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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김무환의 사진 〈송쿨 가는 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세상의 마지막 호수 ‘송쿨’, 방랑의 길에서 만난 ‘겨울 나그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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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기스스탄의 2000개의 호수 중 가장 아름다운 ‘송쿨’… 주위 산협은 거대한 짐승 뼈 무덤 닮아
⊙ 짧았던 삶의 거의 마지막에 완성한 작품 〈겨울 나그네〉… 최인호의 소설 《겨울 나그네》, 영화와 드라마·뮤지컬로 제작
김무환 작가의 사진 〈세상의 마지막 호수 송쿨〉.
  키르기스스탄은 석양이 아름다운 나라다. 그런 명칭이 붙은 것은, 해 질 녘 도보 여행자들이 느낀 인상 깊은 산협(山峽) 때문일까. 그곳에 ‘세상의 마지막’이란 수식어를 단 호수가 있다. 송쿨(Son-Kul Lake). 마지막 호수라는 뜻이란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2000개의 호수 중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불린다.
 
  《파미르 노마드》를 쓴 사진가 김무환(48)의 ‘송쿨’ 사진은 화려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자세한 설명도, 은유적 장치도 사진에서 찾을 수 없다. “바람의 말을 받아 적으며 구름의 길을 읽으며 걸으면 그만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도보 여행자의 담백함이 사진에 담겨 있다.
 
  그에 따르면, 송쿨을 보기 위해선 여러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넘다 보면 어딘가로 향하다 멈춘 바퀴 자국, 죽은 양(羊)과 앙상한 짐승의 뼈를 만난다. 기이한 돌탑 무덤을 만난다. 끝도 없이 이어진 산, 산 구릉을 핥는 뭉게구름, 호수로 구불구불 흘러드는 개천, 소와 양 울음소리, 배를 드러내고 풀밭에 드러누운 배(舟)들, 밤하늘 별천지와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는 송쿨.
 
  사진 속 송쿨은 바람이 물결을 쓸어내리고 있다. 손을 대지 않아도 살얼음이 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여름철에도 밤이면 물웅덩이에 살얼음이 낀다고 한다. 어쩌면 호수라기보다는 큰 바다와 가깝다. 호(弧)를 그리며 파고든 물굽이를 자르고 누군가 둑길을 놓았다.
 
  송쿨 사람들은 죄다 무뚝뚝해 보인다. 무표정한 그곳 날씨, 대지와 닮아 있다. 파미르를 오가는 질박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인상이다. 사진에 빠져들면 고립된 장소, 고독한 시간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묘하게도.
 
  〈송쿨 가는 길〉에 등장하는 산협들은 겹겹이 물결이 치는 듯하다. 다시 보면, 산협들이 거대한 짐승의 뼈 무덤을 닮았다. 까마득한 산협곡에 빨려들어 ‘나’란 존재가 사라진대도 어쩔 수 없다. 산협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자주 몰려드는 안개구름이 시야를 막을 것 같다. 자칫 후드득 우박이 정수리를 때린대도, 오한으로 한 발자국 더는 못 걷는다 해도 불가항력이다. 어쩔 수 없다. 대기가 뿜어내는 냄새와 촉감이 사진 속에 배어 있다.
 
  문득 혜초(慧超·704~787)의 《왕오천축국전》의 한 문장이 떠올라 적어본다.
 
  … 차디찬 눈은 얼음에 들러붙고 찬바람은 땅을 가르네. 큰 바다는 얼어서 단(壇)을 흙손질한 듯하고 강물은 벼랑을 덮어 갉아 먹는다. 용문(龍門)에는 폭포가 끊기고, 우물 테두리는 뱀이 똬리를 튼 듯하구나. 불을 벗 삼아 계단을 오르며 노래한다마는 어찌 저 파밀(播密)을 넘을 수 있으랴.…
 
  혜초가 말한 ‘파밀(播密)’이 바로 파미르 고원을 의미한다. 파미르 고원은 타지키스탄에 속하지만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접해 있다.
 
  인도와 서역으로 목숨 건 구법 여행을 떠난 신라 고승 혜초. 그는 인도와 간다라(파키스탄), 카슈미르, 중앙아시아 일대를 순례하고 당나라 장안(시안)으로 돌아왔다. 4년간 2만km를 답사하고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문헌으로 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기다. 그는 송쿨에 가지 못했다. 만약 기록으로 남겼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여행자와 방랑자가 찾아왔을지 모른다.
 
 
  송쿨 가는 길
 
김무환 작가의 〈송쿨 가는 길〉.
  사진가 김무환에 따르면, 송쿨에 가려면 코치코르나 나른에서 여행사를 통해 지프를 대절해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차량비는 3000~5000솜. 1솜이 20원이니 아무리 비싸도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다. 여행사는 차량뿐만 아니라 유르트 스테이(천막 스테이), 말 타기, 현지인 가이드 등을 연결해 준다. 코치코르나 나른에서 출발하면 대체로 호수 동쪽(바타이 아랄)이나 남쪽 편으로 접근하면 된다.
 
  만약 당신이 혼자 여행을 왔다면? 개별 여행자를 송쿨로 데려다줄 대중교통편은 없단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호수 북쪽 줌갈, 키자르트 마을에서 시작해 도보로 접근하는 것이다. 마을까지는 코치코르에서 떠나는 차이 방면 합승택시나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서 내리면 된다. 홈스테이를 하면 말 트레킹을 주선하기도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하루 만에 걸어서 송쿨을 만나고 싶다면 지프 로드를 따라 가파른 투주 아슈 고갯길을 넘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김무환 작가는 “줌갈에서 출발해 클렘체 계곡에서 하룻밤 유르트에 머물렀고 다음날 잘기스 카라가이 고개를 넘어 송쿨에 닿았다”고 말했다. 송쿨 호수변 유르트 비용은 아침저녁 식사를 포함해 1박에 700솜이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의 앨범.
  슈베르트가 남긴 〈나의 꿈〉이란 글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여러 해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바다출판사가 2016년 펴낸 이안 보스트리지의 《겨울 나그네》 참고)
 
  이렇게 해서 완성된 곡이 〈겨울 나그네〉다. 이 곡은 독창자와 피아노를 위한 24곡의 노래로 이뤄져 있다.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였다. 짧았던 삶의 거의 마지막에 완성한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1828년 겨우 서른한 살의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세계적인 성악가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슈베르트는 생전에 이 곡의 연주를 듣지 못했다. 초연은 슈베르트 사망 후 친구였던 바리톤 요한 포글에 의해서 이뤄졌다. 24곡의 〈겨울 나그네〉 중에서 다섯째 곡인 ‘보리수’, 여섯째 곡인 ‘흐르는 눈물’, 마지막 곡인 ‘거리의 늙은 악사’ 등이 유명하다.
 
  ‘보리수’는 피아노가 도입부와 함께 시작한다. 긴박한 맥박처럼 몰아치는 셋잇단음표다. E장조의 살짝 고양되는 느낌도 든다. 다른 곡이 C단조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청자(聽者)를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리수’의 첫 소절은 이렇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그 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독일 가곡은 이탈리아 가곡과 달리 억제된 감정과 차원 높은 세련미를 요구한다. 그래서 특별한 성악적 기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Diethrich Fischer-Dieskau)가 남긴 〈겨울 나그네〉 음반이 최고의 레코딩으로 평가받는다.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의 〈겨울 나그네〉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겨울 나그네〉에는 실연의 쓰라림에 괴로워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슈베르트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한 청년이 한겨울 이른 새벽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그 사랑을 잊으려 방랑의 길을 떠난다. 스산한 겨울 들판을 헤매는 그의 마음은 절망에서 차차 방심 상태로 변하면서 죽음에 대한 상념이 교차한다. 그리하여 동구 밖에서 늙은 떠돌이 악사(樂師)에게 ‘함께 겨울 나그네 길을 떠나자’고 하는 데서 가곡은 끝이 난다.
 
 
  작가 최인호가 쓴 《겨울 나그네》, 영화와 드라마로
 
1983년 9월 1일자 한 일간지에 최인호의 연재소설 〈겨울 나그네〉가 처음 실렸다.
  1983년 9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고(故) 최인호(崔仁浩)의 장편소설 《겨울 나그네》도 잊을 수 없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 아아,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모습보다도 낮은 목소리의 노랫소리부터 들려오기 시작한다. 낮은 휘파람 소리와 더불어 까마득한 기억의 그늘 속에 보리수처럼 우뚝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스토리는 이렇다. 대학 교정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우(강석우)는 첼로를 안고 가던 음대생 다혜(이미숙)와 부딪힌다. 이후, 다혜와 민우는 가까워지지만 그들에게 불행이 닥친다. 사업 실패로 아버지가 쓰러지고 민우는 혼자서 채권자들의 강압에 맞서다가 도망을 가게 되는 신세가 된다. 그 사이 아버지는 죽고 계모는 다른 가족을 데리고 이민을 가버린다. 민우는 기지촌에 살고 있다는 친이모(김영애)를 찾아가고 자신의 출생비밀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민우를 찾던 다혜는 현태(안성기)를 의지하게 되고 현태는 다혜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면서 민우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다혜를 잊지 못하면서도 자신과 어울리는 여자는 은영(이혜영)이라고 생각하며 기지촌에 남아 있는 민우. 다혜는 현태와 결혼하고 민우는 기지촌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하고는 자살한다.
 
  장편 《겨울 나그네》는 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되어 20년 동안 100쇄 이상 중판될 정도로 많은 이에게 읽혔다. 그러다 2005년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겨울 나그네》는 1986년 곽지균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강우석·안성기·이미숙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었다. 1990년 14부작으로 방영된 KBS2 수목드라마 〈겨울 나그네〉도 많은 이가 기억한다. 손창민이 민우, 김희애가 다혜, 정성모가 현태로 열연했다. 또한 윤호진씨의 연출로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진 일도 있다.
 
  최인호는 왜 소설 제목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따왔을까. 2005년 간행된 열림원판(版) 《겨울 나그네》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제목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서 빌려오고 소설에 등장하는 소제목들 역시 ‘보리수’ ‘거리의 악사’와 같이 〈겨울 나그네〉 속의 연가곡 중에서 따온 것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가슴 아픈 청춘의 방황과 참혹한 젊은 날의 슬픔을 그리고 싶은 열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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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사랑    (2018-01-07)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2
이 기사에 소개된 문구가 나도 중앙 아시아 여행책 파미르 노마드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였는데 ... ...
바람의 말을 받아 적으며 구름의 길을 읽으며 걷는다. 내 몸은 구름 그림자에 파묻혔다가 빠져나오길 되풀이 한다.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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