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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셰르파니콜~메라라 트레킹 〈3〉 셰르파니콜~메라라~포칼라

악전고투! 히말라야 內原 탈출기

글·사진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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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인들이 먹는 매운 샥파 먹고 난 후 高所症으로 고생… 급기야 포터들에게 업혀 이동
⊙ 훈쿠 빙하, 1951년 에드먼드 힐러리 등 영국 에베레스트 정찰대에 의해 외부인들에게 처음 알려져
⊙ 클라이밍 가이드 다와 셰르파, 이듬해 파키스탄 가셔브룸 한국 원정대에 참여했다가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 잃어
  웨스트콜(6143m)까지 당일에 주파하자는 아이디어를 물리치고 이스트콜에서 내려와 로-바룬체 빙하 만년설원(6000m)에 텐트를 쳤다. 안개가 벗겨지고, 커튼이 벗겨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세계 제5위 고봉(高峰) 마칼루가 이스트콜 너머로 솟구쳐오른다. ‘검은 귀신’이란 섬뜩한 이름을 지닌 마칼루는 이른 봄 깊은 눈을 헤치며 품 안을 찾아든 산객(山客)들을 쉬이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듯했다. 히말라야 첩첩산중에서 겨우내 외롭게 서 있던 터에 말벗 삼을 만한 길손이 다가와 반가웠는데 이렇게 횅하니 떠나는가 싶어서일까?
 
 
  샥파 한 그릇
 
  “포터들 먹는 게 뭐지? 우리보다 맛난 거 아냐?”
 
  텐트 안이 답답했는지 석상명이 식당 텐트로 건너간다. 우리는 오늘 아침밥을 먹고 나섰지만, 현지인들은 찌우라(쪄서 누른 쌀: 그냥 먹거나 분유 푼 물에 타서 먹음) 한 움큼에 차 한 잔씩 마신 게 오늘 먹은 전부이기에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쿡에게 저녁밥은 포터들 먼저 해주라고 말해놓은 터였다.
 
  석상명이 죽을 한 사발 가득 담아왔다. 샥파. 매운 고추를 섞은 커리 국에 밀가루를 엷게 푼 물을 붓고 펄펄 끓이다가 수제비와 으깬 라라(네팔식 라면), 밥을 넣어 국자로 휘휘 저어 만든 ‘꿀꿀이죽’ 같은 음식이다. 조리가 간편하고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데다 재료에 비해 양이 많이 불어나 배 불리기에 좋은 음식이다. 눈밭에 들어섰을 때는 포터들이 즐겨 해 먹는다고 한다.
 
  “이거 먹을 만한데, 우리도 오늘 저녁은 저걸로 때울까?”
 
  그 샥파 한 그릇이 철칙을 깨뜨리고 말았다. 고소(高所) 적응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데다 독특한 향신료에 민감한 필자는 해발 3500m 위로 올라서면 항상 먹는 것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왔다. 특히 평소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피해왔다. 그 철칙을 얼떨결에 무시하고 만 것이다. 그 대가는 이튿날부터 지독스런 고소증(高所症)으로 치러야 했다.
 
  텐트 칠 무렵부터 몇몇 포터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두통약을 달라고 한다. 등반 셰르파로서 우리를 안내하는 파상도 표정이 시원찮다.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날 때 보인 환한 얼굴은 사라지고 햇빛에 검게 그을리고 제대로 씻지 않아 얼굴뿐 아니라 옷도 엉망이다.
 
  이튿날 평소보다 늦은 오전 8시 캠프지를 떠났다. 몇몇 포터는 텐트 걷는 데도 몸이 더뎌 보인다. 몸이 무거워진 탓일 게다. 설원을 40분쯤 걷자 다와 셰르파가 설릉(雪陵)에 스노바를 박고 있다. 웨스트콜(West Col·6135m)은 완경사 설원(雪原)에서 뚝 떨어져 고개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갯마루이다. 그러나 패스 너머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골짜기가 감춰져 있었다. 훈쿠 빙하(Hunku Gl)였다.
 
 
  훈쿠 빙하
 
이스트콜과 웨스트콜 사이의 바룬체 빙하. 거대한 절벽을 로프 하강하고 이어 깊은 눈을 헤치며 캠프지를 향해 나아가다 지친 포터들이 눈밭에서 쉬고 있다. 이스트콜 너머로 세계 제5위 고봉 마칼루가 우뚝 솟아 있다.
  훈쿠 빙하는 바룬히말에서도 하나의 독립된 세계였다. 바룬체(Ba-runtse·7220m)~암푸랍차라(Amphu Laptsa La·5845m)~옴비가이찬(Ombigaichan·6340m)~훈쿠(Hunku·6119m) 산줄기에 둘러싸여 거대한 분지를 이룬 훈쿠 빙하는 원시성이 살아 있었다. 신비로우면서도 음침했다. 옴비가이찬 뒤에 솟아오른 아마다블람(Ama Dablam·6812m)은 쿰부히말 안쪽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산세가 빼어나지 않았다. 반면 훈쿠에서 말랑풀랑(Malangphulang·6573m)~캉테가(Kangtega·6685m)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침봉(針峰) 능선은 섬뜩함과 더불어 산악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지도에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던 ‘미지(未知)의 세계’ 훈쿠 빙하가 외지인에게 알려진 것은 1951년 영국 에베레스트 정찰대에 의해서였다. 1921년 첫 도전 이후 7차례나 티베트 쪽에서 에베레스트 등로(登路)를 찾던 영국 원정대는 1950년 네팔이 문호를 열자 새로운 등반로를 찾고자 네팔 쪽 쿰부히말로 파고들어 가능성을 찾았다. 당시 대장 에릭 십튼과 에드먼드 힐러리는 바룬체와 아마다블람을 연결하는 능선상의 한 고개인 암푸랍차라를 넘어 훈쿠 빙하(당시 Hongu Khola)의 훈쿠 빙하호(氷河湖) 옆에 캠프를 설치한 다음 웨스트콜을 넘는다. 그러나 식량 부족으로 더 이상의 정찰이 어려워진 이들은 다시 훈쿠 빙하로 내려선 다음 아마다블람 남쪽 밍보라(Mingbo La·5845m)를 넘어 쿰부히말로 돌아서야 했다.
 
  1952년 봄 가을 등반 허가를 스위스가 먼저 취득해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기회를 놓친 영국 원정대는 1951년 고소적응훈련과 고소장비 테스트를 위해 초오유(8201m)를 찾았고, 1952년 재탐사에 나선다. 그들은 똑같이 암푸랍차라를 넘어 훈쿠 빙하로 들어선 다음 웨스트콜과 이스트콜을 넘어 바룬 빙하의 발원지(發源地)인 페탕체(Pethangtse·6730m)의 한 고갯마루에서 에베레스트와 로체의 동쪽 면을 관찰하고, 바룬 계곡을 따르다 이제 ‘십튼패스’라 불리는 고개를 넘어 아룬 계곡으로 내려선다.
 
  마칼루 등반 초창기의 캐러밴 루트 또한 십튼의 탐사로와 같았다. 1961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이끄는 뉴질랜드 마칼루 원정대는 밍보라~웨스트콜~이스트콜을 넘어 베이스캠프에 들어섰다.
 
 
  마칼루와의 작별
 
  이제 마칼루와 헤어져야 할 시각이다. 마칼루는 당말 베이스캠프 도착 이후 잠시도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스트콜을 넘어서기 직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세계 제5위 고봉을 이렇게 마주 보는 순간이 언제 또 올까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내려선 다음 바룬체 빙하에 텐트를 칠 때도 그 거봉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이튿날 아침 해가 뜰 때는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는 듯했다. 텐트를 거두면서도 그 아름답고도 웅장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 속에 담고픈 마음에 수시로 눈길을 보냈다.
 
  웨스트콜에 올라섰으나 먼저 내려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가파른 탓인가? 다와가 로프를 몸에 묶어준다. 그런데 몸에 묶은 로프는 확보용이 아닌 하강용이었고, 그것도 위에서 풀어주어야 하강이 가능했다. 게다가 위에서는 눈처럼 느껴지던 절벽 사면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다와는 위에서 똑바로 서서 하강하라고 소리치지만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우뚱거리다 옆으로 쓰러지곤 했다.
 
  먼저 하강한 사람들이 개미만 하다. 저기까지 어찌 내려서나…. 팔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로프에 몸을 맡기자 로프가 허리를 파고든다. 숨이 막히고, 허리가 아프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빨랫줄처럼 느껴지는 8mm 로프…, 이미 여러 명이 매달려 내려갔기에 인장력(引張力)이 많이 약해져 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불안해졌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내려가는데 밑에서 방향을 옆으로 틀라 소리친다. 로프가 모자란 것이다. 200m 길이 로프 2동을 연결한 건데…. 확보용으로 50m를 썼다 치더라도 하강 길이가 350m는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안전지대까지 20여 m나 모자라다니…. 일행이 모여 있는 설사면(雪斜面) 아래쪽은 눈이 푹 꺼져 있다. 미끄러지는 날에는 분명 다시 햇빛을 볼 수 없는 크레바스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포터들이 손을 내밀며 잡아주지만 긴장이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역시 히말라야의 내원(內原)은 들어서기 쉽지 않은 곳이다. 3년 전 쿰부히말 쪽에서 암푸랍차라를 넘어 내원으로 들어서려던 계획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루클라에서 처음 만날 때 자신만만해하던 포터들 대부분은 암푸랍차라 베이스캠프 도착 전부터 고소증에 힘겨워했다. 이튿날 암푸랍차라 패스 트레킹을 포기하고 하산하던 중 고소증세로 심각한 상황에 이른 포터 한 명은 그 이튿날 새벽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로프가 뭐기에…
 
웨스트콜 고갯마루에서 하강 차례를 기다리는 스태프.
  안전지대로 내려서자 파상 셰르파가 자신이 깔고 있던 매트리스를 넘겨준다. 몸은 가라앉았지만 따스한 햇살이 너무나 좋았다. 모든 설봉(雪峰)이 반짝였다. 북쪽 바룬체는 장벽을 펼친 채 솟구쳐 있고, 남쪽 무명봉(無名峰)들도 설벽을 드리운 채 삐죽 솟아 있다. 훈쿠 빙하 건너편의 아마다블람, 옴비가이찬, 훈쿠, 그리고 말랑풀랑을 포함, 캉테가 위성봉(衛星峰)들은 순백의 아름다움과 창끝 같은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었다.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하강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사면을 다지고 대형 버너에 눈을 녹여 라라까지 끓여 먹었다. 포터들이 아직도 콜 위에 서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어제 오후 3시가 넘어서는 시각에 이스트콜을 내려선 셰르파가 곧바로 웨스트콜마저 넘자 했던 것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옷을 너무 가볍게 입은 탓인가 보다. 속도 쓰려왔다. 엊저녁 먹은 매운 샥파가 속을 훑기 시작했다. 짜증이 난다. 벌써 오후 3시가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기다렸다가는 여기서 야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조급해졌다. 파상을 앞세우고 하산을 서둘렀다. 크레바스를 피해 조심스럽게 눈길을 찾아 나섰다. 파상이 한참 나아갔다가 되돌아와 다른 쪽으로 길을 내는 것을 보면 크레바스가 엄청난가 보다.
 
  웨스트콜을 쳐다보니 타시 셰르파를 비롯한 포터 세 명이 클라이밍다운하고 있다. 로프를 나누어 가질 욕심에 300m가 넘는 절벽에서 곡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젠도 차지 않은 상태에서 한 발 한 발 내려서는 이들을 보니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맨 위에서 내려오는 타시는 셰르파니콜을 다섯 번이나 넘어보았다고는 하지만 너무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이들 세 사람은 1시간쯤 지나 모두 무사히 내려섰다.
 
 
  포터들에게 업혀
 
  “배낭 이리 줘, 내가 멜게….”
 
  설사면이 끝나고 가파른 너덜 능선에 들어설 즈음 석상명이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 내 다리가 풀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포터들과 한참 벌어졌다. 맨 뒤에 내려온 타시 셰르파가 다가오더니 배낭을 대신 메준다. 그런데도 한 발 한 발이 천근만근, 100m 걷곤 돌밭에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난감해졌다. 오늘 캠프까지 내려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내일 그리고 모레는 해발 4500m로 내려섰다가 다시 해발 5415m 높이의 메라라(Mera La)를 넘어야 하고, 이어 해발 3600m까지 내려갔다 다시 4600m대 높이 자트르와라(Zatrwa La·4610m)를 넘어야 한다. 그래야만 카트만두행 경비행기를 탈 수 있는 루클라(Lukla·2840m)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판치포카리(Panch Pokhari·빙하호가 5개 모여 있는 곳) 부근 너덜지대에 내려서자 이미 텐트가 다 설치돼 있다. 한데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모두 근심 가득해 보였다. 쑥스러운지, 아니면 내 자존심을 생각해 주는 건지 눈이 마주치는 스태프마다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깨어 있는 상태로 하룻밤을 넘겼다. ‘히말라야의 깊은 골짜기에서 내가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밤새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태가 더욱 심각해지면 어떡하나, 이러다가 아예 정신 못 차리면 어떡하나 하는 근심 걱정에 자는 둥 마는 둥 지냈다.
 
  엊저녁에도 먹은 게 없는데 아침에도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숭늉 몇 모금 마신 게 끝이다. 이제 일행뿐 아니라 포터들도 내가 신경 쓰이는지 웃지도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겨우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타시와 사누 셰르파가 내 뒷바라지를 위해 그들 짐을 다른 포터들에게 넘기고 따라붙었다.
 
  배낭을 포터에게 넘겨 맨몸인데도 몇십 m 걷고 나서는 풀썩풀썩 주저앉는다. 타시와 사누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업어 나른다. 목구멍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맴돌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한다. 설봉은 이런 나의 모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빛나고 있다.
 
  계획상 이날 캠프지인 콩메딩마(Kongme Dingma·‘콩메’라는 새의 터전)에 3시간 못 미친 라토워다르(Rato Wodar·‘붉은색 오버행 바위’)에서 야영하기로 했는데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쉴 때마다 포터들에게 “저게 무슨 봉이냐?” “무슨 포카리냐?” 묻고, 그때마다 대답이 돌아오건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언덕 너머 포카리 옆에 텐트가 보인다. 라토워다르 최하단 캠프지다. 오버행 바위 아래 돌담을 쌓아 만들어놓은 캠프터가 곳곳에 보인다. 군데군데 풀이 자라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등 모처럼 맞이하는 평화로운 풍광이다. 어제와 그제 겪은 만년설산의 험난함은 사라지고 평온함만 곁에 있을 따름이다. 히말라야는 참으로 묘한 곳이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이렇듯 아름다운 터전을 감춰놓았으니…. 이런 평화로움을 즐기기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이튿날 아침(4월 2일), 툼링타르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지 15일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바룬히말의 내원을 벗어나는 날이다. 내원은 들어서기도 쉽지 않지만 벗어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이제 해발 5415m 높이의 고개인 메라라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타시가 다가오더니 먼저 출발하자고 한다. 잠에서 깨어날 때는 컨디션이 돌아왔나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몇 발짝 떼자 다리가 풀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포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4시간쯤 걸었을까, 포터들이 오버행 바위 아래 설치된 텐트에 모여 현지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밍보라 부근의 미등봉(未登峰)을 등반하는 대규모 영국팀 사다(셰르파 우두머리)였다. 47명에 이른다는 영국팀은 10명씩 다섯 조로 나뉘어 서로 다른 코스로 밍보라 베이스캠프까지 진입한 다음 조별로 등반할 계획이라고 했다.
 
 
  메라라로 가는 길
 
웨스트콜에서 훈쿠포카리로 내려서다가 크레바스를 넘기 전 기념촬영을 했다. 날카롭게 치솟은 설봉과 설릉 위로 설연이 휘날리고 있다.
  사다를 통해 전해진 종이쪽지에는 실망스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메라라에서 만나 함께 메라피크(6476m)를 등반하기로 약속한 셰르파들이 내일 루클라로 온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이후 메라라까지 오려면 적어도 닷새는 걸리기에 일정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나야 어차피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컨디션 좋은 석상명과 장경관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셰르파들이 트레킹피크 등반허가서를 가져오기로 돼 있기에 오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팀 사다가 텐트를 설치해 놓은 곳은 콩메딩마였다. 오리만 한 새인 ‘콩메’가 많이 산다는 이 초원지대는 여름철이면 풀이 허리께까지 올라온다. 그러면 루클라나 훈쿠 계곡 일원의 주민들이 양이나 염소떼를 몰고 올라와 늦가을까지 방목하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트레킹 코스이지만, 주민들과 가축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인 셈이었다.
 
  왕추 셰르파가 메라피크와 메라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구름이 오락가락할 때면 잠시 정상부를 드러내곤 하는 메라피크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형상의 산이다. 메라라는 콩메딩마에서 2시간이면 오른다고 하지만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
 
  정오경 모레인 언덕 위에 올라 앞서가는 포터들을 바라보니 그들 역시 깊은 눈을 헤치느라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급사면이 나타나면 타시가 내 몸에 묶인 로프를 당겨주고 사누는 밀어주곤 한다. 하강용 로프가 나를 끌어당기는 데 쓰일 줄이야….
 
  50발짝에서 30발짝, 30발짝에서 10발짝… 한 번에 걷는 거리가 점점 짧아졌다. 오후 3시경 고갯마루다 싶은 곳에 올라섰으나 앞으로도 2시간은 더 가야 한다고 한다. 구름이 짙게 끼어 시계(視界)도 불량하다. 분명 메라라에 다가서고 있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지가 점점 약해졌다.
 
 
  드디어 탈출!
 
카레에서 딕카르카로 이어지는 급사면 구간. 뒤쪽으로 메라피크가 거칠게 솟아 있다.
  돌길 따라 급사면을 올라서자 왼쪽으로 캠프지가 보인다. 메라피크 베이스캠프였다. 포터들 말대로라면 20분이면 패스다. 30분쯤 갔을까, 흐느적거릴 정도로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시커먼 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고개가 아니라 거대한 댐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넘어설 자신이 없다. 고개를 푹 떨어뜨리는 순간 포터들이 내 겨드랑이에 어깨를 끼워 넣더니 그대로 올려친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걷는, 인형극 속의 인형이 된 기분이다.
 
  메라라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석상명·장경관·왕추가 반긴다. 내원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기쁘기도 하나, 카레(Khare·4900m)로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오후 5시,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 남았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 10m 앞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깊은 눈이 앞을 가로막았다.
 
  카레로 내려가는 길은 능선을 곧바로 넘지 않고 등날을 따르다 급경사 사면을 따른다. 거대하면서도 험악한 분위기의 크레바스가 바로 옆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히든크레바스도 수시로 나타나 긴장케 했다. 앞에서 눈길을 뚫던 사누가 히든크레바스 앞에서 겁을 먹고 주춤거리자 타시가 쏜살같이 내려간다. 저렇게 배짱이 두둑하니 웨스트콜에서도 클라이밍다운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저러다 눈구멍으로 쑥 들어가면 어떡하나 싶어졌다.
 
  메라라를 내려선 지 40분쯤 지나자 고도가 뚝 떨어지고 간간이 구름이 걷히면서 카레가 내려다보였다. 묘한 분위기였다. 어둠 속에서도 흰 눈과 흙사면이 뒤섞여 우중충한 곳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카레만 내려서면 내원 탈출 성공’이라는 생각에 희망에 넘치는 꿈같은 곳이었다. 여러 해 동안 방문을 염원해 오던 히말라야의 속살이었건만 이렇게 탈출에 급급해하다니….
 
  카레의 무너질 듯한 로지 앞마당에 내려서서 “고생 많았다”는 일행의 인사를 받는 순간 갑자기 울컥해졌다. 로지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인 맥주병이었다. 주인장한테 한 병 주문했다. 석상명과 장경관 두 사람은 눈이 둥그레지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좀 전 빙하를 내려설 때까지만 해도 ‘무사히 카레에 내려설 수 있을까’ 걱정스럽게 하던 친구가 로지에 들어서자마자 술부터 찾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맥주 한 잔 들이켜는 순간 배 속뿐만 아니라 안개 속에 갇힌 듯 꽉 막혔던 머릿속도 터졌다. 드디어 깊디깊은 히말라야의 내원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탈출 성공 기념 파티
 
모솜카르카의 한 로지. 바룬히말 내원 탈출 기념파티를 열기 위해 현지 스태프와 함께 로지 앞마당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이튿날 저녁 전나무 숲이 우거진 모솜카르카(Mosom Kharka·3690m)에서 ‘탈출 성공 기념 파티’가 열렸다. 가장 나이 많이 든 포터(그래봤자 당시 필자 나이 정도)는 짐 지는 데는 시원찮았지만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독수리가 날개를 편 듯한 자세로 덩실대는 네팔 전통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다른 포터들도 깡통을 두드리고 피리를 불고, 그러다 뛰어나가 함께 덩실대고. 그야말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즐거웠다. 언제 고소증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나 새카맣게 잊어먹었다.
 
  트레킹 일정상 마지막 고개인 자트르와라를 넘을 때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쿰부히말의 명봉은 물론 세계 제8위 고봉 초오유(8201m)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감격스러웠다. 그 감흥에 카트만두행 경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루클라(2800m) 마을의 로지에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또 한 번 파티를 열었다. 마칼루 셰르파니콜~메라라~자트르와라 트레킹은 그렇게 연이어 파티를 열 만큼 감동을 준 트레킹이었다.
 
  2007년 《조선일보》-한국산악회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동행 취재에 나섰을 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400m)에서 낯익은 셰르파들이 눈에 띄었다. 막강한 체력을 보여주던 사누 셰르파는 포터에서 클라이밍 셰르파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열 손가락 장애인 김홍빈의 클라이밍 파트너로 여러 해 동안 활동했고, 2018년 가을 김미곤의 8000m 14좌 완등 고봉 낭가파르밧(8125m) 원정에 참가해 함께 정상에 올라섰다.
 
  이스트콜을 로프를 거둬내며 거대한 절벽을 클라이밍다운한 타시 셰르파는 트레킹을 마치기 전날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 사고를 당한 친형의 부음(訃音)을 듣고 펑펑 울며 헤어졌다. 그 역시 포터에서 클라이밍 셰르파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는 라마승 출신답게 한국도로공사 원정대의 라마제를 주재했다. 타시는 이후에도 클라이밍 셰르파로 여러 해 활동하다가 함께 등반한 미국 클라이머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영주권을 취득,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클라이밍 가이드인 다와 셰르파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다. 필자는 쾌활하고 동료들을 위하는 포용력에 감탄, 그에게 일거리를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2005년 여름 원정에 나선 파키스탄 가셔브룸 한국 원정대에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그 등반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눈밭에 친 텐트 안에서 포터들과 카드놀이를 하며 돈을 딸 때면 활짝 웃고, 돈 잃고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는 포터들에게 돈을 돌려줄 때면 의기양양해 하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이젠 위험한 데는 가지 말라”
 
자트르와라~루클라 사이의 슈탕가 로지 앞마당. 쿰부히말의 설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이다.
  가이드이자 쿡으로 활동했던 왕추 셰르파는 이후에도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2018년 10월 중순 김창호 대장의 구르자히말 원정대 사고 때에는 수습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연말 네팔 여행객들을 인솔해 한국을 찾은 왕추는 혈색도 좋았다. 왕추에게 헤어질 때 “이젠 위험한 데는 가지 말라”고 했다. 오래오래 보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2003년 봄 함께 패스를 넘고 눈밭을 가로지르며 히말라야의 내원을 걷던 그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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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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