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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화제의 右派서적

《노예의 길》 |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집단주의는 자유가 아니라 노예로 가는 길

글 :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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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모두 개인의 자유 파괴하는 전체주의
⊙ 사회주의자들, ‘恣意的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필요로부터의 자유’로 변조… ‘富의 동등한 분배’라는 오래된 요구의 다른 이름일 뿐
⊙ 임금 보장이 초래하는 위험, 反도덕적 인물들이 계획경제 체제 아래서 출세하는 이유 등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 지적

金二石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뉴욕대 경제학 박사 / 한국경제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국회예산정책처 등에서 연구. 現 《아시아투데이》 논설심의실장 / 저서 《번영은 자유주의로부터》 《자유주의사상가 12인의 위대한 생각》(공저) 역서 《노예의 길》 《인간·경제·국가》(공역)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1899~1992)가 1944년 3월 10일 영국에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처음으로 출판한 지 75년이 지났다. 이 책의 역자(譯者)로서 이 책에서 드러난 하이에크의 생각을 꿰뚫는 칼럼과 유튜브 등이 등장하고, 독자들의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공개적으로 ‘큰 정부’ 추구를 천명하고, 재정적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서 우리 안에 잠재된 ‘전체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데 대한 반작용 때문인 것 같아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더 많은 독자가 《노예의 길》을 읽은 전 세계의 많은 독자처럼, 하이에크의 경고에서 큰 감동을 받고 전체주의 계획경제가 ‘자유의 길’이 아니라 ‘노예의 길’임을 확실하게 깨닫는다면, 우리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선택할 자유》의 저자로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자유주의 신봉자를 만나면 어떻게 집단주의의 홍수 속에서 그런 신념을 지켜왔는지 물어보곤 했다. 가장 많은 대답이 “《노예의 길》을 접하면서였다”는 것이었다. 하이에크는 그만큼 탁월하게 사회주의 계획경제, 혹은 집단주의 체제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지 이 책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회주의 계산 논쟁
 
하이에크는 히틀러의 나치즘, 스탈린의 공산주의 모두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는 점에서 공통되는 전체주의라고 비판한다.
  하이에크는 무수한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스승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함께 자유시장경제를 누구보다 강력하게 옹호했던 오스트리아학파의 대변자였다. 미제스는 “토지와 자본재 등의 사유재산권을 철폐시킨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 당연히 그런 자산에 대한 거래가 사라질 것이고, 따라서 그 가격도 형성될 수 없으며 합리적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주장, 1920년대 경제학계에 ‘사회주의 계산논쟁’을 일으켰다. 하이에크도 이 논쟁에도 참여했다.
 
  이 논쟁에서 하이에크는 각 개인에게 흩어져 있는 ‘특정 시간과 공간상의’ 지식(정보)들을 계획 당국이 적시(適時)에 취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후일 이런 주장을 발전시켜 각 개인에게 흩어져 있는 정보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시장과 경쟁과정을, 소비자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더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방법을 발견해나가는 ‘발견과정’이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가격이 존재하는 시장이 인지적(認知的) 한계를 지닌 인간들이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일종의 의사소통 장치라고 갈파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을 졸업한 하이에크가 영국에서 《노예의 길》을 집필하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하이에크는 미제스가 이론적 틀을 만든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론을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영국 런던정경대학(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로빈스 교수가 케임브리지대학 케인스의 논쟁 적수(敵手)로 하이에크를 LSE에 초빙했다. 1931년 영국으로 건너간 하이에크는 놀랍게도 독일에서 나치즘을 낳은 사상적 흐름이 영국에서도 재현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에 대해 경종(警鐘)을 울리기 위해 1940년 이 책의 집필에 착수했다.
 
  하이에크는 런던정경대학에 와서 “케인스의 화폐이론에 자본이론이 없다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케인스의 적자(赤字)재정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그는 케인스의 적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라흐만을 제외한 힉스·칼도어 등 차세대 경제학도들이 대거 케인스에게 몰려가면서 하이에크는 쓸쓸하게 미국 시카고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경제학과가 아니어서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사회철학 연구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하이에크는 1974년 케인스와 대비되는 화폐이론과 경기변동이론을 펼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출현하자 케인스의 처방을 쓰기가 곤란해졌다. 가속페달을 밟자니 인플레이션이 걱정이고 정지페달을 밟자니 실업으로 대변되는 경기침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이에크의 주장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소식을 알리는 아들에게 하이에크는 “거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장의 경쟁 과정에 대한 연구와 사회주의 계산논쟁에 참여하면서 미제스와 더불어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를 예견한 그였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이론의 ‘진위(眞僞)’보다는 ‘세(勢)’에 밀려 좌절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간 하이에크가 75세가 되어 케인스와 대적한 바로 그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 하이에크는 노령에도 저술활동에 매진했다.
 
 
  계획경제는 자유를 파괴한다
 
  이 책은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서적이지만, 앞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시장경제와 경기변동에 대한 하이에크의 이론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차분히 정독(精讀)해나간다면 자유와 법의 지배, 민주주의 등에 대해 많은 통찰을 얻을 것이다.
 
  흔히 나치를 극우(極右), 공산당을 극좌(極左)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서구(西歐)문명의 기초를 이룬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반하는 전체주의 계획경제를 통해 그들의 이상(理想)을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 계획경제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독재로 귀결되며, 비슷한 유형의 경제적 파탄에 이르게 한다고 경고한다.
 
  시장이란 한편으로는 경쟁 과정을 통해 서로의 지식을 활용하는 시스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진 개인들이 평화롭게 상호작용을 하는 시스템이다. 현대문명은 바로 이런 개인주의의 기초 위에 이루어졌다(1장).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은 ‘자의적(恣意的)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원래 의미의 자유를 변조(變造)해서 ‘필요로부터의 자유’로 포장했다. 그러나 이는 부(富)의 동등한 분배라는 오래된 요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사회주의와 자유는 결합될 수 없지만 여전히 상당수 영국인은 그렇게 믿고 있다(2장).
 
  사회주의는 때로는 더 큰 평등이라는 이상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그런 이상의 달성을 위한 수단, 즉 사기업제도와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기업가 대신 중앙계획 당국이 ‘계획경제’를 실천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중앙계획 당국이 사회주의의 이상 이외에도 여타 집단주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중앙계획 당국의 집단주의적 계획의 추진이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3장).
 
  흔히 문명의 복잡성 증대와 기술적 이유 등으로 중앙계획 당국의 계획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4장). 사회주의와 같은 집단주의 계획은 경제 전체를 하나의 조직처럼 만들고, 그런 계획의 실행을 위한 강력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탄생시킨다. 개인들은 그런 계획의 확실한 실행을 위한 도구로 추락한다. 그래서 집단주의적 중앙계획은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와는 화해할 수 없다(5장). 중앙계획 아래 개인들은 언제든 자의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하므로 국가 권력을 제한함으로써 개인들을 그런 자의적 명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법의 지배’의 이상과도 화해할 수 없다(6장).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에 경종
 
  생산에 대한 통제가 소비에 대한 통제이며, 이는 결국 각자가 꾸릴 삶에 대한 통제다(7장). 사회적 지위나 임금의 보장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9장), 왜 통상적인 도덕에 배치되는 일들을 거침없이 해내는 사람들이 이런 계획경제에서 출세하는지(10장), 중앙계획의 쉬운 실행을 위해 당국이 계획의 기초가 되는 사실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강요하는지(11장) 등을 《노예의 길》은 설명하면서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13장)에 경종을 울린다.
 
  “명령과 금지가 가격 체계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하이에크의 말을 유념하면서 《노예의 길》을 읽은 독자라면, 현 정부 들어와서 취해진 비정규직 제로 정책, 탈원전(脫原電),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週) 52시간 근무제 등 다양한 명령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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