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中·日의 反帝운동

1918년 1월 1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30여 개국의 전후(戰後) 처리와 신(新)국제질서 구상을 담은 ‘14개조 원칙’을 발표했다. 처음으로 세계 정치무대의 중심에 선 미국의 윌슨은 유럽이 전통적으로 신봉해온 ‘강제로 균형을 이루는 현실정치(Realpolitik)’를 혼란의 원인으로 보고 14개조 원칙을 제안했다.

다소 이상주의적인 14개조 원칙의 핵심은 피(被)식민지인들을 평등하게 대하자는 것과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였다. 그러나 ‘민족자결의 원칙’은 패전국(敗戰國)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의 속내를 몰랐던 피식민지 지역민은 민족자결주의가 독립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고 꿈에 부풀었다.

파리강화회의

이듬해인 1919년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다. 중국 북양(北洋) 정부의 외교총장 루정샹(陸徵祥)은 1월 12일 프랑스에 도착해 중국대표단을 인솔하고 강화회의에 참가했다. 중국 대표단의 핵심인물은 열흘 걸려 대서양을 건너면서 담판 계획을 세운 주미공사 구웨이쥔(顧維鈞)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단연 일본이 1914년에 독일 조차지(租借地)인 산둥성(山東省) 자오저우만(膠州灣)을 탈취한 뒤, 1915년 ‘21개조 요구’에 포함해 정식으로 관철시킨 권익을 반환받는 것이었다. 이 밖에 중국에서의 영사재판권 취소, 조계(租界)와 조차지 반환, 외국 군대 철수 등도 요구사항이었다.

일본 측 단장은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실무책임자는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 남작이었다. 중국은 산둥에서의 독일 권익을 폐기하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마키노 남작도 산둥 문제에 대해 낙관했다. 일본이 산둥에서의 독일 권익을 계승하는 데 지지하도록 영국과 이미 뒷거래했기 때문이다.

마키노의 주요 임무는 일본이 제출한 인종차별철폐 제안을 국제연맹이 통과시키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캐나다가 일본인의 이민을 제한해온 터라 일본은 구미(歐美) 식민제국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데 불만이 있었다.

1월 27일과 28일 중국 대표 구웨이쥔은 산둥에서의 독일 이권을 반환해 달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국제연맹의 분위기는 낙관적으로 보였다. 이어 2월 13일에는 마키노 노부아키가 인종차별철폐안을 제출했다. 이해관계가 상충된 이슈들은 진통을 겪었다. 4월 11일 국제연맹은 일본의 인종차별철폐안을 표결에 부쳐 17개국 가운데 11개국이 찬성했다. 하지만 영국이 반대했고, 윌슨도 중요 사안은 회원국 간 의견이 일치돼야 한다면서 부결시켰다. 그러나 이로부터 11일 지난 4월 22일 일본은 산둥 문제를 손쉽게 관철시켰다. 이미 영국의 내락을 받은 일본은 반대하면 연맹을 탈퇴한다고 윌슨을 위협해 찬성을 받아냈다. 인종차별철폐안 대신 중국 산둥에서의 독일 권익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신문화운동 매체들, 3·1운동에 관심

1919년 파리강화회의는 동아시아를 움직였다.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잔뜩 고무됐다. 이런 분위기는 이듬해까지 지속됐다. 파리강화회의의 결과와 일본의 침략에 분개하고 있던 중국에서는 학생과 지식인들 중심으로 거족적(擧族的) 반일(反日)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언론들은 이를 신속하게 보도했다. 특히 구어체(口語體) 문장인 백화문(白話文)을 사용하자는 신문화운동 사조에 따라 활발하게 보급된 《매주평론(每週評論)》《신보(晨報)》《민국일보(民國日報)》《시사신보(時事新報)》《동방잡지(東方雜志)》《신청년(新靑年)》《신조(新潮)》 등이 3·1운동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다.

이 신문들은 1919년 3월부터 6월까지 일어난 조선의 상황에 주목했다. “일본이 조선을 병탄한 뒤 실시한 무단(武斷)통치의 다음 목표는 중국”이라면서 “파리강화회의는 눈속임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조선인들이 파리강화회의와 약소민족을 지지한다는 14개조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윌슨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졌었다”고 평가했다.

《매주평론》은 3월23일자에서 “조선의 3·1운동은 민의의 소산으로 비폭력적으로 학생들과 일반 백성들이 대열을 맞춰 시위를 했으며 개인적인 행동을 피하고 전국 도처에서 동맹휴업과 철시(抗日)를 단행했다”고 전했다. 또 “3·1운동이 서울의 학생휴업과 만세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처럼 5·4운동도 베이징의 학생이 선도적인 역할을 맡아 상공계로 그 기세를 전파해 전국의 휴업과 철시를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3·1운동이 독립선언서라는 항일 격문을 발표해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듯이 5·4운동도 강연·전단·통신 등 각종 방법으로 ‘주권을 되찾고 매국노를 응징하자’는 주장을 여론에 호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선독립운동은 위대, 간절, 비장”(천두슈)

중국공산당을 창설한 천두슈.

실제로 5·4운동 선언문을 기초한 쉬더옌(許德衍)도 선언문을 통해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조선인들을 언급하면서 “대저 국가존망의 위기에 토지(영토)가 잘려나가는 등 문제가 심각한데, 백성이 주저해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면 20세기에 천한 종자로 인류라 할 수 없다”며 격렬하게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중국 공산주의운동의 선구자 천두슈(陳獨秀)는 3·1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번 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간절하며, 비장하다. 이를 접한 중국인들은 3·1운동을 찬미(讚美)하는 동시에 애상(哀傷), 흥분, 희망, 참괴(慚愧·부끄러움)를 느낀다. 영광스러운 조선민족운동을 보면 우리 중국 민족이 희미하다는 것은 치욕이다. 공화정(共和政)이 실시된 지 이미 8년인데, 일반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활동은 없었다. 이번 조선의 활동을 보라. 무기가 없다고 반항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주인의 자격을 포기하고 제3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선인과 비교하면 천지에 진정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신조》 주간인 역사학자 푸쓰녠(傅斯年)도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자각이 있는 자들도 심기가 박약해 입으로는 아나키즘을 외치면서 손에는 금반지를 끼고 있다. 필설로는 인격·독립을 쓰면서 스스로는 권세와 유착하는 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조선은 내일의 중국”

1919년 당시 일본 유학 중이던 문호 궈모뤄(郭沫若)도 조선인의 3·1운동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망국(亡國)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 《목양애화(牧羊哀話)》를 1918년 완성해 다음 해 잡지 《신중국(新中國)》에 발표했다. 《목양애화》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동경해 조선을 찾은 중국 청년의 시선으로 그렸다. 조선 말기 한일합방을 체결하려는 간신들에게 저항해 조정에 상소문을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낙담해 시골에 은거하는 충신과, 기구한 운명으로 양 떼를 키우게 되는 그의 딸 이야기다. 이 작품은 궈모뤄가 1914년 일본 유학길에 오를 때 며칠 경유한 조선의 인상을 토대로 저술한 것이다.

3·1독립만세운동은 리다자오(李大釗)·천두슈·푸쓰녠 등 당대 진보 지식인들을 크게 자극했다. 이들은 《신청년》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인을 보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서 “조선의 비극은 일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오늘날 조선의 상황은 중국이 맞이할 내일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또 “조선인의 봉기에서 분발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지식인들은 3·1독립만세운동처럼 5·4운동도 비폭력 노선이 되기를 희망했다. 기본적으로는 비폭력이지만 예외도 있었다. 성난 학생시위대가 파리강화회의 결과에 분노해 협상대표단 일원인 차오루린(曹汝霖)의 사저 자오자러우(趙家樓)에 몰려가 불을 지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판

조선에 동정적이었던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

초기에 일본은 3·1운동을 소수의 종교 지도자와 배후의 외국 선교사의 선동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간주했지만, 4월부터는 무단통치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그때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 Democracy)’ 시절(1911~1925)이었다. 정당정치 체제 확립과 국가 통제로부터 자본의 자립, 학술 방면에서의 대학 자치 등 일련의 민주주의적·자유주의적 바람이 불던 시기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지만 대내적으로는 잠시나마 민주주의의 여지가 있었다.

조선·타이완·오키나와의 미술품 가치를 높게 평가한 민간예술의 주창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역시 3·1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19년 5월 20일부터 24일자 《요미우리신문》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번 사건(3·1운동)에 대해 적잖게 신경이 쓰였다. 특히 일본의 식자층이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을 말하는지 주의 깊게 보았다. 하지만 조선에 대해 경험 있는 지식인들의 사상은 거의 아무런 지혜도, 깊이도, 온정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조선인을 위해 자주 눈물을 흘렸다. 특히 타인(조선인)의 마음과 접촉하는 미묘한 계기에 관련해 지식보다는 정(情)이야말로 깊이 이해하는 길이다. 이웃 사람과의 사귐은 단지 사랑으로 맺을 수 있다. 누가 군정(軍政)이나 압박이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다고 생각할까.”

도쿄제국대(東京帝大) 정치학 교수로서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아버지’로 불리던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는 조선과 중국에 동정적이었다. 기독교도인 그는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장자 위안커딩(袁克定)의 스승이기도 했다. 요시노는 조선·중국의 유학생과 접촉하면서 3·1운동과 5·4운동을 관찰하고 일본의 침략정책을 비판했다.

“3·1운동은 식민지정책 실패 때문”(요시노 사쿠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아버지 요시노 사쿠조.

요시노 사쿠조는 3·1운동 직후, 1919년 4월호 《중앙공론(中央公論)》에 〈대외적 양심의 발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3·1운동은 일본 식민지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면서 “일본은 진실하게 이를 수용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요시노는 “제3국의 선동으로 3·1운동이 일어났고, 일본이 지금까지 베푼 은혜에도 조선인이 기뻐하지 않는 것은 불손하다”면서 ‘조선인의 배일(排日)운동’을 비판하는 일본 내 주류 지식인들의 태도에 대해 “대외적 양심이 현저하게 마비됐다”고 비판했다.

요시노 사쿠조는 6월 5일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주창하는 단체 레이메이카이(黎明會)에서 ‘조선통치의 개혁에 관한 최소한의 요구’라는 강연을 통해 네 가지를 제안했다. 이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 폐지 ▲무인(武人)정치(구체적으로는 헌병정치) 폐지 ▲동화정책 포기 ▲언론자유 부여 등이다.

요시노는 3·1운동 이전부터 일찌감치 “조선을 식민지로 보유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는 《중앙공론》 1916년 6월호에 발표한 기고문 ‘만한(滿韓)을 시찰하고’를 통해 헌병정치를 비난했다. 그는 “일본 문명의 선도자로 독립 문명을 가진 조선 민족이 선정(善政)으로도 만족할 리 없으며, 세계의 대세로 봐서 동화(同和)는 불가능하다”고 언명했다. 또 3·1운동 6개월 전에는 “조선 문제는 가까운 장래에 일본 국내 정치에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해 독립운동을 사실상 예견했다.

1919년 8월이 되자 일본은 무관(武官)총독제 대신 문무관병용(文武官倂用)총독제 도입을 선언했다(실제로 문관총독은 한 사람도 임명되지 않았음). 신임 조선총독이 된 해군대장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새로운 통치방침으로 문화통치를 내세웠다. 물론 문화통치라는 표피는 사용했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동화정책은 계속됐다.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조선인들에게는 ‘불령선인(不逞鮮人·불량한 조선인)’이란 낙인을 찍었다.

요시노 사쿠조는 문화통치하에서도 변하지 않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계속했다. 그는 “조선인에게 일본인이 요구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차별을 내포하는 동화주의”라고 인식했다. 요시노에 따르면, 이 같은 동화주의는 일본의 전통국방정책의 필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서는 쓰시마(對馬)의 안전이, 쓰시마 안전을 위해서는 (동화된) 조선이 필요하고, 조선의 안전을 위해서는 만주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국방선(國防線)을 확장하는 팽창주의를 경계했다.

小日本主義

‘小일본주의’를 주장한 이시바시 단잔.

요시노 사쿠조는 중국 5·4운동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쑨원(孫文)을 비롯한 중국의 혁명청년들과 교류하며 중국혁명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5·4운동을 중국인들의 친일파(親日派) 관료·군벌(軍閥)과 이를 지지하는 일본 세력에 대한 공격으로 보면서, 양 국민의 친선을 위해서는 일본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글을 《중앙공론》에 발표했다.

그는 《동방시론(東方時論)》에서는 5·4운동 때 중국 내 반일(反日) 경향과 관련해 “일본은 ‘평화적 일본’과 ‘침략적 일본’이란 양면성이 있는데, 중국이 배척하는 일본은 침략적 일본”이라는 논지를 펴기도 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 요시노 사쿠조처럼 일본의 제국주의를 경고한 사람들을 ‘소일본주의자(小日本主義者)’라고 한다. 요시노 외에 소일본주의자의 주요 인물로는 《동양경제신보》를 통해 제국주의를 비판해온 미우라 데쓰타로(三浦鐵太郞)와, 전후(戰後) 1956년 총리 자리에 올랐다가 건강 문제로 65일 만에 사임한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 있다. 미우라는 1912년 9월부터, 이시바시는 1924년부터 《동양경제신보》의 주간으로 활동했다.

미우라 데쓰타로는 ‘만주포기론’을 펼쳤다. 그는 “국방선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위험하다”면서 “일본이 만주를 독점하면 러시아·중국을 적으로 만들고, 대륙과 남방 진출은 열강과 대치하게 돼 일영(日英)동맹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했다. 또 “늘어난 국방선을 지키기 위한 군비 확장은 국민의 부담이 되며 고른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미우라는 “만주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조달하는 군사비가 3000만~4000만 엔에 달하는 데 반해 대(對)만주 교역액은 2000만 엔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재정이 무분별하게 팽창되기 때문에 조선을 영구적으로 점령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일본이 조선에서 손을 떼 러시아가 진출한다고 해도 조선의 국력이 충실하면 일본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시바시 단잔, 조선 자치 주장

소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주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마련인 경제계 인사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반면 국가주의자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는 1913년 《국민신문》에서 “일본 내 ‘제국주의 포기론’ 세력이 만연하고 있다”고 소일본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시바시 단잔은 조선의 자치를 인정하라고 했다. 그는 3·1운동 후인 1919년 5월 15일 《동양경제신보》에 기고한 ‘선인(鮮人)폭동에 대한 이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민족이라도 타민족의 속국(屬國)이 되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는 일은 고래(古來)로 없다. 영국에 대한 인도·이집트의 반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도 격화돼 왔다. 조선도 하나의 민족으로 오랫동안 독립의 역사가 있어 충심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조선인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조선인의 반항을 완화시키고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인을 자치민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1921년 7월 23일 《동양경제신보》의 기고문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에선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의 불개입을 주장했다. “일본의 화근은 소욕(小欲)에 얽매이는 것으로 조선·대만·중국·만주·시베리아·사할린의 토지와 재산을 탐내고 그것들을 지키느라 적극적으로 세계적인 것을 도모할 여유가 없다”면서 “조선·대만·사할린을 버릴 각오를 하고 중국·시베리아에 대한 간섭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제국주의의 종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은 줄곧 조선·만주 등으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식민지 획득과 지배 판도의 광대함으로 국세(國勢)를 과시한다는 인식을 유지했다. 조선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사조(思潮)에 힘입은 소일본주의자들에게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건전하게 비판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식민지 획득과 영토 확장에 따른 전선(前線)의 확대를 최소화해 내실을 기하자는 소일본주의는,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을 이룬 소독일주의(Kleindeutsche Lsung)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일본은 영국·프랑스처럼 제국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욕망을 결코 떨쳐버리지 못했다. 소일본주의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계속 식민지 영토 확장에 무리하게 나섰다. 일본은 조선과 대만을 포기하지 않은 채 1931년에 만주를, 1937년에 중국 본토를 침공했다. 1941년에는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한편 진주만을 기습해 미국과 전쟁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일본은 1945년 비참하게 패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