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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역

안병훈 전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회고록 -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

“처음 밝히는 박근혜 7인회의 실체… 그냥 친목모임을 박지원이 ‘이명박 6인회’와 비유하며 ‘그중 절반이 감옥 갔다’고 망발”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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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총장은 한미정상회담 도중 즉석 프레젠테이션으로 부시 대통령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 최순실 사태 와중에서 언론은 ‘사실조명’보다는 “스스로 열을 받아 대중을 증오 분노케 하는 데
    열중했다”
⊙ 《조선일보》에서만 38년7개월… 신문도 1등 나라도 1등 만들어
⊙ ‘벤 존슨 약물’ 복용 등 국제적 특종뿐 아니라 환경·정보화 캠페인으로 나라의 레벨 높여
⊙ “좌파 서적 일색인 대형서점에 충격받아 방파제에 뚫린 구멍을 주먹으로 막는 네덜란드 소년의
    심정으로 도서출판 기파랑 만들었다”
⊙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위치 되찾고 역사 왜곡 바로잡는 역저(力著) 발행하는 우파 지성의
    ‘저수지’
안병훈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 표지.
  ‘영원한 언론인’ 안병훈(安秉勳) 전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의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기파랑)가 발간됐다. 2003년 《조선일보》를 정년퇴직한 안 전 부사장은 대형서점을 좌편향 일색의 서적들이 점령한 것을 보고 보수 진영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도서출판 기파랑을 차렸다.
 
  당시 개소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방파제에 뚫린 구멍을 작은 주먹으로 막는 동화 속 네덜란드 소년의 심정으로 출판을 시작합니다. 이성적인 사고와 비판의식,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자신의 논리를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는 지성적 분위기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종이 문자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미력하나마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12년이 흐르는 동안 안 전 부사장이 이끄는 도서출판 기파랑은 보수 이념과 보수 지성인의 거대한 저수지(貯水池) 같은 역할을 했다. 《한국현대사 비록》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사진과 함께 읽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처럼 좌파들에게 매도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건국대통령 이승만,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대통령의 위치를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저작들을 꾸준히 펴낸 것이다.
 
 
  《조선일보》 전성시대
 
  서울고·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온 안 전 부사장은 해병대를 제대한 뒤 1965년 6월 1일 《조선일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38년7개월 동안 정치부장·사회부장·편집국장·편집인·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내며 《조선일보》를 가장 권위 있고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로 발돋움시켰다.
 
  ‘벤 존슨 약물 복용’ 등 세계적인 특종을 만들어낼 때 그는 편집국 이곳저곳을 성난 코뿔소처럼 누볐으며 덩달아 《조선일보》 기자들도 들소처럼 미지의 영역을 향해 질주했다.
 
  그는 권력과 금력(金力)에 굴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이른바 ‘조평(朝平)사태’로 호남 지역에서만 40여만 부의 신문부수가 떨어져 나갈 때도 정도를 지켰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창업주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갈등을 빚었을 때도 굴하지 않았다.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세력은 삼성·《중앙일보》, 《동아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하나같이 당대의 효웅들이었다. 그는 또 좌파 세력이 《조선일보》에 흠집을 내기 위해 《조선일보》가 과거 보도한 반공소년 이승복 기사가 날조된 것이라고 허위주장을 폈을 때도 30년 전 기사를 일일이 되짚으며 ‘사실(事實)의 힘’으로 그들을 무릎꿇렸다.
 
  안병훈 전 부사장은 신문의 영역을 기사가 아닌 사회 공기(公器)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조선일보》가 앞장선 〈쓰레기를 줄입시다〉 〈자전거를 탑시다〉 〈세계를 깨끗이 한국을 깨끗이〉 〈샛강을 살립시다〉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은 대한민국의 수준을 두세 단계쯤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또 〈아! 고구려전〉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 〈아! 6·25전〉 〈엄마 어렸을 적엔…〉 같은 수준 높고 격조 있는 전시회를 열어 독자뿐 아니라 국민들의 안목도 높였다.
 
  안병훈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는 610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이 책을 나는 이틀 만에 완독(完讀)했다. 그것은 2003년 그가 정년 퇴임할 때까지 15년간 함께했던 경험이나 추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회고록에는 ‘아직도 꿈을 꾸는 현직 언론인’답게 격동하는 시대의 뒷얘기가 눈길을 끈다.
 
 
  7인회 비화
 
  첫 번째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7인회’에 관한 비화()다. 7인회는 얼마 전 작고한 김용환씨를 비롯, 김용갑·최병렬·김기춘·강창희·현경대씨와 안병훈 전 대표이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책의 관련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2007년 박근혜 경선 캠프가 해체된 지 1년 후의 어느 날이다. 김용환 전 장관이 밥을 먹자고 해 나와 최병렬 등 몇 사람이 모였다. 강창희, 현경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 현장에서 떠난 분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나 식사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경선에 졌다고 해서 못 만날 이유는 없었다. 다들 찬성해 격월간으로 만났고 참석 인원은 앞서 언급한 7명으로 굳어졌다. 가끔은 박근혜 대표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박 대표는 꼭 참석했다.
 
  그렇게 식사 모임이 이어져 오다가 2012년 박근혜 대표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이른바 7인회 멤버들은 그때부터 박근혜 후보와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를 지지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의 주변에 나타나지 않기로 했다. 박 후보 주변에 우리 같은 ‘늙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랬음에도 당시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해 5월 우리를 거론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의 ‘6인회’에 비유했다. 박지원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여섯 사람이 결국 반은 감옥에 갔다’는 말로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7인이 모여 식사를 하고 더러 박근혜 후보도 참석한 것은 사실이니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는 없었다. 아무 소리 안 하는 것이 상책이었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7인회의 실체라면 실체다.”
 
  사실 안 전 부사장은 박정희 대통령·박근혜 대통령 부녀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는 그들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며 소회를 털어놓았다.
 
  “필자는 42년 전인 1975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대통령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던 영애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주말이면 같이 테니스도 치며 많은 대화를 나눴고 2007년엔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놓고 다툴 때 박근혜 후보 측 경선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근 10개월 동안 같이 일을 해온 사이다. 때문에 그동안 무력감 속에 무겁고 착잡한 마음으로 (최순실) 사태를 지켜보면서 혹시나 잘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헌재 결정은 너무나 참담했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순간 박근혜 대통령의 일생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느껴졌고 또 우리나라가 이제 사회주의 국가가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탄생 뒷이야기
 
  안 전 부사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책에서 밝혔다.
 
  “지난해 5월 말 유력한 대선 후보로 점쳐지고 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나는 반 총장과의 비공개 만찬에 초청을 받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반 총장 멘토그룹’이라는 말을 지어냈다.
 
  나뿐만이 아니라 노신영 전 총리를 비롯하여 자리를 함께했던 세 분의 총리 역임자(이현재, 고건, 한승수), 네 분의 전직 장관(금진호, 이대순, 정재철, 정치근), 그리고 신경식 헌정회장과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등이 졸지에 ‘멘토’로 지목되었다.
 
  사실 나는 반 총장이 귀국할 때마다 함께 자리를 같이하긴 했다. 노신영 전 총리는 그가 귀국할 때마다 매번 일종의 ‘격려 모임’을 마련했다. 주로 외교 일선에서 활약한 전직 외교관들이 많이 얼굴을 내밀었는데, 나는 노 전 총리와의 오랜 개인적 친분 덕분에 자주 그런 자리에 초청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인물답게 그가 꺼내는 화제는 늘 스케일이 크고 귀담아들을 만했다. 그는 흥미로운 몇몇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중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탄생’의 뒷이야기 한 가지.
 
  세간에서는 그가 비교적 순탄하게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렸을 때, 노 대통령은 두 나라 각료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차기 유엔사무총장으로 한국의 반기문 외무장관을 지지해 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미국 정부 각료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다. 반미 분위기가 지배적인 유엔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의 외무장관이 과연 사무총장에 뽑히겠느냐는 부정적인 표정들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정도를 빼면 다들 회의적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반 장관은 즉시 노 대통령에게 자신이 직접 부시 대통령과 미국 각료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통역을 통하면 오역이 생길 수 있었고 또 당사자가 직접 신상 발언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정상회담 자리를 이용하여 자신이 유엔사무총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다.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나 다름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부시 대통령이 직전 표정과는 달리 ‘반기문은 바로 우리 후보(Our candidate)’라며 지지로 돌아섰고 그때서야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다른 각료들의 마음도 열렸다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일침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 여름 휴양지 저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맨 앞줄 오른쪽 여섯 번째가 박 대통령,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안병훈 전 부사장.
  안 전 부사장은 최근 언론의 난(亂)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순실 사태의 와중에서 오보·왜곡·과장보도를 서슴지 않은 언론에 대해서도 대선배로서 일침을 놓았다.
 
  “이번에는 최근에 일어난 언론과 박근혜 정부와의 싸움에서 언론이 완승을 하는 이변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권력은 싫으나 좋으나 언론과의 관계를 잘 조정해 가는 것이 기본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싸울 준비도 진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자신들을 비판하는 메이저 언론에 대해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언, 적대관계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멸을 자초했다.
 
  메이저 언론들은 자신들을 적으로 규정한 정부에 대해 ‘최순실’이란 무기를 앞세워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에 좌우언론 등 모든 언론이 전례 없이 연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40여 일 만에 속수무책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되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돼 버린 것이다.
 
  언론은 사실을 조명해야 하는데 사실조명보다는 스스로 열을 받아 대중을 증오 분노케 하는 데 열중한 면이 없지 않았다. 대중이 분노하면 정권은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완승했으나 상처 또한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수한 오보가 양산되고 이에 책임지는 사례는 전혀 볼 수 없어 언론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신문기자가 돼서 기뻤고 《조선일보》 기자여서 자랑스러웠는데 지금 분위기는 신문기자 출신인 것이 창피스런 노년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낄 때도 있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은 통치불능의 나라가 된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엔 광우병 사태라는 괴상한 사건이 불거져 취임 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탄핵파면이 되는 사태를 맞아 국정이 혼돈 속에 빠져 있다.
 
  그동안 권력과 권위는 점점 더 행사하기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다. 대통령은 물론 재벌 기업체 사장이나 종교계의 수장, 노조의 책임자들은 버림받기 십상이고 사법부, 학교, 과학계 우두머리들도 도전받거나 힐문 당하고 있다.
 
  이 나라에선 더 이상 그 누구도 누구로부터 존경받는 소리를 듣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돼 버렸다. 이는 분명히 문명의 위기이고 나라의 위기이다. 그런데 이것은 민주주의라는 우리가 추구해 온 인간 통치제도의 성숙에서 생겨난 열매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多)미디어 시대가 가져온 이 위기는 언론계는 물론 앞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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