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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의 세계

“고객의 특별한 순간을 위해… 우리는 1년 365일 ‘무대 위의 배우’”

글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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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리어 덕목은 책임감, 자기관리, 감정 컨트롤… 능력보다 중요한 건 인성”(박한용 워킹온더클라우드 지배인)
⊙ “청계천 노숙자부터 대통령·재벌회장까지… 손님 가리지 않고 장사하는 게 원칙”(이상주 청진옥 지배인)
⊙ “영업 활성화 노력, 소비자·트렌드 공부, 고객·직원과의 원활한 인간관계가 지배인의 자격”(오세인 세종호텔 총지배인·대표이사)
  “총지배인 나와!”
 
  투숙객의 행패에 이동욱이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동욱은 객실 옷장에 숨바꼭질하듯 숨어든 김해숙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밝혔다. “미친 게 아니라 많이 편찮으신 겁니다. 제가 잘 돌봐드렸어야 했는데, 제 잘못입니다.” 사고로 혼수상태를 겪은 김해숙은 정신연령이 5세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이동욱의 사과에 투숙객은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다. 2014년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호텔킹〉의 한 장면이다.
 
  영업장의 무한 책임자로서 불만 어린 고객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이들. 서비스직의 꽃 ‘지배인’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관광산업은 1990년대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리며 각광받았다. 2000년대 초까지 호텔리어 드라마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웨이터들은 지배인이 되는 근사한 꿈을 꾸며 청소부터 서빙까지 땀 흘려 일했다. 때로는 ‘진상’ 고객들의 하대와 모욕까지 견디며, 수십 년 서비스 노하우를 갈고 닦아 정상에 올라섰다.
 
  스카이뷰가 돋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부터 종로의 산 역사가 된 노포(老鋪)의 지배인, 웨이터에서 호텔 대표가 된 총지배인까지 ‘지배인의 세계’는 실로 다채로웠다.
 
 
  63빌딩 레스토랑에 뜬 ‘사투리 청년’
 
박한용씨가 지배인으로 일하는 워킹온더클라우드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59층에 위치한 ‘한화호텔&리조트’의 레스토랑으로, 전망이 좋아 연인들의 대표적인 프러포즈 장소가 됐다. 사진=뉴시스
  “1995년 경북 김천에서 서울로 올라와 63빌딩 ‘거버넌스 챔버’에 입사할 때만 해도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었어요. 김영삼 정부가 관광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관광학도도 많아지고 서울 시내에 호텔도 여러 곳 생겼죠. 그 후 10년까지가 호텔업 전성기였어요. MBC 드라마 〈호텔리어〉도 방송됐고, 지배인 자체도 굉장히 깔끔하고 품위 있는 이미지였죠.”
 
  김천대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20대 청년이 상경, 서울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의 지배인이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부모형제와 여자친구를 고향에 두고 타지로 온 청년은 업계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텼다. ‘식음료 전문 지식’ ‘고객 대응 매뉴얼’ 등 이론부터 실기까지 섭렵한 그는 수습 동기 50여 명과 겨뤄 수석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려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입술을 피고 오므리며 연필까지 문 채 표준어를 연습했다. 연인들의 대표적인 프러포즈 장소. 서울 여의도 63빌딩 59층에 위치한 ‘한화호텔&리조트’의 레스토랑 ‘워킹온더클라우드’ 지배인으로 일하는 박한용(48)씨의 얘기다.
 
  박씨는 유년 시절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교단에 나가 발표할 때면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꿈·환경·시대에 맞춰 성격도 바꿨다. 이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에게 나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과 능숙한 감정 조절이 필수였다”고 했다. 박씨는 호텔업 중에서도 ‘F&B’(식음료·Food and Beverage) 업종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현장에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 실제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과 새 메뉴에 대해 논의했다. 칵테일 조제 기능사, 바리스타·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소믈리에 되기가 가장 어려웠다. 한 와인의 맛을 평가하려면 한 종을 10번 이상 마셔야 했다”며 “대표 산지인 프랑스로 넘어가 지명까지 외우며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이다.
 
  “저희 직업군은 학업에서 배우는 거랑 현장 상황이랑 완전히 다릅니다. 저도 그랬지만, 신입사원들에게 ‘지금부터 3년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되, 자기의 꿈을 향해서 틈틈이 공부하라’고 했어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나 자신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1년 365일 용모·복장이 단정해야 하고, 항상 똑같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손님을 맞아야 해요. 늦게까지 술 먹고 아침에 힘들게 나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운동으로 관리한 몸과 안 한 몸은 차이가 금방 납니다. 지배인 중에서 배 나온 사람 보셨나요?”
 
  주말마다 수영·등산으로 몸 관리를 한다는 박씨는 서비스업은 ‘체력싸움’이자 ‘머리싸움’이라고 강조한다. 고객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미리 알아채려면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고객 응대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 인성이 갖춰져야 한다. 감정 컨트롤이 중요하다”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어두운 얼굴로 인상을 쓰면서 서비스를 할 수는 없지 않나. 아무리 실무를 잘해도 감정 관리 실패하면 다 수포가 된다”고 했다.
 
 
  자리 불만 고객에 ‘무료 식사권’
 
  박씨는 지배인의 역할은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지만, 고객의 요구대로만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경험과 언변을 통해 고객의 요구 포인트를 잡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는 칠순잔치를 예로 들었다. 대부분의 자식은 지배인에게 부모님의 요청대로 “(행사를) 번거롭게 하지 말고 간소하게 하라”는 뜻을 전한다. 박씨는 다르게 권한다. “제가 자식이라면 일정 규모의 상차림을 마련해서, 술도 따라 드리고 사진도 찍는 등 여러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지금은 싫어하시는 것 같지만, 그때 찍은 사진은 그분들 책상에 평생 놓여 있게 됩니다.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 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귀빈을 맞는 박씨만의 특별 서비스는 입구에서부터 시작한다. 회장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전망 좋은 자리로 안내한다. 공장 설립 건으로 미국에 다녀온 회장님의 근황을 체크한 뒤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업계 동향을 소개한다. 오늘 메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함께 온 외국 바이어의 입맛까지 고려해 음식을 준비한다. 박씨는 “고객들은 저희가 서비스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눈앞’에서 평가한다”며 “컴플레인을 거는 고객도 중요한 손님이다. 불만이 있는 고객 중 80%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가 다신 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불만 고객도 단골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자리에 대한 컴플레인이 있었는데 현장 직원이 잘못 응대해 일이 커졌어요. 제가 직접 무료 식사권을 드리고 ‘고객님의 가장 소중한 순간에 누를 끼쳤다. 이 식사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찾아주시면 오늘보다 훨씬 더 좋은 경관으로 모시겠다’고 했죠. 영업장 대부분이 순간의 손익을 따져서 저처럼은 안 하잖아요. 수익을 지속적으로 내려면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거죠.”
 
  박씨는 직원들에게 얘기한다. “여기 오는 고객들은 1년 365일 항상 웃고, 즐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 우리도 기쁘게 서비스하고 신나게 일하면 손님과 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
 
 
  배곯는 학생들 불러다 밥 먹이던 시절
 
  “선지서부터 다 한우로 하니까. 돈을 한 번에 몇천만 원씩 집어넣고 그것(질 좋은 물건)만 빼 와야 해. 하루 이틀 시장을 댕겼어야지. 내가 차 끌고 노인네들 모시고, 마장동서부터 의성·부산 각처로 5일장을 다 쫓아다녔어. 어른들(1대 주인) 돌아가실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나야…. 손자 양반(3대 주인)이 할 때까지 장사 치느라 밤을 27년이나 샜지.”
 
  8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 해장국집에는 가게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한 분이 있다. 1937년 개업한 ‘청진옥’의 지배인 이상주(76)씨다. 군복무 시절 장군들의 운전병이었던 이씨는 한성실업 운전기사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쌍용시멘트 사원 모집에 지원서를 넣고 잠시 청진옥에서 1대 주인 부부의 일을 도왔다. 이씨 기억에 따르면 그때가 1970년대 중반, 그로부터 지금까지 45년 넘게 청진옥의 지배인으로 남았다. 그가 쌍용사의 합격 통보까지 버리고 청진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의 회고다.
 
  “첫 개업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주인이 그렇게 좋았어. 내가 (다른 회사) 가고 싶어도 워낙 정이 들어서 못 가는 거야. 처음에는 다른 종업원도 있었는데 다 나가고 나랑 같이 셋이 (초기) 청진옥을 이끌어 왔지. 이 옆이 중동 아니야. 《한국일보》 옆에 중동학교(*편집자주: 1909년 설립된 중등과정의 사립학교. 1952년 서울 관수동에 ‘중고등학교 학생훈육소’를 개소한 후 1980년대 강남으로 이전했다)가 있었는데 노인네들이 ‘배고픈 애들 밥 먹고 가라’ 하면서 밥 먹여서 보냈어. 그런 분들이었어. 어려운 이들 위해서 잘 하던 사람들이니까 내가 붙어 있었던 거지. 김무성 의원도 중동 출신이지 아마? 중동 출신 단골들이 ‘예전에 할머니한테 많이 얻어먹었다’면서 20명씩 예약해서 지금까지 찾아와.”
 
  당시 다섯 살 위였던 1대 주인의 아들(2대 주인)과도 호형호제하며 청진옥을 꾸려온 이씨. 서빙·계산은 기본, 급할 때는 해장국도 끓이고 주차 관리도 했다. 그는 지금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낮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매장을 관리한다. 24시간 영업 특성상, 일주일에 한 번은 밤샘 근무를 한다. 손님 오는 게 예전만은 못해도 일요일이면 3층 매장이 꽉 찬다고 했다. 이씨는 “전두환 시절, 종로·광화문에는 나이트클럽이 유행이었다. 이 동네 술집들도 많아서 해장국 먹으러 오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며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망년회·크리스마스 때면 밀려드는 손님으로 정신이 없었다. 뚝배기에 밥 먼저 넣고 국 부어서 숟갈 꽂아주면, 만석이라 서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금일봉 김영삼, 막걸리 노무현
 
청진옥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총리, 의장, 대통령, 국회의원 등 여러 정치인의 단골 맛집이 됐다. 사진=조선DB
  지배인 이씨가 기억하는 ‘청진옥’은 정치인들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총리로는 고건·이낙연·이회창, 대통령은 박정희·전두환부터 김영삼·노무현·이명박, 국회의장은 문희상·박희태·정세균이 자주 찾았다. 역대 서울시장과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광화문에서 시위를 마친 의원들이 7~8명씩 들어온 적도 있었다.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실랑이도 벌였다. 이씨는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종로 인근에 있던 군납회사를 들를 때면 (청진옥에) 찾아오곤 했다. 금융개혁 단행 후 찾아온 김영삼 대통령은 ‘맛있게 먹었다’고 금일봉을 주기도 했다”며 “박근혜 정권 때 경제사절단 다녀온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직원들과 둘러앉아 해장국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이 올 때면, 음식을 먼저 맛보는 경호원들은 물론 총 든 군인들이 옥상까지 올라가 보초를 섰다. 노무현 때부터 (호위) 군인들이 사라졌던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은 엄청 소탈한 사람이지. (종로에서) 국회의원 할 때부터 그랬어. 잘 알죠. 시민들하고 같이 앉아서 막걸리 한 잔씩 먹고 가고 그랬지. 여기는 뭐라고 할까…. 못사는 사람들부터 잘사는 사람들까지 다 오는 곳이야. 80년대에는 노숙자들이 많았잖아. 지금은 그런 게 없지만 무조건 먹고 나서 계산할 때면 돈이 없대. 그냥 가시라고 했지. 매일 술 달라고 오고, 소주에 밥도 주고. 내가 엄청 많이 줬지. 줄 수밖에 없잖아. (역대) 사장님들도 ‘없는 사람 어떻게 할 거냐’며 그냥 주라고 하셨지. 청진옥이 유명해진 건 손님을 가리지 않고 장사했기 때문이야.”
 
  이씨의 집은 인천에 있다. 밤이면 종로에서 신촌으로, 다시 신촌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 자정 직전 일이 끝나도 집에 오면 새벽 1~2시다. 그는 “(중간에) 일을 안 하고 쉬었다가 움직였으면 아무것도 못했다”며 “평생을 움직여 버릇하니까 건강도 괜찮다. 엊그제 경희의료원 가서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간도 멀쩡하고 아무 이상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젊은 시절부터 반세기 가까이 해장국집 지배인으로 일했지만 한 번도 자기 직업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내 집처럼 (생각하며) 하는 건데 (남의 시선이) 뭔 상관이 있나.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지배인이 돼야 한다. 지배인이라고 시계 불알마냥 왔다 갔다 폼만 자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
  세종호텔 총지배인 겸 대표이사 오세인
 
  “고졸 웨이터에서 호텔 총지배인으로… 30년 노력 끝에 이등병이 참모총장 됐다”
 
오세인 세종호텔 총지배인 겸 대표이사.
사진=조현호 기자
  오세인(53) 세종호텔 총지배인 겸 대표이사는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린다. 세종호텔 한 직장에서만 30년을 근무한 끝에 최고 경영자가 됐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모든 호텔리어의 꿈은 사실 대표이사보다 총지배인”이라며 “1989년 신입사원으로 세종호텔에 입사해 레스토랑 웨이터, 객실부 판촉과장, 영업실 지배인, 식음료부 부장, 관리부장을 거쳐 3년 전 총지배인과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군으로 치면 이등병이 참모총장이 된 셈”이라고 했다.
 
  오 대표는 군 제대 후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그는 당시 한 전문대학을 중퇴한 사실상 ‘고졸 신분’이었다. 주경야독으로 수능시험까지 치르며 30대 초반 명지대 법학과에 입학, 세종호텔의 모(母) 재단인 세종대에서 호텔관광학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세종호텔에서 한식당 조리사로 근무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인연을 맺기도 했다.
 
  ― 늦게 대학에 들어간 셈인데, 학부 때는 왜 호텔관광학이 아닌 법학을 선택했나요.
 
  “제가 1989년 5월 8일에 입사한 뒤 5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수능 준비를 다시 했어요. 직장생활을 일찍 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꼈죠. 당시 호텔에 근무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호텔관광학·호텔경영학이나 일문과·영문과 같은 어문계열을 나왔어요. 저는 전공만이라도 남들과 차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실에서도 유용한 법을 공부한 겁니다.”
 
  ― 그 후 박사 학위까지 땄습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호텔업 특성상 주중·주말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잖아요. 자기가 비번을 정하면 공부할 시간을 따로 가질 수 있었어요. 오후 시간을 쓰려면 조근(早勤)을 해도 되고, 주말에 일하면 주중에 대학원을 다닐 수 있잖아요. 제가 호텔 재단인 세종대에서 재임 중에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세종대에서 공부하면 장학금도 줍니다. 저희 호텔의 최대 장점은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직원 대부분이 대학원을 다닙니다.”
 
  ― 처음 호텔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나요.
 
  “부정적이었죠. 우리나라가 호텔리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때부터예요. 그 시점부터 메이저 호텔들이 많이 생겼죠. 그때만 해도 관광 쪽에 종사한다고 하면 ‘보이(Boy)’라고 부르는 등 아주 안 좋은 시선들이 있었죠. 저희 장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호텔리어가 되는 걸 반대했어요. 그래도 저는 유망 직업으로 봤어요.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했고 학력에도 제한을 두지 않은 만큼, 본인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 거죠.”
 
  ― 입사 후 어떤 일을 했나요.
 
  “웨이터부터 시작했죠. 서빙·청소, 고객 응대, 매장 관리까지 다 했어요. 처음 들어가서는 3개월 실습,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쳤어요. 6개월 뒤 최종 발령 날 때, 고객을 응대하는 실제 서비스 시험부터 외국어 시험까지 봤어요. 몇 년 뒤에 캡틴(웨이터 우두머리) 달고, 어시스트 매니저(보조 지배인), 섹션(각 영업장) 매니저까지 올라갔어요. 섹션 매니저가 되면 메뉴 개발, 고객 응대만큼 영업 관리가 중요해요. 각 영업장 자체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매출, 재료비·인건비·부대비용을 관리해야 하니까 ‘소(小)사장’인 셈이죠.”
 
 
  “자존심은 출근 때 경비실에 맡겨 놓고 퇴근 때 찾아가라”
 
  ― 간혹 하대하는 손님을 만났을 때 화가 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나요.
 
  “요즘은 사회 인식도 바뀌고 호텔 직원들도 옛날보다 월등한 스펙의 인재들이 들어오니까 그런 게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많았죠. 흔히 ‘감정 노동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일종의 ‘캐스트(cast·연기자)’ 같은 존재예요. 마케팅이면 마케팅, 청소면 청소, 그때마다 배역을 맡는 거예요. 연예인이 ‘내겐 왜 머슴 역할을 주냐’고 불만을 품으면 안 되듯, 저희도 주어진 자기 배역을 충실하게 하는 거죠. 입사할 때 이런 말이 있었어요. ‘자존심은 경비실에 맡겨 놓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 찾아가라’고요.”
 
  ― 지배인이 갖춰야 할 능력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영업 활성화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둘째, 직원·고객과 유연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소비자 행동과 트렌드를 연구해야 합니다. 정리정돈이랑 외국어 잘하고 용모 단정한 건 기본 소양이고요. 이걸 아우르려면 현장 체득도 중요하지만 평소 자기 학습도 필요해요.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호텔리어가 단순 서비스만 잘해선 안 되고, 전체 업계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항상 주시해야 합니다.”
 
  ― 총지배인으로 부임하고 나서 어떤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까.
 
  “제가 세종호텔에서는 최연소로 총지배인이 됐습니다. 웨이터부터 시작했으니까 이등병에서 참모총장이 된 셈이죠. 제일 큰 변화는 제가 노동자에서 사용자·경영진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호텔업이 어렵습니다. 한일 관계도 예전만 못하고 ‘사드 보복’으로 중국 단체 관광객도 줄었습니다. 저는 줄어든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다른 시장, 즉 남미·동남아 쪽으로 ‘시장의 다양화’를 시도했습니다. 오래된 호텔인 만큼 경관을 개선해 고객 유치에도 힘썼습니다. 덕분에 어려움 속에서도 80~90% 이상의 객실 점유율을 유지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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