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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양순열의 오뚝이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어머니의 강인함과 중년 여성의 관능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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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뚝이상(像), “이 세상 어머니의 모양은 오뚝이”
⊙ 〈피아노 협주곡 2번〉, 과잉과 절제 그리고 격정과 애수
바다를 배경으로 선 190cm 높이의 오똑이 상(像).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사용가치를 소진해도, 늙은 아들의 이름이 걸린 문패 뒤로 사라진대도, 결코 죽는 법이 없다. 어머니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칭한 ‘리좀( rhizome)’형 존재다. 식물학 용어인 리좀은 스스로 뿌리이자 줄기를 이루는 식물. 어머니는 뿌리이자 줄기다. 악머구리 같은 자식들은 허리와 목과 다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흡혈귀처럼 피를 빨아먹는다. 그래도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죽지 않는다.
 
  어머니는 오뚝이다. 넘어져도 금방 일어선다.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일어서고야 만다.
 
  중견작가 양순열(梁順烈·59)은 꿋꿋한 어머니상을 ‘오뚝이’로 형상화하는 작가다. 겉보기에 볼링 핀처럼 생겼지만 ‘엄마 오뚝이’는 절대 넘어지는 법이 없다.
 
  작가는 작년 네덜란드 하멜의 고향(호린험·Gorinchem)으로 날아가 ‘오똑이전(展)’을 열었는데 올해 다시 전시회를 열었다. 작가는 ‘오뚝이’보다 ‘오똑이’의 어감이 좀 더 다부지고 억척스럽게 보여 표준어가 아니지만 ‘오똑이’로 쓴다. 네덜란드에서의 3번째 초대 개인전이다. 지난 7월 15일에서 8월 20일까지 37일간 네덜란드 알크마르(Alkmaar) 아트센터에 전시됐다.
 
  이번 개인전에서 양순열 작가는 높이 190cm에 달하는 대형 ‘오똑이’를 포함해 조각과 회화 작품 등 40점을 선보였다.
 
한옥의 안방에 둥그렇게 둘러선 1m 남짓한 높이의 오똑이들.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모습이다.
  여러 작품 중 바다의 백사장에 선 오똑이가 눈에 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을 연상케 한다. 양순열은 “자식 앞에선 결코 흐트러지거나 좌절하지 않는 이 세상 어머니의 모양을 오똑이로 상상하게 됐다”고 했다.
 
  올해의 ‘엄마 오똑이’는 작년 오뚝이보다 더욱 추상화됐다. 전작 〈야호 엄마〉의 따뜻한 미소는 내면화되고, 둥근 앞치마는 단순화되었다. 긴 치마를 입은 하체는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되고, 표면은 더욱 매끄러워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체가 되었다.
 
  그녀의 오똑이상 속 여인들은 팔이 없다. 작가는 “가족을 보살피느라 쉴 틈이 없었던 어머니 팔을 쉬게 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팔이 없는 조각상은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굳건하다.
 
  한옥의 안방에 둥그렇게 둘러선 오똑이 여인들은 키가 1m 남짓이다. 단아한 모습이 기품 있어 보인다. 그녀들은 파랑으로 시작해 초록, 노랑, 오렌지색을 거쳐 빨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림이다. 그 모습이 섬세하게 채색된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한껏 파랑이 들어간 경이적인 자줏빛 모노크롬(Monochrome·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색만 사용하는 방식)의 여인에게 시선이 멈춘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어머니 오똑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의 존재를 다시 그린다. 가족보다 더 소중함은 없다. 너무도 평범하고 흔하면서도 아주 깊이 있는 인간조화를 깨닫게 한다. 마치 쌀뜨물 발효액처럼”이라고 했다.
 
 
  관능미 넘치는 20세기 최고 클래식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소설가 송영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중년 여인의 관능미’로 표현했다. 서정적인 로맨틱한 선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은 화려하면서도 속되지 않다. 4대의 호른, 3대의 트롬본과 튜바 등 규모가 큰 악기 편성이 특징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20세기 최고 인기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작곡가는 2, 3 악장을 먼저 만들고 나중 1악장을 완결했다고 한다. 초연은 190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이뤄졌다.
 
  찬찬히 들어 보면 낭만적 정서의 풍만함 속에서 과잉과 절제의 두 얼굴이 느껴진다. 과잉과 절제를 다른 말로 바꾸면 ‘격정과 애수’일지 모른다.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는 여인처럼, 주변의 공기마저 정지시킬 듯한 침묵의 순간이 찾아올 것만 같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영화 〈색, 계〉(20 07)에서 이안 감독이 배우 양조위를 언급하며 한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양조위의 깊은 눈빛은, 그가 어떤 잔인한 짓을 하고 나서 손에 묻은 피를 닦는 그 순간에도 ‘아니야, 그가 분명히 마음을 고쳐먹을 거야’라고 안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그런 양조위의 눈빛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과 닮았다고 할까. 사랑하는 이가 어떤 말을 해도 믿고 싶은 마음이랄까. (오독을 이해해 주소서.)
 
  1악장 모데라토(Moderato·보통빠르기)에서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느리게, 한음 한음을 깊이 눌러서)를 거쳐 3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Allegro Scherzando·경쾌하고 활기차게)에 이르면 반복적인 선율과 강렬한 합주가 쏟아져 여인의 본능을 끌어내려는 듯하다. 물론 1~3악장 중 하나를 택하라면 서정적인 2악장이다. 2악장은 누가 뭐래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플루트, 파곳, 클라리넷 같은 관악기가 잘 녹아 있다.
 
영화 〈밀회〉(1945)의 한 장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영화 전편에 흐른다.
  영국의 고전영화 〈밀회(Brief En-counter)〉(1945)에서 이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밀회〉의 스토리 라인은 이렇다.
 
  부유한 가정주부 로라(셀리아 존슨)와 유부남 의사인 알렉(트레버 하워드)이 서로 다른 이유로 매주 같은 시간,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는 이야기다. 중년남녀의 불륜을 다루지만 아름다운 선율이 깔리면서 진부하거나 속되지 않게 본능을 달콤하게 달군다.
 
  작가 송영은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과 프리츠 라이너(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최고 명반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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