만, 이 사건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이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예지하고 사전에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가?’
 
  ‘나는 과연 학교 내 안전사고에 대한 대응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기본적인 응급처치에 대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안전교육에 대해 체계적으로 학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원을 한 곳 정해 입학원서를 넣었다. 학비는 꽤 비싼 편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하고 오리엔테이션 날, 원우들과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안전 관련 대학원이라서 그런지 소방관이 주로 오고, 경찰과 검찰에 근무하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보안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안전교육에 관심이 많아 체계적·전문적으로 안전에 대해 학습하고 그것을 교육과 접목해보고 싶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이 대학원에 교사는 나 혼자고, 지금까지 교사가 안전 관련 대학원에 오는 사례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초보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인간과 재난, 재난관리론 등 수업은 들을 때마다 너무 재미있었다. 소방지휘론 수업을 들으면 소방과 관련 없는 내가 마치 재난현장을 지휘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이 과정들을 공부하면서 나는 안전 역량을 학생들에게 투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학생들과 불조심어린이마당이라는 대회에 도전하게 되었다. 불조심어린이마당은 소방청과 화재보험협회에서 주최하며 교육부에서 후원하는 대회로, 2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대회였다. 전국에서 2만여명에 가까운 초등학생이 도전하는 대회로 현재까지 학생 26만여명이 참여하였다.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학원에서 배운 것과 대학원에서 만난 소방관분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와 학생들은 6개월 동안 대회 준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침내 대회 당일, 학생들은 내가 지도한 대로 차분하게 대회를 치렀다. 대회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경남도 지역 2위를 차지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이듬해 나는 석사학위 취득을 하였다.
 
  학생들과 나의 동반성장 프로젝트. 이것을 두고 교학 상장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 내가 일하는 현장과 상아탑과의 교류. 그 교류의 결과물이 내 일터에 적용되고,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평생학습의 모토(motto)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습에 대한 갈증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국내에서 취득할 수 있는 안전 관련 자격은 모두 취득한 것 같았고, 교원 중에 희소한 안전 관련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안전 관련 국제자격은 없을까?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본 결과 국제안전자격으로 미국 NAFI에서 발급하는 공인화재폭발조사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자격은 국내 300명 정도만 보유한 희소한 자격으로 법정 증언의 효력이 있으며, 화재감식 부서에 근무하는 소방관들이 간혹 취득하는 자격이다. 교사가 이 자격을 취득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응시 자격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나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 전기공학을 전공하면서 들은 전공과목과 그때 취득한 자격증들이 응시 자격요건 충족에 큰 기여를 한 것이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미국 공인화재폭발조사관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교재가 영어로 되어 있었고, 나는 퇴근 후 하루 4시간씩 공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미국 NAFI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미국 공인화재폭발조사관에 합격한 것이다. 주최 기관 측에 문의한 결과, 지금까지 한국에서 대학교원을 제외한 유·초·중·고 교원이 이 자격을 취득한 사례는 없었다. 교원 최초였다.
 
  얼마 전 저녁 7시 뉴스로 접한 경남 합천의 안전체험관 건립. 경남소방본부에서 건립을 추진하여 6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나는 그 안전체험관의 안전교육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초등교사를 대표하여 자문하였다. 그리고 광주소방학교 외래강사로 위촉되어 소방관들의 소방안전교육사 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최근에는 학점은행제를 알아보고 있다. 반강제로 시작하게 된 전기공학사 학위를 이제는 자발적으로 취득하고자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알아보는 것이다. 8과목 정도만 더 이수하면 공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한다. 교육 학사와 정책학 석사를 지닌 채 공학사 학위 취득에 도전하는 괴짜 선생님. 그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홀로 걸어가는 나는 평생 공부할 팔자인가 보다.
 

  금상
  조수아 학위과정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제2회 ‘평생학습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이 조수아씨에게 금상을 수여하고 있다.
  나는 어느 곳에나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단지 조금 생각이 많은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또 조금 기분파였을 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곧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에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대학을 안(못) 갔다.
 
  친구들처럼 성적에 맞추어 알지도 못하는 ○○대학 ○○과에 들어가서, 흥미도 없는 공부를 하고, 술과 학점의 노예가 되어 시류를 따라 뻐끔뻐끔 몸을 내어 맡기는 금붕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6개월을 택배 회사에서, 1년을 공장에 다니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꽃다운 스물한 살 9월, 남들 대학서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 가진 여름옷 몇 벌과 에프킬라(인천공항 검색대에서 빼앗겼다), 삼선 쓰레빠(슬리퍼)를 등산 가방에 챙기고 캄보디아로 향하는 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몸을 의탁한 곳은, 한 작은 국제학교였다. 교회를 통해 알게 되어 한 달 정도 여행 겸 단기체험으로 생활해본 후, 이 학교에서 2년 세월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갔을 때 선생님 (나 포함) 3명, 할머니(교장선생님의 어머니), 학생 8명으로 총 12명이 작은 이층집을 빌려 국제학교라는 간판 하나도 없이 학교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생님이 3명이고 학급도 세 학급이기 때문에 한 학급씩 맡아 하루 종일 수업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런 시간이 익숙해질쯤, 학생들도 늘어나고 선생님들도 늘어나 이층집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이상 인원을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0.5헥타르(5000㎡) 정도 되는 땅을 구입하여 그곳에 학교 지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땜질도, 삽질도, 바지가 진흙 색깔로 누렇게 변해도 행복했다.
 
  힘들지만 계속 함께 일하며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나도 함께 커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와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만난 것에 감사했다.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아이들과 캐럴을 부르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빠는 이역만리 너머에 딸을 두고 인사도 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나는 3년간 함께 웃고 울며 살았던 캄보디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또 막막한 그 느낌이었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곤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 남편 잃은 엄마 하나, 아빠 잃은 동생 하나, 이제 낯설어진 한국 땅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실내건축을 배워 직업으로 삼고 일하다 보면 건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국비로 6개월간 직업학교에서 캐드와 BIM, 실내디자인을 배워 실내건축산업기사 자격증을 따기에 이르렀다. 자격증을 딴 후에는 인테리어 사무실에 취직했다. 캄보디아와 건축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또다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코로나19가 터진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나는 전국을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3개월 만에 일도 집도 정리하고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4개월을 웅크리고 기다리며 가만히 생각했다. 건축을 해야겠다고. 나는 아무래도 건축을 해야 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질 때쯤, 취직과 동시에 한양사이버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두말할 것 없이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를 선택했다. 대면으로 하는 모든 길이 막히면서 100% 온라인 수업으로 공부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교 강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 것이다. 주간에는 일하며 저녁 시간과 주말을 활용하여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나갔다.
 
  나는 현재 측량회사에 다니며 한양사이버대학교에 진학 중이다. 이제 1학년을 마쳐가고 있으며 갈 길은 아직 구만리다.
 
  나는 건축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나 스스로도 행복하고, 그 행복을 함께 나누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세상이 나에게 친절했던 적은 없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내 비늘이 두꺼워진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때때로 파도가 눈앞에서 부서지고, 때로는 내 앞에 폭풍이 도래하였지만 나름의 거친 그 바다를 헤쳐가며 오늘까지 버티며 살아왔다.
 
  이제는 강을 거슬러 오를 시간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은상
  변영은 학위과정
 
  바야흐로 평생 근로, 평생교육의 시대
 
제2회 ‘평생학습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이 변영은씨에게 은상을 수여하고 있다.
  나는 고교 졸업 후에 바로 취직을 했다. 고교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치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바에야 등록금을 엄한 곳에 적선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렇다 보니 당시 나는 후회는 물론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급 인원의 7~8할이 대학 내지는 전문대학에 진학하던 시기였으므로, 캠퍼스의 로망과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던 그들이 볼 때는 내가 별종으로 보였나 보다.
 
  회사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해나갔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해도 다음 날 출근을 기다리는 열과 성의를 발산했더니 어느새 능력도 인정받게 되었다. 선배들도 하나둘씩 앞지르기 시작했다. “쟤가 걔야?”라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연예인 느낌으로 ‘런웨이’를 걷듯이 출근도 해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흐뭇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수동적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위치로 바뀌게 되었다. 전보다 결단력을 요구하는 많은 과업이 내게 주었다. 나는 거칠 것이 없었다. 출발은 순조로워 모두가 역시를 그리고 엄지를 연발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곧이어 뒤따른 결과가 내가 그릇됨을 알려주었다. 믿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내게 조언하는 상사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그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이유로 말하자면 그분은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가치를 언급하기 조금 어려운 대학을 나왔다. 비록 직급과 경험의 차이는 있다 할지라도 나는 ‘현명한 고졸자’로서 그런 길을 가지 않았고, 결국 지금 당신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내가 더 낫다 싶어 일종의 우월감 아닌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나의 오판을 증명해버렸으니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답을 찾아야 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언젠가 “발견을 위한 참다운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분이 자질과 능력이 있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주의를 기울여 그분의 말과 행동을 통해 안목과 사고의 깊이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2수 앞을 내다보고 있을 때 상사는 3~4수 앞을 계산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끊임없는 노력에 따른 학습 성과에 있어 보였다.
 
  ‘아는 것이 힘이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실천하는 것이 대단하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것이 있다. 무언가 처음 배우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소득을 올릴 때 쓰는 말인데, 꼭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나는 상사의 사례를 보고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별반 기대하지 않았다. 오프라인의 일반 대학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과 원활한 학사운영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과연 사이버대학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3월이 되었다. 학기가 열려 나는 신입생으로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배움의 끈을 놓은 지 시간이 제법 흘렀기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간절한 마음을 품고 교수님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한데 모았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면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에 최선을 다해 결국 좋은 성적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움을 이어나가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의 것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고등학생 때 영어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또 들리는 것이니 어휘와 문장을 열심히 암기해야 한다.”
 
  그 말은 꼭 맞았다. 그 후에는 배운 것들을 갈고 닦아 본질과 원리를 깨달아 능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업무에 접목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업무에 대한 기획 절차부터 집행과 성과 집계에 이르기까지 내가 배운 것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배우지 않았어도 배운 것을 토대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기에 모르는 것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여 척척 진행해나갔다. 결국 이어진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예상을 웃돌았다. 더불어 기획 및 분석력, 그리고 통찰력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음을 나는 물론 세상이 알아주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명문대학이 아니라면 혹은 대단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고등교육은 받으면 받을수록 개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되도록 마쳐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반드시 오프라인의 일반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 실력 있는 교수진들을 보유하고 있어 내가 원하는 양질의 강의를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수강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단언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배움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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