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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셰르파니콜~메라라 트레킹 〈2〉 양레카르카~마칼루 BC~셰르파니콜

히말라야의 속살을 보다

글·사진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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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보라 헤치며 등반길 따라온 현지인 부부, 고작 럭시(네팔식 증류주) 5병 팔고 1만8000원 벌어
⊙ ‘이 미련한 짓을 왜 이렇게 반복하나’ 싶다가도 하얀 화선지 위에 우뚝한 雪峰들 보며 감동
⊙ 싸구려 외줄 로프에 의존해 150m 이스트콜 절벽 내려와
바룬체 하이 베이스캠프를 향해 너덜지대를 오르는 트레킹단. 해발 8486m 높이의 세계 제5위 고봉 마칼루가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치솟아 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난 포터들 얼굴이 모두 새카맣다. 어제와 그제 눈밭을 걸으며 강한 햇볕에 그을린 데다 대피소 안에서 밤새 피운 모닥불 연기를 뒤집어쓴 탓이다. 타시가온까지만 해도 뽀얗고 앳된 얼굴빛을 띠던 막내 포터도 형편없이 변해 버렸다. 그래도 눈빛은 밝다. 내 모습은 어떨까.
 
  오늘은 도바테에서 700m 아래 바룬강가로 내려섰다가 양레카르카(3500m)로 오른다. 급경사 설사면을 거쳐 원시림 울창한 협곡을 따라 바룬강으로 내려섰다. 바룬강 상류는 분위기가 묘했다. 초록빛을 띤 좁은 골짜기에는 부연 빙하수가 거칠고 빠른 속도로 흘러내리고, 골짜기 양옆은 6000m급 봉우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간이 함부로 들어서서는 안 될 것처럼 성스런 분위기였다.
 
다와 셰르파가 바룬강가에서 노니는 물오리를 잡아 움켜잡고 있다. 다와는 사진 찍을 기회를 준 뒤 오리를 놓아주었다. 셰르파 사회에서 산중 살생은 금기시되고 있다.
  사태 지역을 피하기 위해 물줄기를 건너 오른쪽 사면을 거슬러 오르다 잠시 쉬고 있는데 포터들이 타시가온 주민 다와를 향해 우르르 몰려간다. 다와는 새 한 마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살진 오리다. 손으로 꼭 잡고 있지만, 틈을 조금만 주면 날개를 퍼드득거린다. 다와는 잠시 사진 찍을 틈을 준 다음 오리를 놓아준다. 살생은 물론 조금이라도 부정한 일은 멀리하는 게 고산(高山) 셰르파족들의 풍습이다.
 
  바룬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사이 한동안 피크7(6185m)이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송곳처럼 뾰족하지만, 양레카르카에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품이 넓은 봉이다. 그런 모습 때문에 주민들은 피크7을 ‘산모(産母)처럼 넉넉하다’는 의미의 아마푸줌(Ama=어머니, puzum=태아)이라 부른다.
 
  양레카르카에 도착하자 포터들은 움막 한쪽에 짐을 부려놓고 뒤편의 숲에서 나무를 주워와 서둘러 모닥불을 피운다. 그러곤 눈밭에서 이틀 반 동안 지내면서 젖은 신발과 양말, 바지를 말린다. 양레카르카는 비록 움막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고 지붕이 있는 마지막 집이다. 이제 내일부터 메라라를 넘어 루크라로 내려설 때까지 열흘 가까이 텐트 생활을 해야 한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평상도 편안한 침대처럼 느껴진다.
 
  “저게 마칼루예요, 마칼루…”
 
 
  ‘악마의 귀’ 마칼루
 
이스트콜에서 바룬체빙하로 내려서기 위해 로프 하강 준비 중인 석상명(맨 오른쪽)씨와 현지 스태프들.
  이튿날 아침, 양레카르카를 출발하는 순간 아마푸줌 오른쪽 골짜기 끝에 하얀 산이 반짝인다. 지도상에 표기된 피크3(6477m)와 피크5(6404m)가 겹쳐 보이는 것이려니 가볍게 여겼건만, 포터들이 마칼루라 일러준다. 어제는 아마푸줌의 거벽 중앙을 타고 떨어지는 거대한 실폭이 마음을 빼앗더니 드디어 마칼루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악마의 귀’라는 별칭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기품 넘치는 거봉(巨峰)이다.
 
  “얼른 찍자, 찍어.”
 
  석상명과 장경관은 혹시 구름에 가려버릴까 서둘러 촬영에 나선다. 이리 서고 저리도 서보고, 수많은 포즈를 잡아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필름 한 통을 거의 다 찍은 다음에야 길을 나선다.
 
  마칼루가 보이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뜬다. 걸음도 빨라진다. 그렇지만 깊은 눈은 발목을 쉬 놓아주지 않는다. 네카르카(Ne Kharka)를 지나면서 밑에서 올라온 구름이 피크3만 남겨놓고 골짜기를 꽉 메웠다. 간간이 눈사태 굉음이 들려온다. 평원 같은 사다사(Sadasa·3900m)를 넘어서면서 원시림은 완전히 사라지고, 키 작은 나무들만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이제 수목한계선까지 올라온 것이다.
 
  설원에 튀어나온 돌 위에 앉아 왕추와 셰르파들이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는 표정이다. 이곳 지명이 ‘사다사’라고 한다. 왕추는 설원 옆에 거대한 암벽의 불그죽죽한 곳이 말 형상을 하고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래 이곳에는 물이 없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기도했더니 벽 아래쪽에 구멍이 생겨 물길이 트였다는 전설의 고향 스토리 같은 얘기를 너무도 진지하게 해준다. P3와 P5를 잇는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수로가 생겨 티베트 물줄기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사실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이들 말을 듣다 보니 초기 탐험자들에 의해 고유 지명을 살리지 못한 봉이 많았다. 피크6는 네파우(Nepau), 피크4는 차물렝마(Chamulengma)라는 원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마칼루는 힌두신의 이름인 마칼리(Ma=위대한, Kali=신 이름)가 세월이 지나면서 음이 조금 바뀐 현재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럭시 5병
 
  자카르카(Ja Kharka·4000m)에서 이날 일정을 끝맺기로 하자 포터들 표정이 환해진다. 여기까지는 화목(火木)이 있지만, 야영 예정지인 메라(Mera·4300m)는 퇴석지대로, 나무가 없는 것은 물론 마실 물도 흙탕물이나 다름없는 빙하수(氷河水)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마친 현지인들은 둘 셋 짝을 지어 각자 잠자리를 찾아 나선다. 우리와 스태프, 그리고 식당 멤버들은 그래도 바닥을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텐트를 쳤다. 나머지 10여 명의 포터들은 바위 밑에 매트리스를 깔고, 시원찮은 침낭에 들어가 추운 밤을 지낸다. 물론 이들은 잠들기 전까지는 모닥불을 쬐며 보낸다. 내일부터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바룬빙하로 들어선다. 해발 4600m 높이의 세르손(Sherson)까지는 그나마 카르카(방목지)가 있지만, 이후로는 삭막한 퇴석지대만 펼쳐진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트레킹에 나서 눈 덮인 둔덕을 넘어 랑말레(Lang=야크, 말레=흰소·4100m)에 올라선 다음 높낮이가 명확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길을 따른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쉬는 사이 불현듯 급해진다. 그러나 세르손에 도착했을 때는 시커먼 구름이 이미 마칼루를 뒤덮고 있었다.
 
  거대한 능선을 넘고 바룬빙하 물줄기를 건너서자 당말 BC(Dangmal BC·4800m)의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다와-템바 셰르파 부부가 그들의 돌집에서 나와 따뜻한 물을 한 잔씩 건네준다. 타시가온 이후 내내 우리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인사였다.
 
  혹시 따뜻한 온기라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들어간 돌집은 냉장고나 다름없었다. 성에가 잔뜩 끼어 있고, 냉기에 잠시도 머물 수가 없다. 부부는 이튿날 양레카르카로 내려간다. 우리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예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들은 이틀 전 양레의 아버지집에서 쪼그린 채 하룻밤을 지냈고, 어젯밤은 바위 밑에서 보낸 뒤 오늘은 얼음 같은 돌집에서 지내는 것이다.
 
  이튿날 아침 확인 결과 셰르파와 포터들이 돌집에서 산 것은 럭시(네팔식 증류수) 5병이 고작이었다. 1000루피, 우리 돈으로 치면 1만8000원에 불과했다. 그 몇 푼을 벌려고 시원찮은 복장과 신발로 눈보라와 깊은 눈을 헤치며 예까지 올라온 것이다. 측은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에베레스트다!”
 
로체와 로체샤르 등 쿰부히말의 8000m급 고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트레킹단.
  내일이면 해발 5000m를 넘어선다. 5200m의 바룬체 남벽 BC에서 자고, 그 다음 날에는 해발 5800m인 하이 BC에 올라선다. 걱정이다. 막내인 장경관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누구와 함께 십튼패스를 넘어 툼링타르로 내려가야 하나 걱정이다.
 
  이제 마칼루 BC 길과 헤어져 바룬체 남벽 BC로 올라간다. 엄청난 돌밭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데, 파상이 골 끄트머리로 로체(8511m)와 로체샤르(8400m)가 보인다고 알려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두 거봉을 마주하자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오경 바룬체 남벽 BC에 닿는 순간 옅은 졸음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고소증세다.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 밀려오는 잠을 꾹 참는다. 낮잠이 컨디션을 좋게 해준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땡볕 아래 누우면 곧 머리만 띵띵해진다. 텐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졸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거름이다.
 
  “에베레스트다!”
 
  피크4(6720m) 산그늘이 텐트를 덮칠 즈음 파상이 다가오더니 모두 텐트 밖으로 나오란다. 바룬빙하 최고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구름을 벗어젖히고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예서 보이는 에베레스트, 로체, 로체샤르는 서로 다른 산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산괴로서 찬란하게 빛나는 세 개의 봉우리를 이고 있다.
 
  참으로 묘한 모습이다. 에베레스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으면서도 로체샤르 오른쪽 뒤편에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솟아 있다. 에릭 십튼과 에드먼드 힐러리는 이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들은 에베레스트의 등로(登路)를 찾기 위해 1951년 추쿵에서 암푸랍차를 넘고 웨스트콜을 넘었다가 식량이 부족해 밍보라를 넘어 팡보체로 내려서야 했다. 스위스팀에게 에베레스트 등반의 기회를 빼앗긴 이듬해 1952년에는 고소장비를 테스트할 겸 다시 쿰부히말로 들어섰다가, 이번에는 이스트콜과 웨스트콜을 넘어 이곳 바룬빙하로 내려선 다음 빙하 최상단 페탕체(Pethangtse·6730m)의 한 고개에 올라 캉슝빙하와 캉슝벽을 바라보며 또 다른 등로를 찾았던 것이다. 저녁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저 자이언트봉들의 모습이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인가.
 
 
  모습을 드러낸 셰르파니콜
 
바룬체 하이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와 로체, 로체샤르.
  “옴마니밧메훔, 옴마니밧메훔….”
 
  이튿날 새벽, 식당 텐트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파상 셰르파와 포터인 사마 셰르파가 기도하는 소리다. 오늘은 하이 BC로 올라간다. 위험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러기에 액(厄)을 막아달라고 주문(呪文)을 읊는 것이다. 잠시 후 왕추가 다가오더니 곧 제(祭)를 올린다고 말한다. 원정대로 치면 무사 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나 다름없는 것이다. 커다란 바위에 향을 피우고, 그 앞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파상 셰르파가 주문을 읊조리고 있다. 우리도 한 명 한 명 제단 앞에 다가가 이들 식대로 절을 올린다.
 
  오늘 역시 너덜 능선 사면을 가로지르다 골짜기 급사면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어제는 고도차 400m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600m에 그것도 해발 5800m까지 올라야 한다. 걱정스런 높이일 수밖에 없다.
 
  골짜기로 내려서기 전 위쪽을 쳐다보니 앞서가는 사람이 뒤로 넘어질 듯 가파르다. 발가벗은 마칼루는 흰 눈 인 검붉은 바위 정상부에 버섯구름이 형성되면서 우리를 덮칠 듯 험악한 분위기로 모습을 바꾸었다. 반면,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는 에베레스트·로체·로체샤르는 웅장하면서도 포근한 산세다. 바라보는 높이에 따라 느낌은 이렇듯 달라진다.
 
  너덜자락을 넘어서면 곧 바룬체 남벽 하이 BC가 나타나려니 예상했건만 골짜기로 내려섰다 다시 급경사 너덜지대를 한없이 거슬러 올라야 한다. 이제 앞서 오르는 포터들을 보면 파란 하늘에 걸려 있는 절벽을 타고 오르는 듯하다. 그러나 심란한 마음을 그나마 등 뒤의 마칼루가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받쳐준다.
 
  너럭바위에 앉아 쉬는 사이 마칼루 하이 BC가 바룬빙하 건너로 마주보인다. 4년 전 저곳까지 오를 때도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힘겨웠는데, 그새 그 기억을 잊고 또 이렇게 고생한단 말인가. 미련한 곰 같으니라고….
 
  하이 BC에 도착했다. 셰르파니콜과 이어진 설원 하단의 널찍한 너덜지대다. 매트리스 위에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잠시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그림 같은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바룬빙하 건너편에는 마칼루가 여전히 웅자(雄姿)를 자랑하고 있고, 캠프 옆에는 날카로운 설릉(雪稜)으로 형성된 거벽(巨壁)이 솟아 있다. 그리고 설사면 위로는 4년간이나 벼르고 별러 온 셰르파니콜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보다 더 이상 황홀한 고산 풍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포터들의 합창
 
마칼루를 등진 채 이스트콜을 향해 설원을 가로지르는 쿡(cook) 치링 셰르파(앞)와 가이드 왕추 셰르파.
  라라(네팔식 라면)를 한 봉씩 끓여 먹은 다와 셰르파와 파상 셰르파가 내일 넘을 이스트콜 정찰에 나선다. 우리가 넘는 패스는 셰르파니콜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셰르파니콜 북쪽의 이스트콜을 넘어 로(Low)바룬체빙하로 내려섰다가 웨스트콜을 넘어 훈쿠빙하로 내려서는 것이다. 이스트콜 왼쪽으로 보이는 셰르파니콜은 상단부는 설릉이 커니스를 이루고 있고, 하단부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어서 만만치 않아 보였다. 다와는 이중화에 피켈을 들고 오르는데 파상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피켈을 빌려달라고 한다. 로프 한 동 없이 정찰을 나서는 두 사람이 미덥지 않게 느껴진다.
 
  오침(午寢)에 들어갔던 포터들이 오후 4시쯤 일어나 한 명 한 명 노래를 부르더니 대여섯 명이 합창을 한다. 고음과 저음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합창은 골짜기를 잔잔하게 울렸다. 포터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자연적으로 험난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파른 너덜을 오르면서도 잠시 앉아 숨 한 번 돌리고 나면 입에서 노래자락이 흘러나왔다. 신세 타령조가 아닌 흥겨운 이들의 노랫소리는 골짜기를 거스르고, 능선을 넘어 히말라야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오후 5시를 넘어서면서 약속이나 한 듯 눈발이 멈추고 마칼루뿐 아니라 에베레스트 산군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포터들 목소리는 더욱 흥겨워져 갔다.
 
 
  쿰부히말의 名峰들
 
이스트콜에서 바라본 바룬체빙하. 하얀 화선지 같은 빙하 끄트머리로 쿰부히말의 명봉들이 바룬–마칼루 국립공원과 경계를 이루며 솟구쳐 있다.
  트레킹 12일째인 3월 30일, 이제 내일이면 그렇게 고대하던 셰르파니콜을 넘어선다. 오늘까지 올라오는 사이 계획이 수시로 바뀌었다. 하이 베이스캠프에서 하루 더 쉬기로 했다가 그냥 패스를 넘기로 하고, 이스트콜과 웨스트콜을 이틀에 넘기로 했다가 하루에 끝내기로 바꾸었다. 해발 6100m가 넘는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하지만 그만큼 모두 컨디션이 좋은 것이다. 이튿날 착각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튿날, 계획상 오전 5시쯤 출발하기로 했으나, 새벽녘 밥을 해 먹자니 늦어져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캠프를 떠났다. 짤막한 급경사 설사면을 넘어서자 부드러운 언덕 4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스트콜은 그 뒤에 솟아 있는 절벽 오른쪽 안부였다.
 
  20명에 이르는 일행은 실선 긋듯 설원을 가로질러 벽 아래로 다가섰다. 이스트콜 하단 벽은 다가설수록 더욱 곧추서는 느낌이다. 아무리 봐도 길이 있을 것같지 않은 절벽이었다. 거침없이 길을 찾아 오르는 셰르파들과, 커다란 짐을 메고 벽을 타고 오르는 포터들의 모습은 험난한 고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고갯마루로 후딱 올라서고 말았다.
 
  힘겹게 올라서는 사이 머릿속에서는 ‘이 미련한 짓을 왜 이렇게 반복하나’ 싶은 회의감이 든다. 그 대답은 고갯마루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화선지 위에 설봉(雪峰)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순백의 세상이었다. 바로 이런 풍광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미련한 게임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에는 광대하면서도 너무도 깨끗한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바룬체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설원 너머로는 쿰부히말의 명봉(名峰)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아찔한 외줄 下降
 
거대한 절벽을 이룬 이스트콜 아래 너덜지대에 자리한 바룬체 남벽 하이 베이스캠프. 해발 5800m 높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다와에 비해 30분 이상 늦게 올라섰기에 곧장 내려설 줄 알았건만 다와와 포터인 타시 셰르파는 아직도 스노바(Snow bar·설사면에 박는 확보물)를 박고, 로프를 거는 등 하강(下降) 준비를 하고 있다. 포터들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이들 역시 고소증세가 조금씩 오는 것 같다.
 
  한참 동안 하강 차례를 기다리다 확보를 보는 다와 셰르파에게 다가가 보니 짐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설원에 내려선 사람들이 그야말로 개미만 하다. 이렇게 높을 수가…. 고정로프 한 롤 200m 중 150m가 사용될 정도로 높은 절벽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먼저 하강하겠다고 했더니 8mm 로프를 외가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질 좋은 로프일지라도 두 줄로 사용해야 할 만큼 높고 험한 절벽인데, 인장력이 시원찮은 싸구려 로프를 한 줄로 사용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2롤의 고정 로프가 있는데도 이들은 괜찮다며 한 동만 사용했다. 간(肝)을 카트만두에 빼놓고 온 친구들 같았다.
 
  어쩔 도리 없이 외가닥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거의 다 내려설 즈음 절벽 아래에서 포터들이 “오른쪽! 왼쪽!” 소리 지르며 아우성이다. 하강 지점에는 거대한 베르크슈른트(bergschrund·산사면과 빙하 사이의 거대한 틈)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로 들어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지르는 소리였다.
 
  간신히 내려선 다음 이스트콜을 바라보니 황당했다. 이렇게 엄청난 절벽에서 외줄 타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포터들이 짐 내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 대나무 바리에 담긴 짐이건 카고백이건 슬링에 묶은 다음 카라비너로 로프에 연결해 그대로 떨어뜨렸다. 짐 몇 덩어리는 하강 지점에 떨어지기 전 슬링이 끊어지는 바람에 설사면을 그대로 타고 미끄러져 내려온다. 한 덩어리는 짐이 흩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주전자 하나가 시커먼 베르크슈른트 안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갈 것이냐, 말 것이냐
 
  3년 전 암푸랍차(Amphulapcha La· 5845m)를 넘어 훈쿠빙하로 들어설 계획으로 추쿵(Chhukung·4730m)을 지날 때 마을 주민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 한 해 전 프랑스팀이 셰르파니패스를 넘다가 짐을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나흘이나 굶은 채로 추쿵으로 내려섰다고…. 바로 이 베르크슈른트에 많은 식량을 빠뜨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 프랑스팀이 4년 전 고소증으로 헤매면서 십튼패스로 향할 때 만났던 스위스 트레커들이 아닌가 싶어졌다. 나에게 “셰르파니콜을 놔두고 왜 왔던 길을 되돌아가냐?”며 의기양양해 하던 그들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식량을 몽땅 잃어버린 뒤 그들이 얼마나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까’ 싶었다.
 
  짐이 다 내려오고, 포터들이 다 내려설 때까지 시간이 한없이 흘러갔다. 파일재킷 속으로 찬바람이 파고들자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두툼한 우모복을 카고백 안에 넣어놓아 몸을 따뜻하게 할 방법이 없다. 배도 고파온다. 이도 해결방법이 없다. 가볍게 하강해 수제비 끓여 먹을 생각에 간식을 챙기지 않았으니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도 참는 수밖에.
 
  20명 모두 베르크슈른트 아래 내려선 시각이 오후 3시. 이스트패스 도착 후 네댓 시간이 흘렀다. 막판에 하강한 왕추가 다가오더니 “셰르파들이 웨스트콜을 넘어 훈쿠빙하까지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전한다.
 
  오후 2시 이후 하늘에는 구름이 몰려오고 설원 위로는 눈바람이 불어대는 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싶다. 게다가 포터 서너 명은 고소증에 시달려 고개를 푹 숙인 채 힐끗힐끗 내 눈치를 살펴본다. 계속 밀어붙이자는 건지, 아니면 여기서 멈추자는 건지…. 춥다, 윗니 아랫니가 소리 날 정도로 부딪치고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이런 상황에서 밀어붙여?’
 
  고민스럽다.⊙
 
  (다음 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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