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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오석근의 〈교과서〉, 크리스 노먼의 《더 히츠(The Hits)》

70년대 우리의 ‘철수와 영희’는 무엇이 됐을까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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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도호의 〈Who Am We?〉 …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감춰진 존재들의 개별성 드러내
⊙ 지난 5월 중년의 남녀, 70년대 스타 ‘크리스 노먼’(스모키 보컬) 내한공연에 총집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오근석의 〈교과서(철수와 영희)〉.
  현대미술은 당대 현실을 드러내는 현상이자 얼굴이다. 세상에 대한 답이 없는 질문을 화폭에 담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사진작가 오석근의 〈교과서(철수와 영희)〉(2006~2008)는 1970~80년대 도심의 한적한 변두리 담벼락 아래에 앉아 있는 철수와 영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모여라 꿈동산’의 등장인물처럼 커다란 머리통을 뒤집어쓴 두 녀석이 삽화처럼 앉아 있다. 〈교과서〉는 왠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철수 머리 위의 기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불안하다. 놀 만한 아무런 도구도 기구도 없이 우두커니 앉은 모습은 무료해 보인다.
 
  그 시절, 〈교과서〉에 등장하는 변두리 골목에는 늙어 쭈글쭈글해진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지 않을까.
 
  농촌의 몰락으로 이주한 빈농의 후예일지 모른다. 담벼락에 역한 오줌 지린내가 나고 아이들이 골목에다 똥을 싸 놓으면 당장 어디선가 달려와 순식간에 먹어치우던 똥개들(안정효의 장편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쓰러져 가는 천막교회와 구멍가게가 골목 한쪽에 마주보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각, “차렷” 소리와 함께 국기 하강식이 있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를 악을 쓰며 외치는 악동들이 있을지 모른다. 악동 노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지 않았을까.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 골목길에 우두커니 앉은 철수와 영희는 전자오락도 스마트폰도 변변한 책도 없던 시절의 민낯이었다. 커서 무엇이 될까? 다들 가난했지만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군인이,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이지 구체적인 직업을 꿈꾸진 못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한 반에 절반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도호의 〈Who Am We?〉. 사진=Kisu Park, Seoul Nils Clauss, Seoul.
  2년 전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2015, 메디치)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거창고 교장이던 전영창 선생이 학교 강당 액자에 써 놓았다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소개돼 있다.
 
  … 직업 선택의 십계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p.18)

 
  굉장히 은유적인 10가지 계명을 만든 이유에 대해 전영창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자꾸만 더 가지려 하고 더 밟고 올라서려 하지 말고, 좁은 길로 가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라고 가르쳐야 한다.”
 
  거창고를 거쳐 간 수많은 졸업생들, 우리들의 철수와 영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직업선택의 십계’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몹시 궁금하다.
 
  서도호의 〈Who Am We?〉(2000)는 한국의 전형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드러나는 익명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졸업 앨범 속 수많은 얼굴들을 벽지 형태로 제작했다. 관객들은 벽지 앞에 다가가 얼굴들을 바라본다. 누굴 찾는 양 종횡으로 익명의 얼굴을 ‘탐닉’한다. 〈Who Am We?〉라는 제목은 틀린 문장이다. 작가는 의도적 문장 오류를 통해 ‘인간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감춰진 존재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려 한다.
 
 
  지난 5월 ‘크리스 노먼’ 공연장 찾은 철수와 영희들
 
한국 투어 기념으로 발매된 《크리스 노먼 더 히츠(Chris Norman The Hits)》.
  1970년대 후반 국내 팝송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인기 밴드는 스모키(Smokie)였다. 〈Living Next Door to Alice〉 〈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 〈Lay Back in the Arms of Someone〉 〈Don’t Play Your Rock ’n’ Roll to Me〉, 수지 콰트로와 함께 부른 〈Stumblin in〉은 자주 라디오 전파를 타며 당시 비틀스나 비지스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이들 노래의 충성도가 비틀스에 버금갔던 이유는 알지 못한다.(비틀스 팬들이 야유를 보낼지 모르겠다. 감히 비틀스와 비교하다니. … 70년대 후반은 이미 비틀스의 거대한 성채가 점점 바래 가던 시절이었다.) 스모키 멤버에 대한 호기심은 별로 없었다. 기타 비트가 특별할 것도 없었고 드럼도 요란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그저 소프트 록 내지 컨트리 록에 가까운 사운드가 가장 큰 미덕(?)이었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흥겨우니까. 어쩌면 1970년대 통기타 문화에 영향 받은 듯하다.
 
스모키의 전성기 시절 모습.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크리스 노먼이다.
  스모키는 1974년 첫 앨범을 낸 이래 여러 멤버가 거쳐 갔으나 지금도 건재하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2010년 신보 〈Take a Minute〉을 발매했는데 덴마크 차트에서 최고 3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그해 10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독일에서 싱글 〈Sally’s Song (The Legacy Goes On)〉이 출시됐다. 이 곡은 스모키의 대표작 〈Living Next Door to Alice〉의 후속 편이다.
 
  원래 이 노래(〈Living Next …〉)의 오리지널 곡은 호주 출신 트리오 ‘뉴 월드(New World)’가 1972년 처음 불렀다. 호주 차트에서 35위에 올랐었다. 스모키가 다시 불러 1976~77년 호주와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위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국 싱글 차트에선 5위,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선 25위까지 올랐다.
 
  〈Living Next…〉가 소꿉친구 앨리스에게 24년을 기다리며 속앓이만 하다 떠나보낸 이야기라면, 〈Sally’s Song〉엔 그녀가 쓴 ‘미안하다’는 메모가 발견되면서 복잡한 심사가 전개된다. 잠깐 가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샐리가 떠났어. 난 아직도 아침에 날 떠난 이유를 몰라. 심지어 작별인사도 없이. 날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도 몰라. 그녀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쪽지를 남겼어.
  (Sally’s gone. And I still don’t know why she left me in the morning. Didn’t even say goodbye. I don’t know why she left me. Don’t know where she is: She didn’t say, she just left a note. That said “I’m sorry”)

 
지난 5월 20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스모키의 전 리드보컬 크리스 노먼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국내 팝팬의 사랑을 받던 스모키의 히트곡들을 불러 40~50대 중년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지난 5월 20일 스모키의 ‘리즈 시절’ 보컬이었던 크리스 노먼(Chris Norman)의 라이브 공연이 서울에서 있었다. 지금은 솔로로 활동 중이지만 그는 무려 22년간을 스모키의 보컬로 군림했다. 스모키의 히트곡들은 모두 그의 음성으로 모조리 채워져 있다. 어쩌면 스모키의 전성기 시절과 크리스의 불꽃 같았던 20~30대가 정확히 일치할지 모른다. 공연장인 여의도 KBS홀은 중년 남녀로 가득했다. 그 시절의 철수와 영희로 돌아가려는 듯 기꺼이 크리스 노먼에 열광했다. 몸을 흔들고 떼창을 부르며 무대 앞으로 다가섰다.
 
  크리스 노먼은 올해로 68세. 노장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건장했고 허스키 보이스는 매력적으로 들렸다. 그가 스모키를 떠난 뒤에도 정규, 베스트, 라이브 앨범 등 지금까지 29장의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국에서만 잊혔을 뿐인 것이다.
 
  한국 투어 기념 앨범인 〈크리스 노먼 더 히츠(Chris Norman The Hits)〉를 샀다. CD1에는 스모키 시절 히트곡이 담겨 있었고 CD2에는 90년대 이후 발표됐던 15곡의 솔로곡이 채워져 있었다. 트렌디한 스타일의 록 넘버 〈Waiting〉, 컨트리와 포크 록이 절묘하게 합쳐진 〈Hard to Find〉와 〈Cat’s Eyes〉, 과거 스모키 사운드가 연상되는 〈Blue Rain〉 등이 귀를 흥겹게 자극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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