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史書 속에 나타난 鄭道傳의 실체 : 월간조선

근래에 와서 TV 시청자들은 역사드라마에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드라마를 사실인 양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 그것이 곧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서스펜스나 스릴을 가미하기 위해서 과장이나 허구를 담을 수밖에 없다.

지금 KBS에서 드라마 <정도전>을 방영하고 있다.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정도전은 우리 역사에서 보는 큰 인물임엔 틀림없다. 따라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러나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양면이 있다. 근래 사학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는 정도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

조선 인조(仁祖) 때 명재상이며 문장가로 이름난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수상록(隨想錄) 형식으로 쓴 《상촌잡록(象村雜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절개와 지조로 이름난 고려와 조선시대 명인(名人)들, 단종 폐위 때 절의(節義)를 보인 사육신(死六臣), 여러 명재상 등에 대해 논평했다. 여기에는 정도전에 관한 내용도 있다.

“마음 쓰는 바가 小人처럼 심했다”

고려말의 충신 이숭인은 정도전의 친구였지만, 정도전의 수하에게 打殺되었다.

<정도전은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더불어 목은(牧隱) 이색(李穡)에게 배워 재주와 명성이 도은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음가짐이 달랐는데 그는 항상 불평불만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정도전은 권력을 쥔 신하가 되어 자기의 사람 황거정(黃居正)을 시켜 도은이 귀양 가 있는 고을에 원(員·고을수령)으로 내려보내서 도은을 때려죽이게 하였다. 정도전은 마음 쓰는 바가 소인(小人)처럼 심했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정도전은 방석(芳碩)의 난에 간여해서 자기의 몸이 두 동강이 났고, 황거정 또한 정도전의 문객이라 하여 태종(太宗)의 미움을 받아 특별히 훈적(勳籍)이 삭제당했는데 지금까지 회복되지 아니하였다. 그의 자손들이 원통함을 호소하였으나 많은 선비들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정도전이 받은 화(禍)는 이숭인보다 심했다. 이숭인의 이름은 후세까지 빛났으니 그는 하늘의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으므로 가히 소인배에게는 경고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런 내용도 있었다.

<고려 역사에 칭찬하고 나무라는 것은 모두 믿을 수 없거니와, 말년의 사직(社稷)은 더욱 어긋나고 잘못되었다. 이것은 비록 숨기고 피하는 데 국한되어 그렇다고 하겠는데, 그러나 믿게 하는 글에서 어찌 그 사실을 감추기만 할 수 있겠는가. 창왕(昌王)을 왕위에 올리고 우왕(禑王)을 내보낸 것, 윤이(尹彛)와 이초(李初)를 추방한 세 가지 사건은 큰 죄가 되는 것으로 원래의 신하들과 원로들이 밀려나고 유배되고 하였으니 저 정도전과 윤소종(尹紹宗), 조준(趙浚)은 도대체 하늘의 도리를 몰랐단 말인가. 《고려사》를 찬술한 정인지(鄭麟趾)도 그렇다. 정인지는 세종과 문종 양 조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으나 마침내 그는 단종 임금을 죽인 역적이 되었다.>

이 두 내용에서 정도전은 정권욕이 강한 사람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인지의 《고려사》에서도 정도전의 끈질긴 정권욕에서 정적(政敵)에 대한 술수와 잔인함이 있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

“이색을 극형에 처하라”

목은 이색. 정도전은 이색을 극렬하게 탄핵했다.

정도전은 조정 대신인 이색과 우현보(禹玄寶)를 죽일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그들이 왕씨(王氏)의 혈속(血屬)이 아닌 우왕과 창왕을 왕위에 올렸다는 이유로 이런 상소를 올린 것이다. 정도전이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 때 올린 상소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왕씨를 가로막고 신우의 아들 신창(창왕)을 세운 자와 신우를 맞이하여 왕씨의 대를 끊으려 한 자는 찬탈에 극악한 자이며 난신적자(亂臣賊子) 중에서도 으뜸가는 자인데 벌써 수년간을 처벌받지 않았으며 그들은 버젓이 몸치장을 하고 수하에 많은 무리를 거느리며 조금도 거리낌 없이 서울과 지방을 드나들고, 자제(子弟), 조카, 생질 등의 사람들을 요직에 배치시켜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재상의 지위에 있어 그런 사실에 대하여 관리감독의 책임을 피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철저하게 그들의 죄상을 규명하여 처벌해야 합니다.>

이 상소 외에 왕에게 직접 간언(諫言)한 것이 있는데, 참으로 냉혹하다.

<이색의 죄는 이미 뚜렷하니 극형에 처하여 충성치 못한 자들에게 경계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현보의 죄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대간(臺諫)에서 연이어 글이 올려지고 있는바, 그것은 먼 곳에 귀양 보내기를 청하고 있는 것이어서 소신 역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따로 있게 하는 것이 옳은 줄 압니다.>

정도전은 즉위한 지 1년밖에 안 된 창왕을 밀어내고 공양왕을 세운 이성계 일당 중에서 남달리 적극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는 공양왕 시절 재상의 반열에 오른 후 쉬지 않고 우왕 때의 중신(重臣)들을 탄핵했다. 그가 탄핵한 사람 중에는 스승 이색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그를 미워하여 좌천시켰다가 귀양 보냈다.

우왕은 신돈의 자식인가?

정도전은 왜 그렇게도 스승 이색을 죽이지 못해 안달했을까? 그들이 사제(師弟)간이지만 정치색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정권싸움이 발생한다. 정권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爲政者)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정적(政敵)들에게 집요하고 악독했다는 게 문제다. 이색은 결국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 여강(驪江·경기 여주에 있는 강)에서 배 타고 가던 중 배 안에서 맞아 죽었는데, 정도전의 수하 소행이라고 알려져 있다.

앞에서 보았지만, 정도전은 당시 여느 조정 신하들보다도 우왕과 창왕을 고려 왕실의 혈통이 아닌 괴승(怪僧) 신돈(辛旽)의 후손으로 모는 데 앞장섰다.

공민왕 시절 권력을 휘둘렀던 신돈에게는 반야라는 이름의 예쁜 여종이 있었다. 공민왕이 신돈의 집에 자주 드나들다가 반야와 동침(同寢)해 낳은 아이가 우왕이다. 그때까지 공민왕에게는 대(代)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는 우왕이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고 신돈이 반야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공민왕의 자식으로 속였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것이 정치적 쟁점이 되었고, 특히 위화도 회군 이후에는 우왕과 창왕을 몰아내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찬술(撰述)한 《고려사》에서는 우왕을 성종이니 공민왕이니 하는 왕호(王號)로 표기하지 않고, 신돈의 자식이라는 의미에서 신우(辛禑)라 표기하였다. 그런데 《고려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도 있다.

공민왕과 반야

<공민왕이 신돈을 수원으로 귀양 보내기로 한 후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 신돈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 있는 여종과 내통하여 아들을 보았는데 그 아이를 잘 보호해야 한다”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데려다가 명덕태후(明德太后·27대 충숙왕의 비)의 거처에 두고 기르게 하면서 “맏아들이 있으니 나로서는 근심이 없도다” 하였으며 “신돈의 집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하여 내가 동침을 한 것이다” 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보면, 우왕은 공민왕이 남모르게 숨겨 놓은 자식이었다는 얘기가 조정 신하들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 사후(死後)에 우가 왕위에 올랐으나 어린 나이 때문에 국사(國事)를 볼 수 없어 공민왕의 모후(母后)와 측근 중신들이 대행했다. 공민왕은 우를 일찍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으로 봉했다. 이 군호(君號)는 정식 왕자 칭호였다. 이때 우의 나이는 열 살이었다.

우왕이 정녕 신돈의 핏줄이었다면 공민왕이 과연 이 사실을 몰라서 우를 핏줄로 믿고 대군으로 책봉했을까? 왕가의 많은 종친(宗親)들은 물론 조정 대신들이 우왕이 신돈의 아이란 것을 몰라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을까?

고려 말기에 유명한 학자 중에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조선 3대 태종(太宗)의 스승으로 목은 이색과 친분이 두터웠다. 원천석이 남겨 놓은 글 중에는 고려의 역사를 직필(直筆)로 써 놓은 게 많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우왕이 공민왕의 자식임을 보여주는 주는 듯한 내용의 시(詩) 한 수가 있다.

<전왕(前王·공민왕) 부자(父子)가 각각 분리되어 만리(萬里)나 되는 동쪽과 서쪽 하늘가에 있네. 가령 한 몸이 서인(庶人)이 되었더라도 한가닥 마음은 천고(千古)에 변하지 않으리라.>

신흠의 《상촌잡록》에도 우왕이 신씨(辛氏) 혈속이라는 정도전의 주장을 원천석이 부인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와 창의 일은 마땅히 원천석(元天錫)의 기록을 진실한 역사 기록으로 봐야 한다. 최영(崔瑩)이 죽으니 고려에는 사람이 없었고 정도전이 들어오니 고려에는 역적이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한 사람이 있어서 나라가 일어서고 망한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대체로 고려가 망한 것은 무진년(戊辰年)에 임금 우를 폐한 데서 그 원인이 있었다. 임금을 폐한 뒤에도 목은과 같은 분들이 아직 남아 있음으로 해서 한가닥이나마 공정한 의논은 없어지지 않았다.

정도전과 윤소종 등의 무리가 우를 왕씨가 아니라고 하는 자를 충신이라 칭하고 반대로 왕씨라고 말하는 자를 역적이라 몰아세우며 조정을 혼란케 하고 민심을 현혹시켰다. 학문과 덕행이 있는 선비들마저 어육(魚肉)으로 만들어 입을 봉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5년 만에 고려를 망하게 하였다.

그 시대에 나서 바르고 곧은 행동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삶이 고생스러웠으나 현혹되는 바가 없었다. 시골에서 생활하며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대로 써서 역사에 남기려 한 원천석의 붓도 있었으니….>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면서 왕위에서 몰아내고, 그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색, 이숭인 등을 죽인 정도전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다.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갈등

한양 천도시 정도전과 대립했던 무학대사.

정도전은 학식과 경륜이라는 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경제문감(經濟文鑑)》 등 국가경영에 관한 저서를 남겼고, 《고려사》 37권을 찬술하기도 하였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 당대 최고의 인물 중 하나였다. 병법과 의술 등에도 능했다.

하지만 필히 적(敵)이 있게 마련인 정치의 세계에서 정도전은 비정(非情)하고 냉혹(冷酷)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도전은 독선(獨善)이 심했다. 그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만이 옳다는 듯 독단적 주장과 행동을 많이 했다. 그는 사실상 조선의 설계자였다. 그가 구상한 조선의 통치 시스템은 조선조 500년 동안 이어졌다. 이처럼 그의 업적이 후세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그의 성격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조선이 개국(開國)하고 나서 도읍을 새로 정하는데, 한양 도읍으로 결정이 난 후 궁궐을 짓는 데 정도전과 무학대사(無學大師)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것은 궁을 세우는 방향 문제였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무학대사에게 궁궐을 어느 방향으로 보고 세우는 것이 좋은가 물었을 때, 무학대사는 인왕산(仁王山)을 진산(鎭山)으로 해서 뒤로 하고 백악(白岳·일명 북악산)과 남산(南山)을 좌우로 하는 궁궐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帝王)은 모두 남쪽을 보고 앉아 통치하였던 것인데, 그런 모습이면 동향(東向)인데 난 그런 궁궐자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무학대사는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이후로 200년 내에 반드시 왕위 찬탈 같은 것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정도전의 주장대로 경복궁(景福宮)을 남향으로 세웠기 때문에 이후 세조의 왕위 찬탈 등이 발생했다고 한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비롯해 경복궁 내 여러 전(殿)의 이름, 4대문 등의 이름도 정도전이 지었다.

이단 배척에 철저

사실 태조 이성계는 신라 말기 때 고승(高僧) 도선(道詵)의 비기(秘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무학대사에게 한양 궁궐을 짓는 데 대해 조언을 구한 것인데 정도전이 가로막은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초부터 억불정책(抑佛政策)을 주도했다. 그러한 그가 도선의 비기 같은 것을 무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도전과는 달리 비록 유생(儒生) 출신이라 하더라도 다른 개국공신들은 궁궐터를 잡거나 하는 데서 도선의 비기 등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할 때 개국공신 하륜(河崙)은 “도선의 비기에 한수(漢水)가 명당(明堂)에 든다 하는 말이 있으니 무악(毋岳)의 남쪽에 궁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이단(異端) 배척에 남달리 철저했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실로 적이 많았다. 조선개국의 첫째 가는 공신이면서도 왕자의 난(亂)으로 비명(非命)에 가고, 고종 때에 복권되기까지 공식적인 역사책이나 지식인들의 글에서 ‘역신(逆臣)’으로 몰린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에게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이 양면을 모두 알아야 그 사람에 대해서도, 역사나 현실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