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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100주년

제13회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시민강좌〈최종회〉 | ‘박정희의 꿈, 박정희가 생각했던 나라’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어라. 자유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조갑제)

글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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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삶의 진보로 정신의 풍요를 가져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 문명 건설자”(조갑제)
⊙ “소박·근면·정직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이 내 소망의 전부”
⊙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업적의 희생양, 박정희 자신이 이룩한 나라가 박정희 자신을 넘어선 것”(강규형)
⊙ “경제제일주의·새마을정신·반공(反共)정신은 우리 시대가 회복해야 할 정신”(이승수)
  《월간조선》・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공동주최하는 ‘박정희시민강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강좌는 13번째 행사로 작년 11월에 시작돼 1년간 진행돼 온 박정희시민강좌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강좌였다. ‘박정희의 꿈, 박정희가 생각했던 나라’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좌는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소 이른 시각이었지만 장내는 청중으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 7시에 도착해 강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린 참가자도 있었다.
 
  강연에 앞서 청중은 발제문 책자를 읽으며 강연 내용을 유심히 살폈다. 여러 강좌를 통해 안면이 있는 듯 청중은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식전에 방영된 영상물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제자들의 증언 장면이 나오자 청중은 몰입했다. 한 연회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강연은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분에 대한 추모묵념으로 시작됐다. 강연에 앞서 김창기 조선뉴스프레스 대표 겸 《월간조선》 발행인은 인사말을 통해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자리를 채워주셔서 감사하다”며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김 대표는 “작년 11월 8일 첫 번째 시민강좌를 시작한 이래 지난 1년간 단 한 차례도 예외 없이, 서울 한복판, 이 프레스센터의 국제회의장을 가득 메워주신 《월간조선》 독자님 여러분과 시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며 “처음 강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광범위한 사회적 재조명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그동안 여러 정치적 곡절을 겪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박정희 100주년이 너무나 외면당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동서고금(東西古今) 수많은 영웅-위인과 지도자들 모두에게 예외 없는 공통점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녔고, 잘한 일과 못한 일, 공(功)과 과(過)를 함께 남긴, ‘인간’이었다는 점”이라면서 “우리는 그들의 장점과 공적을 본받고 단점과 과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며, 우리에게 박정희 대통령도 바로 그런 지도자로 역사 속에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월간조선》이 ‘박정희 시민강좌’를 마련한 이유도, 그분이 이룩한 성취와 유산으로부터 우리가 평가하고 배울 점들과 비판적으로 수용할 부분들을 역사적 안목에서 되살피고, 우리가 나갈 길을 찾아보려는 것이었다”면서, “이러한 재조명 작업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뿐 아니라 앞으로도 필요한 만큼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건설세력의 챔피언 박정희
 
토론 발제자로 나온 조갑제 대표, 강규형 교수, 이승수 회장.
  이어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지난 1년간 박정희에게 물었다. 그 답은?’이란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했다. 조 대표는 “‘왜 지금 박정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월간조선》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다각도로 박정희의 생애와 역사적 유산을 조명했다”면서 “특히 그의 딸이 탄핵되고 구속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 진행된 강연회는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듯한 허탈감과 함께 박정희로부터 해답을 구하려는 절박감이 혼재했다”며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하는데 오늘을 장악한 자가 과거를 장악하는 원리처럼 한국에서 오늘의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박정희 지우기에 열중하는 것은 역사 해석권을 악용해 미래의 권력까지 유지하려는 의도”라며 “선거로 출범한 대한민국만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데 남북한의 계급투쟁론자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해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이들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 지난 1년간의 박정희 시민강좌였다고 조갑제 대표는 강조했다. 조 대표는 “이념, 경제, 안보, 외교, 교육, 새마을운동 등 여러 면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본 박정희는 너무나 단단하고 거대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며 “민주주의로 위장한 계급투쟁론적 선동이나 민족주의로 위장한 인종주의적 공격으로 쉽게 무너질 건축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강연들의 핵심내용을 종합·정리했다. 그는 “박정희는 문명건설세력의 챔피언이었다”며 “그는 삶의 진보로 정신의 풍요를 가져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 문명건설자였고 동양적 실용정치의 맥을 이은 주체적 실사구시론자(實事求是論者)였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는 최초의 민족 통일국가를 완성한 신라 문무왕(文武王), 최초의 국민국가를 세운 이승만과 함께 민족사의 가장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정희에게 1년 동안 물은 답은 결국 우리의 몫”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주제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문명건설세력의 챔피언’이었다”라고 평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정한 의미의 국가주의자이자 애국자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정희 시대를 통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 수 있었다”면서 “박정희는 민주주의 그 자체의 우상화와 교조화를 거부하고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맞추어 민주주의를 변용·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이 꿈꾸었던 한국은 이미 그가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며 해당 부분을 낭독했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 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본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조 대표는 “박정희는 역사를 만들고 움직였던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자기의 역사적 소명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며 “만일 그가 자신의 안위만 추구했더라면 오늘의 박정희도 없었고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 대표는 “박정희는 오늘날 국가현실에 대해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처럼 목숨을 걸어라. 자유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자유의 방파제 역할은 그만하고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쓸어버려라. 나의 답은 간단하다. 적이 목숨을 걸고 달려드니 너도 목숨을 걸어야 게임이 될 것 아닌가. 너도 목숨을 걸어라.’
 
  그는 “박정희에게 1년 동안 물은 답은 결국 우리의 몫”이라며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생명을 걸 수 있겠느냐. 이는 나의 질문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1부 주제강연에 이어 2부에서는 강규형 명지대 교수(KBS 이사)와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장이 토론 발제자로 나섰다.
 
 
  “박정희 자신이 이룩한 나라가 박정희 자신을 넘어선 것”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업적의 희생양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먼저 강규형 교수가 ‘박정희가 꿈꾸던 한국과 오늘의 한국’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강 교수는 강연에 앞서 최근 KBS 노조로부터 이사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강 교수는 “박정희 체제가 정치적으로는 일부 억압적이었고 박 전 대통령이 후계자를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자유민주주의 경험이 길지 않았고 이식돼 온 것이기 때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박정희 시대를 통해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먹고사는 문제가 점차 해결됨에 따라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체제를 견디지 못했다”면서 “이런 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업적의 희생양이었다. 박정희 자신이 이룩한 나라가 박정희 자신을 넘어서며 일어난 사태”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 안보’라며 그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은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 중 경제발전이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히는데 이에 대해서까지 의혹을 다는 이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국민이 부지런했기에 박정희가 아닌 다른 누가 지도자가 됐어도 경제발전을 이뤘을 것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같은 민족인 북한은 왜 저렇게 됐느냐”며 반문했다. 또 “세계사를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없다. 산업화를 통해 국민 기반을 갖춘 나라가 민주화를 이룰 역량을 갖추게 됐다”면서 “반대로 산업화 이전에 민주화부터 이뤘던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지탱하지 못하고 대부분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의 주류 경제학이었던 ‘민족경제론’ ‘식민지반봉건사회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중경제론’으로 갔으면 우리나라는 미얀마 수준의 경제를 가졌을 것이고 북한 정권에 먹힐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일본의 좌파 경제학을 따르던 주류 경제학계에 맞서 박 전 대통령의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에 힘을 실어준 이들은 영미의 경제학을 배우고 온 서강대 교수들이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 교수는 KBS 노조로부터 이사 퇴진 압박을 받는 것과 관련해서 “노조가 이사 2명만 쳐내면 방송사 이사장과 사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장 약하게 보이는 그룹인 교수 2명을 공격하고 있다” “KBS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이사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이 학교와 집으로 찾아오고 가족들의 사진까지 찍으며 협박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나중에 반드시 특검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발언이 끝나자 청중은 박수로 화답하며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경제제일주의, 이 시대 청년들을 위한 정책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 회장은 “우리 시대가 경제제일주의, 새마을정신, 반공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에 이어 이승수 청년박정희연구회장이 ‘청년이 말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꿈꾸던 나라’를 주제로 강연했다. 올해 28세인 그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공저(共著)로 《청년, 베트남에서 박정희를 만나다》를 냈다.
 
  이승수 회장은 “젊은이들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고 싶었다” “앞서 조 대표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라고 말씀했는데 그 말씀이 저에게 큰 사명감으로 다가왔다”며 운을 뗐다.
 
  이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자기에게 불리한 정책도 많이 폈다”면서 “우리 시대는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는 더 나은 대한민국, 더 밝은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런 점에서 최근의 대통령들이 5년 집권기간 동안 포퓰리즘 정책을 편 것과 비교할 때 참으로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제일주의, 새마을운동 정신, 한국적 민주주의의 세 가지 주제에 대해 튼튼한 논리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제제일주의’인데 요새 청년들은 이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경제제일주의는 경제성장에만 몰두하고 국민행복과 복지는 등한시한 정책 기조였다는 비판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 정치인들이 이에 편승해 ‘국민행복’ ‘복지천국’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포퓰리즘 정책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먹고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떠한 행복, 복지도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제일주의는 빈곤에 허덕이는 국민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국민행복・복지 정책이었다”고 했다. 이어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월 얼마씩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경제제일주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도 여전히 유효(有效)하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가 회복해야 할 새마을정신과 반공정신
 
  이 회장은 “새마을운동은 농촌진흥운동을 넘어 근면(勤勉), 자조(自助), 협동(協同)의 국민정신 개조운동이었다”며 “그런데 오늘날은 근면, 자조정신은 사라지고 가진 자의 것을 뺏어 나눠야 한다는 마르크스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명문대생들의 목표는 신흥 양반층이 되는 것”이라며 “고시 합격이나 공기업 입사를 통해 감투를 쓰고 세금으로 정년을 보장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보다 못한 위치에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노동착취’를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건전한 정신을 가진 이들까지 망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건강한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새마을운동의 근면과 자조정신”이라며 “제2의 정신혁명으로서 또 다른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발제 말미에 “과연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하는 다소 도발적 질문을 해본다”면서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국가에서 인권은 그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적 맥락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절대적 권리”라며 “그러나 영미식 민주주의는 수많은 정치제도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영미식 민주주의가 가장 수월한 정치제도일 수 있지만 과연 1960~7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까”라며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비판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왜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을 택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조건들을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법과 반국가적 행태들도 민주주의가 과연 최선인가에 의문을 던져준다”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는 더 완전한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한 민주주의의 유보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지금 사회에서 간첩, 종북세력이 어디 있냐며 반공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는데 북한 공산당의 정체성은 하나도 바뀐 바가 없다”며 “반공정신은 우리 시대에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신”이라고 말했다.
 
  작년 11월 1회 강연부터 13회 강연까지 모두 참석한 한 시민은 “1년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강연을 들었지만 배우는 바가 끝이 없다”며 “강좌가 끝나 아쉽지만 향후 프로그램들이 계속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고 계속해서 참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조 대표님 말씀처럼 박정희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만든 우리나라인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젊은이들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21세기형 박정희들이 많이 나와서 국가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데 힘썼으면 한다”고 강연의 소감을 밝혔다.⊙
 

  《박정희 전집(총 13권)》의 저자 조갑제 대표가 바라본 ‘문명건설세력의 챔피언’ 박정희
 
  1. 박정희(朴正熙)는 문명(文明)건설자이다. 삶의 진보로 정신의 풍요를 가져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의 문명건설 전략은 중국, 월남 등지에서 참고서가 되어 더 많은 인류를 문명세계로 포섭하였다. 실천론에 보편적 성공원리가 들어 있었던 덕분이다.
 
  2. 박정희는 관중(管仲)에서 비롯된 동양적 실용정치의 맥을 이은 경세가(經世家)였다. 주체적 실사구시론자(實事求是論者)였다. 사실과 현실에 입각하여 정책과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서 항상 주체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주체적 실용정신이야말로 동서고금을 관통할 수 있는 만고불변의 정치적 성공 원리이다.
 
  3. 박정희는 이승만(李承晩), 문무왕(文武王)과 함께 민족사의 가장 큰 인물이다. 최초의 민족통일국가를 완성한 문무왕, 최초의 국민국가를 세운 이승만의 정통노선을 이어받은 그는 국력(國力), 즉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측면에서 한국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만들었다. 오늘의 한국은 GDP 세계 13위, 세계 최장수국, 공업생산 및 수출 세계 5위, 세계 7위의 군사력, 그리고 세계적인 민주 복지국가인데 박정희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4. 박정희는 인류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위대한 경영자였다. 최단 시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 1961년의 한국은 최빈국(最貧國) 대열에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은 최부국(最富國) 그룹에 있다. 그가 유신선포로 욕을 먹어가면서 추진하였던 중화학공업 건설은 일류 강대국으로 가는 막차였다. 국력을 조직화하여 능률을 극대화한 그의 경영술엔 가정, 기업, 국가 등 모든 조직의 운영에 다 통용될 수 있는 간단명료한 원리가 있다. 이를 찾아내어 응용의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박정희를 연구하는 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좋은 제도와 조직을 만들어 국가운영에 항구적으로 기능하도록 한 그의 일하는 방식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5. 박정희는 초인(超人)이었다. 더러운 강물을 들이마셔도 영혼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거대한 바다, 즉 새로운 시대를 빚어낸, 그러면서도 부끄럼 타는 초인이었다. 자신의 한을 민족의 한으로 승화시켜 수백 년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대폭발시킨 사람이었다.
 
  6. 박정희는 남자의 미학(美學)을 보여준 무사(武士)였다. 부인이 총을 맞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총을 맞았을 때 보인 행동은 준비된 것도, 훈련된 것도 아닌 그의 삶의 총체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체념한 듯 해탈한 듯하였다’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한국에서 약 800년 만에 등장한 군인정권은 ‘교장 같은 장군’ 덕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근대화 혁명에 성공하였다.
 
  7. 박정희는 전임자와 후임자를 잘 둔 행운아였다. 이승만이 지도한 자유민주주의 건국, 강군 건설, 교육확대, 한미동맹, 농지개혁이 박정희식 고도성장에 기반이 되었다. 그의 국정(國政) 노선을 부정하지 않고 계승, 발전시킨 전두환(全斗煥)이 있었기에 박정희는 더욱 빛난다.
 
  8.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고 말한 사람이지만 이승만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근대화 혁명가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두 건설자이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의 우상화와 교조화를 거부하고,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맞추어 민주주의를 변용(變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자주적 민주주의자이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고 박정희는 집을 지었다. 민주주의의 3 요소인 안보, 자유, 복지의 인프라를 만든 두 분이다. 두 사람은 혁명가와 건설자를 겸한 사람이다. Revolutionary and Visionary였다.
 
  9. 박정희 또한 실수나 결함이 적지 않은 인간이었다. 한글전용(專用) 정책은 한국어의 반신불수를 초래하여 국민교양의 붕괴를 재촉하고 있으며 명문(名門) 고교를 없앤 것은 국가 엘리트 양성의 통로를 막은 실수이다. 정규 육사 출신이란 물리적 후계자 그룹은 양성하였지만 한국적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할 정치세력 육성에는 실패하여 좌익의 도전과 이에 따른 박정희 지우기를 부르고 말았다. 반면, 김일성은 한국의 민주화 흐름을 역이용, 민주투사로 위장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꾀하였는데 이 전략이 1980년대에 적중하여 한 세대의 젊은이들을 좌경화시켰다.
 
  10. 박정희는 조선조적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차별을 타파하려 하였으나 신종 양반세력의 보복을 받았다. 그는 군인, 기업인, 과학 기술자를 새로운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세계를 무대로 웅비(雄飛)하도록 하였지만 조선조 양반세력의 후예들인 지식인 집단의 비판 앞에서 고전(苦戰)하였고 사후(死後)에는 그의 딸까지 이들의 보복에 희생되었다. 박정희는 위선적 지식인들을 수구(守舊)사대 세력으로 규정, 경멸해 마지않았지만 이들은 때로는 미국식 민주주의자, 때로는 민중민주주의자로 행세하면서 자신들의 사대성을 감추고 박정희를 포위 공격하였다. 박정희는 말년에 미국, 북한, 남한 내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3면 공격을 받았다. 비록 권력은 쥐고 있었지만 신종 양반 지식인 세력의 공격 때문에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데 실패하였다. 박정희는 조선적 봉건 잔재와 싸우다가 전사(戰死)한 셈이다.
 
  11.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통일의 여하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적화통일이 되면 그는 중국의 장제스 정도의 평가를 받을 것이고, 자유통일로 귀결되면 레이건이나 진흥왕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12. 이젠 박정희를 우리 곁의 친구로 맞아들일 때이다. 망국, 식민지, 분단, 전쟁, 가난, 재건, 도약의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 기뻐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났던 그였다. 가장 낮은 데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고 간 그의 삶은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부모와 삼촌들이 겪었던 표준적 삶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우상이 아닌, 독재자도 영웅도 아닌 우리의 친구가 될 자격이 충분한 것이다.
 
  13. 그가 꿈꾸었던 한국은 특권층을 몰아낸,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 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이었다. 이것이 소망일 뿐 아니라 생리라고 했다. 그는 가난을 스승이자 은인(恩人)이라고 불렀다. 박정희는 가난이란 스승 밑에서 배운 수백만의 동문(同門)이 건재하므로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가난을 이기는 이가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고 한다(토머스 칼라일). 가난의 제자들이 박정희의 영도하에서 건설한 ‘천국 다음 한국’을 가난의 기억이 없는 세대가 ‘헬 조선’이라 저주하고 이들이 주도권을 잡은 한국이다.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生)이 끝나기를 염원’하였지만 신종 양반 특권층의 의식화에 넘어간 부하가 쏜 배신의 총탄으로 생이 끝났으며 그의 딸은 선동 언론, 정치검사 및 판사, 제왕적 국회, 그리고 귀족노조가 작당한 촛불 광풍(狂風)의 희생자가 되어 지금 감옥에 있다.
 
  14. 박정희가 만든 국민국가의 문명적 토대가, 민주와 민족의 이름으로 국가를 부정하는 남북한 좌익, 즉 계급투쟁 세력의 총공격에 직면한 지금 무슨 수로 진실, 정의, 자유를 지켜낼 것인가? 과연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자정(自淨) 능력을 갖춘 것인가, 핵무장한 북한 정권과 권력을 잡은 친북세력의 협공 속에서 대한민국은 반공자유민주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인은 자유통일·분단고착·적화통일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물음에 박정희가 답을 내려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너무 엄혹하고 국제정세는 유동적이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에 여러 번 목숨을 걸었다. 형은 우익 손에, 부인은 간첩 손에, 자신은 부하 손에 죽었고 딸은 신종 양반들 손에서 정치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박정희는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처럼 목숨을 걸어라! 자유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자유의 방파제 역할은 그만하고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쓸어버려라! 나의 답은 간단하다. 적이 목숨을 걸고 달려드니 너도 목숨을 걸어야 게임이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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