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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테시랍차 크로스 2 롤왈링히말~테시랍차~쿰부히말 트레킹

코발트빛 하늘에서 폭설 퍼붓더니 폭풍설 몰아쳐

글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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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텐트에는 심한 고소증으로 사망한 프랑스인의 시신이…
⊙ 갑작스런 눈보라에 파르차모 등반 포기하고 하산… 모닥불 쬐며 시큼한 창(네팔식 막걸리)을 마시며 피로 풀어
⊙ 랄리구라스 빨간 꽃이 핀 숲길은 동백나무숲을 걷는 듯, 산중 감자밭 돌담길은 제주 올레를 따르는 느낌
타메에서 콩데로지 가는 길에 히말라야 최고 명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에서 아마다블람을 거쳐 탐세르쿠로 이어지는 쿰부히말의 명봉들이 테시랍차를 무사히 넘어선 일행을 반겨주었다.
  트레킹 8일 차, 잠자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도 모처럼 푹 잔 날이다. 한데 양효용씨는 제대로 못 자고 컨디션이 뚝 떨어져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700m 더 높은 테시랍차에 올라서면 상태가 더 나빠질 텐데 걱정이다.
 
  눈과 얼음이 뒤섞인 골짜기와 바위지대를 거쳐 고도 100m를 금세 올린다. 설벽(雪壁)에서 눈사태가 쏟아진다. 정상부의 얼음기둥이 무너지면서 중단부의 거대한 눈 턱을 내리쳐 규모가 더욱 커진 눈사태는 완경사 설사면으로 흘러내린 뒤 평온을 되찾고 다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설산의 풍광으로 돌아간다.
 
  우리보다 앞서 테시랍차로 오른 손님이 있는가 보다. 네발짐승 한 마리가 설사면에 발자국을 남기며 고갯마루로 향하고 있다. 사다(현지 스태프의 우두머리) 다와는 양손을 양쪽 귀에 갖다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표범 발자국이라 일러준다. 히말라야 설표(雪豹)? 설표는 티베트 고산(高山)지대에서 간혹 발견되지만 네팔 히말라야에서는 카메라에 잡힌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따가운 햇살 아래 눈밭을 걷다 보니 금세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오전 10시경 해발 5300m 높이 퇴석지대에 닿자 사다 다와가 “오늘 야영지인데 아예 테시랍차까지 올라서는 게 어떻겠냐”며 “2시간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한술 더 떠 “그렇게 하면 하산길이 훨씬 수월하다”고 강조한다. 좋다, 가자. 파르차모(6273m)가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테시랍차 기슭으로 접어들 즈음 경고라도 하려는 듯 파르차모에서 눈사태가 쏟아졌다.
  설원(雪原)이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짐승 발자국을 따라 깊은 눈을 헤치며 나아가다가 바위지대에서 쉬고 있는데 뒤따라온 황원선씨가 사람이 죽어 있다고 한다. 오른쪽 설사면에 덩그러니 놓인 텐트 안에 시신이 있다는 것이다. 포터 한 명이 “작년 가을 프랑스 트레커 한 명이 쿠나 캠프에서 하루에 테시랍차로 오르려다 심한 고소증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바로 그 사람인가 보다.
 
  옴 라마 셰르파(Om Lama Sherpa)에게 “얼른 사다를 쫓아가서 ‘오늘 툴룸보에서 자겠다’고 전하라”고 하자 급경사 너덜지대를 쏜살같이 올려친다. 옴 라마는 트레킹 둘째 날 샤크파 카르카에서 처음 만났을 때 튀는 헤어스타일에 청바지를 엉덩이에 살짝 걸쳐 입고 허리춤에 장난감 칼도 차고 있는 등 도시 청년 분위기를 한껏 뽐냈다. 한데 트레킹 합류 이후 하루하루 지날수록 얼굴이 새카매지고 옷이 엉망이 되더니 여느 포터나 다름없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텐트를 치고 떡국 한 그릇씩 먹고 나니 오후 2시. 양효용씨와 최준회씨는 떡국은 물론 따뜻한 밀크티도 싫다고 한다. 반면 ‘야크 황’은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뒤 반 그릇 더 퍼 담는다. 황원선씨는 식욕뿐 아니라 걷기도 잘 걷고 입담까지 대단해 이 트레킹에서 ‘워킹 토커(walking talker)’란 별명이 붙었다.
 
  오후 3시쯤 되자 눈보라가 치고 파르차모도 모습을 감추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저지대에서는 마실도 다니고 포터들과 잡담도 나눈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지면 점점 말이 적어지고 표정도 굳어진다. 식사시간이 괴롭기도 하다. 머리가 띵하다. 그래도 맥박수가 1분에 80회면 정상이다.
 
 
  점심 먹는 사이에 급변한 날씨
 
텡기라기타우 절벽 기슭 설사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미끄러지면 100m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위험한 구간이다.
  기대대로 날씨가 좋다. 파르차모 정상부에 날리는 설연(雪煙)과 코발트빛 하늘, 아침햇살이 잘 어우러진다. 오전 7시 밀크티 한 잔씩 마시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먹고 자고, 일어나면 걷고…. 황원선씨는 “이게 사람 사는 거냐”며 툴툴댄다.
 
  급경사 너덜지대를 1시간 만에 올라쳤건만 한참 뒤에 출발한 사다 다와 일행이 우리를 앞지르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들 역시 추월한다. 햇살이 내리쬔다. 그래도 바람과 눈보라에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진도 찍고 주변 경치도 감상하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오전 11시25분, 오색 룽다 휘날리는 테시랍차 설릉(雪稜)에 올라서자 눈앞에 또 다른 히말라야가 펼쳐진다. 파니요티파(6696m)~콩데리(6186m) 설릉이 날카롭게 솟구치고 그 뒤로 탐세르쿠(6608m)가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버티고 있다. 쿰부히말 명봉들이 눈앞에 웅자(雄姿)를 드러낸 것이다. 파르차모는 테시랍차 설릉에 거대한 산이 하나 얹혀 있는 듯 웅장하고 위압적이다.
 
  스태프와 포터들은 파르차모 맞은편 텡기라기타우(6949m)의 거대한 절벽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해바라기하고 있다. 오늘 캠프지다. 포터들 텐트를 절벽에 바짝 붙여 치고, 그 아래 멤버 텐트와 식당 텐트, 사다와 쿡 텐트 순으로 설치한다. 점심 먹는 사이 하늘이 급변하더니 함박눈이 쏟아진다. 돌풍이다 싶을 만큼 강하다. 다와는 점심을 먹자마자 파르차모 청빙지대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겠다며 나선다. 다와 출발 직후 바람은 더욱 강해지더니 눈까지 퍼붓는다. 포터들은 눈보라를 견디다 못해 텐트를 절벽 아래 설원으로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오후 3시 반경, 다와는 한바탕 전투라도 치른 듯한 모습으로 돌아와 “바람이 너무 강하고 위험해 도저히 로프를 깔 수 없었다”고 상황을 설명한 뒤 포터용 텐트 치는 일을 돕다가 한 시간쯤 지나 다시 텐트를 찾아와 “고소증 때문에 머리 아파하는 포터들이 많다”며 “등반을 포기하고 내일 일찍 하산하면 어떻겠냐” 한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텐트를 눌러대고 벽에서 흘러내린 눈이 텐트를 밀어붙여 공간을 좁혀온다. 히말라야 설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렇게 기대를 실망으로, 아름다움을 위태로운 상황으로 반전시켜 놓았다. 1951년 봄 에드먼드 힐러리가 대원으로 참가한 영국 원정대가 테시랍차를 넘어 초오유(8201m)로 접근할 때도 지금처럼 눈보라가 몰아쳤을까?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60여 년 전의 시원찮은 장비로 등반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옛날 산꾼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겨난다.
 
  오늘 저녁 식사는 2인용 텐트에서 따로 먹는다. 양효용・최준회 두 사람은 식욕뿐만 아니라 트레킹의 즐거움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키친보이들이 눈을 녹여 물을 만들고 있다. 포카리(작은 호수)가 눈에 덮여 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일 아침 식사를 간식과 밀크티로 끝내겠다 하니 쿡과 키친보이들이 즐거워한다.
 
 
  탈출
 
텡기라기타우 기슭 캠프에서 강풍에 주저앉은 텐트를 정리하고 있다.
  파르차모 등반은 어쩔 수 없이 포기다. 그나저나 오늘 밤 텐트 생활을 어떻게 견뎌내나 걱정이다. 내일 아침 6시까지 11시간 동안 텐트 안에서 버텨야 한다. 포터 텐트에서 장중한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다. 우리의 아리랑 같은 ‘렛삼피리리’가 아니라 ‘셰르파의 노래’다. 누군가 한 소절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뒤따라 부른다. 폭풍설 속에서도 네팔 사람들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눈에 옷이 흠뻑 젖고 고소증으로 머리 아파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유로움으로 받아넘기고 있었다.
 
  익스트림 트레킹은 내일이면 끝이다. 내일 오후 타메(Thame·3820m)에 도착하면 열흘 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잠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히말라야에서 고소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머리를 따뜻하게 해야 한다).
 
  엄청난 바람과 눈이다. 강풍에 텐트 플라이가 벗겨지고, 눈보라가 텐트를 후려치고. 오줌이 마려워도 텐트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배낭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손에 꼭 쥔다. 눈사태가 덮치면 텐트를 찢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폭풍설이 포터용 텐트를 후려치는 바람에 포터들은 식당 텐트로 피신해 하룻밤을 겨우 보내야 했다.
 
  오전 6시, 텐트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포터 텐트는 박살 나 있다. 모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일행도 텐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낸다. 키친보이가 가져다준 밀크티 한 잔 마시고 탈출이다. 캠프 아래쪽은 다와 말대로 절벽이다. 설사면을 가로질러 하강 지점에 닿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절벽이다. 50m쯤 되어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며 하강해야 하기에 20m는 더 늘어날 것 같다. 최준회씨에 이어 황원선씨 차례. 사다는 황원선씨를 친밀감 있게 대해왔지만 등반력은 의심스러운지 자신의 안전벨트를 벗어 채워준다.
 
  슬링으로 만든 벨트를 차고 자일 하강하려니 몹시 불편하다. 벨트가 벗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하강을 마치자 절벽 위에서 포터들이 카고백을 비롯한 짐덩어리를 카라비너로 로프에 연결시켜 떨어뜨린다.
 
  “어, 어~. 안 돼~. 카메라 다 부서진단 말이야!”
 
  포터들은 말뜻을 몰라 계속해서 짐을 로프에 걸어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 한 명씩 내려선다. 어떤 포터는 창이 덜렁거리는 등산화를 신은 상태에서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훨훨 날 듯 절벽을 내려선다.
 
  그렇게 아슬아슬, 놀란 가슴으로 절벽에 이어 눈 덮인 너덜 급사면을 내려서자 완경사 퇴석지대.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설산 파르차모와 거대한 암벽을 이룬 텡기라기타우의 웅자가 눈에 들어온다. 텡기라기타우는 지난해 일본 팀이 도전했으나 실패해 아직 처녀봉으로 남아 있는 산이다.
 
  해발 5200m대 바위능선에 닿자 캠프사이트가 곳곳에 눈에 띄고, 100m쯤 더 내려서자 돌탑이 드문드문 보인다. 캠프지도 여기저기 있고, 맑은 물도 흐르고 있다. 티앙보 빙하 일원 험봉들의 베이스캠프다. 아침에 밀크티 한 잔 마신 게 전부다 보니 배 속에서 난리가 났다. 목도 마르고 힘도 없다.
 
  한데 쿡과 포터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보너스 주나 봐라’, 텅 빈 배 속을 쿡 흉으로 가득 채운 채 맥 빠진 걸음으로 내려선다. 해발 5000m 밑으로 내려서면서 초지가 나타나고 야크들이 어슬렁대는 모습이 보인다. 쿡 흉보는 것도 힘겹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텅 비어갈 즈음 티앙보(4230m)에 닿고, 마을 맨 아래쪽으로 내려서자 키친보이가 반기며 보온병에 담아온 주스를 한 잔씩 따라준다. 쿡과 포터들은 새카만 눈동자만 겨우 보일 만큼 어두운 너와집 안에 들어간 뒤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가온을 지난 이후 5일 만에 모닥불을 쬐며 시큼한 창(네팔식 막걸리)을 마시니 즐겁지 않을쏘냐. 다와는 떡국 한 그릇씩 건네주곤 “오늘 여기서 묵으면 안 되겠느냐?” 묻는다. 당연히 안 될 일. 다음날 쿰부히말 조망 코스인 콩데 로지(Kongde Lodge) 트레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타메로 내려서야 한다.
 
 
  쿰부히말을 대표하는 美峰 아마다블람
 
타메로 내려서는 길은 아늑했다. 야크들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있다.
  타메 가는 길은 산허리를 굽이돈다. 길 위아래 감자밭이나 초지에서 풀 뜯던 야크들은 ‘웬 이방인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네팔 국조(國鳥) 단테(Dante)는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며 숲에서 불쑥 솟아올라 눈을 즐겁게 해준다.
 
  반듯하면서도 웅장하고 황금빛에 ‘부(富)티’가 느껴지는 티베트불교 사원을 지나 타메로 내려설 즈음 외국 트레커들이 올라온다. 이들은 산신령처럼 흰 수염이 자란 황원선씨를 보곤 궁금했던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황원선씨의 재담에 웃음을 터뜨린다.
 
  “테시랍차 높이를 250m 올렸어, 6000m라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높은 델 어떻게 올랐냐’며 커다란 눈이 더 커다래지는 거야. 그 사람들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나는 뭐야. 테시랍차 넘는 사이 노인네가 됐으니….”
 
  타메는 예상보다 널찍한 분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300~400년 전부터 티베트-네팔 국경인 낭파라(Nangpa La·5716m)를 넘어온 티베트인들이 목축업과 감자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트레커를 대상으로 로지와 식당도 운영하며 사는 마을이다. 40여 가구 12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고 한다.
 
  예약된 로지인 ‘예티 마운틴 홈’(Yeti Mountain Home)에 들어서자 푹신한 양탄자가 깔려 있고, 깨끗하게 차려입은 셰르파니(셰르파 아가씨)가 반짝이는 주전자에 담아온 차를 접시에 받친 잔에 따라준다.
 
  따뜻한 물로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몸을 닦아낸 뒤 반짝반짝한 그릇에 담긴 음식으로 모처럼 배를 불리고 또 푹신한 침대에서 하룻밤 자고 나자 생기가 넘친다. 어여쁜 셰르파니가 가져다준 향긋한 커피로 잠을 떨쳐내고 갓 구워낸 향긋한 빵과 계란 프라이, 소시지로 아침까지 든든히 챙겨 먹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모처럼 아늑한 분위기의 로지에서 하룻밤 지낸 포터들 역시 얼굴에 화색이 돈다.
 
  타메는 빛나는 마을이었다. 콩데를 시작으로 티앙모체(6500m), 파니요샤르로 이어지는 산줄기 북면은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보석처럼 빛났다. 그 보석이 반사하는 아침햇살을 누리며 사는 타메 주민들은 하루하루가 축복의 날이다 싶었다. 우리 역시 오늘만큼은 축복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뭐야, 이거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거잖아!”
 
  바로 허릿길로 접어들리라는 기대와 달리 계곡으로 뚝 떨어진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감동 그 자체다. 설산들은 아침햇살에 경쟁하듯 반짝이고 거대한 절벽은 하늘에서 늘어뜨린 보석 발처럼 아름답고 신비감 넘친다. 여기에 탐세르쿠(6608m)와 캉테가(6685m), 쿠숨캉구루(6367m) 등 쿰부 히말의 명봉들은 실루엣 형상으로 신비감 넘치는 자태를 자랑하며 새 아침을 맞고 있다. 랄리구라스 빨간 꽃이 핀 숲길은 동백나무숲을 걷는 듯하고, 산중 감자밭 돌담길은 제주 올레를 따르는 느낌이다.
 
  숲이 터지면 쿰부 주민들이 신성시 받드는 쿰비율라(5761m)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기슭에 자리한 마을들은 너무도 아늑하게 느껴진다. 캉테가와 탐세르쿠의 실루엣이 설산으로 하얗게 변하고 설릉과 설봉 위로 설연이 날리는 모습이 바라보일 즈음 아마다블람(6856m)이 머리를 불쑥 내밀더니 곧 멧산(山)자 몸뚱어리를 통째로 드러낸다. 쿰부히말을 대표하는 미봉(美峰)답게 압권을 이루고 있다.
 
  오전 11시 반밖에 안 되었는데 최준회씨는 눈요기에 지쳐 허기를 느꼈는지 점심 먹자 재촉한다. 조망 좋은 곳에서 삶은 감자 몇 알로 점심을 때운 뒤 자리를 옮기자 또다시 터지는 황홀한 조망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번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도 머리를 내밀었다. 로체에서 눕체로 뻗은 능선을 대장군의 갑옷처럼 걸친 에베레스트는 정수리 위로 설연을 날리며 당당하고도 기품 넘치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에베레스트는 점점 높이를 더해가고 그 오른쪽으로 로체(8516m)와 바룬체(7220m) 그리고 아마다블람까지 멋지게 조화를 이루며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자아낸다. 에베레스트는 역시 크고 높은 산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10여 일 동안 부처님 손바닥에서 논 손오공 신세였는지 모른다. 시미가온에 올라선 이후 내내 에베레스트 기슭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콩데 가는 길
 
  길가에 앉아 있는 미국 트레커들 뒤로 콩데 북벽에 가르마처럼 보이는 산길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 깊이 들어섰다가 다시 절벽 길로 이어지는 산길은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다 싶다. 미국 트레커들이 경고한 대로 콩데 가는 길은 험하고 길었다. 열흘간 트레킹으로 지친 다리에 실핏줄이 다시 서게 하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히말라야 산중에 깊고 거대한 골짜기가 있다는 게 신비롭기만 했다. 거대한 절벽 사이로 형성된 골짜기는 거무튀튀한 빛에 푸른 숲, 하얀 눈이 뒤섞여 한결 심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상단부 절벽은 속인들의 범접을 꺼리는 듯 엄숙하게 느껴졌다.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 절벽 한가운데로 파인 골짜기를 따라 수정같이 맑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냥 물이 아니었다. 천상의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축복의 성수(聖水)였다.
 
  신비감 넘치는 골짜기를 향해 한없이 파고들 듯하던 산길은 물줄기를 가로지르자 벼랑으로 이어졌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은 벼랑길을 한층 험하게 하고,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수십 길 낭떠러지는 우리를 긴장케 했다. 허릿길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낭떠러지 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좁은 산길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옮기게 하고, 눈을 길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평탄한 허릿길로 접어들고 다시 쿰부히말의 멋진 설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에베레스트 왼쪽으로 타부체(6367m)와 촐라체(6335m)까지 솟구치며 코발트빛 하늘 아래 멋진 그림을 그려놓아 조망의 즐거움은 배가되고, 그 장엄한 풍광에 넋을 잃거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또다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그림 같은 분위기의 예쁜 산막이 눈에 들어온다. ‘콩데 로지’라 이름 붙은 해발 4250m 높이의 산마루에 위치한 예티 마운틴 홈(Yeti Mountain Home)이다. 로지 안으로 들어서자 유리창 밖으로 쿰부히말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한달음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세계 최고봉은 저녁노을이 스며들자 신비스러우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어둠이 몰려오자 오히려 더욱 당당해졌다. 에베레스트는 히말라야의 대왕이었다.
 
 
  또다시 그리워지는 히말라야의 설산
 
  카트만두행 비행기가 다니는 공항이 있는 루클라(2800m)로 내려가는 날이다. 11일이나 걸었음에도 미련이 남았는지 괜히 섭섭해진다. 로지 문밖을 나선 이후 수시로 고개를 에베레스트를 향해 돌리고, 에베레스트가 모습을 감추자 탐세르쿠와 쿠숨캉구루에 눈을 맞춘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그렇게 3시간쯤 걸었을까, 야크를 닮은 커다란 소들이 언덕마루에서 풀 뜯는 모습과 그 옆에서 풀을 꺾어 입에 물고 있는 어린 목동이 눈에 든다. 말도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간식을 나눠 먹은 뒤 랄리구라스 숲속으로 들어서고, 산마루에 올라서기를 서너 번 반복하자 아름드리 잣나무숲으로 접어들고 곧이어 먼지 풀풀 날리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일로 내려선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남체바자르를 향해 오르는 이들도 보이고, 이미 트레킹을 마친 뒤 풀린 다리로 루클라로 내려서는 이들도 보인다.
 
  일행 네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가게를 향해 달려가 맥주 한 캔씩 집어 들었다. 그런데 시원함과 동시에 십여 일간 함께 지내온 친구가 없어진 듯 허전함이 느껴졌다. 설산이 다시금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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