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림사 인기에 자극받은 무당산
⊙ 절벽 위에 위치한 ‘고궁’이 절경
⊙ 전설의 무술인 직계 제자와 도교 도사들이 수련 중
⊙ 절벽 위에 위치한 ‘고궁’이 절경
⊙ 전설의 무술인 직계 제자와 도교 도사들이 수련 중
- 무당산 전경. 사진=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
중국 무림(武林)은 크게, 소림(少林) 무술과 무당파(武當派)로 나뉜다. 소림사와 쌍벽을 이루는 무당파가 뿌리를 둔 무당산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스옌시(十堰市)에 위치한다. 무협 영화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의 무대로 알려진 무당산(武當山)은 태극권(太極拳)이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중국 무협 영화는 과장이 심하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축지법(縮地法)으로 공간을 이동한다. 요즈음 세계 영화 동향을 보면 미국 할리우드 영화는 미래를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반면 중국은 자신들의 과거에 폭넓은 상상력을 첨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익숙하다.
상상력의 기반은 과연 무엇일까. 무림은 중국인 상상력의 원천이다. 2015년 12월 28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인천공항에서 중국 시안(西安)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무림의 고향은 어떤 모습일까 끊임없는 상상을 하게 됐다.
중국 무당산 당국은 적극적으로 한국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16년 2월 개통할 무당산공항~인천 직항 노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는 시안 등 중국 인근지역에서 무당산까지 5~6시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직항노선이 생기면, 한국관광객들이 좀 더 쉽게 무당산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에서 무당산 관광 홍보를 위해 중국 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는 한국의 한중무역협회, 한국무예진흥원, 한국도교학회, 한국한문고전학회, 한국언론문화포럼 등의 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중국 관광자원을 소개했다.
시안으로 출발하기 전 무당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중국인에 있어 무당산은 무술뿐만 아니라 도교(道敎)의 중심지로 ‘한국의 팔공산 갓바위’와 같은 영적 체험의 공간이었다. 보통 유교, 불교, 도교, 즉 유불선(儒佛仙)을 한국의 전통사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유교, 불교의 경우 아직까지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도교의 경우 유교와 불교에 흡수돼 그 존재가 상대적으로 작다. 그렇다고 도교의 전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복(福)을 빌고, 풍수를 중요시하는 사고의 바탕에는 도교가 있다. 중국의 도교는 어떤 모습일까. 무당산은 이렇듯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무당산, 소림사 인기에 자극 받아
지난 12월 28일 중국 시안에 도착하니 중국 스모그(smog)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100m 앞의 건물조차 희미하게 보였다. 중국 정부에서 대기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를 알 만했다. 빠르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무당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당산 관광을 책임지는 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가 참관단 일행의 일정을 책임졌다.
최근 한국에서는 소림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일부 TV프로그램에서 소림사를 소재로 한 오락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무협 영화를 통해 오랜 기간 보아 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이래서 소림사를 찾는 한국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소림사의 성공사례에 무당산 관계자들은 크게 고무(鼓舞)된 것으로 보였다. 중국 내에서 무당산은 소림사와 여러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관광지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인데, 이러한 이유에서 소림사에 불어온 중국 무술 열풍이 무당산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당산 공항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고속도로를 통해 시안에서 무당산까지 5시간을 달려야 했다. 2월에 무당산공항이 개통되면, 한국에서 무당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좀 더 쉽게 무당산 여행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대륙의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기분은 한국과 조금 달랐다. 거침없는 속도로 달리면서 느끼는 주변의 산세(山勢) 역시 한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컸다. 한국의 산은 곱게 단장하고 정리되어 곡선이 아름다운 느낌이라면, 중국의 산세는 거침없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끝없는 지평선에 조금씩 불쑥 튀어 오르는 산세를 보면서, 과연 해발 1612m의 무당산은 언제 나타날지 궁금했다.
단조로운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다 보니 휴게소를 급하게 찾게 되었다. 고속도로 곳곳에 휴게소가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3시간 만에 겨우 휴게소에 들를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하면서 중국 화장실은 어떨까 많이 궁금했다. 10년 전 기자는 중국 배낭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사람 사이를 가리는 문이 없는 모습을 보고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10년 만에 확인한 중국의 화장실은 한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간의 놀라운 변화였다. 중국 현지 가이드에게 확인해 보니, 중국 정부가 주요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하고, 점수를 매기는 정책을 펼치면서 화장실 문화가 크게 개선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기자가 느낀 중국 ‘술’ 문화
늦은 저녁 무당산 근교 호텔에 도착한 참관단은 무당산 정부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무당산 공무원들은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소림사’ 인기를 잘 알고 있었다. 소림사는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 공무원들은 ‘꽃보다 할배’ 등 주요 해외관광 프로그램의 인기도 잘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무당산은 소림사와 쌍벽을 이루는 관광지다. 무당산을 소림사에 버금가는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 측은 한국 참관단에게 무당산의 주요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중국은 흔히 관시(關系·연줄)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인간관계 특히 공무원과의 인간관계가 사업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저녁을 함께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엄청난 ‘술’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기자는 내심 긴장하며 저녁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식 식사는 원탁에 여러 가지 요리를 올려놓고 이를 돌려가면서 나눠 먹는다. 한국에도 비슷한 형태의 중식당이 많아 크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식탁에 올라온 음식은 놀라웠다. 소힘줄 등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육해공(陸海空)’ 재료들로 구성된 요리였다. 풍성했으나 크게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알아보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 영향이라고 한다. 국가공무원이 참석하는 저녁 식사의 경우 목적과 참석자의 지위에 걸맞게 아주 구체적으로 방법을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더치페이를 유도하고 과도한 접대를 금지하려 하는데, 중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방향으로 공무원 부패를 막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전에 현지 가이드는 이러한 조언을 했다. “중국측 인사로부터 건배 제의를 받으면, 가능한 모두 받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건배 제의를 받고 원샷을 하는데, 입에 대기만 하고 따라준 술을 남기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한국의 경우도 과도한 건배와 원샷으로 폭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중국술은 보통 40도 이상의 독주가 많다. 보드카 수준이다. 내심 긴장했는데, 다행히 술잔이 한국의 소주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또 중국 공무원들은 의외로 세련된 음주문화를 보여줬다. 술을 못하면 한국의 숭늉과 맛이 비슷한 차로 대신해도 된다고 했고, 지나친 음주를 자제하려는 분위기 역시 강했다. 참석자들에게 문의해 보니, 중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달아 공무원 기강 강화 차원에서 지나친 음주를 금하고, 특히 음주운전의 경우 무조건 구속부터 시키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해 과거에 비해 음주문화가 많이 건전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점심 때 술을 마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폭음은 피했지만, 중국 음식의 강렬한 향엔 많이 힘들었다. 한국 음식에는 고춧가루, 설탕,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중국 음식엔 이러한 것을 배제하고 전통 향신료를 통해 맛을 내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생각에 이러한 향신료가 빠지면, 우리가 소금, 고춧가루 없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랜 중국 생활에 익숙한 여행객들은 나름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으나, 중국 전통음식을 처음 접한 기자는 중국 향신료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중국 여행에 한국 인스턴트 라면은 필수라는 조언을 따르지 않고, 빈손으로 중국으로 향한 것을 후회했다. 저녁을 마친 후, 얼큰한 한국 라면을 먹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무당산, 1994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12월 말 중국의 날씨는 한국과도 달랐다. 습도 차이 때문인지 한국보다 추위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중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보일러 시설이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귀뚜라미보일러가 중국에서 크게 성공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의 추위에 두꺼운 코트를 껴입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무당산은 해발 1612m다. 무당산을 하늘에서 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모양이다. 무당산은 협곡과 옛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도교와 태극무술, 자연과 인문이 융합된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사실 처음 무당산의 모습을 보고, 아찔하게 높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그 산맥의 흐름이 부드럽지 않고 호방하게 튀어나와 역동적이었다. 단지 무당산만으로는 관광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당산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당산 관광의 핵심은 산과 산 정상 주변에 세워진 중국 도교사원들의 아름다운 조화에 있었다. 무당산에는 이미 당나라 시대부터 도교 건축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송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면서 계속 확대되었다. 지금의 원형은 명나라 영락제 때 건축됐다.
명나라 영락제는 조선 세조와 마찬가지로 조카의 황위를 찬탈하여 등극했다. 명분을 위해 그는 ‘황권은 하늘이 준다’는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이러한 생각에 자신이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현무신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현무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던 무당산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30만명의 장인과 인부를 보내 13년에 걸쳐 무당산에 거대한 도교 사원을 건축했다.
절벽 위의 고궁
무당산의 옛 건축물들은 중국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궁전 및 사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무당산 건축군은 ‘절벽 위의 고궁(古宮)’이라 불린다. 이렇게 천년에 걸친 중국 건축예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었다.
무당산은 72개의 봉우리와 26개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선의 정원에 있는 느낌이다. 무당산 정상까지 ‘신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돌계단이 놓여 있다.
무당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깎인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중국인들은 산을 개발할 때, 최우선적으로 계단을 설치한다고 한다. 계단이 곧 사람이 사는 문명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무당산 정상까지 가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케이블카와 도보다. 걸어서는 600년이 넘은 계단들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한계단 한계단 오르면서 보면 주변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걸어서 오르는 것이 무당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경사가 심한 계단이 부담스럽다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케이블카에서 무당산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주봉(主峯)은 천주봉이다. 천주봉에는 무당산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금전(金殿)이 있다.
1416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칙명에 따라 금박(金箔)을 입힌 구리(銅)로 만든 건축물이다. 남북 길이 27m, 동서 길이 21m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건축물 안에는 촛대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해당 건축물이 유명한 것은, 무려 600년 동안 바람에 의해 촛불이 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600년 동안 건물 안을 밝힌 촛대의 불꽃이 한 번도 바람에 의해 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밖에서 내부를 10여분 동안 관찰했는데 산 정상의 거친 바람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에는 미풍(微風)도 일지 않았다.
구리로 완벽하게 바람을 차단할 정도로 정교한 건축물이었다. 중국은 해당 건축물을 1962년 전국 중점문물 보호지로 지정했다.
정상에 위치한 금전은 6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금칠이 거의 벗겨져 있었다. 과거 금박이 온전했을 당시 햇빛에 반사되는 금빛 광채가 주변 전체를 비추었을 상상을 하니 저절로 관심이 커졌다.
무협인 장삼봉 직계 15代 제자
무협 소설을 즐기는 한국 독자라면, ‘무당파’가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당산은 소림무술과 함께 중국 무술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무당파’의 본산이다. 중국 무협 소설 및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무당파는 소림사를 뛰쳐나온 장삼봉(張三峰)이란 사람이 세운 문파로 도가사상에 기반한다. 특히 소림사 무술에 비해 부드러우며 검법이 강하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태극권이 바로 무당파의 무술이다.
소림사와 같이 중국의 무맥을 잇는 무당파도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자 무당산 도교협회 회장인 리광푸(李光富)는 “소림사의 발전이 빠른 것은 젊은이들이 외공(外功)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며 “무당은 태극권을 통해, 양생을 위주로 소림사와 다른 방향으로 해외진출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과 미국, 태국,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상업적 의미보다 전통문화의 전파에 의미를 두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협인 장삼봉이 등장한다. 장삼봉은 태극권을 창시한 도사로 알려져 있다. 무당산이 유명한 것은 장삼봉이 바로 무당산에서 태극권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내용은 전설의 장삼봉 후예들의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장삼봉의 15대 직계 제자를 만나서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장삼봉의 무술 시범을 보면서, 태극권만의 독특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그의 무술 시범을 보며, 소림권법하고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心身) 수련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무술인이라기보다 종교인처럼 보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양인 수련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연말 연휴기간에 찾아서 그렇지 평상시에는 태극권을 수련하는 서양인 수련생들의 수가 더욱 많다는 설명이었다. 과거 서양에는 일본의 사무라이 무술에 깊이 빠진 청년들이 많았다. 이러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서양 영화, 소설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점차 중국 무술에 관심을 가지는 서양인들이 늘어나면서 중국문화가 세계 대중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원히 살 수 있나?
무당산에는 수많은 도교 사원이 있다. 도교의 승려를 도사라고 부른다. 도교 사원을 보면서 한국의 사찰과 건물 구조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도교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종교는 인간의 죽음과 큰 연관이 있다. 죽음이 있기에 두려움이 있고 이를 극복 혹은 성찰하는 가운데 종교가 발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교를 숭배하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나아가 도교를 믿고 따르는 도사는 어떤 생각으로 수련을 하고 있을까. 무당산 기슭에는 오직 수행에만 몰두하는 도인이 300~4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들은 채식만을 하면서 수련에 집중한다.
기자는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도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도사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도사에게 나이를 묻자, 나이를 물으면 실례라는 답변을 들었다. 영원을 꿈꾸고 수련하는 도사에게 현세의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단다. 다만 몇몇 도사와 잠시나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 표정은 일반인과 달리 깊은 고요 속에 안정이 느껴졌다. 기자는 죽음을 뛰어넘는다는 도교의 세계를 짧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수년 동안 해야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팔공산 갓바위를 찾으면, 현세의 복(福)을 기원하기 위해 모인 보통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중국 무당산 역시 3~4시간의 힘든 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산 정상에 올라 자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중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많았다. 무당산이 주는 무언가 강렬한 에너지가 수천년 동안 중국의 민초(民草)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신도들을 불러모으고 있으니, 무당산은 대륙의 기(氣)가 모인 곳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중국 무협 영화는 과장이 심하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축지법(縮地法)으로 공간을 이동한다. 요즈음 세계 영화 동향을 보면 미국 할리우드 영화는 미래를 공상과학소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반면 중국은 자신들의 과거에 폭넓은 상상력을 첨가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익숙하다.
상상력의 기반은 과연 무엇일까. 무림은 중국인 상상력의 원천이다. 2015년 12월 28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인천공항에서 중국 시안(西安)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무림의 고향은 어떤 모습일까 끊임없는 상상을 하게 됐다.
중국 무당산 당국은 적극적으로 한국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16년 2월 개통할 무당산공항~인천 직항 노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는 시안 등 중국 인근지역에서 무당산까지 5~6시간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직항노선이 생기면, 한국관광객들이 좀 더 쉽게 무당산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에서 무당산 관광 홍보를 위해 중국 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는 한국의 한중무역협회, 한국무예진흥원, 한국도교학회, 한국한문고전학회, 한국언론문화포럼 등의 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중국 관광자원을 소개했다.
시안으로 출발하기 전 무당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중국인에 있어 무당산은 무술뿐만 아니라 도교(道敎)의 중심지로 ‘한국의 팔공산 갓바위’와 같은 영적 체험의 공간이었다. 보통 유교, 불교, 도교, 즉 유불선(儒佛仙)을 한국의 전통사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유교, 불교의 경우 아직까지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도교의 경우 유교와 불교에 흡수돼 그 존재가 상대적으로 작다. 그렇다고 도교의 전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복(福)을 빌고, 풍수를 중요시하는 사고의 바탕에는 도교가 있다. 중국의 도교는 어떤 모습일까. 무당산은 이렇듯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무당산, 소림사 인기에 자극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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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말 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한중무역협회, 한국무예진흥원, 한국언론문화포럼 대표들이 중국 태극권 수련생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무당산 관광을 책임지는 무당산특구관리위원회가 참관단 일행의 일정을 책임졌다.
최근 한국에서는 소림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일부 TV프로그램에서 소림사를 소재로 한 오락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무협 영화를 통해 오랜 기간 보아 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이래서 소림사를 찾는 한국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소림사의 성공사례에 무당산 관계자들은 크게 고무(鼓舞)된 것으로 보였다. 중국 내에서 무당산은 소림사와 여러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관광지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용호상박(龍虎相搏)인데, 이러한 이유에서 소림사에 불어온 중국 무술 열풍이 무당산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당산 공항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고속도로를 통해 시안에서 무당산까지 5시간을 달려야 했다. 2월에 무당산공항이 개통되면, 한국에서 무당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좀 더 쉽게 무당산 여행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대륙의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기분은 한국과 조금 달랐다. 거침없는 속도로 달리면서 느끼는 주변의 산세(山勢) 역시 한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컸다. 한국의 산은 곱게 단장하고 정리되어 곡선이 아름다운 느낌이라면, 중국의 산세는 거침없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끝없는 지평선에 조금씩 불쑥 튀어 오르는 산세를 보면서, 과연 해발 1612m의 무당산은 언제 나타날지 궁금했다.
단조로운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다 보니 휴게소를 급하게 찾게 되었다. 고속도로 곳곳에 휴게소가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3시간 만에 겨우 휴게소에 들를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하면서 중국 화장실은 어떨까 많이 궁금했다. 10년 전 기자는 중국 배낭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사람 사이를 가리는 문이 없는 모습을 보고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10년 만에 확인한 중국의 화장실은 한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간의 놀라운 변화였다. 중국 현지 가이드에게 확인해 보니, 중국 정부가 주요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하고, 점수를 매기는 정책을 펼치면서 화장실 문화가 크게 개선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기자가 느낀 중국 ‘술’ 문화
늦은 저녁 무당산 근교 호텔에 도착한 참관단은 무당산 정부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무당산 공무원들은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소림사’ 인기를 잘 알고 있었다. 소림사는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 공무원들은 ‘꽃보다 할배’ 등 주요 해외관광 프로그램의 인기도 잘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무당산은 소림사와 쌍벽을 이루는 관광지다. 무당산을 소림사에 버금가는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 측은 한국 참관단에게 무당산의 주요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중국은 흔히 관시(關系·연줄)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인간관계 특히 공무원과의 인간관계가 사업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저녁을 함께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엄청난 ‘술’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기자는 내심 긴장하며 저녁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식 식사는 원탁에 여러 가지 요리를 올려놓고 이를 돌려가면서 나눠 먹는다. 한국에도 비슷한 형태의 중식당이 많아 크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식탁에 올라온 음식은 놀라웠다. 소힘줄 등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육해공(陸海空)’ 재료들로 구성된 요리였다. 풍성했으나 크게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알아보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 영향이라고 한다. 국가공무원이 참석하는 저녁 식사의 경우 목적과 참석자의 지위에 걸맞게 아주 구체적으로 방법을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더치페이를 유도하고 과도한 접대를 금지하려 하는데, 중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방향으로 공무원 부패를 막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전에 현지 가이드는 이러한 조언을 했다. “중국측 인사로부터 건배 제의를 받으면, 가능한 모두 받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건배 제의를 받고 원샷을 하는데, 입에 대기만 하고 따라준 술을 남기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한국의 경우도 과도한 건배와 원샷으로 폭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중국술은 보통 40도 이상의 독주가 많다. 보드카 수준이다. 내심 긴장했는데, 다행히 술잔이 한국의 소주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또 중국 공무원들은 의외로 세련된 음주문화를 보여줬다. 술을 못하면 한국의 숭늉과 맛이 비슷한 차로 대신해도 된다고 했고, 지나친 음주를 자제하려는 분위기 역시 강했다. 참석자들에게 문의해 보니, 중국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달아 공무원 기강 강화 차원에서 지나친 음주를 금하고, 특히 음주운전의 경우 무조건 구속부터 시키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해 과거에 비해 음주문화가 많이 건전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점심 때 술을 마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폭음은 피했지만, 중국 음식의 강렬한 향엔 많이 힘들었다. 한국 음식에는 고춧가루, 설탕,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중국 음식엔 이러한 것을 배제하고 전통 향신료를 통해 맛을 내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생각에 이러한 향신료가 빠지면, 우리가 소금, 고춧가루 없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랜 중국 생활에 익숙한 여행객들은 나름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으나, 중국 전통음식을 처음 접한 기자는 중국 향신료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중국 여행에 한국 인스턴트 라면은 필수라는 조언을 따르지 않고, 빈손으로 중국으로 향한 것을 후회했다. 저녁을 마친 후, 얼큰한 한국 라면을 먹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무당산, 1994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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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산의 도교사원들. |
무당산은 해발 1612m다. 무당산을 하늘에서 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모양이다. 무당산은 협곡과 옛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도교와 태극무술, 자연과 인문이 융합된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199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사실 처음 무당산의 모습을 보고, 아찔하게 높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그 산맥의 흐름이 부드럽지 않고 호방하게 튀어나와 역동적이었다. 단지 무당산만으로는 관광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당산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당산 관광의 핵심은 산과 산 정상 주변에 세워진 중국 도교사원들의 아름다운 조화에 있었다. 무당산에는 이미 당나라 시대부터 도교 건축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송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면서 계속 확대되었다. 지금의 원형은 명나라 영락제 때 건축됐다.
명나라 영락제는 조선 세조와 마찬가지로 조카의 황위를 찬탈하여 등극했다. 명분을 위해 그는 ‘황권은 하늘이 준다’는 분위기를 만들려 했다. 이러한 생각에 자신이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현무신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현무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던 무당산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30만명의 장인과 인부를 보내 13년에 걸쳐 무당산에 거대한 도교 사원을 건축했다.
절벽 위의 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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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산 천주봉에 세워진 금전. 금으로 도금되어 있으나 현재는 많이 벗겨져 있다. |
무당산은 72개의 봉우리와 26개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선의 정원에 있는 느낌이다. 무당산 정상까지 ‘신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돌계단이 놓여 있다.
무당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깎인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중국인들은 산을 개발할 때, 최우선적으로 계단을 설치한다고 한다. 계단이 곧 사람이 사는 문명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무당산 정상까지 가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케이블카와 도보다. 걸어서는 600년이 넘은 계단들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한계단 한계단 오르면서 보면 주변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걸어서 오르는 것이 무당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경사가 심한 계단이 부담스럽다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케이블카에서 무당산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주봉(主峯)은 천주봉이다. 천주봉에는 무당산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금전(金殿)이 있다.
1416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칙명에 따라 금박(金箔)을 입힌 구리(銅)로 만든 건축물이다. 남북 길이 27m, 동서 길이 21m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건축물 안에는 촛대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해당 건축물이 유명한 것은, 무려 600년 동안 바람에 의해 촛불이 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600년 동안 건물 안을 밝힌 촛대의 불꽃이 한 번도 바람에 의해 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밖에서 내부를 10여분 동안 관찰했는데 산 정상의 거친 바람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에는 미풍(微風)도 일지 않았다.
구리로 완벽하게 바람을 차단할 정도로 정교한 건축물이었다. 중국은 해당 건축물을 1962년 전국 중점문물 보호지로 지정했다.
정상에 위치한 금전은 6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금칠이 거의 벗겨져 있었다. 과거 금박이 온전했을 당시 햇빛에 반사되는 금빛 광채가 주변 전체를 비추었을 상상을 하니 저절로 관심이 커졌다.
무협인 장삼봉 직계 15代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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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전통무술 수련생들. |
소림사와 같이 중국의 무맥을 잇는 무당파도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자 무당산 도교협회 회장인 리광푸(李光富)는 “소림사의 발전이 빠른 것은 젊은이들이 외공(外功)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며 “무당은 태극권을 통해, 양생을 위주로 소림사와 다른 방향으로 해외진출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과 미국, 태국,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 진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상업적 의미보다 전통문화의 전파에 의미를 두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협인 장삼봉이 등장한다. 장삼봉은 태극권을 창시한 도사로 알려져 있다. 무당산이 유명한 것은 장삼봉이 바로 무당산에서 태극권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내용은 전설의 장삼봉 후예들의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장삼봉의 15대 직계 제자를 만나서 무술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장삼봉의 무술 시범을 보면서, 태극권만의 독특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그의 무술 시범을 보며, 소림권법하고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心身) 수련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무술인이라기보다 종교인처럼 보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양인 수련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연말 연휴기간에 찾아서 그렇지 평상시에는 태극권을 수련하는 서양인 수련생들의 수가 더욱 많다는 설명이었다. 과거 서양에는 일본의 사무라이 무술에 깊이 빠진 청년들이 많았다. 이러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서양 영화, 소설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점차 중국 무술에 관심을 가지는 서양인들이 늘어나면서 중국문화가 세계 대중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원히 살 수 있나?
무당산에는 수많은 도교 사원이 있다. 도교의 승려를 도사라고 부른다. 도교 사원을 보면서 한국의 사찰과 건물 구조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도교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종교는 인간의 죽음과 큰 연관이 있다. 죽음이 있기에 두려움이 있고 이를 극복 혹은 성찰하는 가운데 종교가 발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교를 숭배하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나아가 도교를 믿고 따르는 도사는 어떤 생각으로 수련을 하고 있을까. 무당산 기슭에는 오직 수행에만 몰두하는 도인이 300~4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들은 채식만을 하면서 수련에 집중한다.
기자는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도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도사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도사에게 나이를 묻자, 나이를 물으면 실례라는 답변을 들었다. 영원을 꿈꾸고 수련하는 도사에게 현세의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단다. 다만 몇몇 도사와 잠시나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 표정은 일반인과 달리 깊은 고요 속에 안정이 느껴졌다. 기자는 죽음을 뛰어넘는다는 도교의 세계를 짧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수년 동안 해야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팔공산 갓바위를 찾으면, 현세의 복(福)을 기원하기 위해 모인 보통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중국 무당산 역시 3~4시간의 힘든 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산 정상에 올라 자신의 행복을 기원하는 중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많았다. 무당산이 주는 무언가 강렬한 에너지가 수천년 동안 중국의 민초(民草)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신도들을 불러모으고 있으니, 무당산은 대륙의 기(氣)가 모인 곳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