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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특종

초정 김상옥이 生의 마지막에 쓴 시

극락은 이승저승 다 일어나고…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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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정이 남긴 詩帖 속 〈은선암 즉흥〉과 〈은선암 소견〉… 2000년 무렵 쓴 시로 추정
⊙ 〈안개 낀 항구〉와 〈어머님〉에는 부모를 그리는 짤막한 소회 담아
초정 김상옥 선생의 모습이다. 초정은 시뿐 아니라 그림, 글씨, 전각, 도자기 감식에까지 능통했다.
  《월간조선》은 시인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1920~2004) 선생 유족의 제공으로 시 4편을 소개한다. 초정은 시작(詩作)에 있어 ‘언어의 구도자’로 불리는 시인이다. 27세 때인 1947년 첫 시집 《초적(草笛)》(수향서헌 刊)을 출간한 이래 60여 년간 “고결한 정신세계를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낸 시편으로 시의 미학적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간조선》이 소개하는 〈은선암 즉흥〉과 〈은선암 소견〉은 초정이 말년에 쓴 작품이다. 초정의 가족들은 “시인이 2000년 무렵 제자들과 함께 김천 직지사의 오래된 암자인 은선암을 찾았다”며 “이 시 두 편이 마지막으로 쓰신 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남아 있는 초정의 작품 중 2000년 이후에 쓴 시나 시조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초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로 추정된다.
 
  이 시는 초정이 맏딸 김훈정(金薰庭)씨에게 남긴 시첩(詩帖)에 담겨 있다.
 
  붓글씨로 쓴 시첩에는 이밖에도 여러 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 그중 〈안개 낀 항구〉와 〈어머님〉은 말년의 초정이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을 함께 써놓아 눈길을 끈다.
 
  초정의 출생지는 쪽빛 바다가 출렁이는 경남 통영읍 항남동 64번지다. 아버지 김덕홍(金德洪)과 어머니 진수아(陳壽牙)의 1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글을 읽는 선비였으나 생계를 위해 갓을 만들었다. 솜씨가 빼어나 철종 임금의 국상(國喪) 때 사용한 백립(白笠)을 만들어 진상했다고 전한다. 통영갓방 중 ‘선창골 갓집’이라면 김씨의 부친이 하던 갓집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안개 낀 항구〉는 초정이 1952년 펴낸 동시집 《석류꽃》(현대사 刊)에 담긴 시다. 초정은 시첩에 이 시를 쓰고 말미에 “선고(先考·세상을 떠난 아버지)께서는 글을 읽는 선비였으나 생계를 위해 입자장(笠子匠)이 되셨다. 선고가 그립다”며 아버지를 그리는 소회를 짧게 적었다.
 
  시첩의 마지막 시인 〈어머님〉은 첫 시집 《초적》에 실린 〈어무님〉과 동일한 시다. 내용은 같으나 〈어무님〉은 문장을 이어 쓴 전체 3행이고 〈어머님〉은 행갈이를 했다는 점이 다르다. 역시 시 말미에 “어머님의 사진을 40년 가까이 머리맡에 두고 뵈었다”며 소회를 적고 있다.
 
  시 〈어머님〉과 관련, 맏딸 훈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할머니가 위독하셨을 때 당신의 다리를 찔러 피를 내어 입에 흘려 넣은 적이 있었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 침대 머리맡 벽에는 항상 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할기(割肌)의 결의(決意)!’라는 말 그대로 살을 베어내는 아픔으로 그 사진을 태웠을 것이다.”
 
 
초정 선생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지막 시로 추정되는 〈은선암(隱僊庵) 즉흥(卽興)〉.
  〈은선암(隱僊庵) 즉흥(卽興)〉
 
  극락은
  이승저승
  다 일어나고
 
  여기 은선암(隱仙庵)엔
  상극락(上極樂)만 기다린다
 
  부용(芙蓉)꽃
  향기(香氣)에 떠서
  일렁이고 있고녀!
 
  서어(書於) 고무초산관주인(古無焦山舘主人)
  초정(艸丁) 도지(塗之·쓰다는 뜻-편집자)
  후미(後尾) 재(再)퇴고(推敲) 초정
 
 
초정 선생이 남긴 시첩에 적힌 〈은선암(隱仙菴) 소견(所見)〉. 은선암은 김천 직지사의 오래된 암자다.
  〈은선암(隱仙菴) 소견(所見)〉
 
  바위는
  연(蓮)잎처럼
  법당(法堂) 앞에 내려앉고
 
  그을은
  천년(千年) 고찰(古刹)
  풍경(風磬)마저 울어 쌓고
 
  언제나
  살갗은 썩고
  불은 타 태우는 것을
 
  서어(書於) 불역마천루주인(不易摩天屢主人)
 
  “다리를 두 번이나 실족(失足)하여 수술 후 반(半)실명 상태에서 ○고(○稿·판독불가-편집자)하였기로 오자(誤字)가 많아. 책에 구멍을 뚫어 퇴고(推敲)하였음. 팔십노병(八十老病) 초정(艸丁)”
 
 
초정 선생의 시첩에 적힌 〈안개 낀 항구〉. 이 시는 원래 초정이 1952년 펴낸 동시집 《석류꽃》에 실렸다.
  〈안개 낀 항구〉
 
  안개 낀 항구에
  등불 하나
  안개에 젖어서
  멀리 보이네
 
  등불은 떡국집
  유리램프불
  뱃사람 혼자서
  떡국을 먹네
 
  뚜…
 
  어디서 떠나가는
  뱃고동 소리
  안개에 젖어서
  멀리 들리네
 
  “우리 집은 선창(船倉)곬 갓방집. 선고(先考)께서는 글을 읽는 선비였으나 생계를 위하여 입자장(笠子匠)이 되었다. 한말의 국상(國喪) 때는 백립(白笠)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창곬에 밤이 되면 나를 업고 ‘안개 낀 항구’를 돌며 떡국과 곶감을 사 주시기도 하였다. 마령(馬齡) 팔십에 나는 나의 선고가 그립다.”
 
  서어(書於) 서울 세브란스(世富蘭西)병원 107동 환자 초정(艸丁) 도지(塗之)
 
 
초정 김상옥 선생이 남긴 시첩에 실린 〈어머님〉.
  〈어머님〉
 
  이 아닌
  밤 중에
  홀연히 마음 어려져
 
  잠 든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보다
 
  깨시면
  나를 어찌나
  손 아프게 여기실고
 
  “어머님의 사진을 40년 가까이 머리맡에 두고 뵈었다. 어느 날 언제 소각해야 할찌… 어머니, 할기(割肌)의 결의(決意)!”
 
  서어(書於) ○○(판독불가-편집자)를 닿을 때!… 2004년 10월
  남의 자식(子息), 남의 부모(父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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