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풀렸는데도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 늘지 않아
⊙ 칼로리·혈당지수 제로… 당뇨·비만 환자에 탁월
⊙ 설탕값의 40분의 1… 설탕 100kg과 사카린 0.2kg 동일한 맛
⊙ 칼로리·혈당지수 제로… 당뇨·비만 환자에 탁월
⊙ 설탕값의 40분의 1… 설탕 100kg과 사카린 0.2kg 동일한 맛
- JMC가 출시하고 있는 사카린 첨가 설탕 ‘드림슈가’.
인공 감미료 사카린(Saccharin).
오늘날 이 단어는 두 개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지난 1966년 사카린 55t을 건설 자재로 꾸며 밀수하려다 들통난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이 하나다. 또 하나는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有害)한 발암물질이라는 것이다. 지난 1977년 캐나다에서 사카린을 투여한 쥐가 방광암에 걸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미(美) 환경보호청은 사카린을 유해 우려 물질 리스트에 수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2년부터 사카린에 대한 규제가 본격 시작돼 젓갈·김치·절임식품을 제외하고 식품에는 쓸 수 없는 물질이 됐다. 그렇게 사카린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이미지는 지난 30여 년간 세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다. 설탕보다 500배나 단맛을 지닌 식품첨가물로 지난 1950~60년대 가정에서 흔히 사용했고, 1970년대 국내 수출 주력상품의 하나였던 사카린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사카린 제조회사 3곳 중 2곳, 발암물질 논란 끝에 사업 철수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카린(화학식 C7H5NO₃S)은 지난 1879년 미 존스홉킨스 대학의 화학교수를 지낸 아이라 램슨과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처음 발견한 인공 감미료다. 독일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한 제약회사의 직원이 자체적으로 사카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全)세계에서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사용했지만 지난 1977년 캐나다 발표 이후 논란거리의 중심에 섰다.
세계의 여러 기관들은 후속 연구를 했지만 사카린의 독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993년 사카린이 인체에 안전하다고 발표했고, 국제암연구소(IARC)와 미 독성물질 프로그램(NPT)은 지난 1998년과 2000년에 잇달아 사카린을 발암물질에서 제외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01년 사카린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미 환경보호청은 지난 2010년 사카린을 ‘인체 유해물질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미국, 유럽, 일본이 사카린에 대한 규제를 이처럼 풀었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여전히 우리에게 사카린은 ‘흰색의 공포 가루’ 정도였다.
보다 못해 김동길(金東吉) 경인양행 명예회장이 나섰다. 40여 년간 염료회사를 경영했던 김 회장은 지난 2004년 1월에 ‘제일물산’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제일물산’에서 생산하는 ‘클로로폴로산’이라는 제품이 필요해서였다. 당시 이 회사는 사카린도 생산하고 있었다. 김 회장 역시 사카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사카린에 대해 공부할수록 우리 사회에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회장은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 사카린을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결론냈고, 설탕보다 달면서 가격이 저렴한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규제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길 명예회장이 혼자 ‘사카린 누명 벗기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카린을 생산하는 곳으로 제일물산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사카린 3강(强)’이었던 조흥화학공업과 (주)금양은 발암물질 논란 끝에 1990년 말 사업을 접었다.
김 회장은 사카린 규제를 풀기 위해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 법률 개정을 신청했다. 식약청과 법정 공방까지 벌인 끝에 지난 2012년 3월 사카린에 대한 일부 규제가 풀렸다. 개정법에 따르면 사카린은 종전의 젓갈, 김치, 뻥튀기 이외에 껌, 잼, 소스, 토마토케첩, 탁주, 소주에까지 사용범위가 확대됐다. ‘오명’을 뒤짚어쓴 채 지내 온 사카린의 규제가 풀린 지 2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는 사카린을 넣은 껌을 씹고 있을까. 국내 유일의 사카린 제조회사인 JMC(구 제일물산)를 찾아갔다.
“사카린 탁주, 일반 탁주보다 맛좋아”(A 탁주업체)
강혜봉 JMC 이사는 “사카린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부 풀렸다”고 말했다. 강 이사의 얘기다.
“식약처(2013년 처로 승격)가 지난 2014년 10월, 빵류·과자·캔디류·빙과류·아이스크림류에 모두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제 식품시장의 75%에서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JMC의 매출이 많이 늘었겠군요.
“규제가 풀리기 전이나 후나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사카린의 용처에 대한 규제가 풀렸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카린을 제조하는 회사의 매출은 차이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 강 이사는 “사카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그대로여서 식음료, 제과업체에서 사카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JMC의 사카린 부문 매출 350억원(지난 2013년 기준) 중 90%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수출에서 발생한다. 현재 JMC에서 사카린을 납품받는 곳은 탁주 회사 몇 개뿐이다. A사는 사카린을 넣어 탁주를 만든다. 그는 회사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다.
—사카린 탁주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뭡니까.
“맛이 좋습니다. 사카린과 비슷한 합성 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섞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이 약해지고 처음 맛을 유지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카린을 넣으면 맛에 변화가 없습니다. 탁주의 유통기간은 통상 10일인데 아스파탐을 섞으면 일주일쯤 후에 시큼 털털한 맛이 조금 있었습니다. 사카린을 첨가한 후에는 열흘 후에도 품질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사카린이 저렴하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절감되기도 하고요.”
—소비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맛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탁주에 청량감이 있다, 맛이 개운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사카린을 넣었다고 말합니까.
“아뇨.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정부에서 허용한 제품이고 맛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왠지 좀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180도의 열에서도 감미료 기능 유지
김동길 JMC 명예회장은 사카린이 설탕을 능가하는 탁월한 제품이라는 데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사대 화학과 출신인 김 회장은 사카린의 탁월성을 알리기 위해 자사(自社)의 연구실에서, 세계김치연구소에 실험을 발주해 사카린에 대한 데이터를 얻었다. 그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의 물질보건안전 자료를 들이밀었다. 김동길 명예회장의 얘기다.
“공단 자료는 실험쥐를 대상으로, 저희 연구소에서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독성을 테스트했습니다. 실험쥐 테스트는 설탕이 사카린보다 172배, 물고기는 설탕이 사카린보다 76배 독성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설탕이 사카린보다 몸에 더 해롭다는 말입니다.”
—대부분 반대로 알고 있는데요.
“과학적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500배나 달지만 칼로리와 혈당지수가 제로예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당뇨환자들에게 좋은 감미료입니다. 물에 잘 용해되기 때문에 식품 제조나 음식 조리에도 적합하고, 200도 이상의 높은 열에서도 단맛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식품에 쓰기 좋은 물질이군요.
“빵은 보통 150~180도에서 20~30분간 가열하게 되잖습니까. 사카린의 대체재로 쓰는 아스파탐은 이 온도에서 감미료로서의 기능을 잃지만 사카린은 열에 안정적이어서 본래의 단맛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 열량이 300~500kcal 됩니다. 사카린으로 대체하면 칼로리를 20% 이상 낮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설탕의 40분의 1 수준입니다. 사카린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루에 설탕을 100kg 사용하는 식품회사가 이를 사카린으로 대체하면 0.2kg만 쓰면 됩니다. 매년 설탕 수입이 조 단위를 넘어갑니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하니까요. 설탕을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사카린으로 대체해서 경제적 손실을 막고 건강을 챙기자는 겁니다.”
미국산 다이어트 코크에는 사카린 들어 있다
김동길 명예회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사카린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JMC 본사에는 코카콜라에서 생산하는 ‘다이어트 코크’와 펩시사의 ‘다이어트 펩시’가 놓여 있었다. 이 두 제품 모두 사카린을 첨가한다고 한다.
강혜봉 이사의 말이다.
“청량음료는 물을 빼면 대부분 설탕입니다. 미국의 콜라 회사들은 모두 사카린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사카린이 유해한 물질이라면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사카린을 사용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다이어트 콜라’에는 사카린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국내에서 생산하는 콜라에는 아스파탐이 들어갑니다. 쉽게 말해 똑같은 다이어트 콜라이지만, 용산 미 8군 부대를 통해 밖으로 유통되는 콜라에는 사카린이 들어 있고 우리가 일반 마트에서 사는 콜라에는 아스파탐이 들어있는 겁니다.”
콜라 옆에 있는 박스 하나가 기자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스위트앤 로(Sweet’N Low)’라는 제품이었다. 기자는 과거 미국에 거주할 때 한국에 사는 당뇨병 환자들이 미국에 오자마자 마트에 들러서 이 제품을 몇 박스씩 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기자에게 이 제품은 미국에서 만드는 ‘당뇨병 환자가 먹어도 되는 설탕’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제품의 원 재료가 JMC에서 생산하는 사카린이라는 데 적잖이 놀랐다.
김동길 명예회장은 국내의 수많은 당뇨병 환자가 애써 달달한 맛을 포기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김 명예회장의 얘기다.
“단맛이란 사람한테 필요한 맛입니다. 우리나라에 당뇨병 환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당뇨병 환자나 당뇨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사카린을 먹어야 합니다. 사카린의 혈당지수가 제로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이 먹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설탕 두 스푼이랑 극소량의 사카린 맛이 똑같습니다.”
김동길 JMC 명예회장의 자택에는 설탕이 하나도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는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다. 김 명예회장은 “우리 집의 김치는 정말 끝내준다”며 말을 이었다.
“김치를 담글 때 설탕을 넣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배춧잎이 물렁해집니다. 우리 집은 설탕 대신 사카린을 넣는데 아주 맛이 기가 막힙니다. 같은 맛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김치는 반드시 사카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하나가 김치 아닙니까. 김치연구소에 용역을 맡겼는데 사카린 김치의 맛이 좋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설탕업체 반발 때문에 말을 못하는데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지난 2014년 8월, 세계김치연구소는 〈사카린의 첨가가 김치의 발효 및 품질 특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연구소는 배추김치, 깍두기 등 5종의 김치에 대해 물리학적·미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보고서 중 일부의 내용이다.
〈김치의 아삭한 정도는 사카린을 첨가한 곳에서 높은 점수를 받음. 사카린을 첨가한 처리구는 다른 처리구보다 조직이 물러지지 않음. 다른 감미료를 대신하여 사카린을 깍두기와 배추김치에 사용하여도 품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아삭한 조직감이 우수하며 경제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판단됨.〉
국내 제과업체들, “조금 기다려 보자”
지난해 10월, 대다수의 식품에 사카린을 사용해도 된다는 식약처의 발표가 있고 난 뒤에 JMC 관계자들은 숱하게 식음료, 제과업체를 들락거렸다. 사카린 자료는 넘기고 직접 찾아갔다. 대부분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강혜봉 이사의 얘기다.
“음료업체는 레시피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원료 연구소를 찾아갔습니다. 외국 사례, 국내 기관 연구, 우리 회사의 자체 연구결과와 식약처 자료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당장 설탕 대신에 사카린을 쓰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설탕 제품도 만들고, 사카린 제품도 만들자고 설득했는데 소용 없었습니다.”
—연구원들이 여전히 사카린이 유해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겠지요.
“연구원들은 당연히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카린이 안전한 화학물이고 정부의 규제가 풀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이해가 아직 안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연구원들 입장에서는 본사를 설득해서 굳이 사카린 레시피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세상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는 겁니다.”
현재 이 회사로부터 사카린을 납품받아서 청량음료나 아이스크림, 빵, 과자를 생산하는 국내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실제로 한 번 박힌 부정적인 식품 이미지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62세 주부 김정자(가명)씨는 ‘사카린의 이미지’를 묻자 ‘나쁜 것’이라고 답했다.
“뻥튀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뻥튀기에 사카린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동네 아줌마들 몇몇이랑 설탕을 들고 간 적이 있어요. 뻥튀기 아저씨한테 우리 과자에는 사카린 대신에 설탕을 넣어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아저씨 말이 설탕을 쓰면 뻥튀기 기계가 끈적끈적거려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뻥튀기를 튀기지 않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언제부터 사카린이 나쁜 물질이라고 생각했나요.
“글쎄, 정확히 모르겠네요. 예전에 어렸을 때는 사카린을 맹물에 타 먹은 적이 많았거든요. 달달한 그 물을 마시면 희한하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사카린이 화학물질이고 암을 유발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사카린에 대한 인식 바꾸는 것이 남은 인생 숙제”
‘사카린=발암물질’이라는 얘기를 어떻게 캐나다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일까. 강혜봉 이사는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잘못된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캐나다 산하 연구단지에서 수컷 쥐와 암컷 쥐에 사카린을 투여했는데, 그때 투여한 양이 1일 허용치의 500배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투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수컷 쥐에서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왜 그런 왜곡된 실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 이유에서이건, 어떻게 형성된 이미지이건, 부정적인 편견은 오랫동안 사람의 뇌리에 박힌다. 김동길 명예회장은 “내가 사카린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굳어진 인식의 벽을 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쉽지 않지요. 사카린이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디다.”
—그래도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뭐 하나는 나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오랫동안 왜곡된 이미지가 축적된 결과입니다. 쥐랑 물고기에 실험을 했잖아요. 과학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설탕은 자연 원료인 사탕수수가 원료이지만, 사카린은 화학제품이라 그렇지 않을까요.
“소금, 아스피린 전부 화학물질입니다. 화학물질을 아예 먹지 않겠다는 것은 암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사카린의 이미지가 미원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맛 차원에서 볼 때, 미원의 경우 대체재인 천연 성분이 충분히 맛을 내주니까 미원 대신에 천연을 먹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카린의 대체재인 설탕은 몸에 해로워요. 반면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은 설탕보다 덜 해로워요. 특히 당뇨환자, 비만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요. 그러니까 먹어야지요.”
—사카린이라는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요.
“사카린이라는 이름이 100년 넘었습니다. 사카린에 대한 국민 인식이 잘못됐다면 그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사카린이 안전하다는 것을 널리 알려서 사카린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 사카린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도 옳은 일은 해 나가야 하는 것이 남은 내 인생의 숙제입니다.”
식약처의 규제가 풀렸지만, 납품처 하나 뚫지 못하자 JMC는 얼마 전 ‘드림슈가’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설탕 99%, 사카린 1%를 넣은 설탕이다. 현재 롯데마트에서 판매 중인데, 한 점포당 한 달에 10봉지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들이 사카린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싸늘하다. ‘왜곡된 상식’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동길 JMC 명예회장의 남은 삶의 숙제는 ‘사카린 제대로 알리기’다. 만 서른셋에 혈혈단신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26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워 낸 그에게 40여 년의 인생 역정을 몇 차례 물었다. 그는 교사를 하다가 사업을 하게 된 계기, 회사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 등을 얘기하다가도 어느새 사카린으로 화제를 돌렸다. “내 살아 있을 때 사카린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야, 허허.”⊙
오늘날 이 단어는 두 개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지난 1966년 사카린 55t을 건설 자재로 꾸며 밀수하려다 들통난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이 하나다. 또 하나는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有害)한 발암물질이라는 것이다. 지난 1977년 캐나다에서 사카린을 투여한 쥐가 방광암에 걸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미(美) 환경보호청은 사카린을 유해 우려 물질 리스트에 수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2년부터 사카린에 대한 규제가 본격 시작돼 젓갈·김치·절임식품을 제외하고 식품에는 쓸 수 없는 물질이 됐다. 그렇게 사카린에 대한 공포와 부정적 이미지는 지난 30여 년간 세인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다. 설탕보다 500배나 단맛을 지닌 식품첨가물로 지난 1950~60년대 가정에서 흔히 사용했고, 1970년대 국내 수출 주력상품의 하나였던 사카린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사카린 제조회사 3곳 중 2곳, 발암물질 논란 끝에 사업 철수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카린(화학식 C7H5NO₃S)은 지난 1879년 미 존스홉킨스 대학의 화학교수를 지낸 아이라 램슨과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가 처음 발견한 인공 감미료다. 독일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한 제약회사의 직원이 자체적으로 사카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全)세계에서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사용했지만 지난 1977년 캐나다 발표 이후 논란거리의 중심에 섰다.
세계의 여러 기관들은 후속 연구를 했지만 사카린의 독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993년 사카린이 인체에 안전하다고 발표했고, 국제암연구소(IARC)와 미 독성물질 프로그램(NPT)은 지난 1998년과 2000년에 잇달아 사카린을 발암물질에서 제외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01년 사카린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미 환경보호청은 지난 2010년 사카린을 ‘인체 유해물질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미국, 유럽, 일본이 사카린에 대한 규제를 이처럼 풀었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 여전히 우리에게 사카린은 ‘흰색의 공포 가루’ 정도였다.
보다 못해 김동길(金東吉) 경인양행 명예회장이 나섰다. 40여 년간 염료회사를 경영했던 김 회장은 지난 2004년 1월에 ‘제일물산’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제일물산’에서 생산하는 ‘클로로폴로산’이라는 제품이 필요해서였다. 당시 이 회사는 사카린도 생산하고 있었다. 김 회장 역시 사카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사카린에 대해 공부할수록 우리 사회에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회장은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 사카린을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결론냈고, 설탕보다 달면서 가격이 저렴한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규제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길 명예회장이 혼자 ‘사카린 누명 벗기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카린을 생산하는 곳으로 제일물산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사카린 3강(强)’이었던 조흥화학공업과 (주)금양은 발암물질 논란 끝에 1990년 말 사업을 접었다.
김 회장은 사카린 규제를 풀기 위해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 법률 개정을 신청했다. 식약청과 법정 공방까지 벌인 끝에 지난 2012년 3월 사카린에 대한 일부 규제가 풀렸다. 개정법에 따르면 사카린은 종전의 젓갈, 김치, 뻥튀기 이외에 껌, 잼, 소스, 토마토케첩, 탁주, 소주에까지 사용범위가 확대됐다. ‘오명’을 뒤짚어쓴 채 지내 온 사카린의 규제가 풀린 지 2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는 사카린을 넣은 껌을 씹고 있을까. 국내 유일의 사카린 제조회사인 JMC(구 제일물산)를 찾아갔다.
“사카린 탁주, 일반 탁주보다 맛좋아”(A 탁주업체)
강혜봉 JMC 이사는 “사카린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부 풀렸다”고 말했다. 강 이사의 얘기다.
“식약처(2013년 처로 승격)가 지난 2014년 10월, 빵류·과자·캔디류·빙과류·아이스크림류에 모두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제 식품시장의 75%에서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JMC의 매출이 많이 늘었겠군요.
“규제가 풀리기 전이나 후나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사카린의 용처에 대한 규제가 풀렸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카린을 제조하는 회사의 매출은 차이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 강 이사는 “사카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그대로여서 식음료, 제과업체에서 사카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JMC의 사카린 부문 매출 350억원(지난 2013년 기준) 중 90%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수출에서 발생한다. 현재 JMC에서 사카린을 납품받는 곳은 탁주 회사 몇 개뿐이다. A사는 사카린을 넣어 탁주를 만든다. 그는 회사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다.
—사카린 탁주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뭡니까.
“맛이 좋습니다. 사카린과 비슷한 합성 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섞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이 약해지고 처음 맛을 유지하지 못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카린을 넣으면 맛에 변화가 없습니다. 탁주의 유통기간은 통상 10일인데 아스파탐을 섞으면 일주일쯤 후에 시큼 털털한 맛이 조금 있었습니다. 사카린을 첨가한 후에는 열흘 후에도 품질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사카린이 저렴하기 때문에 제조원가가 절감되기도 하고요.”
—소비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맛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탁주에 청량감이 있다, 맛이 개운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사카린을 넣었다고 말합니까.
“아뇨.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정부에서 허용한 제품이고 맛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왠지 좀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180도의 열에서도 감미료 기능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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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길 JMC 명예회장. |
“공단 자료는 실험쥐를 대상으로, 저희 연구소에서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독성을 테스트했습니다. 실험쥐 테스트는 설탕이 사카린보다 172배, 물고기는 설탕이 사카린보다 76배 독성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설탕이 사카린보다 몸에 더 해롭다는 말입니다.”
—대부분 반대로 알고 있는데요.
“과학적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500배나 달지만 칼로리와 혈당지수가 제로예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당뇨환자들에게 좋은 감미료입니다. 물에 잘 용해되기 때문에 식품 제조나 음식 조리에도 적합하고, 200도 이상의 높은 열에서도 단맛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식품에 쓰기 좋은 물질이군요.
“빵은 보통 150~180도에서 20~30분간 가열하게 되잖습니까. 사카린의 대체재로 쓰는 아스파탐은 이 온도에서 감미료로서의 기능을 잃지만 사카린은 열에 안정적이어서 본래의 단맛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 열량이 300~500kcal 됩니다. 사카린으로 대체하면 칼로리를 20% 이상 낮출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설탕의 40분의 1 수준입니다. 사카린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루에 설탕을 100kg 사용하는 식품회사가 이를 사카린으로 대체하면 0.2kg만 쓰면 됩니다. 매년 설탕 수입이 조 단위를 넘어갑니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해야 하니까요. 설탕을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사카린으로 대체해서 경제적 손실을 막고 건강을 챙기자는 겁니다.”
미국산 다이어트 코크에는 사카린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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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C의 사카린을 납품받아 미국에서 생산하는 다이어트 콜라와 제로 칼로리 슈가. |
강혜봉 이사의 말이다.
“청량음료는 물을 빼면 대부분 설탕입니다. 미국의 콜라 회사들은 모두 사카린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사카린이 유해한 물질이라면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사카린을 사용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다이어트 콜라’에는 사카린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국내에서 생산하는 콜라에는 아스파탐이 들어갑니다. 쉽게 말해 똑같은 다이어트 콜라이지만, 용산 미 8군 부대를 통해 밖으로 유통되는 콜라에는 사카린이 들어 있고 우리가 일반 마트에서 사는 콜라에는 아스파탐이 들어있는 겁니다.”
콜라 옆에 있는 박스 하나가 기자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스위트앤 로(Sweet’N Low)’라는 제품이었다. 기자는 과거 미국에 거주할 때 한국에 사는 당뇨병 환자들이 미국에 오자마자 마트에 들러서 이 제품을 몇 박스씩 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기자에게 이 제품은 미국에서 만드는 ‘당뇨병 환자가 먹어도 되는 설탕’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제품의 원 재료가 JMC에서 생산하는 사카린이라는 데 적잖이 놀랐다.
김동길 명예회장은 국내의 수많은 당뇨병 환자가 애써 달달한 맛을 포기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김 명예회장의 얘기다.
“단맛이란 사람한테 필요한 맛입니다. 우리나라에 당뇨병 환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당뇨병 환자나 당뇨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사카린을 먹어야 합니다. 사카린의 혈당지수가 제로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이 먹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설탕 두 스푼이랑 극소량의 사카린 맛이 똑같습니다.”
김동길 JMC 명예회장의 자택에는 설탕이 하나도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는 사카린으로 단맛을 낸다. 김 명예회장은 “우리 집의 김치는 정말 끝내준다”며 말을 이었다.
“김치를 담글 때 설탕을 넣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배춧잎이 물렁해집니다. 우리 집은 설탕 대신 사카린을 넣는데 아주 맛이 기가 막힙니다. 같은 맛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김치는 반드시 사카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하나가 김치 아닙니까. 김치연구소에 용역을 맡겼는데 사카린 김치의 맛이 좋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설탕업체 반발 때문에 말을 못하는데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지난 2014년 8월, 세계김치연구소는 〈사카린의 첨가가 김치의 발효 및 품질 특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연구소는 배추김치, 깍두기 등 5종의 김치에 대해 물리학적·미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했다. 보고서 중 일부의 내용이다.
〈김치의 아삭한 정도는 사카린을 첨가한 곳에서 높은 점수를 받음. 사카린을 첨가한 처리구는 다른 처리구보다 조직이 물러지지 않음. 다른 감미료를 대신하여 사카린을 깍두기와 배추김치에 사용하여도 품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아삭한 조직감이 우수하며 경제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판단됨.〉
국내 제과업체들, “조금 기다려 보자”
지난해 10월, 대다수의 식품에 사카린을 사용해도 된다는 식약처의 발표가 있고 난 뒤에 JMC 관계자들은 숱하게 식음료, 제과업체를 들락거렸다. 사카린 자료는 넘기고 직접 찾아갔다. 대부분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강혜봉 이사의 얘기다.
“음료업체는 레시피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원료 연구소를 찾아갔습니다. 외국 사례, 국내 기관 연구, 우리 회사의 자체 연구결과와 식약처 자료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당장 설탕 대신에 사카린을 쓰자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설탕 제품도 만들고, 사카린 제품도 만들자고 설득했는데 소용 없었습니다.”
—연구원들이 여전히 사카린이 유해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겠지요.
“연구원들은 당연히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카린이 안전한 화학물이고 정부의 규제가 풀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이해가 아직 안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연구원들 입장에서는 본사를 설득해서 굳이 사카린 레시피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세상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는 겁니다.”
현재 이 회사로부터 사카린을 납품받아서 청량음료나 아이스크림, 빵, 과자를 생산하는 국내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실제로 한 번 박힌 부정적인 식품 이미지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62세 주부 김정자(가명)씨는 ‘사카린의 이미지’를 묻자 ‘나쁜 것’이라고 답했다.
“뻥튀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뻥튀기에 사카린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동네 아줌마들 몇몇이랑 설탕을 들고 간 적이 있어요. 뻥튀기 아저씨한테 우리 과자에는 사카린 대신에 설탕을 넣어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아저씨 말이 설탕을 쓰면 뻥튀기 기계가 끈적끈적거려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뻥튀기를 튀기지 않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언제부터 사카린이 나쁜 물질이라고 생각했나요.
“글쎄, 정확히 모르겠네요. 예전에 어렸을 때는 사카린을 맹물에 타 먹은 적이 많았거든요. 달달한 그 물을 마시면 희한하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사카린이 화학물질이고 암을 유발한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사카린에 대한 인식 바꾸는 것이 남은 인생 숙제”
‘사카린=발암물질’이라는 얘기를 어떻게 캐나다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일까. 강혜봉 이사는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잘못된 실험이었다”고 말했다.
“캐나다 산하 연구단지에서 수컷 쥐와 암컷 쥐에 사카린을 투여했는데, 그때 투여한 양이 1일 허용치의 500배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투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수컷 쥐에서 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왜 그런 왜곡된 실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 이유에서이건, 어떻게 형성된 이미지이건, 부정적인 편견은 오랫동안 사람의 뇌리에 박힌다. 김동길 명예회장은 “내가 사카린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굳어진 인식의 벽을 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쉽지 않지요. 사카린이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디다.”
—그래도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뭐 하나는 나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오랫동안 왜곡된 이미지가 축적된 결과입니다. 쥐랑 물고기에 실험을 했잖아요. 과학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설탕은 자연 원료인 사탕수수가 원료이지만, 사카린은 화학제품이라 그렇지 않을까요.
“소금, 아스피린 전부 화학물질입니다. 화학물질을 아예 먹지 않겠다는 것은 암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사카린의 이미지가 미원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맛 차원에서 볼 때, 미원의 경우 대체재인 천연 성분이 충분히 맛을 내주니까 미원 대신에 천연을 먹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카린의 대체재인 설탕은 몸에 해로워요. 반면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은 설탕보다 덜 해로워요. 특히 당뇨환자, 비만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요. 그러니까 먹어야지요.”
—사카린이라는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요.
“사카린이라는 이름이 100년 넘었습니다. 사카린에 대한 국민 인식이 잘못됐다면 그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사카린이 안전하다는 것을 널리 알려서 사카린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 사카린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도 옳은 일은 해 나가야 하는 것이 남은 내 인생의 숙제입니다.”
식약처의 규제가 풀렸지만, 납품처 하나 뚫지 못하자 JMC는 얼마 전 ‘드림슈가’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설탕 99%, 사카린 1%를 넣은 설탕이다. 현재 롯데마트에서 판매 중인데, 한 점포당 한 달에 10봉지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들이 사카린을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싸늘하다. ‘왜곡된 상식’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동길 JMC 명예회장의 남은 삶의 숙제는 ‘사카린 제대로 알리기’다. 만 서른셋에 혈혈단신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26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워 낸 그에게 40여 년의 인생 역정을 몇 차례 물었다. 그는 교사를 하다가 사업을 하게 된 계기, 회사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 등을 얘기하다가도 어느새 사카린으로 화제를 돌렸다. “내 살아 있을 때 사카린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야,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