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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정통사극(大河正統史劇)은 부활할 수 있을까

“시대정신 갖춘 작품이 의미와 재미 둘 다 잡는다”

글 : 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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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하사극 주춤, 팩션·퓨전사극 등장… KBS도 〈다산 정약용〉 편성 불발 이후로 잠정 중단
⊙ 80~90년대 〈조선왕조 오백년〉 〈용의 눈물〉 흥행으로 대하사극 부흥기 진입… 〈태조왕건〉 성공으로 2000년대 사극의 발전 이룩해
⊙ [장르의 퇴조] 고미숙 고전평론가 “지금 문화 콘텐츠는 짧고 경쾌한 호흡이어야”, 박노현 교수 “공감할 만한 이야기 하느냐가 관건”
⊙ [제작비 부담] 경영진 “1년에 대략 230억원 제작비 투입”, 제작진… 광고로 수익 내기 어렵고 미술비, 세트비에 촬영기간까지 길어
⊙ 고(故) 신봉승 작가 “역사 소재로 한 소설·드라마, 사실(史實)과 얼마간 달라도 그 시대가 지닌 시대정신이 달라지거나 왜곡돼서는 안 돼”
⊙ 윤흥식 전 KBS 드라마 국장 “시청률·제작비·관행에 집착 말아야… 공영방송, 책임감 가지고 ‘역사관 정립(正立)’의 마음으로 출발했으면”
KBS 대하사극 〈정도전〉의 한 장면. 오늘날 100부작, 200부작의 대하 장편 역사드라마는 자취를 감췄다.
빈자리에는 젊은 시청층을 사로잡기 위해 현대적 트렌드를 접목한 퓨전·픽션사극이 들어왔다. 사진=뉴시스
  “대하사극이 안 나오니 너무 허전하고 섭섭하다.”
 
  2017년 봄 네이버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댓글이 이어졌다. “(나도) 상심이 크다” “퓨전도 많지만 정통도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는 등 대부분 글쓴이의 의견에 동조하는 내용이었다. 마니아들은 아직 다룰 만한 소재도 많다고 했다. 척준경·정몽주·광해군에 세도정치와 구한말 시대 등을 추천하는 그들의 상상력에서 대하사극이 실종된 현 세태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한 마니아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암흑기’ 때도 챙겨봤다”며 “〈무인시대〉와 〈용의 눈물〉 〈태조왕건〉 〈정도전〉 등을 ‘정주행’(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연달아 시청하는 것)하면서 위로받고 있다”고 했다.
 
  바야흐로 대하정통사극의 실종(失踪)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왔다. 과거 광활한 대지를 가로질러 말달리며 흙먼지를 휘날리던 100부작, 200부작의 대하 장편 역사드라마는 자취를 감췄다. 요즘은 50부작이 넘는 사극 중에서도 정통이나 본격을 표방한 경우는 드물다. 국민드라마·안방드라마로 통칭되던, 온 가족이 함께 흥미롭게 시청하던 풍경도 이제는 없다. 빈자리에는 젊은 시청층을 사로잡기 위해 현대적 트렌드를 접목한 퓨전·픽션사극이 들어왔다.
 
  대하사극의 본산(本山) KBS에서도 잠정적으로 편성 보류 결정을 내렸다. 2016년 〈장영실〉에 이어 2017년 방송될 예정이었던 〈다산 정약용〉 편성이 불발된 것이다. 2016년 8월 31일 KBS 관계자는 한 언론 매체에 이달 28일 제작투자회의에서 편성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정해룡 KBS2 드라마 편성 담당 국장 역시 최근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대하사극 편성 계획과 관련 “KBS에서 대하드라마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조금 더 여건이 좋아진다면 다시 추진해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아직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 여러 가지 형편상 지금 당장의 계획은 없다”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전했다.
 
 
  사극의 분화(分化), ‘정통’에서 ‘퓨전’까지
 
  대하사극이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극, 즉 대하드라마라는 방송 장르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대하사극이란 영화가 아닌 방송 드라마에 한정한다. 학자마다 세부적 견해를 달리하지만 연구서 및 학술논문 등을 종합하자면 첫째, 사극은 정통사극(正統史劇)과 통속사극(通俗史劇)으로 나뉜다. 정사(正史)에 충실하거나, 정사를 바탕으로 야사(野史)를 약간 첨가해도 사실 자체에 대한 왜곡이나 수정이 거의 없는 게 정통사극이다. 통속사극은 드라마적 픽션(fiction·허구)을 자유롭게 활용해 가공인물과 가공사건들을 얼마든지 펼쳐낼 수 있는 이른바 ‘역사라는 옷을 걸친 멜로드라마’와 같다.(최상식, 《TV드라마 작법》, 제삼기획, 1994)
 
  둘째, 정통사극에서 ‘팩션(fact+fiction)사극’과 ‘퓨전(fusion)사극’이 분화돼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팩션사극은 팩트와 픽션, 즉 역사적 사실과 작가·감독의 상상·기획을 융합시킨 것이고, 퓨전사극은 역사의 배경을 빌리되 가상을 전제하거나 동시대의 논리를 더욱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시각과 관점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정사와 야사, 정통과 통속 정도로만 이분됐던 사극의 종류는 2000년대 이후 백화제방(百花齊放) 시대를 맞게 된다.
 
  90년대는 사극 흐름에 있어 전환기였다. 1990년 12월 MBC는 인기를 끌었던 〈조선왕조 오백년〉 방영을 끝으로 사극 제작이 중지됐다. 당시 KBS도 주말 1회 방송하는 연속극만 편성하는 정도였다. 침체기를 반전시킨 작품이 바로 KBS의 〈용의 눈물〉이었다. 당시 〈용의 눈물〉이 제작 기법의 정교함과 극중 플롯의 신선함으로 흥행몰이에 성공하자 다시 〈태조왕건〉이 바통을 이어받아 마침내 사극 부흥기를 열게 됐다. 후속타로 〈명성황후〉 〈여인천하〉 〈대장금〉 등이 출격하는 등 KBS뿐 아니라 MBC, SBS의 사극들 역시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욕망의 현시와 갈등의 플롯
 
KBS 〈대왕의 꿈〉에 태종무열왕으로 출연한 배우 최수종. 사진=뉴시스
  2000년대 이후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연개소문〉 〈천추태후〉 〈근초고왕〉 〈광개토태왕〉 〈대왕의 꿈〉 〈정도전〉 〈징비록〉 등이 정통 대하드라마의 명맥을 이었다. 팩션사극으로는 〈해신〉 〈주몽〉 〈선덕여왕〉 〈이산〉 〈뿌리 깊은 나무〉 〈공주의 남자〉 등이, 퓨전사극으로는 〈바람의 나라〉 〈추노〉 〈태왕사신기〉 〈돌아온 일지매〉 〈성균관스캔들〉 〈해를 품은 달〉 등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이상 연구서 및 학술논문 의견 등에 따른 잠정적 분류로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201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팩션사극과 퓨전사극의 범주와 양상이 더 다양해졌고, 종합편성채널 및 케이블 TV 등에서 기획된 드라마들의 합세로 사극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다.
 
  셋째, 분화된 사극의 서사적 특징으로는 권력과 사랑 등 인간적 욕망이 강한 주인공이 강조됐다. 주인공의 성별과 신분도 다양해졌다. 왕과 왕비의 권력 중심적 인물이 아닌 노비, 기녀 등 민초들의 삶과 꿈을 다루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식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극적 갈등과 대립을 첨예화시킨 사극이 인기를 얻었다. 역사적 배경은 조선시대 중심에서 고려시대, 삼국시대 등 상고사(上古史)로 나아갔다. 상상력의 개입 정도가 강해졌고 대사 톤에도 현대어가 접목됐다. 호흡이 짧아진 편수, 신속한 스토리 전개, 감성적 멜로 코드, 자유로운 시공(時空) 이동, 흥미 추구 경향 등도 특징이다.(《텔레비전 드라마, 역사를 전유하다》 〈TV 역사드라마 속 왕의 재현방식 변화〉 〈한국 드라마 제작의 다양성을 위한 팩션 사극 연구〉 등)
 
 
  “긴 호흡, 웅장한 스케일은 현대인 감성 코드와 안 맞아”
 
  사극 자체는 이렇게 진화해 왔는데, 왜 정통 대하드라마는 사라졌을까. 원인은 장르적 차원, 제작의 측면으로 나뉜다. 우선 장르적 차원에서 호흡의 문제가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시청자가 이제 100부작 넘어가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고 향유하는 ‘스낵컬처’ 풍조가 짙어지면서 자연스레 퇴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미숙 고전평론가는 “책도 장편소설이 안 읽힌 지는 오래됐다. 대하사극처럼 웅장한 스케일과 긴 호흡으로 밀고 가는 장르는 현대인의 감성 코드와 안 맞는다”며 “지금은 (문화 콘텐츠도) 짧고 경쾌한 ‘스타카토’ 분위기로 지나가야 한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몰입이 잘 안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고 평론가는 “대하드라마를 시청한다는 것에는 역사를 배우고 싶은 호기심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그런 식의 역사 자체, 즉 거대담론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었다. 역사가 궁금하면 그냥 검색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달라진 현실 세태를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대하사극이 밀려나고 퓨전사극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서도 “대하사극은 권력 다툼에 제국 경영 같은 과거의 남성주의적 역사가 중심이었다면, 퓨전사극은 현대판 멜로가 갖고 있는 남성상에 역사적 소재를 차용한 ‘불멸의 사랑’ 같은 감성 코드로 여성 시청자들을 공략한다”고 분석했다. 장르적 특성에 대한 기호뿐 아니라 주된 시청층 또한 점차 변모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청 수준 높아진 것… 역사 교육과 드라마 감상 분별하게 돼”
 
2007년 인기를 끈 퓨전사극 〈태왕사신기〉의 충남 태안 안면도 소재의 촬영장. 사진=조선DB
  박노현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역사 자체에 대한 기호 문제,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 변화 등을 대하사극 퇴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 교수는 “시청자들의 시청 수준이 높아졌다”며 “지식으로서의 역사교육과 소일거리이자 취미로서의 역사드라마 감상을 분별할 능력이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넷플릭스’(Netflix·DVD 대여 사업과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미국의 미디어 업체)를 예시로 들었다. 박 교수는 “넷플릭스에서는 서양의 역사드라마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며 “(드라마 소재로서) 역사가 식상하다기보다는 얼마나 역사를 재료로 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느냐, 즉 ‘스토리텔링’의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대하사극, 전통사극은 남성 왕의 궁궐 이야기였다. 지금은 우리 (동시대) 이야기를 반추한 사극이 인기”라며 “〈추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추노〉는 조선시대 노비 이야기지만 그게 20세기, 21세기 대한민국 서민의 이야기로 투사가 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런 방식으로 얼마나 (지금의) 내가 공감할 만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가 관건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제는 사극이 아무리 계몽적인 역사를 다룬다고 해도 시청자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극적 재미를 주지 못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그런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까 정통 대하드라마보다는 팩션사극, 퓨전사극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당 2회, 6개월 방송 시 100억 이상 필요”
 
  실질적으로 제일 큰 장애요인은 제작의 측면이다. 제작비, 즉 돈의 문제인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고 적자가 심하니 재정 부담에 방송사들이 대하사극 편성을 꺼리는 것이다.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이강현 KBS 드라마 국장은 “평일 미니시리즈는 광고 수익으로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얻지만 대하드라마는 시청자 서비스다. 50분 (대하)드라마 2편을 제작하는 데 주당 약 4억5000만원가량이 투입된다”며 “6개월간 방송한다면 100억원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대하드라마가 주로 방영됐던) KBS 1TV는 광고채널이 아닌 고로 비용 대비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길환영 KBS 사장 역시 대하사극 제작비와 관련 “1년으로 치면 대략 230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작진 측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29일 〈장영실〉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조 KBS PD는 “KBS에서 매년 대하사극을 제작하기 힘들다, 제작비가 없다고 한다”며 “특히 (우리) 미술팀이 박봉이다. 내가 너무 괴롭혀서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기실 대하사극의 제작 여건이 불리한 이유는 당연하다. 수익에 비해 제작비가 높다. 제작비 총액만 통상 한 주당 3억~4억원 선이다. 미술비, 세트비에 촬영기간도 길다. 간접광고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고 광고 자체를 받기도 어렵다. 배우 캐스팅은 물론 집필할 작가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 과거에 비해 갈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은 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2006~2007년 KBS에서 방영됐던 〈대조영〉은 비교적 나름의 흥행성과를 거뒀음에도 당시 드라마국 전체 예산의 절반 가까운 액수를 제작비로 할당해 종영 이후 결산에서 적자가 심했다고 한다.
 
 
  밤에 주로 싸우다 아예 건너뛰기도
 
2014년 1월 28일 〈정도전〉 촬영 중 인터뷰에 응한 배우 유동근의 모습. 사진=조선DB
  더구나 일반적으로는 제작비 총액이 많아 보여도, 실제 사극을 다루는 입장으로서는 편수나 내용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극 특성상 워낙 많은 인력과 물자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9일 자 《국민일보》 미디어비평 칼럼에서 김경호 방송문화비평가는 사극 제작의 고충을 지적했다. 김 비평가는 “그동안 사극 전투 장면은 밤에 이뤄졌다. 부족한 인원과 낮은 제작비로 인한 한계”라며 “그래서 옛날에는 왜 밤에만 싸웠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한밤 전투장면은 보통 횃불과 불화살, 튕기는 화롯불로 영상미학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적은 비용과 인원에 시달리는 PD들로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수익성 문제, 제작비 부담에 따라 이후 대하사극은 분량을 줄여나갔다. 200부에서 100부, 70부에서 50부로 줄어들다가 2016년 〈장영실〉의 경우 24부가 됐다. 대규모 전투신도 줄여 제작비를 아꼈다. 내레이션 대체나 사건 중략 같은 고육책도 썼다. 〈천추태후〉 이후 KBS는 2010년에 미니시리즈 형식의 사극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16부작 〈명가〉, 30부작 〈거상 김만덕〉 등이었다. 이어 삼국시대 정복군주를 조명하겠다는 대기획 아래 〈근초고왕〉(백제), 〈광개토태왕〉(고구려), 〈대왕의 꿈〉(신라)이 3~4년간 방영됐다. 작품마다 시청률 부침(浮沈)이 있던 가운데 고증 및 제작비 문제가 다시 뒤따라왔다.
 
  그렇다고 2000년대 후반 들어 대하드라마의 명맥과 가치가 완전히 절멸(絶滅)된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KBS 대하사극 전성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용의 눈물〉과 같은 시기를 다룬 〈정도전〉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으며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조선 개국사를 다룬 〈정도전〉은 극본의 완성도, 복선과 반전의 플롯, 배우들의 호연, 현실정치의 반영 등으로 2014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으로 각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애정이 높았다. 태조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유동근, 삼봉 정도전 역을 맡은 조재현 등 주인공은 물론 권신(權臣) 이인임의 박영규, 최영 장군의 서인석, 정몽주의 임호, 하륜의 이광기 등 주조연급 연기자들도 주목받았다.
 
  동시대를 다룬 〈용의 눈물〉(1996~ 1998)은 이방원 역의 유동근 등 〈정도전〉과 출연진도 다수 겹친다. 50%에 가까운 최고 시청률을 달성하며 이른바 ‘대하사극의 전설’로 남은 〈용의 눈물〉은 ‘사극 마니아들이 꼽은 최고의 사극’으로 꼽히기도 했다. 2014년 3월 20일 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 회원 19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8명(35%)이 〈용의 눈물〉을 최고의 사극으로 평가했다. 공동 2등은 각 20표(10%)를 얻은 〈태조왕건〉과 〈정도전〉이었다. 당시 최고의 남녀 사극 배우로는 유동근과 채시라가 꼽혔다.
 
  〈용의 눈물〉이 나오기 전 80년대 사극계는 고(故) 신봉승 작가의 시대였다. 신봉승 작가는 투철한 역사의식과 작가의식으로 전문적인 역사 연구에 천착했다. 그 결과 MBC TV의 장기기획물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훗날 사극들이 조선왕조 이야기에서 벗어나 그 이전 시대를 다루게 할 정도로 조선왕조 사극의 총정리를 한 셈이다. 신봉승 작가의 〈조선왕조 오백년〉은 당대 사극의 대표적 브랜드였다. 역사드라마에서도 허구가 아닌 작가의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신상일, 《한국 TV 드라마 변천사》, 시나리오친구들, 2013)
 
  당시 15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1996년 11월 방영을 시작한 〈용의 눈물〉은 정사 중심에 야사도 삽입시켜 극적 재미를 확보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의 역사드라마 특성이 도드라졌다. 〈조선왕조 오백년〉이 편년체 역사 서술식으로 당대의 주요 정치 흐름을 골고루 보여주려고 했다면 〈용의 눈물〉은 극적 완성도 면에서 드라마화에 더 성공한 형태를 보였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90년대 말 2000년대 초까지 이환경 작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편년체 중심의 일대기 서사에서 에피소드 중심으로 연출 구성에 변주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조명상, 〈TV 사극에 나타난 역사 재현〉,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논문, 2014)
 
 
  “역사드라마에서 시대정신 발현, 국민 선도(先導)의 큰 뜻 담아야”
 
지금은 작고한 고(故) 신봉승 작가의 2010년 인터뷰 당시 모습. 신 작가는 대하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을 성공시켰다. 사진=조선DB
  〈천추태후〉 〈광개토태왕〉 등에 출연한 배우 이인혜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2017년 5월 26일 자 《매일경제》 칼럼 ‘TV에서 사라진 대하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이 논했다.
 
  “퓨전사극처럼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여러 각도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드라마의 발전에 있어 분명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역사가 단순히 흥미 위주의 소재로만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재미를 위해 만든 이야기로 역사를 잘못 이해하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역사를 제대로 접할 수 있게 해줬던 대하드라마의 폐지가 더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방송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진단처럼 대하정통사극의 부활은 장르의 성격이나 제작비 차원 문제로 볼 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마니아 시청층의 수요가 있고 대하사극에 종사해 온 배우와 제작진의 열정과 사명감도 분명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편의성과 흥행코드에 치우친 나머지 역사의식과 동떨어진 일부 퓨전사극의 무분별한 난립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 대안으로 또다시 대하사극을 말하는 쪽도 있다. 그럼에도 대하사극은 이제 영원히 없어질까. 대하사극의 품격과 미학, 부활 가능성에 대해 관련 종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고 신봉승 작가는 자신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청아출판사, 2011)에서 사극 제작에 있어 시대정신과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논했다. 책에서 신 작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는 사실과 얼마간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시대가 지닌 시대정신이 달라져서는 안 되고 왜곡돼서는 더욱 안 된다”며 “역사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몇 월 며칠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의 사실적인 기사(記事)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의미가 오늘날 시청자가 겪는 현실의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를 살피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례를 논거로 삼기도 했다. 신 작가는 “이웃 나라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주기적으로 그들의 근대화 시기인 메이지유신을 드라마로 만든다”며 “메이지유신에는 일본의 근대화 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역사드라마에서 시대정신(역사인식)의 발현은 국민 선도라는 큰 뜻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지(周知)시켰다.
 
 
  “대하드라마는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이자 의무… 작가들 역량이 관건”
 
  2014년 〈정도전〉의 강병택 KBS PD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극) 작가가 대본 쓰는 것보다 사료에 매달리는 게 더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다른 곳, 퓨전으로 가는 경향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KBS까지 그렇게 해야 하나. KBS가 시청료를 받고 있는 한 대하사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PD는 대하사극 방영이 상업적 논리가 아닌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이자 의무라고도 했다. 2015년 〈징비록〉 제작발표회 당시 김상휘 KBS PD 역시 “대하드라마는 교육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2014년 당시 〈정도전〉이 큰 인기를 끌 때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주연배우 유동근은 MC들의 출연료 질문에 “대하드라마는 시청자가 주인공”이라며 “작가와 연출, 배우 모두가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출연료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하드라마가 광고를 받고 제작되는 것도 아니기에 제작비에 대한 연출의 고민이나 시간 제약도 잘 안다”며 “그렇기에 더욱 책임의식이 막중하고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다”고 밝혔다.
 
  신봉승 작가의 말처럼 오종록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역시 대하사극 부활에 있어 작가의 역사 공부를 중요시했다. 오 교수는 “사극으로 다루면서 채워야 할 것들이 어려우니까, 책임을 피해가려고 픽션이나 타임슬립 기법을 통해 퓨전사극으로 간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도 “돌아가신 신봉승 선생 뒤로 역량을 키운 작가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대본을 쓰느냐가 ‘봐줄 만한’ 사극이 나올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예전에 신봉승 선생도 가끔 보면 ‘오히려 역사연구자들이 그동안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곤 했다”며 “역사의식도 강력해지려면 우선 작가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또 그것이 기본 아니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통사극이 기본(基本), 사라지면 안 돼… 팩션·퓨전과 서로 공생(共生)해야”
 
  한편 박노현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대하사극 제작에 있어 활발한 역사의 변주 가능성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일본에는 닌자를 소재로 한 〈나루토〉라는 인기 만화가 있다. 일본은 닌자와 사무라이 두 단어로 엄청난 세계적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며 “과거의 전통사극은 계몽의식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 교훈과 교육이 전제가 되는 식의 대중문화 콘텐츠 생성은 대중의 코드나 시청률 측면에 있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왕좌의 게임〉을 예시로 들고 싶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유럽의 전설을 차용해 역사적 배경이나 의상만 고증해 놓고 나머지 스토리는 다 상상했는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아까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도 왜곡과 실제 역사를 분별해 내는 시청 수준은 이미 도달했다. 역사를 재료로 해서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제작 측면에서 더 권장해야 하고, 시청의 측면에서도 굳이 역사와 교육을 연결시키려는 고답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드라마를 꿈과 현실의 관계로 풀어냈다. 역사가 ‘현실의 역사’라면 사극은 ‘꿈꾸는 역사’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꿈이 큰 사람(팩션·퓨전사극)이 있는가 하면 현실이 큰 사람(대하정통사극)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극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라면서 “꿈을 잘 꿔야 현실도 잘살지 않겠나. 인간드라마를 만드는 사극은 시대의 거울과 등불의 순기능을 할 수 있다”고 논했다.
 
  나아가 그는 대하정통사극을 쌀밥에 비유했다. “예전에는 쌀밥만 먹고 살다가 요새는 대신 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까 밥 먹는 횟수가 줄지 않았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밥이 사라진 게 아니고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다”면서 “이처럼 정통사극이 우위에서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지만 그것이 곧 기본(基本)이다. 현실을 재료로 해서 다시 꿈꾸는 것처럼 정통사극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 역사가 없어지면 전부 문학이 돼버리지 않겠나. 꿈과 현실의 상호보완적 관계로 나아가 서로 공생, ‘윈윈’(win-win)해야 한다”고 밝혔다.
 

  〈용의 눈물〉 〈태조왕건〉 윤흥식 전 KBS 드라마 국장
 
  “대하사극, 흥행성으로만 평가돼선 안 돼… 방송사 내 TF라도 만들어서 전통 계승해야”
 
   윤흥식 전 KBS 드라마 국장은 PD로 재직하며 지금까지 사극과 현대극 여러 작품을 기획·연출했다. 〈용의 눈물〉 〈태조왕건〉 〈명성황후〉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 다수의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이 중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로 당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KBS 퇴직 후 현재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방송연출계열 전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윤 교수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하사극의 향후 행로와 관련 “대하정통사극이 보존되면서 팩션과 퓨전이 갈라져 나오는 건 좋다. 그러나 이렇게 초토화돼서, 편성표 자체에 대하사극이 없어질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된다”며 “공영방송이 책임감을 느끼고 다시 제작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하 윤 교수와의 일문일답.
 
  ― 최근 대하사극이 실종됐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제작비 차원인가요, 장르의 문제인가요.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예산, 제작비 문제입니다. 세트를 다 제작해야 하죠. 고궁이나 민속촌이 있지만 작품에 맞게끔 설치를 다시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미술·의상비가 많이 들어가요. 수염 붙이고 가발 쓰고 하다 보니까 준비 시간이 많아져서 일일 촬영량이 현대극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죠. 촬영일수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서 제작비 부담이 같이 커지는데 그럼에도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으니 팩션이니 퓨전이니 하며 스타일을 변주해 나가는 것이죠.”
 
  ― 사극 종가(宗家)라고 불리는 KBS는 그래도 꾸준히 대하사극을 방영해 왔습니다.
 
  “사실 한때는 대하사극이 편성표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적도 있었어요. 제가 〈용의 눈물〉 하기 전쯤에 MBC에서는 사극이 잠정적으로 막을 내렸었죠. 신봉승 선생이 〈조선왕조 오백년〉을 한 뒤로 그쪽에서는 당분간 사극을 안 했습니다. 그래도 KBS는 대하사극을 쭉 해왔어요. 시청률이 안 나와서 회사에서도 좀 고민을 하면서도 KBS는 국민사극인 대하드라마를 어떤 식으로든지 해야 된다, 예산이든 시청률이든 그런 거하고 무관하게 꾸준히 해야 된다는 게 그 당시 간부진의 정서였어요.”
 
  ― 본인이 기획한 〈용의 눈물〉 〈태조왕건〉이 흥행할 당시를 두고 시청자와 전문가들은 ‘대하사극의 절정기’라고 평가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의 눈물〉 만들면서 다시 대하사극이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한때는 존폐 위기에 몰려서 없애자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는데, 이게 치고 올라오니까 MBC와 SBS에서도 사극을 했어요. 그리고 〈태조왕건〉을 연이어 흥행시켰죠. 당시 고려사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식단에는 항상 올라오지만 젓가락은 안 가는 그런 신세였어요. 제가 기획하기 10년 전부터 선배들이 ‘사극 소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면서 고려 태조 왕건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조선이 아닌 고려로 가면 미술비 부담이나 고증에 대한 불확실성, 심미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 등으로 매번 탈락이 된 거죠. 그러다가 언젠가 KBS 부사장 주재하에 전국 신방과 교수들을 모시고 새천년 세미나를 열었는데, 저하고 이환경 작가는 〈용의 눈물〉 성공팀이라고 해서 일종의 게스트로 참석했어요. 그때 이 작가랑 ‘2000년도 밀레니엄 스페셜로 〈태조왕건〉 시나리오를 써서 식장에서 얘기를 해보자’고 했고, 여기에 당시 신방과 교수들이 적극 지지해 주면서 여세를 몰아 쓰게 됐습니다. 그때 교수들이 ‘맨날 궁중암투나 처첩투기만 할 게 아니라 고려도 하고 고구려·발해 등 고대사까지 하자’면서 ‘대하사극의 지평을 넓히는 데 KBS가 선봉이 돼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환경 작가는 SBS에서 고구려를 다룬 〈연개소문〉도 쓰게 됐죠.”
 
 
  대하드라마 속 캐릭터와 긴장의 밀도 중요
 
  ― 본받을 만한 국내외 대하사극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요즘은 중국드라마를 자주 봅니다. 얼마 전에 〈미완의 책사 사마의〉를 재밌게 봤는데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을 깨닫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대의명분이 녹아 있습니다. 군신관계의 정도(正道), 청백리 정신 등을 강요하는 식이 아니라 드라마와 캐릭터 속에 잘 용해시켜서 우리에게 묵시적으로 웅변을 해주더라고요. 대사도 고사(故事)를 인용하는데 어렵지 않고 쉽게 풀어져서 극중 내용이랑 자연스럽게 접목이 잘 됩니다. 물론 중국의 대하사극은 워낙 스케일이 커서 엑스트라나 공간미학은 따라가기 힘들지만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캐릭터라든가 극중 긴장의 밀도가 중요합니다. 국내 작품으로는 〈정도전〉 〈불멸의 이순신〉 〈뿌리 깊은 나무〉 등이 연출도 잘 했고 역사적 의미와 드라마적 재미가 적절하게 배합돼 좋았습니다. 후배들이 만든 ‘청출어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웃음)”
 
  ―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퓨전사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도 퓨전사극을 가끔 봅니다. 〈해를 품은 달〉 같은 경우는 재밌게 봤고 정말 잘 만들었더라고요. 대하정통사극이 보존되면서 팩션과 퓨전이 갈라져 나오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초토화돼서, 편성표 자체에 대하사극이 없어질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죠.”
 
  ― 대하사극이 다시 나올 거라 보나요.
 
  “당분간 좋은 대하사극이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사이클, 주기죠. 기다려야 해요. 정통으로 갔다가 퓨전으로 갔다가 또 현대극으로 갔다가 하면서 스타일을 변주해 나가는 것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어요. 아마 다시 출발한다면 대하정통사극으로 어디선가 신호탄을 쏘아 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작가도 방송사도 더 노력해야죠.”
 
  ― 대하사극이 부활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일단 대하정통사극 TF(태스크포스) 팀이라도 만들어서, 방송사에서 의지를 가지고 작가들도 양성하고 장기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야 합니다. 장인(匠人)들도 후계자가 없으면 전통이 보전되지 않잖아요. 대하사극도 이렇게 몇 년 동안 안 하면 일단 노하우 있는 미술팀들부터 다 퇴직해 버립니다. 이러면 더 어려워지죠. 그리고 KBS 같은 경우 사극을 꼭 흥행성으로만 평가하지 않았으면 해요. 예산 부담이 크면 규모나 편수를 조금 줄여서라도 제작해야 합니다. 일본 대하드라마는 한 편당 45분 정도로 분량도 비교적 짧습니다. 인물전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사극의 형식을 갖춰서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시청률, 제작비, 옛날에 제작하던 관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해요. 공영방송이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인물을 제대로 조명한다’ ‘국민의 역사관을 정립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마음으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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