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유물을 빗자루로 쓸 듯이 가져간 연구자
⊙ 일본어 교사 신분으로 발굴한 백제 고분 1000여 기(基)
⊙ 일본 학자도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고백
⊙ 자기 마음대로 유물 도쿄 박물관에 기증
⊙ 일본어 교사 신분으로 발굴한 백제 고분 1000여 기(基)
⊙ 일본 학자도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고백
⊙ 자기 마음대로 유물 도쿄 박물관에 기증
- 송산리 제8호분 현실 및 유물 출토 상황. 가루베가 《고고학잡지》 제24권 제9호(1934년 9월)에 게재한 〈공주에 있어서 백제고분8〉에서 자신이 발굴한 고분의 출토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일본 역자학자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1897~1970)은 학계에서 백제사 연구에 발판을 놓은 인물로 평가 받는다. 대표적 백제 연구자인 윤용혁 공주대 교수는 저서 《가루베 지온의 백제연구》에서 ‘공주에서 지역의 역사나 백제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가루베 지온이 닦아 놓은 터를 지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학자로서 그이만큼 욕을 얻어 들은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고 기술했다.
가루베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무덤(송산리 6호분)을 가루베는 출토 유물을 고스란히 자기가 챙기고 무덤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말끔히 치운 다음 총독부에는 이미 도굴된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가루베는 강경에 있던 이 훔친 유물을 트럭에 싣고 대구로 가서 그곳에서 남선전기 사장으로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렸던 오쿠라(小倉)와 함께 무슨 수를 썼는지 귀신같이 일본으로 가져갔다. 가루베는 이렇게 도둑질, 약탈한 유물을 가지고 《백제의 연구》라는 저서를 펴냈다.〉
‘욕’하면서도 ‘연구’해야 하는 현실
가루베는 1927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공주고등보통학교에서 당시의 국어, 즉 일본어 교사로 근무했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역사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으나, 백제 연구에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였다. 일본 시즈오카현의 가루베 묘소에는 그의 인생을 두 문장으로 요약해 적고 있다.
〈백제 유적의 연구와 제자들의 교육에 바친 생애를 마치다. 백제가 융성했던 때의 이야기를 옛 기와와 나누다.〉
공주고보 교사로 근무하던 가루베는 상당수 백제고분을 최초 발굴했다. 고분의 원형은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역사학계에서는 “(유물 약탈 등으로)가루베를 욕하면서도 가루베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나아가 가루베가 거짓으로 기록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그 기록이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루베가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가루베 컬렉션’에 대한 의혹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대표는 “오쿠라 컬렉션의 경우 반환 운동이 뜨거운 반면, 가루베 컬렉션은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다”며 “하루속히 가루베가 불법적으로 가져간 유물을 찾아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가루베는 누구이며,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구체적인 문헌을 통해 조사하게 된 배경이다.
9월 말 가루베 컬렉션의 행방을 추적해 온 정규홍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 문화재연구실장으로부터 가루베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해당 자료를 통해 의문을 풀어 나갔다.
발굴한 고분 1000여 기(基)
가루베가 1927년부터 1933년까지 공주 일대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고분의 수는 1000여 기나 되었다. 그 가운데 완전한 분(墳)을 포함한 115기는 실측 촬영해 《고고학 잡지》에 1933년부터 1936년까지 8회에 걸쳐 ‘공주백제고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이를 활용했다.
가루베는 10여 년간 공주고보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수시로 향토조사에 관한 과제를 주었는데, 거기서 발견된 근거를 가지고 공주 일대의 유적을 파헤쳤다.
가루베는 스스로 유물을 발굴, 소장하고 있다며 1935년 《충청남도 향토지》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과시하고 있다.
〈내가 이 지역의 유물 유적의 조사를 시작한 지 8년. 그간 다행히 많은 백제 관계 고분, 사지, 성지, 궁원지 등 유적을 발견했다. 또 각종 백제 계통의 유물을 채집해 점차 웅진성 시대의 백제 문화의 윤곽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가루베가 발굴한 ‘완전한 분’(처녀분) 가운데 송산리 8호분이 있다. 8호분은 송산리 4호분 바로 아래 1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4호분의 배분(陪墳, 딸린무덤)으로 추정된다. 8호분은 오랜 세월 표면이 씻기어 외관상 고분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1932년 10월 27일 전백제왕릉(傳百濟王陵) 4호분의 도로신설 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되어 가루베가 직접 발굴했다.
출토유물은 구옥(勾玉) 1개, 이식용금환(耳飾用金環) 1개, 순금제산치옥(純金製山梔玉) 6개, 흑색연평옥(黑色練平玉) 4개, 녹색파리제소옥(綠色玻璃製小玉) 1000여 개, 황색파리제소옥(黃色玻璃製小玉) 약 300여 개, 소두색파리제소옥(小豆色玻璃製小玉) 36개, 은제엽형장신구(銀製葉形裝身具) 5개, 자감색파리제소옥(紫紺色玻璃製小玉) 150여 개, 철정(鐵釘) 약 40개, 감형도기(坩形陶器) 4개, 감형토기(坩形土器) 1개 등으로, 가루베가 직접 기록했다. 가루베는 이 사실을 《고고학잡지》 제24권 9호(1934년 9월)에 게재한 〈공주에서의 백제고분〉에서 발표하고, 출토 상태의 사진은 그의 저서 《백제미술》에 도판으로 게재했다. 엄청난 유물임에 분명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소재가 미궁에 빠져 있다.
가루베 스스로 백제유물을 입수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이렇다.
〈공주 공산성지에서 나는 수년간 지표면의 유물을 채집, 다수의 확실한 백제유물을 얻기에 이르렀다. 다시 1932년 여름과 가을에 유람도로 공사 후 빗물에 씻겨 내려가 기다(幾多)의 중요한 자료를 채집하고, 출토지에 배열하여 출토의 상황을 조사하였고 (중략) 쌍수교(雙樹橋)에서 서로 50미(米) 정도의 사이에 수혈(竪穴)이 10개소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하나는 겨우 경 90리(經90粴)의 혈(穴) 중에 어용토기(漁用土器) 42개, 팔엽연변와(八葉蓮辨瓦) 1개, 백제도기(百濟陶器) 1개, 토기 1개, 완형석기(碗形石器) 1개, 석봉(石棒) 1개 등이 출토되었다.〉
가루베 도굴의 근거들
가루베 발굴이 끝없이 논란이 되는 것은 상당수가 혼자서 도굴해 버렸기 때문이다. 도굴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근거는 이러하다.
1927년 4월 공주군 보승(保勝)회장 다카야마는 백제유적의 소개와 아울러 지방 발전을 위해 총독부에 공주 송산리 고분군 조사를 요청했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에서 조사단이 파견됐다. 1927년 10월 13일부터 23일까지 제1, 2, 5호 고분을 조사했다. 발굴조사를 마치고 발간한 보고서에는 발굴 배경, 고분의 위치 및 현황, 관련 도면, 발굴품 등이 기재되어 있다. 《매일신보》 1927년 10월 21일 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제시대 유물 공주에서 고분 발굴
총독부박물관에서는 백제시대 유적을 수색하여 발굴하기 위하여 지난번 야수 촉탁(囑託)을 파견하여 극력 조사케 하던 중 근래 주외면 용당리(당시 송산리가 용당리가 주외면에 편입되어 혼동을 일으킨 것으로 지금의 송산리를 의미)서 근사한 것이 있어 인부 수십 명을 고용하여 수일 전부터 발굴한 결과 3개소의 고분을 발굴하였으나 (중략) 백제유물로 입증할 만한 이륜(耳輪), 주도(珠刀) 등 귀중한 연구 자료가 있으므로 공주에 잠시 출장하였던 관야 박사는 전남에서 급보를 받고 공주에 와 지난 18일 고교 재무부장, 고산 공주군수, 정목 공주서장, 환산 도청의원 등을 동반하고 현장에 닿아 종일토록 조사하였는데 그 고분은 금후 공주보승회에서 충분히 보존하기로 계획 중이라더라.〉
문제는 해당 고분은 이미 도굴을 당한 후라는 점이다. 가루베는 당시 상황을 《충청남도 향토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도굴을 당하여 곽(槨)의 일부만 약간 남아 대부분 파괴된 것이 많았다. 여러 차례 나는 《고고학잡지》 등에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다.〉
정규홍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 문화재연구실장은 가루베 자신이 도굴의 범인이라고 의심한다. 근거는 이렇다.
첫째, 가루베는 동네 아이들이 고분을 발견하고 가장 먼저 들어갔다고 후에 주장하면서 15~16세가량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총독부 보고서를 볼 때 상당히 이상하다. 총독부 보고서는 도굴공들이 있던 곳에서 오사카 아사히신문지 조각과 양초를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15~16세 소년이 일본 신문을 볼 리가 없고, 그 당시 귀했던 양초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는 설명이다.
둘째, 가루베가 후에 제일 먼저 현실(玄室)에 들어갔던 소년으로부터 유물 배치를 들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어린 소년들이 어두웠던 내부 구조를 증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나아가 유물 배치를 기억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가루베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문화재를 조사해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학생들이 가져온 문화재 가운데 가치가 있는 것은 직접 찾아가 발굴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학생들이 알려준 고분을 가루베가 들어가 유물을 쓸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가루베가 직접 도굴 또는 도굴을 사주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가루베 도굴, 일본 학자에게도 충격
가루베의 도굴은 일본 학자에게도 충격이었다. 공주 송산리 6호분은 1932년 10월에 이미 발굴된 고분의 관람 도로를 건설하던 중 그 단서를 얻었다. 가루베는 송산리 제6호분의 존재를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1933년 7월 29일부터 해당 고분을 발굴했다. 가루베는 1933년 8월 1일에 곽내에 들어가 현장을 조사한 후 신고를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루베의 진술이고 주장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들어가기 전에 유물은 이미 도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독부박물관 조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그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현장은 의심투성이였다. 조사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최초로 현실 내로 들어간 가루베 씨에게 ‘유물은 어떻게 된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해 보았지만 ‘당초부터 이 상태이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고 회답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 학자들의 반발도 컸다.
〈그처럼 온후한 후지타(藤田) 위원님이 얼굴빛을 바꾸며 격노에 찬 언사를 퍼부으시는 것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후지타 위원님의 질책은 재지(在地)의 관계 유력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아무런 내색도 않고 설명진에 참가하고 있던 특정 인물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었다.〉
특정 인물은 가루베이다.
이렇듯 다양한 도굴 의혹이 있는 가루베는 상당수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강사였던 아이즈 야이치가 1939년에 발표한 수필을 보면 1935년 7월 도쿄부 나카사구에 있는 가루베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날짜는 잊어버렸으나 4, 5년 전의 일이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중학교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가루베)이 거기서 발견한 백제 국왕의 묘에서 파낸 여러 가지 물품을 가지고 7월 휴가 때에 돌아왔다. (중략) 이윽고 발굴자의 설명을 들어 가면서 동석한 4, 5명은 아주 조용히 수많은 물건들을 보았다. 이 묘는 이미 예전에 한 번 도굴을 당했던 것 같은데 유물은 대부분 작은 금구(金具)의 파편이나 남경옥(南京玉) 등뿐이었으나, 그래도 그 파편의 도금한 색은 휘황찬란하게 우리들의 눈에 비쳤다. 방안 가득히 늘어놓은 파편으로부터 먼 옛날 그 나라 왕궁의 생활을 조용히, 세밀히, 중간중간 넋을 잃고 마음속에 그려 봤다.〉
1945년 해방 이전부터 주요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도굴 유물 도쿄박물관에 기증
나아가 가루베는 충청남도 공주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조선총독부와는 별도로 백제유적을 조사하고 발굴(도굴)한 일부를 기증 또는 매도했다.
가루베의 《공주에 있어서의 백제고분8》을 보면, 옥잔(玉盞)이 1점 제시되어 있는데 ‘백제고분 출토의 옥기’라 하여 ‘주미리 5호분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도쿄제실박물관 소장으로 있는 이식(耳飾, 귀고리)과 함께 출토’라 하고 있다. 그 설명에는 ‘현재 도쿄제실박물관소장으로 1930년 가을 주미리 제5호분에서 옥잔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미리 제5호분은 1930년 8월경에 도굴당한 고분으로 1930년 9월에 가루베가 조사하여 잔여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가루베는 고분 출토유물들을 모두 개인 소장으로 하고 일부는 도쿄박물관에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도쿄제실박물관에서 조선, 중국 장식품, 경(鏡)을 포함 18건을 일괄 구입한 건이 있다. 그중 6건은 조선 공주 발견의 것으로 토기 3점과 금제 이식 1점이 포함되어 있다. 토기에는 ‘가루베소장품(輕部所藏品)’이라고 적혀 있다.
18건을 일괄 구입했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구입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6건은 공주의 것으로 그중 토기 3건은 가루베의 것이며, 나머지 3점 중 금제 이식은 가루베가 그의 논문에 게재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18건 모두 가루베의 소장품으로 추정된다.
가루베 발굴 유적 가운데 그 소재가 알려진 것은 극히 드물다.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물을 도굴 내지는 채집했지만, 현재 그 유물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체계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유적 발굴을 가루베가 직접 하고 기록했기에, 백제 연구자는 가루베의 기록 없이는 연구를 한 걸음도 진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루베가 거짓말을 했어도 어쩔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라도 사라진 유물의 소재를 확인해, 백제사는 한국인의 손으로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가루베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잘 드러나 있다.
〈이 무덤(송산리 6호분)을 가루베는 출토 유물을 고스란히 자기가 챙기고 무덤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말끔히 치운 다음 총독부에는 이미 도굴된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가루베는 강경에 있던 이 훔친 유물을 트럭에 싣고 대구로 가서 그곳에서 남선전기 사장으로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렸던 오쿠라(小倉)와 함께 무슨 수를 썼는지 귀신같이 일본으로 가져갔다. 가루베는 이렇게 도둑질, 약탈한 유물을 가지고 《백제의 연구》라는 저서를 펴냈다.〉
‘욕’하면서도 ‘연구’해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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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
〈백제 유적의 연구와 제자들의 교육에 바친 생애를 마치다. 백제가 융성했던 때의 이야기를 옛 기와와 나누다.〉
공주고보 교사로 근무하던 가루베는 상당수 백제고분을 최초 발굴했다. 고분의 원형은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역사학계에서는 “(유물 약탈 등으로)가루베를 욕하면서도 가루베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나아가 가루베가 거짓으로 기록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그 기록이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가루베가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가루베 컬렉션’에 대한 의혹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근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대표는 “오쿠라 컬렉션의 경우 반환 운동이 뜨거운 반면, 가루베 컬렉션은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다”며 “하루속히 가루베가 불법적으로 가져간 유물을 찾아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가루베는 누구이며,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구체적인 문헌을 통해 조사하게 된 배경이다.
9월 말 가루베 컬렉션의 행방을 추적해 온 정규홍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 문화재연구실장으로부터 가루베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해당 자료를 통해 의문을 풀어 나갔다.
발굴한 고분 1000여 기(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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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출토 이식(耳飾, 귀고리). 이 사진은 가루베가 《고고학잡지》 제26권 제4호에 게재한 〈공주에 있어서 백제고분8〉에서 도판 제67도 (2)로 제시한 사진으로 본인의 소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
가루베는 10여 년간 공주고보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수시로 향토조사에 관한 과제를 주었는데, 거기서 발견된 근거를 가지고 공주 일대의 유적을 파헤쳤다.
가루베는 스스로 유물을 발굴, 소장하고 있다며 1935년 《충청남도 향토지》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과시하고 있다.
〈내가 이 지역의 유물 유적의 조사를 시작한 지 8년. 그간 다행히 많은 백제 관계 고분, 사지, 성지, 궁원지 등 유적을 발견했다. 또 각종 백제 계통의 유물을 채집해 점차 웅진성 시대의 백제 문화의 윤곽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가루베가 발굴한 ‘완전한 분’(처녀분) 가운데 송산리 8호분이 있다. 8호분은 송산리 4호분 바로 아래 1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4호분의 배분(陪墳, 딸린무덤)으로 추정된다. 8호분은 오랜 세월 표면이 씻기어 외관상 고분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1932년 10월 27일 전백제왕릉(傳百濟王陵) 4호분의 도로신설 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되어 가루베가 직접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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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고분 출토 장신구(상단), 동조석가입상(하단 우) 및 이식(하단 좌). 이 사진은 가루베가 《고고학잡지》 제26권 제4호에 게재한 〈공주에 있어서 백제고분8〉에서 도판 제67도 (1)로 제시한 사진이다. 이들 유물은 가루베의 기록 이외 다른 사람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바, 가루베가 소장한 것으로 보인다. |
가루베 스스로 백제유물을 입수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이렇다.
〈공주 공산성지에서 나는 수년간 지표면의 유물을 채집, 다수의 확실한 백제유물을 얻기에 이르렀다. 다시 1932년 여름과 가을에 유람도로 공사 후 빗물에 씻겨 내려가 기다(幾多)의 중요한 자료를 채집하고, 출토지에 배열하여 출토의 상황을 조사하였고 (중략) 쌍수교(雙樹橋)에서 서로 50미(米) 정도의 사이에 수혈(竪穴)이 10개소가 있는데 이 중에서 하나는 겨우 경 90리(經90粴)의 혈(穴) 중에 어용토기(漁用土器) 42개, 팔엽연변와(八葉蓮辨瓦) 1개, 백제도기(百濟陶器) 1개, 토기 1개, 완형석기(碗形石器) 1개, 석봉(石棒) 1개 등이 출토되었다.〉
가루베 도굴의 근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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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홍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 문화재연구실장. |
1927년 4월 공주군 보승(保勝)회장 다카야마는 백제유적의 소개와 아울러 지방 발전을 위해 총독부에 공주 송산리 고분군 조사를 요청했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에서 조사단이 파견됐다. 1927년 10월 13일부터 23일까지 제1, 2, 5호 고분을 조사했다. 발굴조사를 마치고 발간한 보고서에는 발굴 배경, 고분의 위치 및 현황, 관련 도면, 발굴품 등이 기재되어 있다. 《매일신보》 1927년 10월 21일 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제시대 유물 공주에서 고분 발굴
총독부박물관에서는 백제시대 유적을 수색하여 발굴하기 위하여 지난번 야수 촉탁(囑託)을 파견하여 극력 조사케 하던 중 근래 주외면 용당리(당시 송산리가 용당리가 주외면에 편입되어 혼동을 일으킨 것으로 지금의 송산리를 의미)서 근사한 것이 있어 인부 수십 명을 고용하여 수일 전부터 발굴한 결과 3개소의 고분을 발굴하였으나 (중략) 백제유물로 입증할 만한 이륜(耳輪), 주도(珠刀) 등 귀중한 연구 자료가 있으므로 공주에 잠시 출장하였던 관야 박사는 전남에서 급보를 받고 공주에 와 지난 18일 고교 재무부장, 고산 공주군수, 정목 공주서장, 환산 도청의원 등을 동반하고 현장에 닿아 종일토록 조사하였는데 그 고분은 금후 공주보승회에서 충분히 보존하기로 계획 중이라더라.〉
문제는 해당 고분은 이미 도굴을 당한 후라는 점이다. 가루베는 당시 상황을 《충청남도 향토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도굴을 당하여 곽(槨)의 일부만 약간 남아 대부분 파괴된 것이 많았다. 여러 차례 나는 《고고학잡지》 등에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다.〉
정규홍 대구경북향토문화연구소 문화재연구실장은 가루베 자신이 도굴의 범인이라고 의심한다. 근거는 이렇다.
첫째, 가루베는 동네 아이들이 고분을 발견하고 가장 먼저 들어갔다고 후에 주장하면서 15~16세가량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총독부 보고서를 볼 때 상당히 이상하다. 총독부 보고서는 도굴공들이 있던 곳에서 오사카 아사히신문지 조각과 양초를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15~16세 소년이 일본 신문을 볼 리가 없고, 그 당시 귀했던 양초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는 설명이다.
둘째, 가루베가 후에 제일 먼저 현실(玄室)에 들어갔던 소년으로부터 유물 배치를 들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어린 소년들이 어두웠던 내부 구조를 증언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나아가 유물 배치를 기억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가루베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문화재를 조사해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학생들이 가져온 문화재 가운데 가치가 있는 것은 직접 찾아가 발굴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면, 학생들이 알려준 고분을 가루베가 들어가 유물을 쓸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가루베가 직접 도굴 또는 도굴을 사주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가루베 도굴, 일본 학자에게도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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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송산리 제6호분 연도 전벽(부산일보, 1935년 10월 28일자). |
〈최초로 현실 내로 들어간 가루베 씨에게 ‘유물은 어떻게 된 것일까’라는 문제를 제기해 보았지만 ‘당초부터 이 상태이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고 회답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 학자들의 반발도 컸다.
〈그처럼 온후한 후지타(藤田) 위원님이 얼굴빛을 바꾸며 격노에 찬 언사를 퍼부으시는 것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후지타 위원님의 질책은 재지(在地)의 관계 유력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아무런 내색도 않고 설명진에 참가하고 있던 특정 인물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었다.〉
특정 인물은 가루베이다.
이렇듯 다양한 도굴 의혹이 있는 가루베는 상당수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강사였던 아이즈 야이치가 1939년에 발표한 수필을 보면 1935년 7월 도쿄부 나카사구에 있는 가루베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날짜는 잊어버렸으나 4, 5년 전의 일이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중학교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자신(가루베)이 거기서 발견한 백제 국왕의 묘에서 파낸 여러 가지 물품을 가지고 7월 휴가 때에 돌아왔다. (중략) 이윽고 발굴자의 설명을 들어 가면서 동석한 4, 5명은 아주 조용히 수많은 물건들을 보았다. 이 묘는 이미 예전에 한 번 도굴을 당했던 것 같은데 유물은 대부분 작은 금구(金具)의 파편이나 남경옥(南京玉) 등뿐이었으나, 그래도 그 파편의 도금한 색은 휘황찬란하게 우리들의 눈에 비쳤다. 방안 가득히 늘어놓은 파편으로부터 먼 옛날 그 나라 왕궁의 생활을 조용히, 세밀히, 중간중간 넋을 잃고 마음속에 그려 봤다.〉
1945년 해방 이전부터 주요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도굴 유물 도쿄박물관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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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산리 고분 배수구(부산일보, 1935년 10월 24일). |
가루베의 《공주에 있어서의 백제고분8》을 보면, 옥잔(玉盞)이 1점 제시되어 있는데 ‘백제고분 출토의 옥기’라 하여 ‘주미리 5호분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도쿄제실박물관 소장으로 있는 이식(耳飾, 귀고리)과 함께 출토’라 하고 있다. 그 설명에는 ‘현재 도쿄제실박물관소장으로 1930년 가을 주미리 제5호분에서 옥잔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미리 제5호분은 1930년 8월경에 도굴당한 고분으로 1930년 9월에 가루베가 조사하여 잔여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가루베는 고분 출토유물들을 모두 개인 소장으로 하고 일부는 도쿄박물관에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1932년에 도쿄제실박물관에서 조선, 중국 장식품, 경(鏡)을 포함 18건을 일괄 구입한 건이 있다. 그중 6건은 조선 공주 발견의 것으로 토기 3점과 금제 이식 1점이 포함되어 있다. 토기에는 ‘가루베소장품(輕部所藏品)’이라고 적혀 있다.
18건을 일괄 구입했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구입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6건은 공주의 것으로 그중 토기 3건은 가루베의 것이며, 나머지 3점 중 금제 이식은 가루베가 그의 논문에 게재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18건 모두 가루베의 소장품으로 추정된다.
가루베 발굴 유적 가운데 그 소재가 알려진 것은 극히 드물다.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물을 도굴 내지는 채집했지만, 현재 그 유물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체계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유적 발굴을 가루베가 직접 하고 기록했기에, 백제 연구자는 가루베의 기록 없이는 연구를 한 걸음도 진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루베가 거짓말을 했어도 어쩔 수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라도 사라진 유물의 소재를 확인해, 백제사는 한국인의 손으로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