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을 늘 비이성적인 일이라 할 수는 없어”
⊙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 좋은 일은 아냐”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 좋은 일은 아냐”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이레셔널 맨〉.
〈이레셔널 맨(Irrational Man·비이성적인 남자)〉을 감독한 우디 앨런(79)과의 인터뷰가 7월 25일 뉴욕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이레셔널 맨〉은 삶과 자기 직업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작은 마을 대학의 철학교수(호아킨 피닉스)가 여제자(엠마 스톤)와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뜻밖의 끔찍한 실존적 행위를 저지른 뒤 다시 생의 활기를 찾는다는 어두운 드라마다. 앨런은 한국계 순이(44)의 남편이다.
안경 속에 놀란 토끼 눈을 한 앨런은 청력이 나빠서 손으로 귀를 감싼 채 질문을 듣고 대답을 했는데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시치미 뚝 떼고 하면서 인터뷰를 즐겼다. 재치와 유머가 대단해 인터뷰가 재미 만점이었는데 순이 얘기를 할 때는 두 손으로 야단스러울 정도의 제스처를 써가면서 젊은 아내를 찬양했다. 둘이 굉장히 행복한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는 구면인데다가 필자 역시 한국 사람이어서 그는 필자를 만나자 반색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자 앨런은 “만나서 반갑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의 교수는 창조적 능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대는데 당신이 그런 경우에 처할 때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난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글이 안 써지거나 작품을 만들지 못해 허우적댄 경험은 없습니다. 나도 물론 나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요. 내가 정신적으로 침체되거나 우울하거나 또는 의기소침해질 때면 난 일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냅니다.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난 젊었을 때부터 운이 좋았어요.”
―작은 결정이 때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우린 늘 사소한 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지요. 그런 결정은 때로 큰 보상을 가져다주기도 하나 또 때론 평생을 저주처럼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사소한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모두에게 매일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늘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삽니까.
“그것을 너무 의식하면 결정은 못 내리고 우유부단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병이 되고 말아요. 따라서 앞으로 밀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뉴요커 영화인으로서 옛 뉴욕과 요즘 뉴욕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지요.
“살기가 더 비싸졌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도시 자체는 변함없어요. 9·11 사태가 일어난 후 사람들이 내게 ‘뉴욕이 이 이후로 과거와 같을 수가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에 대해 난 ‘예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극장과 식당엘 가면서 왕성한 에너지와 열광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뉴욕은 여전히 창조적이며 로맨틱하고 살기에 위대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빈부 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뉴욕에는 부자와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두 계층만이 있습니다. 아주 슬픈 일로 뉴욕에 중산층이 되살아나야 도시도 중흥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문제보다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
―오랜 감독 생활을 해오면서 스타일에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지요.
“세트에선 변함없습니다. 난 조용한 편이고 별로 재미없는 개성을 지닌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외엔 모든 것이 변했어요. 난 지금까지 45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다 보면 경험상 기술과 지식을 얻게 마련입니다. 내가 위대한 감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고 1969년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를 만들었을 때보다는 나은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연출기법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기술적으로 보다 세련돼졌어요. 그리고 영화의 모양도 옛날 영화와는 다릅니다. 영화의 내용도 보다 심오하고 흥미롭게 발전했다고 봅니다.
이제 난 생의 문제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듭니다. 따라서 영화가 옛날 것처럼 속도가 빠를 필요도 없습니다. 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웃음을 사랑하나 옛날처럼 웃음만을 위한 웃음을 원치는 않습니다.”
―요즘 정치·사회 문제 중 관심이 있는 것이 있는지요.
“난 예술가로서 그런 데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으로선 우리 정부와 대통령과 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지요.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민주당원으로서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 등 제반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영화로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난 늘 철학적, 심리적 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난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나 여성의 재정적 지위 향상 및 이란과의 핵협상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시간이 지나면 잊힐 문제들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을 씁니다.”
―순이는 잘 있나요.
“잘 있어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파리의 미국인〉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에 없으니 혼자 조용히 각본을 쓸 수 있어 아주 좋네요. 그런데 사실 나 오늘 여기 오는 것 깜빡 까먹었었어요. 집에서 각본을 쓰고 있는데 내 언론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아니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기자회견에 와야 해요’라고 말해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2년 전에 내게 순이 때문에 둘이 함께 서울에 간다고 해놓고 안 갔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선 제 딸이 한국에 가 고아원에서 봉사하고 며칠 전에 돌아왔습니다. 순이가 몸살나게 서울에 가고파 합니다. 모두 순이에게 ‘너 꼭 서울에 가야 해’라고 부추기는데 난 정말로 별로 가고 싶지가 않거든요. 그러나 순이가 몇 년째 조르고 있어 결국은 가야 할 줄 압니다. 나는 순이에게 ‘우리 파리나 바르셀로나에 가자’고 제의를 하지만 순이는 ‘거긴 그만 가도 돼’라면서 ‘당신 12월에 80세가 되고 곧 죽을 텐데 그전에 서울 가고 싶어’라고 조르네요. 따라서 불원 순이를 데리고 가야겠지만 가능한 한 지연작전을 쓰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그전에 죽을지도 모르고요.”
―당신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팔순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성공한 감독들인데 그와 어떤 연계성이라도 느끼는지요.
“나는 그를 존경하나 잘 알지도 또 만난 적도 없습니다. 단지 그의 영화를 알 뿐으로 여러 편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성격이 너무 달라 어떤 연계성도 느끼진 못합니다. 그는 한때 서부 해안도시의 시장도 지냈고 커다란 슈퍼헤로인인 반면 나는 동부에 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돌연한 우연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많습니다. 예를 들지요. 내가 옛날에 신년파티를 열었을 때입니다. 파티 후 며칠 지나 미아 패로로부터 초청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선물로 책이 왔어요. 그래서 답을 한다고 전화를 걸다가 ‘다음 주에 점심이나 할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뉴스가 됐지요.”
배우인 패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앙드레 프레빈의 전처로 그녀가 한국 고아원으로부터 입양한 아이가 순이다. 앨런은 패로와 애인 사이였을 때 순이와도 관계를 가져 큰 화제가 됐었다.
“늘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고 느껴”
―당신은 〈파리의 자정〉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를 캐스팅했는데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도 당신 영화에 쓸 용의가 있습니까.
“브루니는 아름다운 모델이자 포크싱어요 또 연예인이어서 배우로 쓰는 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이나 부시 부인은 쇼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요.
그때 난 처음으로 순이와 같이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초청을 받고 그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브루니의 미에 완전히 취했었습니다. 아주 붙임성이 좋아 내가 그녀에게 내 영화에서 로댕미술관의 안내 역을 맡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스’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손자와 증손자들을 위해 생애 딱 한 번 영화에서 단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녀에게 맞는 아름다운 프랑스 숙녀 역만 있다면 다시 캐스팅할 것입니다.”
―80세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난 다섯 살 때부터 죽음에 집착해 왔지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난 늘 죽음의 문턱에 섰다고 느껴왔고 그러면 공포에 휩싸여 몸이 굳어져요. 생일 파티는 전연 계획이 없습니다. 난 그런 것 별로 안 좋아하지요. 그저 가족과 식당에 가서 조용히 저녁을 먹을 예정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년 전야를 자면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죽기 전에 특별히 따로 하고픈 일도 없습니다. 건강이 지속되는 한 일을 계속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을 이성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요.
“보편적으로 언제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투적인 말이지만 2차대전 때 나치를 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요. 그럼으로써 세상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살인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죽거나 해를 입을 경우가 있단 말이지요. 따라서 그것을 늘 비이성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화로 영화 봐”
―영화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술의 발전으로 곧 사람들이 극장에 안 가고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볼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극장에 갈 생각에 흥분했었지요. 크고 아름다운 극장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법적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랩탑으로들 영화를 봐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옛날 영화에 관해 얘기하면 그들은 〈시민 케인〉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봤다고 하는데 극장이 아니라 전화로 본 것이란 말입니다. 저 같은 영화 세대에겐 실망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밖으로 나가 어딘가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극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너무 이성적이에요. 그래서 난 예술가보다는 선생 타입입니다. 내가 조금만 더 비이성적이었다면 보다 나은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난 너무 중간층이고 이성적이고 조직적이며 비겁합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것은 나를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어떤 면에선 좋아요. 그런데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지요.”
―여전히 왕성한 당신의 창작활동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운이 좋았어요. 건강이 좋았고 이 나이에도 활동적이요 정력적인 것은 유전인자 덕입니다. 운동하고 잘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또 건강을 해치는 어떤 나쁜 습관도 없지요. 난 일하기를 좋아하고 또 즐깁니다. 내일이라도 심장마비를 일으켜 내가 내 이름을 기억 못 하게 되면 그것으로 난 끝장이나 건강이 유지되는 한 내 아버지처럼 90 넘게 살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내 아버지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어요. 나도 그렇게 산다면 계속해 쓰고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난 백만 가지의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난 쓰고 영화 만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재능은 운 덕”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인데 당신은 좋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난 논리적이요 생각이 분명하고 또 가르칠 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영화인으로서보다 선생으로서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능은 운 덕이나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난 아주 불량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뉴욕대의 영화제작과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부모님 때문입니다. 그러나 1학년 때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당했어요. 어느 날 학교 당국에서 날 호출해 갔더니 나보고 ‘너는 아주 불량한 학생이어서 학교에 있을 수가 없다’면서 내쫓았어요. 그런데 요즘 미국 대학 교육은 아주 엉망이에요. 가르치는 방법을 몰라요. 따라서 셰익스피어를 배운 학생들이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미워해 다시는 그 근처에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안경 속에 놀란 토끼 눈을 한 앨런은 청력이 나빠서 손으로 귀를 감싼 채 질문을 듣고 대답을 했는데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시치미 뚝 떼고 하면서 인터뷰를 즐겼다. 재치와 유머가 대단해 인터뷰가 재미 만점이었는데 순이 얘기를 할 때는 두 손으로 야단스러울 정도의 제스처를 써가면서 젊은 아내를 찬양했다. 둘이 굉장히 행복한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는 구면인데다가 필자 역시 한국 사람이어서 그는 필자를 만나자 반색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자 앨런은 “만나서 반갑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의 교수는 창조적 능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대는데 당신이 그런 경우에 처할 때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난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글이 안 써지거나 작품을 만들지 못해 허우적댄 경험은 없습니다. 나도 물론 나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요. 내가 정신적으로 침체되거나 우울하거나 또는 의기소침해질 때면 난 일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냅니다. 그렇게 나쁜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난 젊었을 때부터 운이 좋았어요.”
―작은 결정이 때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우린 늘 사소한 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지요. 그런 결정은 때로 큰 보상을 가져다주기도 하나 또 때론 평생을 저주처럼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사소한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모두에게 매일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늘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삽니까.
“그것을 너무 의식하면 결정은 못 내리고 우유부단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병이 되고 말아요. 따라서 앞으로 밀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뉴요커 영화인으로서 옛 뉴욕과 요즘 뉴욕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지요.
“살기가 더 비싸졌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도시 자체는 변함없어요. 9·11 사태가 일어난 후 사람들이 내게 ‘뉴욕이 이 이후로 과거와 같을 수가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그에 대해 난 ‘예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극장과 식당엘 가면서 왕성한 에너지와 열광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뉴욕은 여전히 창조적이며 로맨틱하고 살기에 위대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빈부 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뉴욕에는 부자와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두 계층만이 있습니다. 아주 슬픈 일로 뉴욕에 중산층이 되살아나야 도시도 중흥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문제보다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
―오랜 감독 생활을 해오면서 스타일에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지요.
“세트에선 변함없습니다. 난 조용한 편이고 별로 재미없는 개성을 지닌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외엔 모든 것이 변했어요. 난 지금까지 45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다 보면 경험상 기술과 지식을 얻게 마련입니다. 내가 위대한 감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고 1969년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를 만들었을 때보다는 나은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연출기법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기술적으로 보다 세련돼졌어요. 그리고 영화의 모양도 옛날 영화와는 다릅니다. 영화의 내용도 보다 심오하고 흥미롭게 발전했다고 봅니다.
이제 난 생의 문제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듭니다. 따라서 영화가 옛날 것처럼 속도가 빠를 필요도 없습니다. 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웃음을 사랑하나 옛날처럼 웃음만을 위한 웃음을 원치는 않습니다.”
―요즘 정치·사회 문제 중 관심이 있는 것이 있는지요.
“난 예술가로서 그런 데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으로선 우리 정부와 대통령과 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지요.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민주당원으로서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 등 제반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영화로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난 늘 철학적, 심리적 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난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나 여성의 재정적 지위 향상 및 이란과의 핵협상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시간이 지나면 잊힐 문제들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을 씁니다.”
―순이는 잘 있나요.
“잘 있어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파리의 미국인〉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에 없으니 혼자 조용히 각본을 쓸 수 있어 아주 좋네요. 그런데 사실 나 오늘 여기 오는 것 깜빡 까먹었었어요. 집에서 각본을 쓰고 있는데 내 언론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아니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기자회견에 와야 해요’라고 말해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2년 전에 내게 순이 때문에 둘이 함께 서울에 간다고 해놓고 안 갔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선 제 딸이 한국에 가 고아원에서 봉사하고 며칠 전에 돌아왔습니다. 순이가 몸살나게 서울에 가고파 합니다. 모두 순이에게 ‘너 꼭 서울에 가야 해’라고 부추기는데 난 정말로 별로 가고 싶지가 않거든요. 그러나 순이가 몇 년째 조르고 있어 결국은 가야 할 줄 압니다. 나는 순이에게 ‘우리 파리나 바르셀로나에 가자’고 제의를 하지만 순이는 ‘거긴 그만 가도 돼’라면서 ‘당신 12월에 80세가 되고 곧 죽을 텐데 그전에 서울 가고 싶어’라고 조르네요. 따라서 불원 순이를 데리고 가야겠지만 가능한 한 지연작전을 쓰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그전에 죽을지도 모르고요.”
―당신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팔순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성공한 감독들인데 그와 어떤 연계성이라도 느끼는지요.
“나는 그를 존경하나 잘 알지도 또 만난 적도 없습니다. 단지 그의 영화를 알 뿐으로 여러 편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성격이 너무 달라 어떤 연계성도 느끼진 못합니다. 그는 한때 서부 해안도시의 시장도 지냈고 커다란 슈퍼헤로인인 반면 나는 동부에 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돌연한 우연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많습니다. 예를 들지요. 내가 옛날에 신년파티를 열었을 때입니다. 파티 후 며칠 지나 미아 패로로부터 초청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선물로 책이 왔어요. 그래서 답을 한다고 전화를 걸다가 ‘다음 주에 점심이나 할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뉴스가 됐지요.”
배우인 패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앙드레 프레빈의 전처로 그녀가 한국 고아원으로부터 입양한 아이가 순이다. 앨런은 패로와 애인 사이였을 때 순이와도 관계를 가져 큰 화제가 됐었다.
“늘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고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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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디 앨런 감독과 필자. |
“브루니는 아름다운 모델이자 포크싱어요 또 연예인이어서 배우로 쓰는 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이나 부시 부인은 쇼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요.
그때 난 처음으로 순이와 같이 사르코지와 브루니의 초청을 받고 그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브루니의 미에 완전히 취했었습니다. 아주 붙임성이 좋아 내가 그녀에게 내 영화에서 로댕미술관의 안내 역을 맡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스’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손자와 증손자들을 위해 생애 딱 한 번 영화에서 단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녀에게 맞는 아름다운 프랑스 숙녀 역만 있다면 다시 캐스팅할 것입니다.”
―80세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난 다섯 살 때부터 죽음에 집착해 왔지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난 늘 죽음의 문턱에 섰다고 느껴왔고 그러면 공포에 휩싸여 몸이 굳어져요. 생일 파티는 전연 계획이 없습니다. 난 그런 것 별로 안 좋아하지요. 그저 가족과 식당에 가서 조용히 저녁을 먹을 예정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년 전야를 자면서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죽기 전에 특별히 따로 하고픈 일도 없습니다. 건강이 지속되는 한 일을 계속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살인을 이성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요.
“보편적으로 언제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투적인 말이지만 2차대전 때 나치를 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요. 그럼으로써 세상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살인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죽거나 해를 입을 경우가 있단 말이지요. 따라서 그것을 늘 비이성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화로 영화 봐”
―영화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술의 발전으로 곧 사람들이 극장에 안 가고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볼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극장에 갈 생각에 흥분했었지요. 크고 아름다운 극장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법적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랩탑으로들 영화를 봐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옛날 영화에 관해 얘기하면 그들은 〈시민 케인〉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봤다고 하는데 극장이 아니라 전화로 본 것이란 말입니다. 저 같은 영화 세대에겐 실망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밖으로 나가 어딘가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극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너무 이성적이에요. 그래서 난 예술가보다는 선생 타입입니다. 내가 조금만 더 비이성적이었다면 보다 나은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난 너무 중간층이고 이성적이고 조직적이며 비겁합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것은 나를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어떤 면에선 좋아요. 그런데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지요.”
―여전히 왕성한 당신의 창작활동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운이 좋았어요. 건강이 좋았고 이 나이에도 활동적이요 정력적인 것은 유전인자 덕입니다. 운동하고 잘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또 건강을 해치는 어떤 나쁜 습관도 없지요. 난 일하기를 좋아하고 또 즐깁니다. 내일이라도 심장마비를 일으켜 내가 내 이름을 기억 못 하게 되면 그것으로 난 끝장이나 건강이 유지되는 한 내 아버지처럼 90 넘게 살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내 아버지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어요. 나도 그렇게 산다면 계속해 쓰고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난 백만 가지의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난 쓰고 영화 만드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재능은 운 덕”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교수인데 당신은 좋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난 논리적이요 생각이 분명하고 또 가르칠 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영화인으로서보다 선생으로서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능은 운 덕이나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난 아주 불량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뉴욕대의 영화제작과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부모님 때문입니다. 그러나 1학년 때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당했어요. 어느 날 학교 당국에서 날 호출해 갔더니 나보고 ‘너는 아주 불량한 학생이어서 학교에 있을 수가 없다’면서 내쫓았어요. 그런데 요즘 미국 대학 교육은 아주 엉망이에요. 가르치는 방법을 몰라요. 따라서 셰익스피어를 배운 학생들이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미워해 다시는 그 근처에 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