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6년 2월 來韓한 ‘이시이 바쿠’가 한국 근대무용을 일깨우다!
⊙ 최초 근대극 연극단체인 ‘극예술협회’의 崔承一이 여동생(崔承喜)을 이시이 바쿠에게 추천
⊙ 이시이 바쿠의 제자 趙澤元, 조선 전통춤에 눈뜨다
⊙ 韓成俊의 조선음악무용연구회는 植民地 유일한 고전무용단
⊙ 최초 근대극 연극단체인 ‘극예술협회’의 崔承一이 여동생(崔承喜)을 이시이 바쿠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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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成俊의 조선음악무용연구회는 植民地 유일한 고전무용단
- 일본 도쿄 ‘이시이바쿠무용연구소’ 시절 최승희(맨 왼쪽)와 조택원(맨 오른쪽).
한국인에게 춤은 무엇인가. 현대무용이 본격 상륙한 식민지(植民地) 시대, 춤(무용)은 단순한 감정의 잉여물이 아니었다. 최승희(崔承喜·1911~1967)·조택원(趙澤元·1907~1976)·한성준(韓成俊·1874~1942)의 춤사위를 통해 나라 잃은 백성들은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을 보았고, 어깨춤에 함께 희로애락을 느꼈다.
보통 서양무용은 처음에는 흥이 없어도 시작해서 출 수가 있으며 그렇게 추는 춤은 나중에 흥이 나지만, 한국의 전통춤은 처음부터 흥이 나야 출 수 있다고 한다. 식민지 조선의 흥은 신문물의 세련미와 한(恨)의 비장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도도한 근대화의 물결에 맞서지 않았다.
최근 간행된 《한국 근대춤자료사(1899~1950)》(김종욱 編著, 아라刊)에는 막 개화(開花)하기 시작하던 한국무용의 10가지 상징이 나온다. 20세기 한국의 근대춤은 서양인이 추는 이른바 신(新)무용이었다. 한반도에 춤이 상륙할 때 지식인들은 전통춤을 기녀들의 몫으로 한정, 근대적인 춤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 현대무용의 1세대인 이시이 바쿠(石井漠·1886~1962)에게 서양춤을 배운 최승희·조택원·박영인(朴永仁·1908~2007)일지라도 당대 학무(鶴舞)와 무당춤·바라춤 등 ‘전통무악(舞樂)’의 대표 격인 한성준을 통해 더욱 꽃을 피웠다는 점을 가벼이 보기 어렵다. 《한국 근대춤자료사》의 편자인 김종욱(金鍾旭)씨의 말이다.
“한국무용사에 최승희·조택원 같은 춤꾼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기라성 같은 춤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보다 선진적인 춤을 선보인 이가 배구자(裵龜子·1907~?)이며 이후 최승희의 활동기에 그녀가 키워 낸 장추화·김민자·노재신·김백봉을 비롯해 일본과 독일에 단신 유학해 춤꾼으로서의 큰 성공을 이룩한 박영인은 괄목할 만한 인물로 대성(大成)을 이뤄 냈습니다.
당대 조선춤의 거장(巨匠) 한성준이 최승희·조택원에게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고요, 최승희의 월북(1946년) 이후 한동인·장추화·송범과 같은 춤꾼들로 오늘의 한국무용계가 빛을 더했어요.”
1. 西江 閒雜輩가 舞童 연희장을 設하다!
〈… 서강(西江) 한잡배(閒雜輩)가 아현 등지에서 무동(舞童) 연희장을 설(設)하였는데 관광하는 이, 운집하였거늘 경무청에서 순검(巡檢)을 파송하여 금집(禁戢)한즉, 방관하던 명정이 파흥(破興)됨을 분통히 여기어 해순검(該巡檢-그 순검을)을 무수난타(無數亂打)하여 기지사경(幾至死境)한지라 본청(本廳)에서 그 한잡배 기허명(幾許名)을 촉치하고 해연희(該演戱) 제구(諸具)를 수입(收入)하여 소화(燒火)하였다더라. …〉(《황성신문》 1899년 4월 3일자)
한국 근대춤 연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신문기사다. 서울 아현동 등지에 이동형 가설무대가 세워졌는데, 많은 이들이 그 공연을 보려 몰려들었다는 얘기다. 춤의 형태는 변형된 궁중무나 일반 춤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군중이 운집한 것을 못마땅히 여긴 일경(巡檢)이 공연을 방해, 흥이 깨지자 군중이 경찰을 구타해 난리가 났다. 결국 공연은 강제로 끝이 나고 공연 물품은 불태워졌다.
일제는 민족문화 탄압책으로 전통춤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1912년 ‘경찰범처벌규칙’에는 전통 무속(巫俗)을 ‘음사(陰祀)’로 규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의 전통춤은 자생적인 성장발판 마련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도 전통춤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황성신문》 1900년 3월 6일자 ‘무동관광(舞童觀光)’ 제하의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일 하오 3시에 내외국 신사들이 용산 무동연극장에 전왕(前往)하여 관광자 여운(如雲)하더라. …〉
용산에 세워진 가설공연장에 구름과 같이 인파가 몰렸던 것이다.
2. 최초의 관립극장 協律社와 娼妓의 조직
〈… 전설(傳說)을 문(聞)한즉(則), 근일 협률사(協律社)에서 각생 창기(娼妓)를 조직하는데, 태의원(太醫院) 소속 의녀(醫女), 상의사(尙衣司) 침선비(針線婢) 등을 이속(移屬)하여 명왈(名曰) 관기(官妓)라 하고, 무명색(無名色) 삼패(三牌) 등을 병부(幷付)하여 명왈 예기(藝妓)라 하고, 신(新)음율을 교습하는데 또 근일 관기로 자원 신입자가 유(有)하면 명왈 예기(預妓)라 하고, 관기예기 지간(之間)에 처(處)하여 무부야녀(無夫冶女)를 허부(許付)하는데 …〉(《황성신문》 1902년 8월 25일자)
이 기사는 협률사에서 창기(娼妓)를 조직하는데 그 밑에 관기로 호칭되는 태의원 소속 의녀, 상의사 소속 침선비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이다. 또 창기의 또 다른 일원인 ‘무명색 삼패’를 합쳐 예기(藝妓)라 하고, 새로운 관기 지원자는 예기(預妓)라 명한다는 것이다. 당시 일급 기생을 관기(일패)라 부르고, 비관기 출신 기생을 삼패라 칭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협률사’는 한국 최초의 근대 공립극장을 의미한다. 지금의 서울 정동 새문안교회 자리에 위치했다. 민간이 운영하던 가설 공연장과 차원이 다른 극장식 공연장이 처음 생겨난 것이다.
1906년 《대한매일신보》 3월 8일자 신문에 〈논(論)협률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 협률사는 전에 장봉환씨가 황상폐하께 상주(上奏)하되 군악대 경비를 충보(充補)할 계획으로 협률사를 창설하고자 누누이 천총(天聰)을 기폐(欺蔽)하야 탕금(帑金) 4만원을 내하(內下)하여 구주(歐洲) 연희옥양자(演戱屋樣子)로 건축하고 예기를 초선(招選)하며 창우를 모집하야 …〉
협률사가 정부의 군악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얘기다. 한국 최초의 국립극장이자 유료 공연장이었던 협률사는 1908년 민간극장으로 변신, 이름도 원각사(圓覺寺)로 바뀌게 된다.
3. 新무용가로 첫머리에 든 배구자
〈… 천승(天勝)양의 출연 - 10일부터 연예관에 …〉(《매일신보》1915년 10월 9일자)
〈… 천승 출연의 첫날 연예관 대성황 …〉(《매일신보》10월 12일자)
〈… 기술로 유명한 천승의 일행은 요사이 부산에서 그곳 황금관에서 개연 중인데 (중략) 그중에는 경성 왔을 때에 데리고 간 배구자도 같이 왔다. 배구자라 함은 꽤 미인으로 유명한 배정자(裵貞子)의 친정 조카딸이며 그 부친은 경성 내자동에 사는 배석태(裵錫泰)씨인데, 이 아이는 그 고모 정자를 닮아서 외양도 예쁘고 성질도 민첩하더라. 재작년 천승의 일행이 경성에 왔을 때에 당년 11살된 계집애가 천승에 머물러 있는 산본여관에 가서 제자 되기를 간청하는 고로 천승도 그 용기를 기특히 여겨 일좌에 들게 하였더라.
그 뒤로 3년 동안 공부를 시켜서 지금은 재주도 한두 가지 배운 고로 조선에 나와 첫 무대를 치르게 할 터이라는데 배구자는 이왕 경성에서 보통학교를 다녀 일본말을 하는 데다가 일본 가서 다닌 결과로 지금은 아주 동경서 성장한 일본 아이나 다를 것 없다 하며 이번에는 천승이 아주 수양녀로 삼을 터이라더라. …〉(《매일신보》 1918년 5월 14일자)
1913년부터 일본의 덴카쓰(天勝) 곡예단이 내한해 서울과 지방에서 공연했다. 덴카쓰의 1915년 공연에는 40여 명이 내한했는데 이 무렵 ‘배구자’라는 소녀가 부모를 졸라 덴카쓰곡예단에 입단했다. 고작 7살의 나이였다. 이 아이는 1920년대에 신무용가로 입신, 1935년에는 서울 충정로에 ‘동양극장’이라는 신식 공연장을 설립했다. 당시 19만5000원을 들여 지은 국내 유일의 연극전문 극장이었다. 덴카쓰곡예단의 단원이 되어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것은 1918년 5월이었다.
배구자의 출생과 관련해 구한말(舊韓末) 배정자(裵貞子)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이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덴카쓰곡예단에 입단한 배구자는 10년 동안 단원으로 활약하며 춤, 노래, 곡예를 도맡았다.
1929년 6월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그해 9월 무용발표회도 가졌다. 국내 최초 개인 무용연구소였으며 국내 신무용 행사로도 최초였다. 최승희의 등장 이후 그녀의 춤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훗날 미국 하와이에 정착, ‘하와이 한국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4. 한국에 신무용을 전파한 ‘이시이 바쿠’
〈… 일본의 서양무도가로 제1인자인 석정막(石井漠·이시이 바쿠)씨가 금월 하순이나 내월(來月) 상순에 조선에 와서 경성에서 행연을 할 터이라고 하는바, 그는 비단 일본에서만 그 기술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요 무도의 본바닥인 구라파 사람들도 칭찬을 마지않은 터이므로 아직까지 무도가다운 무도가 이나마 와 보지 못한 경성에는 실로 금년 봄의 극계를 찬란하게 꾸밀 듯하다더라. …〉(《동아일보》 1926년 2월 21일자)
일본의 현대무용가 1세대인 이시이 바쿠의 내한(來韓)을 전한 최초 기사다. 한국 근대무용의 꽃을 피웠던 최승희·조택원 모두 이시이의 제자다. 일본 제국극장(帝國劇場) 가극부 제1기생인 그는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춤이 몸의 움직임에 의한 시(詩)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무용시’를 개척했다. 현대 서양무용에다 동양적, 그리고 일본적 정서가 가미된 독창적인 춤을 선보였다.
《매일신보》 1926년 3월 21일자 ‘무용계의 명성’ 제하의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동경에서 무도로 유명한 석정막과 동생 석정소랑(石井小浪)은 금 21일부터 30일까지 경성일보 후원으로 시내 공회당에서 매일 6시부터 출연한다 함은 기보한 바이니와 입장료는 특등 3원, 2등 2원이요, 학생은 80전이며 경성일보 애독자와 우대권을 가지고 오는 이에게는 각 등을 모두 할인하리라는바, 이 일행은 여러 나라로 순회하면서 각국 무도를 연구하였다는데 금번에는 조선춤도 연구하려고 한다 하며 더욱이 12세로부터 15세까지의 조선여자로, 무도를 연구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자기들이 데려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라. …〉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은 당시 서양무용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신세계’를 선물하고 최승희라는 세계적 무용수를 길러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대환경이 식민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시이 바쿠의 내한은 일본의 문화적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속셈으로 볼 수 있다.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후원한 곳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였다.
5. 최승일과 최승희 두 남매의 등장
〈… 석정(石井) 남매는 그간 구주(歐洲) 만유의 길을 가는 도중 경성에 이르러 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자 특히 ‘무용시’가 남매의 눈에 띈 가련한 흰옷 입은 조선소녀의 아담한 자태가 매우 흥미를 끌어 결국은 조선소녀를 몇 명 제자로 뽑겠다는 소리까지 났었는데 이에 대하여 청년문사 최승일(崔承一)씨의 영매로 금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최승희(16) 양이 다행히 부모의 승낙과 석정씨 남매의 눈에 들어 25일 아침 경성을 떠나게 된 것이다. …〉(《매일신보》 1926년 3월 26일자)
1926년 3월 26일자 신문에 최승희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했다. 오빠 최승일은 1920년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극 연극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창립한 인물. 최승일이 여동생을 이시이 바쿠에게 추천한 셈이다. 그러자 최승희의 모교가 발끈하고 나섰다. 3월 27일자 《매일신보》에 ‘무용계에 도전한 숙명학교의 여(女)교원’이란 기사가 실렸다. ‘무용가가 되려고 하는 최승희 양에게 모교가 되는 숙명여학교 교원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시이 바쿠는 1939년 2월 《모던 일본(日本)》 잡지에 쓴 기고문에서 ‘《경성일보》 학예부장을 하던 데라다 히사오(寺田壽夫) 씨의 소개장을 가지고 이시이의 분장실로 최승일·승희 남매가 찾아갔다. 부득부득 자기 누이동생을 무용가로 키우고 싶으니 제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 승희의 아버지와 오빠 승일 군과 또 학생복 그대로의 승희와 여러 가지 절충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기로 하여 경성 출발 때 역의 누상에서 관계자 일동과 간단하게 축배를 올렸는데 발차 직전에 갑자기 개찰구 쪽으로 백의(白衣)의 부인이 조선어로 승희의 이름을 불러대면서 광인(狂人)처럼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승희는 창에 머리를 내밀고 어머니, 어머니 라고 눈물을 닦으며 소리를 지르는 데는 질렸었다. 동경에 간다는 것을 어머니에게는 일체 비밀로 했다는 것을 그 일 뒤에야 알았다. …〉(1939 2월 《모던 日本》제10권 12호)
6. 최승희의 성장과 조택원
〈… 세계적 무용가 석정막, 석정소랑씨의 훈육을 받아 일약 무용계의 새로운 사랑을 받게 될 최승희 양을 중심으로 그의 은사 석정씨 남매와 동무들로 조직된 20여 명의 무용가를 초빙하여 본사에서 주최하는 최승희 양 향토방문 공연 무용회는 작보한 바와 같이 오는 15일, 16일 양일 밤 경성공회당에서 열게 된 것이다. …〉(《매일신보》 1927년 10월 15일자)
1년 사이 최승희의 무용이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이 기사의 중간에 나오는 이시이 바쿠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승희의 재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제자도 많이 두어 보았으나 승희 같이 쉽게 배우는 아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만하면 고향에 돌아가 승희의 전도를 의아히 여기던 여러분까지도 큰소리 치고 내세울 만하기에 경성의 공연을 승낙한 것이니 조선의 여러분이 승희의 무용에 취하실 때 우리 남매의 의무는 다한 것이며 비로소 조선에도 무용의 지기가 생길 줄로 믿습니다.”
바로 최승희의 이날 국내 데뷔공연을 조택원이 보게 된다. 그리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상업은행에 다니며 모은 월급을 털어 도일(渡日),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문하에는 제자가 7~8명 있었다. 한국인으로 최승희와 한병룡(韓炳龍)이 먼저 입단했다.
조택원은 이시이 바쿠에게 3년가량 발레를 배우고 귀국했다. 만약 1926년 3월과 이듬해 7월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의 공연이 없었다면 한국무용사에 조택원이란 이름이 지워졌을지 모른다.
조택원은 훗날 《춤》지 1976년 3월호에 이런 말을 했다.
“1926년은 새로운 세계를 내게 열어 준 해이고 내 인생의 궤도가 바뀐 해였으며 그것은 확실히 개안(開眼)이었고 예술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심장으로 터득한 해이기도 했다.”
7. 국내 첫 창작춤 발표회, ‘제1회 최승희 발표회’
〈… 만도 사녀(士女)의 열렬한 기대 아래 본사 주최 최승희무용연구소 창작무용 제1회 공연회는 1일 밤 장곡천정 공회당에서 제1야의 막을 열었었다. 이날을 손꼽아 고대하던 일반 관중들은 초저녁부터 경성공회당으로 구름같이 모여 들어 오후 7시 공연시간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장내에 입추의 여지가 없는 만원의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윽고 무대에 드리워졌던 본사 기증의 비단(緋緞) 막이 열리며 ‘금혼식무도(金婚式舞蹈)’라는 경쾌한 무용으로 프로그램의 제1부는 시작되었다. …〉(《매일신보》 1930년 2월1일자)
‘최승희는 서구식 현대무용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현대무용의 기법으로 한국풍의 춤을 창작하고 공연한 최초의 인물’이다. 최승희는 1929년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나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 적선동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설립했다. 15명의 단원을 뽑은 뒤 이듬해 2월 ‘제1회 최승희 발표회’를 가졌다. 자신의 이름을 문패로 한 첫 공연이었다.
완전 매진된 3부작 공연은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독자적인 창작 춤 공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관객의 반응. 《동아일보》 1930년 2월 5일자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무대를 향하여 오른편은 전부가 조선사람 대부분 여학생들이고 왼편은 일본사람이 각각 차지하고 있어 마치 서울의 남촌과 북촌이 판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경성의 축도와 같은 장내를 바라보면서 (중략)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가 한 번도 아니요, 연하여 두세 번 일어난 것은 그들이 자기의 고율한 율동에 맞는 것을 얻어 감상한 기쁨을 숨김없이 나타냄이며 …〉
최승희가 단순한 서구의 무용만 춘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춤으로 객석의 일본인까지 감동시켰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최승희는 1934년 9월 도쿄 청년회관에서 조선춤을 주제로 한 일본 첫 공연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30년대 이후 최승희의 무용은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8. 귀국 후 설립한 ‘조택원무용연구소’
〈… 동경 석정막무용연구소에서 소정과목을 수예한 조택원 군은 은사의 후원을 얻어 조선으로 돌아와 경성에 석정막무용연구소 조선지부를 설치하리라 한다. …〉(《동아일보》 1932년 3월 18일자)
〈… 조택원 군과 석정영자 양의 제1회 무용발표회는 기보한 바와 같이 본사 후원 아래 27일 오후 7시부터 부내 장곡천정 공회당에서 성대히 막을 열었다. 관객은 정각 전부터 모여들어 1천여명에 달하는 장내 입추의 여지가 없었는데 무용은 ‘아르데노와 고로부바신’으로부터 시작해 14종목이 끝날 때까지 박수가 우레와 같이 일어나 비상한 성황을 이루었다. …〉(《매일신보》 1934년 1월 29일자)
조택원의 귀국소식을 《동아일보》가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시이 바쿠에게 3년간 발레를 배워 1932년 귀국한 뒤 지금의 서울 영락정(永樂町·지금의 서울 충무로)에 무용소를 차렸다. 명칭은 ‘석정막무용연구소 조선지부’. 이듬해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조택원무용연구소’로 바꿨다.
처음 그에게 춤을 배우러 온 이는 진수방(陳壽芳·1921~1995)이었다고 한다. 진수방은 한국 발레의 토착화에 힘쓴 인물로 1946년 조선무용예술가협회 결성에 참여했고 1956년 한국무용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무나 연구생이 될 수 없었고 소질이 있는 이에게 연구생 자격을 줘 무료로 춤을 가르쳤지만 개인교수는 얼마간의 월사금(月謝金)을 받았다고 한다.
조택원이 우리 전통춤에 눈을 뜬 시기도 이즈음이다. 승무(僧舞)를 배웠으며 1934년 1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이시이 바쿠의 작품 12편과 〈승무의 인상〉 등 조택원의 작품 2편을 더한 레퍼토리로 제1회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승무의 인상〉이란 작품 이름은 조택원과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정지용(鄭芝鎔)이 권해 ‘가사호접(袈裟胡蝶)’으로 불렸다. 산속에서 인간을 그리워 속세로 내려온 승(僧)에 대한 얘기를 춤으로 담았다. 사바세계를 보고 진퇴유곡에 빠져 헤맨다는 테마.
그는 승무를 김백옥이라는 기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이시이 바쿠도 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너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춤을 다시 한번 배워야 한다. 거기서 너의 독창적인 예술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시이 바쿠의 회상(《모던 日本》 1939년 2월호)에는 두 제자에 대한 스승의 의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 이쪽(조택원)은 남자였기 때문에 세간적으로 최승희를 능가하기가 아주 힘들었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나 어떻든 조택원의 무용이 지닌 창조력을 깔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최승희라 할지라도 늘 안심이 되지 않았다. …〉
1935년 봄 서울 부민관에서 ‘제2회 조택원무용발표회’가 열렸다. 모두 15편의 작품으로 제자 진수방이 출연했다. 당시 그는 2년제 여자전문학교인 경성중앙보육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 동료교사로 훗날 문교부 장관을 지낸 오천석(吳天錫)이 심리학을,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洪蘭坡)가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 무용가 조택원씨는 제1회 발표회 이후 더욱 연구를 거듭하여 오던바 금 26(토), 27(일) 양일 간 매야 7시부터 경성공회당에서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다는데 이 사진은 그중의 ‘승무의 인상’이란 작품의 한 포즈로 조선의 고전무용을 새로 개척해 보려는 조택원씨의 첫 시험이다. …〉(《동아일보》 1935년 1월 23일자)
9. 전통 舞樂의 韓成俊과 조선무용음악연구회
〈… 조선무용음악연구회는 조선 고대무용계의 유일한 존재인 한성준씨와 명창 김석구(金錫九)씨와 사계의 유지 현철씨 등의 발기로 작년 12월 28일에 창립을 하고 새해를 맞게 되었다. 한성준씨는 8세 때부터 조선의 무용에 천재적 소질을 가지고 60여 년간을 하루같이 조선의 무용을 연구하고 창작하여 추어 왔으나 무용 속에 숨은 조선의 독특한 미의 정조와 예술의 진수를 혼자 즐기고 웃었을 뿐이며 혼자 서러워 울었을 뿐이고 널리 일반에게 보급시키고 알리어 줄 기회가 오지 않음을 혼자 애두럽게 여겨 오던바 이제 분연히 생각을 결하고 조선의 춤을 다만 한 사람에게나마 보급시키고 이 세상을 버린다 해도 여한이 없겠다 하여 무용연구회를 창립하고 여년은 조선 고대무용 보급에 바치기로 한 것이라 한다.
조선 고대춤으로는 재래 조선의 궁중에서 추던 춤과 민간에서 추던 춤만으로도 40여 종인바 새로 한성준씨가 창작한 춤이 지금까지 100여 종이라고 한다. 이제 재래에 전해 온 춤의 종류만을 들어 보면, 왕의 춤/ 영의정 춤/ 좌의정 춤/ 급제 춤/ 도승지 춤 …〉(《동아일보》 1938년 1월 19일자)
한성준의 조선음악무용연구회는 식민지 유일한 고전무용단이었다. 서양춤에 맞서 전통춤을 살리기 위한 최초의 자각인 셈이다. ‘한성준=전통 예인(쟁이, 꾼)=낡은 고전’으로 인식하고 ‘최승희·조택원=신무용가(예술가)=새로운 시대사조’라는 시각 탓에 한성준은 한국무용사에 저평가됐다.
그러나 이시이 바쿠조차 최승희를 한성준에게 보내 조선무용의 수법을 배우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 승희의 무용에 특징을 갖게 하는 의미로 그때 상경 중인 조선무용의 대가 한씨에게 보내 조선무용의 수법을 연성적(連成的)으로 익히게 하였다. 본인은 싫다고 하는 것을 내가 억지로 정리하여 제명도 ‘에헤라 노아라’라고 명명하여 그것을 상연(최승희의 제1회 동경발표회)했는데 예기치 않게 대평판이 되어 그 후 그는 자주 조선풍의 무용을 상연하게 되었는데 정말 본인에게 있어서도 다행한 일로 나는 생각한다. …〉(《모던 日本》1939년 2월호)
한성준은 근대 전통 무악(舞樂)의 거장이었다. 그의 어머니 김씨는 충남 홍성, 서산 등 서해안 일대의 무굿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글공부 대신 춤과 장단을 배웠고 외조부의 영향으로 춤, 북장단, 줄타기를 익혔다. 1900년대 그는 원각사를 비롯한 광무대·장안사·단성사 등 서구식 극장무대에서 판소리 명창의 고수(鼓手)로 활동하며 예인(藝人)으로 일가를 이뤘다. 고종이 그를 아껴 참봉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1941년 월간 《춘추(春秋)》 3월호에 명창 이동백과 한성준의 대담이 나온다.
〈… 이동백: 그때는 정말 상놈 대접을 받았으나 노래 부르고 춤출 만했었지. 순종과 한 대청에서 놀기까지 했으니까.
한성준: 그때 김인호가 두꺼비 재주넘다가 바로 순종 무릎에 떨어지자 기쁘게 웃으셨지요. 그때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 당시 형님은 순종의 귀여움을 상당히 받았을 거요. 원각사에서 형님이 소리할 때면 순종께서 전화통을 귀에 대고 듣기까지 하셨으니까. …〉
한성준은 조선음악무용연구회가 발족한 뒤인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본격적인 공연활동에 나섰다. 승무·단가무·한량무 등을 춰 신무용에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음은 《조선일보》 1938년 6월 19일자와 1940년 2월 27일자 보도.
〈… 지난 5월 본사의 지령 6000호와 혁신 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전 조선향토연예대회 때에 이미 이 고전무용은 처음부터 일반사회에 소개되자 당야는 초만원의 대성황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회장 관계로 입장 못한 이가 400~500명에 달하여 일대 소란을 일으키게까지 일반의 대망과 기대가 컸었다. …〉(1938년 6월 19일자)
〈… 조선춤으로서 사계에 이미 명성이 높은 한성준씨가 지도하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도동기념공연은 본사 사업부 후원으로 오늘밤 시내 부민관에서 호화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중략) 한성준씨가 출 ‘학무’는 일찍이 무용가 조택원씨가 배워가지고 동경으로 건너가 일비곡공회당에서 발표회를 열어 큰 인기를 부른 춤인 만큼 일반의 기대는 자못 크다. …〉(1940년 2월 27일자)
10. 박영인, 방정미, 한국인 구니 마사미
〈… 무용에 대한 예술이론을 실천화시키려고 3년 전에 첫 무대를 밟게 된 신진 무용가는 현재 동경제대 문학부 미술사과 2년생 박영인 군이랍니다.
박군은 조선 부산 태생으로 부산중학 시대부터 영인(英人) 선교사에게 무용의 기본을 배웠답니다. 일본 송강(松江)고교 시대에는 무용에 대해 독학연구를 하고 재작년 동경제대에 입학한 후 그는 석정막연구소에서 연구도 하였으며 미국인 ‘흐들푸 에풀’에게 다시 순정무용을 배우게 된 후부터는 소학교 같은 데서 실험무대 삼아 자기 이론을 실시하여 보기도 하였답니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8일)
이 기사로 박영인이란 이름이 지상(紙上)에 처음 알려졌다. 박영인은 ‘방정미(邦正美)’란 예명으로 널리 알려진 무용가. 방정미의 일본식 발음이 ‘구니 마사미’. 부산에서 영국 선교사에서 서양춤을 처음 추었고 최승희·조택원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를 찾아가 6개월간 무용의 기초를 배웠다고 한다. 동경제대 문학부 미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으며 제대(帝大) 재학 중인 1933년 춤 발표회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이름은 1936년 《동아일보》 1월 1일자 기사에 다시 등장한다.
〈… 지금 동경 무용계에서 방정미(邦正美)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박영인씨는 처음에 ‘엘자 위자스’ 양에게서 서양무용을 배웠고 그 뒤에 ‘루돌프 E 에플’ 씨에게서 고전무용을 연구하였고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에 들어가 무용미학과 무용사를 연구하고 소화(昭和) 9년(1934년) 2월에 동 대학을 졸업하였다.
씨가 동경 무용계에 데뷔한 것은 소화 8년 1월 동경 일본청년회관에서의 공연이요, 현재는 방정미무용연구소를 주재하고 무용극장 무용부 주임과 신협극단연구소 강사를 겸하였으며 금춘에도 신작무용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씨는 기회를 보아 한번 조선 고전무용의 연구도 해 보리라 한다. …〉
박영인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국립무용대학에 유학, 루돌프 본 라반과 마리 비그만에게 독일식 신흥 무용을 배웠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에서 춤을 배운 인물로 기록된다. 졸업 후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베를린 국립극장을 비롯해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 수십 차례 공연을 가졌다. 또 일본에서 ‘교육무용연구소’를 설립, 많은 일본 무용가를 발굴하고 키워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울산에서 발행되는 《경상일보》(2006년 5월 15일자)는 그를 ‘울산 출신의 세계적 무용가’로 표현하고 있다. 박영인의 부친(朴南極)은 1900년대 초 울산에서 면장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박영인이란 이름을 버리고 ‘구니 마사미’로 활동하며 한국무용계와 등을 졌다.⊙
보통 서양무용은 처음에는 흥이 없어도 시작해서 출 수가 있으며 그렇게 추는 춤은 나중에 흥이 나지만, 한국의 전통춤은 처음부터 흥이 나야 출 수 있다고 한다. 식민지 조선의 흥은 신문물의 세련미와 한(恨)의 비장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도도한 근대화의 물결에 맞서지 않았다.
최근 간행된 《한국 근대춤자료사(1899~1950)》(김종욱 編著, 아라刊)에는 막 개화(開花)하기 시작하던 한국무용의 10가지 상징이 나온다. 20세기 한국의 근대춤은 서양인이 추는 이른바 신(新)무용이었다. 한반도에 춤이 상륙할 때 지식인들은 전통춤을 기녀들의 몫으로 한정, 근대적인 춤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 현대무용의 1세대인 이시이 바쿠(石井漠·1886~1962)에게 서양춤을 배운 최승희·조택원·박영인(朴永仁·1908~2007)일지라도 당대 학무(鶴舞)와 무당춤·바라춤 등 ‘전통무악(舞樂)’의 대표 격인 한성준을 통해 더욱 꽃을 피웠다는 점을 가벼이 보기 어렵다. 《한국 근대춤자료사》의 편자인 김종욱(金鍾旭)씨의 말이다.
“한국무용사에 최승희·조택원 같은 춤꾼들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기라성 같은 춤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보다 선진적인 춤을 선보인 이가 배구자(裵龜子·1907~?)이며 이후 최승희의 활동기에 그녀가 키워 낸 장추화·김민자·노재신·김백봉을 비롯해 일본과 독일에 단신 유학해 춤꾼으로서의 큰 성공을 이룩한 박영인은 괄목할 만한 인물로 대성(大成)을 이뤄 냈습니다.
당대 조선춤의 거장(巨匠) 한성준이 최승희·조택원에게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고요, 최승희의 월북(1946년) 이후 한동인·장추화·송범과 같은 춤꾼들로 오늘의 한국무용계가 빛을 더했어요.”
1. 西江 閒雜輩가 舞童 연희장을 設하다!
〈… 서강(西江) 한잡배(閒雜輩)가 아현 등지에서 무동(舞童) 연희장을 설(設)하였는데 관광하는 이, 운집하였거늘 경무청에서 순검(巡檢)을 파송하여 금집(禁戢)한즉, 방관하던 명정이 파흥(破興)됨을 분통히 여기어 해순검(該巡檢-그 순검을)을 무수난타(無數亂打)하여 기지사경(幾至死境)한지라 본청(本廳)에서 그 한잡배 기허명(幾許名)을 촉치하고 해연희(該演戱) 제구(諸具)를 수입(收入)하여 소화(燒火)하였다더라. …〉(《황성신문》 1899년 4월 3일자)
한국 근대춤 연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신문기사다. 서울 아현동 등지에 이동형 가설무대가 세워졌는데, 많은 이들이 그 공연을 보려 몰려들었다는 얘기다. 춤의 형태는 변형된 궁중무나 일반 춤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군중이 운집한 것을 못마땅히 여긴 일경(巡檢)이 공연을 방해, 흥이 깨지자 군중이 경찰을 구타해 난리가 났다. 결국 공연은 강제로 끝이 나고 공연 물품은 불태워졌다.
일제는 민족문화 탄압책으로 전통춤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1912년 ‘경찰범처벌규칙’에는 전통 무속(巫俗)을 ‘음사(陰祀)’로 규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의 전통춤은 자생적인 성장발판 마련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도 전통춤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황성신문》 1900년 3월 6일자 ‘무동관광(舞童觀光)’ 제하의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일 하오 3시에 내외국 신사들이 용산 무동연극장에 전왕(前往)하여 관광자 여운(如雲)하더라. …〉
용산에 세워진 가설공연장에 구름과 같이 인파가 몰렸던 것이다.
2. 최초의 관립극장 協律社와 娼妓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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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관립극장인 협률사는 1895년 서울 정동(새문안교회 자리)에 세워졌다. |
이 기사는 협률사에서 창기(娼妓)를 조직하는데 그 밑에 관기로 호칭되는 태의원 소속 의녀, 상의사 소속 침선비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이다. 또 창기의 또 다른 일원인 ‘무명색 삼패’를 합쳐 예기(藝妓)라 하고, 새로운 관기 지원자는 예기(預妓)라 명한다는 것이다. 당시 일급 기생을 관기(일패)라 부르고, 비관기 출신 기생을 삼패라 칭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협률사’는 한국 최초의 근대 공립극장을 의미한다. 지금의 서울 정동 새문안교회 자리에 위치했다. 민간이 운영하던 가설 공연장과 차원이 다른 극장식 공연장이 처음 생겨난 것이다.
1906년 《대한매일신보》 3월 8일자 신문에 〈논(論)협률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 협률사는 전에 장봉환씨가 황상폐하께 상주(上奏)하되 군악대 경비를 충보(充補)할 계획으로 협률사를 창설하고자 누누이 천총(天聰)을 기폐(欺蔽)하야 탕금(帑金) 4만원을 내하(內下)하여 구주(歐洲) 연희옥양자(演戱屋樣子)로 건축하고 예기를 초선(招選)하며 창우를 모집하야 …〉
협률사가 정부의 군악대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얘기다. 한국 최초의 국립극장이자 유료 공연장이었던 협률사는 1908년 민간극장으로 변신, 이름도 원각사(圓覺寺)로 바뀌게 된다.
3. 新무용가로 첫머리에 든 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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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무용연구소를 세운 배구자. |
〈… 천승 출연의 첫날 연예관 대성황 …〉(《매일신보》10월 12일자)
〈… 기술로 유명한 천승의 일행은 요사이 부산에서 그곳 황금관에서 개연 중인데 (중략) 그중에는 경성 왔을 때에 데리고 간 배구자도 같이 왔다. 배구자라 함은 꽤 미인으로 유명한 배정자(裵貞子)의 친정 조카딸이며 그 부친은 경성 내자동에 사는 배석태(裵錫泰)씨인데, 이 아이는 그 고모 정자를 닮아서 외양도 예쁘고 성질도 민첩하더라. 재작년 천승의 일행이 경성에 왔을 때에 당년 11살된 계집애가 천승에 머물러 있는 산본여관에 가서 제자 되기를 간청하는 고로 천승도 그 용기를 기특히 여겨 일좌에 들게 하였더라.
그 뒤로 3년 동안 공부를 시켜서 지금은 재주도 한두 가지 배운 고로 조선에 나와 첫 무대를 치르게 할 터이라는데 배구자는 이왕 경성에서 보통학교를 다녀 일본말을 하는 데다가 일본 가서 다닌 결과로 지금은 아주 동경서 성장한 일본 아이나 다를 것 없다 하며 이번에는 천승이 아주 수양녀로 삼을 터이라더라. …〉(《매일신보》 1918년 5월 14일자)
1913년부터 일본의 덴카쓰(天勝) 곡예단이 내한해 서울과 지방에서 공연했다. 덴카쓰의 1915년 공연에는 40여 명이 내한했는데 이 무렵 ‘배구자’라는 소녀가 부모를 졸라 덴카쓰곡예단에 입단했다. 고작 7살의 나이였다. 이 아이는 1920년대에 신무용가로 입신, 1935년에는 서울 충정로에 ‘동양극장’이라는 신식 공연장을 설립했다. 당시 19만5000원을 들여 지은 국내 유일의 연극전문 극장이었다. 덴카쓰곡예단의 단원이 되어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것은 1918년 5월이었다.
배구자의 출생과 관련해 구한말(舊韓末) 배정자(裵貞子)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이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덴카쓰곡예단에 입단한 배구자는 10년 동안 단원으로 활약하며 춤, 노래, 곡예를 도맡았다.
1929년 6월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그해 9월 무용발표회도 가졌다. 국내 최초 개인 무용연구소였으며 국내 신무용 행사로도 최초였다. 최승희의 등장 이후 그녀의 춤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훗날 미국 하와이에 정착, ‘하와이 한국고전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4. 한국에 신무용을 전파한 ‘이시이 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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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이시이바쿠무용연구소’ 시절, 아라비안 댄스를 추는 최승희와 조택원(오른쪽). |
일본의 현대무용가 1세대인 이시이 바쿠의 내한(來韓)을 전한 최초 기사다. 한국 근대무용의 꽃을 피웠던 최승희·조택원 모두 이시이의 제자다. 일본 제국극장(帝國劇場) 가극부 제1기생인 그는 일본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춤이 몸의 움직임에 의한 시(詩)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무용시’를 개척했다. 현대 서양무용에다 동양적, 그리고 일본적 정서가 가미된 독창적인 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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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현대무용의 1세대로 꼽히는 이시이 바쿠. 그는 최승희와 조택원을 길러냈다. |
〈… 동경에서 무도로 유명한 석정막과 동생 석정소랑(石井小浪)은 금 21일부터 30일까지 경성일보 후원으로 시내 공회당에서 매일 6시부터 출연한다 함은 기보한 바이니와 입장료는 특등 3원, 2등 2원이요, 학생은 80전이며 경성일보 애독자와 우대권을 가지고 오는 이에게는 각 등을 모두 할인하리라는바, 이 일행은 여러 나라로 순회하면서 각국 무도를 연구하였다는데 금번에는 조선춤도 연구하려고 한다 하며 더욱이 12세로부터 15세까지의 조선여자로, 무도를 연구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자기들이 데려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라. …〉
이시이 바쿠의 서울공연은 당시 서양무용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신세계’를 선물하고 최승희라는 세계적 무용수를 길러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대환경이 식민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시이 바쿠의 내한은 일본의 문화적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속셈으로 볼 수 있다.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후원한 곳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였다.
5. 최승일과 최승희 두 남매의 등장
〈… 석정(石井) 남매는 그간 구주(歐洲) 만유의 길을 가는 도중 경성에 이르러 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자 특히 ‘무용시’가 남매의 눈에 띈 가련한 흰옷 입은 조선소녀의 아담한 자태가 매우 흥미를 끌어 결국은 조선소녀를 몇 명 제자로 뽑겠다는 소리까지 났었는데 이에 대하여 청년문사 최승일(崔承一)씨의 영매로 금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최승희(16) 양이 다행히 부모의 승낙과 석정씨 남매의 눈에 들어 25일 아침 경성을 떠나게 된 것이다. …〉(《매일신보》 1926년 3월 26일자)
1926년 3월 26일자 신문에 최승희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했다. 오빠 최승일은 1920년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극 연극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창립한 인물. 최승일이 여동생을 이시이 바쿠에게 추천한 셈이다. 그러자 최승희의 모교가 발끈하고 나섰다. 3월 27일자 《매일신보》에 ‘무용계에 도전한 숙명학교의 여(女)교원’이란 기사가 실렸다. ‘무용가가 되려고 하는 최승희 양에게 모교가 되는 숙명여학교 교원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시이 바쿠는 1939년 2월 《모던 일본(日本)》 잡지에 쓴 기고문에서 ‘《경성일보》 학예부장을 하던 데라다 히사오(寺田壽夫) 씨의 소개장을 가지고 이시이의 분장실로 최승일·승희 남매가 찾아갔다. 부득부득 자기 누이동생을 무용가로 키우고 싶으니 제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 승희의 아버지와 오빠 승일 군과 또 학생복 그대로의 승희와 여러 가지 절충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기로 하여 경성 출발 때 역의 누상에서 관계자 일동과 간단하게 축배를 올렸는데 발차 직전에 갑자기 개찰구 쪽으로 백의(白衣)의 부인이 조선어로 승희의 이름을 불러대면서 광인(狂人)처럼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승희는 창에 머리를 내밀고 어머니, 어머니 라고 눈물을 닦으며 소리를 지르는 데는 질렸었다. 동경에 간다는 것을 어머니에게는 일체 비밀로 했다는 것을 그 일 뒤에야 알았다. …〉(1939 2월 《모던 日本》제10권 12호)
6. 최승희의 성장과 조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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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조택원(왼쪽). |
1년 사이 최승희의 무용이 얼마나 발전했을지는 이 기사의 중간에 나오는 이시이 바쿠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승희의 재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제자도 많이 두어 보았으나 승희 같이 쉽게 배우는 아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만하면 고향에 돌아가 승희의 전도를 의아히 여기던 여러분까지도 큰소리 치고 내세울 만하기에 경성의 공연을 승낙한 것이니 조선의 여러분이 승희의 무용에 취하실 때 우리 남매의 의무는 다한 것이며 비로소 조선에도 무용의 지기가 생길 줄로 믿습니다.”
바로 최승희의 이날 국내 데뷔공연을 조택원이 보게 된다. 그리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상업은행에 다니며 모은 월급을 털어 도일(渡日),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문하에는 제자가 7~8명 있었다. 한국인으로 최승희와 한병룡(韓炳龍)이 먼저 입단했다.
조택원은 이시이 바쿠에게 3년가량 발레를 배우고 귀국했다. 만약 1926년 3월과 이듬해 7월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의 공연이 없었다면 한국무용사에 조택원이란 이름이 지워졌을지 모른다.
조택원은 훗날 《춤》지 1976년 3월호에 이런 말을 했다.
“1926년은 새로운 세계를 내게 열어 준 해이고 내 인생의 궤도가 바뀐 해였으며 그것은 확실히 개안(開眼)이었고 예술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심장으로 터득한 해이기도 했다.”
7. 국내 첫 창작춤 발표회, ‘제1회 최승희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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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리크포엔’에서 최승희가 춤을 추고 있다. |
‘최승희는 서구식 현대무용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현대무용의 기법으로 한국풍의 춤을 창작하고 공연한 최초의 인물’이다. 최승희는 1929년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나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 적선동에 ‘무용예술연구소’를 설립했다. 15명의 단원을 뽑은 뒤 이듬해 2월 ‘제1회 최승희 발표회’를 가졌다. 자신의 이름을 문패로 한 첫 공연이었다.
완전 매진된 3부작 공연은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독자적인 창작 춤 공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관객의 반응. 《동아일보》 1930년 2월 5일자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무대를 향하여 오른편은 전부가 조선사람 대부분 여학생들이고 왼편은 일본사람이 각각 차지하고 있어 마치 서울의 남촌과 북촌이 판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경성의 축도와 같은 장내를 바라보면서 (중략)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가 한 번도 아니요, 연하여 두세 번 일어난 것은 그들이 자기의 고율한 율동에 맞는 것을 얻어 감상한 기쁨을 숨김없이 나타냄이며 …〉
최승희가 단순한 서구의 무용만 춘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춤으로 객석의 일본인까지 감동시켰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최승희는 1934년 9월 도쿄 청년회관에서 조선춤을 주제로 한 일본 첫 공연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30년대 이후 최승희의 무용은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8. 귀국 후 설립한 ‘조택원무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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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이 바쿠(오른쪽)와 조택원. |
〈… 조택원 군과 석정영자 양의 제1회 무용발표회는 기보한 바와 같이 본사 후원 아래 27일 오후 7시부터 부내 장곡천정 공회당에서 성대히 막을 열었다. 관객은 정각 전부터 모여들어 1천여명에 달하는 장내 입추의 여지가 없었는데 무용은 ‘아르데노와 고로부바신’으로부터 시작해 14종목이 끝날 때까지 박수가 우레와 같이 일어나 비상한 성황을 이루었다. …〉(《매일신보》 1934년 1월 29일자)
조택원의 귀국소식을 《동아일보》가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시이 바쿠에게 3년간 발레를 배워 1932년 귀국한 뒤 지금의 서울 영락정(永樂町·지금의 서울 충무로)에 무용소를 차렸다. 명칭은 ‘석정막무용연구소 조선지부’. 이듬해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조택원무용연구소’로 바꿨다.
처음 그에게 춤을 배우러 온 이는 진수방(陳壽芳·1921~1995)이었다고 한다. 진수방은 한국 발레의 토착화에 힘쓴 인물로 1946년 조선무용예술가협회 결성에 참여했고 1956년 한국무용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무나 연구생이 될 수 없었고 소질이 있는 이에게 연구생 자격을 줘 무료로 춤을 가르쳤지만 개인교수는 얼마간의 월사금(月謝金)을 받았다고 한다.
조택원이 우리 전통춤에 눈을 뜬 시기도 이즈음이다. 승무(僧舞)를 배웠으며 1934년 1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이시이 바쿠의 작품 12편과 〈승무의 인상〉 등 조택원의 작품 2편을 더한 레퍼토리로 제1회 무용발표회를 가졌다. 〈승무의 인상〉이란 작품 이름은 조택원과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정지용(鄭芝鎔)이 권해 ‘가사호접(袈裟胡蝶)’으로 불렸다. 산속에서 인간을 그리워 속세로 내려온 승(僧)에 대한 얘기를 춤으로 담았다. 사바세계를 보고 진퇴유곡에 빠져 헤맨다는 테마.
그는 승무를 김백옥이라는 기생에게 배웠다고 한다. 이시이 바쿠도 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너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춤을 다시 한번 배워야 한다. 거기서 너의 독창적인 예술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시이 바쿠의 회상(《모던 日本》 1939년 2월호)에는 두 제자에 대한 스승의 의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 이쪽(조택원)은 남자였기 때문에 세간적으로 최승희를 능가하기가 아주 힘들었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나 어떻든 조택원의 무용이 지닌 창조력을 깔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최승희라 할지라도 늘 안심이 되지 않았다. …〉
1935년 봄 서울 부민관에서 ‘제2회 조택원무용발표회’가 열렸다. 모두 15편의 작품으로 제자 진수방이 출연했다. 당시 그는 2년제 여자전문학교인 경성중앙보육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 동료교사로 훗날 문교부 장관을 지낸 오천석(吳天錫)이 심리학을,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洪蘭坡)가 음악을 가르쳤다고 한다.
〈… 무용가 조택원씨는 제1회 발표회 이후 더욱 연구를 거듭하여 오던바 금 26(토), 27(일) 양일 간 매야 7시부터 경성공회당에서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를 개최하기로 되었다는데 이 사진은 그중의 ‘승무의 인상’이란 작품의 한 포즈로 조선의 고전무용을 새로 개척해 보려는 조택원씨의 첫 시험이다. …〉(《동아일보》 1935년 1월 23일자)
9. 전통 舞樂의 韓成俊과 조선무용음악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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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전통 무악(舞樂)의 거장으로 불린 한성준. |
조선 고대춤으로는 재래 조선의 궁중에서 추던 춤과 민간에서 추던 춤만으로도 40여 종인바 새로 한성준씨가 창작한 춤이 지금까지 100여 종이라고 한다. 이제 재래에 전해 온 춤의 종류만을 들어 보면, 왕의 춤/ 영의정 춤/ 좌의정 춤/ 급제 춤/ 도승지 춤 …〉(《동아일보》 1938년 1월 19일자)
한성준의 조선음악무용연구회는 식민지 유일한 고전무용단이었다. 서양춤에 맞서 전통춤을 살리기 위한 최초의 자각인 셈이다. ‘한성준=전통 예인(쟁이, 꾼)=낡은 고전’으로 인식하고 ‘최승희·조택원=신무용가(예술가)=새로운 시대사조’라는 시각 탓에 한성준은 한국무용사에 저평가됐다.
그러나 이시이 바쿠조차 최승희를 한성준에게 보내 조선무용의 수법을 배우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 승희의 무용에 특징을 갖게 하는 의미로 그때 상경 중인 조선무용의 대가 한씨에게 보내 조선무용의 수법을 연성적(連成的)으로 익히게 하였다. 본인은 싫다고 하는 것을 내가 억지로 정리하여 제명도 ‘에헤라 노아라’라고 명명하여 그것을 상연(최승희의 제1회 동경발표회)했는데 예기치 않게 대평판이 되어 그 후 그는 자주 조선풍의 무용을 상연하게 되었는데 정말 본인에게 있어서도 다행한 일로 나는 생각한다. …〉(《모던 日本》193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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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택원과 한성준. 한성준이 학춤 의상을 입고 있다. |
1941년 월간 《춘추(春秋)》 3월호에 명창 이동백과 한성준의 대담이 나온다.
〈… 이동백: 그때는 정말 상놈 대접을 받았으나 노래 부르고 춤출 만했었지. 순종과 한 대청에서 놀기까지 했으니까.
한성준: 그때 김인호가 두꺼비 재주넘다가 바로 순종 무릎에 떨어지자 기쁘게 웃으셨지요. 그때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 당시 형님은 순종의 귀여움을 상당히 받았을 거요. 원각사에서 형님이 소리할 때면 순종께서 전화통을 귀에 대고 듣기까지 하셨으니까. …〉
한성준은 조선음악무용연구회가 발족한 뒤인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본격적인 공연활동에 나섰다. 승무·단가무·한량무 등을 춰 신무용에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음은 《조선일보》 1938년 6월 19일자와 1940년 2월 27일자 보도.
〈… 지난 5월 본사의 지령 6000호와 혁신 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전 조선향토연예대회 때에 이미 이 고전무용은 처음부터 일반사회에 소개되자 당야는 초만원의 대성황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회장 관계로 입장 못한 이가 400~500명에 달하여 일대 소란을 일으키게까지 일반의 대망과 기대가 컸었다. …〉(1938년 6월 19일자)
〈… 조선춤으로서 사계에 이미 명성이 높은 한성준씨가 지도하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도동기념공연은 본사 사업부 후원으로 오늘밤 시내 부민관에서 호화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중략) 한성준씨가 출 ‘학무’는 일찍이 무용가 조택원씨가 배워가지고 동경으로 건너가 일비곡공회당에서 발표회를 열어 큰 인기를 부른 춤인 만큼 일반의 기대는 자못 크다. …〉(1940년 2월 27일자)
10. 박영인, 방정미, 한국인 구니 마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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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인. |
박군은 조선 부산 태생으로 부산중학 시대부터 영인(英人) 선교사에게 무용의 기본을 배웠답니다. 일본 송강(松江)고교 시대에는 무용에 대해 독학연구를 하고 재작년 동경제대에 입학한 후 그는 석정막연구소에서 연구도 하였으며 미국인 ‘흐들푸 에풀’에게 다시 순정무용을 배우게 된 후부터는 소학교 같은 데서 실험무대 삼아 자기 이론을 실시하여 보기도 하였답니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18일)
이 기사로 박영인이란 이름이 지상(紙上)에 처음 알려졌다. 박영인은 ‘방정미(邦正美)’란 예명으로 널리 알려진 무용가. 방정미의 일본식 발음이 ‘구니 마사미’. 부산에서 영국 선교사에서 서양춤을 처음 추었고 최승희·조택원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를 찾아가 6개월간 무용의 기초를 배웠다고 한다. 동경제대 문학부 미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으며 제대(帝大) 재학 중인 1933년 춤 발표회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이름은 1936년 《동아일보》 1월 1일자 기사에 다시 등장한다.
〈… 지금 동경 무용계에서 방정미(邦正美)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박영인씨는 처음에 ‘엘자 위자스’ 양에게서 서양무용을 배웠고 그 뒤에 ‘루돌프 E 에플’ 씨에게서 고전무용을 연구하였고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에 들어가 무용미학과 무용사를 연구하고 소화(昭和) 9년(1934년) 2월에 동 대학을 졸업하였다.
씨가 동경 무용계에 데뷔한 것은 소화 8년 1월 동경 일본청년회관에서의 공연이요, 현재는 방정미무용연구소를 주재하고 무용극장 무용부 주임과 신협극단연구소 강사를 겸하였으며 금춘에도 신작무용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씨는 기회를 보아 한번 조선 고전무용의 연구도 해 보리라 한다. …〉
박영인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국립무용대학에 유학, 루돌프 본 라반과 마리 비그만에게 독일식 신흥 무용을 배웠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에서 춤을 배운 인물로 기록된다. 졸업 후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베를린 국립극장을 비롯해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 수십 차례 공연을 가졌다. 또 일본에서 ‘교육무용연구소’를 설립, 많은 일본 무용가를 발굴하고 키워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울산에서 발행되는 《경상일보》(2006년 5월 15일자)는 그를 ‘울산 출신의 세계적 무용가’로 표현하고 있다. 박영인의 부친(朴南極)은 1900년대 초 울산에서 면장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박영인이란 이름을 버리고 ‘구니 마사미’로 활동하며 한국무용계와 등을 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