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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시민강좌 | ‘새마을운동-박정희 시대에 한국인들이 이룬 가장 큰 보람’

“새마을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성취… 대한민국에 태극기가 내려지지 않는 한 새마을기(旗)도 내려질 수 없어”

글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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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은 정부, 마을, 시장이 결합한 사회·인간 개조의 역사적 실험”(이영훈)
⊙ “한류의 원조는 새마을운동, 역동적인 국가발전의 성공사례로 평가받으며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농촌 살리기 모델로 활용되고 있어”(고정일)
⊙ “새마을운동의 성공 비결은 우수부락 우선지원 원칙”(조갑제)
  《월간조선》·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공동주최하는 ‘박정희시민강좌’가 지난 9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번 강좌는 12회째 행사로 문재인 정권 들어 ‘새마을운동’ 지우기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새마을운동 정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많은 청중이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좌석이 부족해 뒤쪽에 서서 듣는 이들도 많았을 정도로 행사는 성황리에 진행됐다. ‘새마을운동-박정희 시대에 한국인들이 이룬 가장 큰 보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농촌 발전을 넘어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체험했던 위대한 성취의 기억이자 정신혁명이었던 새마을운동의 업적과 의미를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이영훈 전(前)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가 연사 및 발제자로 나왔다.
 
  이날 개회사를 맡은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이번 새마을운동에 대한 강연은 박정희 대통령 지도정신의 진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좌 이사장은 “이번에 영국 출판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학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며 “이렇게 와주신 청중께 모쪼록 유익한 강연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첫 번째로 ‘인간개조와 사회개조를 위한 박정희의 꿈’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맡은 이영훈 교수가 연단에 섰다. 이에 관객들은 단상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 등 연사에 대한 각별한 호응을 보냈다. 이 교수는 “여러분에게 저의 글을 들려드릴 수 있어 과분한 영광”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먼저 20세기 전반의 농촌 경제사와 사회사를 연구하던 자신의 과거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그가 농촌의 어르신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에서 이 세상이 살 만한 사회가 되었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물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새마을운동’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이 교수는 여러 자료집과 보고서를 읽으며 새마을운동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 결과 이 교수는 “새마을운동은 우리가 통상 생각해 온 것 이상으로 중대한 인간개조와 사회개조의 운동이었음을 알게 됐다”며 강연의 서두를 열었다.
 
 
  새마을운동의 성공 비결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리
 
주제강연을 하고 있는 이영훈 교수.
  그는 요즘 새마을운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교과서와 역사책의 내용을 안타까워했다. 1차 사료를 보지 않고 필자의 선입견을 아무렇게나 써대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뒤에 다시 나오겠지만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 혁명공약의 구체적 실천작업이었다”며 “특히 새마을운동은 잘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지원하는 것, 즉 ‘신상필벌의 원리’를 통해 건전한 협동전략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전통사회는 공동체 사회가 아니라 신분제 사회였다”고 규정했다. 그렇게 1960년대까지 이어온 농촌사회의 다소 부정적인 폐쇄구조, 갈등으로 점철된 일상생활, 불평과 타성으로 희망을 잃은 분위기 등을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일소하고 혁파했다고 했다. 이어진 이 교수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1968년부터 이러한 농촌사회에 대한 일대 개조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1971년에 새마을 가꾸기 사업, 1972년에 새마을운동을 개시했다.
 
  박 대통령은 전국의 마을 실태를 조사하고 자립마을, 자조마을, 기초마을의 등급을 부여했다. 새마을운동에 따른 정부의 지원은 자립마을을 중심으로 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해당 지원에서 배제된 마을들이 분기해 새마을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자조마을과 기초마을의 주민들이 “우리도 한번 해보자”면서 마을 환경 개선이나 기금 갹출을 통한 공동사업에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성과가 나면 군청이 평가해 지원을 했고, 다시 ‘선순환’의 원리로 마을 단합의 힘이 됐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해서 1979년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해가 되면 전국 3만4800여 마을 가운데 97%가 자립마을이 됐다”며 “자립마을이 되면 대통령 표창과 함께 지원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전국 대부분의 마을이 자립마을이 된 것은 정부의 힘만은 아니었다”며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더해 “새마을운동이 짧은 기간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마을을 공동사업의 법인으로 조직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새마을운동은 정부, 마을, 시장이 결합한 사회·인간 개조의 역사적 실험
 
  이 교수는 강연 말미가 되자 “1960년대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은 고도성장을 위한 수출 주도의 발전국가체제를 창안했다”며 “그것이 제 궤도에 오르자 1970년부터 미뤄놓은 혁명공약, 즉 인간개조와 사회개조 개혁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의 본질(本質)이자 최종목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어 “결국 새마을운동은 정부, 마을, 시장이 상호유인의 체계로 협동한 인간 및 사회 개조의 역사적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한국인이 앞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숙하는 것, 직장과 마을을 인간이 살 만한 신뢰와 협동의 사회로 가꿔가는 것, 나아가 호혜와 개방의 국제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다시 실천할 새마을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 2부에 진행된 토론회에서 고정일 대표는 ‘새마을운동, 박정희 국민 총력동원 체제로 나아가다. 피와 땀과 눈물 없이 어찌 성공하랴’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발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새마을운동 관련 최근 기사들을 언급하며 새마을운동 지우기 움직임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고 대표는 새마을운동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발전해 왔는지 설명했다. 그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자발적으로 가뭄을 극복하고 소득증대 및 마을발전 사업을 추진했던 한 마을의 소식을 박정희 대통령이 듣게 됐다”면서 “박 대통령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홍성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농촌 발전 방법을 연구·시행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그는 “홍 수석이 농촌 발전 전문가인 류태영 수석비서관과 함께 ‘청와대 새마을 담당과’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게 됐다”며 “이후 청와대 주관으로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을 운영, 전국의 새마을 지도자들을 선발·교육하며 전국적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1971년 6월부터 매달 한 번씩 진행돼 134회에 이르렀던 경제동향보고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새마을 사업을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의 4가지 원칙과 3대 목표
 
토론 발제를 하고 있는 고정일 대표.
  고 대표는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4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첫째, 우수마을 먼저 지원 원칙, 둘째 단계적 발전 원칙, 셋째 실천을 통한 학습 원칙, 넷째 대응자금 원칙이다.
 
  그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수마을을 지원하다 보니 우수마을에 선정되는 마을이 여당보다 야당의 지역구에서 많아졌고 여당 의원들의 항의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당 의원들의 반발을 물리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비록 표를 잃어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새마을운동의 신상필벌 원칙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새마을정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용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이야말로 농민들에게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일깨워 농민이 잘살고 마을을 잘살게 하며 나라가 잘되게 하는 순수한 국민운동 뿌리가 돼야 합니다.”
 
  고 대표는 새마을운동은 농촌계몽, 사회발전, 경제발전이라는 3대 목표를 적극 추구했다며 “새마을운동은 농민들의 정신적 각성을 일깨우고 농촌생활환경을 개선했으며 농업생산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소득증대 특별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새마을운동은 한 개인의 삶과 한 국가의 역사에 존재의미를 부여해 준 정신철학이자, 한국인에게 소유 개념을 확립게 한 정신혁명이었다”며 “무엇보다도 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라 ‘근면・자조・협동’하는 공생의 철학, 나아가서는 공동체를 위한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더해 “한류의 원조는 새마을운동”이라며 “새마을운동은 역동적인 국가발전의 성공사례로 평가받으며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농촌 살리기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대립 상황을 극복하고 자유민주 대한민국으로 통합하여 나아갈 길은 박정희 새마을운동, 새마을정신에 있다”고 강조했다.
 
 
  새마을운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발점(始發點)
 
토론 발제를 하고 있는 조갑제 대표.
  이어 조갑제 대표는 ‘새마을운동의 성공 비결은 우수부락 우수지원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조 대표는 유신시대 한국인의 삶을 바꿔놓은 3대 사업이 ‘중화학공업 건설’ ‘새마을운동’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화학공업 건설은 박 대통령과 오원철 경제2수석 비서관이 주도했고, 중동 건설은 기업이, 새마을운동은 농민 지도자들, 특히 여성들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의 힘은 새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임을 강조하며 “이는 우리 민족사상 농민이 수동적 백성의식을 버리고 역사 창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새마을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정부가 전국 농촌마을에 나눠준 시멘트와 철골이었다”면서 “정부가 개별 농가 앞으로 지원했더라면 국민정신 개혁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이 공동 사용하도록 지원했기 때문에 협동체제를 만들어 공동작업을 하고 공동재산을 건설하고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나섰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이 전국 농촌의 풍경이 되었다”며 “한국의 농민들은 민주주의를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보다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자조(自助)사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여성들의 발언권과 참여가 높아졌고 새마을운동이 여성지위 향상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 중 첫째로 꼽히는 것이 ‘우수부락 우선지원’ 원칙임을 밝히며 박 대통령의 일례를 소개했다. 1973년 6월 11일 월간경제동향보고 새마을운동 성공사례 발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한 새마을 지도자에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일을 끝내놓고 점심을 같이 드는 기분이 어떻냐”고 묻자 “옆 마을에서 먼저 새마을운동을 벌여 달라지는 것을 보고 우리 마을도 시작하게 됐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던 박 대통령은 김현옥 내무장관에게 “우수부락 우선지원의 원칙은 절대 수정하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한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성취
 
  조 대표는 “우수부락 우선지원 원칙은 가난한 마을 우선 지원이 아니었다”며 “잘하는 마을을 지원하니 못하는 마을도 분발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고, 시장경제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대표는 새마을운동 시작 단계에서부터 박 대통령이 중시한 것은 ‘지도자 양성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1971년 말 박 대통령은 농림부 장관에게 새마을 교육 지침을 내렸다. 조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농촌개발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을 선발해 한번에 20~30명이라도 좋으니 2~3주 동안 오직 ‘정신계발’에만 치중하는 교육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교육장에 투입될 강사진으로 교수, 종교인 명단이 올라오자 지워버리며 새마을운동 성공사례를 발굴해 새마을 지도자로 하여금 발표하게 하고 그에 관한 토론을 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식인의 공허한 관념론보다 새마을운동 현장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을 맞은 1998년에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마을운동이 한국 현대사의 최대 성취로 뽑혔다”고 전했다. 응답자의 약 46%가 새마을운동을 1등으로 꼽은 것이다. 그는 “최근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새마을운동 관련 공적개발 원조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지역 개발 사업에는 새마을이란 명칭 자체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새마을기(旗)를 내리라는 민원도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가 새마을운동임을 강조하며 “대한민국에 태극기가 내려지지 않는 한 새마을기도 내려질 수 없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발언에 청중은 큰 박수와 환호로 공감을 표했다.
 
  강좌에 참석했던 한 시민은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새마을운동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더 생겨났다”며 “현 정부 들어 새마을운동 지우기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조 대표님 말씀처럼 대한민국과 함께 새마을운동 정신이 계속 건재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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