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老後 보내기에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에 제주 자주 찾아
⊙ 높은 부동산 가격, 외지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문제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높은 부동산 가격, 외지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문제
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 제주 성산일출봉. 제주도의 절경을 좋아하는 국내 외지인과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여행 좋아하는 나는 틈만 나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집을 나선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내든 해외든 가리지 않고 많이 다녔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를 덮친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건 이전까지 일본 여행만 33번을 갔다 왔다. 일본은 깔끔하고 안전한 지역이라 홀로 여행을 즐기는 직장인에게 3박 이내의 여행지로는 최고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홋카이도 일대 배낭여행이었다. 삿포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의 화산지역(아시히카와)과 왼쪽의 호수 지역(도야코)을 두루 걸어 본 여행길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도쿄의 긴자거리 탐사도 재밌었지만, 도심보다는 외곽 여행이 더 좋았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여관에서 즐기던 가이세키 요리와 온천탕, 노천 온천에서 바라본 눈 덮인 후지산,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방사능 유출 사건 이후 일본은 바라보기도 부담스러운 지역이라 발길을 끊었다.
그러면서 요즘 또 부지런히 다니게 된 곳이 제주도이다. 몇 해 전부터 2박 정도 할 수 있는 시간만 나면 부지런히 배낭을 꾸려 떠난다. 저가항공이 생겨서 여행비 부담도 별로 없다. 주중 할인만 잘 이용하면 KTX를 이용하는 가격으로 훌쩍 떠났다가 올 수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혼자였으나 요즘은 남편이 동행을 해 줘 대화상대까지 생겼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행이 더 즐겁다.
우리의 제주여행은 단조롭지 않다. 매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올레 코스 정복이 목표였다가 이걸 다 해 봤기 때문에 이젠 바닷가를 벗어나 중산간 지역 탐사로 길을 바꾸었다. 제주도는 섬 가운데 자리 잡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북쪽 제주시와 남쪽 서귀포시로 양분된다. 섬 가운데 산이 있어서 바닷가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은 고깔콘처럼 작아 보이지만, 중산간에 접어들면 위압적인 위용을 드러낸다.
서귀포 지역에서 바라본 한라산은 할머니가 머리를 풀고 누워 있는 옆모습처럼 보이는데, 따뜻하고 정감이 넘친다. 이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할머니가 넘어져서 팔목 뼈가 골절된 이후 매일 아침 그 긴 백발을 빗겨 가며 한동안 쪽을 지어 드린 일이 있었다. 골절 치료 후에도 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자 할머닌 손녀를 더 이상 귀찮게 해선 안 되겠다며, 구순에 평생 처음 커트 머리를 하시곤 몇 해 후 돌아가셨다.
요 몇 해 제주도를 다녀 보면서, 노후를 보내기에 적당한 지역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본토보다 따뜻하고 공기도 좋으며, 무료하지 않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각종 희귀한 크고 작은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즐겁고, 뭍과는 다른 식물들을 탐사하는 일도 흥미롭다. 올레 7코스에서 만나는 제주 특유의 숲은 마치 공룡이 튀어나올 듯 음험한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올레길을 걷기도 하고 말도 탈 수 있으며, 드라이브를 즐겨도 색다른 맛이 있다. 갖가지 지역특산물을 적절하게 이용한 제주도 음식도 미각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중국발 부동산 투기 붐에 제주가 몸살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이 들수록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의료시설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는데, 곧 서귀포 지역에 3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의료타운이 들어선다니 그 문제도 해결될 것 같다. 물론 그 시설을 만들어 내는 자본이 중국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료서비스는 한국 유명 대학병원 의료진이 제공한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판단을 갖고 요즘 단순 여행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노후를 보낼 땅을 찾는 일로 제주도를 찾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그곳의 부동산 전문가를 소개받아서 여러 지역의 땅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황당한 건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평당 10만원도 안 되던 중산간의 귤밭이 50만원 전후로 거래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한테 들은 말로는, 요즘 제주도 부동산 추세는 원주민들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서귀포 지역의 땅을 외지인들에게 팔고 생활편의시설이 집중된 제주시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행정도시가 제주시라 공항을 비롯해 모든 편의시설이 이쪽으로 쏠려 있어 일상적으로 살기엔 편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지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서귀포 지역에 농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보통 귤을 수확하려면 일 년에 열 번 정도 농약을 뿌려야 한단다. 농약 치고 수확할 때 일당을 주고 일할 사람을 사야 하니 웬만한 크기의 귤밭이 안 되면 수익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고생을 하며 귤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3~5배 가까이 오른 땅을 팔아 목돈을 만들어서 도시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요즘 제주도 부동산에는 전원생활을 원하는 외지인들이 집 짓고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귤밭이 매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좋은 자리는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는 상황이다. 대지보다는 자연녹지 비율이 훨씬 높은 제주도는 대지 이외의 땅에 집을 지을 경우 총 면적의 20%만 건물을 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60평짜리 집(총 면적 기준, 2층일 경우 30평)을 지을 계획이라면 300평을 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외지인 입장에서는 땅을 구입하는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여기에 집을 지으려면 육지에서 건축자재를 갖고 와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건축물이라도 비용이 적어도 10%는 더 들어간다. 요즘 일반적인 주택 건축비가 평당 5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제주도에 60평짜리 집을 지을 생각이라면 건축비만 3억원 넘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땅값까지 더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렴한 귀농생활과는 거리가 먼 준비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제주도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주도에 사는 일이 이렇게 고비용의 투자가 필요하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에서 불어 오는 제주 부동산 투기 붐 때문이다. 요즘 제주 어느 곳을 가든 중국말이 제주도 말만큼 일상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우리 부부는 올레길에 갈 때 렌터카를 쓰지 않고 제주도 일주버스를 이용한다. 발걸음이 머문 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데는 이 방법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 값싼 버스를 우리 같은 외지인이 이용하는 일도 사실 드물었다. 현지인 중에서도 마실 다니는 노인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그 버스에도 중국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탔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다니던 이들이 이제는 제주 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국인들의 투자, 투기인지 애매할 때도
성산일출봉이 포함된 올레1코스를 걸을 때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엄청난 규모의 중국 관광객 틈에 끼여서 올라갔다. 우리가 이방인 같았다. 그 옆의 섭지코지에 갔을 때는 ‘올 인’이라는 드라마 촬영지 부근의 엄청난 별장단지를 보고 놀랐다. 한 채에 15억~20억원 정도 하는 고급 별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는데, 모두 중국 사람들이 지어서 자국인들에게 판매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올레길 8코스를 걸을 때에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단지인 중문단지 속에도 중국 자본으로 신축 중인 대형 건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난번 제주여행에서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중산간 지역의 펜션에 머문 적이 있다. 다음날 새벽 산행을 위해 도착 후 짐을 풀고 간단한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해발 250m에 있는 그 지역은 언덕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서귀포 시내와 서귀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펼쳐지는 위치에 있다. 그곳에도 길이 닦이며 섭지코지에서 본 별장 단지와 너무나 흡사한 형태의 고급별장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단지에 세워진 조감도의 한자를 읽어 보니 중국 회사가 땅을 매입해서 한국의 건축사와 함께 짓고 있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제주에 투자하는 중국 자본의 규모가 커지면서 하와이의 90%를 일본 사람이 소유하고 있듯이 제주 땅의 상당 부분이 중국 사람들 손에 넘어간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의 중국인 소유 토지는 9개 투자 업체의 대규모 관광지 사업장만 180만9000m²이다. 제주도에 투자한 전체 외국인 기업 14개 중 절반 이상이다. 투자사업 규모는 모두 3조3490억원으로 외국인 전체 투자사업비 5조6782억원의 53.5% 규모이다. 또 이 투자 사업이 바닷가에 비해 가격이 싼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 집중되면서 난개발과 환경파괴 논란도 뜨겁다. 한라산 중산간은 개발의 마지노선과도 같은 구역이다.
이런 외국 자본 투자유치에 대한 제주도의 대응태세도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투자한다고 나선 외국기업에 대규모 토지를 헐값에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부동산 투기가 될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정부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허락한 인천, 여수, 강원 지역과 함께 외국인이 5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체류 비자를 발급해 주고,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주는 지역이라 중국 부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중국 자본의 부동산 투자 바람과 외지인들의 제주도 선호 바람이 맞물리며 제주도 땅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살 터전을 옮기는 일에 집짓는 비용만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요즘 나온 매물 중에는 제주도가 좋아서 집 짓고 들어왔다가 너무 무료해서 다시 떠나려는 사람들의 집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제주행을 결정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듯하다. 누구든, 아무리 절경 속에 산다 한들 경치만 바라보며 24시간 쉬고 지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적당한 노동은 휴식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그러다 보니 펜션을 짓고 들어오는 외지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펜션 간 경쟁도 치열하다. 특화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펜션은 제주도에 아무리 관광객이 넘쳐난다 해도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제주 토박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외지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스갯소리로, 제주에는 아직도 골품제도가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성골, 뭍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은 진골, 외지인은 천민이라는 말이다. 이래서 여행객으로 다닐 때는 모르지만 거주가 시작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는 분 중 서울을 떠나 그곳에서 대형 펜션을 경영하는 분은 제주도 현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했다가 힘들어 심장병을 얻었다고 했다. 또 한 서울 거주 사업가는 현지인들과 손발이 안 맞아 결국 제주에서 호텔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이 분위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올해 서귀포 중문단지로 이사하면서 아예 서울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빌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 역시 멋진 타향 제주도 어느 곳에 정착해 무엇을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홋카이도 일대 배낭여행이었다. 삿포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의 화산지역(아시히카와)과 왼쪽의 호수 지역(도야코)을 두루 걸어 본 여행길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도쿄의 긴자거리 탐사도 재밌었지만, 도심보다는 외곽 여행이 더 좋았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여관에서 즐기던 가이세키 요리와 온천탕, 노천 온천에서 바라본 눈 덮인 후지산,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방사능 유출 사건 이후 일본은 바라보기도 부담스러운 지역이라 발길을 끊었다.
그러면서 요즘 또 부지런히 다니게 된 곳이 제주도이다. 몇 해 전부터 2박 정도 할 수 있는 시간만 나면 부지런히 배낭을 꾸려 떠난다. 저가항공이 생겨서 여행비 부담도 별로 없다. 주중 할인만 잘 이용하면 KTX를 이용하는 가격으로 훌쩍 떠났다가 올 수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혼자였으나 요즘은 남편이 동행을 해 줘 대화상대까지 생겼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행이 더 즐겁다.
우리의 제주여행은 단조롭지 않다. 매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이다. 올레 코스 정복이 목표였다가 이걸 다 해 봤기 때문에 이젠 바닷가를 벗어나 중산간 지역 탐사로 길을 바꾸었다. 제주도는 섬 가운데 자리 잡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북쪽 제주시와 남쪽 서귀포시로 양분된다. 섬 가운데 산이 있어서 바닷가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은 고깔콘처럼 작아 보이지만, 중산간에 접어들면 위압적인 위용을 드러낸다.
서귀포 지역에서 바라본 한라산은 할머니가 머리를 풀고 누워 있는 옆모습처럼 보이는데, 따뜻하고 정감이 넘친다. 이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할머니가 넘어져서 팔목 뼈가 골절된 이후 매일 아침 그 긴 백발을 빗겨 가며 한동안 쪽을 지어 드린 일이 있었다. 골절 치료 후에도 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자 할머닌 손녀를 더 이상 귀찮게 해선 안 되겠다며, 구순에 평생 처음 커트 머리를 하시곤 몇 해 후 돌아가셨다.
요 몇 해 제주도를 다녀 보면서, 노후를 보내기에 적당한 지역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본토보다 따뜻하고 공기도 좋으며, 무료하지 않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각종 희귀한 크고 작은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것도 즐겁고, 뭍과는 다른 식물들을 탐사하는 일도 흥미롭다. 올레 7코스에서 만나는 제주 특유의 숲은 마치 공룡이 튀어나올 듯 음험한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올레길을 걷기도 하고 말도 탈 수 있으며, 드라이브를 즐겨도 색다른 맛이 있다. 갖가지 지역특산물을 적절하게 이용한 제주도 음식도 미각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중국발 부동산 투기 붐에 제주가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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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8일 중국의 부동산 개발 회사인 뤼디그룹이 제주 서귀포시 동흥동·토평동 일대에 공사 중인 헬스케어타운. 최근 제주도엔 중국 자본과 관광객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
이런 판단을 갖고 요즘 단순 여행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노후를 보낼 땅을 찾는 일로 제주도를 찾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그곳의 부동산 전문가를 소개받아서 여러 지역의 땅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황당한 건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평당 10만원도 안 되던 중산간의 귤밭이 50만원 전후로 거래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한테 들은 말로는, 요즘 제주도 부동산 추세는 원주민들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서귀포 지역의 땅을 외지인들에게 팔고 생활편의시설이 집중된 제주시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행정도시가 제주시라 공항을 비롯해 모든 편의시설이 이쪽으로 쏠려 있어 일상적으로 살기엔 편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지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서귀포 지역에 농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보통 귤을 수확하려면 일 년에 열 번 정도 농약을 뿌려야 한단다. 농약 치고 수확할 때 일당을 주고 일할 사람을 사야 하니 웬만한 크기의 귤밭이 안 되면 수익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고생을 하며 귤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3~5배 가까이 오른 땅을 팔아 목돈을 만들어서 도시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요즘 제주도 부동산에는 전원생활을 원하는 외지인들이 집 짓고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귤밭이 매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좋은 자리는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는 상황이다. 대지보다는 자연녹지 비율이 훨씬 높은 제주도는 대지 이외의 땅에 집을 지을 경우 총 면적의 20%만 건물을 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60평짜리 집(총 면적 기준, 2층일 경우 30평)을 지을 계획이라면 300평을 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외지인 입장에서는 땅을 구입하는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여기에 집을 지으려면 육지에서 건축자재를 갖고 와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건축물이라도 비용이 적어도 10%는 더 들어간다. 요즘 일반적인 주택 건축비가 평당 5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제주도에 60평짜리 집을 지을 생각이라면 건축비만 3억원 넘게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땅값까지 더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렴한 귀농생활과는 거리가 먼 준비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제주도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주도에 사는 일이 이렇게 고비용의 투자가 필요하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에서 불어 오는 제주 부동산 투기 붐 때문이다. 요즘 제주 어느 곳을 가든 중국말이 제주도 말만큼 일상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우리 부부는 올레길에 갈 때 렌터카를 쓰지 않고 제주도 일주버스를 이용한다. 발걸음이 머문 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데는 이 방법이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 값싼 버스를 우리 같은 외지인이 이용하는 일도 사실 드물었다. 현지인 중에서도 마실 다니는 노인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그 버스에도 중국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탔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다니던 이들이 이제는 제주 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국인들의 투자, 투기인지 애매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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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제주군에 있는 펜션. 제주도에 펜션을 짓고 들어오는 외지인들이 늘어나면서 펜션 간 경쟁도 치열하다. |
올레길 8코스를 걸을 때에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단지인 중문단지 속에도 중국 자본으로 신축 중인 대형 건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난번 제주여행에서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중산간 지역의 펜션에 머문 적이 있다. 다음날 새벽 산행을 위해 도착 후 짐을 풀고 간단한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해발 250m에 있는 그 지역은 언덕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서귀포 시내와 서귀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이 펼쳐지는 위치에 있다. 그곳에도 길이 닦이며 섭지코지에서 본 별장 단지와 너무나 흡사한 형태의 고급별장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단지에 세워진 조감도의 한자를 읽어 보니 중국 회사가 땅을 매입해서 한국의 건축사와 함께 짓고 있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제주에 투자하는 중국 자본의 규모가 커지면서 하와이의 90%를 일본 사람이 소유하고 있듯이 제주 땅의 상당 부분이 중국 사람들 손에 넘어간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의 중국인 소유 토지는 9개 투자 업체의 대규모 관광지 사업장만 180만9000m²이다. 제주도에 투자한 전체 외국인 기업 14개 중 절반 이상이다. 투자사업 규모는 모두 3조3490억원으로 외국인 전체 투자사업비 5조6782억원의 53.5% 규모이다. 또 이 투자 사업이 바닷가에 비해 가격이 싼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 집중되면서 난개발과 환경파괴 논란도 뜨겁다. 한라산 중산간은 개발의 마지노선과도 같은 구역이다.
이런 외국 자본 투자유치에 대한 제주도의 대응태세도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투자한다고 나선 외국기업에 대규모 토지를 헐값에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부동산 투기가 될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정부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허락한 인천, 여수, 강원 지역과 함께 외국인이 5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면 체류 비자를 발급해 주고,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주는 지역이라 중국 부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중국 자본의 부동산 투자 바람과 외지인들의 제주도 선호 바람이 맞물리며 제주도 땅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살 터전을 옮기는 일에 집짓는 비용만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요즘 나온 매물 중에는 제주도가 좋아서 집 짓고 들어왔다가 너무 무료해서 다시 떠나려는 사람들의 집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제주행을 결정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듯하다. 누구든, 아무리 절경 속에 산다 한들 경치만 바라보며 24시간 쉬고 지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적당한 노동은 휴식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그러다 보니 펜션을 짓고 들어오는 외지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펜션 간 경쟁도 치열하다. 특화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펜션은 제주도에 아무리 관광객이 넘쳐난다 해도 수지타산을 맞추기 힘들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제주 토박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외지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스갯소리로, 제주에는 아직도 골품제도가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성골, 뭍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은 진골, 외지인은 천민이라는 말이다. 이래서 여행객으로 다닐 때는 모르지만 거주가 시작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는 분 중 서울을 떠나 그곳에서 대형 펜션을 경영하는 분은 제주도 현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했다가 힘들어 심장병을 얻었다고 했다. 또 한 서울 거주 사업가는 현지인들과 손발이 안 맞아 결국 제주에서 호텔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이 분위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올해 서귀포 중문단지로 이사하면서 아예 서울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빌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 역시 멋진 타향 제주도 어느 곳에 정착해 무엇을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