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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경주마처럼 살아온 연기경력 56년 신구

“그때(신인시절)를 봐도 바보 같고, 지금을 봐도 바보 같고…”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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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은 신순기(申淳基). 유치진 선생이 ‘오랠 구(久)’자 들어간 예명 ‘신구’ 지어
⊙ “시트콤 도전? 두려운 것은 없었어. 상황이 웃긴 거지, 연기가 웃긴 게 아니니까”
⊙ “지금도 대본을 결사적으로 외워. 나는 프로니까”
⊙ 배우의 덕목은 성실. “성실이 천재성보다 나아”
⊙ “누가 ‘타고난 배우’라고 말하면 가슴이 뜨끔해”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 1936년생 현역 배우로 로버트 레드퍼드가 있다. 37년생은 더 많다. 모건 프리먼, 앤서니 홉킨스, 잭 니컬슨, 더스틴 호프먼 등이 나오는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수표다. 한국에도 있다.
 
  36년생 배우 신구(申久·82)는 여전히 ‘팔색조’ 현역이다. 진지하고 고뇌하는 연기에서 코믹 연기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과 자신만의 아우라(Aura)를 가졌다는 점에서, 나이는 한 살 위지만, ‘모건 프리먼’과 가장 닮은 배우가 아닐까.
 
  신구 선생은 현재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 출연 중이고 얼마 전 종영한 예능 〈윤식당〉에 출연했다. 또 최근 개봉작 〈비밥바룰라〉에 박인환·임현식·윤덕용과 함께 ‘노년기 소년’으로 분(扮)했다. 네 사람의 연기경력 총합은? 놀라지 마시라. 203년. 세기(世紀)가 두 번 바뀐 세월이다. 1962년 데뷔했으니 연기경력만 56년이다.
 
  신성일(37년생), 박근형(40년생)과 같은 ‘꽃미남’이 아니어서 주로 지치고 가난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은 고집불통 유쾌한 할아버지 역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까. 왕성한 활동은 나이를 지워 버린다.
 
  남달리 귀여운(?) 모습 때문에 ‘구요미’라 불리게 만든 tvN의 예능 프로 〈꽃보다 할배〉에서 “제일 부러운 건 청춘이야. 젊을 때 한껏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한 육성이 기억에 남는다. “청춘이 부럽다”는 말이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그래도 그는 지치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지난 1월 31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선생을 만났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의 공연 시작을 2시간가량 앞두고 있었다.
 
  “대개 기자들이 물어보는 게 다 비슷하니까. … 기왕에 얘기했던 거 찾아봐. 특별히 내가 헐(할) 얘기도 없어.”
 
  — 황병기 선생님 아시죠?
 
  “가야금 하는? 같은 36년생이지만 경기고 한 해 선배야. 51회. 나는 52회. 그때는 6·25를 겪으면서 한 학년에 한두 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왜?”
 
  — 오늘 돌아가셨어요.
 
  “(화들짝 놀라며) 그래? 오늘 신문에 없던데? … 아까운 사람이 갔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미국에 36년생 로버트 레드퍼드나 37년생 모건 프리먼, 잭 니컬슨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36년생 신구와 오현경이 있어요.
 
  “임권택 감독도 36년생이고 엄앵란, 최희준, 남보원, 작곡가 김희갑, 대우그룹 김우중이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김우중이는 우리(경기고) 동기야. 걔 형이 ‘덕중’인데 6·25 때 (진학이) 한해 늦어져서 형제가 (경기고를) 같이 졸업했어.”
 
  — 참, 오늘 대학로에 오다 보니, 버스 광고에 김영옥 선생님과 함께 나오시데요. 변비약 광고.
 
  “하하하.”
 
  김영옥은 37년생이다. 41년생 나문희(최근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주연으로 출연했다)와 함께 요즘 ‘국민 할머니’로 불린다. 문득 김영옥이 한 대담프로에 출연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구·이순재의 엄마 역할도 했다”며 웃던 기억이 났다.
 
  그 얘기를 하니 신구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거예요. 그 양반은 오래전부터 어머니, 할머니 역할 많이 했잖아요.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전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2010년 공연한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운전사 ‘호크’ 역을 맡은 배우 신구.
동명의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이 운전사로 나왔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전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다. 지금도 가장 행복할까?
 
  — 선생님, 지금도 행복하세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지금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요. 실제로 그렇고. 말하자면, 과거가 있어서 현재가 있는 거고, 현재가 진행되면 미래가 있는 것이고.”
 
  — 현재에 충실한다?
 
  “네, 지금이 좋아요.”
 
  — ‘꽃할배’로 불리시는데, 10대와 20대까지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요.
 
  “내가 드라마나 연극에서 부정적 인물도 하고, 딱딱한 인물 역에 많이 출연했는데 언젠가 시트콤을 했어. 그거 하면서 경계가 무너진 것 같아. 사람들이 날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어.”
 
  2000년 12월부터 2002년 2월까지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그는 75세 ‘노구’ 역을 맡았었다. 그의 아들이 노주현과 이홍렬.
 
  드라마 속 그는 지나치게 ‘보약’을 밝히며 뜀박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기는 두 아들에게 떼쓰기. 그간 보여주었던 ‘진지모드’와 ‘무표정’ 연기를 탈탈 털어 버리고 철딱서니 없는 망가진 캐릭터를 창조했다.
 
  2007년 7월부터 2008년 1월까지 방송된 MBC 일일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도 떠오른다. 큰소리 뻥뻥 치며 핏대를 올리지만 정작 마누라에 꽉 잡혀 사는, 허풍 떨다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마는 ‘허당 신구’로 나왔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이젠 초등생조차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소매를 잡고 그러더라고. 시트콤 덕에 대중접촉 폭이 넓어진 것 같아. 이전엔 사람들이 곁눈질하며 쳐다봤다면, 지금은 정면으로 다가오는 걸 느껴요.”
 
  — 시트콤에 도전하실 때 두렵지는 않았나요.
 
  “두려운 것은 없었어요. 시트콤이나 정극이나 코미디나 기본이 같거든. 상황이 웃기는 거지, 연기가 웃긴 게 아니니까.”
 
  몸으로 글을 쓰는 배우들은, 자신과 동일시하며 혹은 투사, 전이하며 다가오는 팬(관객)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까.
 
  “받은 사랑을 관객에게 되돌려주는 방법? 그야 연기지. 감동받게 만드는 것이지. 최선을 다해서….”
 
  — 어떻게?
 
  “연극 입문할 때 하는 얘긴데…, 배우로서 인물을 창조한다는 게 작가나 연출자가 요구하는 것과 합쳐야 할 것 같아. 왠고 하니, 작품이 요구하는 인물의 색깔이 있을 것 아닙니까. 또 연출가의 요구도 있을 것이고. 그게 삼각형으로 만들지, 사각형으로 만들지 연출가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만 배우는 (작가와 연출가 사이에서) 잘 조화를 이뤄야지. 그러나 배우 중에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죠. 그게 꼭 (작품을) 성공시키느냐 여부는 모르겠지만….”
 
모 라면 CF 때 탤런트 이서진과 함께. 배우 신구는 CF에도 자주 캐스팅된다.
  — 배우로서 극중 인물과 소통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작가와 얘기하는 게 중요하죠, 기본적으로. 그 작가의 사상이 담겨 있으니까. 충분하게 얘기를 하면 할수록 좋아요, 내 경우엔.”
 
  선생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모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오하게 축약된 ‘배우의 일생’ 이야기가 나지막히 흘러나왔다.
 
  “나는 평생 이 일 외에 다른 일을 해 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슬럼프라고 할까, 힘이 들 때도 다른 직업을 택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이 동아줄밖에 없다고 생각해 다시 붙잡고, 다시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매 공연이 똑같진 않아요. 관객 반응도 다를 테고. 오시는 분의 성향이나 (객석의 인적) 구성이 연극을 많이 좌우하거든. 그러니까, 어제는 흡족하다고, 계획대로 (연기가) 잘 진행됐다고 느끼다가도 오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전날은 실망스럽다가도 오늘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죠. 완성이 없지.”
 
  — 내공이 있어야겠네요.
 
  “견뎌내야지. 완성을 찾아가는 것이죠.”
 
  — 혹시 일탈하신 적은 없나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 공연장을 벗어나 차를 타고 바닷가에 간다든가 하는….
 
  이 질문에 대한 선생의 답은 단호했고, 단문으로 답했다.
 
  “아뇨.”
 
  —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연극비평가나 공연 담당 기자가 있나요.
 
  “(내가) 30~40대까지만 해도 그런 비평가들이 있었고 리뷰가 자주 실렸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라졌어. 신문도 거의 없고.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제대로 된 비평이나 리뷰에 대한 갈증이 있다. 아주 날카롭게 조목조목 지적하는…”이라고 했다.
 
 
  “햄릿도, 리어왕도 못해 봤어. 하고 싶은 배역 다 할 순 없어”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서 고집불통 노인 앙리로 출연한 신구.
  선생의 본명이 신순기(申淳基)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의 예명을 동랑(東郞)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이 직접 지었다는 사실도.
 
  — 동랑 선생이 지은 ‘오랠 구(久)’ 자 덕에 지금까지 롱런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드라마센터(지금의 서울예대)에서 선생님께 연기를 배울 때였는데 (선생님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당신 사무실을 찾아가 이렇게 말씀 드렸어. ‘본명이 신순기인데, 다른 배우들 성함은 멋도 있고 그럴듯한데 저는 촌(村) 냄새가 나요’라고. ‘이름을 바꿔서 연극을 하려는데 작명을 해 주십시오’ 하니 동랑 선생께서 ‘그래? 알았어’ 그러셨어요. 그러고 한 달이 지나도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잊어버리셨나 그랬어요. 나중에 날 찾으셔서 뵈었더니 ‘이걸로 써 봐’ 그러셔요. 왜 ‘오랠 구’ 자로 지으셨는지 여쭤보지도 못했다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답한 게 다예요. 지금도 왜 그 이름으로 작명하셨는지 이유를 몰라요.”
 
  — 언제 ‘신순기’라는 이름이 그립나요.
 
  “그립다기보다 어렸을 때 알았던 친구들이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르죠. 그 친구들 만나면, 그때 동심이나 정서로 돌아가죠.”
 
  선생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생 아버지, 할아버지 역할만 했다. 근사하게 사랑하고 죽고, 키스하는 연기를 한 번도 못해 봤다”고. 다시 한 번 ‘저격’해 보았다.
 
  — 지금도 키스 신이나, 베드 신 못하신 게 아쉬운가요.
 
  “에이, 지금은 내가 사양해.”
 
  — 37년생 신성일, 40년생 박근형 같은 후배 연기자를 부러워하신 적이 있으시죠?
 
  “아, 있죠. 그 미남들은 젊었을 때 주인공 맡았으니까. 난 애초에 이렇게 생겼으니 부럽죠.”
 
  — 그런 배역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으셨던 거죠?
 
  “아예, 생각도 안 했어.”
 
  — 최근 개봉작 영화 〈비밥바룰라〉는 노인 4명의 버킷 리스트에 대한 얘기인데, 선생님에게 버킷 리스트가 있나요. 아니면 배우로서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는?
 
  “근데 그 작품(〈비밥바룰라〉)이 애초에 완성도가 내 맘에 안 들었어. 허점이 많아. 그래서 맛깔나게 말하는 임현식·박인환이 어우러지면 (작품이) 나아지려나 했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였어. 그래서 다 촬영했는데, 개봉을 바로 안 하고 묵혔고 재촬영을 두 번이나 했어요. 그랬는데도 애초에 (작품의) 기초가 그러니까 별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거지.”
 
  버킷 리스트 얘기 대신 영화 〈비밥바룰라〉 얘기만 하길래 다시 질문을 던졌다.
 
  — 배우로서 꼭 하고 싶은 배역이 있으세요? 예를 들어 햄릿 역 같은….
 
  “내가 못해 본 역이 많아요. 연극배우라면 누구나 맡고 싶은 햄릿도, 리어(왕)도 못해 봤어요. 배우가 자기 하고 싶은 역할을 다 한 배우는 없어. 늘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받으니깐. 그게 인생이야. 자기가 제작해서 주연을 맡으면 할 수 있지만….”
 
  — 직접 제작을 하고 싶은 생각은 안 하셨나요.
 
  “없어.”
 
  — 좋은 배우, 좋은 연기란? 배우 김학철은 “액션보다 리액션이 좋은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했고, 배우 정진각은 “말을 꾸미지 않고 깨끗하게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해 주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했어요. 선생님은요?
 
  “허허… 그런 것들이 다 포함된 배우가 좋은 배우지. 우선은 자기(배우) 위주가 아닌, 작품을 쓴 원작자의 의도에 충실해야지요. 기둥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을 붙여서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 배우의 일이 될지언정….”
 
  — 연출가 오순택은 “배우는 캐릭터와 배우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배우 자신과 캐릭터는 멀어지고 결국 결별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는 일부러 거리를 두려 한 적은 없어요. 비교적 (내 성격을)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지. 맡은 역할이 내 성격과 근접한 적도 있었고, 아주 떨어진 역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쪽(캐릭터)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지.”
 
  — 젊은 시절, 누군가의 자질을 딱 한 가지 얻을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그때, 말론 브란도를 감명 깊게 봤어.”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전에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 요즘도 보지 않습니까.
 
  “안 봐. 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그런데, 여럿이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는 게 쑥스럽고, 그래서 내가 혼자 있을 때 집에서 봐요.”
 
  — 우리나라에서 제일 연기를 잘하시잖아요.
 
  “아이, 무슨….”
 
  — 친지이나 친구들에게 출연작을 보러 오라는 말도 안 하시나요.
 
  “잘 안 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까운 친구들이 두 달 공연하면서 어떻게 보러 오라는 말도 안 하느냐고 해서 이번에는…, 하하하.”
 
  지금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 가까운 친구들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호기심 많고 발랄한 대학생 ‘콘스탄스’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그리고 있다.
 
 
  “노력하면 다 천재 근처에 가죠”
 
2013년 3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연극 〈안티고네〉 연습을 하고 있는 배우 신구. 연기인생 처음으로 희랍 비극에 출연했다.
  평생을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섰으니 신구 선생 정도면 울렁증 같은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 지금도 무대에 서면 긴장하시나요.
 
  “긴장하죠. (연기) 초년생 때만 긴장하는 게 아니고, 나름대로 경험을 했지만… 또 약간의 긴장감이 작품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돼요. 너무 두 손 놓고 있기보다….”
 
  — 배우 김응수 선생은 지금도 매일 아침 일어나 시 한 편씩을 외우면서 발성연습을 하신대요. 나름의 발성연습 방식이 있나요.
 
  “누구?”
 
  — 김응수.
 
  “응수, 응수…. 나는 웬만해선 아무리 샤우팅을 해도 결절이나 목이 쉬지를 않아요. 내가 처음 드라마센터에서 공부할 때 지금은 돌아가신 바리톤 이인영 선생님께 발성법을 배웠어. 호흡을 조절해 목을 사용하는 방법이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음의 영역대가 있다고 해. 자기 영역대의 한계선까지 개발해 놓고 가끔 그 영역대 끝까지 가는 연습을 해요.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 그 방식을 지금도 매일 하세요?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음…, 난 술을 좋아하니까 거푸 마시면 목에 녹이 슬거나 하거든. 하지만 연습할 때 그 영역대에 도달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
 
  — 신인배우 볼 때 어떤 점을 중시하나요. 태도, 성격, 자질 등등.
 
  “다 필요하죠. 다 필요한데 인격체가 돼야 할 것 같아. 인성교육의 바탕에서 배우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요즘 친구들이 영악하고 재주가 있고 표현력이 좋고 그래요.”
 
  — 평범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제일 배우 되기가 어렵다던데요?
 
  “태어난 환경에 따라 다 다르지.”
 
  — 때론 (자신이 믿는) 종교도 연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연기를) 할 수 없죠.”
 
  — 후배 배우들 중에 ‘타고난 배우’가 있던가요.
 
  “천재? 다 노력하면 그 근처에 가죠. 천재라고 표현하기보다 노력형이 있지. 그 친구들 보면 대견해.”
 
2007년 9월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400회를 맞았을 때다. 판사 역으로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했던 대사가 유행어가 됐다.
  신구의 표정연기 캐릭터는 넉넉하다.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에서 판사 역으로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근엄하게 말하거나,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미스터 리’가 사람을 만날 때나 누군가 위로할 때 “초코파이 줄까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던 표정, 그리고 극중 물에 빠져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뒤 “초코파이 사 주세요. 백 개 사 주세요” 하던 표정은 실로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특허품이다.
 
  — 배우들은 표정연기를 어떻게 창조하나요.
 
  “글쎄…(웃음). 그것도 나름대로 훈련이 필요하지. 표현하려면 안 쓰는 근육이 필요하거든. 어떤 분야든 한 가지 일을 평생 한다면 성공하겠지만 10년 정도로는 ‘이제 좀 그쪽 일을 잘 안다’ 정도지. 굳이 연기자가 아니더라도 10년 해서 전문가가 될 수 없잖아. 10년이란 시간은 그냥 입문기야. 표정연기도 오랜 시간과 연습, 노력이 만들어 내는 거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 배역이 ‘아버지 신구’에서 ‘할아버지 신구’로 바뀌었다. 얼굴에 드리운 표정의 농도도 점점 짙어진다. 반대로 예능에선 ‘귀요미’ 캐릭터다. 얼굴의 반전이 파격에 가깝다.
 
  — 이 시대의 아버지론이 듣고 싶어요.
 
  “개인적으론 아버지로서 바람직하지 못했어요. 자식과 같이 여행한다든가 하는 기억이 없거든요. 하나(아들)밖에 없는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걔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별로 없어.”
 
  — 신구 선생님의 부친은 어떠셨어요.
 
  “똑같았어. 하하하.”
 
  — 아이에게 어릴 때 강조하셨던 말이 있나요.
 
  “정직해라. 그리고 시간을 지켜라.”
 
  — 요즘도 매일 소주 한 병씩 드세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은 다들 각자 차가 있으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같이 술 먹기가 어려워요. 이런 작품을 해야 동년배하고 어울리지. 요즘 혼술, 혼밥이란 말을 하잖아요. 집에 가서 혼자 먹는 술이 맛있어, 일 끝나고. 물론 같이 어울릴 때도 재밌고 맛있지.”
 
  — 사모님이 싫어하실 텐데.
 
  “술 먹는 것? 아, 싫어하지.”
 
  — 같이 드시면 되는데.
 
  “(아내는) 한 잔도 못해.”
 
  — 요즘도 18번은 ‘번지 없는 주막’인가요.
 
  “응. 근데 부를 기회가 잘 없어. 하하하.”
 
 
  평생 연기하느라 경주마처럼 살아
 
  신구 선생은 젊은 사람도 외우기 힘든 대사를 “결사적으로 외운다”고 말했다. ‘결사적’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죽음을 각오한다’다.
 
  “암기하는 과정 자체는 힘들지만 결사적으로 외워요. 그래도 빠지는 것도 틀리는 것도 있지만 내가 프로인데, 내 직업인데, 내 일엔 최선을 다해야지요.
 
  물론 NG 나는 상황도 발생해요. 그렇다고 무대 막을 내릴 순 없잖아요. 지금 공연을 두 달째 하고 있는데, 이전에 아무 문제가 없던 대목에서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전후 상황을 봐서 반드시 그 단어는 아니지만 흐름에 맞게 비슷한 단어로 대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애드리브도 하고.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쇠퇴하는 걸 느끼죠.”
 
  — 배우로서 꼭 필요한 덕목이 뭔가요.
 
  “성실이죠. 재능은 말이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거든. 누가 더 성실하게 노력하고 개발하느냐에 달렸어. 그건 천재성보다 더 나을 것 같아요.”
 
  — 그래도 선생님더러 ‘타고난 배우’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으시잖아요.
 
  “하하하. 그런 말 들으면 가슴이 뜨끔하지.”
 
  — 신인배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약간 심각한 질문으로 던졌지만 선생의 답변은 심플했다. 그리고 즉답이 돌아왔다.
 
  “없어요. 거의 품성이나 인성에서 달라진 게 없어요. 그때(신인 시절)를 봐도 바보 같고, 지금을 봐도 바보 같고….”
 
  —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일은 뭔가요.
 
  “나는 아들한테도 그렇지만 집사람과도 같이 여행하거나 그러지 못했고….”
 
  이 대목에서 선생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평생 연기하느라 경주마처럼 살았으니까. 이런 것, 저런 것들이 다 부족한 것 투성이죠.”
 
  — 그래도 성공한 일을 꼽자면?
 
  “이것(연기)이라고 생각해. 이것 하나는…. 역량이 부족해서 그렇지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아도 부족한 것을 어떻게 해.”
 
  — 혹시 종교는 있으세요?
 
  “없어요.”
 
  — 다시 태어나도 ‘배우의 길’을…?
 
  “지금까지 살아오며 돈은…, 모으지도 못했고 내가 좋아서 이렇게 살아왔는데 다시 태어나서 이걸 할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크게 후회하고 그러진 않았어요.”
 
  — 게맛, 실제로 좋아하세요?
 
  “(진지하게)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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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태준    (2018-02-23)     수정   삭제 찬성 : 24   반대 : 18
너무 좋은 인터뷰 감사해요^^ 신구 선생님도 건강하시길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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