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스티브 잡스〉의 마이클 패스벤더(Michael Fassbender) : 월간조선

애플컴퓨터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삶을 다룬 〈스티브 잡스〉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연기파 마이클 패스벤더(37)와의 인터뷰가 지난 10월 4일 미국 뉴욕의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서 있었다. 패스벤더는 독일서 태어났으나 2세 때 부모가 아일랜드로 이주, 그곳에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둘 다 오스카 수상자인 대니 보일(슬럼독 밀리어네어)이 감독하고 아론 소킨(소셜 네트웍)이 각본을 썼는데 잡스의 삶을 3막의 드라마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언어의 홍수를 이루다시피 한다. 마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재미 있다기 보다는 지적인 영화라고 하겠다.

수수한 차림의 패스벤더는 질문에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을 했는데 눈매가 매우 날카로웠다. 그는 마치 법정에 불려나온 사람처럼 다소 경직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영화에선 뛰어난 연기로 잡스를 표현했다. 매우 다부지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를 사실대로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요.

“각본이 매우 촘촘하고 자세해 각본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비롯해 잡스에 관한 필름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계속해 봤지요. 그러곤 다시 각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2주간 리허설에 들어갔습니다. 리허설 기간 동안 대니 보일과 일하면서 일부 다른 아이디어를 탐구했지요.”

—스티브 잡스를 연구하면서 그에게서 어떤 좋은 점과 싫은 점을 발견했습니까.

“그를 연기하는 데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그저 그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진실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열정과 함께 자신의 비전에 대한 집념이었지요. 그의 비전은 1970년대 중반과 후반에 시작돼 그가 다시 애플로 돌아온 1990년대 후반에 완성됐습니다. 처음에 매킨토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건 장난감이야. 난 이것을 사무실에서 쓸 수 없어’라고들 했지요. 그의 비전이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매킨토시는 피상적인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를 빼앗은 뒤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과 실제로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폰이나 태블릿 또는 그 무엇을 쓰든지 그들이 이것들과 갖는 관계는 단순한 도구와의 관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관계로, 그 같은 비전은 1970년대 말에 태어났지요. 그가 자신의 비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그 비전에 매달리면서 밀고나간 추진력이야말로 감동적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헨리 포드를 1000배 곱한 사람”

—스티브 잡스는 천재요, 괴물이요, 또는 세계를 바꿔 놓은 사람 등 여러 가지로 불렸습니다. 그를 연기한 당신은 잡스를 무엇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스티브 잡스요. 난 그가 비상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는 확실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헨리 포드를 1000배 곱한 사람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그는 우리가 사는 방법을 바꿔 놓은 매우 인상적인 사람입니다. 난 그를 나쁜 사람이냐 또는 좋은 사람이냐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지루한 것으로 도덕적으로 고고한 척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는 인간이나 비상한 사람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배우가 아닌 인간으로서 당신이 지금 스티브 잡스를 만난다면 무엇을 묻고 싶습니까.

“의문의 순간에 무엇을 했습니까. 함께 일한 사람들 중에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까.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강 그런 것들이지만 난 지금 그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내 생각은 온통 다음 영화 〈암살자의 신조〉에 매달려 있습니다. 잡스에 대해선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이르기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 영화는 연극 같은 리듬을 지녔는데 연극 배우로서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됐습니까.

“리듬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 작품의 리듬은 아론 소킨의 것이지요. 리듬에 있는 박자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리듬에서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하다가 각본에 없는 휴지를 취한다면 전체가 무너지고 말아요. 다음에 등장할 사람의 대사가 내 리듬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킨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리듬은 셰익스피어의 그것처럼 내용과 감정적 진행 그리고 인물의 내면 파악에 도움을 주지요.”

—당신은 영화 내내 계속해 말을 하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난 배우는 것이 더뎌서 대사 한줄 한줄 배우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리허설 때 제대로 대사를 못 배웠을 땐 집에 가서 공부했지요. 1막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가서 2막을 공부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했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영화 제작에 늦게 참가해 더 빨리 배워야 했습니다. 대단한 작업이었지요.”

—스티브 잡스는 콧대가 보통 높은 사람이 아니어서 남들로부터 ‘노’라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도 자존심이 강하고 또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한편으론 견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을 하면서 일과는 관계 없이 자존심이 발동하면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견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될 수 있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그래서 누가 내게 ‘노’라고 해도 난 ‘예스’라고 말하려고 하지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플 제품은 무엇입니까.

“난 기계나 기술에 큰 관심이 없어요. 전화는 늘 가지고 다니지만 휴가 땐 꺼서 가방 속에 넣지요. 그러나 컴퓨터가 매우 유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전에는 맡은 역이나 악센트 등 연기에 필요한 것을 연구하려면 도서관에 갔지만 이젠 집에서 랩톱을 써서 구글을 열고 모든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면 되는데, 확실히 일이라는 면에선 컴퓨터가 막강한 도구입니다.”

“애플서 일한 사람들은 잡스와 별 문제 없었다 말해”

필자와 마이클 패스벤더.

—역을 하면서 자신을 매우 엄격하게 다루었다고 들었는데요.

“몇 달간 하루에 17시간 내지 18시간 일을 하면서 대사를 외우고 리듬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스티브는 늘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했는데 당신도 그렇습니까.

“내게 먼저 어떤 말이 던져졌느냐에 달렸지요. 기자회견 경우가 그런데 늘 진실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난 늘 진실을 듣기를 원합니다. 자신에 대해 솔직한 말을 듣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진실을 찾고 또 그것의 제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은 지금 생애의 절정에 올라 있는데 그를 위해선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어떤 부분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요.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개인적 삶이 희생당하기 마련이지요. 늘 허상의 세계인 영화 속에서 살다가 실제로 돌아와 척하는 것을 버린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각본이 주어지기 전에 사실 난 몇 달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스티브 잡스도 자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삶을 많이 희생시켰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난 일과 개인적 삶에 건전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난 한 가지 일이 끝나면 그것에 대해 말끔히 잊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내일이라도 다른 일이 생길지. 여하튼 난 시간이 나면 친구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에게 역이 주어지기 전에 다른 두 배우에게 먼저 역이 제공되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것에 익숙해요. 감독이나 제작자가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에 숙련이 됐지요. 그것은 흔한 일입니다. 곤란한 것은 그런 사실이 밖으로 새나가 미디어를 상대로 내가 그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한다는 일이지요. 그러나 난 상관 안 합니다. 그것도 일의 한 부분입니다. 난 크리스천 베일이 이 역에 아주 맞는다고 생각해 그와 전화 통화까지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을 할 사람이 많듯이 나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할 수가 있지요. 이 역을 할 만한 배우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 사실이 당신 일에 아무 영향도 안 미치는지요.

“안 미칩니다. 일단 난 역을 맡으면 그에 대해 최선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겁도 나고 걱정도 되지만 그럴 때면 스스로를 통제할 방안을 강구하지요. 그리고 그런 사실은 잊어 버릴 필요가 있어요. 난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 안으로 철저히 몰입하곤 합니다.”

—당신이 기자회견 때 받고 싶은 질문과 그렇지 않은 질문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개인적 삶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난 매우 개인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질문을 받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기자들의 직업인 줄도 압니다.”

—스티브 잡스는 남이 자기를 좋아하든 말든 괘념치 않은 사람인데 당신의 경우는 어떤지요.

“남의 호감을 산다는 일은 좋은 것이지요. 그러나 난 오래 전에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죽어 하늘에 갔을 때 ‘왜 내가 남이 좋지 않게 생각할 일을 했을까요’라고 결코 묻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남의 호감을 산다는 것은 결코 나의 우선 목표가 아니며 그것에 의해 내 삶의 경험과 판단이 통제를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픈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찬양을 받는 성공한 사람이 착하고 평화로운 사람도 될 수 있다고 봅니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잡스의 경우 장시간 일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찾아 나가다 보니 인내심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와 함께 애플서 일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자기들은 잡스와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대답하더군요. 거기서 난 어떤 사람에 대한 인상은 결코 미디어나 그를 안 제3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받은 것이 진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새 영화 〈암살자의 신조〉는 게임의 사조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신처럼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들은 매년 신제품을 내놓고 있는데 당신은 이런 것이 인류의 진보에 필요하며 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장단점이 있어요. 우리는 그런 기술의 발전을 두고봐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사물과 기술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접촉을 잃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컴퓨터 기술이라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겐 새로운 것이지요. 마치 기차를 발명했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속 30마일 이상으로 달리면 뇌에 손상이 오는 줄 알았으니까요. 좌우간 컴퓨터의 발전은 일어난 현상이고 그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자라면서 언제 당신이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뚜렷하게 고를 만한 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냥 재미 있을 것 같았습니다. 17세 때 내 앞날에 대해 막막할 때였는데 다우니 코트라는 사람이 내가 다니던 학교에 매주 수요일마다 드라마시간을 마련했지요. 그래서 친구와 함께 무얼 가르치나 알아보러 갔다가 그것이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직업으로 삼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일단 결정한 다음에는 그것에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사실 난 그때 기타를 치면서 음악가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소질이 엉망이었지요. 코트니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내가 무엇이 되었을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다음 영화 〈암살자의 신조〉는 비디오 게임이 원전인데 그런 것 좋아합니까.

“난 그런 게임 안 합니다.”

—그런데 왜 영화 출연은 합니까.

“엄청나게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난 2000년에 마지막으로 비디오 게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침 8시까지 계속했는데, 하고 나서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영화에 나오기로 결정한 것은 이 게임의 개념과 그 뒤에 있는 사조가 흥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이 환상적이면서 아울러 과학적이라는 데 마음이 갔지요. 그리고 게임 속 인물들의 도덕적 관념이 뚜렷하지 않고 회색빛이라는 것도 흥미가 있지요. 또 액션도 멋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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